등장인물
지성 - 지식을 파는 사람 30대 가량의 사나이. 안경을 쓴 지식인 타입의 좀
시니컬한 성격
김시희 - 시간을 파는 여인 27가량의 여인. 올드 미스형의 여자로 일밖에
모르는 성격
허몽녀 - 꿈을 파는 소녀 19세 가량의 순수한 느낌을 준다.
손님 1 - 중년 남자 심약한 싸라리.맨
손님 2 - 중년 남자 얼렁둥땅 세상을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회사원
대학교수 - 에라스무스를 전공하는 50대의 교수
도둑소년 - 15세 가량의 소년
여대생 - 샌드위치맨1 - 천사 1 -
대학생 - 샌드위치맨2 - 천사 2 -
나포레온 - 샌드위치맨3 - 북치는소년 -
시종 - 귀부인 - 쮸쮸입은 소녀1 -
여부장 - 여대생부 - `` 2
사장 - 경관 - `` 3
조련사(남자) - 도둑 - `` 4
무대
백화점 안 세개의 판매대가 놓여있고 그 배면에는 진열대와 각종 선전 포스터같은 것이 붙어있다. 좌측에는 시간을 파는 판매대가 놓여있고 배면 상품진열대에는 마치 축제 때 사용하는 색종이 테이프 다발들이 걸려 있다. 그 테이프는 시간을 상징하는 상품이며 아침 시간은 오렌지 빛 흰빛은 낮시간 보라빛은 저녁 검은빛은 밤, 그리고 통금 이후의 시간은 회색빛으로 제일 팔리지 않는 시간이다. 다른것보다 두드러지게 많이 보인다. 판매대에 붙인 선전 구호는 "Time is money"라고 쓰여져 있고, "이제 당신의 고민은 해결되었습니다"라는 캐치 프레이스가 붙어있다. 무대 중앙에는 꿈을 파는 판매대 - 판매대에 고무풍선이 떠있고, 파란빛은 야망의 꿈, 빨간빛은 사랑의 꿈, 하얀빛은 순결의 꿈이다. 풍선에 야망, 사랑 동심 - 순결이라고 써 놓았다.우측에는 지식을 파는 판매대,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선전문이 붙쳐져 있다.배면 상품진열대에는 각기 지식을 나타내는 철학자의 초상들이 붙어있는데 바로 이것이 상품들이다. 초상화는 가면처럼 사람들이 쓸수 있게 되어 있으며 형광도료로 눈입들을 그려 무대에 불이 꺼져 있을때에도 유령처럼 그부분들이 번쩍거린다. 본 무대뒤에는 후막으로 가려진 TV 화면 같은 높은 뒷무대가 마련되어 있어 선전용 광고무대와 환상장면으로 사용될 수 있게 한다.
[막] 서막
(까만 실크헹과 연미복과 하얀 장갑을 낀 장의사차림을 한 사내가 손에는 가죽채찍을 들고 나타난다. 그러나 전체인상은 써커스단에서 동물을 다루는 조련사 같은 인상을 풍기는 사나이다. 세사람의 샌드위치맨을 나란히 세워놓고 가두선전 연습을 시키는 중이다)
[남자] 자네부터 시작해 보라구
[샌드위치맨] (북을 든 샌드위치맨1 북을 둥둥 친다) 기적이요 기적이요 기적이 일어 났어요 (커다란 소리로 외친다)
[남자] (허공에 가죽채찍을 쳐서 소리를 울려 중단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아니라구 그렇게 하는게 아냐 그건 꼭 마굿간에서 불이 났다고 외쳐대는 마부소리 같잖아요 지금 사람들은 큰소리에는 놀라지 않어 믿지도 않구 기적은 발자욱 소리도 없이 비둘기 걸음으로 살며시 오는거야 그러기 위해선 먼저 침묵의 소리가 필요하지 이렇게 말야 쉬-삥 기적이요 기적이 일어났어요 숨소리를 죽이고 마치 당신 혼자만 들으라는 투로 나즉한 소리로---
[샌드위치맨] (메가폰에 대고) 쉬-삥 기적이요 기적이 일어났어요 진짜 기적이요
[남자] (다시 허공을 향해 채찍을 친다) 너무 거룩해 권위주의적이야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으라는 거리의 전도사인줄 안다구 홍해바다가 갈라진다. 지팽이로 바위를 쳐서 물이 솟아나게 한다. 그런 기적으로 오해 한단말야. 워터스키를 타는 세상이라구 바다가 갈라진다 해도 무엇 때문에 그들이 다리 아프게 그 위를 걸어다니겠냐? 사하라 사막에도 코카콜라 선전탑이 서있는 이 세상에 무엇때문에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을 얻겠나? 모세는 낡았어 현대적인 감각이 있어야 해 자 이렇게 밤자리에서 우리의 아내가 귓속말로 속삭이듯이 "쉬-삥 기적이요 기적이 일어났어요 이건 진짜 기적이예요"
[샌드위치맨] (축제용 뿔나팔로 불고는) 쉬-삥 기적이요 기적이 일어났어요 이것은 진짜 기적이요 돈으로 진짜 살수 있는 기적이요
[남자] (다시 가죽채찍을 울린다) 가벼워 너무 천하다구 그건 싸구려 고약을 팔고 다니는 약장수 소리야 무겁되 거룩해져서는 안되고 가볍되 천해져서는 안돼 흔한것은 기적이 아니야 거기엔 역설이 있어야 한다구 겨울에 내리는 비, 봄에 내리는 눈, 장례식장에서 들리는 웃음소리, 결혼식장에서 울려오는 통곡소리 모든건 모순을 가지고 있어야 그래야만 신비해 보이거든. 빤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역설을 사용해야 된다 자 - 연습을 해
[샌드위치맨] 쉬-삥 기적이요 기적이 일어났어요 이건 진짜 기적이요 돈주고 살수없는 기적이요
[샌드위치맨] (둥둥 북을 치고는) 요즈음엔 기적이란 없어요 뭐든지 돈을 주면 살수가 있으니까- 눈처럼 하얀 양심도--- 양과 같은 외로움도 복숭아처럼 익은 사랑까지도 살수 있어요 늙은이가 젊은이 행세를 할 수 있는 정력 강장제를--- 가발을--- 아이가 늙은이 행세를 하는 권위의 의지와 가발을--- 살수 있어요 돈 만주면 다 살수가 있어요 그러나 돈으로도 절대 살수 없는 것은 그건 시간이죠 성안에 있는 부자나 성밖의 거지도 하루는 다 같은 24시간 한 초도 더 늘릴 수 없고 일분도 더 줄일 수 없는 것이 시간-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것 그건 꿈이죠, 돈으로 꿈을 부술 순 있어도 살수는 없어요 야망의 꿈, 사랑의 꿈, 동심의 꿈, 양말이나 파는 백화점에서는 살수 없어요 돈으로 지식을 살수는 없죠. 제리코 성벽같이 튼튼한 창고에 싸둔 물건이라도 돈만 있으면 열쇠 없어도 다 열려요 그러나 남의 머릿속에 든 지식은 털어 내 올 수 가 없는 것. 자. 그러니 들으시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기적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 시간, 꿈, 지식, 이것을 돈으로 살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이지요 그런데 쉬-삥 이 기적이 일어났어요 기적의 백화점이 열렸습니다("금일개점"이라고 쓴 피켓을 꺼내서 관객석에 펴 보인다)
[남자] (회초리로 때리는 시늉을 하며 채찍소리를 내며)다시-다시 시작해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 드리듯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들여라 (가죽 채찍 소리만 계속 울리며 무대 어두워진다)
[막] 1막
(지성이 총채로 카운터 뒤 진열대에 늘어놓은 여러 탁자들의 가면에 쌓인 먼지를 턴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그들의 이름을 외운다)
[지성] 소크라테스, 이마누엘, 칸트, 쟌다르크, 루소, 파스칼, 공자, 플라톤, 맹자, 헤겔
(먼지 때문에 허몽녀 기침을 한다)
[허몽녀] 아이구 이 먼지야- 아이구 이 곰팡이 냄새야 그만 좀 털어요 숨이 막혀 죽겠어요 웬 먼지가 그렇게 많지요
[지성] 비린내를 풍기지 않는 생선장사가 어디에 있어? 손에 비늘을 묻히지않고 장사를 하는 생선장수 본적 있어? 지식을 팔려면 먼지와 곰팡내가 딸아 다니게 마련이거든 어느 것은 먼지 값까지 받아낸단 말야
[허몽녀] 먼지 값이라니요? 곰팡내가 나는 이 먼지도 돈을 받아요 냄새까지 팔아먹다니--- 세상에
[지성] 물론이지 여자들이 사는 향수는 냄새가 아닌가? 허영심 많은 여자들이 비싼 향수를 바르듯이 유식한 남자들은 곰팡냄새를 좋아한다네 그걸 그들은 교양이라고 부르지만 말야
[허몽녀] 그렇다면, 왜 귀중한 먼지를 털어 내서 남까지 못살게 굴어요 이건 명백한 영업 방해 라구요
[지성] 영업방해가 아니라 영업 술을 가르쳐주고 있는 중이야 불고기 집은 불고기 냄새를 피워서 장사를 하고 화장품 가게는 화장품 냄새를 피워서 장사를 하는 거라고 사람들의 코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해 현대는 후각으로 상품을 파는 시대야
[김시희] 왜들 이렇게 시끄럽죠 영업을 잡담으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시간이 아깝지도 않으세요 "시간은 돈이다"
[지성] 미스김 아무래도 내 단골 손님이 돼야겠는데 그런 낡은 금언을 쓰면 남들이 웃어요. 가만있자 (베르그송의 가면을 잡으면서) 그렇지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베르그송" 정도의 지식은 있어야 하지 않아? 그러면 최소한도 "시간은 돈이다"라는 싸구려에서 "시간은 기억의 강물이다""시간은 지속한다""시간은 순수의식이다"---
[김시희] 난 귀를 막고 있을 거예요 그런 골치 아픈 소리를 듣고 있다가 내 시간들이 귀로 새나갈지 모르니까
[허몽녀] 쉬-삥 손님이다
(종이봉투를 든 전형적인 월급쟁이 차림의 중년신사 등장한다)
[지성] 어서 오십 시요 무엇을 찾으십니까 선생님 같으신 분에는 이것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이것이 바로 최신 수입품 "레비스트로스"불란서재죠 요즈음엔 구조주의 예 그렇지요 구조주의를 모르시면 다방 출입하기도 어렵지요
(어리둥절하게 둘레 둘레 살피고 있다 시간을 파는 김시희는 손님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여러가지색의 테이프를 진열하고 있다)
[손님] 예---여기---여기에서 기적을---
[허몽녀] (가로막으며) 예 바로 여깁니다 (또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자 그 말은 제지하면서)말씀하시지 않아도 다 알아요 눈빛만 봐도 다 알아요 아무리 음식을 먹어도 늘 속이 비어 있는 것처럼 늘 허전하지요
[손님] (놀란 얼굴로) 늘 허전하다구?
[허몽녀] 언제나 안개낀 날이지요 언제나 가을바람이 불고 있지요 그러시지요? 집에서 회사로 회사에서 집으로 이렇게 쳇바퀴를 돌다가 보면 구두 뒷 굽처럼 야망도 매일매일 닳아 없어지지요
[손님1] (감탄하는 투로) 당신이 어떻게 그걸 알지요 내 구두 뒷 굽이 닳는 것까지(자신의 구두 뒷 굽을 본다)
[허몽녀] 다산 거야 이제 남은 것은 아내와 자식의 짐뿐이지 그렇지 나는 두 짐을 짊어지고 가는 병든 나귀이다. 나는 껍데기이다 나는 그림자이다 나는 연기다
[손님] 기가 막히군 그건 바로 내가 어제 일기장에다 쓴 낙서 아냐? 그렇지 그 다음 구절은 이렇게 썼었지 나는 빈 병이다. 다 마셔버린 맥주병이다 엿장수도 이 빈 병은 받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그것을 어떻게 알아냈단 말예요
[지성] 아- 그러시 다면 여기 선생님에게 어울리는 지식이 있지요 말씀을 들어보니 그건 일종의 허무주의 철학인데 가만 있자 키엘케골?이거 어떠십니까? 요즈음엔 좀 한물가서 값이 헐합니다만 옛날엔 대단한 인기였어요 허무주의를 극복하는데는 직효입니다.
[손님] 키엘케골?
[지성] 지금 손님께선 마지막에 무엇이라고 썼다고 했지요?
[손님] (퉁명스럽게) 빈 맥주병요 그게 어쨌다는 거요
[지성] 뒤 손님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현대인은 절망 자체를 문제로 삼진 않습니다. 누구나 다 그러니까요 문제는 남에게 그 절망을 어떻게 잘 꾸며 보이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지요 "나는 빈 맥주병이다" 그래 가지고야 어디 남들이 존경하겠습니까 다 같은 한숨이라도 유식하고 교양 있게 내쉬면 남들이 다 우러러 보거든요 잘하면 노벨상도 탈수 있지요
[손님1] 한숨도 잘 쉬면 노벨상을 탄다? 믿을 수 없는 말이군!
[지성]뭐 당장 밑천을 뽑는 건 아닙니다만, 우선 그 일기장이 면목을 일신하게 될 겁니다 빈 맥주병, 엿장수---이런 싸구려 말 대신에 "나는 꺼꾸로 찍힌 활자다" 아우스나메---예언자
[손님1] (한숨을 쉰다) 일기장이 고상해지면 뭘 합니까? 어차피 나 혼자 보는 건데---비단옷 입고 화장실 드나드는 격이지요
[지성] 모르시는 군요 사후에--- 아이구 죄송합니다 뭐 인간은 누구나 다 죽는게 아닙니까! 사후에 말입니다 그 일기장이 공개되면 자료발굴이다 뭐다 해서 베스트 셀러가 될 수도 있거든요 유산 상속으로는 땅을 사두는 것보다도 안전 하구요 우선 세금이 없거든요
[허몽녀] (지성을 향하여) 명백한 영업방해를 하구 계시군요 (손님을 보고) 손님은 저 하구 말씀을 하시던 중이 아니셨던가요?
[손님] (갑자기 제정신이 들어 차렷 자세가 된다 독백하듯이) 아이구 아내의 말투와 어쩌면 그렇게 똑같지---(갑자기 저자세가 되어) 그렇지 그렇지요 (비굴한 웃음)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이지요
[허몽녀] 자 다시 시작해 볼까요 모든 것이 불가능하게만 보입니다. 직장에서 승진 하는 것, 사원이 계장이 되고 계장이 과장이 되는 것
[손님] 그렇지 승진하는 것
[허몽녀] 그게 굴뚝을 오르는 높은 사다리처럼만 느껴지지요 그건 남들이나 하는 거라구 행복은 남들의 것이고 불행만이 내몫 이라구 산봉우리에 오르기도 전에 현기증이 나고 숨부터 가빠지지요
[손님] 그렇지 행복은 남들이나 차지하는 것이지 산은 남들이나 오르는 것이고 (독백) 사실 나는 등산엔 통 취미가 없어요
[허몽녀] (혼자 꿈꾸듯이) 그러나 이따금 가슴속에서 바다 소리가 들리구 무엇이 파도처럼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지요 그러면 갑작스레 외치구 싶어지지요 이건 사는 것이 아니다 이건 사는 것이 아니다 난 살고 싶다 난 진짜로 살고싶다!
[손님] (갑자기 외친다) 난 살고 싶다 살고싶다 이건 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이런 것이 아니다.
[허몽녀] 그런데 일분도 못 되서 사장님의 얼굴이 떠오르구, 사모님 목소리가 들려 오구 애들 울음소리, 순경의 호르라기 소리, 개기름을 흘리는 버스 운전수, 만원버스, 서류, 증명서, 도장, 고지서, 신문팔이, 껌팔이, 쇠고 깃간---맥이 빠지지요 그래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자라기도 전에 풀을 꺽어 버리고 말지요
[손님] 예(갑작스레 풀이 죽는다) 꺾어 버리고 맙니다 아냐 뚝 소리를 내고 꺾어지는 게 아니라 아무 소리도 없이 그냥 시들어져 버려요 한마디도 틀리지 않소 난 그런 놈이요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오
[허몽녀] 바로 그거예요
[지성] (자꾸 먼지를 털어 곰팡내를 풍겨 손님의 관심을 끌어 보려고 눈치를 살펴본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키에르 케골(반응이 없으면 고개를 갸웃둥 하다가 다시 총채로 이 가면 저 가면의 먼지를 털어본다)"절망은 지혜의 보모다""-로오시"
[허몽녀] 손님 같은 분을 위해서 난 이 꿈을 팔고 있는 거예요 파란 청운의 꿈이지요 야망의 꿈,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꿈, 지금 한창TV 로 꿈 광고가 나가고 있는데 보신 적 없으세요
[손님] 텔레비요? 보지 않습니다 광고를 보면 기가 죽지요 텔레비 광고는 무엇을 봐도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답니다. 너는 바보다 너는 가난하다 너는 병신이다. 약 오르지 그럼 덤벼봐, 덤벼봐---덤벼봐---
[허몽녀] 우리 광고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그 반대지요 직접 눈으로 보시지요!
(TV박스 같은 뒷면 무대에 나폴레옹과 그 시종이 등장-음악(1882))
[시종] 폐하 아무래도 사전 편찬을 다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꼭 증보판을 내셔야 합니다.
[나폴레옹] 또 그 소린가? 내 사전에는 절대로 불가능이란 말을 넣을 수 없다고 했잖아! 증보판을 내면 이미 그건 나폴레옹 사전이 아니란 말야 불가능이란 말을 넣는 순간, 나는 그 사전의 판권을 잃게 되는 거야 재론하지 말게(이때 1882년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들려온다)
[나폴레옹] 기분 나쁜 음악이군 저 음악을 꺼라
[시종] 예 폐하 바로 저겁니다 저것은 1882년 폐하가 모스코바에서 총퇴각을 하던 패전을 묘사한 음악입니다.
[나폴레옹] 그런데 왜 저렇게 우렁찬가
[시종] 그야 승전한 러시아 놈들의 기쁨을 노래한 것이니까요 그때에도 폐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것이 없었던가요
[나폴레옹] 내가 그때 패망한 것은 오히려 불가능이란 말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나폴레옹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러시아의 쥐새끼들이 내 말을 표절하여 그만 그 불가능에 도전하기 시작한 거야 나는 패했지만 패함으로써 불가능이 없다는 내 철학과 꿈은 증명된 것이다.
[시종] 좋습니다 폐하 그러시 다면 그때 추위를 기억하고 계신지요
[나폴레옹] 아-정말 그때는 추웠었지 태양 같은 훈장으로도 병사들의 가슴을 녹여줄 수 없었어
[시종] 바로 그것입니다. 폐하 그때에도 폐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말이 없으셨던가요? 기억하십니까 피에르라는 병사! 폐하의 손을 잡은 채 얼어 죽어간 말세이유 출신의 소년 병!
[나폴레옹] 기억하고 있어 그러나 난 내 의지로 그 기억들을 몽땅 불살러 버렸으니까 없었던 일이나 마찬가지지
[시종] 폐하도 우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눈물은 곧 고드름이 되어 버렸 지요. 그러나 그 애의 눈은 얼음 속에서도 활활 타고 있었지요 "폐하 저를 기다리고 있는 약혼자 안느를 찾아 꼭 이 말을 전해 주십시오."나는 지금 얼음 기둥이 되어 죽어간다 그러나 안느여! 당신을 생각하는 뜨거운 사랑만은 러시아 놈들의 겨울 바람도 뺏아 가지 못했노라"---그래서 폐하가 곧 안느를 찾아보았지만 어땠어요 안느는 벌써 애 어머니가 되어 있었잖아요 이래도 사전을 수정하시지 않겠다는 겁니까?
[나폴레옹] 안느는 여자 였잖어 나로서도 여자의 마음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시종] 그겁니다 폐하 불가능한 일이 너무 많지요 그런데도 공연히 그런 사전을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금 나빠 질 때로 나빠지고 있어요 불가능이란 말이 없다는 거짓을 믿고 소리보다 빠른 비행기, 로켓트, 원수폭, 핵잠수함---별 망측한 것을 다 만들어냈지요 이젠 우리들이 사는 이 천국까지도 미래에 그들의 공해에 오염 될 것입니다. 달과 화성에선 이미 시작됐어요 빨리 알려주셔야 해요 "남들은 짐을 독수리라고 했지만 샌트헤레나의 섬에서 위암으로 죽어갈때 나는 한치도 날수가 없었다"---그리하여 불가능이란말을 내 사전에 넣어 증보판을 이곳에 간행하는 바이다 라고 말입니다
[나폴레옹] (칼을 뽑아 시종의 목에 댄다) 이놈! 불가능이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대답해봐라
[시종] (네발로 기며) 예 예 절대로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은 것 인 것 같으면서도 예 예 존재 안 한다고 믿을 수 만은
[나폴레옹] 똑똑히 말해 이 밥벌레 놈
[시종] 위이. 우이, 우이. 우이(기어서 도망친다)
[나폴레옹] (시종이 사라진 쪽을 발로 가리키며) 바로 저것이다 우이우이 우이우이 이게 사람소리냐 그것은 돼지들의 울음소리다. 사람이 네발로 기다니 그것은 개나 돼지나 여우들이나 하는 짓이다. 인간은 땅을 디디고 두발로 꽂꽂이 선다 더러는 하늘을 향해 있다. 영원에 도전하는 것이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다 신이 실 수 한게 있다면 선악과가 아니라 인간들이 꿈의 열매를 따먹게 내버려 둔것이다 듣거라 짐승처럼 네발로 기지말라 징구덩이에 떨어진다 할지라도 꽂꽂이 서라 불가능이란 없다고 외치는 동안 너는 적어도 네 키보다 한치는 더 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 기저귀나 갈아 채우기 위해서 여자들 화장품이나 대기 위해서 너희들이 태어난 것은 아니다 도전하라 불가능에 도전하라 야망의 꿈을 가져라 월급봉투 속에 들어있는 가불장을 찢어라 그리고 그 위에 써라 나는 인간이고 그리하여 불가능이란 없다---(만세소리 불가능이란 없다! 불가능이란 없다! 여러 사람의 고함소리, 드럼, 행진곡 소리)
[손님] 아!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이제야 생생해 지는군 난 대학시절에 축구선수였지 내 위치는 쎈타포드 였어 저 박수 소리 박수 소리 (와와! 스탠드에서 떠드는 소리) 다시 한번 시작 하는 거야 공을 차듯이 불행과 우울과 고통과 불가능을 차버리는 거야 가슴이 뜨거워진다! 자 어서 마음이 변하기 전에 그 야망의 꿈을 파십시오
[허몽녀] 오 만원만 내면 손님은 나폴레옹이 되는 겁니다 시이저가 되는 겁니다
[손님] 얘? 농담이시겠지 오 만원은 내한달 봉급이요 우리 세 식구가 꿈만 먹고 살란 말이 예요
[허몽녀] 불가능이란 없다 너희들은 네발로 기어다니는 짐승이 아니다(나폴레옹 목소리를 흉내 낸다. 풍선을 손님에게 준다)자 사만 오천원 만 내세요
[손님] 좋소 삼만 오천원 드리리다
[허몽녀] 사만 오천원이 원가예요 원가로 드리는 거예요 불가능이란 없다 용기를 내라
[손님] 방금 뭐라고 했소 불가능이란 없다고 하지 않았소 자 삼만원 고맙소 난 마음이 약해서 물건을 깎어 본적이 없는데 과연 이 꿈을 사니 용기가 납니다 그려 내가 이걸 삼만원에 못산다면 이 꿈이 무슨 소용 있겠소 난 물건을 깎는게 아니라 불가능이 과연 없는 건지 시험해 보는 중이란 말이 예요 불가능이란 없다 원가 이하로도 살수 있다
[허몽녀] 별수 없게 됐군
(돈을 받아 넣는다)
[지성] 자기가 꼰 새끼로 자기를 묶는다 자승자박-동양속담
[손님] (파란풍선을 날리며) 두발로 서라 너희들은 짐승이 아니다 나는 쥐가 아니다 나는 돼지가 아니다 나는 소가 아니다 나는 빈 맥주병이 아니다
(외치면서 풍선 들고 껑충껑충 뛰어 나간다)
[김시희] 이봐 미쓰 허 그렇게 팔아도 돼?
[허몽녀] 우리끼리 이야긴데 정말 원가가 사만원이야
[지성] 만원이나 밑졌군 꿈은 꿈이고 셈은 셈이지
[허몽녀] 똑똑히 보세요 난 꿈을 파는 사람 이예요 밑져도 벌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요그게 당신 네 들과 다른 꿈의 계산법 이예요
[김시희] 그런데 왜 손님을 혼자 가로채는 거야 그것도 꿈의 계산법인가?
[지성] 그건 분명한 영업방해야 (이때 또 손님 하나가 들어온다 역시 샐러리맨 타입)
[허몽녀] (손님에게 달려간다) 말씀하시지 않아도 다 알아요 눈만 봐도 알아요 걸음걸이만 봐도 다 알아요 무얼 원하시는지---
[손님2] (미스허의 손을 뿌리친다)난 지금 바쁘단 말예요 저리가요
(시간을 파는 미씨 김에게로 간다)
[김시희] 예 바쁘시지요 시간이 없지요 그러나 걱정 하실 것 없어요 고민은 해결되었습니다 어느 시간이 필요하신 가요 자 골라보세요 주황빛은 아침 흰빛은 낮 시간 보라빛은 저녁시간 이구 까만것은 밤시간 이구요 잿빛은 통금시간 12시부터 새벽4시 까지구요 요즈음엔 저녁시간들을 많이 찾으시던데---그렇죠 퇴근시간에서 부터 통금시간 직전까지
[손님2] 난 아침 8시에서 아홉시 사이 그렇지 예 5분만 있으면 될 거요
[지성] 승패는 최후의 5분간에 달려있다 - 나폴레옹 -
[손님2] 아니요 내게 필요한건 최초의 5분간 이라구 이게 내 운명을 좌우 하니까
[김시희] 오분은 안되겠는데요 적어도 한시간 단위로 파는데요 짜투리가 남으면 팔기가 어렵지요 어디다 쓰실 려구 그러세요 왠만 하면 넉넉하게 장만해 두시지요
[손님2] 난 매일 지각을 한다우 그것도 꼭 5분 상관으로 말씀이야 출근 전 잠자리에 누워서 아침 조간신문을 읽는 맛 10년동안 아무리 고칠 려고 해도 그게 안돼요 그러나 내일은 사정이 좀 달라요 세상 없어도 지각을 하면 안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일은 내가 회사에서 근속 10년 표창장과 금일봉을 받는 날 이거든요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하지 않습디까?
(손님과 시희 서로 거래하는 모습)
[허몽녀] (미스터지를 향해) 저분 지금 아침시간을 찾는다고 했나요?
[지성] 응 그래 매일아침 누워서 조간신문을 읽는 재미로 지각을 한다는구먼 그래서 10년 근속 지각상을 받게 됐다 나봐
[허몽녀] 저런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드는 지식은 없나요? 칸트가 어떨까요 칸트가 산책을 하면 동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시간을 맡추 었다죠?
[지성] (화를 내면서) 그건 칸트를 모독하는 말야 돼지를 기르는 사람에겐 소크라테스가 필요 없거든
[허몽녀] 왜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이란게 있잖아요 그걸 이용해서 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 이용 할수도 있잖아요(손님 쪽을 바라본다)
[지성] 쳇 돼지가 희랍어를 안다면 그것도 가능한 일이지
[손님2] 그럼 좋은 수가 있어요 난 아침 출근시간에만 허둥대지 다른 시간은 지천으로 남아 걱정이요 그러니 어느 시간이든 내 시간을 한시간 드릴 테니 교환합시다 까짓껏--- 지루한 인생 빨리빨리 가라지
[김시희] 좋아요 통금직전 11시에서 12시시까지 한시간을 주세요 그러면 아침시간 5분 어치를 드릴 테니까
[손님] 그건 안되지? 나는 하루 가운데 최소의 5분과 최후의 5분이 필요하단 말야 그 나머지 시간은 마음대로 골라 가라구
(이때 남녀 한 쌍이 들어온다 대학생차림)
[허몽녀] 말을 하시지 않아도 알아요 걸음걸이만 봐도 알아요 무엇을 원하시는지 사랑을 하고 있지요?
[지성] 몽녀 참 교양이 없군 그래 이분들의 눈빛을 보라구 얼마나 학구심에 불타고 있는가? 마치 소리개가 병아리를 노리듯이 진리를 잡으려는 그 눈---
[남학생] (자기의 눈을 부빈다) 제 눈이 어떻 다구요? 제 시력은 1.5입니다
[여학생] 어디에서 꿈을 파나요?
[허몽녀] 그러면 그렇지 예 바로 여기에서 꿈을 기적을 팔고 있지요
[손님2] 좋소 그럼 내 저녁시간 드리리다 생선 가운데 토막 같은 그 귀중한 저녁시간 빨리빨리 싸주어요
[허몽녀] (여자를 보고) 무슨 꿈으로 드릴까요 손님이 쓰실 거지요? 물론 사랑의 꿈이시겠지 (빨간 풍선을 하나 뗀다)
[여학생] 자기 하나 골라봐 내가 생일 선물로 자기에게 선물하는 거라구
[남학생] 이 꿈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길래 이렇게 둥둥 떠있나요 헬륨 수소 즉 공기보다 비중이 가벼운 것이니까 질량이 0.2---인데
[허몽녀] 아 알았어요 남자 친구분 께서 쓰실 거군요 숫자의 병은 사랑의 꿈으로 밖엔 고칠 수 없지요
[손님2] 팔아버린 내 불쌍한 저녁시간! 참새들 처럼 참새들 처럼 해가 지기만 하면 집으로 곧장 날아가는 쓸쓸한 시간(시를 낭독하듯이 독백)
[여학생] 저 사람을 좀 봐(귓속말로) 자기도 결혼하면 참새가 되는 거야 응? 집으로 곧장 날아오는 쓸쓸한 참새 (나는 시늉을 한다)
[손님2] 그 집은 나무 가지 허공 위에 떠있네 섬처럼 떠있네 으스름한 어둠 속에서 깃들을 부비며 술을 마시고 잡담을 하고 --- 아! 불쌍한 내 저녁시간
[여학생] 무얼 듣고 있어! 저런 소리는 듣는 게 아냐 여보세요 이 사람에게 맞는 꿈을 좀 주세요 이분은 공과대학생이거든요 한마디로 꿈이 없어요 말하자면 이런 거예요 우리는 어젯밤 강가를 산책하고 있었지요 물이 흐르고 있었어요 달빛이 비치고 있었구
[남학생] 당연한 소리지 강에 물이 흐르는 게 뭐가 이상하다구 그래 물은 언제나 중력 때문에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흐르게 돼 있다구
[여학생] 그래서 제가 말했답니다 전 꿈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흐르는 강물을 봐요 저건 물이 아니라 음악 이예요 비늘 돋친 음악, 눈으로 보는 음악, 사랑의 음악
[남학생] 내가 말했지 난 떳떳 하다구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지요 저 강물을 막고 댐을 만들면 그래서 수력 발전소를 만들면 5,000KW의 전력을 얻을 수 있다 구요 뭐 내가 잘못한 것 있습니까?
[손님2] (물건을 싸들고 퇴장한다 독백을 하면서) 아니야 신문 때문이 아니야 내가 지각하는 것은 아내 때문이지 출근하는 사람을 붙잡고 밤낮 똑같은 소리를 읊어대지 제발 술만 드시구 다니지 마세요 술만 드시구 다니지 마세요
[남학생] 선생님은 그럴 때 뭐라고 답변하시지요
[손님2] 자네도 좀 꺾나(술잔을 드는 시늉을 한다)
[남학생] 아니오 아직은 실험실에서 알코올 냄새만 맡고 있지만
[손님2] 응 과학자시군 그러타면 그런 질문에 답변하기 어렵겠는데---
[여학생] 순진한 사람 물들게 하지 마세요
[손님2] 자네가 순진하다니 내 가르쳐 주지 여자의 말은 바늘처럼 콕콕 찌르지만 두려워 하지 말게 자네는 솜이 되는 거야 바늘로 솜을 찔러봐야 찌르는 쪽이 맥이 풀리지 밤낮 약주만 드시지 마세요 어느 아내나 다 이렇게 이야기 한 다구 그럴 땐 이렇게 답변하게 "알았어 알았 다구 약주만 마시지 않고 위스키도 마실께" 그 다음날도 또 그러거든 "좋아좋아 술만 마시지 말고 안주도 먹을께---"
(손님2 퇴장한다 남학생 껄껄거리고 웃는다)
[여학생] 뭘 그렇게 웃고 있어요 자 빨리 꿈을 주세요 이 꿈을 사면 강을 보고 전기를 생각하지는 않겠죠
[허몽녀] 물론이죠 이젠 꺼꾸로 전기 불을 봐도 사랑의 전류를 느낄 것입니다
(빨간 풍선을 남자의 손에 쥐어준다 바하의 음악을 배경으로 기도문 같은 성스러운 소리가 울린다. 무대 어두워진다 )
[허몽녀] "내가 사라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일 뿐이며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견디는 것이며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멀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불이 밝아진다)
[여학생] 그거예요 바로 그거예요 이제 내 자기는 잘 참고 잘 견디고 모든 것을 잘 믿을게예요 불평도 없이 어진 다마스코스의 양처럼 자기 먼저가
(꿈의 풍선을 산 남학생 여학생의 말을 듣자 곧 퇴장한다)
[남학생] 사랑을 아니하며 아니하면 아니하며---
[여학생] 정말 효험이 빠르게 나타나는군요
[지성] 뭐라구? 사랑은 지식을 폐한 다구? 그럼 사랑의 꿈은 내 영업의 적이란 말이군
[김시희] 그래요 사랑의 꿈이 자꾸 팔리면 내 영업에도 지장이 있겠어요 가장 위협적인 적이 예요 뭐라던가? 그래 맞아요 시간을 사러온 사람에게 미쓰리가 이런 소리를 했다 구요 시간이란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너무 빠르고 공포에 떠는 사람들에겐 너무 느리다.
[지성] 그래 나도 기억이나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들에겐 너무 길고 즐거움에 들뜬 사람들에겐 너무 짧다
[지성, 김시희]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김시희] 그러니 사랑의 꿈만 사면 시간 가는 것은 아무 영향도 줄 수 없다는 거지요
[지성] 사랑은 지식을 폐하고 시간을 폐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남자만 퇴장하고 여학생은 남아서)
[여학생] 여기 영업 안 할 거예요?
[김시희] 예 예 난 꿈을 사러온 분 인 줄 알고
[여학생] 사랑의 꿈 같은건 저에겐 필요 없어요 저는 사실 시간을 사러온 거예요
[김시희] 그러면 그렇지
[지성] 남자친구는 어디에 갔어요 사랑은 꿈속에서는 행복해도 현실 속에서는 고통이 된 다는걸 아직 모르시는가 보지요 뭐 아직 학생이니까 당연하지요
[여학생] 그걸 모를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시는군요 사랑의 꿈이 내 것이었을 때는 고통이지만 남들의 것이었을 때는 행복이지요 사랑은 말의 입에서 채우는 재갈, 소의 목에 씌우는 멍에 같은 것이니까요
[지성] 그러니까 아가씨는 마부구, 남학생은 제갈을 물린 말이구먼
[여학생] 그런 셈 이죠 어차피 어느 쪽인가 한 쪽은 말이 되어 짐을 져야하고 한 쪽은 그것을 끌고 다녀야 하니까
[지성] 굉장한 철학이군 아가씨의 그런 사상을 저희 상점에 파시면 장사가 되겠는데
[여학생] 문제없지요 돈만 주신다면---
[지성] 그게 아니 구요 적어도 저희 가게에 지식을 파실 테면 참고문헌 주석 같은 것을 달아야 해요 예 예 되도록 주석을 많이 부쳐야 값이 나가지요 아까 말씀 하신것. 요령을 가르쳐 드리지요 사랑은 멍에다 제갈 이다 그건 상대방에게나 씌워야 편하지 자기가 갖고 있으면 불편하다
[여학생] 예 분명히 제가 그렇게 말했지요 거기에 또 무엇을 부친다는 겁니까 그것으로 완벽해요 그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발견한 진리니까요
[지성] 그게 아니라니까 상품보다도 포장지가 중요한 세상이 아닙니까
[여학생] 예 그것도 맞는 소리예요 댁도 그 옷을 벗고 누더기를 걸치고 있다면
난 이렇게 서서 지금쯤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지는 않겠죠
[지성] 희망이 있는데 잘하면 멋있는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데---헌데 말예요 아까 그 말씀인데 그냥 멍에, 재갈, 말, 소 이렇게 표현하시지 말고 일일이 그 말끝에. 주석을 말하는 겁니다 가령 멍에라고 할 때 아무 필요가 없어도 멍에를 라틴어로는 뭐라고 한다 그리고 멍에의 발생, 역사, 전개 등등 여러 가지 멍에에 대한 문화 인류 학전 의미를 부여하는 자료들을 나열하라 그겁니다
[김시희] 여보세요 시간을 사신다는 분이 시간을 낭비하고 계시군요 지식을 팔아봤자 사가는 사람이 없는데 호기심 가질 필요 없어요 저 양반은 재고 정리하기에도 바쁘답니다
[여학생] 내 정신 좀 봐 지금이 몇 시지 낮 세시에서 한시간을 삽시다 사실 전 오늘 두 남자 친구와 시간 약속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둘 다 세시로 정했거든요 겹치기 데이트를 하다보면 종종 그런 일이 생겨요 (시간을 사기 위해서 카운터로 간다)
[손님3] (대학교수 차림의 사나이 등장) 여기 영업 안 하십니까?
[지성] 이크 이번엔 이쪽이군 예 예 솔직한 말씀입니다 마는 워낙 요즈음 지식이 팔리지 않아 손님을 기대하고 있지 않거든요 가시를 심고 장미를 기대해서는 안된 다고 했지만 저는 꺼꾸로 장미를 심고 가시를 생각하는 중입니다. 어쨌든 죄송합니다. 무엇을 찾으시나요?
[손님3] 물건도 교환하나요?
[지성] 예 경우에 따라서 는요 사실 중고품은 매매보다 밤낮 고환만 하느라고 바쁘지요
[여학생] 우리 교수님 아냐?
[김시희] 고맙습니다 또 오십시오
[여학생] 쉿 조용히 하세요 이 시간에 저희들이 서로 만나면 서로가 거북하니까요
[김시희] 거북하시다니 오늘 만나기로 한 남자친구가 바로 저분인가요
[여학생] 별소리를 다시네요 저런 분과 데이트를 하다니 결혼 행진곡이 울리다가 장송곡이 나오게요 저희학교 교수님이라니 까요 종교철학을 강의하는데 어찌나 따분한지 한시간이 천년 같지요 그래서 난 땡땡일 치고 이렇게 백화점 산책을 나온 거라 구요
[김시희] 그러면 학생만 거북하지 둘 다 거북할건 없잖아요
[여학생] 그건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한참 강의를 하고 있을 시간에 휴강을 하고 백화점엘 다니다니---하지만 아무래도 좋아요 그래도 지구는 도니까! 고마워요
(반대 방향으로 몰래 눈치를 살피며 퇴장한다)
[대학교수] (가방에서 에라스므스의 초상화를 꺼낸다) 40년 연구해온 지식인데 내 놓는 겁니다요 저를 학자적 양심 없는 사람 이라구 비난하지 마십시요 이걸 팔아서 냉장고나 자가용을 사자는 건 아니니까요
[지성] 알고 있습니다 무슨 지식과 교환하시려고 합니까?
[대학교수] 저 무슨 구조주의 철학이면 무엇이든 좋아요 홀랑 배르트, 레비스트로스, 야곱슨, 라깡
[지] 어림도 없어요 구조주의는 순 뻥 아닙니까? 실존주의 값보다도 훨씬 비싸졌는걸요 어디좀 봅시다 아이유 대단한 악취군(코를 쥔다) 에라스므스---어림도 없어요 이런 구가다는 찾는 손님이 없어요
[대학교수] (슬픈 표정으로) 학생들과 같은 소리를 하시는군 웃으면서 가르치고 놀면서 배운다 나는 이러한 에라스므스 자신의 신조대로 에라스므스의 철학을 강의하고 있지요 그런데도 학생들의 인기가 없답니다. 실존주의니 구조주의니 해야 겨우 관심을 갖거든요 에라스므스는 너무 낡았다는 거예요
[지성] 그럼 에라스므스 주의라고 주의자를 부쳐서 강의해보세요
[대학교수] 낸들 왜 안 해 봤겠습니까 학생이 질문을 합디다 메이드. 인 뭐냐 구요 그 사상은 실존주의보다 더 신형이며 신문의 해외 문화면에 소개 된적이 있는 것이냐구요
(이때 소년이 하나 나타난다 꿈을 파는 허몽녀가 카운터에서 졸고 있다 슬며시 앞에 다가서서 물건을 고르는 척 하다가 흰 풍선하나를 몰래 훔쳐서 사라진다)
[지성] 아무튼 딱한 사정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마는 여기는 폐차장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 가보시거나 돈을 내시고 구조주의를 사가시거나 결정을 내리 십시요
[교수] 레비스트로스는 얼마입니까?
[지성] 에누리 없이 50만원입니다
[교수] 50만원요?
[지성] 헐값이지요 만약 선생께서 지금부터 구조주의 연구를 해보십시요 원서를 읽기 위해서 불란서 말을 배우는 데만 몇 십년이 걸릴 거예요 연구하기 위해선 자료가 안드는 가요 책값 밥값 잉크 값 또 어디 그게 독학으로 됩니까? 50만원은 원가도 안되지요 그뿐인가요 겨우 써먹을 만 하면 이미 한물 가버린 뒤라 구조주의는 중고품이 되어 버리지요 그러니 50만원만 내면 당장 이 지식이 머리 속으로 들어갑니다 내일부터 사계의 권위자가 되는 것이지요 좀 무겁워 두통이 나기는 합니다만 원래 지식은 무게가 나가야 행세를 하는 게 아닙니까
[교수] 좀 더 싼 것 없을까요 실존 주의는요?
[지성] 상표 나름이지요
[교수] 싸르트르
[지성] 아직도 시세 나갑니다 제비스트로스와 버금갑니다 좀 싼 것으로 골라 보시지요
[교수] 하이데거
[지성] 예 하이데거 제품은 쏙 빠졌지요 아직 형도 그렇게 낡지도 않았구 자 보십 시요(하이데거 가면을 내민다) 한 모서리에 금이 좀 가서 싸게 파는 겁니다
[교수] 금이 갔다니? 보기엔 말짱한데요
[지성] 나치 때 히틀러에게 협력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지식을 사용하는데는 아무지장이 없어요 단순히 기분문제지요
(순경이 나타난다)
[순경] 저놈 잡아라 저놈 잡아라
(모두 놀래서 순경을 쳐다본다)
[순경] 여기 수상한 사람 안나타 났어요?
[지성] 아무 것도 못봤는 데요
[허몽녀] 저두요
[순경] 조심하십시요 백화점에서 물건 날치기 하는 자가 나타났으니까
[김시희] 아이구 그 녀석 이었구만 미스허 없어진 것 없어?
[허몽녀] 아이구머니나 내 동심의 꿈을 훔쳐 갔네 분명히 다섯개가 있었는데
[순경] 어느쪽이죠? (김시희 손가락질 한다)
(순경 그 방면으로 달려나간다 허몽녀도 따라 나간다 김시희도--- 그러나 잠시후 김시희는 돌아온다)
[지성] 아이구 놀랬습니다요 가슴이 덜컹합디다 날 잡으려는 줄 알구
[교수] 당신은 파는 사람인데 왜 놀래요 피해자가 된다면 몰라도
[지성] 피해자가 아니라 가끔 피의자가 된답니다 금수품 들을 밀수하는 것이 없나 단속하러 나오는데
[교수] 여기에도 금수품이 있나요?
[지성] 그게 아니라 이렇게 주로 외래품만 취급하다 보니 말예요 소크라테스 하이데거 싸르트르 자 보세요 베르그송 이건 불란서 제지요 헤라크레이로스---이건 희랍제 베이컨 이건
영국제지요
[교수] 베이컨? 베이컨은 레스토랑에서 파는 음식이름이 아닙니까? 지식을 파는데서 베이컨을 취급하다니 불결하군요
[지성] (웃는다) 교수님도 마찬가지시군 하기야 전문가란 한가지만 알고 다른 것은 다 몰라도 되는 특권이 있으시니까 상품명이 좀 까다롭고 복잡해야지요 상품이름만 보고 그렇게 엉뚱한 오해를 하시는 분이 많답니다 베르쟈에프나 마리노우키이나 이런 제품은 그 이름 때문에 금수품을 들여온 것으로 알거든요
[교수] 아무래도 국산품 장려를 해야겠군
[지성] 요즈음 꽤 활발하지요 저희 가게에서도 국산품이 매매가 심심찮게 활발해 졌습니다 퇴계, 율곡, 정다산(가면을 가리키며) 꽤 인기 있지요 실학파는 외제와 거의 맞먹습니다 또 준 국산품이 있는데 기술제휴로 만든 보세품 말입니다 대개 비교연구라는 상표가 붙어 있는 게 그거랍니다 세익스피어와 정철의 비교 연구, 신라의 화백제도와 희랍 폴리스 철학의 비교연구
[교수] 결국 에라스므스는 안 쓰시겠다는 거죠
[지성] 값만 맞으면
[교수] 얼마요
[지성] 한 돈만원갈까요?
[교수] (흥분해서 카운터를 친다) 무슨 소리요 에라스므스가 만원이라니 무슨 반창고나 소화재 인줄 아시오 내가 이 지식을 얻기 위해서 예과에서 2년 대학에서 4년 대학원에서 3년 박사학위를 따는 대에 20년이 걸렸소 그 동안 내가 피운 담배값 이나 양말값 만해도 50만원은 넘을 거요 저것들은 다 가짜야 에라스므스 오 불쌍한 에라스므스 당신은 살아있을 때에나 죽은 후에나 언제나 남들의 오해를 사고 있으니 그 가치를 몰라주다니 (운다) 쓸데없이 시간을 소비했군 주간지에서 원고 청탁서가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오늘밤 안에 쓰기는 힘들게 됐군 (시간을 파는 쪽으로 간다)
[교수] 밤 시간을 주시요 하룻밤 사이에 원고를 다 써낼 것 같지않구료
[김시희] 원고를 쓸 시간이요? 저런 원가도 제대로 안 나오실 텐데
[교수] 제일 싼 시간이 어느 시간이요
[김시희] 밤 12시부터 네 시까지 통금시간이죠 인기가 없어요 아무 쓸모가 없으니까요 불면증 환자들이 많아서 이 시간은 팔려고 드는 사람은 많은데 사려는 사람은 별루 지요 그 시간이라면 싸게 드리지요
[교수] 두 시간만 주시요
[김시희] 만원입니다 그런데 대체 원고료는 얼만 데요
[교수] 오 천원이지요
[김시희] 그런데 왜 밑지는 장사를 하려고 하는 거예요 밤을 세우는 것도 모잘 라서 윗 돈을 주고 과외로 시간까지 사서 그 고생을 사서하시다니 알 수 없군요
[교수] 외로워서 그렇지요
[김시희] 외롭다니요 원고를 쓰시면 외롭지 않으신 가요?
[교수] 제 이름이 주간지에 나오지 않습니까 명예지요 이름 없는 대학교수의 외로움을 당신들은 모를거요
[지성] 그러면 지식을 사는 게 아니라 그 지식으로 명예를 사시겠다는거군요
[교수] 비꼬지 마시오 누구나 사람들은 목이 쉬도록 자기 이름을 외치지 않습니까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여기서 존재하고 있다 나를 좀 봐다오 봐달라고 하는 사람뿐이니 누가 나를 봐주겠오 그러나 권력도 돈도 없는 사람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그건 명예 지요 이름이라도 있어야지요 내가 이세상 한구석에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 보일 일은 그것 밖에 없어요
[김시희] 왜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시 구도 선생님은 유명해지지 않았죠?
[교수] 잘못 선택한 거지요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바슈라트"나 "싸르트르"는 없었 다오 그걸 해야 유명해지는 건데---(한숨)영어를 했더라도 돈을 벌었을 텐데 에라스무스를 전공한 탓으로 쓸모 없는 라틴어를 했지 뭡니까?
(시간을 싸들고 묵묵히 퇴장 숨을 헐떡이며 등장하는 허몽녀와 마주친다)
[허몽녀] 말씀하시지 않아도 다 알아요 눈빛만 봐도 알아요 걸음걸이만 봐도 알아요 척 늘어진 두 어깨를 봐도 알 수 있어요 피곤하시지요? 인생이 하품 같지요?
[교수] (쳐다보지도 않고) 그렇소 권태롭고 피곤하오 말부치지 마오 나는 하품이나 해야겠오이다 (암전)
[막] 제2막
(무대는 1막과 같음)
(막이 올라도 무대는 어둡다 어둠속에서 형광도료로 칠한 철학자들 초상의 눈 코 입만 유령처럼 떠오르고 사람들의 실루엣만 어른거린다 사람들의 발자국소리 괴종 시계 소리 시계소리 요란한 소리와 잡음 속에서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소리)
[소리] 십 만원-시간을 달라-시간은 생명이다 시간은 제왕이다 시간을 파시오 정말 절박한 사정이 생겼오 시간-시간- 시간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시간을 경매에 부치고 있는 중이다 시간을 파는 김시희의 목소리가 그 잡음 속에서 들려온다)
[소리] 자 조용히 하세요 마지막으로 아침시간 아홉시에서 열시가 남아있어요 떠밀지좀 마세요 아침 아홉시
[손님소리] 만원
[손님소리] 만오천원 오천원 더 부쳐주겠오
[손님소리] 오만원이요 오만원
[김시희] 자 오만원---오만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소리] 시간을 달라! 시간은 제왕이다 시간이다 시간이다
[김시희] 통금시간이 남아있어요 톰금시간! 아무도 살 사람이 없군요 그럼 돌아가 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용해지면 무대 밝아진다 무대 밝아지면 김시희 "금일매상진사례"라고 쓴 표찰을 세우고 있다 허몽녀는 카운터에서 턱을 괴고 하품을 하고 있다 졸리운 지성은 총채를 들고 먼지를 턴다 사장태가 나는 손님 한사람만이 동상처럼 시간을 파는 카운터 앞에 떡 버티고 있다)
[김시희] 죄송합니다 손님들이 몰려들어 매일 아우성입니다 그래서 공평을 기하기 위해 경매로 시간을 팔고 있지요 소비자는 왕이니까요 유감스럽게도 왕께서는 좀 늦으셨군요 오늘은 벌써 다 끝났답니다
[사장] 누구라도 나 같은 입장에 있다면 그냥 돌아갈 수 없을 거요 도저히 남처럼 하루 24시간을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몸이란 말씀이요 명예, 지위, 돈 그런 것은 내 다 가지고 있오이다만 궁한 것은 시간뿐이요 빌어먹을 놈의 원수 같은 시간 스케줄인지 새끼줄인지 아무래도 그놈의 줄이 목을 졸라 메어 날 죽이고 말거요
[지성] 말씀하시는 투를 보니 지성도 없으 신것 같은데---"접시는 그 소리로써 그 장소에 있나 없나를 알고 사람은 그 말로써 그 지식이 있나 없나를 판단할 수 있다"-데모소데네스
[사장] 오늘 저녁만 해도 기업인 새미나에 다가 로터리 클럽 회의가 있고 야간 중역회의에 또 국제친선 모임이 있오 그런데 여덟시 노스웨스트 비행기로는 귀한 외국 손님이 한 분 오기로 되어 있단 말씀입니다
[허몽녀] 저런분 에겐 야망의 꿈을 팔 수 없겠군 가진 것 만으로도 터질지경일테니까
[김시희] 이해 해주세요 요즈음엔 워낙 물건이 딸린답니다 시간이 남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한가롭다 싶으면 낚시, 골프, 등산 한가로우니까 더 바쁘지요 그렇지 않으면 텔레비 앞에라도 앉아 있어야 합니다
[사장] 시계줄 인지 새끼줄인지 오늘 저녁은 그놈의 스케줄이 유난히 거미줄처럼 얽혀가지구---
[지성] 그렇게 바쁘신 분이 손수 시간을 사러 다니십니까 비서께서는 홍콩 감기라도 걸리신 모양이죠
[사장] 홍콩? 예 홍콩에도 지사가 있지요 아니지 참 홍콩 김기 라구 그러셨지 그게 아니라 그렇지 그게 그---비서에게 시간을 사오라고 부탁할 수 없는 비밀이 뭐 비밀이랄 것도 없지만 좀 거북한 일이 있어
[김시희] 그건 곤란한데요 비밀이 있으시 다면
[사장] 비밀을 밝히면 파시겠소? 비밀이라야
[김시희] 팔고 안 팔고 간에 규정이니까요 우리는 고객들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용도를 말씀해 주셔야 시간을 팔 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만약 범죄사건이 벌어 졌 을때 알리바이 문제가 있으니까요
[사장] 옛 범죄요? 천만에 천만에 그게 아니라 순전히 사소한 집안 문제지요 (한숨을 쉰다) 나처럼 불행한 사람도 없을 거요 남들은 한집살림도 어렵다는데 난 그게 둘이나 있거든요 예 두개의 지옥 속에서 살고 있는 제 고충을 생각해 보십 시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다)
[허몽녀] 비가와야 하늘에는 무지개가 생긴다 그리고 눈물이 흘러야 영혼에는 사랑의 무지개가 생긴다 언니 봐들이지 그래 저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 치고 악한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사장] 아가씨 정말 잘 보셨어요 난 눈물이 많은 사람이랍니다 사원들에게 봉급을 줄 때도 난 늘 통곡을 하고 운답니다 저런 박봉을 받고 어떻게 살어 가는가? 월급봉투를 들고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 불쌍해서 늘 울지요 오늘 저녁만 해도 눈물이 흐르는 걸요
[지성] 저런 사람이 흘리는 눈물은 그냥 소금물일뿐---파스칼
[김시희] 누가 편찮으신 가요 큰 사모님 이예요 작은 사모님 이예요
[사장] 크고 작은게 어디 있어요 그 사모님들은 무엇이든 막상막하지요 매사를 경쟁을 한답니다 난 재수가 없는 놈이요 자식을 낳아도 왜 꼭 한날 한시에 낳았는지? 오늘 저녁 양쪽에서 다같이 생일잔치를 차리고 기다리는 게지요 어린것들이 생일케이크의 촛불도 끄지 못 하고 날 기다리고 있을 거요 이건 사업문제와는 다릅니다 어린것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린것들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김시희] 딱하시게 됐군요 내일 일찍 오세요 요즈음엔 양로원에서도 시간을 팔지 않는답니다 사려는 사람들뿐이지 팔려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적어진답니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 암 환자 고혈압으로 누워있는 식물인간---겨우 그 정도 이지요
[사장] 그게 누구의 시간이라도 좋아요 내일 오면 틀림없는 거죠
[지성] 내일은 또 누구의 생일인가요?
[사장] (머리를 긁는다) 그게 아니라 괄세 할 수 없는 두 친구로부터 동시에 저녁식사를 하자는 초대를 받았거든요 자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미스김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한다)
[김시희] 재고처리요 통금이후 시간을 파는 비결을 가르쳐 주시겠다구요?
[사장] 시간만이 두려운 적 장사에는 내 적이 없오이다 내가 상술을 가르쳐 줄테니 그대신 나에게 시간을 사는 우선권을 주시오(다시 귀에가 대고 말한다)
[김시희] 파리라구요 불란서의 파리 삐갈광정에---
[사장] 그렇소 파리의 인생은 밤 한시로 부터 시작 되는거요 그러니 통금이후의 못쓰는 시간들을 파리로 수출하는 거요 수출 내 아이디어가 어떻소
[허몽녀] 그렇게 커다란 소리로 공개 하실걸 왜 귓속말로 소곤 거렸나요?
[사장] 그것도 상술이지 하찮은 말도 귓속말로 말하면 값지게 보이거든 더구나 이런 아이디어는 말이요 상술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소린데 나는 제일먼저 양조업에 손을 댔지요 막걸리 정종 빼갈 소주 맥주 위스키 좌우간 마시는 거라곤 양재물만 빼고는 다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술을 마시니까 간이 약해져서 얼굴이 꺼멓게들 탑디다 난 인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간장약을 만들어 파는 제약회사를 냈어요 간이 튼튼해지니까 술을 더 마시구 술을 더 마시니까 간장약이 더 팔리고 간장약이 더 팔리니까 술이 더 팔리고 술이 더 팔리니까 간이 약해져서 간장약이 더 팔리고 간장약이 더 팔리니까 간이 튼튼해져서 술이 더 팔리고---아!이게 돌고도는데
[지성] 그만 그만하세요 선생은 초인이십니다 창과 방패를 동시에 만들어 파는 좋은 사업가 두 아내를 동시에 사랑해 주시는 좋은 남편 배다른 아이의 좋은 아버지---모든 사람에게는 다같이 하나밖에 없는 좋은 친구---한몸으로 그 모든 역할을 다 해내시다니 과연 초인이십니다 혹시 니체의 철학이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사장] 아이구 내 정신좀 봐---그러잖아도 난 지금 철학을 구하려고 하던 참이었오 그것을 꼭 사야만 하오
[지성]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기선에는 석탄이 있어야 하고 초인에겐 초인의 사상이 있어야지요 그래야 움직일 수가 있으니까
[사장] (호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어 드려다 본다) 플라톤이란 철학 파는 것 없오
[지성] 놀랬읍니다 플라톤 참 드문일입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이 플라톤의 지식을 사시다니---이제 우리나라의 사업계에도 바야흐로 서광이 비쳐옵니다
[사장] 내가 아니라 내 여비서가 찾는겁니다
[허몽녀] 플라톤을 여비서가 구한다구요?
[사장] 여비서는 내방에 들어올 때마다 플라토닉 플라토닉이라고 조르는 거예요 그것도 수줍어 가지고 부탁하는걸 모르는 척 할 수도 없구 그런데 내가 그 말을 잘못 듣고 헤어 토닉을 사다주지 않았겠소 그런데도 또 여전히 단둘이 마주치기만 하면 계속 무슨 토닉 인가를 찾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적었지요 (종이를 다시 꺼내본다)맞소 틀림없소 플라토닉이요
[김시희] 알만합니다 여비서에게 무언가 나쁜 짓을 하려고 하셨군요
[사장] 나쁜 짓이라니요?
[김시희] 사장님이 좀 가까이 가려고만 하면 여비서는 으례 플라토닉을 찾았지요
[사장] 그렇소(놀란 표정으로) 답답해서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무슨 철학가에서 나온 말이랍디다
[지성] 바로 이겁니다 (플라톤의 초상을 꺼내어 놓는다) 그러나 이건 여비서에게 주시지 마시고 사장님께서 직접 쓰세요 여비서도 좋아할 거예요 우선 귀찮아 지지 않을 테니까요
[사장] 이건 몇푼이나 가는지요(플라톤의 가면을 살펴보면서 )
[지성] 그런데 사장님 가치 값을 깎는 사람이 있다면 사장님께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사장] 그야 갈데 없는 촌놈이지
[지성] 지식의 값어치를 모르는 사람 은요?
[사장] 그야 무식 쟁이구
[지] 좋습니다 50만원만 내십시오
[사장] 50만원(꼼짝못하고)좋시다 내 쓰리다 여비서가 좋아만 한다면---50만원이 문제겠오
[허몽녀] 틀림없지요 우리 사장님이 제일 멋진 분이라고 할꺼예요 그 나이에 플라토닉 러브를 아신 다구요(호호---웃는다)
[신사] (헤헤 따라 웃으며 수표를 끊는다) 결국 그러니까 그게 헤어토닉이 아니 였구먼---(사장 플라토닉의 가면을 써본다. 갑작tm레 점잖은 말투로---바뀐다)골치가 뻐근해지는데 이상하군 눈앞에 있는 물건들이 모두 그림자로 보이는데---이데아 이데아의 햇빛 당신들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소 여기는 동굴이요 햇빛은 동굴밖 에서 흘러 들어오는데 우리는 묶여있는 죄수동굴의 벽에 어리는 자기 그림자밖에는 볼 수 없지 그래서 그 그림자가 실제인줄로만 안단 말이오 (사장 퇴장)
[지성] 오래간만에 지식을 팔았군 그러나 저 플라톤의 지식을 가지고 장사를 잘해낼 수 있을까? 벌써부터 동굴 이야기를 들먹거리고 있으니
[김시희] 하지만 플라톤의 이데아가 여비서를 도와줬잖아요 나는 시간을 구하러 나가야겠어요 혹시 한강에라도 나가 있으면 자살자라도 만날 수 있지 모르거 든요 그들의 시간을 흥정해야지요
(김시희 퇴장하고 야망의 꿈을 사갔던 손님이 여자 한사람을 데리고 등장)
[허몽녀] (반가와서) 말씀하시지 않아도 알아요 눈만봐도 알아요(손님에게 다가선다)
[손님1] (분개한 표정으로 터진 풍선을 내밀면서) 그래 말하지 않아도 잘 알거다 이런 조제품을 팔았으니까---내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겠지
[허몽녀] 저런 꿈이 터져 버렸군요 조심 하셔야 지요 꿈과 유리그릇은 본래 깨지기 쉬운 것이 라는 걸 모르셨어요?
[손님1] 기가 막혀서 난 당신에게 충고를 하러 온 것이지 충고를 들으러 온 게 아니란 말이야
[지성] 충고는 좀처럼 환영받지 못한다 체스타 필드
[여부장] 실례합니다(명함을 내놓는다) 저는 소비자 보호협회 서울지부 제삼분과 소비자 고발 위원회 상담부 부장대리 입니다
[허몽녀] 어지럽군요 다시 말씀해 보시지요 뭐라고 하셨지요
[여부장] 마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소비자보호협회 책임자로 아시면 됩니다
[허몽녀] 무슨 꿈을 사러 오셨나요
[여부장] 사러 온게 아니라 조사차 나온겁니다
[지성] 기대는 실망을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세익스피어
[손님1] 나는 용감하게 사표를 써들고 직장으로 나가던 중이었오 럭비 선수처럼 당당하게 만원버스로 돌진했지요 불가능이란 없다 새 출발이다 그런데 버스에 타자마자 펑하고 터지지 않겠어요 너무나 짧은 꿈이었어요 이 꿈이 터지기 전에는 길거리의 사람들이 흙바닥을 기어다니는 딱정벌레로 보이더군 난 용기를 갖게 되었지 그런데 이게 뭐야 이젠 사기를 당하고도 혼자 따지러올 용기마저 없어서---소비자 협회에 가서 하소연을 하고 여자에게 이렇게 도움을 청하고 있으니
[여부장] 예 맞아요 저희들은 3천만 소비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악덕상인과 불량 저질 상품을 파는 사회악을 근절하기 위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중 입니다 이분이 와서 말을 하시기를 3만5천원이나 주고 산 이 꿈이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터져 버렸다는 거예요
[손님1] 맞어요 맞어요 과정도 왜곡도 없는 진실 그대로요 빵- 이렇게 허망하게 터져버리드구만 자 꿈속에 들어있는 건 가벼운 바람뿐입디다 냄새조차 나지 않았어요 먼지조차 안납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옛날과 다름없이 의자에 앉아 장부정리를 하고 있었오 갑자기 내가 더 초라해지고 예전엔 몰랐는데 내 자신이 이마에 더듬이를 가진 곤충으로 변해버리지 않았겠어요 내 한숨소리가 꿈이 터지는 소리보다 더 큽디다요 그런 조제품으로 사기를 치다니---
[허몽녀] 사기꾼 이라구요? 꿈이란 본래 그런 거예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서는 깨지기 쉬운 거예요 꿈은 방 속에서 혼자 고이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여부장] (찢어진 고무풍선을 살펴보면서) 자 보십시오 이렇게 약한 자료로 만들었으니 금새 깨지지요 튼튼한 강철로 꿈을 만들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아녜요
[손님1] 역시 여사님이 최고이시다 공정하시고 합리적이며 명석하시다 왜 강철로 만들지 않았오
[허몽녀] 정말 기가 막히 군요 꿈은 가벼운 거예요 그건 구름같이 높이 떠 있어야 해요 청운의 꿈이란 말도 못 들어 보셨어요 강철로 만든 꿈은 이미 꿈이 아녜요 깨지기 쉽고 가볍고 얇기 때문에 꿈인 거예요 강철로 꿈을 만들라니---꿈이 탱크인줄 아십니까? 내 참 안경이 깨졌 다구 안경알을 강철로 만들 수 있나요? 강철의 꿈이 어떻게 뜹니까?
[손님1] 사기꾼 비행기는 강철로 만들어도 뜨잖아요 배는 쇳덩어리로 만들었어도 뜨잖아요
[여부장] 당국에 고발할거예요
[지성] 지친 말은 매를 맞아도 겁내지 않는다-한관
[손님1] 돈을 물어 내든가 강철로 된 야망의 꿈을 내 놓든가
(이때 공과대학생 풍선을 들고 등장)
[대학생] 뭐가 어째 뭐 사랑이란 오래 참고 견디고 믿는 것이라구 이건 공해야 공해 당신이 판 사랑의 꿈은 빛 좋은 유해 색소란 말야
[허몽녀] 왜들 이러세요 조용히 하세요 이건 명백한 영업 방해에요
[대학생] 조용히 하라구 그래 조용히 있다가 난 망쳤단 말이야 여러분(빨간 풍선을 독이나 묻어 있는 것처럼 내버리려고 한다)이걸 보십시요
[손님1] 자네 것은 안 터 졌는데---멀쩡하잖아
(대학생이 풍선을 버리자 가지려고 한다)
[대학생] 손대지 말래니까요 위험합니다 저것이 터지면 온 세상 사람은 사랑의 공해로 죽게 될 것입니다 악몽 같은 나날이었어요 내가 그러고도 견딜 수 있었다니
[허몽녀] 당신이 꾼 악몽이 어째서 내가 판 꿈 탓 이예요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젖이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는 말도 못 들으셨나요
[대학생] 그럼 내가 독사란 말이야 사기꾼 당신하고는 말하고 싶지도 않아
[여부장] 수첩을 꺼내들고 자세히 말씀하세요 유독성 공해가 들어있다고 하셨지요 이건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불량상품을 파는 것과는 유가 다르니까요 사신 물건 이름이 뭐예요
[대학생] 사랑의 꿈
[손님1] 제가 산것은 야망의 꿈입니다 바로 저거지요
(파란풍선을 가리킨다)
[여부장] 그런데 꺼꾸로 증오심만 늘게 되었다는 게죠 증오심 할퀴는 것, 눈흘기는 것, 침뱉는 것, 물어뜯는 것---무시 무시해라 증오심의 공해 그건 사람을 악마로 만들어 소리 없이 목을 조여서 서서히 죽게 하지요 서서히---서서히 죽게 합니다 그것이 공해의 특징 이예요
[대학생] 그게 아니라 효험이 너무 지나쳐서 저를 망쳤다는 겁니다 꿈을 사가던 날 그날이 바로 내가 노예로 팔리게 된 날이 될 줄이야 나는 내 자유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단 말이요
[지성] 그러기에 사람은 현명해야 되네 이봐요 학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람도 어리석지만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사람은 더욱 어리석지 그게 다 아는 것이 없어서 그렇게 된 거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여기 와서 물건을 골라보게 지성을 동반하지 않은 사랑은 위험한 것일세 데모크리토스
[남학생] 쳇! 노예는 유식할수록 괴로움이 더 큰법이요 내가 무식했더라면 이렇게 한탄도 하지 않지 무지한 개는 목거리를 달고서도 꼬리를 친단 말요
[지성] 글쎄 시험해 보라니까 (키에르케고르의 가면을 쓴다)"인간은 어리석다 자기에게 있는 자유를 이용하려 하지 않고 자기에게 없는 자유만 원하고 있다" 어때? 키에르게케고르의 슬기를 가지고 있다면 학생은 지금 잃은 자유를 서러워하기보다 자기가 갖고 있는 자유를 누리려고 지금쯤 신바람이 나서 돌아 다녔을 거요
[허몽녀] (남학생에게) 좀 차근 차근히 이야기 하세요 당신의 이야기는 너무 급해서 뛰기도 전에 돌 뿌리에 채어 자꾸 넘어지는군요
[여부장] 문제는 점점 증대해지는군 공해 유해색소 이제는 노예매매 이 밝은 세상에 아직도 노예 매매를 하고 있다니--- 학생 정신을 바짝 차려요 그래 당신은 누구의 노예로 팔려갔으며 누가 당신을 팔았는가? 그 이름을 알려주세요
(이때 시간 테이프를 몇 개 사들고 미쓰김 들어온다)
[남학생] 저자와(허몽녀를 가리키며)미쓰김이 공모를 한 것이죠 나에게 사랑의 꿈인가 뭔가 바로 저거지요(붉은 풍선을 가리키며 만지려다가 겁에 질려 얼른 손을 뗀다)
[김시희] 뭐도 아니 내가 공모를 해서 댁한테 꿈을 팔았다구요 난 시간을 파는 사람이란 말예요 그렇지 증인이 있어 지성씨 우리는 이 학생이 꿈을 사라는 것을 보고 걱정했었지요? 저 물건이 자꾸 팔리면 위험 하다구요 기억하시지요 사랑은 지식을 폐하고 시간을 없앤다 이말 기억하시지요
[지성] 사람은 현재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쾌하고 슬픈 기억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그러한 기억에서 떠난다면 오늘 이 순간은 그런 대로 즐거운 것이니라-어그스티누스
[여부장]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하세요 아무리 값진 반지라도 남의 것은 제손가락에 맞지 않는 법이거든요
[지성] 그건 누가한 소리지? 세익스피어? 버너드쇼?
[남학생]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말하는 미쓰김은 이분이 아니라 (김시희를
가리키며) 내 여자친구 내게 꿈을 사준 여자친구를 두고 한 소리니까?
[손님1] 원 김씨가 하두 많으니 사실은 나도 김씨올시다 이 학생이 분명히 미쓰김 이라고 했는데도 공연히 날 보고 하는 소린 줄 알고 가슴이 뜨끔 했다오 아! 야망의 꿈 그 꿈이 깨지기 전에는 난 이렇게 소심하지 않았지 심장은 전쟁터의 북소리처럼 쿵쿵 울렸고 내 사지는 가시덤불을 뛰어넘는 표범처럼 탄력이 있었 다오
[여부장] 자! 자! 조용히들 하세요 나는 조사를 해야할 입장이니까요 그래 당신의 애인과 이 여자 둘이 공모를 해서 시뻘겋게 닳은 쇠로 노예의 낙인을 찍고 그리고는 노예시장에다 팔아 넘겼단 말이지요
[남학생]그렇소(가슴을 열어보이며) 이 가슴에 낙인을 찍었지요
[여부장] 그 낙인에는 무슨 글자가 새겨져 있든 가요?
[대학생] 사랑
[여부장] 사랑?
[남학생] 그렇다니 까요 그 낙인이 찍히자 마자 나는 미쓰김의 소유물이 되고 말았지요 나는 그녀를 위해서 모든 레포트를 대필해 주었습니다 내 공부는 다 밀어 부쳐 놓고 침식을 잃은채 쓰고썼지요 그러면서도 그것을 즐거움으로 알았지요 내 기다림의 생애가 시작되었어요 미쓰김은 어둠컴컴한 지하 다방에 앉혀놓고 한시간이나 두 시간이나 기다리게 했지요 교문 앞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극장입구 지하도입구 모든 입구에서 난 몇 시간씩 기다리고 있었지요 남들은 내가 바람을 맞은 것이라고 합니다마는 아니지요 사랑의 벼락을 맞은 것이지요
[지성] 나는 기다린다 고로 존재한다 - 데카르트
[김시희] 어머나 그 아까운 시간을 그냥 낭비해 버리다니 그런 시간이 있으면 저에게 파실 일이지 생선 가운데 토막 같은 귀중한 시간을 다방 쓰레기통에 그냥 버리 다니요
[대학생] 그 뿐인줄 아십니까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면 다른 놈들과 팔장을 끼고 홀연히 나타나서는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자기 둔치 아냐? 그래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어딨어 미워 할래도 난 미워할 수가 없었어요 웃었지요 감사했지요 미쓰김 자기가 즐겁다면 그것이 곧 내 즐거움이 아니겠어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감사를 했지요 세상에 그럴 수가 주먹을 쥐고 침을 뱉으려 했지만 뜨거운 사랑이 나의---나의 원수에게 까지도 뻗쳐오르는 그 뜨거운 사랑의 온천물이 솟아오르지 않겠어요 만나는 것 보다도 기다리는 그 자체가 나에겐 더 즐겁다고 황홀 하다구 말했지요 물론 미쓰김의 멍에에서 벗어나려고 애써보기도 했지요 그러나 안되더군요
[지성] 나는 멍에를 쓰고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데카르트
[대학생] "사랑은 오래 참고 견디는 것이며 투기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치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모든 것을 받으며 견디는 것이니라---" 이런 말이 24시간 저 "사랑의 꿈"속에서 들려오고 있었거든요 유순한 강아지처럼 살았지요 미쓰김은 내 목을 사랑의 꿈이라는 사슬로 칭칭 동여매어 날 끌고 다닌 거예요
[손님1] 당신은 지금 행복하시군 그래 아름다운 여자의 노예, 사랑의 노예---그런 노예라면 나라도 참겠오
[여부장] 그래 사람들이 뭐라고 합디까? 사랑의 순교자라고 하던가요
[대학생] 바보 바보라고 그럽디다
[허몽녀] 그게 제 책임이란 말예요
[대학생] 난 당신을 고발하겠오 당신이 그 위험한 사랑의 꿈을 팔고 있는 동안 앞으로 나 같은 희생자가 얼마나 많이 나오겠오 당신은 사랑의 공해를 팔고 있는 거요 난 버스를 타면 으례 장소를 남에게 양보했습니다 사랑의 감정 때문이지요 소매치기가 남의 호주머니를 털면 그 돈을 내가 물어주거나 소매치기 대신 내가 경찰서로 갔오 그들의 죄를 대신하려고---거지를 보면 내 윗저고리를 벗어 주고 맨발벗은 아이를 보면 내 구두를 벗었지요 내 생활은 엉망이 되었고 학교는 퇴학을 당하고 부모는 학비는 커녕 집에서 내쫓았오 드디어 운명의 날이 왔지요 미쓰김은 어제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단 말에오
[김시희] 결혼식은 몇 시에 있었 나요
[지성] 결혼은
[여부장] 그래 그걸 보고만 있었어요
[남학생] 왜 가만히 있었겠어요
[손님1] 그렇지 우리는 남자가 아니요 야망의 꿈을 손에 넣었 을때 난 제일먼저 복수를 해야겠다는 열정이 끓어 오릅디다 날 경멸 한다던 자 바보라고 부르던 자 좋은 친구라고 부르던 그자들을---
[허몽녀] 어떻게 했어요? 빨리 결론을 이야기하세요 자꾸 돌부리에 넘어지지 마시고
[남학생] 나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결혼식장에 나가서 신부측 수부일을 봐주었자요 미쓰김이 그러더군요 요즈음엔 믿을 사람이 없다고 부조금을 받어 뒷 호주머니에 슬쩍하는 친구들이 많으니 도와 달라 구요
[지성] 어리석은 친구 군 분별력을 가르쳐주는 지식이 없는 탓이야 지식 없는 사랑은 선장 없는 배와도 같은 것일세 이건 누가 한말 이든가? 좀 이상한데 내가 한말인가?
[허몽녀] 당신은 복 받을 일을 한 거예요 사랑을 받는 것은 타버리는 것 그러나 사랑을 주는 것은 어두운 밤에만 켜지는 램프의 아름다운 빛 사랑 받는 것은 꺼지는 것 그러나 사랑을 주는 것은 긴긴 지속---당신은 사랑을 받은 자가 아니라 사랑을 준 사람예요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란 말예요 손해본 것은 미쓰김 이지요 그는 사랑을 받기만 했으니 곧 타버리고 꺼져버릴 거예요
[대학생] 옳으신 말씀 바보는 똑똑한 사람보다 오래 사는 법이니까
[여부장] 어떻게 되어 가는거야 자 용기를 내요 당신은 고발한다고 했었 잖어
[대학생] (카운터를 두 주먹으로 꽝 친다) 이 수고의 날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오 나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증오심을 주 든가 위자료를 지불 하든가 빨리 선택하시오
[허몽녀] "증오의 꿈"이란 없어요 그런 건 누구나 다 가지고 있으니까 어쨌든 난 지금 정신이 혼란해서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미칠 것만 같아요 위자료를 받을 사람은 바로 저예요
[손님1] 왜 내가 이러구 서있지 나는 구경꾼이 아니었잖아 그렇지 난 꿈 값을 돌려 달라고 온 거야 조제품 사기꾼(카운터를 친다)
[대학생] 노예상인
[여부장] (이들이 열을 올리고 겁에질린 미스허의 얼굴을 보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중제를 한다) 자! 자! 지성인들이 이래서 쓰나 나에게 일임하시오 내가 배상금이나 위자료를 받아 내드릴 터이니 일단 돌아가십시다
[손님1] 아니 당신은 누구 편이요
[대학생] 갑자기 태도를 바꾸다니 꼭 미쓰김 같군 여사님은 얼굴을 몇 개나 가지고 계시나요
[여부장] 예---우리 소비자 보호협회는 어디까지나 중제 역할을 하는데 목적이 있지요 수사기관이 아니란 말입니다 판매자와 소비자의 다리---다리 역할을 하는 거에요 옛 부터 흥정은 부치고 싸움은 말리 랬 다는 말이 있잖 습니까?
[지성] 어느 쪽에도 치우치치 않고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려면 공자님이 어떠 실까? 중용 중용 중용의 힘 중용의 덕 공자님의 사상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김시희] 시간! 시간! 시간은 약이지요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해결되지요 시간은. 모든 것을 중제해 주는 중화제지요
[여부장] 다들 돌아갑시다 저에게 맡겨주세요 이렇게 떠들면 혼란스러워서 일이 영 엉켜버리고 말아요 엉킨 실은 화를 낼수록 더 엉키는 것이니까---참을성만이 실마리를 찾는 최선의 방법이지요 (미쓰허 머리를 쥐고 미칠듯이 고민한다)
[미쓰허] 내가 사깃꾼 이라니 공모자라니---사랑하는 것 희망을 갖는 것 잃어버린 어린 꿈을 되찾아 주는것---이것이 내가 사람들에게 주려고 한것인데--- 산타클로즈---인류의 산타클로스 노릇을 한 것인데--- 사기꾼, 공모자, 사랑이 유해색소라니---
[여부장] 다들 돌아가요 돌아갑시다
(불평을 하면서 손님1,대학생 퇴장)
[대학생] 이 공모자! 노예 중개인!
[손님1] 사기꾼, 세균업자, 전쟁상인---
[지성] 여보시오 당신들의 비극은 어리석음 때문이요 그냥들 가지 마시고 이거 어떻소 소크라테스---공자, 석가모니---분노를 새기는 약들이요 인생의 고통을 참게하는 진통제
[여부장] 자 진정해요 날 어머니로 생각하라구
[미스허] 어머니? 어머니도 여러종류인데? 계모겠지요?
[여부장] 그런투로 이야기 하지 말라구 난 당신을 도우러 온거요 간단히 해결하는 법이 있어요 난 소비자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건실한 판매업자를 소비자의 횡포로부터 막는 역할도 한다오 아니---판매업자 보호에 더 역점을 두고 있어요 소비자란 아이들 같아서 투정이 많다오 세상에 입에 맞는 떡이 어디있겠우 내 저들을 무마할테니(손가락 으로 1자를 꼬나
보이면서)한장만 한장만 쓰시오(귓속말로)
[김] 한장만이라니--- 만원요?
[여부장] 십만원! 십만원만 가지면 다 무사해진다구---곧 저들이 밀려오고 가게를 부수고 신문에 진상이 나오면 끝장 아니오
[김] 저런 사깃꾼 단신이 뭐 소비자협회 소비자분과 위원회 상당부---그리구 또 뭐랬더라---어쨌던 소비자를 보호하는 사람이라구 양의 탈을 쓴 이리
[지] 아니지 역시 미스김은 무식해 이런 경우는 양의 탈을 쓴 여우라는 거야---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다 야두구육-중국고사
[여부장] 당신네들도 기필코 내 신세를 질때가 꼭 올꺼야 곧 마시게 될 우물물에 침 뱉는 일은 현명한 짓이 아네요
(이때 순경과 함께 소년 흰 동심의 꿈을 훔쳐갔던 소년 등장한다)
[여부장] (찔끔해서) 본인은 소비자보호협회를 대표해서 한마디 하겠는데(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며 도망친다) 소비자는 왕에요 왕이란 말씀이에요
[순경] 당신 가게에서 물건을 훔쳐간자를 체포했소 이자가 맞지요
(흰 풍선을 손에 들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소년)
[소년] 감사드리러 왔어요 난 체포당한게 아니라 모든걸 뉘우치고 자수를 한겁니다
[미쓰허] 맞아요 이건 도둑맞은 내 동심의 꿈이야 그렇습니다 이것은 더럽혀진 어른들의 마음을 눈처럼 깨끗이 씻어주는 순결의 꿈이지요
[순경] 자네는 10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지 시간을 어기면 안돼 이 날치기야 (김시희를 보고) 조심하시요 이놈은 시간을 벌려고 이곳에 온 것인줄도 모르니까 시간을 훔칠지도 모릅니다 나이는 어려도 전과3범 입니다
[소년] 걱정마세요 이 꿈을 훔친 순간 난 깨끗해졌거든요 옛날의 내가 아니지요 훔치자 마자 후회했는걸요 이런일은 한번도 없었던 일인데 기적이 일어난 거에요
[미쓰허] (동생을 대하듯이) 이봐 그거 가져도 돼 그 때문에 착한 아이가 되었다면 오히려 우린 축배를 들어야지
[소년] 헤헤---애들이 무슨 축배야 그건 어른들이나 하는 쇼우라구 누나 나 누나라고 불러도 돼? (순경은 서서 시계를 들여다 본다 지식을 파는 가게에 가서 이사람 저사람 가면을 들여다 본다)
[미쓰김] 몇살이지?
[소년] 열여섯
[허] 더 어려보이는데
[소년] 아니야 누나네 가게에서 꿈을 훔치기 전에는 마흔살도 더 먹었었지? 난 한번도 어린애였던 때가 없었거든
[허] 그러면 태어나면서 부터 어른이야 (웃는다)
[소년] 응 춘 길거리서 혼자 막 울었지 난 그 이전의 생각을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그 때 태어난거야 그 뒤엔 다시 운적이 없어
[지] 저런녀석 에겐 챠닝의 지식을 팔아야 하는건데---가정은 우리들의 마음을 양육하는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무덤 그 관습의 끝칸이다-챠닝
[김] 저녀석은 어린시간을 누구에겐가 팔았던 모양이군 늙은이들의 지루한 시간을 팔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애들이 시간을 팔았다는 말은 처음 듣는 허 엄마 아빠는 어디 있었는데 혼자 길거리에서 울고 있었지?
[소년] 몰라 혼자였어 길거리에서--- 울고 있자니까 어른들이 돈을 주고 갔어 그때부터 나는 진짜로 운적이 한번도 없었다구 돈이 필요할때만 울었으니까 이렇게 우는 시늉을 한다
[허] 저런 딱해라(머리를 쓰다듬는다)
[소년] 난 애가 되고 싶었지만 그게 영 안됐었어 누나같은 사람을 갖고 싶었었는데도 막상 만나면 핸드백만 보이는걸 껌팔이 신문팔이 구두닦이---별거 별거 다 해봤지 순진한 어른들을 속여 먹는게 내 직업이었으니까 난 어른들보다 훨씬 어른이었어
[허] 그래도 도둑질은 하지 말았어야지
[소년] 처음부터 도둑질한건 아니야 어른들이 날 순진한 꼬마로만 알고 믿었던게 잘못이었지 훔쳐갈 기회를 준 사람들이 나뻐
[허] 정말 넌 어린애가 되어본적이 없니?
[소년] 꿈을 훔치고서야 이렇게 처음애가 되었는걸 꺼꾸로 나이를 먹은거야 누나네 가게에서 어린애의 끔을 훔치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도 못된 어른이었을거야
[허] 애가 되어본적이 없었다면서 넌 어떻게 지금 애가 되었는지 알 수가 있어?
[소년] 꼭한번 있었어 크리스머스날
[허] 야 크리스마스날
[소년] 손이 꽁꽁얼구 배가 고프구 아주 춘날이었다우 그래도 난 울지 않았어 그런데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과자집 진열장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까 눈물이 흐르지 않겠어 난 맹세할 수 있어 절대로 과자가 먹고 싶어서 운건 아니야
[허] (소년을 껴안는다)불쌍한 녀석--- 내 귀여운 동생
[소년] 그걸 준데도 난 먹지 못했을꺼야 하얀 설탕으로 만든 예쁜 집이었는걸 지붕에도 창에도 흰눈이 수북히 쌓여 있었구 방안에는 빨간 촛불이 켜져 있었구 인형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너무 예뻐서 난 그걸 준데도 먹을 수 없었을꺼야 [허] 알고 있어 크리스머스 카아드에 나오는 집같은거 말이지
[소년] 전나무에 커다란 별이 걸려 있었다구 빨간 장화 이발소 간판같이 흰줄 빨간줄을 돌돌 만 지팡이, 초록색 양말, 모자를 쓴 인형 이런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구--- 자꾸 자꾸 치사스럽게 눈물이 흐르지 않켓어 엄마야---처음으로 이렇게 소리를 질렀더니---어디선가 방울소리가 울려오고 노래소리가 말야 그건 하늘에서 울려온걸거야 하얀 눈처럼 노래소리가 한송이 한송이 떨어져서는 내눈섭 내귓밥 내손등으로 소북히 쌓이는거야
[허] 불쌍한 내동생(머리를 쓰다듬는다)그래 알고 있어 크리스머스 이브엔 모든것이 흰빛으로 번쩍거리지 학예회때 종이로 만 든것 같은 커다란 눈송이가 내리고 있었지 모든게 신비해 모였어 강아지가 썰매를 끄는 사슴처럼 보이는밤 --- 종소리가 들려 왔었지 방울소리
도---털모자---빨간장화---포장지와 은박지 눈송이 하나 하나가 별이 되는거야--- 촛불도 음악소리도 다 별처럼 하늘로 올라갔어 (이때 무대로 짧은 쮸쮸를 입은 소녀들 북을 치며 등장 "북치는 소년"의 캐롤 음악이 들려오고 종소리가 들린다---북치는 소녀들의 행렬이 무대를 빙글빙글 돈다 소년과 허몽녀---아이들처럼 손을 꼭 잡고 꿈에 잠긴다)
[허][소년] (시를 함께 낭송한다)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엄마 포장지를 열지 마세요 그 상자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아빠 촛불을 켜지 말아요 그게 사슴이었으면 좋겠다 그게 전나무 숲 하얀 눈길이었으면 좋겠다 벙어리 장갑을 끼고 하얀 털모자를 쓰고 엄마---늘
이렇게 별이 빛나고 아빠---나무가지에도 촛불이 켜지구 그게 방울소리라면 좋겠다 눈이었으면 좋겠다 굴뚝에 쌓이는 눈이었으면 좋겠다 지붕에 내리는 눈이었으면 좋겠다 엄마 선물 상자를 풀지 말어요 아빠 촛불을 켜지 말아요 내일 그리고 내일 언제까지나 꿈 속에서 기다릴거야 (북치는 소녀 퇴장)
[순경] 야 이녀석아 약속한 10분이 다 됐어
[허] 순경아저씨 얘는 지금 어린애에요 도둑질하던것은 어른이었지요 그 어른은 지금 아무데도 없어요
[순경] 난 법대루 하는거야
[허] 여섯살먹은 어린애라구요 크리스마스날 첫선물을 받은아이---얘는 내 꿈때문에 애가 된거예요 어른은 체포할 수 있어도 아이의 손에는 수갑을 채울 수 없어요
[순경] 어쨌던 상습범이었구 제입으로 자기 죄를 다 이야기
하고 자수를 한거니까---(소년에가 다가온다)
[허] 보지들만 말고 어떻게 해요 이 애는 감옥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카드 속으로 집어 넣어야 해---언니---시간을 주어 겨우 난 내 행복을 발견했는데 시간을 연장해줘
[김] 돈만 낸다면---시간은 팔 수 있어
(허 카운터를 뒤진다. 돈이 없다)
[허] 다 빈서랍뿐이군 꿈은 원래 텅 비어 있는것이지만 이렇게 바람만 들어있다니 (핸드빽 온몸을 뒤진다)
[지] 페스타로찌 어른도 그 마음의 고향은 동심속에서 찾아야 한다 만약 마음의 순진성을 잃는다면 인간 내부의 질서는 흩어지고 지적 행복을 즐길 힘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순경 소년을 믄는다)
[허] 이럴수가 있어요
[순경] 죄인이니까
[허] 지금은 순진한 아이에요
[소년] 누나 걱정하지마 난 조금도 무섭잖어 이건 술레잡기를 하는 거라구---이런 장난을 하면서 놀고 싶었다오
[허] 넌 이왕 어른이 되었는데 다시 애로 돌아오지 말았어야해 얘---내동생 내 귀여운 동생-왜 다른걸 훔치지 하필 그 꿈을 훌쳤니---
[소년] 아냐---누나---이건 술레잡기하는거라니까 누나 고마워 누나 나 꼭 찾어야 해 꼭꼭 숨을테니까---누나가 술레야 꼭 찾아내야 해---(묶여가면서 소년 노래 부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발뒷꿈치 보일라
[허] (울면서 몇발자욱 뒤쫓는다)그래 꼭 찾아낼께--누나는 술래야 술래라구--꼭 찾아낼께
(엉엉 울다가 웃는다 미치기 시작한다)
[허] 별을 따 가지고 와(하하하---그건 눈송이라니까---눈이와요 눈이옵니다(노래를 하다가 다시 하하하 웃는다)(갑작스레 심각하게)술레 그래 내가 술레가 된거야 어디라도 꼭꼭 숨어 있어 꼭꼭 숨어 있으라구 (찾는 시늉을 한다)다들 어디간거야 어디 숨어있어
[김] 미쓰허가 미쳤어요 빨리 의사를 불러--(허둥지둥 하며) 의사를 불러와야지(뛰어나간다)
[지] 아는것이 힘 이런때야말로 의사보다 지식이 필요하다 이런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가면을 향해서) (가면들을 둘러본다)다들 보셨지요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위급합니다 허공녀가 미쳐가고 있어요 이 비극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
[아리스토텔레스] (소리) 비극은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교육적 효과가 있다
[지] 쳇 이판에 그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데카르트 선생님!
[데카르트] (소리) 생각하라 고로 존재한다
[지] 존재가 문젭니까? 존재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판에---쇼펜하워 선생님
[쇼펜하워](목소리) 도망쳐라
[지] 역시 안돼겠군 신제품에 기대를 거는 수 밖에 싸르트르 선생님 이 경우엔 어떻게 해야 허몽녀를 살릴 수 있읍니까?
[싸르트르] (목소리) 실존은 본질에서 행한다 미친 상태는 정상 상태보다 선행한 것이다
[지] 그럼 계속 미치고 있으란 말에요?
[싸르트르] 선택해야지
[지] 어떻게요 무엇을요
[싸르트르] 선택은 자기가 하는 것이다
[지] 책임전가자 절도와 주십시요 위대한 철학자를! 위험은 모든 위대한 마음의 박차다 에프만---(다시 니이체의 가면을 쓴다)"삶의 최대의 환희를 수확하는 비결 그것은 위험속에 산다는 것이다"정신들 나갔군 이 위급한 판국에 환희를 수확한다구 마음의 박차라구---안되겠다 그냥 구원을 청하면 아무도 오지 않을테고---옳지---이런때 쓰는 방법이 하나 있지 불이야 불이야 (소리지르며 뛰어나간다)
[허] (야망의 꿈 풍선을 터뜨린다 풍선이 터질때 대포 소리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다음엔 사랑의 꿈을 터친다 환희 합창곡의 한소절 풍선 바람이 빠질때까지 울려온다
흰 풍선을 터뜨린다 꼬마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빠와 함께 춤을 이라는 음악속에 나오는 아이의 웃음소리--- 미쓰허 나머지 풍선을 모두 끊어 날려 버리며 웃는다 하하하---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발뒷굼치 보일라 하하하---" (히스테리컬한 웃음이 계속되면서 막 무대 어두워지고 막이 내려온다)
[막] 제3막
(같은 장소 다만 한가운데 꿈을파는 판매대만이 텅비어 있다. 막이 오르면 장송곡이 들려온다. 지와 김 무대쪽을 내려다본다. 백화점 고층 건물 창으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중인것이다)
[지] 굉장한 장례식이군---대체 누가 죽은 것일까
[김] 제왕의 장례식도 저렇게 화려할수 없을 거예요 저 남대문 같은 영정을 보세요
[지] 백마 열필이 끄는 영구차를 보라구---아니---저 영정 어디서 본듯한 사람같은데---
[김] 잘 생각해 봐요. 혹시 우리 백화점 손님이 아니었나
[지] 맞다 맞어---내가게에서 플라톤을 사러온 사람이다
[김] 저런---딱한일좀 보게. 그렇게 시간을 팔라구 신신 당부를 해놓고 플라톤만 사간 그사람이군요 그의 여비서가 슬퍼하겠군요
[지] 과연 플라톤식, 러브로 끝났을까!
[김] 그건 지선생이 더잘 알게아녜요 그 때 사간 플라톤의 지식이 효험을 봤다면 사랑뿐이었겠어요. 모든걸 플라톤식으로 했겠지요
[지] 그런데 죽다니 쇼펜하워라면 몰라도 플라톤의 철학때문에 자살을 했을리는 만무지---그러나 웬지 기분이 나뿐데--- 내가판 지식이 뭐 잘못될걸까?
[김] 이젠 선생님 차렌가봐
[지] (미스허의 빈 카운터쪽을 보면서)재수없는 소리 하지 말라구. 내가 미스허처럼 미쳐서 죽는다는거야 도대체 내가 판 지식이란 몇개 안돼요. 그게 부작용이 날리도 없구---
(귀부인 차림을 한 여인 등장한다)
[김] 보세요 품절이예요! 며칠째 이래요. 시간을 내놓는 사람이 없어서 휴점상태지요 딱 하나 밤시간 12시부터 4시까지의 밤시간이 남었을 뿐예요.
[귀부인] 시간을 사러온게 아녜요. 난 이양반을 만나러 온것이라구---
[지] 그거보라구 어서 오십시오. 무엇으로 드릴깝시요 혹시 여성해방 운동에 필요 하시다면--- 에 또 신수입품으로 케이트 밀렐이 있지요. 미국제 신형---인기가 대단하답니다.클래식한 것을 원하신다면 클론 타이가 있구요
[귀부인] 여보세요 한번 속지 두번속을줄 알고 그래---
[김] 보라구요 내 예언이 맞었지요. 서서히 시작하는구먼---그러니까 나처럼 완전 소비품을 팔아야 뒤가 개운하지요.
[지] 왜 이러십니까 점잖으신 분께서
[귀부인] 내가 할 소리야 지식을 파는 점잖은 분이 그래 그럴수가 있어요
[지] 자세히 말씀 해보시지요 뭐가 잘못됐나요
[귀부인] 당신 입으로 분명히 말했지 세계에서 제일 유식한 지식은 뭐니뭐니 해도---
[지] 아---생각납니다. 아리스토테레스를 사가신 분이군요 네 틀림없어요 대학자들이 으례 논문을 쓰려면 아리스토테레스를 인용하거든요 문학은 물론이고 정치학 논리학 윤리학 심지어 과학까지도요--- 틀림없어요 제가 보장할수 있읍니다.
[귀부인] 뻔뻔스럽긴---내 자식이 아무리 머리가 나뻐도 제실력대로 시험을 치루었다면 빵점을 받진 않았을 거예요
[지] 예? 그럼 아리스토테레스를 사다가 댁의 아드님에게 주셨다는 겁니까
[귀부인] 대학시험에서 고스란히 미끄러졌오---아 그래 세계에서 제일가는 석학의 지식을 몽땅 주입시켰다는게 그모양이에요. 내 챙피해서
[지] 저런! 대학시험에 떨어졌군요 그건 즉 아리스토테레스가 대학시험을 치뤘다해도 떨어졌단 말이나 같은건데 그럴리가
[귀부인] 그럴리가? 웃음거리예요 우선 한국의 역사나 지리는 통 백지란 말예요 난중일기가 무엇인지도 몰랐다면 할말 다 한거지 심지어 구두시험에 고래가 물고기냐 포유류냐 라고 물었더니 국민학교 학생도 다 아는걸 가지구 물고기라고 했다는거 오.
[지] 그럴겁니다. 아리스토테레스의 시대에는 바다에서 사는건 다 물고기 였으니까요. 사실 바다에서 사는게 물고기지 뭐 물고기가 별건가요
[귀부인] 똑같군 똑같어
[김] 그러게 제가 뭐랬어요 구식 지식을 잘못사면 시대 착오가 된다구요 밤시간을 사셨다면 시험공부를 남보다 배나 할수있었는. 여기 마침 마지막 떨이가 남었는데 사시지 않겠어요
[귀부인] 뭐 재수생이 된줄 알아요 그놈의 아리스토테레스인가 뭔가 깨끗이 그 지식을 털어 버리고 이차대학에 가서 시험을 쳤드니 수석합격을 했다구요---내 여기 온것은 다른짐 귀한 자식 신세 망칠까봐 경고하러 온거예요.경고하러---아예 입시생에겐 팔지
마시오 (퇴장한다)
[지] (후유 한숨을 쉰다) 알리스토테레스의 가면을 향해서 망신입니다. 아리스토테레스 박사---이건 망신입니다. 대학시험에 떨어지시다니---
(시골영감 이젠 부인이된 대학생과 등장)
[영감] 빨리 오라니까
[여학생] 아이 아버지 글쎄
[영감] 잔말 말고 따라와
[여학생] 결혼 선물을 사주신다더니 겨우 이거예요. 여기는 기적을 파는 백화점이예요 저희같은 새색씨들은 별 볼일이 없는 곳이라는데요
[영감] (지식을 파는 판매대쪽으로 온다)
[여학생] 아버지---전기제품 파는데로 가요 냉장고,티비,전자자---이런게 필요하다니까요
[영감] 그보다도 너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어. 내 너를 헛공부 시켰다. 결혼하기가 바쁘게 친정집을 측간 드나들듯이 하지 않나 시아버지앞에서 뭐냐 그 허벅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잠자리 옷을 입고 다니질 않나---응 그건 또 좋다 옛날에 남편을 하늘이라 했는데 그앞에 벌렁누워 가지고 귀를 후비라고해!
[여학생] 아버지 요즈음엔 다 그런단 말에요. 내친구는 목욕하고 남편에게 발톱을 깎아달라고 하는데---그래도 난 아직 발가락을 내밀지 않았단 말예요.아무것도 모르면시렁---
[영감] 글쎄 귓속이고 발톱이구---내널 헛공부 시켰어---아직 우리집안이 그렇게까진 망하지 않았다 네게 필요한게 있으니 잠자코 이리와---
[지] 저 여학생
[김] 그렇군요. 공대 학생에게 사랑의 꿈을사준 여학생이군요 시집 갔다 더니만---
[지] 네 어서 옵시요. 뭘 찾으시나요
[할아버지] 국산품으로 줍시요. 외제품은 필요없어.얜 외래품 지식때문에 망한다니까!
[지] 국산품도 여러 종륜데요
[여학생] 아버지 이 이왕 사주시려면 독일제 저것으로 사줘요
[지] 아---프론이드 말씀이군요 왜 그거 있잖읍니까 하나만 가지면 깡통도 따고 병마개도 따고 손톱도 깎고 사과도 벗겨먹고 귀도 후빌수 있는 다목적 특허 등산 칼 같은게 있잖읍니까 이를 테면 그런거지요 애 푸론이드는 특허품입니다 만능이라 어디에 가도 쓸수 있읍니다
[여학생] 아버지.부부생활을 하려면 심리학 지식이 있어야 하거든요. 남편이 무의식 속에서 어느 여자를 생각 하는가? 그걸 알아내야 하거든요. 남자는 겉보기와 속이 아주 다르니까요 콤플렉스 추성이에요
[영감] (들은채도 않고) 퇴계나 육곡으로 주십시오.
[지] 퇴계라---퇴계라---율곡이라---율곡이라---(상품을 찾는다)여기 있습니다.어느쪽을 드릴깝쇼.
[영감] 어느 쪽이든 좋소 향악을 알면 되니까(가면을 받아 들고 돈을 치룬다)
[여학생] 아이구 어머니---어쩌라는 거예요 이걸---
[영감] 빨리 쓰라구
[여학생] 이걸요?
[영감] 그래도 편안한줄 알어라--- 서당에서 회초리를 맞으며 고생고생하며 배운걸 너는 힘안드리고 하루아침에 깨치게 되었잖니---돈이 좋긴 좋아 참 살기좋은 세상이 되었어 엥날에 이런게 있었으면 과거급제 장원쯤 따는건 누워 떡먹기 였을게다.
[여학생] 아버지 이 수엽만이라도
[영감] 옛끼불경한놈---옛날 선현들의 생각은 머리나 가슴에서 나온게 아니고 다 이 3천장 하얀 수염에서 나온 것이란 말여
[여학생] 전 여자아네요.수염만은 안되겠어요
[영감] (강제로 씌운다 그리고 끌고 나간다)
[여학생] 부재기우면 불도기정이라---남편이 가만 있는데 왜 아버지가 야단이야
[영감] 이제야 문자를 쓰는걸 보니 제정신이 바로 박히기 시작 하는 모양이군 참 좋은 세상이다. 그렇지 그렇지 부재기우면 불도기정이라. 그자리게 있지 아니하거던 남의 정사에 간섭지 말라는 뜻이렸다---아니 뭐 저런 괬심한 것 보게--- 겨우 문자를 배워 애비한테 대드는 말부터 써먹어---저런 고얀놈 보게 (딸이 퇴장한 쪽으로 급히 달려간다)
(퇴장하는 영감과 부딪히며 청년 한사람이 들어온다.)
[도둑] 시간 파시오
[김] 품절인데요
[도둑] 저기 있잖어
[김] 저건 통금 이후 시간이예요
[도둑] 내가 찾는게 바로 저거요
[김] 정말 저걸 쓰시겠어요. 저것도 마지막 떨이예요 요즈음은 해외로 시간을 수출해서---주로 파리의 피갈 광장에서 인기랍니다---물건이 없어요
[도둑] 빨리 주시오. 말이 많군
(김, 마지막 시간 테이프를 떼내어 싸준다 돈을 치루고 강도 들고 나간다 미스
김 다시 부른다)
[김] 손님! 손님! 그시간의 용도와 주민등록번호
[도둑] 별걸 다 묻는군
[김] 규정이예요. 법적인 문제가 있으니까요
[도둑] (슬슬 나가면서) 용도는 은행 금고를 터는 일이지 통금이후 시간만 가지고는 시간이 모자른단 말씀예요
[김] (놀라서)어머나---주민등록번호 몇 번이요 아니지 참 강도야---강도야!
(도둑 도망친다 갑작스레 졸도하려고 한다. 미스터 지가 와서 떠받쳐 준다)
[지] 왜이래. 그정도 가지구 내자신을 지배할줄 알아야 남을 지배할수 있다 내 자신을 지배하려면 무엇보다도 침착해야 한다 프라우투스---아는것이 힘이요 인색하게 돈아낄 생각말고 정신의 보약인 이런 지식을 좀 사라구 그래야 이 빈혈증이 없어지지
[김] (겨우 깨난다) 놀래서 그런게 아녜요. 갑자기 현기증이 나면서---누군가 날 향해서 걸어오는 발자욱 소리가 들렸어요---아녜요 알것없어요 아무일도 아니니까요 속이벼서 그러는가 봐요 무얼 먹으면 곧 나아직 거예요 뭐좀 잠깐 사가지고 올께요
(퇴장한다 에라스무스전공가 대학교수 입장한다 낙타처럼 꾸부정하게 걷는다)
[지] 어서 오십시요. 오랫만이군요 에라스무스 강의는 잘 되어가십니까?
[교수] 예 덕분에
[지] 학생들이 또 시간중에 땡땡이를 쳤는가요
[교수] 장례식엘 갔다가 지나는 길에 좀 들렸지요. 여기에 와서 냄새만 맡고 가도 좁 신식 사조를 짐작할수 있으니까요
[지] 코가 참 좋으십니다
[규수] 뭘요, 코보다도 눈치가 빠른거지요
[지] 그래 누구 장례식이었읍니까? 설마 에라스무즈가 다시 죽은것은 아니겠지요
[교수] 비슷한 이야기예요
[김] 아니 비슷하다니?
[교수] 플라톤이 죽은 것이지요. 국민학교 내 동창인데 재벌이었지요 여자버릇이 나쁘긴 했지만 좋은 친구였어요 특히 죽기 직전엔---아주 장엄했읍니다
[지] 점점 모를 소리인데요
[교수] 말년에 플라톤주의가 되어 버렸거든요
[지] 옛-(펄쩍 뛴다)
[교수] 사람을 무시하는게 아니요. 돈버는 사람이라구 플라톤을 알면 안되나요. 플라톤 자신도 역도선수가 아니었습니까!
[지] (멍하니 허공을 쳐다본다) 아! 그렇게 된거군
[교수] 그는 불철주야 자기가 꿈꾸는 이상국을 만든다고 섬 하나를 사가지고---
[지] 플라톤의 이상국가라---
[교수] 그러나 시대착오 였지요. 그게 될법이나 한 소리입니까? 종업원들을 모여다가 이상한 짓들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 볼까요
[지] 결국 플라톤때문에 죽은것이군요---아! 이번에는 내차례구나.
[교수] 반듯이 그런건 아닙니다만 따져보면 플라톤의 이상국 철학이 그를 죽게한것 이라고 볼수도 있겠지요 예를 들면 말입니다
[지] 예는 필요 없습니다 예는 생선비늘같은 것이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비늘이 곧 생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속에 적용될수 있는 예란 극히 드물거든요
[교수] 아니오? 지식을 매매하시는 분은 참고로 들어볼 가치가 있는 예이지. 당신 손님 이였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어느날 그는 저에게 와서 플라토닉이 뭐냐고 묻지 않겠어요. 그때부터 그는 돌기 시작한거예요 결국 플라톤 신봉자가 된 그는 부모의 습관이나 사회에 물들지 않도록 10세를 넘은 아이들을 모주리 잡아다가 섬에 가두었지요
[지] 알겠어요 플라톤이 논한 이상국가엔 그런 예가 나오지요. 그래 가지고 뭘 했나요
[교수] 회사를 개조하려고 한겁니다. 그들을 플라톤식으로 교육시켜 회사 중역 자리에 앉히고 모든 간부를 교체한 겁니다. 수위를 사장으로 사장을 수위로 말입니다.
[지] 기성 사원들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교수] 그의 말에 의하면 "회사"란 말부터가 잘못된 것이 라는 것이지요 회사는 사회를 뒤집어 놓은 말이 아닙니까
[지] 그렇군요 회사,사회,사회,회사
[교수] 사회를 뒤집어놓은 것이 회사니까 그 모든 회사를 다시 뒤집어놔야 사회에 역행하지 않고 정상이 된다는 논법이었지요. 회사를 뒤집어 놓은 결과 이상적인 회사가 된것이 아니라 파산을 당하고 만겁니다.
[지] 그렇다고 전적으로 플라톤 철학의 잘못으로 돌릴수는 없잖습니까 장례식이 화려한 것을 보면 망한것도 아니잖습니까!
[교수] 무엇인가 독자적인 자기 의견을 갖는다는거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파멸될수 있는 겁니다
(지성 뒷걸음 치고 초조한듯이 무대를 빙글빙글 돌며 고민한다)
[교수] 에라스무스를 보십시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그의 철학도 결국은 사생아 였습니다 불행이도 그는 구교와 신교가 한참 싸움판을 벌일때 명성을 누렸거든요 에라스무스는 처음엔 양쪽에서 다 사랑을 받았고 그때문에 양쪽에서 결국은 다 미움을 받았지뇨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이름을 도용해서 자기 편인듯이 꾸몄고 법황청에서는 그가 루터를 비난할것을 요구 했어요 논문을 쓰라고 했읍니다. 에라스무스는 이렇게 말했지요 "나는 이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 나는 공부를 하고 싶다" 그의 독자성 때문에 파리에서 0 0 로에서 로 떠돌아 다녀야 했어요 모든 지식이 구교와 신교의 두파로 갈라져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에라스무스는 혼자 우뚝 서서 제를 지키려 했지만---그건 정말 외로운 길이었답니다.-아 제말을 들으시지 않는군--- 역시 그런 일에는 흥미가 없으시군 어쨌던 그는 바젤에서 죽었읍니다. 초라한 죽음이었지요.
[지] 에라스무스를 선전해서 저에게 그 지식을 팔아보려고 하십니다마는 전 지금 플라톤 밖에 아무것도 생각할수가 없어요
[교수] 천만에요. 그럴리가 있겠어요. 난 에라스무스를 사랑합니다. 에라스무스 그것은 바로 나입니다. 라틴어를 사랑합니다. 라틴어가 요즈음엔 그렇게 위안이 될수가 없군요. 아! 죽어버린말! 공룡같이 화석만 남은 말. 라틴어에서 나는 내무덤을 생각합니다. 그건 내 무덤이요 안식처이지요.
[지] 한때는 저주하시지 않았읍니까
[교수] 내아내의 사랑에 잠시 물든것 뿐이지요 그 노력으로 영어를 했더라면 지금쯤 출세를 했을 것이구 최소한 입시반 애들을 놓고 개인교수라도 했을것 아니냐는 거예요
[지] 그렇지요. 요즈음 입시반 학원 선생들은 자가용을 굴린답니다.
[교수] (한숨을 쉰다) 어째서 오늘은 이가게가 이렇게 텅 비었지요? (두사람 사방을 둘러본다) 혹시 이뎀 페르뎀이란 말을 아시오
[지] 글쎄요 누가 한 소린가요
[교수] 오늘이 똑같은 오늘이 반복되고 있다는 라틴어지요 허허 허허
[지] 이뎀 페르뎀, 이뎀 허허허(허탈하게 마주보고 웃는다)
[교수] 에라스무스가 죽을때 처음엔 주여!라고 라틴말로 불렀읍니다. 그러나 마지막 숨이 넘어갈땐 뭐라고 한줄 아십니까> 그건 라틴어가 아니었지요 조국의 말 세살때 배운말---화란말로 주여---라고 불렀읍니다.유럽을 들었다 놓은 이 대학자의 마지막 소원은 내고향의 포도주를 마시고 싶다는 것이었지요 어떤 진리도 살아있는 그의 목을 시원하게 적셔주지 못했나 봅니다. 고향의 포도주 만큼은---
[지] 장례식을 다녀 오시더니 매우 감상적이 된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식인은 감상에 젖어서는 안됩니다. "낡은 슬픔 위에 새로운 눈물을 흘려서는 안된다" 에우리 피데스의 충고지요
[교수] 이뎀 페르뎀 이뎀--- 자 갈랍니다. 먼지 냄새를 맡게 해줘 고맙습니다
[지] 천만에요 얼마던지 맡으십시요 저도 선생님걸 맡았는걸요 이뎀 페르뎀 이뎀
[교수] 메맨토 모리
[지] 메맨토 모리 그건 또 뭡니까?
[교수]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말이지요 작별 인사말로 쓰였던 적도 있지요
(텅빈 무대가 지성 혼자 왔다 갔다 한다 허몽녀가 꿈을 팔던 카운터에 가서 서본다)
[지] 몽녀---텅 비어있군---이자리에 바로 이자리에 파랗고 빨갛고하얀 꿈들이 떠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군---갑자기 갑자기 몽녀 생각이나 지금 어느 거리에서 웃고 있는거야 어디서 찬비를 맞고 있는거야 어디서 너는 술레가 되어 꼭꼭 숨은 머리카락과 발뒷꿈치를 찾고 다니는 거야---내가 오늘 왜 이러지. 이상하다 메맨토. 모리--- 미스김은 왜이렇게 늦게 오는지 모르겠네---응 나좀 보게 왜 내가 미스.김을 기다리는거야. 우린 서로가 아무 볼일도 없잖어? 아냐.그런데도 기다려지는군.볼일도 없으면서 왜 미스.김이 기다려 지는가? 습관일까? 허전해 왜 이렇게 허전할까?플라톤 선생님 에라스무스 선생님---왜 나는 이렇게 허전하지요? 왜 까닭없이 미스.김을 기다리지요 파스칼 선생님 키에르케골 선생님 칸트 선생님! 왜 나는 지금 혼자이지요 (미스.김 사과를 사들고 들어온다) 미스.김 왜 이제 왔어?
(반색을 한다. 너무 반가워 하니까 미스.김 어리둥절하다)
[김] 절 기다렸다니요. 뭐 시간이라도 팔러온 사람이 있었나요
[지] 아니---그냥 글쎄 뭐랄까---매먼토 모리 이뎀 페르뎀 이뎀
[김] 그게 무슨 소리에요
[지] 아..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김] 신수입된 식인가요
[지] 아---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의자에 털석 주저 앉는다)
[김] 피곤해 보이네요 우리 사과 먹어요
(사과를 접시에 담고 칼로 그중 한 사과를 깎기 시작한다. 조명을 받으며
번쩍이는 칼 빨간 사과 껍질이 끊기지 않고 점점 길게 늘어진다)
[지] 냄새가 향기로워---(코를 갖다댄다) 사과 향기인가? 미스.김 몸에서 나는 향긴가?
[김] 맞쳐봐요 누구 향긴가?
[지] 난 먼지냄새, 곰팡 냄새만 맡으며 살아와서 코가 마비된 것 같애. 그러나 이 향기는 분명히 기억할 수 있어--아물아물 하지만--파란 초원의 냄새,아니 바다 냄새일까---바람이 불어오고 있어-- 모든게 떨리구 있군--아! 이 향내 이건 사과에서 풍기는 향내가 아닐꺼야
[김] 어렸을때 사과를 깎다가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었어요 투박하게 볼품없이 깎었지요 어머니가 그러시드군요 얘야 계집애가 그래가지고 어떻게 시집을 가겠니---어머니 말이 옳아요 난 사과깎는 것이 서툴거든요 그래서 시짐을 못간 거지요
[지] 난 어렸을때 사과를 깎지 않고 껍질채 깨물어 먹었지
[김] 우리도 그렇게 먹을까요
[지] 그래. 그것이 좋겠어 깎지말고 그냥 먹자구
(둘은 사과를 옷에 문지르며 깨물어 먹는다 서로 보고 웃는다)
[지] 그래 이맛이야 껍질을 지 않고 먹는것 칼로 도막내지 않고 송두리채 먹는것---이제야 알겠다고---이 냄새를 말야 지식은 이성의 칼날로 늘 껍질을 고 토막을 내고 씨를 도려내지--- 거기에선 이런 향내가 나지 않어
[김] (갑작이 사과를 떨어 뜨리고 졸도를 한다 지 황급히 끌어 안는다)
[지] 이봐요 정신차려, 장난하는거지? 놀라게 하지말라구
[김] (지의 팔에 안겼다가 겨우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다) 선생님 고마워요 제시간이 되었나봐요. 발자욱소리가 이번엔 아주 가까운데서 났어요 골목을 돌아 오고 있어요
[지] 그게 무슨 소리야 손님은 오지않았어 팔 시간도 없는데 왜 손님 발자욱 소리에 신경을 쓰는거야
[김] 아녜요 손님의 발자욱 소리가 아니라 나 부탁이 있어요
[지] 약을 사가지고 올까?
[김] 왜 저한테 그렇게 친절하시지요 저는 선생님의 라이벌이잖아요?
[지]무슨 소리! 라이벌이라니! 난 아까 몽녀가 서있는 자리를 보고 하마트면 눈물을 흘릴뻔했다오 (빈 카운터를 쓸쓸하게 두사람 - 쳐다본다)
[김] 내가 찾는건 약이 아니예요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초연해질수 있을까요. 그냥 잠자듯이 조용히 죽음을 맞이할수 있는 그런 지식 그런 사상이 좀 없나요 돈은 얼마던지 있어요. 그런 지식이 있으면 저에게 팔아요
[지] (자기 카운터로 가서 물끄러미 철학자들의 가면을 쳐다본다. 고개를 흔든다) 그런 사상은 없어 죽음을 이길만한 지식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걸! 소크라테스, 예수 이런분들이 죽음 앞에서 초연했지만 실은 예수님도 죽음 앞에서는 핏땀을 흘렸구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의 손은 떨렸었지 엘리 엘리 라마사 막다니 주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도 그렇게 외쳤어요 소크라테스는 죽기전에 외상 닭 걱정을 했다고 했지 태연한채 할려구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구 외상값 진걸 생각했을거야 그런데 그걸 왜 찾지
[김] 제 시간이 다 된거예요
[지] 시간이 다 되다니 젊은 처녀가 무슨 소리야---
[김] 비밀이었지만요 요 며칠동안 전 제 시간을 모두 판거예요. 시간을 내놓으려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할수없이 마지막엔 제 시간을 사십년동안의 그 시간을 죄다 판거예요 저도 몰랐어요 오늘은 쥐어짜려고 해도 시간이 안나와요 제 일생의 시간을 다 판거지요
[지] (소리를 버럭 지른다) 무슨 소리야 시간을 팔아서 돈을 만들다니--- 안돼 절대로 안돼 죽어서는 안돼
[김] 왜 그렇게 큰 소리로 외치세요 제가 죽든말든 선생님에겐 아무 관계없는 일이 아니잖아요
[지] 안돼 절대로 죽어선 안돼 난 미스.김을 사랑하고 있단 말야
[김] 어머나---저를 사랑한다니요
[지] 난 지금 당장 결혼하겠어 사과깎는것이 서툴러도 좋다구 당신이 죽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갑작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았단 말야
[김] 웃읍네요 참 웃읍네요 왜 좀 일찌기 말씀해 주시지 않았어요. 이젠 너무 늦었어요 제가 원한건 사실 돈이 아니었어요
[지] 바보 바보 우린 지금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라구---어디 좀 보자구---(김의 얼굴을 두손으로 치켜올린다)눈---코---입---뾰족한 턱 어디 좀 보자구---오늘 처음 만난사람 같어
[김] 동정하시는군요---국민학교 운동회때였어요 밤 줏기 알아요?
[지] 응 알구말구 만국기가 바람에 날리구 행진곡 소리---상품으로 받은 하얀 공책--- 다친 사람에게 발라주는 머큐럼, 간호선생의 팔에 찬 적십 자 마아크--- 기억하고 있어---우리들의 운동회---
[김] 밤 줏기에 나갔어요 난 밤을 싫어 하는데 다른 사람이 뛰어가서 밤을 줏으니까 나도 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줏었지요. 치마 가득히---그것 뿐예요 내가 정말 원한건 돈이 아니었어요. 조금만 일찍 말씀해 주셨더라면 우린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지] 아니야 당신은 죽지 않어 이런 때 몽녀가 있었더라면 사랑의 꿈을 사서 둘이 나눠 갖는건데---우리두요 우리두 샀을거예요 (빈 카운터를 쳐다본다) [김] 걔는 너무 일찍 포기했어요, 좀더 기다렸더라면 꿈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을텐데--- 우리두요 우리두 샀을거예요 (빈 카운터를 쳐다본다)
[지] 가까이 오라구(끌어안는다) 이렇게 영원히 마주 보고 있는거야 두개의 동상처럼 내시간이 있으니까 걱정할것 없어 같이 나누자구 똑같이 말야
[김] 아녜요 너무 늦었어요 나를 향해 걸어오는 발자욱 소리가 이젠 아주 가까이에서 들려요 무서워요!
[지] 나를 꼭 잡아
[김] 감사해요. 이젠 죽음앞에서도 태연해 질것같애---아! 내가 판 그많은 시간! 그 시간이 여기 있었더라면--- 몇분 안 남았어요 저 발자욱 소리가 계단을 올라와 이젠 이 복도 앞에까지 왔어요 (뚜벅 뚜벅 뚜벅 발자욱 소리가 들리며 서막 세일즈맨을 훈련시키던 조련사가
까만 연미복에 하얀 장갑 장의사 차림으로 가죽 채찍을 올리면서 나타난다)
[수련사] 김! 시! 희!---주민등록번호 110-136-70628
[지] 당신은 뭐야 누구야
[김] 예 제가 이곳에 있습니다 110-136-70628
[수련사] (가죽 채찍을 울린다) 당신의 역할은 끝났어--- 시간이 다 되었는데 왜 꾸물거리고 있는거야!
[김] 예- 알고 있어요 (수련사가 손을 내밀자---김시희도 손을 내민다.손가락 끝을 맞댄다)
[지] (그 손가락을 떼놓으려고 애를 쓴다)
[수련사] (가죽채찍으로 지를 친다. 지 쓰러진다. 손끝으로 김시희를 끌어간다. 시희 끌려가면서 서서히 퇴장)
[김] 한번만 저분 얼굴을 보게 해주세요
[수련사] 뒤돌아다 보지 말아 시간은 뒤로 갈수가 없다
[김] 한번만요 한번만요 (둘다 퇴장 수련사의 소리만 들린다)
[수련사] (가죽 채찍을 올린다) 삼초 이초 일초 제로
(빵 총소리가 나며 로케트 발사하는 소리)
[지] (놀래어 일어난다 텅 비어 있다) 미스.김--- 시희 시희 어디 있어(사방을 찾아 다닌다) 데멘토모리---데멘토모리---아니야 아니야 (귀를 막고 빈 카운터를 쳐다본다 환상이 어린다. 후막이 열리면 소리없이 나폴레옹이 제스츄어로 핏대를 올리며 불가능이 없다고 외치며 브이자를 손가락으로 그린다. 북치는 소녀들이 제스츄어로만 북을 치며 지나간다 꿈을 파는 몽녀가 풍선을 들고 미친듯이 웃고 잇는 목집 시희가 오색테이프를 뿌리며 시간을 사라고 외친다. 모두 소리없이 묵곡으로 이 환상장면이 어린다 불꺼지고 후면 무대 다시 어두워진다. 지는 천천히 일어난다)
[지] 꿈은 미쳤고 시간은 자살을 했다 어째서 지식만이 혼자 남아서 이 고통의 목격자가 되어야 하는가?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질기게 혼자 남아 있는가? 살아 남아서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가 (금일 품절 사례라고 쓴 김시희 카운터의 팻말에 "바겐 세일-천 원 균일"이라고 쓰고 자기 카운터에 갖다 논다. 그리고 관객석을 향해서 외친다)
[지성] 대매출이요 대매출---천 원균일 골라잡아 천 원이요---소크라테스도 천 원 칸트도 천 원 니이체도 베르그송도 싸르트르도 레비스트로스도 몽땅 천 원이요 천 원---흥 아무도 대답이 없군 여러분 백원이면 어떨까요. 몽땅 쓸어서 백원입니다. 단돈 백원입니다. 그래도 안사시 겠오 십 원-그냥 십 원이요 십 원이라도 안사 겠오 내 거져 드리리다---공짜요---아무 대답도 안 하시는군--당연하지요 당연하고 당연하지요 좋습니다 당신들이 사지 않으면 내가 꺼꾸로 사겠오 누구 진짜 철학 진짜 지식 가진 분들 업으십니까 만원 드리리다 이런 너저분한 것들 말고 진짜 지식 말예요 사과 향내같은 사상말이요 껍질채 통채로 먹는 겨울의 언사과 겨울의 언사과 맛 같은 지식 누구 안가지고 계시요 미친 몽녀를 다시 깨우고 시희를 내게 되돌려 줄수 있는 그런 사상 없으신가요 좋소. 십만원 드리리다 백만원이요---천만원--일억원--백억--(점점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친다) (무대 어두워 지면 가면의 눈에 칠한 형광도료만이 암흑속에서 번쩍인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눈들---막 서서히 내려온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