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야! …, 헌 이빨 줄게 …,
신가균(申可均)
바늘로 후비듯 아파 밤잠을 설치고 있다. 이따금 아프다가 낫곤 하던 치아가 이 오밤중에 되게 도졌다. 하필 치과 문을 닫은 이 밤중에 이앓이가 덧나 죽은 맛이다. 부루퉁한 아랫볼을 싸쥔 나는 치과 문 열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일각이 여삼추다. 몹시 아파서 쩔쩔매는 이때 벽시계 초침(秒의針)소리가 이상하다. 장난인지 나를 약 올리는 건지. “…, 짜ㄹ∼ 까∼ 다ㄱ∼,” “짜ㄹ∼ 까∼다∼ㄱ∼, …,” 저리 초침이 뒷짐 쥐고 천천히 가는데 내 속이 까맣게 탔다.
초침이 저처럼 늦장이니 오늘 밤에 길이가 네댓 뼘쯤 길어져 그만큼 해도 더디게 뜨지 싶다. 해가 높다랄 때 치과엘 들어섰다. 엑스선사진을 보는 치과 선생이 염증이 심하니 뽑으세요.” 하였다. 내 입으로 뽑으라고 할 수 없는 딱한 사연이 있다. 나 열 살 남짓부터 입때까지 이 몸을 바라지 해온 금쪽같은 이를 빼기가 죄스러워서다.
빼랄 수도 말랄 수도 없어 참 난감하다. 그렇다고 아픈 이를 그냥 놔둔다고 쾌차(快差)할 가망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옛말에 ‘앓던 이 빠진 것 같다.’는 말이 있듯 뽑으면 시원한 걸 겪어봐서 안다. 입안에서 ‘사각사각’ 연장 다루는 소리가 나더니만 잇몸이 섬뜩하였다. “발치 잘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의 말이다.
지금 뽑은 이는 물론 모든 치아는 온갖 곡식을 잘게 부수는 맷돌․ 절구통과 비교 할 수 없게 귀하다. 그처럼 힘든 일을 도맡았다가 탈이 났으니 억울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 이치는 오묘하고 심오하다. 몸으로 들어온 양분(養分)이 근력, 손톱, 치아 …,로 생성(生成)과 소멸(消滅)은 피할 수 없는 섭리(攝理)이다.
어쩔 수 없이 뺀 어금니를 헌신짝 버리듯 푸대접 할 수는 없다. 연(緣)이 끊겼어도 예(禮)를 다 할 것이다. 옛적부터 빠진 이의 묏자리는 초가지붕이었다. 내가 어리던 때 대여섯 살배기들은 빠진 젖니를 들고 ‘까치야! 까치야! …,’ 을 외치면서 이엉지붕 위로 던졌었다.
그러한 유습(遺習)대로 지금 뽑은 어금니의 명당(明堂)인 이엉지붕으로 던져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만만찮다. 내가 코흘리개 때는 큰댁도 우리 집도 칠성이 …,네도 초가지붕이었다. 한데 요즈음 눈을 씻고 봐도 초가지붕이 보이질 않는다. 안 보인다고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 거기로 가자.’ ‘하나바지(할아버지) 할렴(할머니) 엄머이’라고 시골말을 쓰는 황해도. 여름 한낮에는 “꾀꼴∼ 꾀골 …, 뻐꾹∼ 뻐꾹…, 소리가 온종일 메아리치던 곳. 어스름 녘이면 하얀 박꽃이 흐드러지고 초롱초롱한 샛별들과 반딧불이가 어울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 놀이로 긴긴밤을 하얗게 새우던 마을.
그러저러한 나의 과거가 눈에 밟혔다. 칠십여 년 전 어느 해 늦가을에다. 눈썹달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깜깜한 밤에 이불과 솥단지를 짊어진 부모님 따라 월남하였다. 고양이 걸음으로 떠나온 우리 고향은 경의선(京義線) 철마를 타고 휴전선 넘어 개성을 지나 어느 무슨 …, 역 다음, 남천(南川)역에서 가깝다는 어른들 말씀이었다.
어르신의 말씀대로 경의선 …, 어디의 남천(南川)행 기차표 파는 곳을 찾아 나섰다. 모든 게 죄다 있다는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으나 허탕이었다. 발품 팔아 종로통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남천행 기차표 파는 곳이 어디 있더냐.’고 물어본들 아는 사람이 없지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허리가 잘리기 전에 서울역에서 ‘칙칙∼ 푹푹∼’을 타고 신촌, …, 문산, …,개성, …, 어디 어디를 지나의 남천역쯤은 눈을 감고 뜨르르 꿰뚫을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했을 옛날을 떠올릴 때였다. 느닷없이 하품과 함께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고개가 꾸뻑거려질 때다. ‘이게 웬일이고 어찌 된 일이냐.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칠십 늙마인 내가 예닐곱 살 코흘리개가 되어 휴전선 넘어 북녘. 내가 태어난 우리 옛집에 당도하였다. “아바지 엄머이” 사투리에 개구멍바지 차림에 소꿉질하는 언놈과 언년들 …, 반짇고리 앞에 엄머이가 옷 솔기에 인두질 …, 내 어릴 때 모습 그대로다.
옳다구나! 이때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빨 줄게 새 이빨 다오!’ 라고 외치면서 손에든 이를 세게 지붕으로 던졌다. 힘껏 던진 이가 갑자기 큰 돌로 변하여 땅으로 떨어졌다. 그 무거운 돌을 되 올리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가위에 눌려 허둥지둥할 때였다. “모쓰는 텔레비 …,∼컴푸타 삽니다.” 고물장수 확성기 소리에 잠이 깼다. 뜻하지 않은 쪽잠 꿈에 오매불망하던 고향에 잘 다녀왔다.
이 육신(肉身)보다 먼저 저승으로 간 ‘어금니야’ 원통해 마라. 이 세상의 어떤 생명도 비킬 수 없는 게 죽음이지 않더냐. 이 몸과 한 상여(喪輿)를 탔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원고지 13.1장
.2015. 7. .2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까치에게 새이빨달라고 하는군요.ㅎㅎ
헌데, 치과가 맞는건지 아니면 칫과가 맞는건지?
요즘 많은 단어에 사잇 시옷을 사용해서..
치과가 맞네요.
사전에 <칫과>라고 치면 '치과'로 수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