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호 인터뷰기사
디딤무용단 단장 국수호가 없는 한국무용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 무용의 현주소는 그가 이룬 전통의 계승, 복원, 재창조의 작업에 견인된 듯 따라 움직여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5년 광복40주년 공연 <북의 대합주>, 1988년 올림픽 개회식 공연 <화합>을 비롯, 1992년 볼쇼이극장에서 공연된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1994년 춤극 <명성황후>, 1999년 문화상품 수출1호라 불리는 북춤 <코리안드럼>의 유럽 순회공연, 그리고 최근의 베이징올림픽 문화행사에 초청된 <천무>에 이르기까지 국수호 단장의 놀라운 업적과 예술성은 드라마틱한 그의 성장기에서 필연과 운명으로 예고되었다.
"중학생 시절 브라스밴드에서 3년간 큰 북을 쳤어요. 감수성이 예민했던 때에 음악이라는 장르를 통해 예술과 관련된 감성이 눈을 뜨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전주농고 토목과에 진학한 바람에 거리와 공간에 대한 개념을 익히게 되었는데, 농악반 활동도 함께 하면서 악기와 춤과 소리를 두루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네 전통문화는 가무가 항상 함께 합니다. 춤만 추거나 노래만 부르지 않아요. 함께 하면서 무엇을 주로 하느냐에 따라 가무가 나뉠 뿐입니다. 그때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서라벌예대 무용과를 진학해서 정말 죽어라 춤만 췄습니다. 장학금을 받아야 학교를 다닐 수 있었거든요(웃음).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1960년대)는 더 어려웠어요. 예술만 하면서 먹고 산다는 것이 말입니다.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왔더니 국립무용단이 생겨났어요. 월급을 주는!(웃음) 그래서 국립무용단에 들어갔고요, 공부도 계속 해야겠다 생각해서 중앙대 3학년에 진학했습니다. 전공은 연극영화학으로 선택했는데요, 앞으로 춤은 드라마가 있는 연극적 춤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 예상은 자신의 예술적 사명이 되어 '춤극'이라 스스로 명명한 공연을 처음 시도하게 되고, 이제 '춤극'은 '무용극'과 별개로 인정받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국수호 단장이 연출한 공연들은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남다른 무대감각과 음악의 사용이다. 그는 춤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선험적으로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춤을 추는 것 자체가 제게는 화두였어요. 춤을 추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지요. 그것이 세상에 필요한 춤이 무엇인지를 찾는 과정이 되었던 것 같아요. 내 이름 하나 높이겠다고 춤 출 수는 없습니다. 많은 선생님들로부터 배웠고, 또 많은 관객들께서 보러 와 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작품으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명작 예술은 세련되고, 역사적으로 평가되는 작품의 주제가 있고, 아름답거나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런 특징을 지니면서 세상에 보탬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어 보려 한 것이 북춤, 신라춤, 백제춤, 그리고 고구려춤과 춤극 등의 공연을 하게 된 이유 같아요."
국수호 단장의 작품은 춤의 영역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진정한 답안을 보여준다. 가무가 어우러진 우리 문화의 현대적 계승은 뜻하지 않게 범세계적인 흐름의 정수를 꿰뚫었던 것이다.
"춤은 단순히 몸짓만이 아니에요. 춤에 나오는 복식과 음악에는 당시의 문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춤은 정말 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말로 설명하지 않지만 더 많은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번에 공연되는 <사도>(8/22~24,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이 자기 아들을 죽인 참사는 셰익스피어 비극에도 없습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뒤주에 가둬 죽일 수 있는 것이 바로 권력구조입니다. 현대의 인간성 상실에 대한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시간20분 동안 4명의 현대 무용수가 무대에서 쉼없이 춤을 추면서 그 갈등과 고통을 연기하는데요, 2대의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영혼의 소리가 함께 음악으로 어우러져 두 시간 동안 끊이지 않고 연주됩니다. 배우나 뮤지션들 모두 거품 물고 연습하는 중이에요.(웃음)"
"무용을 여흥으로만 보려 하면 실패합니다. 옛날과 다르게 지금의 춤은 작품으로 올려집니다. 춤을 더욱 즐기고 싶다면 스터디를 좀 하셔야 합니다. 봐서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감흥에 그치고 만다면 자신에게 큰 양식이 되지 않습니다. 작품을 볼 때는 그 사람에 대해 공부를 해서 알고 가야 합니다. 그랬을 때 만든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에게 더욱 만족스럽고 가슴에 남는 공연이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먼 훗날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로 평가될 누군가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국수호 단장이 그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가 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귀명창이 아닌 탓에 그와 그의 작품을 몰라 보고 지나친다면, 훗날 동시대의 관객이었다는 사실에 일말의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지 않을까. 지금 이 땅에는 또 얼마나 많은 예술가와 작품이 자신을 알아 줄 귀명창을 기다리며 탄생을 준비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