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어느 날, 나는 음주운전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정까지 실컷 마셔 볼 작정을 하고 있었다. 친정에 다니러 간다는 아내에게 승용차의 키를 넘겨준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술이라면 애인보다 좋다던 김과 류, 그리고 한과 송조차도 생맥주 오백에 그만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말로야 더위 때문이라 했다. 초복을 갓 넘긴 여름은 장마가 끝난 일주일 전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도시를 달구었고, 그 더위 속에서 땀 뻘뻘 흘리며 술을 마시느니 일찌감치 돌아가 샤워나 하고 시원하게 수박이나 먹겠다는. 맨처음 그 말을 꺼낸 사람은 결혼한지 삼 년 되는 신출내기 가장 류였는데 류는 이제 서른으로 갓 진입한 세대답게 평소에도 싫은 술자리를 오래 끌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를 빈정거릴 마음은 없지만 요즘은 류같은 사람이 오히려 여러 사람에게서 추켜세워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내키지 않는 술자리에서도 끝까지 술잔을 받아야만 사회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둥, 삼차쯤에는 외상을 긋더라도 자기가 돈을 치러야 따돌림당하지 않는다는 둥의 시중 관습이 서서히 먹혀 들어가지 않는 분위기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내 나이 마흔.
류는 자기의 의견에 합세한 김과 박, 그리고 한을 앞세워 오백들이 컵이 비기가 바쁘게 자기들 몫의 계산도 치르지 않고는 생맥주 집을 나가 버렸는데, 송만이 어정쩡하니 남아 내 눈치를 살폈다. 송은 류보다 세 살 정도밖에 많지 않았으나 무슨 영문인지 남들 다 굴리는 차 한 대 장만하지 않고 궁상을 떨며 아침저녁으로 내 차에 편승해 다니는 친구였다. 송이 다른 사람처럼 쉽게 달아나지를 못하고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척 한 것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매일 아침저녁으로 함께 다니는 송과는 두 집안에서 일어나는 미주알고주알까지 서로 낱낱이 알고 있는 처지라서 둘이서 술까지 마셔대기에는 부담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모처럼 진탕 취해 보고 싶은 내 마음은 이것저것 가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송은 곧 자기도 약속이 있다면서 자리를 털었다. 그런 송의 염치없는 배신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도 않아서 나 역시 처가에 들러야 한다며 어물쩍 둘러대었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갈 궁리만 하고 있는데 무턱대고 붙잡고 늘어진다는 것도 요즘 세상에서는 조금 바보스럽고 진보적이지 못한 사고를 가진 인물로 치부당하는 것이었다. 내가 싫으면 이제 그만, 하고 말할 수 있는 류와 비슷한 세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내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들어야 할 송에게 나는 딱 한 잔만 더 하자는 명령을 감히 내리지 못했다.
처가에 간다고 핑계를 댄 것이 조금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이 혼자 남겨져야 하는 위기를 그렇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처가야 아내가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으니 나까지 합세할 필요가 무어 있겠는가. 처가에서 필요한 사람은 그다지 곰살맞지도 않은 사위가 아니라 여기저기 아픈 데를 긁어주는 아내였고, 나 또한 장모의 억지 섞인 호들갑 대우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남몰래 숨겨 둔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동안 적조했던 친구에게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나오라고 할 수도 없었다. 저녁 아홉 시 무렵의 내 또래 친구들은 지금 저마다의 일로 어느 술자리에 앉아 있거나 집에 곱게 들어가 쉬고 있을 시간이었다. 결국 집에 가서 샤워하고 잠이나 자자고 결심하고 지하도로 내려섰을 때는 어쩐지 이 사회가 나를 따돌리고 저들끼리 어울려 시끌벅적 잘도 떠들어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 동료를 잃고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참으로 쓸쓸한 일이었다. 술이라는 게 원래 혼자서는 맛이 없고 친구 좋아 시작해 친구 좋아 끝까지 가게 되는 것이었다. 특히나 취미라곤 술 마시는 것 밖에 없는 나같은 인간이 일찌감치 중간에서 술자리를 끝낸다는 건 마치 볼일을 보고 뒤를 닦지 않은 것처럼 꺼림찍했다. 류가 들으면 펄쩍 뛸 일이겠지만 질펀하게 취기가 오를 때까지 마신 뒤 이런저런 허풍이라도 실컷 떠들어야 비싼 월급 털어 술 마신 보상을 받는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족속에 나는 속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평소 유감이 많던 상관에 대한 험담이라든지, 자영업하는 누구는 벌써 빌딩을 올렸다더라든지, 자식놈에게 그놈의 과외라는 걸 유치원 때부터 죽어라고 시켜 봤자 결국 요모양 요꼴의 월급쟁이밖에 안 될 터수면 애시당초 대학은 접어 두는 게 낫겠다든지 하는 등등 소시민적 열등감을 터뜨려 볼 기회라는 게 술자리가 아니면 어디 당키나 하던가. 집에 돌아가면 언제나 똑같은 수입에 볼이 부은 아내의 얼굴 앞에서 풀이 죽어야 하는 만년 월급쟁이에, 출근이라고 하면 배경 좋고 약삭빨라 늘상 겁나기만 하는 쟁쟁한 선후배의 얼굴들에 쓴입맛을 다셔야 하는 처지에서는.
긴 여름 해가 빼꼭히 들어찬 빌딩들 사이에 남아 있던 빛부스러기까지 죄다 거두어들인 시각, 저녁 네온사인이 한창 제 빛을 발할 때쯤이니 그때가 아홉 시는 되었으리라. 지하도를 건너 택시 승강장에 멈춰서 보니 윗저고리를 벗어 들거나 아예 입지 않은 퇴근 인파들이 버스와 택시 승강장에 몰려 있고, 더러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바쁘게 계단을 내려가기도 했다. 내 집은 중앙동에서 지하철을 타고 동래에서 내린 뒤 버스로 여남은 구역은 더 가야 하는 재송동이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면서까지 헐떡이며 가야 할 길고 무거운 거리였다. 퇴근 시간 중앙로를 통과해 재송동까지 가려면 아무리 택시를 탄다 해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밀려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진 나는 서둘러 택시를 잡을 생각도 않고 그냥 승강장에 서 있었다. 그 시각 도심의 택시 승강장에 얌전히 서 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잘 알 것이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 이 도시에 적응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광고를 하는 일과 마찬가지였다. 택시를 잡기 위해서는 도로에 내려서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도 부족했다. 다가오는 택시를 향해 닥치는 대로 소리쳐 방향을 대고 적당히 합승을 하거나, 승강장 못미처 진입하는 빈 택시가 속력을 늦추는 지점에 가서 무조건 올라타고 봐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내가 별로 안달부리지 않으니 내 앞에는 빈차는커녕 합승하라고 권하는 택시조차 아예 다가오지 않았다.
얼마 동안이나 서 있었을까. 택시 승강장에서 십여 미터 떨어져 있는 지하도에서 천천히 올라오는 사람 하나가 내 눈에 잡혔다. 길다랗게 어깨까지 흘러내린 머리하며 여름 한중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걸쳐 입은 두툼한 점퍼 때문이었을까. 한 걸음씩 다가오는 사내의 모습은 점차 뚜렷하게 망막에 새겨졌다. 새까만 비닐 가방을 들고 점퍼 못지 않게 두툼한 바지 아래로 짝이 맞지 않는 운동화를 신고 태연히 택시 승강장으로 다가온 사내는 다짜고짜 내 발아래 풀썩 주저앉았다. 희미한 불빛에서도 선연히 감지되는 시꺼멓게 그을린 얼굴, 게다가 가끔 불어 주는 바람이 내게 전해주는 사내의 시큼하고도 고약한 냄새. 너저분하기가 마치 관 뚜껑을 열고 막 빠져나온 강시같은 차림을 하고서 도시의 이곳 저곳을 정처없이 방황하다 내 앞에 도착한 부랑자. 나는 무의식중에 눈길을 돌려버렸다. 사내가 거기 주저앉은 것은 상관할 바 아니었다. 지하철 역 어딘가를 헤매고 다니다 왔거나, 건너편 사무실 골목을 돌아다니다 왔거나간에, 부랑자들은 흔히 그렇듯이 자기가 앉고 싶으면 앉고 드러눕고 싶으면 어디든지 드러누울 수 있었다. 시 당국에서는 부랑자들이 눈에 띄는 대로 수용 시설로 이송을 하지만 원래 그런 미치광이는 한 곳에 눌러 붙어 있지를 못한다고 공무원으로 있는 친구가 해 준 말이 생각났다. 몽유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어느 순간에라도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허위허위 걸어가게 되는 미치광이는 수용을 해 놓아도 다시 달아나기 마련이라고 친구는 그랬었다. 결국 공무원 친구의 말은 부랑자란 것은 남에게 해코지를 하지만 않는다면 도시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가끔 존재해도 괜찮은 그런 존재라는 것이었다. 남을 해롭게 하지 않으면서 제멋대로 흘러다니는 사람이야 경계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더구나 저 혼자 꿈꾸고 저 혼자 하늘과 통하는 듯 중얼거리면서 자동차가 서로 부딪히든 사람이 목숨을 잃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 세상이 이렇게 험하고 복잡하다고 설명하는 일은 사실 불필요한 짓거리기도 했다.
사내도 그런 미치광이 부랑자였다. 후덥지근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남자의 발치에 앉아, 많은 사람들이 집이라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타기 위해 아우성인 따위는 도무지 자기와 상관없다는 듯이 차도를 향해 무연한 눈길을 주고 있었으니까. 헤드라이트를 켜고 바쁘게 달려가거나 경적을 울려대는 자동차들의 모습이 마치 화려한 우주의 불꽃 쇼를 보는 것처럼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나는 선뜻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미친 사내에게 조금 호기심이 동했다. 그처럼 더운 날씨에 점퍼며 두터운 바지를 껴입고도 땀 한 줄기 흘리지 않는 것도 이상하거니와, 도대체 이 혼란하고 복잡한 도시에서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잠을 자며 생명을 유지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 나의 호기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내는 그냥 앉아 있었는데, 한참 사내를 바라보고 있자니 기묘하게도 내 마음속에서는 엉뚱한 생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불쑥불쑥 치솟는 어떤 충동 같은 것이었다. 이를테면 이제야 간신히 나를 부장에 올려놓은 직장의 인사 정책에 대한 불만이라든가, 우리 집과 비교해 보면 그다지 내세울 게 없기는 피차일반인데도 걸핏하면 친정이 어쩌고저쩌고 들까부는 아내에 대한 냉소, 또는 제수씨가 경영하는 학원이 호황을 누리는 바람에 덩달아 기세등등해져 형님 알기를 우습게 아는 동생에 대한 연민, 그리고 이제 막 중학교 이 학년인 주제에 버젓이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타나는 아들 녀석에 대한 질투심 등, 그때까지 내가 가타부타할 수 없었던 세상을 향해 한 마디를 툭 던지고 싶은 충동이 미친 사내를 보고 있는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마음속에서 일어난 충동은 곧 밖으로 터져나왔다. 나는 질주하는 차량과 바쁘게 서성대는 사람들을 한 번 휘둘러보고는 쭈그리고 앉아 움직이지 않는 시꺼멓게 때절은 사내를 향해 말했다.
"팔자가 늘어졌군 그래!"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넋을 놓고 앉아 있던 미치광이 사내가 내 말이 떨어지는 순간 고개를 돌려 빠안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길게 자란 수염과 그을리고 때묻은 얼굴에는 자동차의 불빛이 짙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내 눈길이 사내와 마주쳤다. 사내가 히죽 웃었다. 나는 당황했다. 그 웃음은 마치 혼자만이 알고 있는 어떤 비밀을 나에게 털어놓아 주겠다는 듯이 은근한, 또는 아하 가소로운 인간아 생의 진실은 저기 있어 하고 남모르게 속삭이는 듯한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자 뒷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 아찔했다. 사내는 하관이 좁고 콧날이 낮았지만 예의 그 웃음에서 나는 부리부리한 눈을 한 또다른 사내 하종두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이다. 지금은 결혼해서 각자 떨어져 살고 있지만 한 자리에 모아 놓기만 하면 금방 한 핏줄 한 형제임을 알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끈끈함이 그동안 묻어둔 기억을 끄집어냈다. 다른 사람이야 먹고사느라 죽어라 사무실에서 치질이 걸리도록 엉덩이를 눌러 붙이든지 말든지, 다른 사람이야 세상이 흐르는 걸 붙잡아 보려고 허공을 향해 손을 뻗고 온갖 발광을 하든지 말든지 안중에도 없이 저 흐르고 싶은 대로 흘러가는 부랑자의 자유.
그를 잠시 만났던 한 순간은 한참동안 내 기억 속에서는 지워진 부분이라 나는 믿고 있었다. 하종두를 만나기 전의 상황과 하종두를 만났던 당시의 상황, 그리고 하종두와 헤어져 내 갈 길을 붙잡기까지는 한마디로 혼란과 좌절, 갈망과 절망이 점철된 시절이었지만 청춘의 한때를 되새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역으로 말하면 그 한때는 앞뒤 가리지 않고 좌충우돌 부딪히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시기였으며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큰소리로 한탄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식솔을 거느린 가장의 몸으로 빼도 박도 못할 마흔에 와서는 어느 쪽으로 가야 일신이 안전하고 가족들을 생계의 위협에 빠뜨리지 않을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운신의 폭이 좁고 잘아져 있는 자신에 비하면. 그러므로 내가 부랑자 사내의 모습에서 불현듯 하종두를 떠올린 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서글프고 절망적인 허탈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돌아갈 수 없는 그 방황과 젊음의 시절을 추억하고 있을 여유도 없이 일과 생활에 매달려 늙어가는 주제에 이제 더 무엇을 어쩌자는 것인가. 그 부랑자가 연상시킨 하종두와 대학 시절의 한때는 그간 무기력하게 길들여진 나를 문득 뒤돌아보게 하는 주책을 부렸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늙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처럼 서글프고 참담한 심정으로 나는 얼른 사내에게서 눈을 돌리며 부리나케 차도로 내려섰다. 그리고 승강장으로 진입하는 택시를 향해 손가락 두 개를 치켜들고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