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View('http://photo.hankooki.com/newsphoto/2008/10/07/cocochoi200810072314380.jpg','GisaImgNum_1','default','260');
|
1940년대 중반 윤치호·윤학자(가운데) 부부와 공생원 아이들. 공생원 제공 | | |
8일 전남 목포의 보육시설 공생원(共生院) 설립 80주년을 맞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의 부인 치즈코(千鶴子) 여사 등 22명의 일본 손님들이 목포를 방문한다.
공생원은 1928년 '거지대장'으로 불린 전도사 윤치호가 설립, 일본인 아내 다우치 치즈코(田內千鶴子ㆍ한국명 윤학자)와 평생을 바쳐 '고아 사랑'을 실천한 곳이다. 윤 여사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일본인들이 다녀가 한ㆍ일관계의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방문단에는 오쿠보 마키(大久保摩紀) 아사히신문 논설위원, 미즈타니 코쇼(水谷莘正) 불교대학 이사장, 마츠이 이즈히로(松井珍男子) 교토시 전 부시장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8일 오후 공생원을 찾아 오부치 전 총리가 생전에 보낸 매화 20그루를 둘러보고 원생들과 환담한다. 원생들은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등 2곡을 일본어로 부를 예정이다.
열 아홉 어린 나이에 고아 7명을 거둬 '함께 사는(共生)' 세상을 연 윤치호는 쓰레기를 줍고 동냥도 마다하지 않아 '거지대장'으로 불렸다. 일제 관리의 딸로 음악교사였던 윤 여사는 공생원에서 봉사를 하다 그의 인품에 반해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백년가약을 맺었다.
윤 여사는 남편이 1951년 전쟁 통에 아이들 먹일 식량을 구하러 나갔다가 실종된 뒤에도 공생원을 지키며 1968년 숨질 때까지 3,000여명의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길러냈다. 이 공로로 1962년 문화훈장, 65년 제1회 목포시민의 상, 68년 일본 황실에서 남수포상을 받았다.
현재 공생원은 이들 부부의 아들 기(66), 손녀 록(35)씨를 거쳐 외손녀 정애라씨가 운영하고 있으며, 67명의 원생이 생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