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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천의학 원문보기 글쓴이: 계지
암 · 심장병 · 중풍 · 시력 약화 등 30여만 명 환자 살려│온침의 만성 심장병 치료율 98퍼센트에 이르러 전침으로 중증의 중풍마비 80퍼센트 이상 완치시켜│수백 명 불임 환자 치료하여 아이 낳게 해 주기도 세계보건기구 인류 질병 75퍼센트 침술 치유 가능 인정│88올림픽 때 국가대표선수 주치의로 큰 공헌 온침과 전침 전수받기 위해 세계 각국 심혈 기울여│평생 경험 모아 <온침과 전침의 임상실기> 펴내 |
◈ 암 · 심장병 · 중풍 등 수많은 환자 살려
김계언(金季彦 취재 당시 74세) 선생은 온침(溫鍼)과 전침(電鍼)의 창시자이다.
그는 자신이 창안한 온침과 전침이란 독특한 치료법으로 지난 30년 동안 암 · 심장병 · 중풍마비 · 류머티스 관절염 · 신경통 · 디스크 · 간염 · 간경화 · 만성 소화장애 · 해수 천식 · 녹내장 · 시력상실 · 불임증 · 비뇨생식기 질환 · 치질 등으로 고통받는 30여만 명의 환자를 살려낸 신의(神醫)로 평가받고 있다.
그것도 한 번의 시술로 반신불수 중풍마비 환자를 걷게 하는 등의 놀라운 이적(異蹟)을 일으키기도 해 환자도 놀라고 주위 사람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기적 같은 일을 체험한 환자나 보호자들은 온침과 전침의 효력에 매료되어 전수받기도 하는데, 그 수만도 4백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 중에는 교사·간호사·회사의 중역 등도 포함되어 있고, 그들은 자신의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온침과 전침의 시술자로 나서 역시 국내외에서 수많은 기적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 온침으로 심장병 치료율 98퍼센트에 이르러
필자가 가입하고 있는 한 침구학회의 회원은 지난 1월 학회의 정기 학술 발표에서 신침(神鍼)이 있다면, 온침과 전침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온침과 전침을 전수받아 지난 15년 동안 임상에서 활용해본 바, 질병 치료에 응용할 수 있는 범위가 상당히 넓고 그 효과도 크다고 한다.
오늘날 대표적인 난치병이라 할 수 있는 심장병만 해도 급성 심장마비와 선천성 심장병이 아닌 바에는 온침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주위의 만성 심부전증·협심증·부정맥 등 30여 명의 심장병 환자에게 온침을 시술한 결과 98퍼센트가 완치 내지는 호전되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심장병 치료법으로 위험 부담이 있는 서양의학적 방법인 개심(開心) 수술이나 심장 이식 수술이 전부인 양 여기는 현실에서, 온침과 같이 간이하면서도 부작용도 없고 효과가 뛰어난 시술법이 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한다.
◈ 온침과 전침 전수받기 위해 세계 각국 심혈 기울여
또 필자가 아는 한 의학신문사의 사장은 김계언 선생이 30 년의 임상 연구 끝에 이룩해 놓은 온침과 전침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그 가치를 자부할 만한 의술이라고 평한다.
현재 중국에서는 의과대학의 침구 석학들이 온침과 전침을 질병 치료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의술로 인정하고, 김계언 선생을 초빙하는 등 치료법을 배우기 위해 모든 심혈을 다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또 영국에서는 백작 작위 수여를 제의하며 온침과 전침의 전수를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그 계기가 된 것은 1999년 중국 천진의과대학이 주최한 제2차 국제침구학술대회로, 당시 김계언 선생은 세계 각국의 침구 석학 등 1천여 명의 청중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전침을 시술하여 즉석에서 중풍 환자를 일으켜 세우는 등 그 효과를 실증해보였다고 한다.
당시 손과 발을 오그려 붙인 반신불수의 환자가 15분간 전침을 맞고 그 자리에서 마비가 풀려 마음대로 손을 번쩍 치켜 올리고 마음대로 걷게 되자, 1천여 명의 청중은 박수를 치는 등 환호가 대단했다고 한다.
이렇게 온침과 전침의 놀라운 치료 효과를 목격한 세계 각국의 침구 석학들은 2년간의 직접적인 임상을 통해 그 가치를 확인하고, 2001년 제3차 국제침구학술대회에는 김계언 선생을 부주석으로 초빙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온침과 전침을 질병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새로운 의술로 인정하였다고 한다.
성뇌개규침법(醒腦開竅鍼法)으로 중풍 치료의 권위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중국 천진의과대학 석학민 교수조차 온침과 전침을 종래의 침법을 뛰어넘는 효과 큰 의술로 인정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북경대학교 중의대학장인 용치현(龍致賢) 박사는 김계언 선생을 학교로 초빙하여 특별 강의를 요청하는 등 온침과 전침을 전수받기 위해 모든 심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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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중국 천진의과대학이 주최한 제2차 국제침구학술대회에서 온침과 전침의 |
◈ 온침은 침과 뜸을 동시에 수행하는 일거양득 치료법
온침이라 함은 침과 뜸을 겸한 침법을 말한다. 개략적인 방법을 설명하면 치료할 곳에 가로 60센티미터 세로 30센티미터의 면포를 2~3장 깔고 치료에 필요한 경혈(經穴)에 침을 찌른다.
그리고 두께 2~3밀리미터 직경 2센티미터의 방열판(防熱板)을 침에 끼워 넣는다. 그 다음 지름 1.5센티미터 길이 2센티미터 정도의 쑥봉을 역시 침에 끼워 넣는다. 그리고 쑥봉에 불을 붙인다. 쑥봉이 연소되는 시간은 대략 10~15분이다. 이에 따라 쑥불의 열 자극이 피부 깊숙이 전달된다.
따라서 온침이란 침의 작용과 뜸의 작용을 동시에 수행하여 일거양득의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침법이다. 또한 뜸으로 인해 살을 태우고 고통을 주고 상처를 남기는 종래의 직접 뜸의 단점을 개선한 독창적인 의술이다.
결국 온침은 침과 뜸의 효과만을 최대한 얻기 위해 고안된 의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온침법을 개발함으로써 암·심장병·중풍마비·신경통·디스크·관절염·녹내장·불임증 등 난치병 치료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피부 상처 없고 열전도량 10배 이상 높아
물론 우리의 전통 의술에는 온침과 비슷한 화침(火鍼)이 있다. 화침은 침을 한 후 그 끝에 쑥을 콩알 정도 크기로 뭉쳐 붙이고 뜸을 뜨는 침법이다. 따라서 온침이 어떤 점에서는 전래의 화침과 일맥상통한 점이 있고, 어떤 점에서는 그 일종이라고 생각되는 점도 있다.
그러나 화침의 경우 쑥이 타는 시간이 15초 내지 30초임을 감안한다면, 10분 내지 15분 정도 타는 쑥봉을 이용한 온침과는 그 열전도량에서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온침의 경우 피부에 근접하여 뜸을 뜨고, 그것도 동시에 수십 개의 시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열전도량이나 열전도 면적이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온침은 피부에 열상(熱傷)의 부작용을 없애면서도 열전도의 깊이와 면적과 전달량을 화침에 비해 10배 이상으로 높였다는 점에서 화침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온침으로 암·심장병·중풍마비·신경통 등 난치병 치료가 가능한 것도 결국 체내에 강한 열전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온침이 발전되고 새로운 의술로 인정받고 있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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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꽂은 위로 방열판과 쑥봉을 꼽고 온침을 하는 모습(사진 오른쪽), 쑥봉에 |
◈ 전침은 침과 전기적 자극을 결합한 침법
한편 전침은 침과 전침기(電鍼器)를 결합한 침법이다. 개략적인 방법은 먼저 치료에 필요한 경혈에 침을 한 후 전침기의 음극과 양극을 연결한다. 그리고 12볼트의 교류 전류를 통전(通電)하여 자극을 준다. 따라서 전침은 종래의 수기적(手技的) 자극을 전기자극으로 대체한 침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전침의 장점은 몇 가지 꼽을 수 있는데, 먼저 장시간 지속적으로 운침(運鍼)을 할 수 있고, 인력을 절약할 수 있으며, 비교적 객관적으로 자극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절연침(絶緣鍼)이나 동축침(同軸鍼)을 응용하면 인체 조직의 어느 일정 부분에 자극을 집중시킬 수 있어 침에 의한 마취가 가능하여 약물 마취제의 부작용이나 위험 부담이 없이, 그것도 환자의 의식이 뚜렷한 상태에서 환자의 도움을 받아 가며 외과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신경섬유 주행 방향 객관적으로 확인하며 시술할 수 있어
그리고 전침의 또 하나의 중요한 장점은 신경섬유의 주행 방향을 탐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동일한 경락상의 동일한 혈 자리라 할지라도 신경섬유의 주행 방향은 그 경락을 따라 흐르는 신경섬유의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르게 상하 좌우로 주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전침을 이용하여 강자극을 주면 강력한 신경작용이 일어나 몸이 신경섬유의 주행 방향에 따라 저절로 움직이게 된다. 따라서 신경섬유의 주행 방향을 쉽게 탐색할 수 있다.
실제 김계언 선생이 전침을 직접 시연하는 것이나 시연한 것을 녹화한 것을 보면 침을 꽂은 혈 자리를 돌아가며 음극과 양극의 전류을 연결하자 근육의 굴신(屈伸)운동 방향이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일례로 발끝이 아래로 처져 발을 돌리면서 걷는 중풍 환자의 경우 환도·족삼리·위중 혈 등에 침을 하고 통전을 하자 발끝이 아래의 방향으로 굴신을 반복하였으나, 좌골·양릉천·제2의 위양 등의 혈에 침을 하고 통전을 하자 발끝이 위의 방향으로 굴신을 반복하였다.
또 손이 오그라진 환자에게 내관과 극문 혈에 전침을 하자 손이 안쪽으로 오그라지는 굴신운동을 반복하였으나, 노회와 곡지 혈에 전침을 하자 오그라진 손이 바깥쪽으로 펴지는 굴신운동을 반복하였다.
◈ 전침은 신경마비와 근육마비 치료의 획기적 방법
이렇게 전침을 이용하여 신경섬유의 주행 방향을 탐색한다는 것은 신경마비나 근육마비의 치료에 있어 획기적인 방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즉 전래의 방식으로 막연하게 침을 하는 것보다 신경섬유의 주행 방향을 확인하면서 치료하면 신경이 마비된 곳이나 몸이 경직된 방향을 감안하여 그에 합당한 시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치료에 필요한 방향의 신경섬유에 지속적인 자극을 가함으로써 신속하게 경직과 마비를 풀고 모든 운동신경을 정상으로 회복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국제침구학술대회에서 반신불수 중풍 환자를 즉석에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김계언 선생은 중풍으로 인한 반신불수 환자에게 위중이나 내관 등의 혈을 치료의 요혈(要穴)로 여기고 시술을 해 온 전래의 침술 방법은, 전침을 통해 확인되듯이 발끝이 아래로 처치거나 손이 안쪽으로 오그려 붙는 걸 더욱 강직시킴으로써 손을 붙이고 발을 돌리면서 걷는 중풍 환자의 전형적인 자세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따라서 막연히 고방(古方)에 의존하기보다는 전침을 통해 객관적 사실과 분명한 이유를 확인하면서 치료하면 엉뚱한 치료 결과의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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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침을 통해 신경섬유의 주행 방향을 탐색하는 모습(사진 왼쪽), 와사증환자에게 |
◈ 반신불수는 강자극 있어야 마비 풀려
마지막으로 김계언 선생은 전침의 또 다른 중요한 장점은 강자극을 지속적으로 가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그는 경미한 신경통은 약자극을 통한 흥분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나, 안면 마비나 중풍의 반신불수는 강자극이 가해져야 마비가 풀린다고 한다. 또한 침에 의한 마취의 경우는 초강자극이 가해져야 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현재 대부분의 한의원에서 마비는 약자극의 흥분으로 풀어진다는 생각으로 표피에만 살짝 찌르는 침술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중풍 치료의 시한을 소모케 해 중풍을 낫지 못하게 하는 결과만 초래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가 지금껏 하루에 1백 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하면서 그 절반이 중풍 환자일 정도로 중풍 치료에 대해 많은 임상을 하였는데, 한방병원이나 한의원에서 여러 달 치료를 받고도 낫지 못한 환자라도 전침을 통한 강자극을 주면 그 자리에서 마비가 확 풀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신경마비 등 침으로 병을 올바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강자극이 필요하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침을 할 때 10센티미터 이상의 장침을 쓰는 것이나 침을 한 후 보법(補法)이라 하여 침을 튕기거나 돌리는 것도 다 강자극을 주기 위한 노력이라고 한다. 전침은 그러한 수단을 대체하면서도 자극의 강도를 높인 것이라고 한다.
◈ 전침으로 중풍마비 80퍼센트 이상 완치시켜
아무튼 그는 이와 같은 전침을 사용하여 반신불수 환자를 치료한 결과, 발병 1개월 이내인 경우 20회 이내의 치료로 80퍼센트 이상의 환자가 완치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한다.
그의 ‘편마비(片麻痺)의 새로운 침자요법(鍼刺療法)의 연구’란 논문을 보면, 5년간에 걸쳐 1천여 명의 중풍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한 그의 임상 결과와 그가 지도한 50여 명의 회원이 체득한 임상 결과에 따르면, 중풍의 경증은 예외로 하고 발병 초기 2주간이 경과한 중증의 환자에게 약자침(弱刺鍼)한 결과 별다른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침에 의한 강자극을 한 결과 즉석에서 마비된 손발이 움직이는 뚜렷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개월 이내(20여 회 치료)에 80퍼센트 이상의 환자가 보행이 자유로운 상태로 회복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나머지 20퍼센트의 환자는 완전 해소되지 않았다고 한다. 완전 해소가 안 된 경우는 뇌출혈에서 오는 강직성 마비와, 간암·간경화·뇌종양·당뇨병 등의 합병증에 의한 편마비라고 한다.
나라 안에 이런 임상 효능이 뛰어난 전침이란 새로운 침법이 개발되었다는 것은 중풍마비 환자나 소아마비 환자나 신경마비 환자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가 전침을 개발함으로써 중풍마비 등의 치료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는 세계적인 침구석학의 평가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중풍마비·소아마비 치료에 새로운 전기 마련
물론 그의 전침이 기존에 개발되어 있던 전침기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전침 시술과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그 일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효과 면에서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침기를 이용하여 신경섬유의 주행 방향을 탐색하여 그에 합당한 치료를 한다는 것은 전침기를 단순한 전기 자극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기존의 전침 시술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다.
또 중풍마비와 신경마비는 강자극에 의해서만 마비가 풀린다는 것을 실증해 보이고, 강자극의 수단으로 전침기를 활용한 것은 기존의 중풍마비와 신경마비 치료법과는 분명 다른 점이다. 이런 것은 그의 오랜 성찰 끝에 나온 혜안으로 분명 새로운 차원의 시도라 할 수 있다.
결국 그는 이런 토대 위에 신경섬유의 주행 방향에 따라 치료에 합당한 신(新)·기혈(奇穴)을 찾아내 치료 방법을 치밀히 체계화함으로써 전침이란 새로운 침법을 창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중풍마비와 신경마비에 전침과 같이 강한 자극의 영향이 있어야만 침의 효능이 발휘될 수 있다는 이론을 치밀히 체계화하고 이를 실증해 보임으로써 중풍마비와 신경마비 치료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정계·관계·학계·언론계·재계 유명 인사 내방
김계언 선생은 자신이 창안해낸 이러한 온침과 전침을 이용하여 지난 30년 동안 암·심장병·중풍마비·류머티스 관절염·신경통·디스크·간염·간경화·만성 소화장애·해수 천식·녹내장·시력상실·불임증·비뇨생식기 질환·치질 등 30여만 명의 환자를 고쳤다고 한다. 따라서 그가 들려주는 구료사례는 참으로 대단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사례에는 우리가 이름을 대면 금방 알 만한 정계·관계·학계·언론계·재계·체육계 등의 유명 인사가 두루 망라되어 있어 그가 그간 얼마나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충분히 짐작케 하였다.
필자가 취재하기 위해 찾아간 날도 간암 말기의 죽음 직전의 상태에서 1년간 온침을 맞고 완전히 암을 나았다는 모 정보기관의 간부가 내방하여 치료 받고 가기도 했다. 그의 구료 일기와 설명을 토대로 그간의 구료 사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뇌하수체 장애 아이 완치 ◈ 안검하수로 절망에 찬 아이 고쳐 ◈ 속발성 녹내장 완치 ◈ 실명 위기의 녹내장 환자 완치 ◈ 20년간 녹내장 환자 1백여 명 고쳐 줘 ◈ 말기 간암 고친 교사 구료 성직자로 헌신 ◈ 죽음 직전의 일본 대재벌 장모 말기 간암 완치 |
이상의 사례 외에 김계언 선생의 구료 일기에는 많은 양의 사례가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글의 말미에 정리하였다. 그리고 이런 구료 사례는 필자가 직접 확인 취재한 내용과도 부합된다.
◈ 중풍·요통·디스크 환자 구료사례
▶일례로 안양시에 사는 이소희(취재 당시 42세 여자) 씨는 남편이 평소 허리가 좋지 않았는데, 2년 전에 무거운 것을 들다 삐끗하여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 김계언 선생의 온침을 보름간 맞고 나아 지금껏 이상이 없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신기현(가명 취재 당시 58세 남자) 씨는 2년 전에 중풍으로 3번째 쓰러져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였다고 한다. 양방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받았으나 차도가 없던 차에 같은 병원 내의 다른 환자가 김계언 선생의 치료를 받고 낫는 것을 보고 찾아가 치료받기 시작했다. 약 6개월 정도 온침과 전침을 맞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손수 운전하는 등 사회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서울 강남구의 김갑덕(취재 당시 57세 남자) 씨는 2년 전 83세의 노모가 중풍마비로 쓰러져 전혀 거동을 못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서울 모 한방병원에 입원하여 3개월간 치료를 받았으나 차도를 보지 못하고 주위 사람의 귀띔으로 김계언 선생에게 찾아가 약 4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다. 그 후 외출은 힘들지만 집 안에서 거동하는 데는 큰 불편 없이 지내고 있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최영희(취재 당시 45세 여자) 씨는 5년 전 시골에 사는 74세의 노모가 허리가 구부러져 제대로 걷거나 물건을 들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양방병원에서는 퇴행성 관절염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다 소문을 듣고 김계언 선생에게 온침과 전침을 1년간(30회 정도) 맞고 허리가 곧게 펴졌다. 그는 그 일을 보고 신기한 나머지 김계언 선생에게 침술을 배워 속이 좋지 않다든지 하는 등의 집안의 잔병은 자가 치료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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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과 뜸을 하면 모든 병이 나을 수밖에 없어
동양의학에서는 예로부터 일침(一鍼)·이구(二灸)·삼약(三藥)이라 하여 침과 뜸을 질병 치료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아 왔다. 대개 침은 신경계통의 급성 질환에 적응성이 높아 신경통·중풍마비 등의 치료에 사용해 왔고, 뜸은 내분비계통의 만성 질환에 적응성이 높아 심장병·부인병 등의 치료에 사용해 왔다.
김계언 선생은 침과 뜸을 하여 급·만성 질환이 낫는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니고, 나을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치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침과 뜸을 함으로써 나타나는 생리적 변화와, 이에 따른 치료의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먼저 침의 경우 첫째 침을 하면 오장육부의 기능이 활발히 촉진 또는 조절된다. 일례로 상해중의학원에서 편찬한 <침구학>에 소개된 연구 보고에 의하면, 정상인의 족삼리 혈에 침을 하면 위의 연동파의 진폭이 증대되고 장력이 증가하여 연동 빈도가 증가한다고 한다.
또 상해 흉과의원의 연구에 의하면, 건강인의 중완 혈에 침을 하면 장명음이 항진되고 바륨제의 이동이 신속해진다고 한다. 또한 광동성의 임상 연구에 의하면, 장 폐색증 환자의 사봉 혈에 침을 하면 장이 확장되어 장의 경련이 사라짐은 물론 장의 연동이 활발해져서 배설이 가속된다고 한다.
둘째 침을 하면 산소요법에 상응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중국 상해중의학원 상해생리연구소의 연구 보고에 의하면 방사선요법이나 화학요법으로 인해 백혈구가 감소된 환자에게 대추·합곡·족삼리 등의 혈에 침을 하면 잠시 후에 백혈구가 상승하고 호중구의 비율도 그에 따라 상응하게 상승한다고 한다.
또한 악성 빈혈 환자에게 매일 고황·족삼리 혈에 침을 하면 5일 후에 적혈구는 1제곱미리미터 당 1백만에서 3백37만으로 상승하고, 헤모글로빈은 30퍼센트에서 70.9퍼센트로 상승한다고 한다.
◈ 어떤 암이든 온열 앞에서는 사라지기 마련
뜸의 경우에는 첫째 뜸을 하면 산성 체질이 약 알칼리성 체질로 변화된다. 혈액의 산성화 경향은 일반적으로 육식과 화학약에 치우친 사람에게 많은데, 혈액이 중성 또는 약 알칼리성이 아니면 혈액이 기능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다. 그 결과 고혈압·동맥경화증·고지혈증·협심증 등이 나타난다.
둘째 뜸을 하면 광열요법에 상응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어떤 암이든 섭씨 40~41도의 온열 앞에서는 없어지며 열에 제일 약한 것이 암이라 하여 많은 학자들이 이 분야에서 연구를 거듭해 오고 있다.
또 뜸이나 고온구의 쑥찜으로 고온 상태가 유지되면 골수 속의 활동성 방위세포가 활성화되어 혈액 속으로 보내진다. 그에 따라 백혈구가 현저히 증가되어 활성 방위세포의 조직이 형성된다. 그리고 면역세포에 의한 특수 항체, 즉 방위 효소도 크게 생성된다.
◈ 온침했을 경우 체내의 온열 상승효과 아주 커
김계언 선생은 이와 같은 침과 뜸의 효과는 한 마디로 병변에 대한 인체 자연치유력의 증대라고 한다. 따라서 앞으로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침과 뜸에 눈을 돌리기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특히 침과 뜸의 효과를 결합한 온침은 질병 치유에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온열의 효과만 하더라도 온침의 쑥이 타는 시간은 일반 뜸의 15~30초에 비해 10~15분간이나 되며, 침에 의해 직접 열을 체내로 전달하는 시간만도 7~8분간이나 된다고 한다.
또 피하조직에 미치는 온도도 일반 뜸이 1센티미터 피하에서 섭씨 0.5~0.6도의 전도 온도 상승에 그치는 데 비해, 온침은 4호침을 꽂고 온열했을 경우 섭씨 8~10도의 열 전도 온도의 상승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또 10호침을 꽂고 온열했을 경우는 섭씨 13~15도의 체내 심층 온도의 상승을 가져온다고 한다.
◈ 심장병 환자 온침하자 가슴이 시원해져
김계언 선생은 이런 온침의 효과적인 온열작용은 혈액과 세포의 정상화를 촉진시켜 암을 비롯하여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 질환 치유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이미 중국에서 침과 뜸을 이용하여 암을 치유하는 단계에 와 있다든지, 자신이 그간 온침을 이용하여 암을 완치시킨 임상 사례를 보더라도 충분히 입증되는 일이라고 한다.
참고로 온침을 시술하였을 때 환자의 반응은 심장병 환자의 경우 전중 혈을 중심으로 가슴에 온침을 하자 가슴이 훈훈하면서도 시원한 게 아주 기분이 좋다고 하고, 무릎관절통의 경우 환부 주위에 온침을 하자 무릎이 훈훈하면서 뭉쳤던 게 풀리는 기분이라고 한다. 한편 필자는 전침을 다리에 꽂고 체험해보았는데 다리가 저절로 굴신운동을 반복하면서 근육이 시원해지는 게 근육 속을 마사지 받는 기분이었다.
◈ 하늘이 운명처럼 부여해 준 침술의 길
김계언 선생이 침술을 하기 시작한 때는 1974년 무렵이라고 한다. 그 이전에는 침술과 무관한 농장 경영이나 어류 양식업에 종사하였다. 그러던 중 평소 익혀 둔 침술과 지압으로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던 인근의 사람을 감쪽같이 고쳐 주는 일이 반복되었고, 그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환자가 몰려들어 침술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는 침술의 길에 접어든 게 그의 운명이요, 하늘이 그에게 부여한 사명이라고 한다.
그가 태어난 곳은 경남 통영 욕지도이다. 그는 고향의 통영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6·25동란 중인 1952년 병참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논산 육군훈련소 창설에 참여하여 창설의 기초를 닦던 중, 훈련병의 식량 조달의 목적으로 1개 대대를 차출하여 충남 논산과 전북 익산 일대에 1백만 평 규모의 평지와 야산을 개간하여 농장을 만들었다.
농장에서 농작물 재배와 가축 사육을 총괄하던 그는, 1960년 전역과 함께 전역 장교 10여 명과 농장을 분할 인수하여 전북 익산군 낭산면에 약 2만 평 규모의 성광농장이란 기업농을 시작하였다.
농장은 날로 번창하여 돼지 20만 마리가 사육되고, 1만 평 규모의 고추 재배 단지와 1만 평 규모의 사과나무 단지 등이 조성되었다. 그의 농장은 인근의 익산·강경·논산 등지의 사람에겐 널리 알려진 유원지가 되었고, 전국 축산 농가에겐 견학지가 되었다.
그는 농업기술자협회 총재 유달영 박사와 함께 전국을 1년간 돌며 농업 기술 개발과 농촌 부흥을 위해 강의를 하기도 하고, 만경강 상류에 대규모 뱀장어 양식장을 만들어 어류 양식업에 뛰어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1968년엔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5·16 민족상 산업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고, 전국 농업기술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 고창증과 식중독에 걸린 가축 침으로 고쳐 줘
농장을 경영하면서 그가 침술을 접하게 된 계기는 사육하던 소가 고창증(鼓脹症)으로 폐사되거나, 돼지가 식중독에 걸려 폐사되는 일이 생기면서부터이다. 고창증과 식중독으로 소나 돼지가 죽어 나가자 인근의 농부들이 침 한 방이면 낫는데 왜 죽이느냐고 조언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대로 침을 하자 소나 돼지가 신기하게도 감쪽같이 나았다. 그때부터 그는 침의 가치에 대해 인식을 하고 돼지를 임상 대상으로 침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침술을 접하기 시작한 그가 새로운 인생에 접어든 것은 1972년이다. 당시 지방 농고에 재학 중인 아들이 대학 입시에 떨어지자 그는 농촌 생활에 실망한 나머지 자식의 교육을 위해 번창하던 농장을 쌀 3천 가마(현 시가 6억 원)에 팔고 서울에 터전을 잡았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일이란 게 쉽지 않았던지 농장을 매각한 자금을 인조 보석 제조에 투자했다가 실패하는 아픔을 겪었다.
◈ 공사 현장에 환자 몰리는 진풍경 벌어져
그러다 그는 1974년에 처조카 사위가 남원에서 무주까지 국토 확장 포장공사를 하는데 도와 달라 하여 당시로선 고액인 월 50만 원을 받기로 하고 전북 장수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운명과도 같이 침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공사 인부를 모집하기 위해 인근 10여 개 부락을 돌았는데, 농번기라 성한 사람은 모두 밭에 나가고 집에는 아픈 사람만 있었다. 그는 그들이라도 치료하여 공사 인부로 모집할 요량으로 평소 익혀 두었던 침과 지압으로 치료해 주었다.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 다음날 공사 현장에는 엉뚱하게도 치료받을 목적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한꺼번에 몰려든 그들에게 치료 순서를 정하기 위해 번호표를 나누어 주었는데, 가면 갈수록 환자가 더 몰리면서 나중엔 번호표가 공사장의 일당보다 더 비싸게 금전으로 거래되는 일이 생겼다.
사태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그는 몰려드는 환자를 외면할 수 없어 회사를 그만두고 진료소로 쓰기 위해 여관 방 3개를 얻었다. 그리고 첫째 방에는 두통 환자·안면과 눈이 아픈 사람·가슴과 배가 아픈 사람이 들게 하여 간호사를 1명 배치하고, 둘째 방에는 목·어깨·등·다리가 아픈 사람을 들게 하였다. 셋째 방에는 요통 환자·무릎관절통 환자·족관절통 환자를 들게 하였다. 환자는 보통 하루에 50~60명 몰렸고, 많을 때는 1백 명이 몰려 밤 10시까지 치료가 계속되었다. 치료는 침과 지압이 주(主)였고, 필요에 따라 단방약을 알려 주어 자가 복용케 하였다.
당시 그에게 온 환자는 열에 여덟아홉은 나아서 갔다. 그 소문이 인근에 널리 퍼져 그는 ‘만지면 낫는 사람’으로 통칭(通稱)되었다. 그 자신도 만지면 환자가 낫는 자신의 능력에 놀라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 새삼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당시 그가 환자를 고쳐 준 일화를 그의 구료 일기에서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 10년 동안 걷지 못한 전신 류머티스 환자 즉석에서 완치 ◈ 누워서 온 퇴행성 대퇴관절염 환자 걸어 나가 |
◈ 큰 명의가 될 것이라는 심령과학자의 예언
이렇게 그 자신도 의심될 정도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자 그는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 심령과학자인 안동민 씨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안동민 씨가 그에게 앞으로 큰 명의가 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안동민 씨의 말대로 그가 고차원의 명인이 환생한 신적 존재인가, 아니면 옛 명의(名醫)가 빙의(憑衣)되어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안동민 씨와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안동민 씨와는 1970년대 초에 만났다. 당시 그의 처조카가 유방암으로 위독한 상태였는데, 유방암 치료를 위해 처조카를 데리고 국내 제일의 심령 과학자이자 심령 치료로 유명한 서울 삼청동에 사는 안동민 씨를 찾아갔다. 그때 안동민 씨의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유독 “방금 온 유방암 환자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에 유산한 아이가 빙의가 돼서 유방에 붙어 병이 되었으니 제령(除靈)해야 한다. 녹음 테이프를 줄 터이니 육성 녹음을 진동시켜 그 물을 먹어라”고 했다. 실제 처조카는 그대로 실행하여 유방암이 호전되는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어떠냐. 전생이 어떠했느냐.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안동민 씨는 “선생은 내가 볼 사람이 아니다. 선생은 큰 명의가 된다”고 했다.
◈ <침구대성> 등 침구 서적 보며 이론 정립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 끝에 안동민 씨의 말대로 침술은 하늘이 그에게 천직으로 내려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하는 것은 신기(神技)나 우연의 기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짧은 지식이나마 그 자신이 연마한 기술의 결과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침을 하면 병이 낫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에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침구보감> <황제내경 영추편> <침구대성> <최신 침구학> <사암 침구요결> <침구경험방> <해부생리학> <한방의학대사전> <동의보감> 등 침구 관련 서적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그가 정독한 침구 서적은 2백여 권으로 그 중 그에게 가장 영향을 준 것은 <최신 침구학>이라고 한다. 그의 서가에 꽂혀 있는 <최신 침구학>은 얼마나 보았는지 닳고 닳아 있었다.
침구 서적을 읽으며 서서히 이론을 정립하기 시작한 그는 침을 하면 신경을 통해 인체가 지배되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생리작용이 조절되면서 자연치유력이 극대화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수백 권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어떤 책이든 어떤 병에 어떤 혈에 침을 하면 낫게 된다는 결론뿐이지, 왜 그 혈에 침을 해야 하며 왜 그 혈에 침을 하면 낫게 되는지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 즉 처방의 의의를 곁들여 설명한 책은 한 권도 없다는 것이었다. 또 자침(刺鍼)의 깊이도 제대로 설명되어 있는 책이 없었다.
◈ 서울 사당동에서 빈민들 대상으로 구료 봉사
그는 답답한 마음에 다양한 침구 경험을 통해 그 자신이 직접 그 의의를 밝히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전북 장수에 내려간 지 1년 만인 1975년 서울로 올라와 사당동에 침술원을 차렸다. 사당동을 택한 것은 당시 사당동의 4개 동, 봉천동의 11개 동, 신림동의 13개 동, 성남시 등은 6·25 동란과 청계천 복개공사 등으로 인해 이주해 온 빈민들이 대부분 사는 곳이라 침술을 통해 구료 봉사를 하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사당동에 침술원을 연 그는 곧바로, 뜸으로 인한 열상(熱傷)을 없애면서도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끝에, 침술의 새 차원을 여는 온침을 개발하여 시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9년에는 침구사협회에 의해 중국에서 침구 마취용으로 개발된 전침기가 도입되자 이를 이용한 전침요법을 개발하여 시술하기 시작했다.
당시 전침기는 혈위(穴位)에 일정한 전기적인 자극용으로만 사용되는 처지였다. 그러나 그는 혈위에는 일정한 신경이 통과하고 있어 신경을 이루는 신경섬유의 주행 방향에 따라 신경이 전후좌우로 주행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침기의 강한 신경 자극을 통해 신경의 주행 방향을 확인하여 팔다리가 처진 것은 들어 올리고 올라간 것은 내리게 하는 방법을 찾는다면 중풍으로 인한 신경마비 치료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몰두한 그는 신경섬유의 주행 방향을 하나하나 정리해내는 한편, 신경마비의 병증에 따라 치료에 합당한 신(新)·기혈(奇穴)을 찾아냈다.
◈ 기적을 낳는 침술원으로 이름 떨쳐
그가 시도한 이 온침과 전침의 두 가지 새로운 시술법은 대성공으로 그의 침술원은 기적을 낳는 곳이란 소문과 함께 연일 환자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그리고 병에 걸려 더 이상의 치료 방법이 없어 막다른 길에 처한 사람들의 구원처가 되었다. 중풍마비로 고생하던 사람이 일어나고, 해수 천식으로 평생 한을 품고 살았던 사람이 한을 풀기도 하고,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의 막다른 길목에 처한 사람이 생명을 찾기도 하고, 불임증으로 고생하던 사람이 아이를 얻기도 하는 등 절망에 찼던 사람에게 그의 침술원은 새 삶을 찾아주는 터전이 되었다.
◈ 암·중풍·불임증 등 90퍼센트 이상 치유 자신
김계언 선생은 온침과 전침을 결합하여 치료하면 수술을 요하는 외과 질환이 아닌 바에는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그 중 중풍마비·구안와사풍·신경통·관절통 등 신경계 질환과, 불임증·녹내장·시력약화 등은 1백 퍼센트 고칠 수 있다고 한다.
암의 경우도 시일이 걸리는 점은 있지만 온침과 전침과 함께 그가 개발한 발계탕(위암)과 간신환(간암)과 고본단을 결합하여 치료하면 위장암·유방암·피부암·후두암은 1백 퍼센트, 간암·신장암은 90퍼센트 고칠 수 있다고 한다. 간질은 198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1백여 명의 환자를 치료했는데, 온침을 이용하여 치료한 결과 60퍼센트 이상의 환자가 완치 또는 호전되는 치료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 화학약 과용과 절제수술과 방사선 시술 환자는 치유 어려워
하지만 화학약을 지나치게 복용한 사람이나, 절제 수술을 한 사람이나, 방사선을 맞은 사람이나, 발병한 지 오래된 사람은 고칠 수 없다고 한다. 양의학적인 시술을 한 사람이 치유가 불가능한 건 이미 인체가 훼손되어 본래의 몸 상태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중풍의 경우도 발병한 지 3개월 이내에 오면 20회 이내의 치료로 고쳐지나, 양방병원에 가서 검사나 물리치료를 한다고 이미 치료 시한을 넘긴 사람과 뇌 수술로 뇌신경이 차단된 환자는 고치기 어렵다고 한다.
◈ 침은 이론에 입각한 정직의 치료법
그는 침을 꽂아 어려운 병이 나으면 신기해 하고 때로는 침으로 병이 나을까 의구심을 갖기도 하는데, 침은 신기가 아닌 침의 이론에 입각한 정직의 치료법이라고 한다. 즉 올바른 이론에 입각한 치료를 한 이상 낫는다는 것은 당연하며, 침이란 절대 치료 이론을 떠나 치료되는 예는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깨의 관절염에 6~9센티미터 깊이로 침을 놓고 강자극을 해보았자 낫기는 고사하고 더 악화될 뿐이라고 한다. 관절염은 경자극에 의한 백혈구의 유도작용과, 환부와 떨어진 곳에의 자침에 의한 백혈구의 유도에서만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반면 신경통인 경우는 환부에 강자극을 하면 진통을 억제할 수 있으며 그에 의해 즉석에서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침은 분명한 목적과 정확한 치료 이론이 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치료 이론을 무수한 임상 경험을 통해 축적해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치료 이론이 축적되면서 어떤 병에는 어떤 혈에 왜 침을 해야 하고, 그 혈에 어느 정도의 깊이로 침을 하면 인체에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그가 오랫동안 궁금해 왔던 처방의 의의에 대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 깨달음은 어떤 병이든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자신 있게 임할 수 있게 하였고, 근거가 분명한 이상 치료 효과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 88서울올림픽 국가대표선수단 주치의로 큰 공헌
그는 그가 터득한 이런 치료 이론을 바탕으로 ‘片麻痺의 새로운 침자요법(鍼刺療法)의 연구’란 논문으로 1986년 콜롬보대학 의과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이어 1988년 서울 올림픽 때에는 한국 국가대표선수단 침구 추치의로 임명되어 유도의 하형주·김재엽 선수와 역도의 전병관 선수와 농구의 박찬숙 선수 등 국가대표선수들의 부상을 온침과 전침으로 신속히 치료해 주어 세계 4위의 성적을 거두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당시 그의 온침과 전침의 놀라운 효과는 세계 각국 선수단에게도 인기가 높아 그의 진료소에는 각국 선수와 임원들로 붐볐다.
◈ 일본 야마다 재벌 회장 장모 간암 완치시켜
그가 일본 야마다 재벌 회장의 장모인 스즈끼 여사의 간암을 치료하게 된 것도 88올림픽 때 일본 선수의 부상과 역도 선수단 감독의 디스크를 고쳐 준 게 계기가 되었다. 스즈키 여사는 일본 동경대학병원과 대만의 한방병원에서 병을 낫지 못하자 필리핀에 심령 치료로 유명한 사람이 있다 하여 갔다.
가서 봐 달라 하니 “당신은 어떤 약으로도 나을 수 없다. 당신을 고칠 사람은 없다. 다만 단 한 사람 당신 병을 고쳐 줄 사람이 있는데 한국에 있다. 그 사람은 침놓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2천여 년 전 나의 친구이며 명의 중의 명의로서, 그분이 환생한 사람이다. 이름은 모른다. 만난 적도 없다. 그러나 일본에 가면 연락되어 만나게 되어 있으니 빨리 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다시 전세 비행기 편으로 일본에 돌아왔는데, 88올림픽 때 일본 역도 선수단 감독이 집에 와 있었다. 그는 스즈키 여사의 위중한 상태를 알곤 “낫는 방법은 한국의 김 박사밖에 없다. 이상한 침을 쓰는데 암도 다 낫는다 하더라. 올림픽 때 일본 선수들이 선수촌에서 침 맞고 배 아픈 것이나 허리 아픈 것 다 낫고, 나도 디스크를 침 맞고 나았다. 상태가 중하긴 하나 그분이라면 고칠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한번 찾아 가 봐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 길로 짐도 풀지 않은 채 한국에 와서 한국 역도 대표팀의 양무신 감독과 함께 찾아왔다는 것이다.
◈ <온침과 전침의 임상 실기> 저서 출간
이렇게 온침과 전침의 이론을 정립하여 많은 환자를 고치던 김계언 선생은 효과가 뛰어난 온침과 전침을 후세에 남기겠다는 생각에 6년간의 집필 끝에 1998년 1월에 <온침과 전침의 임상실기> 상·하권을 출간하였다.
이 책에는 온침과 전침의 치료 이론과 함께 소화기 질환·호흡기 질환·비뇨생식기 질환·신경계 질환·순환기 질환·내분비 질환·외과 질환·피부 질환·산부인과 질환·소아과 질환·안과 질환·이비인후과 질환·치과 질환의 항목별로 총 2백50 개의 질병에 대한 자세한 치료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침구 관련 서적에서 찾을 수 없는 처방의 의의를 설명함으로써, 어떤 병에는 어떤 혈에 왜 침을 해야 하며 그 혈에 침을 하면 어떤 생리반응이 일어나 질병이 치유되는지 그 이유에 대해 분명히 밝혀 놓았다.
◈ 처방의 의의를 밝힌 침구계 초유의 대작
책이 완성되자 전 침구사협회 회장 임수성 박사는 책 서문의 추천사에서 “김계언 선생은 세계 최초의 온침과 전침의 창시자로서, 20여 년간의 임상 실기를 바탕으로 자침(刺針) 하나하나의 깊이와 처방의 의의를 한의학적 이론과 과학적 이론을 곁들여 설명하였다. 이는 침구계 초유의 대작이요, 천금의 비방서이다”라고 평하였다.
또한 책이 출간되자 1999년 제2차 국제침구학술대회에서 온침과 전침의 뛰어난 효과를 확인한 중국 천진의과대학 교수들은 <온침과 전침의 임상실기> 번역에 착수하여 2002년 2월에 중국어판을 출간하였다. 그리고 온침과 전침에 대해 강의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들어 중국에 가서 강의할 수 없는 입장이라 사양하고 있다. 또 영국에서 백작의 작위를 줄 터이니 영국에 와서 침을 전수해 달라고 하나 이 역시 나이가 들어 영국에 가 있을 입장이 아니라 사양했다고 한다.
다만 최근 독일의학회에서 통역관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할 터이니 침을 전수해 달라고 하여 승낙한 상태라고 한다. 그는 온침과 전침의 진가를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인정받고 세계화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 억울한 고발 수없이 당해 화병으로 고생
한편 그는 그의 침술원이 환자들로 초만원을 이루자 1986년 콜롬보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 전까지는 허가가 없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돈을 옭아내려는 보건 담당 사칭자·형사 사칭자·사이비 신문기자·자해 공갈단들로부터 매일 1~2차례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또 한의사들의 고발과, 보건소·경찰의 단속으로 한 달에 1~2차례 경찰서에 불려 다녀야 했다. 그때마다 그는 통사정을 하기도 하고, 빈민과 어려운 지경에 이른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정상이 참작되기도 하여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한번 협박과 고발당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간이 철렁 내려앉아 속병이 생겼다고 한다. 그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어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한다. 그는 그 후유증으로 현재 말이 약간 어눌하고 귀가 어두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현실은 재야 침구인 40만 명이 비슷하게 겪고 있는 일로, 많은 사람이 심장병과 고혈압으로 여생을 보내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한다.
한때 그는 수많은 협박과 고발 속에 화병(火病)이 도져 모든 걸 포기할 생각도 많이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자꾸 환자가 찾아오고, 더 이상의 치료 방법이 없어 막다른 길에 처한 사람이 나아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환자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1985년 시경에 구속 수감되었을 때는 모든 걸 포기하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구속 중에 보석 신청이 허가되어 죽음 일보 직전의 현직 판사 어머니를 구해 주고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되자, 하늘이 돕는 천직이란 생각으로 온침과 전침이 완성되는 최후의 순간까지 모든 정성을 다 하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 침술 종주국으로서 침구사법 제정 시급
김계언 선생은 우리나라가 세계가 인정하는 침술 종주국이면서도 침구사 면허제도가 없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침술의 독특한 치료 능력을 살려 더 이상의 치료 방법이 없어 절망에 찬 사람을 구해 주었다고 처벌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한다.
이런 불합리한 일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속히 침구사법이 제정되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또 그래야 침구술이 발전되고,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해 고통받고 있는 국민에게 침구술의 독특한 치료 혜택을 돌려주는 일이 된다고 한다.
김계언 선생의 사연을 들으며 임상 효능이 뛰어난 새로운 의술을 개발했음에도, 또 수많은 빈민을 구제했음에도 그 공로를 인정해 주기는커녕 의료 면허라는 획일적 잣대를 들이대 고발과 구속을 일삼는 이 땅의 척박한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현실 속에 어찌 새로운 의술이 개발되고 능력이 꽃필 수 있겠는가.
이미 세계 각국이 온침과 전침의 뛰어난 임상 효과를 인정하고 전수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건만, 정작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것을 인정하지도 발전시키려 하지도 않고 오히려 탄압만 하고 있으니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어찌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 땅의 환자를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에서 나온 행위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남의 약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만을 취하겠다는, 또 환자의 고통을 생각하기보다는 환자를 뺏기지 않고 독점적 이득을 취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행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 침구술은 화학약의 공해에서 인류 구제 할 미래 의학
한편 김계언 선생은 모든 의술에는 각각의 특징이 있어 응급처치에 능한 것이 있고, 병의 근본 치유에 능한 것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대별해서 말하면 서양의학은 응급 처치에 능하고, 동양의학은 병의 근본 치유 능력이 높다고 한다. 서양의학이 그간 세균성 질환의 응급 처치로 주목을 받았으나, 오늘날은 화학약의 부작용과 화학물질의 공해로 인해 인체 기능이 서서히 저하되어 가는 만성병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오늘날은 화학약 위주의 서양의학은 적응이 멀어지고 근본 치유 능력이 뛰어난 동양의학의 특색이 발휘되는 시대라고 한다. 이 중에서 인체의 기능 조절과 자연 치유 항진 능력이 뛰어난 침구술은 화학 약물의 공해에서 인류를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미래 의학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 WHO 인류 질병 75퍼센트 침술로 치유 가능 인정
이미 세계보건기구는 1978년 9월 6일부터 12일까지 구 소련 알마타시에서 개최된 1차 보건의료에 관한 국제총회에서 경제적이면서도 약물 남용 없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건강 달성의 방법이 바로 침술이라고 명시하였다. 그리고 인류 질병의 75퍼센트는 침을 통한 1차 진료만으로 예방과 치유가 가능하다라고 지적하였다. 이어 1979년 가을에는 49개 병에 침술이 효과적이라고 공인하였고, 1984년에는 심장병·고혈압·비만증·색맹·귀머거리 등 5종의 질병을 추가하였다.
◈ 서구 등 세계 각국 침구술 육성 발전시키기 위해 열성
김계언 선생은 서양의학으로는 중풍·심장질환·고혈압·신경통·류머티스 관절염·색맹·근시·난시·녹내장·비만증 등을 근본 치유할 수 없으나, 침구술로는 치유가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침 마취에 의한 각 분야의 수술 등에서도 침의 효능이 입증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전 세계가 비상한 관심을 집중한 가운데 중국·미국·영국·프랑스·일본·이탈리아·캐나다·독일 등 1백여 개 국에서 앞을 다투어 침구술의 가치를 인정하고 침구술을 배우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중국은 12억 인구의 의료 문제를 해결할 의술로서 침구술을 1급 국가 정책으로 육성 발전시켜 침구 마취에 의한 뇌 수술을 비롯하여 암을 치유하는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또 그간 침구술을 야만적인 의술이라고 비하해 오던 미국도 현재 30개 주에서 침술을 법으로 제도화하여 40여 개 침구대학을 설립하고, 9천여 명의 침구사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의사들 가운데서도 3천여 명이 침구술을 진료 과목에 편입시키고 있다고 한다. 또한 유럽의 경우도 침구술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더해 8만8천여 명의 침구사가 활동하고 있으며, 이 중 6만여 명이 의학 박사라고 한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도 과학기술청을 비롯한 9개 국립대학에서 1981년부터 5년간의 임상 실험 끝에 침술의 신비가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인정하고, 침구사법 제정과 함께 24개 침구대학을 설립한 실정이라고 한다.
◈ 우리나라 침구술 발전책 고사하고 침구사 양성 봉쇄
그런데 정작 침구 종주국인 우리나라는 침구전문대학은 고사하고 거꾸로 기존에 있던 침구사 면허제도마저 폐지한 채 오늘날까지 침구사의 활동과 양성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기존에 있던 침구사법마저 폐지하여 침구사의 활동과 양성을 원천 봉쇄하는 일은 침술 종주국으로서 반만년 동안 쌓아 온 침구술에 대한 뛰어난 지적 능력을 말살하는 일이라고 한다.
즉 그는 우리나라는 침술 종주국으로서 우리 민족의 저변에는 침구에 대한 뛰어난 지적 능력이 잠재해 있다고 한다. 따라서 국가의 의료 발전을 위해 이런 우리 민족의 저변에 있는 우수한 능력을 끌어내 발전시켜야 함에도 그러기는 고사하고 오늘날에 와서 단절시키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처사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처사는 세계가 침술을 익히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침구술이 세계적인 학문이 되었음을 비추어 본다면, 김치의 종주국이 일본으로 인식되어 기무치가 되듯이, 침구술도 우리가 소홀히 하는 사이 종주국의 가치를 상실한 채 막대한 지적 재산의 부가가치 창출을 다른 나라에 빼앗기는 어리석음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더구나 세계무역기구(WTO)의 협정에 따라 늦어도 2006년까지는 의료 시장을 개방하도록 되어 있는 처지를 감안한다면, 이대로 있다가는 외국의 침구사들이 국내 시장에 들어옴에 따라 국내 시장은 외국의 손에 빼앗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 침구사법 폐지는 의료 시장 독점 의도만 채워 준 꼴
물론 침구사법을 폐지하고 대신 한의사들에게 침구술을 독점케 하고 발전을 기대하고 있으나, 이는 형식적인 일일 뿐 현실적으로는 침구술의 발전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자신이 한의사 1천 명에게 온침과 전침을 전수해 주겠다고 제의했으나, 한의사들은 30만 원짜리 한약을 한 번 파는 게 낫지 3천 원짜리 침을 하면 빌어먹을 뿐이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따라서 한의사들에게 침술의 발전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한다. 결국 침구사법 페지는 의료 비용이 저렴한 침구술과 침구사가 있음으로써 환자를 뺏기는 일을 막겠다는 한의사의 의도를 채워 주는 꼴만 되었다고 한다.
김계언 선생은 국제 침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현재 중국 천진의과대학에 한국인 무시험 특례 입학 추천권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02년부터 현재까지 4백 명의 학생을 추천하여 후학들을 교육 중에 있으며, 신학기를 대비하여 지원자를 모집 중에 있다. 그는 국제 흐름에 발맞추어 침구사법이 속히 제정되어 우리 민족 고유 의술인 침구술이 다시 활짝 꽃피우고, 후학들이 마음 놓고 침술 활동에 임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며 말을 맺는다.
1.이 글은 저희 연구소 김석봉 소장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향토명의를 소개하고자 쓴 글입니다. 따라서 찾아가 치료받는 것은 본인의 자유 의사에 따르며, 치료와 관련하여 개인적인 병력 차이로 인한 효과 또는 치료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
다음은 김계언 선생의 구료 일기에서 발췌한 임상 사례이다. 참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리하였다.
◈ 양방병원에서 포기한 척추카리에스 환자 고쳐 ◈ 위궤양과 불임증 고쳐 ◈ 평생 고생한 해수 천식 완치 ◈ 다리 절단할 뻔한 아이 구제 ◈ 난시·근시 1개월 치료로 교정 ◈ 어린아이 야뇨증 98퍼센트 치유 ◈ 평생 지니고 살아온 위장병 완쾌 ◈ 불임증 백발백중 치유 ◈ 협심증 환자 완치 ◈ 구속 중에 현직 판사 모친 중풍 고쳐 ◈ 한 번의 침으로 중풍 완치 ◈ 한의계의 거목 중풍 완치 ◈ 중풍에 걸린 양의사 완치 ◈ 육군 중장 대퇴관절 완치 ◈ 88서울올림픽 국가대표선수 주치의 되다 ◈ 유도 김재엽 선수 디스크 치료 ◈ 고열과 편도선염으로 고생하던 헝가리 코치 완치 ◈ 일본 역도 감독 디스크 완치 ◈ 선수들의 여드름 해소 ◈ 디스크로 2년 동안 고생하다 한 번에 나아 ◈ 인공 관절 수술 후 마비된 하반신 완치 ◈ 6개월간 온침하고 후두암 완치 ◈ 발계탕으로 위암 완치 ◈ 말기 유방암 완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