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법·규칙과 건기작업지침 비용절감 앞에 무용지물, 관리감독 안되면 재난예방 헛구호서울의 한 하수관거공사현장에서 지난 1일 공삼타이어 굴삭기를 조종하던 김영수(가명, 49)가 자신의 굴삭기에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터졌다. 현장 감독의 지시로 맨홀 슬리브(sleeve)를 매달아 옮기던 중, 무게를 이기지 못한 굴삭기가 뒤집어진 것이다. 임차 건설사는 “조종미숙에 따른 사고”라며 책임을 회피하다가 동료 굴삭기 사업자들이 항의하자 산재처리를 해줬다.
부산의 한 건설자재 회사, 지난 15일 지게차로 적재작업을 하던 박수웅(가명)씨가 주변에서 작업 중이던 건설노동자를 쳐 사망케 한 사고가 발생했다. 박씨는 경찰조사에서, 지게차에 실은 건설자재가 시야를 가려 전방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이동하다 사고를 냈다고 진술했다. 자재회사는 유족에게 보상 뒤 박씨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놓은 상태다.
건설기계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사흘에 한명 꼴로 인사사고가 터진다고 한다. 전복, 낙하, 협착, 추락, 충돌, 그리고 트럭건기의 경우 일반 교통사고까지. 이들 대부분은 규정된 안전관련 법규나 지침을 준수하지 않아 일어나고 있다. 재정이열악한 건설사들이 관련비용을 아끼려다 생기는 불상사인 것. 사고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것도 문제다. 이에 본지가 안전사고 유형과 현장 실태, 관련 법규와 사후 책임 등을 집중 취재했다.
△기종별 사고유형=본지가 고용노동부로부터 입수한 ‘건기관련 사고현황’을 살펴보면, 매일 5.5건의 건기 사고가 터지고 있다. 3일에 1명꼴로 사망한다. 건기관련 재해(사망자) 수를 보면, 2008년 2053명(135) △2009년 2090(123)명 △2010년 1878(118)명 △2011년 2012(137)명을 기록하고 있다.
작업종류에 따른 기종별로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양중작업용 건기인 천공기와 기중기 등은 전복과 낙하사고가, 굴삭기는 협착과 추락·충돌사고가 많다. 지게차는 전복과 충돌사고가 주이며, 도로주행이 많은 덤프나 믹서트럭의 경우 교통사고 비중이 높았다.
본지 취재결과, 굴삭기의 경우 충돌과 협착사고가 많았다. 대부분은 굴삭기가 작업 중 건설노동자를 치는 경우. 좌우로 움직이는 굴삭기의 상부나 붐·버켓 등에 치이거나, 이동 중인 굴삭기에 충돌하는 사고였다. 굴삭기 고리에 줄을 걸어 건설자재를 옮기는 경우, 줄걸이를 하다 신체의 일부분이 끼어 협착사고도 자주 생긴다.
이에 대해 공육굴삭기 대여사업자 김지성씨는 “작업장 주위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작업환경 상 그렇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접근해 있는데 조종사가 발견하지 못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게차는 충돌과 전복사고가 잦다. 작업장 주위에 있는 사람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중량물을 과하게 싣다보면 운전시야를 확보하지 못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면이 고르지 못하거나 건설자재들이 널브러진 곳에서는 전복사고가 잦다.
천공기와 타워크레인은 전복과 낙하 사고가 주다. 기계 높이가 몇십미터씩 하다 보니 지면에 튼튼하게 고정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지반이 약한 해빙기나 폭우, 그리고 태풍으로 전복사고가 빈발한다. 덤프나 믹서트럭은 도로운행 중 일어나는 교통사고가 대부분이다.
법규 안지켜 빈발하는 ‘인재’
△안전사고 관련 법규=건기 안전사고 관련 법규는 건설산업 전체의 안전을 포괄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에서 출발한다. 그 법에 따라 건기 작업시 건설노동자를 보호할 취지로 제정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하 산안규칙), 그리고 이 규칙에 근거해 한국산업안전공단이 제정한 ‘건기 표준안전작업지침’(이하 건기작업지침)이 있다.
산안법을 살펴보면, 건설사는 안전보건관리규정을 만들어야 하고(20조), 굴착·채석·하역·운송·운반·해체·중량물 취급 등의 작업을 할 때 불량한 작업방법 등으로 발생하는 위험을 방지할 필요조치를 하여야 한다(23조). 또 기초안전보건교육(31조)도 실시해야 한다. 관련법 주요내용과 안전의식제고 1시간, 작업별 위험요인과 안전작업방법 2시간, 건강장애 위험요인과 건강관리 1시간을 교육해야 한다. 위반시 건설노동자 1인당 5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아울러 공사비에 비율에 따른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책정·사용해야 한다. ‘건설업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및 사용기준’에 따르면, 총공사비 4천만원 이상인 공사에 적용된다. 양중기ㆍ건설기계 등의 움직임으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유도자 또는 신호자의 인건비나 안전시설과 개인안전도구 구입에 사용토록 하고 있다.
산안규칙을 보면, 38조는 건기작업의 경우 작업계획서를 작성토록하고 있다. 40조는 유도자와 신호수를 배치하도록 했다. 또 건기 출입·이동로의 건설노동자 출입을 금지하며(20조), 추락·낙하·전도 등의 사고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보호구를 지급하도록 하고(32조), 악천우에는 작업을 중지(37조)해야 한다. 204조의 경우 건기를 주된 용도외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산업안전관리공단이 제정한 건기작업지침(KOSHA CODE C-13-2005)을 보면, 타워크레인을 포함해 대부분의 건기 안전작업지침을 담고 있다. 사용 전후, 그리고 사용 중 안전을 위한 확인·실천 사항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안전교육·보호장구착용부터
△작업현장의 안전실태=건설현장의 안전사고는 본지 확인결과 대부분 관련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모두에 사례로 든 김영수 사망사고를 봐도 안전수칙을 따랐다면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지적.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현장에 차량 유도자나 신호수가 배치돼 있지 않았고, 지면이 평탄치 않아 무거운 건설자재를 이동하다 전도된 것이다. 법규에 따르면, 건기 작업시 유도자나 신호수를 배치하고 전복되지 않게 지면을 고르도록 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건설노동자들을 보호할 법규정은 나름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다만, 어떤 이유에선지 현장에서 관련법규가 지켜지지 않아 안전사고가 줄지 않는다면, 감독관청의 강력한 행정지도 또는 단속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성복 서울경기인천10굴삭기협회장은 “몇몇 대형건설사를 뺀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법이 정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건설사들의 불법행위가 건기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지난해 ‘건설업 재해율’을 살펴보면, 공사금액 3억원 미만의 소규모 공사현장 재해자수 비율이 41.4%인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 재해자 10명 가운데 4명이 3억원 미만 소규모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셈.
소규모(영세) 공사현장에서 재해율이 높은 이유는 보호장구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기 때문. 국민권익위의 ‘2011년 건설업 업무상사고 사망자’ 자료에 따르면, 복장이나 보호장비 부적절로 발생하는 재해 사망자가 24.2%나 됐다. 이중 85%가 ‘50인 미만’의 건설현장에서 발생했다. 안전화와 안전모 등의 보호장구를 안전관리비를 책정해 지급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소규모 사업장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건설사들이 법을 지키지 않아 안전사고가 줄지 않고 있지만 정부의 행정지도(단속)는 미흡한 상황이다. 산안법에 따르면,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으면 사업주나 근로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 적발사례는 없다. 고용노동부의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10년 이후 3명 이상 사상자가 발생한 중대재해 현장 19곳 가운데 관련자가 구속 처리된 경우 단 2건에 불과하다.
강성조 전국지게차연합회장은 이에 대해 “안전을 최우선시해야 할 건설현장이 이를 망각하고 공기단축이나 이윤 등을 최우선시 하다 보니 안전사고가 줄지 않고 있다”며 “건설현장 재해를 줄이려면 관련 법규를 지키지 않는 건설사를 추방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법규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영세한 건설현장 재해가 잦은 건 법규상 허점이 있기 때문. 산안법에 따르면, 건설노동자에게 기초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토록 하고 있지만 현재 적용대상공사는 ‘120억 이상 공사’일 뿐이다. 다행히 2014년 12월부터는 ‘3억원 미만’ 건설공사에도 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토록 지난해 법 개정이 된 상태. 또 하나 꼽히는 사각지대는 ‘4천만원 이하’ 공사의 경우 안전전관리비를 책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책임소재 불분명, 업계 분통
△사고 뒤 책임소재 불분명=안전사고 관련 법규들은 대부분 사고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작 사고 현장에 가면 으레 책임소재를 놓고 건설사와 대여사업자간 책임공방이 벌어지곤 한다. 명확한 법규 조항이 없어서 그렇다. 특히 인사사고로 건기조종사가 사망하면, 건설사들의 일방적 주장 외 증거가 없다보니 사고책임을 건기업자가 뒤집어쓰는 경우가 있다.
모두에 소개한 지게차대여업자 박수웅씨 사고의 경우도 책임소재를 두고 박씨와 건설자재업체가 실랑이를 벌였다. 박씨는 현장지시에 따라 작업하다 생긴 사고니 임차인 책임이라 주장하지만, 자재업체는 조종사 운전실수 때문이라며 박씨에게 구상권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건기 대여업계는 건설사가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설사가 안전사고 예방 의무를 지닌 만큼 일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자주식굴삭기협회 임원을 맡은 고동주씨는 “건기 작업반경 주변에서 일하다 사망하는 노동자의 경우 건기 대여사업자가 가입한 보험으로 보상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분명 건설사가 사고예방 책임을 가지고 있는데도 대여사업자가 책임지는 꼴이지만 그만두라 할까봐 따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건설사들은 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조종실수는 당연히 대여업계가 져야 한다는 것. 한 건설사 관계자는 “현장에 투입되는 건기 중 연령이 오래된 건설기계가 많이 있다”며 “노후 건기로 작업을 하면 사고날 확률이 커지는 데 그걸 모두 우리더러 책임지라는 건 억지”라고 주장했다. 또 “안전을 위해 교육을 하고 지시에 따라 줄 것을 요구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다 사고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우리 책임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건기 대여사업자들은 건설노동자들과 달리 건설사 피고용자가 아니다보니 계약상 임대업자의 지위를 갖고 있을 뿐이다. 사고가 터지면, 잘잘못을 따져 책임을 부여받게 돼 있다. 문제는 사고원인과 책임을 어떻게 그리고 누가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느냐이다.
이 처럼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안전 전문가들은 건기대여업자들에게 사고예방을 위해 산재보험을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건설사가 안전 관련 법규를 잘 지키고 있는지도 잘 살펴야 한다고도 충고한다.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지도과 한 관계자는 “건기 산재보험은 대여사업자가 전부를 납부하도록 하는 임의사항이지만, 사고 발생시 배상금을 보장할 가장 효과적이 보험인만큼 반드시 가입을 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안전 관련 법규 숙지와 건설사의 준수여부 감시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건설노조 한 관계자는 “건설사는 작업현장 내 사고를 예방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며 “관련법을 지키지 않을 경우 반드시 이에 대한 이의제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