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에집[주조장]일제 말경에 주조장 이정교씨 집터에서 김귀진(명윤 부친)씨가 창업
- 타면공장[목화타는 공장] 허승규 집터에서 강연식씨가 창업
- 제재소[널 키는 곳] 옥대 김홍기씨가 해방후로 타면공장 자리에 창업하였고 그 후로 박부수씨가 엠파이어 자리에서 하였다.
- 아이스깨기 공장[어름과자] 현 향교 식당자리에서 박부수씨가 창업
- 양곡배급소[배급소] 현 양화점자리에서 돈지 조상승(참삼부친)씨가 하였다.
- 석유배급소[석유판매] 현 마을급고 자리에서 박창수씨가 하였다. 그 후 조운환씨가 허승규 집 자리에서 하다가 고향상회 옮겨 공급하였으나 농협 주유소가 생긴 후 폐업 하였다.
- 양곡상[농산물] 돈지 박병희씨, 향교 조운환씨, 조신환씨가 하였다.
- 생애집[상여집] 돈지는 현 세종의원 자리에 있었고, 향교는 보건소 위쪽에 있었다.
- 엿방[엿장사] 항교 구기자 건조장 터에서 박효만씨가 하였다.
- 성냥간[대장간]구기자 건조장 입구에서 김문흥씨가 하였고 옥대가는 신사당 밑에서 김병태씨가 하다 장터에서 박진섭씨가 하였다.
- 말수입상[말장사] 해방 후 제주도에서 결혼식 때 쓰는 말 수십마리씩 가져와팔았던 진도 유일의 말수입 거상은 발일청 조부로 현 위치.
- 예배당[중앙교회] 박치언씨 집터 - 이복수씨 집터 - 현위치
- 복래점방[상점] 거룡 박복래(병화부친)씨가 처음 유행슈퍼 자리에서 하다 현 하마장 약방 자리에서 하였다.
- 통메는 집[목제 물그릇] 유행슈퍼 자리에서 만길 이재휘(영춘부친)씨가 통메는 기증자로 우리지역 생활도구를 만드셨다.
- 두부집[두부제작] 수보당약방 터에서 박봉근(정식부친)씨가 하다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두부와 콩나물을 같이 하였다.
- 자전차포[자전거] 현 박병청씨 집자리에서 해방 후 박승준씨가 처음하였고 향교 이덕효씨 돈지 박평수씨가 하였으며, 현재는 박현수씨가 하고 있다.
- 양복점[옷제작] 수정다방 터에서 박양배씨가 하다가 박상래씨가 하였고 농협앞에서 박상수(병영부친)씨가 하였으며, 평화이발관 자리에서 오기종 형제가 하다가 조재명이 하였다.
- 빵집[제빵] 면사무소 앞에서 이기태씨가 아사이(조일) 겐마이(현미 빵) 조병종씨가 붕어빵, 김점마씨가 찐빵, 김병화 부친이 찐빵을 하였다.
- 이발소[이발관] 현 황금식육점 자리에서 옥대 김기조씨와 아들 김판용씨 이어받아 하였으며 마루통 옆에서 김봉래씨가 하였고, 조문승씨, 이분환씨, 한한수씨, 김영옥씨가 이어오고 있다.
- 기름집[기름틀집] 일제 말경에 돈지 박문술씨 부친이 돈지마을 회관 부근에서 하였고 향교는 이기태씨가 동쪽 골목에서 하였다.
- 사진관[사진업] 창포 박양식씨(조광사진관), 중리 이기주씨(의신사 진관), 표봉열씨(태양사진관) 초사 박봉구씨가 하였다.
- 방앗간[떡, 고추제분]김영일씨, 이장근씨, 박명철씨, 허봉철씨가 하고 있으며 기름집도 겸하고 있다.
- 철공소[농기계 수리] 박평수씨, 이일연씨, 이동열씨가 하였다.
- 전파사[전자제품수리]박일준씨, 조선환씨, 박청명씨, 김영남씨로 이어하고 있다.
- 주재소[파출소]일제때는 조재소라고 하여 유치장까지 있었다.
- 소방서[소방대] 파출소 앞 겨알 은덕비 자리에 있었고 초대 소방대장은 중리 김봉화씨고, 명금 소방서는 탑곡에 있었으며 초대 소방대장은 김양민씨였다.
- 공화당[마을회관] 돈지는 궁자네 집터. 향교는 현 회관 자리이다.
- 택시부[영업용 택시] 정부시책사업으로 교통수단 개선책 마련을 위하여 각 면마다 영업용 택시회사를 배정 사업자 신청에 의거 추첨 결과 현 사장인 박병영씨가 당첨되어 현재까지 유지
- 협동조합[단위농협] 각 마을마다 있던 협동조합을 면 단위로 통합하여 현 과일백화점 자리에서 의신단위농협으로 발족하여 초대농협장에 중리 허절길씨가 하였고 칠전지역과 사천지역은 진도농협으로 편입
- 우체국[의신우체국] 1963.12.15일 박갑수씨가 사설 우체국 개설
- 중학교[의신중학교] 1965년 3월 박동환 선생님이 설립
- 의료조합[의료기관] 1952년경 향교출신 박귀수 의사(국회의원)께서 현 양화점 자리에 행정기관과 연계 의신진료조합을 운영 진료업을 하였다. 오늘날 의료보험 원리와 흡사하게 추진하였다.
- 진료소[의료기관] 5.16혁명후 정부에서 무의면 해소를 위해 이일연 집터에서 한창학의사와 한의사 등이 와서 진료업무를 보았다.
- 개인의원[의원] 옥대리 입구에서 허옥인이 건물등 장비를 설비하여 김지일의사, 이준석의사, 또 한의사 등 초빙하여 의료사업을 운영하였고 현재는 송정 박창선(의사)씨가 세종의원 설립 현존하고 있다.
- 보건소[보건지소] 의신장터 위에 있으며 치과 업무와 같이 보고있다.
- 약업[약국, 약업사] 조정환(영생약포)씨, 허중현(장안약국)씨, 허옥인(의신약방에서 하마장으로 개칭)씨, 박병훈(수보당약방)씨.
- 의원(의원) 안덕재(박병현씨 집터)씨, 정몽암(조은환씨 집터), 박화준(김병화씨 집터), 허금정, 박종신(양화점 터)씨, 이정옥(등대다방터)씨, 안의원(박방원 집터)
- 여관[여관] 성은장, 의림장
- 금고[새마을금고] 새마을 사업과 연계하여 인근 부락간에 금융단체를 조직하여 운영하다 모두 폐하고 금갑 새마을금고만이 존속하여 의신돈지 현 위치로 확장 운영하다 진도읍 새마을 금고와 통폐합 운영하고 있다.
- 철물점[각종 건축물] 박양식씨, 박재식(의신철물)씨, 김민회(영신철물)씨, 박홍식(삼거리철물)씨
- 농약사[농약판매업] 박기언(대성농약)씨, 조정희씨, 임진욱씨, 김동일(의신농약)
- 세탁소[옷세탁업] 창포리 박영씨가 하였고, 김상남(은하세탁소)씨, 정귀문(제일세탁소)씨가 현존하고 있다.
- 구두집[양화점] 창포 박진남씨가 현존하고 있다.
- 옷배집[포목상]김병화 모친에 이어 자부가 하고 있고, 서옥예씨가 구두방과 겸하여 하고 있다.
- 대서소[대서] 향교 이옥산, 돈지 문동조, 중리 김영식
- 시계방[시계판매수리] 황갑성(중앙시계점)씨가 현존하고 있다.
- 중장비[굴삭기사업] 박병남(의신중기), 박득준(동신중기), 이상환(백두중기), 김정순(옥대중기)
- 당구장[당구] 박흥식(궁전다방 이층)씨
- 카센타[차정비] 허윤성(수영카센타), 박태석(태성카센타).
- 마을재산기증[공유재산] 돈지 박연출(돈지 어린이집 이층 증축비)씨, 조명(현 마을 회관부지)씨, 허옥인(돈지 앞 민속놀이 마당부지 일부)
- 향교 새마을금고[금고] 정부시책사업으로 마을금고를 설립운영 초대 이사장 허온인은 이년 만에 천만원 자산을 이뤄 진도에서 잘되는 금고로 선정되었으나 이사장이 바뀌면서 자산분배
- 돈지 새마을금고[금고] 초대 이사장 이형순씨가 하였다.
- 농촌지도소[지도분소] 의신면사무소 입구 좌측건물
- 예비군 중대장[예비군] 침계 박종청씨, 돈지 박명철씨, 향교 이현옥씨, 돈지 박병정씨, 향교 이철복씨, 신정 임근욱씨, 옥대 박원태씨 현존
- 목공소[가구점] 평화이발관 자리에서 여운암 목수 고용 허옥인 창업,
길목다방 자리에서 주남철씨, 의신목공소 이현배씨 현존
- 양말공장[양말]조인섭씨가 무명실로 양말과 내의를 만들었다.
- 도장[인장] 향교 강만술씨, 향교 dlrlcndTL, 돈지 박흥식씨, 돈지 박맹우씨, 향교 박봉구씨 처.
- 다방[찻집] 등대다방, 소라다방, 수정다방, 길목다방, 성은다방, 진주다방, 궁전다방, 루주다방, 모모다방, 설다방
- 상여[장의사] 신정 김연배씨가 하였다
- 미용실[미장원] 혜미, 소라, 칼라, 바다, 댕기머리 미용실
- 건강원[건강식품제조]장터 건강원
- 상점, 점방[슈퍼] 농협하나로 마트, 9번 슈퍼, 유행슈퍼, 중앙슈퍼, 매일슈퍼, 평화식품, 장터상회, 수광슈퍼, 돈지슈퍼, 아모래, 과일백화점등이 있다.
- 식당, 식육점, 주점[음식점] 9번식당, 중국성, 한방가든, 로멘스주점, 새비네정육점, 경인호푸, 마루통호푸, 오리알주점, 돈지그집, 일광식당, 대원식당, 도항횟집, 아리랑식육점, 장터식당, 향교식당, 25시주점, 제일식당, 길목정, 길손주점, 중앙음식점, 등대호푸, 무등산호푸, 탁식당, 금갑주점등이 있다.
- 유흥주점[술집] 무랑루즈, 엠파이어, 스카이
- 노래방[노래연습장] 성은 노래방
- 농수산물[판매] 고향상회, 바다랑 땅이랑.
- 청우 임향선생 추모비
출저 : 돈지마을 공식 홈페이지 http://ijindo.net/us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