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씨는 크게 오첨系(삼국시대)와 오인유系(고려시대)로 나뉩니다.
1.신라 지증왕때의 오첨을 도시조(원조시조)로 하는 오씨들
(1)분관 前-본관이 생기기 전에 신라 때에 진골이나 성골이 담당할 수 있는 각간,대각간의 벼슬을 지낸 吳公들과, 고려조 장화황후와 그의 父인 오희(다련公), 윤관과 함께 여진족을 토벌한 오연총장군(문양공,이부/병부/예부판서-오늘날장관급 및 중서시랑평장사-오늘날부총리급을 지냄)으로 그 맥을 이어옴.
(2)분관 後 -크게 해주오씨,동복오씨,보성오씨계가 있다.
1)해주오씨系
가.해주오씨-오연총장군의 직계후손 오수권(오첨의 23세손,오늘날의 국방부장관인 병부전서를 지냄)의 장남인 오현보(고려상장군-오늘날육군대장,중서문하성의 참지정사-오늘날장차관급을 지냄)를 시조로 함. 김취려장군 등과 함께 거란을 토벌한 공으로 해주君에 봉해짐.
나.함평오씨-시조 오잠(吳岑)은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보(해주오씨의 시조)의 넷째 아들이다.
오잠은 고려 원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시중 평장사, 태자태사(오늘날 국무총리급) 등을 역임하고 좌명공신으로 함풍군(함평)에 봉해져서 해주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함평으로 하였다.
다.나주오씨-해주오씨시조인 오현보의 5남인 오숙규(吳淑珪)를 시조로 함.
그후 3대에 걸친 후손이 분명하지 않으므로 오숙규를 시조로 하고 오숙규의 5세손 오언(吳偃)-중랑장(장군의보좌관)을 1세 조상으로 하였다.
오언의 5세손인 오자치는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적개공신에 오르고 병조참판(국방부차관급)을 지냈다. 그의 후손 오겸은 우의정(국무총리급)을 지냈다.
라.평해오씨-시조 오극중은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보(해주오씨의 시조)의 후손이라고 하나 그중간의 기록이 없어 확실하지는 않다. 오극중은 고려 때에 문하시중(오늘날 국무총리급)을 지내고 동지추밀원사에 추증 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평해로 했다.
마.연일오씨-시조 오흡의 선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연일지방에 대대로 살아오던 양반 집안이다. 해주오씨로 환원했다는 정보가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그는 고려에서 전서를 역임했으며 조선 중종 때 형조판서(오늘날 법무부장관)를 지낸 오준은 그의 5세손이다.
바.낙안오씨-시조 오사용은 도시조 오첨의 32세손이다.
오사용은 고려 때에 북쪽의 합단과 일본의 침입을 토벌할 때 김방겸과 함께 참전하고 이때의 포로를 원제에게 돌려보내고 금비옥대를 받았으며 왕으로부터 자금어의를 하사 받고 낙안군에 봉해 져서 본관을 낙안으로 하였다.
2)동복오씨系
가.동복오씨-오연총장군의 직계후손 오수권의 차남인 오현좌를 시조로 함.그는 고려 고종때 형인 현보와 동생인 현필과 함께 거란을 정벌한 공으로 동복君에 봉해졌다.오녕은 그의 장남으로 녕(寧)의 손자 대승은 시중(오늘날 국무총리급)을 지냈다.
나.군위오씨-동복오씨의 시조인 오현좌의 차남 오숙귀를 시조로 함.그는 고려조에서 벼슬하면서 군위군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군위오씨로 분적했다.그러나 제주도에 집성촌이 있다. 제주도출신오씨의 대부분이 군위오씨이다.
3)보성오씨系
가.보성오씨-오연총장군의 직계후손 오수권의 삼남인 오현필을 시조로 함. 그는 고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고종 때 형인 오현보·오현좌와 함께 거란을 토평한 공으로 보성君에 봉해졌다.
나.화순오씨-시조 오원은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필(보성 오씨의 시조)의 셋째 아들 이다.
오원의 후손들이 고려조에서 벼슬하고 화순에서 대를 이어 살면서 본관을 화순으로 하였다.
다.함양오씨-시조 오광휘는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필(보성오씨의 시조)의 넷째 아들이다.
오광휘는 고려말에 문과(文科)에 장원하고 상서성 좌복야를 거쳐 흥위위상장군으로 삼척 울진에 출몰했던 외적(外敵)을 토평한 공으로 추충정난광국공신에 서훈되고 함양부원군에 봉해 졌으므로 보성 오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함양으로 하였다.
라.장흥오씨-시조 오천우는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필('보성오씨'의 시조)의 6세손 오사염의 둘째 아들이다. . 오천우가 조선시대에 병마절도사(오늘날 군단장급)를 지냈는데 그의 후손들이 장흥에 대대로 살면서 '보성오씨'에서 분관하여 장흥을 본관으로 삼았다.
마.전주오씨-시조 오준민은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필(보성오씨의 시조)의 9세손이다.
그는 고려 때 병부상서(국방부장관급)로 공을 세워 완산(전주)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전주를 본관으로 했다.
바.두원(흥양)오씨-'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시조는 영로(寧老)라 전한다. 그는 현필(보성오씨 시조)의 후손으로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판전농시사와 대사헌(오늘날 검찰총장급)을 역임하고 두원( : 흥양의 속현)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보성오씨에서 분적하여 흥양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4)고창오씨계
시조 오학린은 도시조 오첨의 17세손으로 시문에 정통하고 벼슬은 한림학사에 이르렀다. 고창오씨를 해주오씨계열로 분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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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공주(公州)에는 해주군, 동복군,보성군의 삼군단(三君壇)묘소에 공주유림 주관으로 매년 음력3월에 춘계향사를 지내고 있다.
2.해주오씨 오인유系
1)해주오씨
오인유에 대해서도 일부에서는 중국 송나라 대학사로 보는 이도 있으나 대동종친회에서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오인유는 고려조때 검교군기감(오늘날 국방부차관보쯤으로 생각됨)을 지냈는데, 오첨과 오인유와는 어떤 관계인지 역사적 문헌이 불확실해 고증하기 힘들며, 오인유와 오현보(吳賢輔)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일부에서는 오인유계과 오현보계를 같은 뿌리로 보고 상호간의 통합을 주장한다. 현재 해주오씨의 족보도 양계가 서로 섞여 있다.
2)울산오씨
울산오씨의 시조는 고려 금자광록대부 검교군기소감 전 도염서동정(高麗金紫光祿大夫 檢校軍器少監 前 都染署同正)을 지내신 해주 오씨의 시조 오인유(吳仁裕)의 6세손 효성(孝成)의 차자(次子)인 문충공(文忠公) 오연지(吳延祉)이다(효성의 장자는 연경(延慶)임) 고려 충렬왕때 진사 문과로 관직이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郞 平章事,오늘날 부총리 또는 장관급)에 이르렀고 동남변경을 침범하는 왜구(倭寇)를 토벌한 공으로 울산의 옛이름인 학성군(鶴城君)에 봉해졌으며 이후 후손들이 해주 오씨에서 분적하여 울산을 본관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