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제 10편
환난 때의 악인들, 그리고 홀로 서 있는 의인의 굳센 믿음
본문 말씀은 세상에 죄악이 번성하여 가득한 때, 온 세상에는 오로지 악인들로만 가득 차 있고 의인을 눈 씻고 찾아보아도 찾기 어려운 때에, 어딘가 홀로 남아 있어 마치 고아와 같이 외로운 처지로 서 있는 의인의 입장에서 쓴 거룩한 시문이다.
시편 제 10편 말씀을 대하게 될 때, 말씀을 보는 다음의 두 가지 핵심적인 교훈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교훈은 다음과 같다. 본문 10편 말씀은 앞의 제 9편의 말씀과 비교해 볼 때, 약간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데, 제 9편이 ‘악인을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의 초점을 모아주고 있다면, 본문 제 10편 말씀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인내와 소망으로 기다리는 의인의 믿음’에 대하여 초점을 모아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인은 악인들이 가득찬 세상 속에서, 세상과 의인을 뚜렷이 구별해주는 탁월한 믿음과 소망과 경건을 가지고 사는 존재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행위를 반드시 심판하신다. 그러나 세상은 당분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느 순간까지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는 것 같이 보일 것이다. 이 때 홀로 서 있는 것 같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의인에게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믿음은 어떤 종류의 믿음이어야만 하는가?
본문 말씀을 대하는 핵심적 교훈 한 가지가 바로 이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인은 과연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가?’를 아주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마다 ‘악인을 정의하는 기준’이 너무나도 다양하고 가지각색이다. 혹은 이런 종류의 사람을, 혹은 저런 종류의 사람을 ‘악인’이라고 부른다. 악인의 눈으로 그와 똑 같은 악인을 보았을 때에는 그 사람은 더 이상 악인이 아니라 좋은 사업 파트너 내지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말세가 될수록 기준과 원칙이 점점 더 모호해지고 혼탁해진다. 그러므로 말세를 사는 성도일수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절대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앞 서 언급한 두 가지의 핵심을 염두에 두고 본문 말씀을 묵상하게 된다면, 많은 위로와 은혜와 진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1. 시편 기자는 본문 말씀의 초두에 깊은 고민과 탄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무언가를 여쭙고 있다. 당시 시편기자가 처한 상황은 어떠한 상황인가? 시편기자의 고민은 무엇이었는가? (1, 2절 말씀)
2. 악인의 사상(思想)을 지배하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3절~6절 말씀)
2-2. 악인의 ‘겁을 상실한 고백’은 그의 사상으로 말미암는 것이었다. 악인의 겁 없는 고백은 주로 어떤 종류의 고백인가? (4절, 6절, 11절, 13절 말씀)
* 시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악인의 사상’은, 하나님이 본래부터 계시지 않는다고 믿는 사상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도, 하나님은 자신의 악행에 대하여 관여하시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악행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계실 것이라고 믿는 사상을 가리킨다.
이것은 분명 지존(至尊)하시고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극악(極惡)한 사상이다. 만유를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마치 심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요, 공의로 심판하시는 직무에 관심이 없는 하나님으로 만홀히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을 ‘실질적 무신론 (實質的 無神論)’, 혹은 ‘실천적 무신론 (實踐的 無神論)’ 이라고 일컫는다.
로마서 1장 18절~32절까지의 말씀에서도 동일한 악인들의 ‘실질적 무신론’ 을 엿 볼 수 있다. 본문 말씀에 표현되어지고 있는 악인은 하나님을 알 만한 양심이 주워졌지만, 자기 정욕과 욕심에 마음이 어두워진 사람들을 의미한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 ‘실질적 무신론자’가 얼마나 많은가?
3. 본문말씀에 나오는 악인은 주로 무엇을 자랑하는가? (3절 말씀)
4. 악인의 언어생활에 나타나는 특징은 무엇인가? (7절 말씀)
5. ‘저가(악인이) 향촌(鄕村) 유벽(幽僻)한 곳에 앉으며…,’(8절 초반절) 8절~11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악인이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어딘가 깊은 산골, 아무도 보지 못하는 깊은 산중을 아주 의도적으로 숨어 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때 깊은 은신처로 숨어 들어가는 악인의 목적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 악인이 의인을 공격하는 비열한 방식에 주목해 보자. 아주 의도적으로 의인이 지나갈만한 곳에 덫을 준비하고 은밀한 곳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 기다리는 악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 본문말씀에 나오는 ‘악인의 속성’은 곧 ‘마귀의 속성’을 나타내 주고 있다. 마귀의 속성은 ‘비열함’과 ‘잔인함’이다.
6. 악인의 강포와 비열함을 지켜보고 있던 시편기자는 마음에 풀리지 않는 답답함과 깊은 탄식이 있었다. 이 때 시편기자의 답답함은 어떤 종류의 답답함이었는가?
6-2. 당신에게도 이러한 답답함과 탄식이 있는가?
7. 시편기자는 답답함과 탄식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이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다. 본문 12절~18절 말씀의 기도문 속에 나타난 정서는 분명히 열렬히 부르짖는 뜨거움이 녹아 들어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 기도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
* 본문 12절~18절 말씀에 나온 시편기자의 기도는 마치 주무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깨우고 있는 격정(激情)이 느껴지도록 묘사되어져 있다. 만유의 하나님을 향하여 감히 명령하듯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일어나옵소서. 손을 드옵소서. 잊지 마옵소서. (12절 말씀)
꺽으소서. 찾으소서. (15절 말씀)
본래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이시다.(시121:3,4) 그런데 왜 시편기자는 이토록 격정적으로 기도하였을까? (눅 11:8)
8. 시편기자가 그토록 강청하는 기도를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는 지식’과 그 지식으로 말미암는 ‘믿음’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시편기자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는가?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주시리라고 믿었는가? (14절, 16절~18절 말씀)
* 시편 기자가 만유의 하나님에게 감히 명령을 하듯 강청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만홀히 여겨서가 아니었다. 또는 자신의 욕심대로 감히 하나님을 마음대로 움직여 보려고 해서도 아니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본래 어떤 분이시며, 또 무엇을 깊이 원하고 계신지를 알았다. 또한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영광 받으시는 지도 잘 알았던 것이다.
9. 본 시편 말씀을 통해서 당신은 무엇을 깨달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당신의 삶 속에 적용해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