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잠든 그 사람에
김 순 련(포항회원)
작년 7월의 날은 내 생애 가장 뜨겁고도 얼음같이 차가운 여름 날 이였어요.
10년 전, 우리가 했던 약속!
머리가 허연 영감, 할멈이 되어도 잊지 말고, 친구처럼 만나서 옛 이야기 나누면서 살자고 했던가요.
갑자기 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버스를 타고 동해안을 달렸지요. 언제 찾아가도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을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달리는 버스는 그리운 임 찾아가는 기쁨을 알기라도 하듯 빠른 속도로 달렸고, 차창 밖의 파도는 덩달아 춤을 추며 저를 따라왔지요.
바다를 백지삼아 온화하고 넓적한 당신의 얼굴도 그려보고 만나면 무얼 할까 무슨 말부터 할까? 적어도 보면서요.
노래방에서 통닭을 시켰어요. 당신을 만날 구실은 그것 뿐 이였으니까요.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당신이었는데 배달 온 낯선 아저씨,
“주인아저씨는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배달가다 친구의 차에요.”
순간 머리가 다 비워진 듯 멍하니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했어요. 죽음에 대한 생각조차도 해본 적 없었을 텐데, 반평생 고개도 넘어보지 못하고 저 세상 사람이 되다니요.
펑펑 울었어요.
우리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안타까워서 울었고, 다시는 함께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서러워서 또 울어야 했습니다. 늘 높은 곳에 있는 사람보다는 낮은 곳의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착한 당신이었기에 더욱 슬펐습니다.
내가 어두운 삶의 귀로에서 헤매고 있을 때, 따뜻한 손길로 내 손을 잡아주던 온기가 네게는 아직 남아 있는데, 당신은 이미 기막힌 나의 이런 통곡마저도 들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니요?
그러나 그날 당신이 꿈속에 편안한 모습으로 나타나 주더군요.
다음날 뜨거운 태양을 벗 삼아 파도소리 노래삼아 우리의 발자취가 묻어있는 곳을 다 헤집으며 미친 듯이 우리의 추억을 찾아 다녔지요.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우리는 그렇게 발자국을 찍고 다녔더군요. 갑자기 씁쓸한 웃음이 포말처럼 일었어요.
태풍이 온 동네를 쓸어버렸던 그 해 겨울 기억나시나요.
산모퉁이에 바다가 보이는 작은 레스토랑에서 끊어진 전깃불 대신 촛불을 켜놓고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분위기를 한껏 잡았던. 그 곳엔 사람의 흔적이 끊어진 지 오래인 듯 더위에 늘어진 무성한 풀잎들만 힘겹게 버티고 있을 뿐 당신이 떠날 줄 알았던가. 추억의 장소도 하나 둘 사라지고 남은 건가고 없는 사람에 대한 슬픔 뿐 가슴이 또 아려와 얼른 그 자리를 떠났지요.
한 해가 저물 때면 잊지 않고 있음을 알리는 연하장을 보내는 일이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이제 그 이름 석 자 어디에 써야하나요.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말하지만 내가 마지막 순간까지 간직하고 있는 건 환한 웃음 지으며 함께 찍은 필름 속의 우리모습입니다. 내 마음을 버리지 않는 한 그 기억만은 영원히 소중하겠지요.
먼 날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나의 가슴에 남아있는 기억으로 당신을 추억할게요.
부디 좋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2007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추억에 묻혀버릴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