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족산에서 外청룡이 활기차게 꿈틀거리며 운암산 남암산을 거처 청량산 망해사지터 뒷산인 영취산으로
울산 남산 십이봉우리로 활용으로 내려 가다 울산에 三大 명혈을 낳는다
이름하여 은월혈 한림혈 왕생혈이다
은월혈에 묘자리를 잡은 학성이씨 문중에서 무수한 큰인물이 나왔고 한림혈터에 울산 농고를 세워 울산 농고에서 학계,정치계 ,경제계등에 걸출한 인물을 배출해 냈다
王을 낳는다는 왕생혈은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겨 놓아 아직까지 그 혈처가 묘연하였으나
두왕이 나온다는 두왕동 입수 자리에 세워진 학성고교를 주시해볼 필요가 있다
학성고교 자리에서 학인들과 여의주를 희롱하다가 그 여진이 용잠리로 흘러 동해 바다로 자맥질하며 들어 갔다가 다시 춘도섬에서 뭍으로 나와 개운포 처용을 낳는다
정족산의 內청룡은 향로봉으로 해서 영산대학 동쪽 현대 목장터로 흘러 들어와 죽전 못속으로 자맥질하며 솟구쳐 변화 무쌍한 연화 부수 꽃을 피워내니 천불산 연꽃이다
연꽃위에 앉아 계시는 千佛을 마음의 눈으로 보시라
내청룡의 餘氣가 용당으로 흘러 박이명 같은 조선시대 재상을 낳았다 .울산박씨 문중을 낳은 것이다
울산 박씨 문중에서 팔도 병사와 임시정부 총사령관 박상진 같은 큰 인물이 나왔으나 국운이 다하여 미국과 소련의 세계적 역학관계로 우리의 자주 통일의 꿈은 사라지고 한반도는 두동강이 나버리고 6.25 동족 상잔으로 붉은 피가 삼천리를 물들이고 말았다 .
이런 시련의 역사위에 세워지는 나라 대한민국이야 말로 세계 제일의 튼튼한 나라가 될것이다

웅하는 신라때 부터 도시라는 村으로 촌장이 살았다
곰熊자가 아닌 숫컷 웅자인 雄村으로 수천년간 불리어져 왔다
연꽃인 천불산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촌락을 上垈마실
그다음에 있다고 中垈 마실
맨끝마을이라고 下垈마실로 마을이름이 지어 졌다

연꽃모양의 우불산은 天佛산으로 불렀다 . 신라때 부터 四계절마다 임금이 찾아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 명산 중에도 하늘과 가장 가까운 명산이였다
지금은 웅상을 한문으로 熊上이라고 사용하고 있지만 원래는 雄常이였고
산해경의 예 하나 '北有樹 名曰雄 常先八代帝 於此取之' (북에 나무가 있는데 이름을 웅상(雄常)이라 한다. 항상 선대 팔대 제왕이 이것을 취해 왔다)
여기서 웅상이란 환단고기에도 수없이 많지만 하나를 예로 들면 ...自時蘇途之立到處可見山像雄常山頂皆有四來之民環聚墟落四家同井二十稅一時和年豊露積邱山萬姓歡康之作太白環舞之歌以傳....(...이때부터 소도가 세워지는 곳마다 산상웅상(山像雄常) 을 보게 되었다. 산 정상에는 사방에서 온 백성들이 동그랗게 둘러 부락을 이루었으니 네 집이 한 우물을 썼으며 이십분의 일의 세를 내었다. 해마다 풍년이요 언덕과 산에는 노적가리가 쌓이니 백성들은 즐거워 ‘태백환무’ 라는 노래를 지어 전했다....천불산(우불산)에서 소사를 지냈고 산 정상 부분에 소도를 세웠다 .그 소도의 이름을 웅상이라 했다 . 산상웅상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참 역사 서적은 부도지다
백결선생(박문량)은 노후에 양산시 웅상읍 柒田에 살면서 부도지를 저술하였다
부도지에 옻칠을 하여 오래 간직하여 내려왔다고 추정된다
백결선생은 자기아버지 박제상이 부도지를 서술하였다고 하였지만
아버지의 유명세를 빌리지 않았을까
부도지 내용은 음악의 전문가가 아니면 도저히 저술하기 힘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우불산 성터 .이 성터 안에 소도가 있었다 )
이곳의 역사를 모르는 누가 포크레인으로 성을 잘랐다 .
세상에 이런일이 !!!!!
우불산성을 보존키 위하여 몇십억의 재정이 확보되었다는데
양산시는 도대체 뭐하는지 ...?
이러고도 문화재 담당자가 국록을 받아먹고
첫댓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