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證道歌 永嘉 玄覺 大師
증도가 영가 현각 대사
君不見
군불견
絶學無爲閒道人 不除妄想不求眞 無明實性卽佛性
절학무위한도인 부제망상불구진 무명실성즉불성
幻化空身卽法身 法身覺了無一物 本源自性天眞佛
환화공신즉법신 법신각요무일물 본원자성천진불
五陰浮雲空去來 三毒水泡虛出沒 證實相 無人法
오음부운공거래 삼독수포허출몰 증실상 무인법
刹那滅却阿鼻業 若將妄語誑衆生 自招拔舌塵沙劫
찰나멸겁아비업 약장망어광중생 자초발설진사겁
頓覺了 如來禪 六度萬行體中圓 夢裏明明有六趣
돈각요 여래선 육도만행체중원 몽리명명유육취
覺後空空無大千 無罪福 無損益 寂滅性中莫問覓
교후공공무대천 무죄복 무손익 적멸성중막문멱
比來塵鏡未曾磨 今日分明須剖析 誰無念 誰無生
비래진경미증마 금일분명수부석 수무념 수무생
若實無生無不生 喚取機關木人問 求佛施功早晩成
약실무생무불생 환취기관목인문 구불시공조만성
放四大 莫把捉 寂滅性中隨飮啄 諸行無常一切空
방사대 막파착 적멸성중수음탁 제행무상일체공
卽是如來大圓覺 決定說 表眞僧 有人不肯任情徵
즉시여래대원각 결정설 표진승 유인불긍임정징
直截根源佛所印 摘葉尋枝我不能 摩尼珠 人不識
직절근원불소인 적엽심지아불능 마니주 인불식
如來藏裡親收得 六般神用空不空 一顆圓光色非色
여래장리친수득 육반신용공불공 일과원광색비색
淨五眼 得五力 唯證乃知難可測 鏡裡看形見不難
정오안 득오력 유증내지난가측 경리간형견불난
水中捉月爭拈得 常獨行 常獨步 達者同遊涅槃路
수중착월쟁염득 상독행 상독보 달자동유열반로
調古神淸風自高 貌悴骨剛人不顧 窮釋子 口稱貧
조고신청풍자고 모췌골강인불고 궁석자 구칭빈
實是身貧道不貧 貧則身常被縷褐 道則心藏無價珍
실시신빈도불빈 빈즉신상피루갈 도즉심장무가진
無價珍 用無盡 利物應時終不恡 三身四智 體中圓
무가진 용무진 이물응시종불린 삼신사지 체중원
八解六通心地印 上士一決一切了 中下多聞多不信
팔해육통심지인 상사일결일체요 중하다문다불신
但自懷中解垢衣 誰能向外誇精進 從他謗 任他非
단자회중해구의 수능향외과정진 종타방 임타비
把火燒天徒自疲 我聞恰似飮甘露 銷融頓入不思議
파화소천도자피 아문흡사음감로 소융돈입부사의
觀惡言 是功德 此則成吾善知識 不因訕謗起怨親
관악언 시공덕 차즉성오선지식 불인산방기원친
何表無生慈忍力 宗亦通 說亦通 定慧圓明不滯空
하표무생자인력 종역통 설역통 정혜원명불체공
非但我今獨達了 恒沙諸佛體皆同 師子吼 無畏說
비단아금독달요 항사제불체개동 사자후 무외설
百獸聞之皆腦裂 香象奔波失却威 天龍寂聽生欣悅
백수문지개뇌열 향상분파실각위 천룡적청생흔열
遊江海 涉山川 尋師訪道爲參禪 自從認得曹溪路
유강해 섭산천 심사방도위참선 자종인득조계로
了知生死不相關 行亦禪 坐亦禪 語黙動靜體安然
요지생사불상관 행역선 좌역선 어묵동정체안연
縱遇鋒刀常坦坦 假饒毒藥也閑閑 我師得見燃燈佛
종우봉도상탄탄 가요독약야한한 아사득견연등불
多劫曾爲忍辱仙 幾回生 幾回死 生死悠悠無定止
다겁증위인욕선 기회생 기회사 생사유유무정지
自從頓悟了無生 於諸榮辱何憂喜 入深山 住蘭若
자종돈오요무생 어제영욕하우희 입심산 주란야
岑崟幽邃長松下 優遊靜坐野僧家 闃寂安居實蕭灑
잠음유수장송하 우유정좌야승가 격적안거실소쇄
覺卽了 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각즉요 불시공 일체유위법부동 주상보시생천복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 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유여앙전사허공 세력진 전환추 초득래생불여의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但得本 莫愁末
쟁사무위실상문 일초직입여래지 단득본 막수말
如淨琉璃含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竭
여정유리함보월 아금해차여의주 자리이타종불갈
江月照 松風吹 永夜淸霄何所爲 佛性戒珠心地印
강월조 송풍취 영야청소하소위 불성계주심지인
霧露雲霞體上衣
무로운하체상의
證道歌 제12강
반갑습니다.
3월 14일 염화실 인터넷 방송법문 시작하겠습니다.
어제 이어서 오늘 증도가 단득본但得本막수말莫愁末
여정유리함보월如淨琉璃含寶月
여기서부터 할 차례인데 어제 친불회 법회하고 겹쳐지는 바람에 한구절 밖에 못했죠.
쟁사무위실상문爭似無爲實相門에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라
여래지入如來地리요 이렇게도 하고요.
그러니까 어떤 유위법을 닦아가지고 변화무쌍한 유위법有爲法을 닦아가지고 설사 천상낙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비유컨대 마치 하늘을 향해서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화살이 이제 힘 있는데까지 올라가다가 힘이 떨어지면 도로 내려올 밖에 없죠. 그것이 뭐 순식간 아니겠습니까.
우리 인생도 아주 길고 긴 어떤 생을 우리가 생각한다면은 몇십년 설사 복을 누린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잠깐 사이고 또 복이 다 끝나면은 모두 좋지 아니한 그런 말로를 보이는 그런 현상들을 많이 봅니다.
특히 뭐 다른 나라 사정은 모르겠습니다마는 우리나라에서 소위 권세라든지 부라든지 명예라든지 이런 것이 있다는 사람들의 말로를 보면 대개 그렇죠 거의 뭐 우리가 소상하게 몰라서 그렇지 아는 것만 하더라도 대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좀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 줄 알아야 되지 않겠나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해봅니다
그래서 여기는 무위실상문無爲實相門에서 여래如來의 경지境地에 들어가는 것만 같지 못하다. 어찌 그와 같겠는가 이렇게 이제 여래의 경지까지를 말하고 있습니다만 설사 여래의 경지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현재 상태에서
현재 있는 이대로의 모습에서 뭔가 완전한 것을 깨닫고 거기에서 만족할 줄 알면은 그게 무위법無爲實이고 다른 표현으로 하면은 여래如來의 지地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래의 경지라는 것은 진리의 경지지 우리가 신앙적으로 특히 대승불교권에서 부처님을 아주 과장되게 어떤 만행만덕을 갖추고 아주 위대하시고 거룩하시고 어떤 복과 신통력과 이런 것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장엄되어 있는 그런 어떤 그 인격자를 그리기가 일쑤죠 이쪽 대승불교권에서는 부처님을 대개 그렇게 상상을 하는데 사실은
여래如來란 바로 진리眞理 그 자체고 진리 그 자체란 현재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지 현재 이러한 상태대로 완전하다 하는 그런 깨달음인 것입니다.
그것이 곧 여래如來고 더 이상은 이제 없죠
설사 뭐 복을 닦고 뭘 닦아가지고 아주 근사한 인격자가 설사 됐다손 치더래도 그건 이제 유위법有爲法이라는 거죠
고 앞에서 보면은 각즉요불시공覺卽了不施功이라 이러한 이치를 현재에 들어가 완전한 줄을 알면 그걸로 끝이다 더이상의 공을 베풀 필요는 없다 더이상의 노력은 필요치 않다. 각즉요불시공覺卽了不施功 깨달으면은 그걸로 끝이고 공功을 베풀 필요가 없다 이런 말을 했어요 .
이런 상태에서 이러한 지혜가 있은 뒤에 그 다음에 사무량심을 행한다든지 육바라밀을 행한다든지 이런 것들은 어떤 목적하에서 육바라밀을 닦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그냥 삶입니다.
그냥 어떻게 또 이런 그 이치를 다 안들 또는 도를 통하고 견성성불을 했다 한들 삶은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삶이 끝난 것은 아니니까 삶은 늘 지속되기 마련입니다.
지속되는 삶을 어떤 모양으로 살 것인가
제일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육바라밀이죠.
그게 이제 불자의 살아가는 덕목인데 삶의 모습이지 그것을 뭐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이것을 주욱 닦아서 어떤 경지에 이르겠다. 어떤 목표를 내가 달성하겠다 하는 그런 뜻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본래는.
그냥 살아가는 모습이예요 그런 것들이.
그래서 그런 일들을 이런 각즉요불시공覺卽了不施功의 이치를 알고는 그런 일들을 인연 따라서 하면서 사는 거죠
뭐 안하게 되면 또 안하는 것이고 하게 되면 하는 것이고 이것입니다. 그게 이제 무위無爲의 경지고 실상實相의 경지고 여래지如來地의 경지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현재 지금 없는 모습 가정해 보는 그런 모습을 우리가 자꾸 염두에 둘 것이 아니라 현재 있는 모습 현재 있는 이대로 이것이 이제 실다운 모습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이제
단득본 막수말但得本 莫愁末이니 여정유리함보월如淨琉璃含寶月이라 다만 근본을 얻지 지말적인 것을 염려하지 말라
그랬어요. 지말적인 것을 염려하지 말라.
여기서 근본과 지말이라는 것은 근본을 얻으면은 지엽적인 것은 저절로 따라온다 이런 뜻이 됩니다. 그래서 근본은 요 밑에서 비유를 하기를 여정유리如淨琉璃 라고 했는데 유리를 말한 거죠. 유리는 지금 우리가 창문으로 사용하는 그런 유리가 아니라 옛날 광석으로 캐낸 아주 둥근 그런 큰 크고 둥글고 그것이 투명하고요 그런 아주 보물에 해당되는 칠보중의 하나죠. 그런 아주 깨끗하고 크고 둥근 유리 구슬에 달이 거기에 비춘 거와 같다. 보배달이 비춘 거와 같다 여기 보배달이라고 한 것은 그냥 달이라 해도 괜찮은데.
그런 크고 둥근 유리구슬을 한 번 상상해 봅시다. 예를 들어 축구공만한 그런 유리구슬이 아주 밝은 달이 비추고 있을 때 밖에 이-렇게 쟁반에 올려져 있다 그러면 달이 거기에 촤악 반사될 거 아니겠어요. 그안에 이제 머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함보월含寶月이라고 하는 것은 달이 그 속에 비춰들어서 그 속에 달이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런 이제, 글로는 이제 그런 표현입니다.
깨끗한 유리라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이고 또 다른 말로 하면 법신이고 진여고 불성이고 우리가 갖추고 있는 그것을 뜻하는 것이고 거기에 그냥 불성 그 자체는 누구나 동등하고 똑같죠 그러나 거기 이제 달이, 유리는 한결같습니다 그런데, 달이 비췰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이제 문제가 되겠죠
우리의 불성과 진여 법신 이것은 이제 한결같다손 치더라도 거기에 무슨 반야 해탈 지혜 어떤 복덕 이런 것들이 이제 거기에 갖춰 질 수 있느냐 하는 것 그것을 이제 수용하는 것 이런 것들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확철대오를 예를 들어서 했다고 할 경우는 똑같은 그 마음에 그런 아주 훌륭한 장엄이 잘됐다하는 것입니다.
지혜와 복덕과 해탈과 온갖 신통과 설법과 이런 것들이 장엄이 잘 되어 있다 그런 뜻으로 보월이라고 여기 이렇게 표현하는 거지요. 그것을 아주 아름답게 표현을 했습니다.
마음자리는 근본이 되고 그것은 또 비유하면은 유리구슬이 되고 지엽적인 것은 저절로 따라온다 하니까 해탈이니 지혜니 복덕이니 하는 거예요. 그건 저절로 떠오르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리구슬이 떠억 이렇게 놓여 있으면 달이 떠오르면 달이 거기에 비취게 되어있다. 그와 같이 지말적인 것은 내가 노력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딸려오게 되어 있다 이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기능해차여의주旣能解此如意珠하니 자리이타종불갈自利利他終不竭이라
그랬어요. 여기 기능해차여의주旣能解此如意珠라고 하는 것을 어떤 본에는 아금해차여의주我今解此如意珠
나 아我자 이제 금今자 그게 더 오히려 친절하죠.
이미 능히 이 여의주를 풀어놓았으니 이렇게 이제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내가 지금 이 여의주如意珠를 풀어놓았으니
이렇게 하면은 더 가깝습니다. 기능해차旣能解此나 아금해차我今解此나 뭐 뜻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죠.
이 여의주如意珠라고 하는 것이 말하자면 보월寶月을 머금고 있는 유리라 이렇게 비유를 할 수가 있고 우리 본성本性의 완전무결함을 우리가 제대로 믿고 이해하고 깨달아 아는 것 그것이 이제 말하자면은 여의주如意珠죠. 그러면은 그 여의주로써 사람들에게 베푼다라고 하는 그런 뜻에서 이걸 이제 이 여의주를 ‘내가 지금 이 여의주를 알았으니’가 아니고 풀어 놨다 이 말입니다. 끌러놨다 이거죠.
아는 것 가지고는 부족하죠 알았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알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여의주를 내가 풀어 놨다 그럼 이걸 나눠줘야 되는 거죠. 이걸 팔든지 뭐 어떻든 나눠주는데 자리이타종불갈自利利他終不竭이라
쓰는 데 있어서 나도 이롭고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하는데 아무리 아무리 나도 이롭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베풀어 줘도 결코 조금이라고 손해가 나거나 닳거나 줄거나 이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비를 베풀면 베풀수록 많아지면 많아졌지 줄지가 않죠. 지혜를 쓰면 쓸수록 많아지면 많아졌지 줄지가 않습니다. 이것이 자리이타종불갈自利利他終不竭이죠
마음의 도리는 그렇습니다.
뭐 구지화상이 손가락 하나 세우는 것을 보고 말하자면 깨달았죠 당신도 그 깨달음을 가지고 평생을 손가락 법문을 했는데 손가락 세우는 법문을 했는데 평생을 써도 다 못 썼다. 일지두법문一指頭法門 한손가락의 법문을 평생을 써도 다 못썼다. 결국 그게 뭡니까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고 그런 거지 뭐 다른 거겠어요.
불교의 핵심은 바로 그것입니다. 마음의 문제를 우리가 깊이 이해하고 느끼고 그것을 또 이제 제대로 깨닫고요 그래서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이고 나의 살림살이이고 내 재산이고 나의 참생명이라고 하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죠 불교는
그래서 그것이 어디 뭐 끝날 날이 어디 있습니까 마음 가르쳐주는데 아무리 아무리 가르쳐주고 가르쳐줘도 그건 뭐 줄어들거나 달라지거나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깨달은 사람은 꽃을 들어 보여도 마음 보여 주는 것이고 손가락을 세워도 마음 보여 주는 것이고 할을 해도 마음 보여 주는 것이고 방을 한 번 휘둘러도 마음 보여주는 것이고 경전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도 마음 보여 주는 것이고 관세음보살 불러도 마음 보여 주는 것이고 지장보살 불러도 마음 보여 주는 것이고 일체가 마음에 대한 자기 그런 그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내가 확신이라고 해서 좀 그렇지만 우리들 수준으로 표현하면 확신이죠. 근데 그 확철대오해서 정말 그것이 손에 사물이 잡히듯이 그렇게 눈에 싹 들어오는 그런 경지라면 어떻게 한들 다 마음 보여주는 일이지 일거수일투족이 마음 보여주지 않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다. 근데 그게 뭐 닳을 택이 있나요. 마음 보여주는 일이 이게 설법이고 이것이 지혜고 이것이 보시고 그러는 거죠 진정한 보시죠
그래서 내가 지금 이 여의주를 풀어놓았다 여의주를 풀어놓았다. 여의주는 마음대로 되는 구슬 아니겠습니까 마음대로 되는 구슬이니까 아무리 아무리 써도 닳을 까닭이 없는 거죠.
구슬비유를 많이 하죠. 심주라고 해서 마음의 구슬 심부주라고 하는 그런 글도 있습니다마는
법화경에도 계주비유繫珠比喩라고 하는 게 있죠 옛날에 두 친구가 있었는데 한 친구는 거부장자가 돼 있고 한 친구는 거지가 돼 있고 그렇죠 두사람이 만나서 이제 부자로 사는 친구가 이 거지 친구를 집에 초청해서 잘 먹이고 술도 실컷 마실 수 있도록 여러 배려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부자인 친구는 아침 일찍부터 볼 일이 있어서 외출을 해야 되겠는데 아 이 거지인 친구가 너무 잘먹어서 곯아떨어져서 늦잠을 자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이 사람에게다 이제 평생 쓰고도 남을 그런 여의주, 아주 값이 얼마인지 도저히 값을 따질 수 없는 그런 어마어마한 보물을 주머니에 넣어줬다는 거죠 그리고는 볼 일 보러 나갔고 이 거지인 친구는 자다 깨어 가지고 하루 대접 잘 받았으니까 잘 쉬었다고 그렇게 하고는 이제 나가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난 뒤에, 이 사람 거지는 항상 거지생활을 하는 거예요 그대로, 몇 년이 지난 뒤에 또 만났는데 역시 이제 거지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이 부자친구가 그것을 일깨워주는 그런 이야기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어마어마한 그런 그 평생 쓰고도 남을 그런 보물이 있더라 그래서 이제 그때부터 부자로 살게 되었다 하는 그런 이야기죠.
그래서 이제 법화경에 계주비유도 있는데 그와 같이 여기 증도가에서도 여의주, 아금해차여의주我今解此如意珠 라고 하는
이 여의주는 우리들의 보물 뿐만 아니라 불교의 보물이고 우리들의 참생명이고 그렇습니다. 이거 우리 제대로 알면 정말 어떤 상황에서든지 참 넉넉하고 아주 뭐 겁없이 살고 당당하게 살고 아주 뭐 신나게 살 수 있고 모든 문제 해결이 이 여의주如意珠에 달려있고 이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내가 나한테 쓰던지 남에게 이롭게 하던지 자리이타종부갈自利利他終不竭이라는 거죠 자신에게도 이롭고 타인에게도 이로워서 끝내 다하지 않는다 하는 그런 그 표현입니다.
이것이 뭐 영가스님의 증도가에서 뿐만이 아니라 다른 데에서도 많이 이제 이런 문제를 언급하는데 증도가처럼 이렇게 아주 선명하게 직접 우리 가슴에 와닿게 이렇게 표현한 그런 예들이 흔치가 않죠 그다음
강월조송풍취 江月照 松風吹
그래 얼마나 부자입니까 여의주를 끌러 놔서 나도 쓰고 남도 쓰고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 그런 상황이 되었으니 이제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돈 벌 일도 없고 거지일 까닭도 없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런 아주 뭔가 마음이 아주 맑고 넉넉하고 그런 그 경지를
강월송풍취江月照 松風吹
영야청소하소위永夜淸霄何所爲라
저는 증도가 공부할 때 이 구절이 참 그렇게 마음에 와닿더라구요. 어릴때 치문을 배우면서 증도가를 여덟 구절씩 배웠는데 부수적으로 배웠는데 그때부터 이 구절이 그렇게 아주 뜻도 모르고 그렇게 좋았었습니다.
강월조송풍취江月照 松風吹
강에 달은 비추이고 솔바람은 불어온다는 거죠.
밤새도록 긴 밤 맑은 하늘 무엇을 할 바냐
아무것도 할 바가 없죠.
그야말로 여의주를 풀어놨어. 여의주를 풀어놔가지고 이 여의주를 남도 쓰고 나도 쓰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냥 맘껏 마음껏 쓰는데 무엇이 부족한 게 있겠습니까. 그 부족함이 없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뭐 산중에서 강에 달이 비취고 솔바람은 불어오고 무엇이 부족할 것이냐 운치가 그럴듯하지만 그런 운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이 없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 이 스님은 큰 절 옆에서 그저 겨우 어머님과 누님을 모시고 겨우겨우 지낼만한 그런 아주 어려운 처지에 살았었죠. 그러나 환경이 설사 어렵다고 해서 마음까지 그렇게 궁핍한 거는 아니지 않습니까
저앞에서도 있었듯이궁석자구칭빈窮釋子口稱貧이나 실시신빈도불빈實是身貧道不貧이라 실로 육신의 생활이 가난하지 도가 가난한 것은 아니다
하는 그런 말씀도 앞에서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불성계주심지인佛性戒珠心地印이요
무로운하체상의霧露雲霞體上衣로다
그랬어요. 불성佛性계주戒珠심지인心地印이요 불성이니 계주니 하는 것은 불성佛性인 계주戒珠 이렇게 이제 말할 수가 있습니다.
불성佛性은 뭡니까 깨달아서 잘 아는 거죠 그게 이제 불성의 특징이고 그것을 또 계주戒珠라고 표현한 것은 밝고 깨끗하고 때가 없어서 그래서 이제 계주戒珠라 그럽니다.
계戒라고 하는 그자체가 벌써 모든 허물과 혼탁한 거 이런 것을 다 떠난 것을 계戒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계戒의 구슬이다 이렇게 말하면 뭐 누가 계를 지키느냐 안지키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계戒 그 자체는 이미 아주 깨끗하고 가치 있고 청정한 그런 구슬이다 하는 뜻에서 이제 불성계주佛性戒珠라 그렇게 합니다. 그건 이제 뭐 심지心地라는 말도 크게 계주니 불성이니 하는 말과 다른 말은 아닙니다. 근데 그것이 이제 불성이라고 표현하든지 계주라고 표현하든지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우리 마음 땅의 도장이다.
하는거죠. 마음땅의 도장이다.
무로운하 체상의霧露雲霞體上衣라
그랬어요. 무로운하霧露雲霞 이걸 이제 옛 사람들부터 참 시원스럽게 해석을 한 것을 못 봤는데 이 무로운하霧露雲霞는 구슬에다가 불성계주에다가 말하자면은 어떤 장엄을 치장이라고 할까 장엄이라고 할까 이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신령한 구슬이나 어떤 그 신령한 물체가 있으면 거기는 당연히 어떤 영기가 서리고 그 영기가 서려야 그것이 더욱 더 돋보이죠
예를 들어서 처음가는 아주 깊고 높은 신비한 산에는 의례히 안개가 끼거나 구름이 끼거나 뭔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어떤 신비감이 있습니다. 그걸 이제 영기가 서린다 그러지요. 그래 안개가 끼기도 하고요. 안개가 피어오르기도 하고 의례히 깊은 산에는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 무로운하霧露霧雲霞 이게 이제 안개 무霧 이슬 로霧 구름 운雲 또 노을 하霞 이런데 역시 안개 하霞자죠
그런데 이런 어떤 그 신령한 구슬에 당연히 거기에 신령스럽고 영기가 서리는 그런 그 뜻으로 무로운하라고 그랬습니다. 그것이 이제 체상의體上衣라는 거죠. 여기 체體라고 하는 것은 몸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영가스님은 항상 그 체體자를 쓰기를 좋아하십니다. 마음 심心자보다 훨씬 더 많이 쓰고 성품 성性자보다도 더 많이 쓰고요.
임제스님이 사람 인人자 썼듯이 영가스님은 체體자를 그렇게 즐겨 쓰셨다고 내가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죠.
이건 이제 본체 뭐 신체라고 해도 괜찮구요. 그냥 체라고 하고 그뜻을 우리가 이해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무로운하는 비유고 구슬도 결국은 비유인데
우리의 마음을 예를 들어서 불성계주라고 한다면 그냥 단순한 마음이어서는 안된다. 아주 신령한 마음이어야 되기 때문에 거기에는 자비와 지혜와 복덕과 그야말로 사무량심이라든지 해탈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말하자면 장엄이 돼야 그게 이제 그럴듯한 그런 마음이 되는 거죠. 그냥 깡마른 마음가지고는 별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고요
이러한 공부, 여기에 대한 깊은 이해 나아가서 깨달음까지 우리가 성취하게 되면은 결국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에 자연스럽게 그런 그 장엄이 이루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구슬이 신령스러우면 거기에 영기가 서리가 되어 있듯이 우리 마음이 제대로 마음노릇을 제대로 하면 자비와 지혜와 해탈과 복덕과 열반 이런 불교에서 말하는 그 아주 멋진 것들이 저절로 거기에 입혀진다는 것입니다. 본체에 입혀지는 옷과 같은 치장이 된다는 거죠. 장엄 莊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를 전체적으로 아주 잘 표현한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불성계주佛性戒珠는 심지인心地印이라 이거는 우리 마음의 도장인데 그것이 죽은 마음이 아니라 정말 살아있는 마음이기 때문에 그것이 결국은 어떤 지혜와 자비와 해탈과 열반과 사무량심 이런 것들로 잘 치장이 되고 장엄이 되어야 그게 이제 제값을 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죠 그것도 억지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이치 불성계주의 실체에 대한 깊은 믿음과 이해와 깨달음이 있으면은 저절로 장엄이 되게 돼있습니다. 그게 또 묘한 이치죠. 그러니까 억지로 장엄한다고 해서 장엄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자연스럽게 장엄되게 돼있다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증도가 강의를 여기까지 하겠는데 다시 정리해서 새겨드리겠습니다.
단득본 막수말但得本 莫愁末리니
여정유리함보월 如淨琉璃含寶月이라
다만 근본을 얻고 지말적인 것을 근심하지 말지니 마치 깨끗한 물 위에 보배의 달이 포함된 것과 머금은 것과 같음이로다
아금해차여의주 我今能解此如意珠
내가 지금 이 여의주를 풀어놓았으니
자리이타종불갈自利利他終不竭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강월조 송풍취江月照松風吹
강에 달은 비추이고 소나무에 바람은 부는데
영야청소하소위永夜淸霄何所爲
긴 밤 맑은 하늘에 무엇을 할 바인가
불성계주심지인佛性戒珠心地印
불성의 계구슬은 마음땅의 도장이요
무로운하체상의霧露雲霞體上衣
무로운하는 체 위의 본체 위의 옷이로다
여기서는 무로운하霧露雲霞를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구슬이라했기 때문에 무로운하의 비유를 들었고 무로운하의 본 뜻은 자비와 해탈과 열반과 사무량심이라든지 이러한 것들을 표현하고 있다 하는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동참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_()_
감사드립니다._()()()_
나믜 참 생명을 아는 것이 불교의 핵심!..... 꽃물들다님! 감사드립니다... _()()()_
꽃물들다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_()()()_
'지혜와 자비' 쓸수록 늘어만가고 줄어들지 않는다... 큰스님, 감사합니다. _()()()_ 꽃물들다님! 수고하셨습니다. 복습 잘 하고 갑니다 _()()()_
수고하셨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自利利他終不竭,,,자신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쓸쓰록 줄어들지가 않는구나!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덕분에 나날이 자라납니다.^^
감사합니다._()_
불성계주심지인佛性戒珠心地印 ㅡ 불성의 계구슬은 마음땅의 도장이요, 무로운하체상의霧露雲霞體上衣 ㅡ 체 위의 본체 위의 옷이로다._()()()_
如來의 경지라는 것은 眞理의 경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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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月照松風吹 永夜淸霄何所爲 ... 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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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