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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眞心妙體 진심묘체 (13)
고 원각경 운
善男子야 無上法王이 有大陀羅尼門하니 名爲圓覺이라.
선남자 무상법왕 유대다라니문 명위원각
流出一切淸淨한 眞如와 菩提와 涅槃과
유출일체청정 진여 보리 열반
及波羅密하야 敎授菩薩이라 하시고
급바라밀 교수보살
圭峯이 云하사대 心也者는
규봉 운 심야자
沖虛妙粹하고 炳煥靈明야 無去無來로대
충허묘수 병환령명 무거무래
冥通三際하고 非中非外로대 洞徹十方이로다.
명통삼제 비중비외 통철시방
不滅不生이어니 豈四山之可害며
불생불멸 기사산가해
어제가 부처님 오신 날이고 오늘 스승의 날인데, 사실 부처님이 탄생한 날이 우리가 그렇게 전 세계적으로 불자들이 경축하는 것은 부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스승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제가 초파일이고 오늘이 스승의 날이니까 참 잘 맞아 떨어졌고 또 이럴 때 우리가 부처님을 스승의 의미로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가지고 불교를 믿는데, 그럴 때는 우리가 부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생각을 하지요.
신앙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부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말은 이제 같지 만은, 사실은 믿는 사람들 마음에 따라서 각양각색입니다. 천양지차죠. 부처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그 믿는 마음도 여러 가지로 그렇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초파일을 그렇게 성대하게 행사를 치르고 온갖 법석을 다 떠는 것은, 사실은 부처님이 인류에게 아주 훌륭한 스승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스승이 되지 아니하면은 태자의 출신이 어디 그 분 뿐입니까? 또 수행 한 사람이 그분 뿐인 것도 아니고, 또 물론 깨달은 분도 그분 뿐이 아니지요. 그런데 그 깨달음으로써 우리를 가르치려고 49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동안 그 가르침! 그 보살행! 거기 사실은 훌륭한 스승으로서 의미가 있는 거죠.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은 깨달은 사람은 많아요. 역사적으로 그런 깨달음의 차이도 물론 있겠지 만은, 그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그렇게 동분서주하고 하루도 편할 날 없이 사신 그 생애가 위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막연한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부처님도 물론 필요하고 좋은 일이지 만은, 그 보다 더 우리가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정말 훌륭한 스승이시다. 이것으로 불교 신도든 아니든 관계없이 이 인류 사에 있어서 이분보다 더 훌륭하신 스승이 또 있을까? 정말 그런 생각이 드는 분이죠.
그분의 생애에 대해서야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실 줄 믿습니다마는, 나는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해서, 세존에 대해서 위대하다. 아주 훌륭하신 분이다. 참으로 존경할 만한 스승이다. 정말 자다가 생각하다가도 그분을 생각하면은 어쩌면 그렇게도 훌륭하신 업적을 남기실 수 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를 한 서너 너덧 가지를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보통 부처님을 팔상 성도로서 요약을 하지요. 부처님의 생애를 팔상성도로 요약을 하는데, 내가 요약한 내용은 첫째는, 태자의 출신인데 그 태자의 지위를 버렸다 라고 하는 사실, 그것은 나는 너무나도 참 훌륭한 일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이라고 하는 것이 조그마한 어떤 모임에 장 자리도 사실은 서로 하려고 그러고. 또 한 동네 무슨 동장도 서로 하려고 하는 그런 입장이거든요. 조금 위로 올라가면은 뭐 예를 들어 구청장이다. 시장이다. 하다못해 시의원이다. 뭐 구의원이다. 더 올라가면은 국회의원이다. 대통령이다. 하면은 완전히 박이 터지거든요.
그런데 일국의 왕위를 계승할 태자의 지위를 헌신짝 버리듯이 버릴 수 있었다고 하는 것, 그것은 누가 뺏을 수도 없어요. 노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뭘 하나 안 해도 모두 자기 것 이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릴 수 있었다고 하는 것. 그게 참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뉴월에 활엽도 입다가 버리려면 서운 하다는데, 오뉴월에 그 활엽 벗어버리면은 시원하잖아요. 시원한 줄 알면서도 그것을 벗으려면 사실 섭섭하다는 거예요. 사실 좀 그런 점이 있거든요.
그런데 장차 일국의 왕위를 계승할 태자의 지위를 미련 없이 버렸다고 하는 것, 참 그것은 훌륭한 분입니다. 대단이 훌륭한 분 이예요. 그것을 우리가 만분의 일만 좀 본 받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요즘 대선 주자들 TV 토론회 있지 않습니까? 거기 가끔 이렇게 보는데 그 질문 하는 사람이 내가 질문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안 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뭐냐고 하면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이 전부 불행했다. 쫓겨 나거나. 총 맞았거나. 중간에 그냥 어쩌다가 어부지리로 이렇게 로봇트 대통령을 잠깐 했거나. 아니면은 제 임기에 마쳐도 결국은 감옥 속에 갇히거나. 전부 그렇게 불행하게 끝났는데, 우리나라 역사상 대통령이라고 하는 대통령은 전부 불행하게 끝났습니다. 한 사람도 제대로 정말 훌륭한 대통령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의 존경을 받고 그런 대통령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대통령을 또 하려는 거예요. 그런 불행으로 끝나는 대통령 자리를 당신은 말이지 또 하고 싶으냐? 당신이 한다고 한들 그 보다 더 나은 대통령이 될 자신도 없고 내가봐도 과거대통령 보다 더 나아 보이지도 않는다 이거예요.
또 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못하면 못했지 그런 뻔한 생애를, 뻔한 그런 삶을 왜 그렇게 박이 터지도록 싸워서 하려고 하느냐? 무슨 맛으로 그것을 하려고 하느냐? 이것을 한번 질문 해 봤으면 좋겠더라고요. 안 그래요? 뻔한 것 아니 예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이 전부 불행으로 끝났는데, 불행도 보통 불행이 아니 예요. 전부가 보통 사람들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정말 끔찍한 그런 불행으로 끝나고 있거든요. 그런 일을 또 하려고 하니까 참 희안 한 일이죠.
뭐 그렇다고 앞에 사람이 백 명이 설사 불행으로 끝났다고 해서, 다음 사람이 꼭 그런 전처를 밟아야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물어 보면은 그 소리를 할거예요. 그렇게 대답할거라고요. 그렇지마는 우리나라 여러 가지 구조상, 환경상 당신도 꼭 그렇게 그런 전처를 밟을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고 . 그러니까 그것을 또 하려고 한다니까. 그렇게 뻔한 생애를! 뻔한 삶을! ,
하기 사 자기 시집살이가 고되었다고 해서 딸보고 시집가지 말라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그러더니만, 그것도 이해가 가기는 가요. 여담이고 어 쨌거나 부처님은 그런 훌륭한 자리를 버릴 수 있다고 하는 것, 이것은 참 정말 위대합니다. 정말 위대한 일이예요.
그리고 육년 고행이라고 하는 것도요. 나는 부처님 이야기할 때 마다 항상 그 이야기를 합니다. 태자의 지위를 그렇게 버리고 나는 도저히 못할 것 같애요. 나는 도저히 그렇게 못할 것 같다 이겁니다. 내가 구청장 자리를 예를 들어 하나 가지고 있다 하면은,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내 놓으면 몰라도 스스로 내 놓지는 못할 것 같애요. 나는 그런 자신은 없어요. 사실 만약에 구청장이라도 되었다면.
내 자유로 내 놓을 수 있는 그런 자신은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없어요. 그런데 왕자의 지위를 말이지 스스로 그렇게 버릴 수 있었다고 하는 것, 그것은 나는 꿈도 못 꿀 일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위대해요.
그 다음에 육년 고행이라고 하는 것도, 이것도 천하게 살던 사람이 보통 사람이 육년 고행을 했다고 하면은 그것은 또 우리가 또 생각할 수가 있는데, 그야말로 금지옥엽! 옛날에 태자의 지위라고 하는 것은요, 요즘의 태자 하고는 달라요. 요즘의 태자들 치고 그냥 목숨이 경각에 걸려 가지고, 철창 행 신세를 지느냐 마느냐 지금 여기에 걸려있는 것이 요즘 태자인데, 옛날 태자는 안 그래요.
정말 봄이면 봄에 가서 노는 궁전이 따로 있고, 별장이 따로 있고. 여름에 사는 별장이 있고. 겨울 별장이 따로 있고 온갖 모든 조건을 그렇게 갖추어져 그렇게 살 수 있는 생활을 버리고 누구도 할 수 없는 그런 고행! 피나는 고행을 했다는 거예요.
부처님 고행상 여러분들 사진으로 보셨을 거예요.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이라는 말! 그 사진 보면은 피골이 상접입니다. 가죽하고 뼈하고 딱 붙어 가지고는 어느것이 뼈인지 어느것이 가죽인지 분별이 안될 정도로, 그렇게 바싹 말라 가지고 고행 생활을 육년이나 했다는, 이것이 또 훌륭한 일입니다. 이것이 보통 훌륭한 일이 아니 예요.
그 태자의 지위로, 태자의 몸으로 했다는 것이 더 훌륭하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깨달음이야 다른 수행자들도 많이 깨달았다고 하지 만은, 뭐 물론 깨달음도 훌륭하기는 훌륭합니다. 그런데 깨닫고 나서 고행한 시간보다도 더 많이, 또 당신이 그 동안 살아온 생애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중생제도를 위해서 더 어려운 고생을 했다고 하는 것. 그 인도에 요즘 같이 자가용이 있습니까? 무슨 아스팔트 길입니까?
뭐 처지가 어떻다. 사는 것이 어떻다. 전부 어려운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49년이라는 긴 세월을 그렇게 고생하시면서 그렇게 많은 가르침을 폈고, 그 가르침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져서 우리가 공부할 수 있다고 하는 이 사실이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런 위대한 스승을 우리는 스승으로 모셨다라고 하는 것, 이것만 가지고도 우리 불자들은 정말 행복해요. 정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뭐 내 처지가 어떻다. 사는 것이 어떻다. 나는 팔자가 기구하다 어쩌다. 자꾸 이런 소리를 하는데, 그런 생각하지 말고 ‘아~ 내가 모신 스승이 이렇게 훌륭한 분을 스승으로 뒀다.’ 라고 하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숱한 스승을 만나지 만은 정말 부처님 같은 스승은 없습니다. 그런 스승을 우리가 스승으로 모셨다고 하는 그런 다행함! 그 행복감! 우리는 이것을 항상 생각해야 돼요.
부처님께 또 예배를 드릴 때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그런다고요. 본사(本師)! 본 스승이라 그러거든요. 그러고 우리가 예를 들어서 어느 사찰에, 또 어느 스님에게. 또 어떤 누구에게. 또 어떤 경전에 또 나는 관세음보살이 다. 나는 지장보살이 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또 자기 인연 따라서 또 별개의 스승이 있을 수 있지 만은 그것으로 추적해 들어가면요, 그 근본을 우리가 찾아보면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본 스승이예요. 본사 그래요.
근본 本자. 스승 師자. 우리의 근본 되는 스승님! 이 말이거든요. 예불할 때 꼭 그렇게 예배 드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어느 사찰에 어떤 큰스님! 어떤 덕이 높은 스님 하더라도 우리의 근본이 되는 스승님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하는 그것을 초파일이 지나고 또 오늘이 스승의 날이니까 한번쯤 마음에 새겨야 하고, 또 그런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의 지도자! 어떤 훌륭한 과거 스승보다도 부처님의 깨달음과 부처님의 사상은 너무나도 깊고 높아 모른다손 치더라도, 그분이 살아오신 생애만 가지고 라도, 아주 훌륭하신 스승이다. 참으로 위대한 분이다 라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스승님에 대한 그런 생각을 해야 될 것 같고,
그런 스승을 우리는 내 마음의 스승으로 모셨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정말 어떤 행복! 다행! 처지가 설사 누구하고 비교해서 불행하다 어떻다 자꾸 그런 식으로 비교해서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셨다 하는 그런 다행한 그런 행복감만 가지고도, 평생 정말 좋은 마음, 기쁜 마음으로 살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말씀 드리면요. 부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은 인생으로서 어떤 진정한 어떤 가치! 진정한 보람! 사람이 살아가는데 정말 진짜 가치! 정말 값 있는 삶이 무얼까? 정말 보람된 삶이 무엇인가? 이것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본다면은 부처님이야말로 인생을 제대로 느낀 분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진정한 가치! 가장 값진 것. 그것을 일깨워 주고. 그것을 가르쳐 주신분이 부처님이다. 그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니 예요. 한마디로 요약하면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 주신 분이다.
그 가치는 우리가 부단히 노력하고 공부함으로 해서 많이 체득이 되겠지요. 체득이 된다는 말은 내 가슴에 와 닿는다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정진하고 이런 경전 공부를 통해서 그것이 가슴에 절실하게 와 닿는 거죠.
보조스님의 가르침 진심직설을 통해서 역시 보조스님도 지금 우리가 스승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는데, 또 그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은 역시 석가모니불이 근본 되는 본 스승이 되고, 보조스님이 아무리 요약을 잘하고 제대로 설명했다손 치더라도, 역시 부처님 가르침의 영향으로 보조스님이 또 다시 이렇게 새롭게 걸러서 불교를 이해 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되리라고 믿습니다.
부처님이 우리에게 한 일이 여러 가지가 많지 만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부여했다. 그것을 가르쳤다라고 하는 것으로 서 이 진심직설은요, 아주 중요한 입장이 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결국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느냐? 우리가 그것을 따진다면 진심에 대한 그런 올바른 이해와 어떤 확신! 또 거기에 대한 느낌! 또 거기에 대한 깨달음! 여기에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가 경전마다 그런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마는, 특히 이 진심직설은 그런 아주 핵심적인 것을 잘 나타내는 그런 내용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진정한 가치를 부여한 것이고 그 가치는 어디서 찾는가? 바로 진심직설에서 찾으면 된다. 그렇게 정리해도 절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아주 정확한 답이 될 거예요. 진심직설에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야 된다.
그 진정한 가치! 그것은 내가 무가보라고 지난시간에 말씀 드렸지요. 무가보! 정말 뭐라고 값을 매길 수 없는 그런 가치! 그것은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근본이고 또 모든 일을 성취시키고 모든 현상을 만들어 내는, 그래서 우리가 일체유심조 그러죠.
일체가 다 모두 다 마음으로 만들었다. 그런 말을 하는데, 그런 일체 것을 창조하는 그런 근본마음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진심에서 찾자 하는 것입니다. 진심묘체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일체 것이 말하자 면은
一切山河大地(일체산하대지)!
그리고 草木叢林(초목총림)! 萬象森羅(만상삼라)
그리고 染淨諸法(염정제법)이
모든 것이 진심으로부터 나왔다.
皆從中出(개종중출)!
다 그 가운데로부터 서 나왔다. 라고 이렇게 이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전부 내 마음으로부터 나왔고, 그보다는 근본이 혹시 마음에 잘 와 닿지 않을지 몰라요. 그야말로 겉도는 소리일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내 삶이 결국은 무엇이 들어서 내 삶을 이끌어 가는가. 내 삶을 이렇게 훌륭하게 했다면 이렇게 훌륭하게. 아니면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다면은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것. 이것을 무엇이 들어서 그러느냐? 그것은 결코 부모도 아니고. 조상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니고 . 결국은
皆從中出(개종중출)이라.
전부 이 진심으로부터, 내 마음하나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내 삶이 이렇게 훌륭하게. 이렇게 다행스럽게. 오늘 같은 이런 시간에 다 여기 와서 이런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들었고.
또 조금이나마 부정적으로 보고싶으면 내 인생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다라고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은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것도 결국은, 전부 내 자신의 마음이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다. 이것은 뭐 천불이 출세를 해도. 일 천 부처님이 나와서 뭐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바꿀 수 없는 말입니다. 이 마음을 변화 시키지 않으면 이것은 바꿀 수 없는 말이 예요.
이렇게 훌륭하게 내 인생을 이끌어 가든지. 아주 복 없는 삶으로 살아가든지 간에, 그 주된 책임과 그 주된 역할은 진심이 했다. 내 마음이 했다. 내 마음이 하고 있다 라고 하는 이 사실은요, 이것은 아무도 거역하지 못하고. 아무도 반대하지 못합니다.
불교에서는 그런 말을 잘해요. 천불이 출세를 해도 이 말은 바꿀 수가 없다. 이것은 철칙이다. 일 천 부처님이 설사 세상에 나온다 하더라도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이거예요. 변화지 않는 진리!
皆從中出(개종중출)이라.
그러니까 삼라만상이 전부 내 마음으로부터 나왔다. 좋은 말입니다. 그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내 인생은 결국은 누가 이렇게 만들어 가는가? 전부 내 마음이 이렇게 만들어 간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무슨 조상이 어떻다. 부모가 어떻다. 절대 그런 생각해서 안돼요. 최소한도 우리 불자들은 불교 이야기를 듣고 불교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사람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을 하면은 큰 잘못입니다. 큰 잘못 이예요. 전부 자기가 만들어 가는 거예요.
그런 부모를 만나고 그런 환경에 태어나게 된 것도 결국은 과거에 내 마음이 그렇게 인연을 지어놓은 거예요. 내가 그렇게 인연을 지어 놓았기 때문에 그런 복을 갖고 태어났고.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났고. 그러니까 과거의 내 마음이 그렇게 만들었고 또 현재의 내 마음이 앞으로 내 삶을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 라고 하는 것, 이것은 정말 일 천 부처님이 나온다 하더라도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그런 철저한 너무나도 명확한 진리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조! 이런 확신! 이것은 불자들에게 있어서 그리고 바른 소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것은 정말 확고 부동한 그런 이론입니다.
故(고)로 圓覺經(원각경)에 云(운)하사대
원각경! 원각경은 원만할 圓자. 깨달을 覺자. 부처님의 깨달음을 원각이라 그래요.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인생에 대해서 깨닫는 것이 좀 있어요?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원각은 못돼요. 원각은 못 된다고요.
그래서 覺도 기신론에 보면 불각! 무슨 상사각! 비슷한 깨달음 이런 말도 있어요. 상사각! 서로 비슷하다. 상사하다. 비슷한 깨달음이라고 하는 그런 말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 인생에 있어서 많은 삶을 살아가면서 깨닫는 것은 사실은 상사각이라 하기도 무안하죠. 자질구레한 아주 작은 그런 깨달음들입니다. 이 원각은 완전한 깨달음! 아주 완전한 깨달음을 원각이라고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원각을 이야기 하는 있는
故(고)로 圓覺經(원각경)에 云(운)하사대,
원각경에 말씀하시기를
善男子(선남자)야 無上法王(무상법왕)이
有大陀羅尼門(유대다라니문)하니
名爲圓覺(명위원각)이라.
流出一切淸淨(유출일체청정)한
眞如(진여)와 菩提(보리)와 涅槃(열반)과
及波羅密(급바라밀)하야 敎授菩薩(교수보살)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다시 위로 올라와서
善男子(선남자)야 無上法王(무상법왕)!
無上(무상)!
불교에는 무상이라는 말을 잘 써요.
無가 없다가 아니고 이것보다 더 높은 것이 없다.
이것보다 위에 가는 것이 없다.
그러니까 가장 높은 이 뜻입니다.
무상이라는 말은 가장 높은 법왕! 법의 왕이, 진리의 왕. 부처님을 진리의 왕이라고 그렇게 합니다. 이 법왕은 그래서 불교에서는 법왕청(法王廳)! 이런 말도 쓰고 법왕이라는 말을 그렇게 잘 씁니다. 진리의 왕이란 그런 뜻이지요. 그래서 가장 높은 법왕께서
有大陀羅尼門(유대다라니문)이 있다.
대다라니의 문이 있다.
有大陀羅尼門(유대다라니문)!
큰 다라니문! 다라니는 총지라고 저 앞에서 나왔지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그런 어떤 문이 있는데, 그것을 이름해서
名爲圓覺(명위원각)이라고 한다.
이름을 원각이라고 한다. 원만할 圓자 깨달을 覺자.
온전한 깨달음 이런 말입니다. 원만한 깨달음!
우리도 이런 원만한 깨달음에 이를 데까지 아주 잔잔한, 자질구레한 아주 작은 깨달음도 있어야 돼요. 인생은 깨달음이라고 우리가 표현해도 좋습니다. 깨달음의 연속 이예요.
사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깨닫는 거예요. 살아가다 보면 또 깨닫고 또 깨닫고. 그렇게 또 깨달았으면서도 또 깨닫고 또 깨닫고. 그저 사실은 깨달음의 연속 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게 깨달아 가는 거예요.
그래서 철든다 그래요. 불교에서 철든다 그러거든요. 그러면 불교에서 철이라는 것은 자꾸 깨달아서 지혜가 난 것을 철든다 그래요. 순수한 우리말로 하면은 철이예요. 철! 지혜! 지혜가 사실은 철입니다. 이름을 원각이라고 하는데, 그 원각이 어떻게 하느냐?
流出 (유출)!
유출 시킨다. 흘러보낸다 이거예요.
무엇으로 흘러보내는고 하니,
一切淸淨(일체청정)한!
아주 완전하게 청정한. 아주 훌륭한 이런 말이지요.
청정한 이란 말은 깨끗하고 훌륭하고 위대한
眞如 菩提 涅槃 그리고 波羅密!
진여 보리 열반 바라밀
이런 것들을 원각이라고 하는 어떤 수행! 뭐라고 할까? 근원자리, 원각이라고 하는 근원자리에 眞如(진여). 菩提(보리). 涅槃(열반). 波羅密(바라밀)! 이런 것으로 물 흘러 보내듯이 그렇게 흘러보내 가지고서
敎授菩薩(교수보살)을 한다.
보살들을 교수한다. 보살들을 가르친다. 이 말이죠.
보살들을 가르친다. 참 좋은 표현이지요.
원각이라고 하는 큰 깨달음이 부처님께 있어 가지고서 거기서 아주 훌륭한 진여! 眞如(진여)는 저 앞에서도 진심이명에서 나왔지마는 참답고 항상 같다. 진여! 참답고 여여 하다. 如자는 이 것이 좋은 말 이예요. 여여하다. 한결같다 이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자리를 가르친 것이죠. 보리는 깨달음을 역시 보리라고 하고. 또는 동양에서 말하는 道! 도를 깨달음이라고도 하고 그러죠.
그 다음 열반! 열반은 니르바나라고 이것은 번뇌가 다 사라지고 망념이 다 사라져버린 그 상태를 열반이다 라고 그렇게도 합니다. 그 열반과 그리고 바라밀! 이것은 저 언덕에 이르러 가는 방법이지요. 우리가 육바라밀 하지 않습니까? 여섯 가지 바라밀!
그러니까 모든 문제의 해결을 그것을 바라밀이라고 합니다. 문제가 있는 이 쪽에서 문제가 다 해결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간다. 이 뜻이 바라밀이거든요. 도피 안! 그러지 않습니까? 피안에 이른다. 문제해결이예요. 모든 문제! 인간의 대한 어떤 문제도 다 해결된 상태를 바라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전부 흘러 보내 가지고서 교수보살! 보살들을 교수! 가르친다. 이런 말입니다. 원각경은 그런 말이 있고, 또
圭峯(규봉)이 云(운)하사대
이 규봉스님은 중국 당나라 때 아주 훌륭한 스님입니다.
스님들이 공부하는 교과서에 많이 나오는 스님인데,
원각경을 저술도 하고 그렇습니다.
圭峯(규봉)이 云(운)하사대 心也者(심야자)는
沖虛妙粹(충허묘수)하고 炳煥靈明(병환령명)야
無去無來(무거무래)로대 冥通三際(명통삼제)하고
非中非外(비중비외)로대 洞徹十方(통철시방)이로다.
그 마음에 대해서 규봉 스님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 우리가 진심 진심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음이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느냐?
沖虛妙粹(충허묘수)라.
충(沖)은 말하자 면은
沖虛(충허)라는 말과 합해 가지고 텅 비었다. 그리고
妙粹(묘수)라는 말은
묘하고 순수하다. 깨끗하다. 한 점의 티도 없다.
텅 비어서 그러니까 비 내린 가을 하늘 같다 고 할까? 그것이 충이라고 하면은, 묘수라고 하는 말은 텅 비었으면서도 깨끗해야 그것이 제대로 된 하늘이거든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의 근본자리를 생각해보면은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영지라는 말을 썼지요. 신령 靈자 알 知자라는 말을 썼는데, 여기는
靈明(령명)! 炳煥靈明(병환령명)
炳煥(병환)이라고 하는 말은 환하게 빛난다 이거예요.
우리가 초파일 날 등불을 많이 밝히지 않습니까? 어둠을 밝히는 것이 등불의 역할이라고요. 등불을 밝히는 것. 우리들 마음에 온갖 어둠이 많이 끼어있어요. 그 어둠을 제거하고 환하게 밝히는 것. 여기에 부처님이 오신 뜻이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뜻은 그거예요.
그러니까 그 오신 뜻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려고 등불을 밝히는 거죠. 등불 요즈음 전기불 이 그렇게 좋은데 길 밝히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은 상징적인 거예요. 어두움을 밝히는데 등불이 필요하듯이 우리 마음에 어둠을 밝히는데 지혜의 등불이 필요하다.
부처님은 밤에 등불 밝히려고 오신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의 어두움을 밝히려고 그래서 오신 것이 거든요. 부처님 오신 날 그 뜻을 기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등불이면 다잖아요. 다른 것 필요 없어요. 등불 하나만 키면 그냥 부처님 오신 뜻이 다 포함 돼 있어요. 불교가 그 안에 다 포함되어 있어요
부처님 사상이 뭐고. 부처님 정신이 뭐고. 부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불교가 무엇을 하자고 하는 것인지. 등불 하나에 다 포함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등을 키는 거예요. 안 그러면 뭐 하려고 부처님 생일에 이 절 저 절 쫓아다니면서 기어이 등불을 그렇게 밝히고 다닙니까?
또 개인 한 사람 한 사람 요즘은 또 가족으로 안하고 개인 이름으로 잘 쓴다고요. 그것은 좋은 일이예요. 그 형광등불이 밝은데도 불구하고 등불 하나 하나를 키는 이유가 부처님 오신 뜻이 등불 하나 키는데. 그 속에 다 담겨 있어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어두운 마음을 밝히는 그런 목적이 바로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이다. 참 불교는 그러고 보면은요, 펴고 마는 것이 아주 자유자재 해요.
"공서 자재라." 고 하는 그런 말을 하는데, 줄이면은 아무 말 한마디 없는 묵언으로서도 표현이 되고. 조금 마음을 더 쓴다면은 꽃 한 송이 떡 들어보여도 충분하고.
등불 하나 딱 밝혀도 그 속에 팔만대장경이 그 속에 다 포함되어 있어요. 그 하나만 키면은 등불 하나 가지고 그것을 설명하기로 하면은 팔만대장경이 되는 거죠. 한 권의 책이 되기도 하고. 부처님이 49년간 설하신 가르침이 되기도 하고. 줄이면은 등불이 되고 꽃 한 송이가 되고요. 그것도 싫으면은 침묵 속에도 다 있어요. 금방 또 침묵이 나옵니다. 침묵 속에도 그 의미가 부처님 오신 뜻이 다 포함되어 있어요.
사실은 등불 밝히는 것보다 침묵하고 있으면 더 수준 높은 부처님 오신 뜻을 기리는 것이 되는 거죠 . 훨씬 수준이 더 높다고요. 그것 가지고는 안 통하니까. 이 사바세계 어리석은 중생들에게는 안 통하니까 그래 등불 하나 척 밝히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이냐 이거죠. 왜 부처님 오신 날 등불을 밝히느냐? 등불 하나 밝히는 속에 부처님 오신 뜻이 다 포함되어 있어요. 불교가 그 안에 다 담겨있어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거든요.
부처님이 순전히 이 세상에 중생들 마음에 어두움을 밝히려고 그래서 오신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니 예요. 그것을 그러니까 상징적으로 등불을 켜서 밝히는 거예요. 등불을 켜서. 촛불로서 등을 키는 거죠. 그리고 여기에 보면은
炳煥靈明(병환령명)이라는 것이 결국 무엇이겠어요?
우리 마음이 제대로 되면은 병환! 환히 빛난다. 이 뜻이 거든요. 그리고 신령스럽게 밝다. 저 촛불이나 등불이나 형광등이라고 하더라도 炳煥靈明(병환령명)이 아니예요.
우리 마음자리 같이 병환영명한 것이 없어요. 캄캄한데 눈 감고 딱 앉아 있어도 이 마음은 환해요. 한 순간도 그냥 있지를 않고 얼마나 밝은지 몰라요. 그 다음에
無去無來(무거무래)라.
감도 없고 옴도 없어.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예요.
감도 없고 옴도 없음 이로 대,
가고 오는 것이 아니 예요. 이 몸뚱이는 가고 오는 것이 있지 만은 이 마음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죠. 가고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가려고 하면 가고. 언제든지 오려고 하면은 오는 거예요.
어떤 사물이 가듯이. 어떤 사물이 오듯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예요. 그런 식으로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無去無來(무거무래) 라는 말은.
그래서 이 마음은 결국은 가고 오는데 자유롭다. 걸리지 않는다. 우리 몸은 가고 오는데 걸리지 않습니까? 지금 어디 가있으면 당장에 지금 몸은 안 가진다고요. 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마음은 지금 가려면 순식간에 가요. 아무도 몰래 가. 책 펴놓고 실컷 공부하는 척 하고 앉아 있어도 마음은 실컷 돌아다녀도 아무 상관 없어요. 옆 사람도 모르고 나도 몰라요. 아무도 몰라요. 그것이 가고 오는 흔적이 있으면요. 그게 안 된다고요. 그래서 무거무래라. 하는 이 마음은 감도 없고 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스럽게 가고 자유스럽게 오는 것. 몸뚱이는 거래가 있으니까 자유스럽게 가지도 못하고 자유스럽게 오지도 못해요. 올라 면은 차 타야 되고. 돈 들어야 되고. 그냥 차를 얻어 타야 되고 온갖 조건이 많이 따라요. 이 참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그래서
心也者(심야자)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해 가지고서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無去無來(무거무래)로대 冥通三際(명통삼제)하고,
가만히 冥通三際(명통삼제)!
명자는 어두울 (명)冥자거든요.
어둡다는 말은 가만히, 남몰래! 삼제가 통한다.
삼제는 과거 현재 미래입니다. 과거로 가려면 얼마든지 과거로 마음이 가고. 현재에 있으려면 현재에 가고. 미래로 가려면 얼마든지 또 갈 수 있어요. 마음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없어요. 자유자재라고요. 여기서 없다 라고 하는 말은 통한다 하는 그 뜻입니다.
있다고 하는 것은 고정된다는 말이고, 없다고 하는 것은 고정되지 않고 자유스럽다 이 뜻입니다. 그래서 무거무래라는 말도 마찬가지고 冥通三際(명통삼제)라는 말도 마찬가집니다. 삼제가 다 통한다. 그리고 마음 대로 가고 오는 거죠. 사실 알고 보면은 마음 대로 가고 오기 때문에 우리가 가고 오듯이 그렇게 가고 오지는 않는다. 이 뜻이 됩니다.
非中非外(비중비외)로대 洞徹十方(통철시방)이로다.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예요.
이것은
非中(비중)이라는 말은
우리 몸 중간입니다.
몸 속이라고 생각 해도 좋아요.
非外(비외)라고 하는 말은
몸 밖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몸 안에 있는 것도 아니 예요.
우리가 보통 몸 안에 있다 그러는데 꼭 몸 안에 있는 것도 아니 예요. 그렇다고 밖에 있느냐 하면은 밖에 있는 것도 아니예요. 非中非外(비중비외)야. 그러면서
洞徹十方(통철시방)이라.
통이라고 발음하지요. 시방세계, 동서남북 그리고 사유 내간방 이지요. 그리고 상하! 이것을 불교에서는 시방이라고 그러는데, 이 시방에 꽉 사무쳐 통철(洞徹)! 어디 막힌 데 없이 다 사무친다 이 말입니다. 이것이 통철시방이예요.
마음은 이 육신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육신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온 시방 속에 시방세계에 가득히 차. 이 마음은 어디 보내면은 안 가는 데가 없습니다. 어디 물속 깊이. 저 하늘 높이. 인공위성도 못 가는 그런 하늘높이 까지도 이 마음은 다 뻗쳐져요. 그것도 시간도 안 걸려요. 순식간에 다 뻗쳐져요.
“산하습벽이 그야말로 무장애라.”
우리 몸뚱이는 벽만 있어도 못 나가지요. 문만 하나 있어도 못 나가는데 우리 마음은 안 그래요. 장애가 없어서 확 뚫고 가버려요. 뚫는 것도 흔적을 가지고 뚫는 것도 아니 예요. 그래서 통철시방이라. 참 이 마음이라는 것이 묘하지요.
그래서 마음공부를 해야 돼요. 불교는 마음 공부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마음을 가지고 노는 놀이고, 불교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은 마음 놀이다. 마음놀이예요.
그래서 마음놀이를 한다고 하는 말은, 관리를 한다 이 뜻이거든요. 사실 마음놀이를 잘 해야 돼요. 마음 관리 잘하면은 그것은 끝나는 것이거든요. 사람 산다는 것이 마음놀이 잘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결국은 행과 불행이 전부 마음에 달렸으니까 이 마음을 잘 가지고 놀이 하고 잘 관리하면은 행복하고,
꼭 불행하고 싶으면은 불행한 쪽으로 놀이를 하면 금방 불행해져요. 불교는 단적으로 표현하면은 마음놀이예요. 냉정하게 표현하면은 결국은 불교는 마음놀이 공부다. 진짜 공부는 마음놀이예요. 아주 표현해 놓고 봐도 기가 막히는 표현 이예요. 마음놀이 라. 불교라고 하는 것은 마음놀이 공부다. 마음놀이 하는 일이다. 그 다음에 이 마음은
心也者(심야자)는
여기 다 해당되겠죠.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심야자는 할 때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전부 해당됩니다. 그런 구절에 또
不滅不生이어니 豈四山之可害며
불멸불생 기사산지가해
不滅不生(불멸불생)!
소멸하는 것도 아니고 또 생기는 것도 아니거니
어찌,
四山之可害(사산지가해)
사산이 어떻게 가히 해롭게 할 수가 있을 것이며, 이 말입니다. 사산이 가히 해롭게 할 수가 있으며,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소멸하는 것도 아니죠.
그러니까 네 가지 산이라고 하는 것은 我相(아상) 人相(인상) 衆生相(중생상) 壽者相(수자상) 금강경에서 우리가 자주 이야기 하는 ‘아(我) 인(人) 중(衆) 수자(壽者)’ 이것을 四山(사산)이라 그래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이것을 산과 같이 높다 해 가지고 참 표현을 잘했죠. 아. 인. 중생. 수자 저기에다 뫼 山자를 하나씩 붙여 가지고 我山(아산) 人山(인산) 中生山(중생산) 壽者山(수자산), 또 금강경에는 相(상)자를 붙이지요.
아산 인산 중생산 수자산! 왜 뫼 山(산)자를 붙이느냐? 산을 우리가 어떻게 하지를 못하잖아요. 아무리 포크레인이 크다 해도 그 산을 어떻게 함부로 못 옮겨요.
우리 마음에 그 무분별 무분별 해도요. 이 네 가지 산과 같은 그런 큼직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요지부동! 누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그런 거대한 산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이 네 가지인데, 이것이 우리의 본성을 해롭게 한다. 손해 보인다 그래서
可害(가해)!
사산이 들어서 우리 진심을
참 마음을 뒤 덮고 손해 보이게 하고 있는데,
그런데 우리 마음자리 근본입장에서 볼 것 같으면 본래 우리 마음은 불멸불생이기 때문에, 저 네 가지 산이 설사 산과 같다 하더라도 그런 ‘아 인 중생 수자’라 하더라도 해롭게 할 수 없는 자리다.
저 제일 몹쓸 것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거든요. 무슨 살생을 한다. 도둑질을 한다. 거짓말을 한다. 뭐 진심을 일으킨다. 탐심을 일으킨다. 저것하고 비교하면은 이것은 문제가 아니 예요.
보통 우리가 수계식 같은 것 할 때는 그런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은요, 이것하고 비교가 안 됩니다. 훨씬 가볍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제일 무겁습니다. 그래서 산이라고 그렇게 하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는데 번뇌가 되고 장애가 되고 하는 그런 요소가.
그런데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은, 불멸불생인데 어떻게 이 네 가지 산이 가히 해롭게 할 수가 있겠는가 라고 하는 그 말은, 우리의 마음 땅에는 본래 어떤 허물도 없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자리에는 어떤 허물도 없다.
그런데 지엽적인 입장에서 허물이 있고 잘못이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 깊은 자리 불멸불생 하는 마음의 본성자리, 진심자리에는 전혀 그런 허물이 없다. 이 참 중요한 말입니다.
그래서 心地(심지)라고 그러거든요. 마음 땅이다. 마음 心자. 땅 地자 그래 가지고 마음 땅에는! 마음 자리에는! 그렇게 알면은 좋지요. 마음자리에는 본래 아무런 허물이 없다. 그러니까 사산(四山)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첫댓글 우리 마음은 不生不滅이어니 豈四山之可害며...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_()()()_
[불교라고 하는 것은 마음놀이 공부다] 하루 밤 한 달음에 달려왔습니다. _()()()_
心也者는 沖虛妙粹하고 炳煥靈明하야 無去無來로대 冥通三際하고 非中非外로대 洞徹十方이로다...無影樹님 감사드립니다..._()()()_
無去無來로대 冥通三際하고...고맙습니다. _()()()_
삼라만상이 전부 내 마음으로부터 나왔다... 감사합니다... _()()()_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_()_ 스님!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도끼자루 썩는줄 모르는 그 놀이의 끝은 행복이 없을껄요? 그러나 이 마음놀이의 중간에서 부터는 계~~속 무한의 행복이 있지요.
모든 근원은 마음자리라는 것. 마음놀이가 진정 공부라는것. 감사합니다 _()()()_
불교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은 마음 놀이라.감사합니다._()()()_
바른 가르침 주시는 스승님 계심에 참으로 든든합니다. 부처님, 큰스님, 무영수님, 모두 감사합니다 _()()()_
내 마음하나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내 삶이 이렇게 훌륭하게. 이렇게 다행스럽게...._()()()_
불생불멸 불구부정... 마음놀이 잘해야 겠습니다_()()()_
마음유희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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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연을 지어 놓았기 때문에 그런 복을 갖고 태어났고.그런 사람을 만났고. 그러니까 과거의 내 마음이 그렇게 만들었고 또 현재의 내 마음이 앞으로 내 삶을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이다...._()()()_
'훌륭하게 내 인생을 이끌어 가든지. 아주 복 없는 삶으로 살아가든지 간에, 그 주된 책임과 그 주된 역할은 진심이 했다. 내 마음이 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마음놀이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
'부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진정한 가치를 부여한 것이고 그 가치는 어디서 찾는가? 바로 진심직설에서 찾으면 된다. 그렇게 정리해도 절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아주 정확한 답이 될 거예요. 진심직설에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야 된다.' _()_()_()_
'무슨 조상이 어떻다. 부모가 어떻다. 절대 그런 생각해서 안돼요. 최소한도 우리 불자들은 불교 이야기를 듣고 불교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사람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을 하면은 큰 잘못입니다. 큰 잘못 이예요. 전부 자기가 만들어 가는 거예요.' _()_()_()_
'마음놀이를 한다고 하는 말은, 관리를 한다 이 뜻이거든요. 사실 마음놀이를 잘 해야 돼요. 마음 관리 잘하면은 그것은 끝나는 것이거든요. 사람 산다는 것이 마음놀이 잘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결국은 행과 불행이 전부 마음에 달렸으니까 이 마음을 잘 가지고 놀이 하고 잘 관리하면은 행복하고,' _()_()_()_
'저 제일 몹쓸 것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거든요. 무슨 살생을 한다. 도둑질을 한다. 거짓말을 한다. 뭐 진심을 일으킨다. 탐심을 일으킨다. 저것하고 비교하면은 이것은 문제가 아니 예요.' _()_()_()_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_()_()_()_ 스님!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無去無來 마음은 간곳도 온곳도 없지만 항상 신령스럽게 이우주에 가득하다.자신의 의식은 행을 만들어 간다...감사 합니다._()()()_
큰스님 無影樹님. 감사 드립니다,, _()()()_
불교라고 하는것은 마음놀이 공부다......_()()()_
洞徹十方 _()()()_
감사합니다..._()_()_()_
마하반야바라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 주시는 분이 바로 부처님이시다._()()()_
감사합니다~
-()()()-
삼배 올립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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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也者는 沖虛妙粹하고 炳煥靈明야 無去無來로대 冥通三際...........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마음놀이 공부 ... _()_
眞心直說 - 無比스님 眞心直說 法門 錄取 第13講 (眞心妙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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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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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