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 위키피디아 영문판 (번역) 크메르의 세계
쭈언 낫 승왕 : 크메르어의 아버지 Chuon Nath
"섬다잇 성까 리엇 쩌딴냐노 쭈온 낫"(Samdech Sangha Raja Jhotañano Chuon Nath: 1883.3.11-1969.9.25) 스님은 캄보디아 머하니꺼이(Mahanikaya, 大派) 종단의 대종사(승왕)였다. 그의 치적 중 가장 돋보이는 일은 크메르어 사전을 편찬하여 크메르어의 보존에 기여한 일이다. 또한 그는 캄보디아 국가(國歌)인 <노꼬 리엇>(Nokor Reach)과 유명한 발라드 <사워다 크마에>(Savada Khmer)를 지어 크메르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를 일깨운 것 역시 그의 공적 중 하나이다.
(크메르의 세계 해설) 이 부분에는 상당히 어려운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어, 그 의미를 깊게 이해하기 위한 약간의 해설이 필요해보인다. "섬다잇"은 "큰 신하" 혹은 "공"을 의미하는 군호이고, "성까 리엇"은 산스끄리뜨어 "상가 라자" 즉 "승단의 왕"(승왕)을 의미한다. 한편 쭈언 낫 스님의 다양한 존칭 중에, 어떤 방식의 호칭에도 반드시 들어가는 말인 "쩌딴냐노"는 산스끄리뜨어 혹은 빨리어의 "쩨따 냑냐"(ceta-jnana)라는 복합어로 추정된다. 산스끄리뜨의 의미를 직역하면 "마음의 지혜" 혹은 "지혜로운 마음"으로, 이것이 형용사(혹은 주격 보어)가 되면 "지혜를 가진 이" 혹은 "예지자"로 번역할 수도 있다. 한편 그가 작사한 캄보디아 국가 <노꼬 리엇>은 "노꼬"는 "왕국"(현대어에서는 "도시")을 의미하고 "리엇"은 "국왕의"(royal) 혹은 "왕족의"를 의미하지만, 두 단어가 합쳐지면 "위대한 왕국"과 같은 어감을 갖는다. 또다른 곡 <사워다 크마에>에서 "사워다"는 "연대기" 혹은 "역사"이고, "크마에"는 "크메르 민족"을 가리킨다. 따라서 "사워다 크마에"를 단순히 "크메르 역사"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역사"를 의미하는 용어 "쁘러워떼사"와 달리 "사워다"는 "혈연계통의 연대기"라는 보다 세밀한 의미를 갖고 있어, "왕조사" 혹은 "민족사"를 가리킨다. 원래는 "뻥사워다"라는 말이 줄어든 형태이다. 그러므로 "사워다 크마에"는 단순한 "크메르 역사"가 아니라 "크메르 민족사"라는 한결 민족주의적 어감을 주는 말이다. "뻥사워다"(태국어: 퐁사와단)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기 바람. ☞ 바로가기 : "태국 역사의 이해 (조흥국: 부산대 국제대학원 교수)" |
1. 크메르어 보존의 노력
(크메르의 세계 추가사진) 쭈언 낫 스님의 모습(좌)과 2007년에 발행된 "쭈언 낫 크메르어 사전"의 프랑스어 번역본 표지의 모습(우). 이제는 크메르어 사전의 대명사가 된 이 사전을,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외방선교단 소속 로가티앙 론디뉴(Rogatien Rondineau) 신부가 편집을 맡아 11년만에 출판된 것이다. [사진출처: http://jendhamuni.com] 쭈언 낫 스님은 크메르 불교 승단 개혁운동의 지도자였다. 이 개혁운동은 빨리어(Pali) 경전에 대한 언어학적 연구에 기반을 둔 것으로, 합리적이고 학문적인 경향의 불교를 지향했다. 이 새로운 운동은 "담마윳띠까 니까야"(Dhammayuttika Nikaya, 텀마윳)란 명칭으로 불렸고, 20세기 초반에 젊은 캄보디아 승려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 운동은 크메르어를 통한 정체성과 문화를 고양하고, 캄보디아 민족주의 정신을 고취시켰다. 낫 스님은 20세기 초두부터 크메르 승단 내에 일련의 개혁들을 추진했다. 경전을 보존함에 있어서 기존에 야자수 잎에 필사하던 방식을 바꿔서 인쇄작업을 하도록 했고, 승려들 중에 빨리어와 산스끄리뜨어 연구의 매우 깊이 있는 전문가들이 나올 수 있도록 인재육성에 노력했다. 또한 승가와 재가신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위나야(Vinaya: 빨리어 율장)의 가르침에 근거를 둔 정통적 비전을 제시하려 했고, 불교학 연구의 교수법을 현대화시키력고도 했다. 그는 또한 빨리어 대장경 전체가 크메르어로 완역되는 과정을 감수했고, 2권으로 된 <크메르어-크메르어 사전>을 편찬하기도 했다. 캄보디아를 "프랑스 보호령"으로 만든 프랑스는, 소위 "유사 프랑스 지식인들"이라 부른 이들을 통해, 크메르어를 자국어로 대치시키려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많은 캄보디아 학자들을 크메르어 수호운동에 나서도록 만들었고, 그러한 학자들 중 한 사람이 바로 쭈언 낫 스님이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낫 스님은 이후 출가를 하여, 식민지 캄보디아의 불교를 수호하고 크메르어를 보존하는 데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 그는 크메르어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는 현재까지도 캄보디아의 가장 유명하고 박식한 승려 중 한 사람일 것이다. 한 사람의 불교계의 스승으로서, 그는 불교계뿐만 아니라 언어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지식인이었다. 낫 스님은 일생 동안 대중교육 및 종교의 양 분야에서 "크메르화"(Khmerization)를 고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말한 "크메르화"란 빨리어나 산스끄리뜨어의 고전적 어원으로부터 새로운 크메르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에 최초로 철도가 개통됐을 때, 크메르어에는 "기차"를 가리키는 표현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경우 낫 스님은 산스끄리뜨어와 빨리어에서 "철제로 된 것"을 가리키는 말 "아야스마야"(Ayomoyo)란 단어를 차용했다. 그리고 "수레"를 가리키는 "야나"(yana: 크메르어 발음은 "연")를 결합시켜 오늘날 사용하는 "기차"라는 크메르어 "아야 스마이 연"(Ayak-smey-yean)이란 단어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낫 스님의 이러한 "크메르화" 운동이 모든 크메르인들에게 수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껭 완삭(Keng Vannsak)과 같은 친 프랑스적 성향의 학자들은 산스끄리뜨어나 빨리어 어원을 차용해 크메르어에서 신조어를 만들기보다는, 사용의 편의를 고려해 프랑스어 단어를 명사화시켜 크메르어 어휘로 만드는 또다른 혁명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이 방법에서 어떤 주요한 변화가 있다면, 필기를 할 때 프랑스어 알파벳을 사용하는 대신 크메르 문자를 사용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낫 스님의 "크메르화" 운동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1915년 크메르어 사전 출판을 위해 설립한 왕립 위원회의 원년 멤버였고, 이 작업을 밀어부쳐 결국 현재 사용하는 크메르어 사전 정본의 초판을 1967년에 발간함으로써 이 사전의 아버지가 되었다. 낫 스님의 또다른 공헌으로는 캄보디아 국가인 <노꼬 리엇>을 작사, 작곡한 데 있다. 이 곡은 과거 크메르제국의 웅대함과 강성함을 표현하는 가운데, 오늘날까지도 사용되는 국가적 모토인 "국가, 종교, 국왕"(Nation, Religion, King)이란 기치 아래 만들어진 것이다.
쭈언 낫 스님이 작곡한 캄보디아 국가 "노꼬 리엇" (클릭: 음악감상). 캄보디아의 모든 방송국들이 이 상당히 음질이 떨어지는 음악을 내 보내는 것으로 보아, 이 음반에 어떤 의미있는 사연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영상들은 "크메르의 세계"에서 추가한 것임. (캄보디아 국영TV 화면) |
2. 사워다 크마에
발라드 형식의 <사워다 크마에>(Savada Khmer)는 크메르인들에게 위대한 역사를 고취시키기 위해 1958년 9월 12일 누온 깐(Nuon Kan)이 작곡한 노래이다. 이 곡은 쭈언 낫 스님이 직접 만들진 않았지만, 크메르 민족주의의 혼을 북돋기 위해 이 곡을 만드는 작업에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작품이다.
크메르인들에게 <뻥 사와다 크마에>는 거의 준 국가 급의 위상을 가진 노래이다. 2008년 "쁘레아 위히어" 사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자, 캄보디아는 이를 기념해 공연행사를 가졌다. 위의 동영상은 바로 그 행사에서 모든 이들이 <뻥 사와다 크마에>를 합창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속 안 부총리가 가사를 보며 따라부르는 장면도 포함되어 있다. (바이욘TV 화면) | (가사의 영문 및 한국어 번역: 한국어 번역은 "크메르의 세계")
(한국어) 모든 크메르인들이여, 우리의 위대한 조국의 근본과 역사를 부디 기억할지어다. 우리의 국경선은 광활하였고, 또한 명성이 자자하였노라. 이민족들은 언제나 우리의 종족을 높이 생각하였고, 우리 민족을 어른으로 섬겼었노라. 우리는 위대한 유산과 문화를 가지고 있으니, 이는 동방에 널리 전파되었던 것이다. 종교, 예술, 교육, 음악, 철학, 전략학, 이 모두를 우리가 전파시켰노라. 모든 크메르인들이여, 우리의 위대한 조국의 근본과 역사를 부디 기억할지니, 그 모든 것이 우리 종족의 웅대함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네 심신을 갈고 닦아 다시금 부흥하는 데 전력하라. 우리 민족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이미 우리가 가졌던 그 위대함을 다시금 재건하기 위하여. (영문) All Khmers, please remember the root and history of our great country Our boundary was wide and well known Others always thought highly of our race And always placed our race as the elders. We have great heritage and culture Which has spread far and wide in the Far East. Religion, arts and education, Music, philosophy and strategies are all that we have spread. All Khmers, please remember our roots and history Which speaks of the grandeur of our great race Make up your mind and body and try hard to rebuild In order to lift the value of our nation To once again rise to the greatness that we once had. |
(아래사진) Kiensvay가 2008-4-7에 제작한 <사워다 크마에> 크메르어 가사.
○ 참고문헌 : Cambodian Buddhism, by Ian Ha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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