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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二) [放下情識 參詳禪旨]
公(공)이 處身富貴(처신부귀)호대 而不爲富貴(이불위부귀)에
所折困(소절곤)하니, 非夙植般若種智(비숙식반야종지)면 焉
能如是(언능여시)리요 但恐中忘此意(단공중망차의)하고 爲利
根聽明(위이근청명)에 所障(소장)하야 以有所得心(이유소득
심)이 在全頓放故(재전돈방고)로 不能於古人直截徑要處(불능
어고인직절경요처)에 一刀兩段(일도양단)하야 直下休歇(직하
휴헐)하나니 此病(차병)은 非獨賢士大夫(비독현사대부)라 久
參衲子(구참납자)도 亦然(역연)하야 多不肯退步(다불긍퇴보)
하야 就省力處做工夫(취생력처주공부)하고 只以聰明意識計較
思量(지이총명의식계교사량)으로 向外馳求(향외치구)하며 乍
聞知識(사문지식)의 向聰明意識思量計較外(향총명의식사량계
교외)하야 示以本分草料(시이분본초료)하야는 多是當面蹉過
(다시당면차과)하고 將謂從上古德(장위종상고덕)이 有實法與
人(유실법여인)이라하나니 如趙州放下着(여조주방하착)과 雲
門須彌山之類(운문수미산지류)-是也(시야)라하니라 巖頭曰
(암두왈) 却物(각물)이 爲上(위상)하고 遂物(수물)이 爲下
(위하)라하며 又曰(우왈) 大統網宗(대통강종)은 要須識句(요
수식구)니 甚麽是句(심마시구)오 百不思時(백불사시)를 換
作正句(환작정구)라하며 亦云居頂(역운거정)이라하며 亦云得
住(역운득주)라하며 亦云歷歷(역운력력)이라하며 亦云恁麽時
(역운임마시)라하나니 等破一切是非(등파일체시비)니 纔恁麽
(재임마)면 便不恁麽(편불임마)라 亦云惺惺(역운성성)이라
하며 是句(시구)도 亦剗(역잔)이며 非句(비구)도 亦剗(역잔)
이니 如一團火相似(여일단화상사)하야 觸着便燒(촉착편소)라
有甚麽向傍處(유심마향방처)리요 今時士大夫(금시사대부)-
多以思量計較(다이사량계교)로 爲窟宅(위굴택)하야 聞恁麽說
話(문임마설화)하면 便道(편도)호대 莫落空否(막락공부)아하
나니 喩似舟未飜(유사주미번)에 先自跳下水去(선자도하수거)
라 此(차)는 深可憐愍(심가연민)이로다近至江西(근지강서)하야 見呂居仁(견려거인)호니 居仁(거인)
이 留心此段因緣(유심차단인연)이 甚久(심구)호대 亦深有此
病(역심유차병)이라 渠豈不是聰明(거기불시총명)이리오만은
某嘗問之曰(모상문지왈) 公(공)이 怕落空(파락공)하니 能知
怕者(능지파자)는 是空耶(시공야)아 是不空耶(시불공야)아
試道看(시도간)하渠佇思(거저사)하야 欲計較 對(욕계교기대)
어늘 當時(당시)에 便與一喝(편여일할)호니 至今茫然(지금망
연)하야 討巴鼻不着(토파비불착)이로다라 此蓋以求悟證之心
(차개이구오증지심)이 在前頓放(재전돈방)하야 自作障難(자
작장난)이요 非干別事(비간별사)니라 公(공)은 試如此做工夫
(시여차주공부)하야 日久月深(일구월심)하면 自然築着磕着
(자연축착합착)이어니와 若欲將心待悟(약욕장심대오)하며
將心待休歇(장심대휴할)인댄 從脚下參(종각하참)하야 到彌
勒下生(도미륵하생)이라도 亦不能待悟(역불능대오)이며 亦不
能待休歇(역불능대휴헐)하고 轉加迷悶耳(전가미민이)이니라
平田和尙曰(평전화상왈) 神光(신광)이 不昧(불매)하야 萬古
徽猷(만고휘유)니 入此門來(입차문래)인댄 莫存知解(막존
지해)라하며 又古德曰(우고덕왈) 此事(차사)는 不可以有心
求(불가이유심구)며 不可以無心得(불가이무심득)이며 不可以
語言造(불가이어언조)며 不可以寂黙通(불가이적묵통)이라하
니 此是第一等入泥入水(차시제일등입니입수)인 老婆說話(노
파설화)어늘 往往(왕왕)에 參禪人(참선인)이 只恁麽念過(지
임마념과)하고 殊不子細看是甚道理(수불자세간시심도리)오하
나니 若是箇有筋骨底(약시개유근골저)인댄 聊聞擧着(료문거
착)하고 直下(직하)에 將金剛王寶劒(장금강왕보검)하야 一截
(일절)에 截斷此四路葛藤則生死路頭(절단차사로갈등칙생사로
두)도 亦斷(역단)이며 凡聖路頭(범성로두)도 亦斷(역단)이며
計較思量(계교사량)도 亦斷(역단)이며 得失是非(득실시비)도
亦斷(역단)하야 當人(당인)의 脚跟下淨裸裸赤灑灑(각근하정
나나적쇄쇄)하야 沒可把(몰가파)하리니 豈不快哉(기불쾌재)
며 豈不暢哉(기불창재)아 不見(불견)가 昔日(석일)에 灌谿和
尙(관계화상)이 初參臨濟(초참임제)할새 濟見來(제견래)코
便下繩床(편하승상)하야 驀胸擒住(맥흉금주)한댄 灌谿_便云
領領(편운령령)커이다 濟_知其已徹(제_지기이철)하고 卽便推
出(즉편추출)하야 便無言句(편무언구)로 與之商量(여지상량)
하니 當恁麽時(당임마시)하야 灌谿_如何思量計較(관계_여하
사량계교)로 祗對得(지대득)이리요 古來(고래)에 幸有如此
牓樣(행유여차방양)이어늘 如今人(여금인)은 總不將爲事(총
부장위사)하고 只爲麤心(지위추심)이로다 灌谿(관계)_ 當初
(당초)에 若有一點(약유일점)이나 待悟待證待休歇底心(대오
대증대휴헐저심)이 在前(재전)이런들 時(시)에 莫道被擒住便
悟(막도피금주변오)하리라 便是縛却手却(변시박각수각)하고
遶四天下(요사천하)하야 拕一遭(타일조)라도 也不能待悟(야
불능대오)하며 也不能待休歇(야불능대휴헐)하리라 尋常(심
상)에 計較安排底(계교안배저)도 是識情(시식정)이며 隨生死
遷流底(수생사천유저)도 亦是識情(역시식정)이며 怕怖창惶底
(파포창황저)도 亦是識情(역시식정)이어늘而今參學之人(이금
참학지인)은 不知時病(부지시병)하고 只管在裏許(지관재리
허)하야 頭出頭沒(두출두몰)하나니 敎中(교중)에 所謂隨識而
行不隨智(소위수식이행불수지)라 以故(이고)로 昧却本地風光
本來面目(매각본지풍광본래면목)하나니 若或一時(약혹일시)
나 放得下(방득하)하야 百不思量計較(백불사량계교)하면 忽
然失却(홀연실각)하야 蹋着鼻孔(답착비공)하리니 卽此識情
(즉차식정)이 便是眞空妙智(변시진공묘지)라 更無別智可得
(갱무별지가득)이어니와 若別有所得(약별유소득)하며 別有所
證則又却不是也(별유소증즉우각불시야)리라 如人(여인)이 迷
時(미시)에 喚東作西(환동작서)라가 乃至悟時(내지오시)하야
는 卽西更是東(즉서변시동)이라 無別有東(무별유동)이니라
此眞空妙智(차진공묘지)-與太虛空(여태허공)으로 劑壽(제수)
하니 只도 太虛空中(지서태허공중)에 還有一物(환유일물)이
礙得他否(애득타부)아 雖不受一物礙(수불수일물애)나 而不妨
諸物(이불방제물)이 於空中往來(어공중왕래)하나니 此眞空妙
智(차진공묘지)도 亦然(역연)하야 生死凡聖垢染(생사범성구
염)이 着一點不得(차일점부득)이니 誰着不得(수착부득)이나
而不礙生死凡聖(이불애생사범성)이 於中往來(어중왕래)라 如
此信得及見得徹(여차신득급견득철)하면 方是箇出生入死(방시
개출생입사)에 得大自在底漢(득대자재저한)이라 始與趙州放
下着(여흥조주방하착)과 雲門須彌山(운문수미산)으로 有少分
相應(유소분상응)이어니와 若信不及放不下(약신불급방불하)
인댄 却請擔取一座須彌山(각청환취일자수미산)하야 到處行脚
(도처행각)하야 遇明眼人(우명안인)하야 分明擧似(분명거사)
하랴 一笑(일소)하노라
증시랑에게 답하는 편지, 두 번째
그대가 몸을 부귀에 머물되 부귀에 꺾이어 난처한 바가 되지 아니한 것은, 예로부터 지혜의 종자를 심지 않았다면 어찌 능히 이와 같으리오? 다만 중간에 이 뜻을 잊고 이근총명(利根聰明)의 장애가 되어, 얻으려고 하는 마음이 앞서서 문득 그냥 놓여 있었기 때문에, 古人께서 곧바로 끊는 지름길이라고(가르친) 요긴한 곳에서 한칼로 두 동강 내어 바로 그 아래에 쉬지 못할까 능히 염려하나니, 이 병은(당신과 같이) 어진 사대부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참구한 납자(衲子)들도 역시 그러하여, 허다하게 즐거이 한 걸음 물러나 힘 더는 곳[省力處]에 나아가서 공부를 지으려 하지 않고, 다만 총명과 의식, 사량, 계교하는 그 밖을 향하여 본분활구[草料]를 보이는 것을 듣고, 허다히 면전에서 잘못된 견해로 지나쳐 버리고는 말하기를 “옛날부터 고덕들이 실다운 법을 사람에게 줌이 있다” 라고 하나니,(만약에 本分草料를 알고자 할진댄) 저 조주의 방하착(放下着)과 운문의 수미산(須彌山)과 같은 것(類)들이 이것이다.
암두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경계[物]를 물리침이 으뜸이 되며, 경계를 따라감이 아래가 된다”라고 하였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대개[大統] 으뜸이 되는 종취(宗趣)는 마땅히 언구 알기를 [識句] 요함이니, 어떤 것이 언구인가? 온갖 것을 사량(思量)하지 않을 때를 정구(正句)라고 부르며, 또 거정(居頂)이라 이르며, 득주(得住)라 말하며, 역력(歷歷)이라 말하며, 성성(惺惺)이라 말하며, 임마시(恁麽時)라고 말한다. 이러한 때에 나아가 모든 시비가 가지런히 깨짐이니, 자칫 이렇다 하면 곧 이렇지 못함이라, 옳은 글귀도 깎아버리고 그른 글귀도 깎아버려 마치 한 덩어리의 불과 같아서 닿기만 하면 곧 불타버림이라, 무슨 가까이 할 곳이 있으리오”라고 하시니, 지금의 사대부들이 허다히 사량 계교로써 안식처[窟宅]를 삼아서 이렇게 말함을 듣고 곧 말하기를 “공에 떨어지지 않을까?” 하나니, 마치 배가 뒤집어지기도 전에 먼저 스스로 물로 뛰어내려감과 같아, 이는 몹시 가련하고 불쌍함이로다.
요즘 강서(江西)에 이르러 여거인(呂居人)을 만났더니, 거인이 마음을 이 한 조각의 인연에 머물러 둚이 매우 오래되었어도 깊이 이 병이 있는지라, 그가 어찌 총명하지 않으리오만 내가 일찍이 그에게 묻되 “자네가 공에 떨어짐을 두려워하니 능히 두려워함을 아는 자는 공한가? 공하지 않는가? 시험삼아 일러 보아라”고 하니, 그가 우두커니 생각하면서 계교하여 공경히 대답하려고 하는데, 그때에 문득 한 번 “할!”하니, 지금까지도 어리둥절[茫然自失]하여 유래[巴鼻]를 찾으려고 해도 찾지 못함이로다. 이는 모두가 깨달아 증득함을 구하는 욕심이(道心보다) 앞서 문득 놓여 있으므로 스스로가 장애와 어려움을 지을 뿐이요, 다른 일이 있어 간여됨은 아니다. 그대는 시험삼아 이와 같이 공부를 지어서 세월이 흘러가면[日久月深] 자연히 댓돌 맞듯 맷돌 맞듯[築着磕着] 하려거니와,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며 마음을 가져 쉬기를 기다리고자 할진댄, 처음부터[却下] 참구하여 미륵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실 때까지 공부하여도 또한 깨달을 수가 없으며, 또한 쉴 수도 없어 더욱더 헤매고 번민[煩悶]함만 더할 뿐이다.
평전화상이 말씀하시길 <신령스러운 광채가 혼매(昏昧)하지 아니하여 만고(萬古)에 훌륭한 법이니, “이 문을 들어서면 알음알이[知解]를 두지 말라!”>라고 하시며, 또 고덕이 말씀하시기를 “이 일은 유심(有心)으로도 구할 수 없으며, 무심(無心)으로도 얻을 수가 없으며, 언어로써 설명할 수 없으며, 적묵(寂黙)으로도 통하지 못한다”라고 하시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진흙에 들고 물에 들어서 노파가 손자를 염려하듯 간절한 말씀이거늘, 가끔 참선하는 사람이 다만 이렇듯 생각으로만 지나쳐 버리고 자못 “이 무슨 도리인가?”라고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는다. 만약에 힘줄과 뼈[筋骨]가 있는 놈인댄 애오라지 듦[擧着]을 듣고는 곧바로 금강왕보검을 잡아 한칼에 잘라버림에 네가지 길(有心. 無心. 言語. 寂黙)의 갈등이 꺽어 끊어져버리니, 곧 생사의 길[路頭]도 또한 끊어질 것이며,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길도 또한 끊어질 것이며, 계교하고 사량함도 또한 끊어질 것이며, 득실시비(得.失.是.非)도 또한 끊어지므로, 본인의 서 있는 곳[却根下]이 깨끗하기가 물 뿌린 듯하며 붉기가 벌거벗은 듯하여 붙잡을 수 없으리니, 어찌 통쾌하지 않으며 어찌 시원하지 않겠는가?
보지 못했는가! 옛적에 관계화상이 처음 임제선사를 참례하였을 때 임제선사께서 관계화상이 오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승상(繩床;法床)에서 내려와 갑자기 멱살을 움켜쥐니, 관계화상이 바로 말하기를 “알겠습니다.알겠습니다”라고 하니, 임제선사께서 그가 이미 깨달았음을 아시고 곧바로 떠밀어내고, 다시는 언구로 그와 함께 상량(商量)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관계화상이 어떻게 사량계교로써 삼가 응대하였겠는가? 예부터 옴으로 다행히 이와 같은 본보기가 있었는데도, 요즘 사람은 모두 다들 가져서 일로 삼지 아니함은 다만 조폭(粗暴)스러운 마음 때문이다. 관계화상이 애초에 만약 한 군데라도 깨달음을 기다리거나 증득하기를 기다리며, 쉬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바로 앞에 있었더라면, (멱살을) 움켜쥠을 당하고 문득 깨달았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곧 손발을 묶고 사천하(四天下)를 돌아쳐서 한 번 만나더라도, 또한 깨달을 수 없으며, 또한 쉴 수가 없을 것이다.
평상시에 계교하여 꿰어 맞춤[安排]도 식정(識情)이며, 생사를 쫓아서 옮아다님[遷流]도 역시 식정이며, 두려워 무서워하며 어쩔 줄 모름[怕怖창惶]도 역시 식정이거늘, 요즘 참선하여 도를 배우는[參學]사람들이 이 같은 병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만 있어서 머리를 출몰하나니, 교(敎)가운데는 “식을 따라 행하고, 지를 따르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본지풍광’과 ‘본래면목’을 어둡게 함이니, 만약 혹 한때라도 잠시 놓아버릴 수 있게 하여[紡得下], 온갖 것을 사량 계교하지 않는다면 홀연히 (식정의) 다리를 잊어 본분을 밝게 되리니[蹋着鼻孔], 곧 (今日의) 이 식정이 문득 ‘진공묘지’인지라 (그밖에) 다시 특별한 지혜를 얻을 것이 없거니와, 만약 특별하게 얻은 바가 있고 특별하게 증득한 바가 있다고 한다면, 곧 또한 도리어 옳지 않다. 마치 어떤 사람이 깨닫지 못할 때는 동쪽을 불러서 서쪽이라고 하지만, 혹[乃至] 깨달았을 때는 곧 서쪽이 문득 동쪽이라, (그밖에) 특별히 동쪽이 있지 않음과 같다.
이 진공묘지는 태허공과 더불어 그 수명을 같이 하니, 다만 이 태허공 가운데 도리어 하나의 물건이 있다면 그것으 장애하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비록 한 물건의 장애를 (태허공이) 받지 않는다고는 하나, 모든 물건들도 허공 가운데서 오고감이 방해롭지 않다. 이 진공묘지도 역시 그러하여 죽고, 살고, 범부, 성인, 때, 더러움[生死凡聖垢染]이 한 티끌이라도 붙일 수 없음이나, 죽고, 살고, 범부, 성인, 때, 더러움이 그 가운데서 오고감이 장애를 받지 않는다. 이와 같이 믿어 이를 수 있고, 보아 사무칠 수 있다면 비로소 생사의 출입[出生入死]에 크게 자재로움을 얻은 사람이라. (이렇게 되면) 비로소 조주의 방하착과 운문의 수미산과 더불어 조금 서로 응함이 있겠거니와, 만약 믿지 못하며, 놓아 내려버릴 수도 없다면, 도리어 한 더미의 수미산[一座須彌山]을 짊어지고 가는 곳마다[到處] 행각(行脚)하여 눈 밝은 사람을 만나서 분명하게 들어 바치기를 청(請)하노라.
한 번 웃으리라.
첫댓글 비록 한 물건의 장애를 (태허공이) 받지 않는다고는 하나, 모든 물건들도 허공 가운데서 오고감이 방해롭지 않다. 이 진공묘지도 역시 그러하여 '生死凡聖垢染'이 한 티끌이라도 붙일 수 없음이나, '生死凡聖垢染'이 그 가운데서 오고감이 장애를 받지 않는다. 이와 같이 믿어 이를 수 있고, 보아 사무칠 수 있다면 비로소 出生入死에 크게 자재로움을 얻은 사람이라... 불퇴지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_()()()_
총 정리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불퇴지님,수고 많이 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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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고덕들이 실다운 법을 사람에게 줌이 있다 - 라고 하나니 (만약에 本分草料를 알고자 할진댄) 저 조주의 방하착(放下着)과 운문의 수미산(須彌山)과 같은 것(類)들이 이것이다.
亦是識情(역시식정)이어늘而今參學之人(이금참학지인)은 不知時病(부지시병)하고.... : 역시 식정이거늘, 參學사람들이 이 같은 병을 알지 못하고....
- 이 무슨 도리인가? - .....애오라지 듦[擧着]을 듣고는 곧바로 금강왕보검을 잡아 한칼에 잘라버림에 네가지 길(有心. 無心. 言語. 寂?)의 갈등이 꺾어 끊어져버리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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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에 계교하여 꿰어 맞춤도 식정이며, 생사를 쫓아서 옮아다님도 역시 식정이며, 두려워 무서워하며 어쩔 줄 모름도 역시 식정이거늘, 요즘 참선하여 도를 배우는사람들이 이 같은 병을 알지 못하고, ‘본지풍광’과 ‘본래면목’을 어둡게 함이니, 만약 혹 한때라도 잠시 놓아버릴 수 있게 하여, 온갖 것을 사량 계교하지 않는다면 홀연히 (식정의) 다리를 잊어 본분을 밝히l게 되리니, 곧 (今日의) 이 식정이 문득 ‘진공묘지’인지라 (그밖에) 다시 특별한 지혜를 얻을 것이 없거니와, 만약 특별하게 얻은 바가 있고 특별하게 증득한 바가 있다고 한다면 옳지 않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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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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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