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비호'는 '비호외전'의 후편 격인 작품입니다. '비호외전'에서는 주인공 '호비(胡飛)'의 의협심과 기개가 돋보였고 '설산비호'에서는 2대에 걸친 원한 관계의 복잡한 애증이 얽혀 있습니다.
후기에서 김용은 이 작품의 결말은 단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호비는 두가지 중의 하나, 즉 피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여러분도 한 번 결말을 상상해 보세요. 머리 아플 겁니다.
다음은 설산비호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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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위의 표면은 둥글고 오랫 동안 빙설이 쌓여 있었으므로 말할 수 없이 미끄러웠으나, 두 사람의 무공이 고강한지라 한번 바위 위에 발을 고정시키고는 추호의 움직임도 없었다. 다만 '뿌드득'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는데 그것은 수만 근이나 되는 바위가 어딘가로 움직이는 소리였다. 원래 이 바위는 산허리에 옆으로 걸쳐 있는 거암으로 오래도록 바위 밑부분의 모래와 돌들이 밑으로 굴러떨어졌는데, 지금은 그 위에 두 사람의 체중이 실렸으니 바위 밑에 끼워진 모래와 돌들이 더욱더 많이 떨어져내려 바위의 움직임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이었다. 그 두 자루의 나뭇가지도 두 사람을 따라 바위 위로 떨어졌다. 묘인봉은 상황이 급박해지자 왼손으로 일장을 치며, 오른손으로는 벌써 나뭇가지를 집어 곧 '상보운변적월'(上步雲邊摘月)로서 공격하였다. 호비는 얼른 허리를 굽혀 검을 피하며 그 또한 나뭇가지를 주워 '배불청경'(拜佛聽經) 일초로 대응했다. 두 사람이 이때 사용한 초식은 모두 공격적인 것으로 날카롭고 험
한 것들 뿐이었으나, '뿌드득' 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오고 더 이상 발을 붙이고 서 있기가 어려운 지경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이렇게 생각했다.
(상대를 밀어 떨어뜨리기만 한다면, 바위 위의 중량을 줄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거암이 밑으로 굴러떨어지지는 않을 테니 자신의 목숨은 구할 수 있을 텐데.)
이때 두 사람의 목숨은 순식간에 결정될 일이었으니, 손을 움직이는 것 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 잠깐 동안에 수십여 초를 겨루었다. 묘인봉은 상대방의 도법이
호일도의 도법과 완전히 똑같다는 걸 발견하고는 의심이 점점 커져갔다. 다만 연속되는 공방에 물어 볼 겨를이 없었다. '반완익덕틈틈장'(返腕翼덕틈틈掌) 일초를 펼치고 나서 바로 연이어 '제료검백학서시'(提寮劍白鶴舒翅)를 펼치려는 찰나였다. 이 일초는 상대방을 바위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다만 그의 어려서부터의 습관이 그랬듯이 출초(出招)하기 전에 등덜미를 들썩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는 달이 씻은 듯이 맑게 하늘에 걸려 있는 때였으므로, 달빛이 산벽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 산벽은 온통 얼음이 얼어 있었으므로 달빛이 비추자 마치 거울을 비춘 듯이 묘인봉의 뒷모습을 비춰 주었다. 호비는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는 평아사에게서 들은 부친과 묘인봉이 예전에 대결했던 상황을 생각해 내고, 그때 어머니가 묘인봉의 등
뒤에서 기침소리로 표시했었다던 그 상황을 그는 거울에 비춘 듯이,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훤히 보고 있는것이었다. 그는 그가 이 초식으로 맞서야 함을 알고 있었다. 바로 '팔방수도식'(八方樹刀式)이라는 일초로.
묘인봉은 이 '제료검백학서시' 일초를 반 초도 채 펼치지 못했을 때, 전신이 이미 호비의 수도(樹刀) 아래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그는 그제서야 다시는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호일도와 대단히 깊은 인연이 있다는 것을 그는 탄식하듯 말했다.
" 인과응보야! 응보... "
그는 두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렸다.
호비는 수도를 들어올려 단 일초면 묘인봉을 바위 밑으로 쳐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묘약란에게 약조하였던 일이 생각나 결코 그녀의 부친을 해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를 베지 않는다면 그의 '제료검백학서시' 일초를 완수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니 자신은 살아 남지 못 할 것이 뻔한 이치였다. 상대방을 살려 주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잠시동안 그의 심중은 수천 갈래의 감정이 교차되었다. 이 사람은 자신의 부모를 죽게 한 장본인으로 그를 일생 외롭게 살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영웅호걸이며, 자신이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아버지이니, 이치로 따지면 마땅히 그를 베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를 베지 않는다면, 자신의 목숨을 살려 두리라고 장담 할 수 없으니 아직도 장년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어찌 죽음을 자청할 수 있겠는가? 만일 묘인봉을 죽인다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묘약란과 상면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해도 이 일생 세상에 살면서 마음의 고통이 극심할 것이니 살아 있음이 죽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으리라.
호비는 천만 번을 고민하여도 정말로 이 일도를 내려쳐야 하는지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상대방을 죽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자신의 목숨을 대신 바치기도 원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협의를 중히 여기는 호걸이 아니었다면 이 일도는 물론, 벌써 주저없이 내려쳤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도 가벼이 저버 릴 수도 없는 것을. 이러한 때에 어느 쪽으로든 결단을 내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 것을....
묘약란은 눈덮힌 대지 위에 서서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돌아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호비가 건네준 보따리를 천천히 열어 보았다. 갓난아이의 옷과 어린아이의 신발, 그리고 황색 보자기 하나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달빛 아래 비춰진 황색 보자기에 수놓여진 글씨는 너무도 분명하게 보였다. '타편천하무적수' 그 일곱 자는 바로 그녀의 아버지인 묘대협이 예전에 호비의
몸에 감싸 주었던 바로 그 황색 보자기에 씌어 있던 바로 그 글씨였다. 그녀는 눈덮인 대지에 선 채 달빛을 받으며, 갓난아기의 옷들과 신발을 바라보고 정신을 잃은 듯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호비는 과연 무사히 돌아와 그녀와 상면할 수 있을까? 그는 그 일도를 내려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