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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스님의 장군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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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스크랩 반야심경 1-2 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
명심 추천 0 조회 145 14.04.24 14:2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반야심경1-2-1.zip

 

 

惠庵 門人 청봉청운 선사 의역 강설

 

그러나 깊이 알아야 할 것은 깨달아 밝고 즐겁게 사는 이 삶이 곧 불국정토라는 말에만 쫓아 이생만이 전부요,
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비 지옥이 없고 이 육신의 삶이 끝난 뒤 내가 가야 할 곳이 다시없고,
무(無)로 멸해 버리는 것으로만 알아서 이생만 잘 살면 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단견)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혼동하거나 오도
(誤導: 잘못되게 그릇 지도하여 이끌어 가면)
하면 지옥 가기를 화살 같으리니
이런 변견(邊見) 즉 있다 없다 등 한편에 치우쳐 사로 잡혀 갖는 잘못된 소견에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는 지식만 가르치려고들 한다.
지식은 상대적인 것을 필요로 하므로 많이 알고 이해할 수록 더욱 자아에 애착하게 되어,
더 풍요롭고 편하게 내 잘 사는 데에만 급급하게 되게 되어,
상대를 만들고 세상을 복잡하고 이기적으로 살게 되는 경쟁의 무대로 만들어 가는 위험을 내포하게 된다.
그러나 참 지혜를 알려는 이는 드물고 절대지
(智慧)
를 지도하는 이는 귀하니 안타깝다.

절대지를 요달
(了達: 理: 체: 정,  事: 차별상: 용을 의심할 것 없이 깨달아 통달)
하여 계합하면 일체가 둘 아니며 모두가 참 나로 부터 임을 깨달아 너와 나를 분별하지 않는 보살도를 행하게 되므로 세상이 변화하여 다툼 없는 정토가 자연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한 생각 어리석어 어두운 것이 미혹한 중생이요,
밝아서 슬기로우면 깨달은 부처님인 것이다.
그러므로 앞생각이 미하면 중생이요,
뒷생각이 밝으면 佛이라 하는 것이다.
자! 그럼 근원에 이르렀을 때는 어떠한가?]

        土壤之高山  토양지고산 이어도
        其山不知高  기산부지고 하고
        水流流不息  수류유불식 하여도
        自不知其流  자부지기류 하니라

        흙이 산을 받치고 있어도
        그 산의 높이 모르고
        물이 쉼없이 흘러도
        스스로 그 흐름을 알지 못하니라

심(心)은 이름 붙여 부를 뿐 모양이 없어, 없이 있는 우주 근본 체이다.

[불가사의(不可思議: 마음으로 생각하고 헤아려 알 수 없는)한 묘하고 희유(불가사량)한 일체의 근본인 것으로 친히 계합(契合: 빈틈없이 꼭 들어맞아 합일)하지 않고는 이르를 수 없는 것이다.

늘 나와 함께 있어도 나
(我)만 알 뿐,
나의 본성인 근원
(본래 면목)을 모르고, 피상적으로만 알아서 거짓 내 마음을 마음, 마음하고 있으니
이 진여본성
(眞如本性: 평등 보편하여 본래 상주불변하는 만유일체의 본 성품)인 법성인 즉 마음을 요달하려면 실천, 실수하여야만 한다. 즉 직접 몸소 닦아 체인(體認: 몸소 직접 이르러 인식하고 인증)하고 체달(體達: 사물의 진상을 직접 이르러)해서 통달(확철히 깨달아 아는)하는 길 밖에 없다.
이 마음을 마음이라는 명사
(이름하여, 말하자면, 이를테면)로 쓰는 것은 실상이 아닌 것이므로 여러가지 또 다른 명칭으로 부르게 되는 것이다.

心 = 보리
(반야경) 법계(화엄경) 여여(금광명경) 법신(유마경) 진여(기신론) 불성(열반경) 종지(원각경) 여래장(승만경) 법성(법성게) 유심, 중도, 자성, 진성, 반야, 일승, 불심, 심지, 총지, 본지풍광, 법주, 진제, 무아, 불이법문, 불생불멸, 부사의, 묘유, 실상, 필경공, 열반, 허공, 진선, 원각여래 등은 교문에 쓰는 명칭이고,
주인공, 본연, 본래면목, 무공저, 백우, 무영탑, 무봉탑, 금강검, 무영수, 한물건, 대법왕, 원상, 대기대용, 취모검, 정안, 석인, 석녀 묘심, 몰현금, 무진등, 무근수, 정법안장, 자구심인, 심원 등은 선문에서 칭하는 이명(異名)들이다]

경(經)은 즉 범어 sutra의 번역이며 진리를 설(말씀)한 글이므로, 길(徑)이니 가르침이다.

[진리를 설했다 하는 것은 꾸미거나 조작하고 만들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닌 천연의 진리를 깨달은 바 있는 그대로를 삼켰다 토한 것과 같이 말씀하므로 "설해도 설함이 없다" 하는 것이며
진리를 설하여 근원
(체)으로부터 나투고 작용한 일체의 참 이치를 가르침이니
즉 진리
(理: 무위: 진제)를 사(事: 유위: 속제)인 차별문으로 설한 것이며,
또한 본체
(자성)는 설하고 작용해도 동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성(法性: 변하지 않는 모든 일체 만유의 실상체)이요
본체
(진여, 실상, 본래면목, 당체 등)인 법신불로 우주근본체이고,
삼세제불이 경마다 이 경 가운데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삼세제불이 나왔다고 하는 그 나온 곳은 경 가운데 어디인고?]

        瞬目又揚眉    순목우양미 가
        皆是眞佛現    개시진불현 이니
        圓物生圓物    원물생원물 이고
        方亦生方物    방역생방물 이니라

        눈을 감고 뜨고 눈썹 치키고 내리는 것
        모두가 참 부처의 출현이니
        둥근 것은 둥근 것을 낳고
        모난 것은 모난 것을 낳느니라

 

 

觀 自 在 菩 薩 行 深
관 자 재 보 살 행 심
관자재 보살이 깊이 행하여

관자재보살은 범어 avalokitesvara이며 지혜로 관조하여 자재하며 묘과를 얻은 관세음보살을 가리킨다.
 보살은
① 성불하기 위하여 인욕수행을 하여 51위의 수양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
(52위)를 이루기 직전에 오른 이
② 지장보살님과 같이 대원력 보살로 부처님 되는 것을 유보하고 중생제도에 진력하는 보살
③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부처
(법신)의 응신보살
④ 대승법의 수행으로 6바라밀다를 행하여 좋은 말과 행동으로 중생과 함께 하며 베푸는 현세의 보살행을 하는 이의 총칭임.
이 경의 경우는 ① 의 예로 봄이 옳다.

그러한 관음보살이 본원을 관조
(觀照: 회광반조廻光返照: 스스로 돌이켜 본원의 자리를 비춰 보는 것이니 보는 나와 보이는 본체가 둘 아니게 되는 것)해서 깊이 행하여(行深) 이르러 둘 아니게 될 때의 경지이다.

[행심은 깊이 행한다는 말이니 즉 모든 의식과 사량 분별을 여의고 본래면목과 둘 아닌 데에 이르름이다.
따라서 깊은 참선 수행으로 내외명철한 정에 들어 온몸으로
(육신이 아닌) 체험할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이때의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의 여러가지 이름 가운데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임의자재하게 관하는 보살).

보살은 여기에서는 성불하기 위해 인욕 수행을 하여 51위의 수양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를 이루기 직전에 오른 이니 여래의 체험으로 봄이 옳다.
그러나 진여문에서 보면 나의 참면목의 행이기도 한 것이다]

        明星出處親踏着     명성출처친답착 하면
        始知佛覺不由星     시지불각불유성 이리라

        샛별 뜨는 곳을 몸소 이르러 보면
        부처님의 깨달음이 별을 봄이 아님을 비로소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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