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님의 등장으로 세계의 역사가 바뀌고, 인류의 정신사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변혁과 전환이 몰아쳤다는 것, 그리고 거대한 물결과 역사와 전쟁과 전설을 이끌어 온 실질적인 역사의 주역이었다는 것과, 많은 인간의 영혼에 살아 숨쉬어 온 뜨거운 열정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일이 어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역사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그의 이상과 숨결은 작용했습니다. 예수의 사상과 정신은 지대하고, 광대하며, 깊은 자취를 남겨왔던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예수님의 생애와 정신을 바르게 알고자 위함입니다.
2. 예수님의 대한 구약의 예언
<1>창세기 3장 15절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2> 창세기22장1절 -19절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사건은 예수의 완전한 희생의 제사를 예표하고 있다
<3> 민수기 24장 17절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4> 예례미아 31장 31절 - 34절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 이스라엘 집과 유다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 이것은 모세의 시내산 언약이 새 언약(그리스도의 피의 언약)으로 대체될 것을 예언함
<5> 메시야의 도래 예언- 이사야 61장 1절 - 11절
*이사야 61장 1절 - 3 절 : 메시야의 소명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 이사야 61장 4절 -9절 : 메시야의 활약으로 바뀌어질 세상과, 백성들의 위치와 축복을 예언함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외인은 서서 너희 양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
3 .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
예수라는 나자렛 지방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을 이해하고 그의 신앙세계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시대 - 유태인의 역사와 당시 상황 -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인들이 모여 연구하는 성경공부는 대체로 성서의 이야기에, 그 문장에 집착하는 경향과 비약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진정한 이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일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그 내용이 전혀 다르게 전해질 수 있으며, 상대적이고 격정적인 해석이 가능할 뿐 아니라 왜곡의 혈류가 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민족의 역사,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전제하지 않은 예수의 삶은, 단언하건대 신성한 맹신의 역사이거나, 한쪽 면이 잘려나간 조악한 조각품일 뿐인 것입니다.
유대민족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창세기로부터 시작되는 역사는 유대민족의 진정한 역사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유대민족의 발원은 아브라함이 그의 神(야훼 여호와)과 계약을 맺으면서 성립하였으며, 유대민족의 강력한 줄기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별처럼 가득한 민족의 번성이 약속되었으며, 숱한 고난과 시련으로 민족 전체가 시험받기도 하였습니다. 선택된 구원자, 모세에 의해 유대인이 이집트에서 구원되는 과정을 통해 유대인의 종교적 기틀이 완성되었고 우리는 이를 유대교라 부릅니다.
유대인들이 바라본 구약적, 즉 유대교 핵심은
1) 모든 세상에, 모든 우주에 오직 하나의 신만이 존재하고, 그것이 우주의 절대질서를 이룬다는 유일신 사상으로 정착되었고 유태인의 신앙으로 자리 잡는다.
2)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수직관계라는 것입니다. 야훼 여호와는 직접 통치하는 왕으로서 인간을 그의 은덕으로 생존하는 백성의 개념이 강하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도덕과 윤리를 초월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십계명에서 보듯이 모든 계명의 수직적 상위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과 경솔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는 진리와 선과 죄악의 경계를 넘어 야훼의 이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만이 정의가 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3) 유대인 들은 야훼를 자기들만을 위한 하나님으로 여겼으며. 세상의 다른 어느 종족도 구원할 의무가 없고 오직 유태인의 안녕과 번영을 약속하는 약속의 신이라고 생각했으며.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무리나 존재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보복과 형벌을 가하는 신이며, 또한 자신의 뜻에 거슬리는 일체의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 신이었습니다. 보편적 인류애보다는 대단히 편애적인, 유대민족만을 위한 하나님이라고 생각함.
모세와 여호와의 불기둥의 인도로 도착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유대인들은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40년간의 기나 긴 광야의 유랑 끝났고, 모세는 자신의 불 신앙에 대한 징벌로 약속의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으며, 40년의 유랑생활을 통해 유대민족의 가슴에 야훼에 대한 신앙은 견고한 뿌리를 내렸습니다.
여호와의 계시에 의해 제정된 율법은 오랜 세월동안 굳건히 지켜졌으며, 장구한 흐름 속에 율법의 정신과 내용은 점차 퇴색하고 형식과 의무만이 무성해졌습니다. 한 때는 위대한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 그 영화와 소박한 풍요, 작은 번영과 평화도 있었으나 오래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북쪽에서 일어난 거대한 물결, 강건한 국가를 지향하는 로마의 강렬한 팽창에, 그 잘 훈련된 기갑병과 창칼의 말발굽 폭풍에 최후까지 장렬하게 저항하던 유대의 작은 왕국은 무너졌습니다. 우리가 일제의 침략을 당하고, 식민통치를 받았던 것처럼 유대인들도 로마 앞에 쓰러졌고, 빼앗긴 들녘에 봄과 여름과 가을의 계절이 찾아오고 물러가는 광경을 어떤 절망감을 지닌 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권력과 힘이 생성되는 곳에는 반드시 그 밑에 기생하는 무리들이 생겨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자신의 동포와 형제들을 더욱 참혹하게 약탈하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친일파가 있었듯이 유대민족 사이에도 친 로마파가 로마의 꼭두가시가 되어 그들의 편에서 유대왕국의 일부 행정력과 일부 사법권을 행사하며 그 대가로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다신교의 로마종교는 유대의 민족종교에 관대했으며, 유대 고유의 신앙을 인정했으므로 친로마파 종교지도자들이 그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비호 아래 상당한 영향력과 영화를 누렸으며 유대 통치의 기반이 되었고, 그것은 점차 확고한 기반을 갖춘 사회적 틀로 변모되어 갔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크게 바리새인, 사두개인, 엣센파, 천민으로 나뉘어 져있었는데
*바리새파와 ,율법학자(서기관)들은 예수는 랍비 학교도 다닌적 없는 평신도인데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예수는 율법을 어기고 파괴하는 사람이라 생각과, 죄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못마땅해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지배계층입니다. 그들은 대단히 종교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는 특권의식, 우월심만을 가져왔습니다. 종교적이지 못한 사람들은 경멸했다
*사두개인은 :부활, 영을 믿지 않았고. 세속주의로 권력을 잡고 잇는 사람들임. 예수가 정치적 혁명을 일으키거나 적어도 그의 가르침의 결과가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오해하고 그들의 권력과 명성, 안일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예수를 죽이고자 했다 .사두개인은 정치적인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로서 로마인들과 영합하여 백성을 억압했다. 같은 동족이면서도 빽없고 실력없는 사람들을 사람으로 알아주지도 않았다.
*제사장들: 로마 통치하에서 유대의 최고 지도자로서 책략과 야심과 정치적 수작의 도구가 되었다. 종신직이었지만 주전 37년부터 주후 67년사이에 28명이나 교체 되었다. 제사장들은 분명히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을 주님은 아셨다.
(마 16: 21, 20: 18, 막 8: 31, 10: 33)
*엣센파 : 저희들만의 영적 평화를 위해 고립생활을 했다
*이 당시 예수를 쫓던 천한 백성 즉 무리들은(마태복음 5:1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바로 이들에게 천시와 경멸을 받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빽이 없어 사두개인들 앞에서 굽실거리고 먹고 살려니 종교생활 제대로 하지 못하니까 바리새인들 앞에서 죄인 취급을 받고 엣센파처럼 모든 것을 다 끊어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자니 사정이 여의치 않던 사람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빵보다도 따뜻한 눈빛, 위로의 말 한마디였습니다. 그리고 내일에 대한 소망적인 발언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너무 지쳤고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두개파 사람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눈빛을 두려워 했다.
따라서 예수님이 태어나 성장했던 시대는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듣고 자라며 몸과 신앙으로 간직하고 있었던 예언이 이루어져 이처럼 비참하고 압제 당하는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리는, 황량한 간절한 탄식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예언이(이사야 61장 1절 -11절) 이 땅에 실현되는 서곡이 마리아의 시로서 표현됩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눅 1:47-55절)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이후 예언은 이루어지고 예수께서 탄생하시고 사생애 를 거쳐 공생애를 시작하시다
*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마태복음 3장1절 -4장11절)
예수님께서 메시야로서의 복음사역 준비를 위해 예수님께서 요단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40일을 금식하신 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다.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후 드디어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침을 시작으로 전도를 시작하신다.
먼저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눅 4:15 -19절)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의식적으로 이 말씀을 읽으시므로 앞으로 당신이 하실일을 선포하심)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사61:1)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하시고, "또한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하셨다.
당시 나아만(Naima;n)은 유대인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이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 택했다는 선민의식이 강하여 이방인을 인정하는 것과 특정한 믿음(예수를 믿음)으로 누구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분노가 폭발했다. 따라서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다 분이 가득하여 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한 끔찍한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수께서 이렇게 의식적으로 성전에 들어가 성경을 읽고 말씀하신 이유는 당시 물론 아담의 타락으로 백성들이 죄의 포로가 되었고 ,역사적으로 보면 백성들이 정치적으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위 말씀(이사야 61장 1절 -11절 말씀 중 한절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의 빛에 들어가게 될 것을 예언) 과 더불어 당시 예수님이 전도하시며 하셨던 모든 말씀의 중심 의미를 보면 이젠 예수께서 주권자로서, 전 우주를 국토로 삼으시고 그리고,택한 백성 (이방인을 포함한 그 누구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국민 삼으시겠다는 말씀이셨다. 또한 이렇게 행동하신 배경에는 당시의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제사장들에 의해 압제 당하고 속아서 타락하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불쌍한 백성을 구원하시겠다는 분명하고 강한 선포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새 법은 분명 구속사적으로 볼 때 구약시대에 출애굽하여 새로운 언약 민족 국가를 수립 하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시내 광야에서 율법을 수여하신 사건과 대칭된다 (출20장:1절 -17)
4. 예수님의 신앙세계
예수는 이 전까지의 신앙인들과는 다른 무엇을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상당한 호소력을 가지고 들과 호수를 건너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물결로 전해졌습니다. 사람들이 모였고, 때로 기적이 행해졌으며, 예수라는 이름이 갈릴리지방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도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열 두 명으로 늘어났고, 사람들의 마음에 새로운 예언자로 새겨지기 시작했지요. 예수를 보기 위해, 그 설교를 듣기 위해, 새로운 신앙을 체험하기 위해, 혹은 자신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아닐까 하는 기다림으로, 혹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으로 예언자에 대한 절망과 슬픔이 깊어졌으므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예수의 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모두 서로 다른 소망과 기원과 믿음을 가지고 예수를 쳐다보며 각기 다른 말로 그를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3년여에 걸친 갈릴리지방의 전도여행으로 예수라는 이름은 새로운 종파를 형성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더 넓은 지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소외된 계층의 한없는 갈채를 받았습니다. 백부장의 믿음, 사마리아 여인의 믿음, 막달라 마리아의 믿음... 그는 형식화된 율법을 넘어서려 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하나님의 시대를 열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느끼고 이해하는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은,
1) 그는 야훼를 처음으로 '아버지'라 부른 분이었습니다. 이는 유대교의 체제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초월'이었습니다. 언어는 부드럽지만 그 속에는 명백한 반란이 있으며 개혁과 새로운 정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전혀 다른 의미와 뜻으로 해석되고, 보다 인격적이며 ,수평적이고 ,보편적인 발판 위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2) 그는 현실의 세계를 넘어 하늘나라의 사랑과 정의를 구현하고자 노력한 분이었습니다. 그에게 삶이란 완전한 하늘나라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올바른 삶은 현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불완전하고 불평등하며 부조리한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이를 바탕으로한 선한 행위와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평가받는 하늘나라에 영원한 삶과 기쁨이 있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바라보아야 할 진정한 삶이며,삶을 통해 이룩해야 할 사명이라 믿었습니다.
3) 그는 사랑에 보다 많은 것을 기대한 분이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이란 우리가 본능에 의해 빠지기 쉬운 '자기'라는 존재를 넘어 용서와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는 '타인'이라는 존재를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삶에 대한 사랑을 그는 주장했고 그는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는 율법이나 형식에 매달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신앙에 따르는 무리가 점차 커짐에 따라 가장 초조하게 느낀 집단은 바로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등 로마의 앞잡이들과 종교적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라는 사람이 진짜로 약속된 메시아라면, 그래서 로마의 세력에 대적할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사회적 혼란이 야기된다면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권세와 위치, 부와 영예가 위협 당할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예수를 따르는 무리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 시대의 지배계층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들은 그들의 권익을 위해 예수님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입장은 그 정도의 집단으로는 자신들을 위협하거나 체제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무력집단도 아니고 단지 신앙으로 규합된 약간의 무리로 강력한 군대의 로마를 상대한다는 자체가 가소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유대인들의 전설에 등장하는 옛이야기라 생각했으며 설사 그 메시아가 등장한다해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로마의 질서를 위협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했습니다. 한바탕의 소동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운 기적을 행했다고 알려진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렸습니다. 그에 관한 소문과 바람에 전해진 이야기가 더욱 그를 궁금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 많은 군중의 환호와 호기심이 장사진을 이루는 사이에서 친 로마파 사람들은 반드시 제거해야할 명단에 예수를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행적은 집단을 더욱 규합한다거나 로마에 대항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행복한 삶과 진정한 신앙에 대한 가르침을 계속 실천할 뿐이었습니다. 성전을 개혁하고 정화하며, 병든 자들을 고쳐 주었으며,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과 논쟁하고 꾸짖으며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설파했습니다.
예수는 친로마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제거계략과 유다의 섣부른 계획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제자들이 항거하려 했지만 예수는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주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말하며 제자들의 행동을 제지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 가야바가 주재하는 친로마파 의회에 섰습니다. 많은 증거들이 제시되었으나 예수는 침묵했습니다. 로마의 재판장에서도 빌라도 총독이 '매우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예수는 침묵했습니다. 빌라도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재판이었습니다. 예수라는 인물에 관해 보고를 받은 적은 있지만, 그가 주장하는 내용에서 어떠한 반로마적 성향을 보고 받은 일도 없고, 그만한 조직으로 로마에 대적할 어떤 근거도 발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유대의회의 많은 장로들이 왜 그토록 이 젊은 예수를 죽이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읍니다
*예수의 죽음
(누가복음 23장 32절-45절)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막15:22)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뽑을쌔 , 백성은 (이 무리 뒤에 누가 있었겠는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포도주를 주며 ( 마27:48) ,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마27:44 )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결국 예수님께서 당시의 유대의 타락한 교회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책망하시다가 그들의 의해 죽임을 당하셨다.
여기서 성전 휘장이 찢어 졌다는(눅 23장 45절, 마태 27장 45-61절)의미는 무엇인가,
성전 휘장은 외소(성소) 와 내소 (지성소) 사이에 쳐져있는 휘장을 가르키는 말로서 이 휘장을 통해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오직 대제사장만이 1년에 1차 대속일 ( 유대력으로 7월 10일)에만 피를 가지고 백성의 죄를 하나님에게 속함 받기 위하여 제사장만이 들어 갈 수 있었다 -( 이 피란 자신의 죄를 위하여 대속 죄물로서 동물을사서 동물을 죽인 피며 ,특히 이를 위하여 많은 상인들이 성전 밖에서 장사를 하였는데 결국 이들이 성전 안에까지 들어와 장사를 하게 되었는고 이것은 당시의 제사장들과 이해관계가 없이는 이루어질 없는 사건이라 본다 이에, 예수께서 분노하시며 마 21:12 -1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 그러나 예수께서 그 몸을 십자가에서 속죄물로 드린 이후는 하나님 앞에 인류의 죄를 단번에 영원토록 속죄 하셨으므로 ,이런 구약적 행위는 의미를 상실하였고 이제는 누구나 예수의 속죄를 믿고서 하늘 지성소 즉 천국에 (지상 성전은 하늘에 있는 것을 모방함 히8장5절) 당당히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히 9장 1-14, 10장 14-2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