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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 ]
강원도 중서부에 위치한 洪川郡은 동쪽은 양양군과 강릉시, 서쪽은 경기도 가평, 양평군, 남쪽은
횡성, 평창군, 북쪽은 춘천시와 인제군에 각각 접한다.
지세를 보면 동쪽은 오대산(1539m) 의 두로봉(1422m) ~ 응복산(1360m) ~ 약수산(1306m) ~ 구룡령 ~
갈전곡봉(1204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분수령을 이루고, 남쪽은 두로봉에서 한중지맥으로 이어지며
평창군과 경계를 이루는데 역시 1000m를 넘나드는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인제군과 경계를 이루는 북도도 개인산(1341m) ~ 소뿔산(1123m) ~ 매봉(800m)의 높은 산으로
이루어져 있는 산악 고을이다. 산지는 군전체의 87%를 차지한다.
고구려 시대엔 '벌련천현' 이라 하였다.
통일신라 시대에 '녹효현' 이라 하여 삭주(춘천) 아래에 두었고, 고려시대인 1018년(현종9) 홍천현으로
개칭하였고, 1143년(인종21) 감무를 파견하였다.
조선 시대인 1413년(태종13) 감무를 '현감'으로 고쳤다.
1895년 춘천부의 홍천군이 되었으나 다음해 13도제가 실시됨에 따라 강원도에 속하는 홍천으로
개편되었다.
1935년 경기도 양평군의 단월면 분지리가 홍천군에 편입되고, 광복후 38선 이남 인제군의 인제면,
내면, 남면의 3개 면이 편입되었다가 1954년 인제면,내면이 다시 인제군으로 환원되었다.
1973년 춘성군 동산면 북방리, 풍천리와 양양군 서면 명계리가 편입되었으며, 내면 미산리는
인제군으로 남면 상창봉리는 횡성군으로 이관되었다.
홍천읍, 화촌, 두촌, 내촌, 서석, 동, 서, 남, 내, 북방면의 1읍 9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홍천군의 가장 큰 젓줄은 북한강의 지류인 홍천강이다.
한중지맥(한강지맥)의 서석면 검산리 미약골 상류에서 발원한 이강은 서쪽으로 흐르며 여러 지류를
합류하면서 군 중앙부를 지나 북한강 청평호에 흘러든다.
하천 유역엔 홍천분지와 소규모의 하안단구, 산록완사면이 형성되어 생활의 터전이 되고 있다.
홍천군 가장 동쪽의 내면은 인제 내린천 최상류인 계방천과 한중지맥 운두령에서 발원한 자운천이
젖줄 역할을 한다.
홍천군은 내륙 산간지역이라 여름과 겨울의 기온교차가 심하다.
8월 평균 기온은 26도, 1월 평균 기온은 -7.3도, 연평균 강수량은 1,141mm이다.
*한중지맥
백두대간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뻗은 '한중지맥'은 계방산(1577m) - 태기산(1261m) - 오음산(930m) -
용문산(1157m) 같은 큰 산들을 세우고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에서 그 세력을 다한다.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는 굳센 산줄기 임에도 여느 정맥들이 지니고 있는 河口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산경표>에선 이름을 얻지 못했다.
현재 두로지릉, 한중지맥, 한중정맥, 한강정맥, 계방지맥, 한강기맥, 용문산맥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린다.
*홍천강
홍천의 젓줄인 홍천강은 홍천군 중앙부를 동에서 서로 흐르는 강으로 길이 143km에 이른다.
서석면 검산리 미약골 상류에서 발원한 강줄기는 내촌천으로 흐르면서 장남천, 야시대천, 풍천천,
덕치천을 합한후 홍천읍을 지나 오안천, 성동천, 어룡천, 중방천과 합류해 비로소 큰 물줄기를 이룬
다음 서면 마곡리를 지나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춘천시 남면 관천리 경계에서 북한강의 북한강의
청평호로 흘러든다.
명칭을 살펴보면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지리편과, 17세기 중엽에 저술된 지리지인
동국여지지 및 1765년경 8도의 읍지를 수집하여 편찬한 여지도서, 1871년경 편찬된 관동읍지 에는
홍천강을 남천으로 표기하였고, 1831년경 강원감영이 관내 군현의 읍지를 모아 편찬한 관동지에는
화양강으로 표기 하였다.
1861년 김정호가 판각한 대동여지도엔 홍천강으로 표기 하고 있다.
홍천 주민들은 홍천읍을 중심으로 상류지역은 화양강, 하류지역은 홍천강이라 불러 왔다.
*희망리 삼층석탑
홍천읍 사무소의 희망리 삼층석탑은 원래 홍천초교 뒤에 있던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탑은 1층 기단위에 삼층의 탑신을 갖춘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시멘트로 다져진 높은 바닥돌 위에 널찍한 돌 두장이 놓여있고, 그위로 기단과 탑신부가 있는 상태다.
기단 가운뎃돌의 각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두었으며, 가운데에도 기둥 조각을 두었다.
탑신부는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저 있는데, 몸돌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조각 하였다.
3층의 몸돌이 없어져 위층으로 가면서 줄어드는 비율은 뚜렷하게 관찰할수 없다.
지붕돌 밑에는 모두 4단씩의 받침을 새겼다. 지붕돌은 두껍지는 않지만, 네귀퉁이 끝부분의
치켜 올림이 적어서 날렵한 느낌은 없다.
이 탑은 탑신에 비해 기단부가 너무 크게 조성되어 비례가 맞지않고, 마치 탑신이 기단부의 첨가물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각 부의 조각에 있어서도 약화된 모습이 보여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 79호.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
원래 두촌면 괘석리에 있던 탑인데, 현재는 홍천읍 사무소 안 희망리 삼층석탑 옆으로 옮겨 세웠다.
이 탑은 2단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네 마리의 돌사자가 있어 '사사자탑' 이라 부른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眼象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안에 꽃무늬 조각이 장식되어 있어 고려시대의
특징이 잘 담겨져 있다.
위층 기단에는 각 모서리에 돌사자 한 마리씩을 두어 넓적한 윗돌을 받치게 하였다.
이 탑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 사자 들이 둘러싸고 있는 중앙의 바닥과 천장에는 연꽃받침대가 놓여 있어, 원래는 이곳에 불상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겼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네모난 露盤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곳곳에 파손된 부분이 있고, 닮은 흔적이 보이나 대체로 본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기단에서 보이는 조각수법 등에서 고려시대의 양식이 물씬 풍기지만, 각 재료의 구성이 통일신라의
방법을 많이 따르고 있어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 540호
*희망리 당간지주
홍천읍 희망리 강변에 자리한 이 당간지주는 70cm의 간격을 두고 동서로 마주 서 있다.
돌을 다룬 기법이나 특별한 장식 없이 소박하며, 중간 아래로 내려 오면서 조금 굵어졌고,
밑 부분에 이르러는 더욱 굵다.
전체적인 겉모습은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 천흥사지 당간지주와 유사하다.
주변의 삼층석탑과 기타 석조물 등과 비교하여 볼때, 거의 같은 시대의 조법을 나타내고 있어
고려 중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본다. 이당간 지주 일대는 현재도 절터였음을 알리는 기와조각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보물 제 80호.
*공작산 수타사
월정사의 말사인 壽陀寺는 동면 덕치리 공작산 에 있는 절이다.
708년 우적산 기슭에 창건될 당시엔 '일월사' 였으나 1457년 지금의 위치로 건물을 옮기면서 水墮寺라
하다가 어느 때 부턴가 지금의 수타사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탄것을 1636년 중건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존 하는 건물로는 수타사의 중심법당으로 내부 장식이 정교하고 아름다운 '대적광전'(강원 유형문화재
제17호) 을 비롯하여 삼성각, 봉황문, 흥회루, 심우산방, 요사채 등이 있다.
고려 후기의 삼층석탑(강원문화재 자료 제11호), 홍우당부도(강원문화재자료 제15호) 등이 있다.
심우산방 옆에는 귀신이나 잡귀로 부터 수타사를 지킨다는 전설이 있는 수령 500년의 주목 한그루가 있다
한편 수타사 동종(보물 제11-3호)은 조선 숙종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 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 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사인 비구가 만든 종 가운데 문경 김룡사동종(보물 제11-2호)과 함께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독특하게 표현하여 완숙미와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편 사천왕상 뱃속에서 나와 보물 제745호로 지정된 '월인석보' 두권이 있다.
*홍천향교
홍천읍 희망리 홍천군청 옆에 위치한 홍천향교는 조선시대 홍천의 지방 교육시설이다.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수 없으나 처음엔 두촌면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후 화촌면으로 이전 하였다가 다시 홍천읍 희망리 현 호국사 부근에 옮겼고, 연대를 자세히 알수 없는
시기에 다시 현재의 위치로 이전 건립하였다.
대성전 앞에 있는 느티나무 수령이 약 400년 넘는다는 사실에서 400여년전 이 위치로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6_25전쟁 당시 명륜당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소실 된것을 1953년 복원했다.
수복 직후 홍천 중학교로 사용된적도 있다.
*물걸리 사지
홍천 내촌면 물걸리 사지(강원도기념물 제47호)엔 홍천에서 가장 많은 보물급 문화재가 다섯 점이나
있어 관심을 끈다.
절터에 남아 있는 많은 유물들로 보아 이전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절의 이름은 자세히 전해지지 않았지만 통일 신라 시대의 洪陽寺가 있던 곳이라고도 한다.
*물걸리 석조여래상
9세기 중엽 이후의 전형적인 대좌 양식을 보여주는 물걸리 석조여래상(보물제541호)은 얼굴의 마멸이
심해 자세히 판별하기가 어렵다.
머리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놓은것 같으며, 정수리 부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는
표현이 분명하지 않다.
옷은 양어깨에 걸치고 있고, 가슴에는 띠 모양의 매듭이 보인다.
어깨는 둥글지만 두껍고 투박하게 보이고, 상체는 평판적이고 왜소한편이다.
손은 오르손을 무릎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를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놓고 있다.
상, 중, 하대로 구분된 8각형으로 하대는 각 면마다 무늬가 있고, 향로와 상상의 새인 가릉빈가가
새겨져 있다.
중대석은 8각의 각 면에 팔부중심이 새겨져 있고, 상대에는 활짝 핀 모양의 연꾳무늬가 새겨져 있다.
*물걸리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물걸리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542호)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크게 솟아 있다.
얼굴은 풍만하지만 턱이 뾰조하여 단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옷은 양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데 다소 투박하고 무겁게 늘어졌다.
옷주름은 어깨에서 두 팔을 거쳐 무릎에 까지 나타나 있으나 평행선이 되어 약간 형식적으로 처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손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손 모양과는
반대로 되어 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8각 연화대좌로 상,하대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중대에는 부처에게
공양을 드리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향로등이 새겨져 있다.
*물걸리 불대좌
물걸리 불대좌(보물 제543호)는 불상은 없어지고 광배와 대좌만 남아 있는데, 대좌는 거의 완전하게
보존 되어 있다.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의 구분이 뚜렷한데, 현재 머리광배 부분은 없어졌으며, 안쪽에는 덩쿨무늬를
가장자리에는 불꽃 무늬를 표현했다.
불대좌 하대엔 향로와 새 모양의 조각이 있는 8각의 받침돌 위에 아래로 향한 연꽃이 새겨진 연화대석이
놓여 있다.
중대엔 8개의 각 면에 모서리 기둥을 새기고, 안쪽에 머리광배를 갖춘 보살입상을 조각 하였다.
상대는 연화좌로 3중의 연꽃이 조각되었는데, 연꽃잎 안에 다시 꽃무늬를 장식하여 화려함을
더해 주고 있다.
*물걸리 불대좌 및 광배
물걸리 불대좌 및 광배(보물 제544호)는 통일신라시대 후기 작품으로 불상은 없고 광배와 대좌만
남아 있다.
배 모양의 광배는 가운데에 연꽃 무늬와 넝쿨 무늬가 새겨지고 가장자리엔 불꽃 모양이 섬세하고
화려하게 조각 되어 있다.
윗부분과 좌우 등 9곳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는데, 각기 손 모양을 달리하고 있다.
광배를 받치고 있는 '대좌'는 3단으로 구성된 8각 모양이다.
맨 아래엔 아래로 향한 연꽃무늬가 각 면에 새겨져 있고, 모서리에는 작은 귀꽃이 있다.
중간의 각 면에는 불상과 악귀를 쫓아준다는 신장상이 새겨져 있다.
대좌의 맨 윗부분은 연꽃이 활짝 핀 반원형 모양이고 연꽃 안에 작은 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화려함을 더해준다.
*물걸리 삼층석탑
물걸리 삼층석탑(보물 제545호)은 통일 신라시대 후기의 탑이다.
2단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세웠다. 위,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하나씩의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에는 모서리 마다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2층은 5단이나 3층은 4단으로 줄어 들었다.
경사면은 평평하고 얇으며, 모서리 선이 뚜렷하여 끄트머리에서의 들림도 날카롭다.
꼭대기의 머리 장식은 없어지고 이를 받쳐주는 노반만 남아있다.
*삼봉약수
내면 광원리 삼봉 자연휴양림 내에 있는 삼봉약수는 물맛이 좋아 일찍이 '한국의명수 100선'에 들었다.
백두대간 갈전곡봉에서 서쪽으로10리쯤 뻗어나온 산줄기인 가칠봉, 그리고 응복산, 이렇게 세봉우리의
정기가 모인 곳에서 나오는 약수라는 뜻을 가진 삼봉약수는 오래 전부터 위장병, 신경쇠약, 피부병,
신장병, 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약수의 주 성분은 제일철, 탄산, 중탄산이온으로 현재도 그 명성은 여전해 약수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분빈다.
약수가 나오는 구멍이 세개가 있으며 그 맛이 모두 다르다.
그중 맨 아랫것이가장 강한 맛이 나는데, 처음 먹는 이는 쇳내 때문에 못먹을 정도다.
처음 발견 당시엔 바위틈에서 졸졸 흘렀지만, 물 받기가 곤란하자 관리하던 사람이 바위틈 아래의
보글거리는 곳에 구멍을 팠는데 바위틈에서 나오던 물이 그쳤다.
그리고 나중에 그 아래에 구멍을 또하나 파자 위쪽 두 구멍에서 나던 약수의 물맛이 약해졌다고 한다.
*살둔산장
내면 율전리의 살둔 마을은 내린천이 '개인산' 지맥을 크게 휘돌아가는 자리에 터 를 잡은 오지의
강변 마을이다.
도로가 포장되기 전인 1990년대 중반 까지만 해도 사륜구동차로도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었다.
살둔 마을의 강변에 세워진 살둔산장은 내린천의 명물이다.
월정사를 보수한 대목수의 손으로 1985년에 지어진 이래 오지 여행자들의 쉼터 역할을 해왔다.
2층으로 된 목조 건물인 이 산장은 귀틀집과 사찰의 형식을 섞어 지은집이다.
외부는 초기에 자금 때문에 마무리 못 했다 하여 '미진각'이라고도 하고 , 산이 반, 물이반이라는 뜻의
'침풍루' 라고도 한다.
물줄기와 산줄기 그리고 거기에 자리잡은 산장이 조화를 이뤄 '한국의 살고싶은100대집'중의 하나다.
*동창보 수로 및 암각명
서석면 수하리 내촌천 물줄기를 따라 있는 東倉洑(강원도기념물 제65호)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쌓은 둑으로 서석면 수하리에서 내촌면 물걸리까지 약 1km 정도 이른다.
물길을 끼고 있는 암벽면에는 '보주 김군보' 라는 글귀가 보이는데, 김군보 개인이 자신의 재산을 털어
직접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여년전에 만든 것으로 전하는 이 보는 내촌면 물걸리 지역 일대의 개척과 관련된 농경유적으로,
조선 후기의 수리 및 관개 시설의 형태를 비교적 잘 보여준다.
*풍암리 동학 혁명군 전적지
서석면 풍암리 동학혁명군 전적지(강원도기념물 제25호)는 조선 후기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싸웠던
전적지 이다.
1894년 당시 홍천 지방에서도 농민 운동이 크게 일어나 농민군의 일부가 관아를 공격하고자 산에서
내려와 장야촌까지 진군하였으나, 관군 총사령관 '맹영재'와 싸워 동학군 30여 명이 전사 하였다.
여기에서 패한 동학군은 서석 풍암리에 집결하여 최후의 항전지인 자작고개에서 '김숙현'을 중심으로
관군과 끝까지 싸웠으나 끝내 패하고 말았다.
당시 사망자를 800여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1976년 자작고개에서 유해 더미가 발견되기도 했다.
*내촌천
홍천강 상류인 乃村川은 서석면 검산리 미약골 상류에서 발원해 두촌면 철정리 아오라지 에서
장남천과 합류하는 물줄기로, 홍천강의 상류를 형성한다.
내촌천은 서석면과 내촌면의 높은 산악 지대를 사행천으로 굽이쳐 흐르는데, 서석면 읍내의 풍암리
상군두리, 하군두리 일대와 내촌면 물걸리의 동창 일대에 제법 널따란 들녘을 빚기도 한다.
물걸리 동창엔 조선시대 천수답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산골 농민들의 결과물인 '동창보'라는
수로가 있다.
굽이도는 사행천을 따라 아이들의 물놀이터 겸 낚시터가 아주 많다.
또 바위봉우리와 어우러진 경관이 아름다워 견지낚시, 루어낚시, 플라이 낚시 매니아들의 발길도 잦다.
홍천강도 맑지만 그 상류린 내촌천은 더욱 맑고 상류부터 하류까지 중간 중간 다슬기가 서식하고 있다.
*계방천
백두대간 '약수산'과 '응복산' 사이에서 발원해 흐르는 물줄기와 '오대산 두로봉'에서 발원한 명개계곡
물줄기는 명개리에서 합류해 桂芳川이란 이름으로 서쪽으로 흐른다.
물줄기 남쪽에 우뚝 솟은 한중지맥의 '계방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어 내린천 발원지인 을수골에서 발원한 물줄기를 합쳐 덩치를 키운 계방천은 서쪽으로 흐르다
운두령에서 흘러온 자운천을 광원리에서 받아들여 몸을 불리는데, 이후로는 내린천으로 불린다.
이렇듯 오대산, 계방산, 응복산, 약수산, 갈전곡봉등 해발 1200~1500m가 넘는 고산 사이를 흐르는
계방천은 길이는 비록 길지는 않지만, 크고 작은 여울과 소와 폭포가 이어지고 한여름에도 20도
이하의 차가운 물이 흘러 북방계 냉수성 어종의 보고로 꼽혀왔다.
실제로 계방천이 흐르는 명개리와 광원리 일대의 냇가엔 북방계 냉수성 어종의 대표격인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다.
*용소계곡
두촌면 천현리의 용소계곡은 내촌면 광암리에서 발원하여 두촌면괘석리를 거쳐 천현리에 이르는
10km 쯤의 계곡을 말한다.
수량도 많고 곳곳에 소와 바위들이 펼쳐진 경치가 아름다워 사람들의 발길이 잦던 곳이다.
용소계곡은 워낙 계곡의 폭이 좁고, 커다란 바위가 많아 야영하기엔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용소계곡 끝 부분에 10동의 텐트를 칠수 있는터가 있다.
*가령폭포
내촌면 와야리 백암산 남쪽의 '가령골'에서 흐르는 가령폭포는 지방도에서 백암산 산길로 1.5km 정도
들어간 곳에 있어 아직 별로 알려지지 않은 폭포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驛 이 있어 '가역곡'으로 불렸다. 또 마을을 개령동이라 하고 개령폭포라고도 한다.
가령 폭포의 높이는 50~60m로 꽤 긴 폭포에 속한다. 평소에 수량이 많지 않은 편이지만 짙은 숲
사이에 걸린 암벽을 타고 쏟아지는 폭포수는 시원하다. 가령폭포가 있는 골짜기 마을은 폭포골로 불린다.
들어가는 계곡에 관음사 라는 자그마한 암자도 있다.
차가 올라갈수 있는 계곡 마지막 집까지는 조금험한 비포장 길이다.
5~10분정도 걸어 올라가면 폭포가 보인다. 폭포까지는 산길이 그리 험하지 않아 어린이들도 걸을수 있다
*명개리 계곡
내면 명개리 계곡은 내린천의 원류인 계방천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곳으로 물이 차고 깨끗 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오대산 북쪽에 자리하여 교통이 다소 불편하기 때문에 드나드는 사람이 비교적 적어 한적한 분위기를
즐길수 있다. 수량도 아주 풍부하다. 또한 계곡의 골이 싶고 울창한 나무숲이 짙은 그늘을 곳곳에
만들고 있어 한여름 시원하게 보낼수 있는 최적지라 할수 있다.
*물골안유원지
내촌천이 장남천과 합류하는 아오라지 2km 상류에 자리한 물골안 유원지는 경치가 좋은 곳이다.
메기골 유원지, 청벽산유원지 라고도 한다.
물골안의 상류지역은 삼형제 바로 밑으로 수온이 낮고 수심이 깊다.
물속엔 커다란 바위가 뒤엉켜 있어 쏘가리, 꺽지, 메기 등이 많이 낚인다.
중류지점은 유속이 빠르지만 수심이 얕아 견지낚시 하기에 알맞다.
피라미, 끄리, 쉬리 등이 잡힌다. 하류지역은 넓은 모래톱과 수심도 얕아 어린아이들의 물놀이 장소로
적당하다, 낚시도 잘된다.
*모래소 유원지
내면 광원리 내리천 물줄기 중에 최상류에 자리한 모래소유원지는 웅장한 바위가 병풍같은 자태를
뽐내며 내린천의 맑은 물을 감싸 안고 있는 곳이다.
도로에서 진입하는 입구가 좁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솔밭 사이로 약 50m 정도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솔밭 아래 야영을 할 수 있는 공터가 보인다.
모래소 상하류엔 깨끗하고 매끈한 호박돌이 많이 널려있다. 솔밭의 야영터가 운치있고 깨끗하다.
넓은 공터가 있어 주차하는데 불편은 없다.
*폭포수계곡유원지
서석면 검산리 내촌천의 지류인 폭포수계곡은 아담한 규모의 절벽이 굽이도는 계곡이다.
넓은 바위를타고 내리는 맑은 계류와 아이들도 물놀이 하기에 좋은 적당한 깊이와 넓이를 갖고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나름대로 소박한 풍광을 갖춘 곳이다.
계곡 주변에 소나무가 빼곡하게 자란 야산도 있어 산책도 겸할수 있다.
계곡엔 서봉사도 있어 조용히 들르기에 좋다.
*모곡유원지
홍천강 하류인 서면 모곡리의 밤벌 강변은 흔히 홍천강유원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맑은 강물과 넓게 펼쳐진 백사장, 백사장주변을 둘러싸고 우뚝 서 있는 밤나무와 미루나무 숲이
피서객들의 더위를 식혀준다.
메기, 피라미, 쉬리, 메자 등 어족자원도 풍부해 낚시하기에 좋다.
주변에 한서 남궁억 기념관과 묘소, 무궁화 동산등이 있다.
*팔봉산 국민관광지
홍천강이 휘감고 도는 팔봉산은 해발 302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여덟개의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져
제법 아름다움을 뽐낸다.
아기자기한 암릉 산행과 여름 물놀이를 한자리에서 즐길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백사장이 있어 야영하기에 좋으며 제1봉~제8봉 회기 코스가 약 4km로 3시간 쯤 걸린다.
*수타사 계곡
동면 노천리 공작산에서 발원해 노천리, 신봉리 거쳐 덕치리로 이어 흐르는 계곡으로 8km에 이른다.
수타사 계곡은 위로 올라갈수록 희고 고운 모래가 널려있고, 넓은 소가 많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높이 20여m 에 이르는 선바위, 효성이 지극한 두 형제의 전설이 담긴 효죽암등이 곳곳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신봉리 근처가 인기 있다.
*홍천별미
- 화로 숯불구이
- 홍천강 매운탕
- 옥수수 찐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