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돌파(12)
9급 공무원처럼 인사하는 애완견 공무
송현(시인. 한글문화원장)
1.
"공무"는 내 친구 문사장 별장 건물에 세들어 있는 버들식당에서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다 한강 상류 수석동에 있는 이 별장은 3층 건물인데 1. 2층은 버들식당에서 쓰고, 3층은 문사장이 집필실로 쓴다. 문사장은 주로 주말에 와서 원고도 쓰고 친구나 지인들을 초대해서 모임도 하고 편안히 쉬기도 한다. 이따금 초대를 받기도 하고 자원해서 가면 내집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문사장과 한강변 산책도 하고 을 뒷산 약수터에도 가고 닭요리를 잘하는 은행나무집에서 닭백숙이나 쏘가리 매운탕 등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곤 한다.
내가 공무를 처음 본 것은 지난 해 겨울 어느 날 문사장 집필실로 놀러 갔을 때이지 싶다. 내가 건물 입구에 들어서려는데 군데 군데 검은 털이 섞여있는 애완견 쉬츠 한 마리가 나타나서 나를 향해 짖기 시작했다.
그놈은 무늬만 애완견이지 놔 멕이다시피하는 사람의 사랑을 거의 못 받는 버림받은 떠돌이 개처럼 보였다. 주인이 바빠 걔를 자주 안 씻겨 그런지, 자주 씻기는데 그놈이 여기 저기 돌아다녀 그런지 덕지덕지 털이 엉켜 있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게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거의 사람 대접을 받고 자라는 우리 집 쉬츠와 그놈을 비교해 보니 그놈이 참 안쓰럽고 불쌍했다.
그놈에게서 아주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나를 보고 짖는 것이 무척 독특했다. 마치 대한민국 불친절한 9급 공무원이 인사하는 것과 비슷했다. 민원 창구에 온 민원인에게 인사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는 공무원이 마지못해 앉는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입만 가지고 성의 없이 인사하는 식이었다. 그놈은 인기척을 느끼고 어슬렁어슬렁 기어나와 이렇게 짖었다.
"멍! 멍! 멍! "
오래 짖지도 않고 아주 간단하게 서너 번 정도 멍 멍 멍 하고 말았다. 그놈 짖는 게 너무나 독특하여 유심히 쳐다보았더니 다시 종전 방식대로 짖었다.
"멍! 멍! 멍!"
서 너 번 정도 멍 멍 멍 하고는 자기 할 일은 이 정모면 충분히 다 했다는 듯이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 집으로 어슬렁어슬렁 기어갔다. 나는 그놈 뒷모습을 보면서 혼자 웃었다. 보면 볼수록 영판 대한민국 불친절한 9급 공무원 같은 놈이었다. 이놈은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면 대한민국 9급 공무원 노릇하면 딱일 것 같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식당 주인에게 이놈 이름을 묻기도 뭣해서 문사장에게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놈 이름을 "9급공무원"이라 할까 하다가 줄여서 "공무"로 하기로 했다.
2.
문사장 집필실에 놀러 갈 때마다 나는 공무를 챙겼다. 공무원 인사처럼 마지못해 멍 멍 멍 하는 것이 보면 볼수록 귀엽고 재미있었다. 한편으로는 자주 씻지 않아 지저분한 모습이 불쌍하여 공무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이 아팠다. 내가 가까이 살면 주인 몰래 공무를 우리 집으로 데려가서 씻겨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문사장 집필실에 놀러 갈 때마다 공무를 만나면 쪼그리고 앉아 공무에게 말을 붙이곤 했다.
"공무야. 그 동안 잘 있었냐?"
공무는 내 말을 알아 들었다는 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조심스레 공무의 등을 쓰다듬어주면 배를 땅에 바싹 붙이고 몸을 낮추고 가만히 있곤 했다. 공무의 등줄기를 쓰다듬어주기라도 하면 자주 씻지 않아선지 털이 덕지덕지 엉켜 있어 쓰다듬는 내 손끝의 감촉이 엉망이었다.
"공무야, 너를 자주 안 씻겨서 이 모양이니, 자주 씻겨주는데 네가 하도 험하고 지저분하게 놀아서 이 모양이니?"
공무는 "좀 더럽기는 하지만 아직 견딜만하다"는 듯이 꼬리를 살상살랑 흔들었다. 내가 하는 말은 죄다 덕담으로 들리는 모양이었다.
"공무야, 다음 번 올 때는 쏘시지 사다 줄께."
공무는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3.
공무에게 쏘시지 사주기로 약속한 뒤 문사장 집필실 현관에서 공무를 만나는 순간 아차 하고 후회했다.
"쯧쯧, 내가 깜빡했구나. 쏘시지를 사 온다고 해놓고..."
빈손으로 와도 반갑다는 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공무에게 말했다.
"공무야, 미안하다. 내가 깜빡 했다. 다음에 올 때는 꼭 쏘시지 사올 게. 미안하다."
공무는 꼬리를 살랄상랄 흔들었다. 서울에서 수석동 행 버스를 타기 전에는 쏘시지 생각이 나지 않다가 공무를 보면 아차! 하고 쏘시지 생각이 나곤 했다. 그 뒤 나는 여러 번 공무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그때마다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지난 달 첫 주에는 서울에서 수석동 행 버스를 타기 전에 구멍가게에 들러 쏘시지를 샀다. 문사장 집필실 현관에 들어서는데도 뜻밖에도 공무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큰소리로 불렀다.
"공무야!"
공무는 보이지 않았다. 아까 보다 큰소리로 불렀다.
"공무야! 공무야!"
그래도 공무는 나타나지 않았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말랑말랑한 쏘시지가 잡혔다. 나중에 서울로 돌아 갈 때 잊지 않고 공무에게 주고 가야지 다짐하고 집필실로 올라갔다.
문사장과 저녁을 먹고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도 공무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공무 집 앞에서 “공무야 공무야” 불러도 공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공무가 그 동안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 제 엄마처럼 자동차에 치어 죽지는 않았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스쳤다. 버들식당에 잠시 들어서 입구에 선채로 주인아주머니에게 쏘시지를 내밀면서 말했다.
"아주머니, 공무 잘 있지요? “
“공무가 누군데요?”
“아아, 강아지 잘 있지요?”
“예. 걔가 집에 잘 안 붙어 있어요. 안 보이면 어디 놀러갔겠지요.”
“이 쏘시지, 걔에게 주세요."
버들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내가 문사장과 아주 친하다는 것을 안다. 거기다 아주머니의 닭도리탕 실력과 멸치젓갈맛은 수석동 식당가에서 최고라고 내가 여러 사람 앞에서 칭찬한 적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싶었다. 아주머니는 내가 쏘시지를 사 온 것이 너무 뜻밖인지 놀라면서 말했다.
"예. 걔 오면 선생님이 사 주셨다고 꼭 전해 주겠습니다."
버들식당 아주머니가 공무의 출생 비화를 들려주었다. 공무 엄마는 길 건너 최씨가 키우던 개였는데, 새끼를 다섯 마리 낳고는 곧장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최씨는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은행나무 아주머니더러 새끼 한 마리를 주었다고 했다. 그놈이 바로 공무였다.
공무 형제는 동네에 뿔뿔이 흩어졌는데 네 마리 다 죽고 공무만 살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공무는 아주 영리하다고 했다. 온 마을 안 쏘다니는 데가 없고, 뒷산 조 말생 선생 묘소까지도 혼자서 갔다 오고, 마을 입구에서 가든겔러리 까지 마음대로 왔다갔다 할 정도로 빠싹하게 동네 지리를 잘 알고 어떤 때는 밖에서 자고 오는데 얼마 전에는 사흘 동안 안 들어와서 차에 치어 죽었나? 걱정했는데 나흘 만에 돌아와서 너무 반가웠다고 했다. 밥을 줘도 잘 먹지 않아서 다른 개가 와서 공무 밥을 먹어치우는 수가 많다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날 서울행 버스 정거장으로 걸어가는 중에 마을 초입에 쬐그만 구멍가게를 발견하는 순간 나는 참 기뻤다. 앞으로 공무에게 줄 쏘시지를 굳이 서울에서 사올 것 없이 이 구멍가게서서 사면 되겠구나 생각하니 그 구멍가게가 너무나 반가웠다.
4.
지난 달 셋째 주에 문사장 집필실에 놀러 갔다. 수석동 입구 구멍가게에 쏘시지를 사려고 갔더니 가게가 쉬는 날인지 주인이 마실을 나갔는지 문이 닫혀 있었다. 그래서 쏘시지를 못 사고 빈손으로 갔는데도 공무는 나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나는 공무에게 말했다.
"공무야, 미안하다. 이 동네에서 쏘시지 사려고 했는데 가게가 문이 닫혀 있어서 못 사왔다. 미안하다. 다음번에는 꼭 사올게."
공무는 내 앞에 바싹 엎드려 내 말을 알아 들었다는 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나는 공무를 쓰다듬어주었다. 역시 공무는 씻지 않아서 털이 군데군데 덕지덕지 엉겨 있었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5.
오늘 김 박사와 조 감독과 함께 문사장 집필실에 놀러 갔다. 급히 가야할 사정이 있어서 서울 장안평에서 택시를 타고 갔다. 전에 봐두었던 그 구멍가게 앞에서 택시를 세웠다. 김박사와 조 감독은 내가 난데없이 구멍가게에 들러서 쏘시지를 사오는 것을 보고 왜 사느냐고 묻기에 간략하게 쏘시지를 산 연유를 설명해주었다.
내가 문사장 집필실 건물에 가까이 가면서 공무를 불렀더니 공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났다. 오후에 비가 와 그런지 공무는 보통 때보다 더 더러웠다. 공무는 나를 알아보고는 배를 땅에 붙이고 반가운 척을 했다. 나는 공무에게 쏘시지를 뜯어서 잘게 잘라서 주었다. 냄새만 맡고 먹지 않았다. 혹시 쏘시지가 상했나 싶어서 내가 냄새를 맡아보았더니 이상이 없었다. 나중에 먹으라고 땅바닥에 한 개를 더 뜯어서 흩어 놓고 일어섰더니 그제야 공무가 쏘시지를 날름날름 다 먹는 것이었다. 집필실로 올라가기 전에 은행나무 식당에 들러서 주인아주머니에게 쏘시지 남은 것을 나중에 공무 주라면서 맡겼다.
버들식당에 닭도리탕을 주문했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서 문사장이 내온 포도주를 마시면서 환담했다. 맛있는 닭도리탕과 저녁을 먹으면서 한 시간 반쯤 놀다가 식당을 나와서 문사장이 꾸민 야외 토끼 방목장을 구경하러 갔다. 마침 그때 공무가 내 앞에 나타났다. 공무를 보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은행나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 동안에 누군가 공무를 깨끗하게 씻긴 것이었다. 공무는 아까 그 더럽고 지저분한 개가 아니라 깨끗하고 말쑥한 개로 바뀌어 있었다.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참으로 뜻밖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내가 그 동안 공무에게 여러 달째 보인 관심과 애정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버들식당 아주머니가 알았던 모양이다. 오늘 맡긴 쏘시지를 주면서 자기가 보아도 공무의 꼴이 해도해도 너무했다 싶어서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부랴부랴 공무를 씻긴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너무 기뻐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이제 공무는 든든한 빽이 생긴 것이다. 오늘 부랴부랴 공무를 씻긴 사람이 앞으로 공무에게 좀 더 애정을 쏟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문사장 집필실에 자주 오기 때문에 적어도 내가 오는 날만이라도 공무에게 더 신경을 쓸 것 같았다. 서울로 돌아 올 때 나는 공무를 한번 번쩍 안아주면서 말했다.
"공무야, 이제 너는 든든한 빽이 생긴 것이다. 버들식당 아주머니가 종전보다는 너를 자주 씼겨 줄 것이다. 아니야! 너를 아무리 자주 씼겨도 네가 하도 지저분하고 험하게 노니까 네 때깔이 안나는 것인지도 몰라. 그렇다면 공무야, 앞으로는 주인아주머니 욕 멕이면 안된다. 너를 핏덩이 때부터 우유 먹이면서 온갖 정성으로 키워준 고마운 분인데.....앞으로는 좀 곱게 놀아라. 내말 알았지? 공무야 잘 있어라."
공무는 나의 등 뒤에서 평소대로 대한민국 공무원처럼 짖었다.
"멍 멍 멍"
"멍 멍 멍"
우리 일행은 걸음을 멈추고 공무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오늘 따라 말쑥한 공무는 자기가 언제 또 목욕을 하는 줄도 모르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서 있는 것이 한없이 외로워 보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www.songhyun.com)
첫댓글 사람이 아님 짐승에게까지 애정을 쏟을줄 알고 외로움을 살필줄아는 선생님의 심성이 잘 나타나 있네요. 이 정도면 사람들한테는 얼마나 잘 대해주실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글이 따뜻 합니다. 홈 공지로 올릴까 합니다. 괘안하시죠.
┏━━━━┓. '┃
┃` .
┗━━━━┛
선생님의 따스하고, 정감있는글....든든한 빽은 바로...
명리카페 인거 아시졍
공무! ㅋㅋㅋ 왠지 웃음이 나네요. 멍멍멍~~~
결혼하기 전에 제가 키운 개가 시츄종이였거든요. 털이 가늘고 숫이 너무 많아서 정말 애지중지 키우는 주인이라하더라도 그 털 관리하기가 만만치 않아요 하루에 3-4번씩 빗겨줘야지 유지할 수 있거든요.목욕시켜서 털을 바짝 말려주지지 않으면 피부병도 잘 생겨요.그래서 저도 결심 끝에 빡빡 밀어줬어요 옷을 입히고. 글을 읽는데 자꾸 공무 모습이 떠올라서 미치겠는거에요...그 털을 빡빡 밀어야 되는데 엉키고 성킨 털 , 시츄는 또 주둥이가 짧아서 음식 먹고 나면 얼굴에다 묻거든요 그럼 그 털 주변에 냄새가 장난아니에요..귀하고 꼬리부분만 남겨두고 다음에 가시면 완전히 밀어주고 오세요 부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