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방을 앞두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화제다. 이 드라마는 탄탄한 대본, 젊은 연기자들의 예상을 뛰어넘은 호연과 연륜 있는 연기자들의 경륜이 더해지고 거기다 연출진의 감성마저 보태져 케이블 드라마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시청률 5%를 넘어서고 있다. 만일 이 드라마가 공중파에서 방송이 되었다면 시청률이 30%는 나왔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포털사이트의 검색어에도 항상 순위권에 올라와 있는 이 드라마는 어떻게 이렇게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는 90년대의 추억을 풀어내고 있다. 그 시대의 풋풋한 사랑이야기, 인기 있었던 음악 이야기,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사람들에게 추억의 감성을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영화가 얼마 전에 개봉되어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그 영화는 바로 “건축학 개론” 이다. 건축학 개론도 응답하라 1997처럼 90년대와 2000년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다닌 사람들이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하고 배우들과 같이 호흡하는 영화였다. 건축학 개론에서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흘러나온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도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이었다.
그럼 같은 시기에 비슷한 포맷으로 만들어진 이 두 작품이 어떻게 똑같이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두 작품을 통해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자신들의 추억을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두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흔히 있었던 이야기 이였다. 서태지와 HOT의 댄스에 열광하고 전람회와 공일오비의 감성에 젖으면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에서 첫사랑을 만나고 IMF에 신음하는 국가경제를 느끼며 쫓기듯이 사회에 던져진 세대가 지금 두 작품에 열광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 사회가 성장과 민주주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할 즈음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던 이 세대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물질적 풍요를 어느 정도 누리면서도 인권이나 평등과 같은 민주주의의 가치도 자연스레 몸에 익힌 세대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은 IMF사태가 터지자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리고 만다. 대학에서는 캠퍼스의 낭만이나 사랑보다는 취업이 우선시 되었고 햇살 좋은 캠퍼스 잔디밭에서의 추억보다는 높은 등록금으로 인한 아르바이트 전쟁이 현실이었다. 졸업을 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몇 백통의 취업원서를 써도 회사는 그들을 찾아주지 않았으며 친구이자 동료였던 사람들은 취업전쟁에서는 경쟁자이자 “적”일뿐이었다. 삶에 있어 필요한 다른 중요한 가치들보다 “돈”으로 인한 먹고사는 문제가 더 시급했던 것이다.
어렵게 취직을 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치며 결혼을 하고 양육에 절대 부담감을 안으며 아이까지 낳고 앞만 보고 살아온 사람들이 바보 이 세대들이다.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위의 두 작품을 접하니 어떻게 과거의 그 아련하고 아름답고 풋풋했던 기억이 안 떠오르겠는가? 옆 동네 고등학교 다니던 은지도 생각이 나고 첫사랑이었던 제훈도 가슴에 남아있었을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내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된 것이다. “아, 나도 저때는 안 그랬지. 그때는 사랑도 있었고 우정도 있었지. 첫사랑 수지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때로 돌아가 보고 싶다.” 이렇게 혼자서 독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두 작품은 그런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했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사람들도 바로 이 세대들이다. 이들의 열정이 젊고 소탈한 후보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절대적 지지계층이 되었다. 그러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도 우리사회는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가 최고의 가치였고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어진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이 세대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디에 최고의 가치를 둘 것인가? 왜 이 세대들은 기존의 정치인보다 안철수를 더 응원할까? “응답하라 1997”과 “건축학개론”은 단순한 “추억 팔이” 드라마나 영화일까?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며 재미있게 다가올 대선을 기다려 본다.
- 이동형 칼럼니스트
저서 <와주테이의 박쥐들>
<김대중VS김영삼> 등 다수
팟캐스트 <이이제이> 진행자
첫댓글 81년생...........2000년도일때 열아홉 이었습니다.
이작가님 얼굴 처음 보게되었네요. 상상과 달리 순박해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