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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며칠 사이에 나타난 양상은 새진보정당 건설 협상의 기준이 생겨 오히려 논의에 속도를 붙일 수 있게 됐다는 분위기다.
3.27 결정 후 다음날인 28일 오전 민주노동당은 최고위원회에서 강기갑 전 대표를 진보정치대통합추진위원회(통추) 공동위원장으로 선임할 것을 논의했다. 또 29일 ‘진보대통합과 새진보정당 건설 연석회의’ 2차 대표자 회의는 4월말 1차 합의, 6월말 2차 합의, 9월까지 새 진보정당 건설 합의 등의 구체적인 일정에 합의했다. 또 30일엔 민주노동당이 강기갑 전 대표를 공식적으로 통추위 위원장으로 선임하고 새진보정당 건설에 더 속도를 낼 것임을 밝혔다. 이날 조승수 대표도 “조만간 새진보정당 추진위원장을 결정내겠다”며 당대회로 흔들렸던 지도력 복원에 나섰다.
애초 3.27 결정 직후 진보신당 안팎에서 새진보정당 건설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던 관측과 달리 오히려 속도가 붙는 형국이다.
강기갑 카드 협상에 어떤 변수 될까 관심 증폭
진보신당 독자파들이 3월 27일 통과 시킨 4가지 수정동의안은 △북한의 핵 개발과 3대 세습반대 △대선 독자후보 전술, 민주연립정부 불가 △9월까지 새진보정당 합의 불발 시 합의 가능한 사회당 등 좌파세력과 선 통합 △새진보정당 추진위원장 전국위 인준을 통한 노회찬 등 적극적 통합파 불가 등의 해석이 담긴 안이었다. 사실상 민주노동당 주류 세력에 던지는 통합의 가이드라인이자 진보신당내 명망가들에게 던지는 경고였다. 민주노동당 내 주류세력은 민주노동당의 실질적인 당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는 진보신당과 통합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진보신당 독자파들의 메시지에 민주노동당은 공식적으로는 매우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28일 오전 최고위원회가 끝난 후 “09년 2월 21일 우리가 처음 통합을 제안한 후 2년 만에 공식 의결기구에서 진보대통합을 기정사실화 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최고위원들은 환영 분위기였다”고 최고위 분위기를 전했다. 2년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본격적인 실무협상을 할 수 있게 됐으니 그게 어디냐는 반응이다.
우위영 대변인은 “통합에 우려스러운 결정적인 문구가 여러 가지 있기는 하지만 통합의 대세를 거스를 만한 것은 아니다. 이 정도 산고는 예상했다”며 “진보신당 결정사항은 협상안이라고 본다. 우리는 우리 방안을 담은 협상안이 있고, 이정희 대표께선 이미 우리가 더 많이 내려놓겠다고 말씀하셨다. 패권주의를 예를 들면 공동대표제나 1인 1표제 등의 내용으로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어 “이미 4월 2일 중앙위에서 논의할 협상 안은 최고위에서 상정해서 논의 중인 만큼 통합은 대세가 됐고, 지금 단계는 감정의 앙금을 정리하는 단계“라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는 4월 2일 중앙위에서 확정할 실무협상단 구성안을 심사숙고 중에 있다.
이런 민주노동당의 분위기는 강기갑이라는 카드를 통해 대세 굳히기로 나타났다. 애초 강기갑 전 대표를 공동 통추 위원장으로 선임하자는 얘기는 한 달여 전부터 민주노동당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강력한 통합파 였던 강기갑 의원이 공동 위원장을 맡을 경우 스타일상 양당의 독자파들을 발로 뛰며 본격적으로 설득하고 다니기 시작할 거란 관측이 많았다. 또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의 말 뿐인 진정성이 아닌 실질적인 내용이 담긴 진정성을 보일 것이란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민주노동당의 한 당직자는 “강기갑 의원은 필요하다면 진보신당 독자파들을 매일 찾아가 설득 할 정도의 추진력이 있을 뿐 아니라, 실질적인 협상에 들어가면 독자파들이 통합으로 마음을 움직일 만큼 충분한 명분을 담은 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강기갑 카드는 또 진보신당의 새진보정당 추진위원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당장 진보신당에서는 3.27 당대회에서 추진위원장으로 불가라고 받아 들여졌던 노회찬 진보신당 고문이 다시 거론 되고 있다. 강기갑 의원의 무게감에 맞추기 위해선 노회찬 고문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일각에선 강기갑과 노회찬이 머리를 맞대기 시작하면 논의에 속도를 붙이고 양당의 독자파들을 설득할 안을 내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 3.27 진보신당 당대회 |
노회찬 끌어들이는 강기갑 카드, 독자파 독박카드?
진보신당은 오는 9일 추진위원장을 인준하는 전국위원회를 예정하고 있다. 이날 조승수 대표가 노회찬 고문을 임명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조승수 대표가 노회찬 고문을 임명하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승부수지만 독자파가 다수라고 알려진 전국위원회가 인준을 거부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독자파로 알려진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 A씨는 “지난 당대회 전에 조승수 대표가 보낸 편지 때문에 도로 민주노동당에 위기감을 느낀 독자파들이 강경한 수정동의안들을 통과 시켰지만, 전국위가 조승수 대표를 또 밟기엔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커 노회찬 고문을 임명하면 통과 될 가능성도 많다”고 해석했다.
실제 3.27 당대회 직후 통합파로 알려진 진보신당 관계자 B씨는 “당장은 오늘 결정이 독자파의 완승으로 비춰지지만 사실상 독자파들이 민주노동당과 분당시 겪었던 그 패권주의를 당원들에게 보여 준 셈이라 오히려 독자파들의 패배로 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당대회 결과가 표면적으론 독자파의 완승으로 비춰졌지만 오히려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노회찬 카드가 당대회 이후라 오히려 쉬워졌다는 관측도 있다. 이미 당의 최고의사결정 기구에서 협상 가이드라인을 결정해 놨기 때문에 누가 추진위원장이 돼도 당대회 결정 사항에 위배되는 협상안을 낼 수 없어, 노회찬 고문을 전국위원회가 받아들일 것이라는 관측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A씨는 “노회찬 고문은 당대회 결정의 수준을 잘 알고 있고, 결정 사항에 도달할 안이 무엇인지도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통합을 이뤄내야 하는 노회찬과 강기갑이 도출해 낸 안은 가이드라인에 가까운 안이 될 것이고 독자파도 받아들일 수도 있는 안이 나올 수 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뭐가 나올 수도 있다”고도 봤다.
이런 기류를 감지한 진보신당 홈페이지 당원 게시판(세상사는이야기)에는 다시 노회찬 고문의 임명을 반대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 당원은 30일 올린 글에서“노회찬 전 대표가 당의 주요 기구의 결정에 어긋나거나 앞서나가거나 통제되지 않는 모습을 봐왔다”며 “노회찬 고문이 추진위원장을 맡으면 당대회의 결정 사항이 잘 지켜질 수 없다”고 반대했다. 그는 “추진위원장은 철저하게 당의 조직체계 속에서 통합 추진을 검토 받아야 하는데 논란의 중심에 있는 분을 '추진위원장'을 맡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강기갑 카드 진보신당 당대회 전에 던졌다면 달랐을 것
물론 노회찬+강기갑 카드는 단순히 정황상 드러나는 추측으로 끝날 가능성도 많다. 우선 강기갑 카드가 당대회 직후에 던져졌다는 것에서 민주노동당 주류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짜 통합할 마음이 있었다면 당대회 전에 강기갑 의원을 선임했을 거란 얘기다. A씨는 “민주노동당 주류가 진정으로 통합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게 아닌 채 강기갑 카드를 던졌다면 이는 통합에 실패했을 경우 모든 책임을 진보신당 독자파에 돌리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민주노동당 주류의 속내를 두고 이렇게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은 향후 양당 통합의 최대 걸림돌이 북한 문제 보다는 민주연립정부가 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북한 문제는 진보신당 독자파들이 통합을 반대하기 위해 만든 명분으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현실 정치를 추구하는 두 당의 가치기준과 당론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요구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진보신당이 결정한 3대 세습문제나 북한 핵 반대는 국민 일반의 정서와 상식에 비췄을 때 민주노동당 주류가 오히려 양보하기 쉬운 의제라는 분석도 있다.
이에 따라 반MB를 매개로한 대선 후보 단일화와 연립정부 구상을 민주노동당 주류가 더 포기 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민주노동당 주류가 장악하고 있는 일부 도당에선 민주연립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북한 문제를 양보한 민주노동당 주류가 대선 독자후보 전술을 양보하라는 타협안을 던질 가능성도 크다.
진보신당 독자파들이 통합에 함께하면 완강한 대선 독자후보 전술을 펼칠 테고 결선투표제가 없는 상황에서 야권후보 단일화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과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주류의 노림수는 진보신당 독자파의 고립이라는 설명이다. 공교롭게도 30일 연석회의 2차 대표자 회의에서는 대선방침을 연석회의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또 강령도 2012년 대선이 지나고 만들자는 얘기도 나왔다. 우선 대선 때 가장 논란이 될 쟁점들을 통합 뒤로 미루자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주류에 속하는 한 인사는 “진보신당이 자기 원칙을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하면 협상이 안 된다”며 “진정 통합을 할 생각이 있다면 협상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당의 방침이 관철 안됐으니 협상을 엎는 것은 반통합“이라고 강조했다. 진보신당이 당대회 결정사항 만을 내세워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독자파들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향후 예상되는 몇 가지 시나리오의 폭발력 때문에 강기갑 전 대표의 행보와 조승수 대표의 추진위원장 구상에 점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