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25일 수요일 성곡미술관 나들이
* 내일의 작가전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전시회 이름은 '내일의 작가전'이었죠. 성곡미술관에서 기획하고 있는 전시인데, 젊은 작가들을 위한 좋은 기회인 거 같더군요. 사진전과 미술전이 함께 열리고 있어서 미술과 사진의 차이를 한 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미술관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카메라를 꺼내 들고 눈빛을 반짝입니다. 특히 오늘은 한울이, 정우, 정현이도 카메라를 가져와서 그런지 얼른 들어가고 싶어 하네요. (물론 승수와 창훈이는 언제든 가져오는 친구이고요, 소륜이는 핸드폰으로 찍죠^^)
* 초록작가, 초록 아이들... 초록 속에서 헤엄치다
미술전을 하고 있는 작가는 송명진이라는 분이었죠. 그는 '녹색작가' 혹은 '초록작가'라고 알려져 있답니다. 그림에 쓰인 색이 초록뿐이라고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얀색 전시장 벽면에 온통 초록색으로 뒤덮인 그림 속을 거닐다 보니 풀밭에 온 것 같기도 하고, 강물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아이들과 함께 시원하게 초록 속을 거닐었습니다. 특히 정물화나 풍경화가 아니어서 아이들이 더 신기해 하였죠.
'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초록작가'의 전시 주제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들이 한 폭의 그림 안에서 충돌하기도 하고,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는군요. 식물과 동물, 자연과 인공, 멈춤과 움직임 등등처럼요. 그래서 아이들과 전시배경을 읽어보며 '반대'되는 개념들에 관해 수수께끼 놀이를 해보았습니다.
- '자연'의 반대는? : (아이들) 만드는 거
- 그렇지! 만든 거지. 그런데 만드는 건 누가 하지? : (아이들) 사람.
- 그래, 그렇다면 '사람이 만든 거'를 한자로 뭐라할까? 두 글자인데... : (아이들) 글쎄...
- '자연'은 원래 그렇게 있었다는 거고, 자연의 반대는 사람이 만든 거니까 '인공'이지. : (아이들) 아!!! 맞다! ^^
그런데 '멈춤'이라는 말에서 아이들이 멋진 생각을 말해주네요. 시냇가가 "'멈춤'의 반대말은 무얼까?" 하고 물었더니 창훈이가 머뭇거림도 없이 '자유'라고 말하네요. 작가가 설명해 놓은 '움직임'이라는 말보더 더 큰 뜻을 지닌 것 같았답니다. 이쯤이면 청출어람이라고 해야 할까나... ^^
* "파란색은 숨고 싶은 색이야"
우선 1층 전시실의 그림을 다 둘러보고 벤치에 앉았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을 순서대로 발표하기로 했죠.
- 소륜 : 1차 : 검정, 흰색 (그랬다가 나중에 친구들이 금색 은색을 말하자 다시 순서도 바꾸고 좋아하는 색도 추가)
2차 : 금색, 은색, 검정색, 흰색
- 정우 : 노란색, 꽃분홍색, 하얀색, 연두색, 하늘색
- 승수 : 무기재색, 금색, 파랑색
- 한울 : 주황(오렌지), 녹색, 연두색, 하늘색, 흰색
- 창훈 : 밝은 녹색, 파란색, 금색, 은색, 빨강색, 노랑색
- 정현 : 반짝이는 무지개색, 초록색, 연두색, 노란색, 금색
문득, 색채심리에 관해 글을 읽었던 것이 기억나서 아이들에게 색과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물었습니다. '파란색'은 고독을 나타낸답니다. 물론 바다 색의 깊은 파란색이겠지만 몇몇 아이들이 파란색을 말하길래 '파란색'에 대해 물었죠. 그랬더니 정우가 재미있는 답을 말하네요. "파란색은 숨고 싶은 색 같아." ^^ 이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하네요. 사실 저도 그 대답에는 적잖이 놀랐답니다. 정우가 숨고 싶은 색이라고 느낀 이유는 아마도 파란색 속에 그런 의미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며 설명해주었더니... 마지못해 끄덕끄덕 합니다. ㅋㅋㅋ... 하지만 정작 파란색을 선택했던 친구들은 파란색 속에서 푸르고 높고 시원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건강한 친구들입니다.^^
* '제목'을 붙여봐
초록작가의 초록 작품들 속을 거닐다 우리는 재미있는 그림 앞에 멈추고 말았습니다. 어떤 재미냐고요? 그건 바로 아무것도 없는 재미였죠. 8절지보다 조금 더 큰 크기였는데 아무것도 없는 초록색뿐이었죠(창훈이가 이 그림을 카페앨범에 올렸더군요. 참고하시길...) 우리는 이제까지의 느낌을 살려서 그 그림에 제목을 붙여 보기로 했습니다.
- 정우 : 들판, 빈공간
- 소륜 : 초록색, 초록색의 비몽사몽, 배추색, 미래의 공간
- 창훈 : 들판, 또다른 차원
- 정현 : 녹색, 사차원
- 한울 : 초록빛의 무차원 공간, 칠판
- 승수 : 자연천국
제1전시실에 이어 제2, 제3 전시실까지 다 돌아본 아이들. 후반부에 이르자 이제 슬슬 추상화 같은 그림 속에서 스스로 스토리를 찾아냅니다. 사실은 저도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읽어낸 것도 있어 감탄할 수밖에 없었죠. 다리가 아플 법도 한데 이리저리 열심히 살펴보며 사진 찍으랴, 그림 보고 시냇가에게 생각을 말하랴 아주 바쁩니다. 그래서 더 이쁩니다.
* 전시장에서 만난 특별한 모델
미술 전시가 있는 건물의 건너편에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권순관 작가의 전시였죠. 이 사진전의 주제는 '개인과 외부 환경과의 관계'라고 합니다. 그런데 전시장을 돌다가 깜짝 놀랐답니다. 호택이의 큰아버지, 그러니까 시냇가의 시아주버님이 모델이지 뭡니까??? 아주버님이 연극계에 계셔서 그랬나 봅니다. 아이들에게 말해주었더니 사진 찍어서 호택이한테 보여줄 거라고 하네요. 미술 전시에서 모든 에너지를 다 쏟고 봐서 다리도 아프고 지루할 무렵이었는데, 때마침 호택 큰아버지를 만나 아이들이 잠깐 동안 팔팔해졌었답니다.
* 성곡미술관 방명록에 남긴 아이들 글
초록작가 송명진의 미술전시를 본 아이들이 성곡미술관 방명록에 남긴 글입니다. 직원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꺼리는 걸 잘 설득해서 아이들도 적을 수 있게 허락을 받았죠. ^^
- 소륜 : 자연에, 미지의 공간에 빠진 것 같다.
- 한울 : 인공과 자연이 석(섞)이니 참 신기한 그림이 되는 것 같다.
- 승수 : 미술에 여러 가지 뜻이 있다는 걸 알았다.
- 창훈 : 다른 차원에 온 것 같다.
- 정우 : 다른(여느) 그림과 다른 그림이어서 더 좋고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았다.
정현이는 자유롭게 나가서 놀고 싶답니다.^^ 그래서 나중에 다른 기회에 적기로 하고 햇살을 즐기며 놀았답니다.
너무 오래 서서 전시를 보았기 때문에 다리도 아프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이 피곤해 했답니다. 그래도 불평 전혀 없이 잘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