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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장항문과 교수의 대장암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낙섬2
황혼의 신혼 |
김정숙 |
“훠이 훠이” 우리는 대구에서 의성까지 들락거리며 자두 농사를 짓는다 . 남편은 크고 잘 익은 자두만 쪼아 먹는 새를 향해 막대를 찾아 양동이를 시끄럽게 두드리며 “훠이 훠이” 쫓고 있다 . 이런 남편의 얼굴이 오늘 따라 참으로 여유로워 보인다 . 어깨까지 들썩이며 추임새까지 넣는 폼이 우습다 . 내가 깔깔거리며 아이처럼 웃자 , 남편도 어색한지 따라 웃는다 . 여태 보아온 남편의 모습 중에서 제일 행복한 모습이다 .
따가운 햇살에 “엄매애” 새끼 염소가 아는 체를 한다 . “오냐 오냐” 남편은 어느 새 염소를 몰고 나와 풀밭에 말뚝을 박아준다 . “꼬꼬 꼬꼬”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칠면조와 닭한테도 모이 한줌을 던져준다 . 그 품새가 영락없는 농부다 . 염소와 닭과 칠면조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불어난 식구들이다 .
남편은 대장암으로 수술을 하고 ,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 오늘도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길이다 . 계속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우리는 점심도 뜨는 둥 마는 둥 바로 밭으로 달려왔다 . “와아” 온 밭에 빨갛게 익은 자두를 보니 탄성이 절로 난다 . 온통 초록색에 빨간색 고운 자두를 보고 남편은 “에헤이 , 자두가 너무 익어 큰일 났다 . ”며 안타까워한다 .
나는 색 고운 자두 하나를 따서 달콤한 향을 맡다 한입 베어 물었다 . 입안에 새콤달콤한 물이 가득 고였다 . 신이 내린 맛과 향이라며 연신 먹어 대는 나를 보고 남편은 “다나 ? ” 하고 묻는다 . “함 먹어 보이소 . ” “어 다네 . ” “완전 꿀이에요 . 꿀“ 비가 오락가락 했는데도 우리 자두는 정말 달다 . 야산이라서 물 빠짐이 좋은데다 남편이 정성을 들인 까닭인 것 같다 . 남편은 힘든 항암 치료에 지칠 법도 한데 밭에 와서 일을 할 때면 힘이 펄펄하고 생기가 있다 . 놀러온 친구들이 다 깜짝 놀란다 . “어이 , 친구야 니 암 환자 맞나 ? ” “암 , 그딴 게 뭣이라고 . ” 남편은 차츰 병을 받아들이고 이기려고 애를 쓰고 있다 . 질금거리는 비에 무릎까지 자라 넘실대는 풀을 베는 남편은 금방 땀으로 세수를 한다 . “힘든데 올해는 풀 약 좀 쳐요 . ” 안타까워 한 마디 해도 , 남편은 제초제를 치면 사람에게도 해롭지만 땅도 서서히 죽어간다고 제초제를 치지 않는다 . 한나절 고생을 하며 풀을 베고 나면 , 그 풀 냄새가 나는 너무 좋다 . 풀이 베어진 넓은 밭을 보며 , 항암주사를 맞으면서도 눈간데 없이 잘도 가꿔 놓은 남편의 일솜씨에 감탄한다 .
이렇게 알뜰하게 키워놓은 이것들을 두고 병원에 갇혀 있는 동안 얼마나 갑갑했을까 ? 지난여름 이맘 때 , 남편은 간간히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을 자주 갔다 . 화장실을 다녀와도 여전히 뒤가 개운치 않다며 짜증을 부리고 , 진통제를 찾았다 . 혹시 모르니 고생하지 말고 병원에 가 보자 하면 , 남편은 말도 못 하도록 화부터 냈다 . 남편은 식탐이 많고 , 떡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떡보다 . 한창때는 앉은 자리에서 인절미 한판을 다 먹었다고 , 큰 시누이는 떡만 보면 지금도 그때의 이야기를 한다 . 남편은 생선보다 육류를 더 즐기고 , 먹기 시작하면 뭐든 실컷 먹으려고 한다 . 이런 습성 때문에 나는 알맞게 먹어라 , 많이 먹었으면 운동 좀 해라 하고 늘 잔소리를 하게 된다 . 그래도 남편은 꿈쩍도 않는다 . 몇 해 전 큰시누이가 대장이 안 좋아 대장 내시경을 하고 와서는 .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내시경을 안 한다”고 했다 . 시숙과 남편 , 막내시누이도 대장이 안 좋은 터에 그 소릴 듣고 , 모두 지레 겁부터 먹었다 . 겁을 내면서도 남편은 식습관을 바꾸지 않았고 , 늦은 밤에도 떡을 찾다 떡이 떨어졌다고 하면 난리가 난다 . 허구 헌 날 소화가 안 된다 , 뒤가 개운하지 않다 하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떡 타령 하냐고 대들다가도 꾹 참았다 .
남편은 자두 농사를 정성껏 짓고 , 그 맛있는 자두를 따면서도 먹지는 않았다 . 애주가라 술을 마시는 횟수가 하늘에 해 뜬 날 보다 더 많을 것이다 . 게다가 성격은 불같고 ,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내는 편이다 . 담배는 하루에 두 갑을 넘게 피우는 것이 몇 십 년이 된다 . ‘ 4 시간은 금연'이라고 훈장처럼 자랑을 하는 겁 없는 사람이다 . 그런 남편이기에 술 담배가 배를 아프게 만들어 화장실로 자꾸 유혹한다고 잔소리를 하며 봄에 받은 검진에서 별 이상이 없었는데 별 일이야 했다 . 그러다 화장실 가는 빈도가 점점 더 잦아지자 겁이 덜컥 났다 . 병원에 한번만 가 보자 아무리 사정을 해도 치질이라고 혼자서 결정을 내리고는 아플 때 마다 진통제로 견뎠다 . 그렇게 아픔을 진통제로 혼자 견디며 자두를 다 따내고서야 남편도 아픔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 여름이 끝나갈 무렵엔 누가 봐도 눈의 뜨게 살이 빠진 데다 깨끗하던 얼굴에 검은 반점까지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 그제야 남편은 사실은 봄에 받은 종합 검진 때도 겁이 나서 대장 검사는 하지 않았다고 실토를 했다 . 그러면서도 병원에 가자는 말에는 “치질 약이나 사 온나 . ”하며 가지 않으려고 했다 . 남편의 저 황소고집을 어떻게 꺾나 하다가 “약 사 주면 병원에 가는 거죠 ? ” 했다 . 남편은 그러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가 보나 마나 치질일 긴데 . ”했다 .
추석 명정을 지내고 병원에 간다는 마음으로 우리는 좋아하는 송편 한 소쿠리를 했다 . 남편은 앉은 자리서 그걸 다 먹었다 . 명절 연휴가 끝난 2006 년 10 월 9 일 치질로 유명한 K 병원을 찾았다 . 남편의 진단 결과는 대장암 , 그것도 폐와 간까지 전이된 대장암 3 기라고 했다 . 나는 의사 선생님의 바지 자락을 붙들고 울부짖으며 매달렸다 . “이 사람을 살려 주세요 . 제가 이 사람 도움을 받아야하는 ‘루프스'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습니다 . ” 의사 선생님은 병이 깊은 만큼 다음날 아침에 바로 수술 들어가니까 , 다른 가족들한테 연락을 하라고 했다 . 갓 결혼한 아들은 직장관계로 멀리 떨어져 살고 , 딸은 이역만리 타국에 살고 있어 혼자 어찌할 줄 몰라 철철 울다 몸도 안 좋은 큰 시누이에게 전화를 하면서 창문에 기대 목 놓아 울었다 . 한평생 술 담배와 과격한 말로 나를 참 많이도 울린 사람 , 이제는 몹쓸 병까지 걸려서 애를 태우다니 . 어찌나 야속하던지 참았던 아픔이 봇물처럼 터져 불빛이 가물가물하도록 울었다 . 아들이 오고 , 시누이와 조카가 달려왔다 . 날짜가 하루 늦은 지구 반대편에 사는 딸한테는 차마 다 말을 못했다 . 그러나 동생의 연락을 받았던지 십 분 간격으로 전화를 해서는 아버지의 상태를 물어 보는 것이었다 .
“엄마 아버지는 ? ” “수술 잘 될 거야 . 걱정 마 . ” 일 때문에 당장 올 수 없는 딸은 제발 비행기 타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 7 시간의 대수술 , 수술실에서 아들을 두 번이나 불러 들 일 때 마다 나는 혼절을 했다 . 아들은 나를 한쪽으로 보내 놓고 안정시켰다 . 그런 아들의 어께가 결혼하겠다고 엎드려 절하던 그때보다 바깥마당 하나만큼 더 넓어 보였다 . 7 시간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온 남편은 고통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
남편은 대수술을 받은 고통이 심한지 십분도 안자고 , 악을 쓰며 눈을 치켜뜨고 원망을 했다 . 담배를 숨겼다고 악을 쓰다가 , 담배를 사 오라고 병원이 떠나가라 큰소리를 질렀다 . 나는 그런 남편이 너무 무서워 곁에 있질 못하고 복도로 쫓겨 나와 숨어서 울기만 했다 . 병문안 오는 사람마다 보호자가 환자 같고 , 환자가 보호자 같다고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 . 남편의 사나운 눈길은 정상적인 환자가 아닌 지독한 금단 현상이라고 했다 .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 이해를 하면서도 과격한 말로 아픔의 고통까지 마누라한테 푸는 걸로 버티는 것이 무섭고 안타까웠다 . 금단 현상이 그렇게 무서운 것일 줄 처음 알았다 .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주머니에 가짜 담배까지 숨기고 있었다 . 그런 날은 멀리 있는 딸한테도 눈물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 수술 후 강한 항암주사를 ! 맞으면 대부분 지쳐서 힘들어하고 잠을 자게 된다는데 남편은 도대체 자지를 않았다 . 그런 남편을 보며 주위 사람들은 환자가 의지력이 강해서 빨리 회복 될 거라며 좋게 말을 했다 . 나는 점점 지쳐 가는데 환자인 남편은 잠을 안 자고도 기운이 펄펄했다 . 남편은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억지로 강한 척을 했던 것이다 .
그런 남편을 데리고 퇴원을 했다 . 약을 먹는 두 달 동안의 지난겨울이 내게는 몹시 춥고 길게만 느껴졌다 . 남편은 바깥출입은 전혀 않고 , 종일 컴퓨터게임에 빠져있으면서 무던히도 속을 썩였다 . 툭툭 맘에 없는 말과 행동으로 나를 괴롭혀도 그래도 많이 아프지 않으니 다행이다 참자라고 자기체면을 걸며 부실한 내 몸을 추스렸다 .
병은 아픈 사람도 보호자도 다 고통스럽게 했다 . 수술 후 , 그리고 두 세 차례 항암치료를 할 때까지 병을 받아들이지 않고 ,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 원망이 지나쳐 내게 쏟는 화들이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숨통을 조이면 혼자 산에 올라 기도를 했었다 . 십 년 전 , 전 재산을 다 잃고도 잘 살아왔으니 제발 환자의 마음이 유순해지게만 해달라는 염원으로 혹독한 추위를 견뎠다 . 아무리 길고 혹독한 추위도 봄을 이기지는 못하는 것 같다 . 오는 봄과 함께 남편의 건강도 차츰 좋아졌다 . 어느 꽃샘바람이 볼을 후리던 날 , “밭에나 가 볼까”하는 남편의 말에 내 귀를 의심했다 . 운동을 해야 한다고 산책이라도 하자고 그렇게 애원을 해도 집에서 꼼짝을 않던 남편이었다 . 그런 남편이 밭에 가고 싶어 한 것이다 . 그렇게 시골 밭에 딸린 작은 집으로 내려간 남편은 하루 일과를 전화로 전해 왔다 .
“뭐든 무리 하지 말고 , 운동 삼아 해야 돼요 . ”라고 염려스러워 남편에게 당부를 한다 . 하루는 “호박구덩이를 5 개나 팠다 . ”하며 제법 힘이 실린 목소리를 전해왔다 . 그러면서 내일은 두 개를 더 팔 것이라고 했다 . “정말 고생 많이 했네요 . 그만하면 하루 운동으로 충분하겠어요 . ” 했더니 아이마냥 좋아했다 . 그리고 며칠 후에는 “장에 가서 고추 모종 몇 포기 사 왔다 . ”고 했다 . “잘 했어요 . 매운 고추 몇 포기는 얻어왔다고요 ? 그 참 잘 됐네요 . ” 이렇게 남편은 날마다 전화로 시골에서 보내는 하루 일과를 전화로 전해오고 , 나는 그에 맞춰 칭찬을 하거나 놀라는 시늉을 하며 남편의 기분을 맞추었다 .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 또 전화를 한 남편은 파프리카를 만원어치 샀는데 왜 그리 비싸냐고 투덜거렸다 . “어머나 파프리카를 어떻게 알고 샀어요 ? ” “내가 그것도 모를까봐 . ” 남편은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밭일을 잘 한다 . 처음 밭에 내려갔을 때는 가을에 전지한 나뭇가지를 주워내기도 하루해가 짧다고 보고를 했었다 . 힘에 겨운 탓이었다 . 그렇게 일을 운동 삼아 하면서 남편은 차츰 기운을 회복했다 . 마누라가 그토록 바라던 운동이 될 것 같아 내려왔는데 , 흙을 밟으며 일을 하다 보니 바빠서 담배의 유혹도 ‘그딴 게 뭐라고'하게 된다며 날마다 희망적인 말만 전해 왔다 . 약도 시간 맞춰 먹고 , 항암치료도 날짜 한번 거르지 않고 받으러 오는 남편이 대견했다 . 자두 꽃이 필 때는 , 온 밭이 하얗다 못해 파랗다고 흥분해 하던 남편의 큰 목소리에 나도 덩달아 “어머나 , 정말 ? ” 했다 . “긍게 빨리 온나 . ”하는 대답으로 남편은 보고 싶다는 말을 대신했다 . 배낭 가득 장을 봐서 시외버스를 탔으니 언제쯤 도착할 것이라 보낸 문자를 보고 남편은 곧장 전화를 했다 .
“대추밭에 가보고 시간 맞춰 버스정류장에 갈게 . ” 하고도 남편은 내가 도착 할 때까지 다섯 번이나 전화를 더했다 . 이렇게 신혼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설렘이 우리한테도 생겼다 . 난폭한 말로 무수히 상처를 주던 남편이었는데 , 자두 밭 둘레에 진달래가 지천일 즈음 어김없이 나타나는 두견새의 울음이 슬프다고 말 할 줄 안다 . 차츰 정서적인 안정을 얻고 있는 남편은 하늘 아래 첫 동네인 농장에서 맑은 공기 마시며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해 보인다 .
남편은 자신의 땀방울로 영글어 단맛이 더 나는 자두 한 상자를 들고 병원을 찾는다 . 하얀 가운이 잘 어울리는 키 큰 의사 선생님 , 웃으면 하얀 이가 고른 간호사님의 상냥한 인사가 그립다고 한 달에 두 번 꼭 항암치료를 받으러 간다 . 마음이 이렇게 맑아져서일까 . 얼굴에 많던 검버섯도 다 없어져 구리 빛의 맑은 얼굴을 보고 다들 건강해 보인다고 인사를 한다 . “아저씨 , 아픈데도 없는데 왜 또 왔어요 ? ” 어제는 함께 항암치료를 받던 젊은이한테 기분 좋은 인사도 들었다 . 남편은 항암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갈 때마다 두 손에 울 콩이랑 강냉이랑 자주색이 예쁜 가지랑 윤기 나는 애호박 등을 봉지봉지 싸들고 간다 . 남편은 수술을 받고 건강이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시다고 먹지 않던 자두도 잘 먹고 , 자연과 세상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
이제 세 번의 항암치료가 남았다 . 항암치료가 끝나면 남편은 부실한 허리 때문에 고생인 마누라를 위해 참한 황토방을 만들어 준다는 약속을 했다 . 또한 더 이상 가슴에 상처 주는 말도 하지 않겠다는 큰 약속도 스스로 했다 . 가을걷이가 끝나고 찬바람이 골짜기로 몰아 칠 때 군불 넉넉히 넣어놓고 흙냄새 맡으며 밤이 이슥하도록 읽고 싶은 책도 읽고 , 아픈 허리 뜨뜻하게 지지면서 , 부엉이소리 들으며 단잠이 들 생각만 해도 벌써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개운해지는 것 같다 .
남편은 얼마 전 PeT CT 촬영 결과 , 수술 전 밤하늘에 은하수 같던 폐가 아주 많이 깨끗해졌고 가장 걱정했던 뼈도 천만다행으로 전이가 안 됐고 , 간은 아주 조금 안 좋다 했다 . 이것도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 준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서 , 좋은 곳에서 좋은 생각만하고 편안하게 염소와 닭을 돌보며 고향 친구들과 재미있게 생활하면 차츰 좋아질 거라고 했다 . 의사 선생님도 남편이 시골에서 땀이 나도록 일하는 것이 몸에 좋다고 했다 .
그래서 오늘도 나는 대구에 있는 우리 집에서 시골 오두막에 있는 47 년생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 . “여보 많이 아프죠 ? 힘든 항암치료 잘 견뎌줘 정말 고마워요 . 사랑하는 숙이가 . ” 마주 보고는 못하는 말도 할 수 있어 문자메시지가 좋다 . “두 돌인 손녀가 예쁘게 커서 대학에 들어 갈 때까지 , 아픈 것 잘 참았으니 대견해서 봐 애들 자리 잡을 때까지 10 년은 더 살아 줘야 해요 . ” 이렇게 날마다 주고받는 사랑의 힘일까 ?
지금은 마주 보고도 얘기를 곧잘 한다 . 남편의 얼굴은 금단 현상으로 수술 직후의 핏발선 그때의 눈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 새끼염소를 닮은 순한 눈이다 . 내 작은 눈과 만나면 아직 남은 부끄러움이 있는지 슬쩍 피한다 . 우리 가족은 남편이 대장암 수술을 하고 ,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가장 소중한 많은 걸 얻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