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직후 축성한 산성으로 마을 생겨… 누룩 팔아 생활 전국서 일출 가장 빠른 산…소나무 재선충 첫 발생지도 거쳐
금정산은 실제로 많은 등산객이 찾는데도 평가를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는 산에 속한다. 그 역사와 유물이 어느 산 못지않은데도 말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금정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금정산 바위샘(金井)은 동래현 서북쪽에 있다. 산마루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이며, 높이는 7척쯤 된다. 물이 항상 가득 차 있어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빛은 황금색이며, 그 아래에 범어사가 있다. 세상에 전해오기를 한 마리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범천·梵天)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 하여 금정이라는 산 이름을 지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도 범천을 그냥 천(天)으로만 바꾼 것 외에는 똑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 1 의상대를 지나 원효암을 향해 오르고 있다.
2 원효대사가 수도한 곳으로 전해지는 원효암 법당 전경. 건물이 너무 오래돼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았
으나 아직 수리를 하지 않고 있다. 원효암 뒤로 보이는 바위가 범어3기 중 하나인 ‘원효석대’.
3 의상대사가 수도한 바위로 유명한 금정산 의상대 위에서 저 멀리 회동저수지와 광안대교가 희미하게 보
인다. 희미한 안개 낀 모습이 금정8경 중 하나인 ‘의상망해’를 연상케 한다.
하늘과 땅의 신화 간직한 산
범천은 우주 삼라만상과 영생의 원리를 의미하고, 물은 창조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범천에서 내린 금어는 무엇을 뜻하는가? 금샘바위를 가만히 바라보면 영락없이 거대한 남근석이다. 바위가 워낙 커서 옆에서는 잘 모르지만 멀리서는 확연히 파악된다.
금샘바위(금정·金井) 끝에 있는 금샘, 그리고 거기서 노는 금어, 이 모두 상관관계를 갖는다. 즉 하늘(범천)에서 인간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금샘(물)을 만들었다는 뜻이며, 거기에 노는 금어는 생명 잉태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주와 지상계가 완벽하게 소통하는 통로의 상징인 금샘바위는 물을 가득 담고 있는 생명력의 근원이고, 천상의 생명인 금어가 지상에서 번식·증강하는 생명의 자리로 매김한다는 뜻이다. 그 금정샘은 금정산 최고 봉인 고당봉 바로 밑에 있다. 따라서 금정산은 역사의 산이고, 생명의 산이고, 신화의 산이다.
신화의 역사를 간직한 금정산에도 원래 길이 있었다. 그 역사가 언제부터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주변에서 가야 토기까지 나오는 걸 보면 기원전부터 사람들이 생활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문건은 찾을 수 없다. 현재 기록으로는 임진왜란 직후 금정산성(사적 제215호)과 관련된 마을이 생성되고 본격적인 길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금정산 길은 임진왜란과 맥을 같이한다. 물론 지금 샛길을 제외하고 부산시에서 정비하는 금정산 등산로만 27개나 되지만 등산로 개념이 아닌 ‘생활의 길’이자 ‘삶의 길’은 16세기 전후부터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의 문인 루쉰(魯迅)은 그의 소설 <고향>에서 ‘길’을 매우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길에 대한 압축적인 설명이다.
금정산길도 마찬가지다. 임진왜란 직후 고대로부터 있던 산성에 금정산성을 보강, 축성(1703년)했고, 이후 산성마을이 커지면서 이전에 한두 사람이 다니던 길이 ‘삶의 길’로 확대됐다.
산 안에 분지의 형태로 마을이 형성된 곳은 거의 없다. 남한산성 안에 몇 가구가 살고 있긴 하지만 금정산성과는 규모면에서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금정산성 안 산성마을엔 무려 440여 가구가 살고 있다.
▲ 1 원효암 올라가는 길은 탱자나무 울타리와 대나무·소나무가 가로수로 늘어서 마치 호젓한 숲속을 걷는 느
낌을 준다.
2 금샘바위 가는 길은 너덜겅을 지나야 한다.
3 금정산 고당봉을 뒤로하고 범어사로 하산하고 있다.
4 금샘바위에서 바라본 금정산 최고 봉인 고당봉.
5 금정산 신화를 간직하고 있는 금샘바위. 남근바위 같이 생긴 끝 부분에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금샘이 있
다.
산성마을 이름은 전부 국방과 관련
금정산성 안에는 죽전, 중리, 공해라는 3개 자연마을이 금정산성에 둘러싸여 있다. 이 3개 마을은 모두 국방과 관련이 있다. 죽전(竹田)마을은 화살을 만드는 대나무가 많이 생산됐고, 중리(中里)마을은 중성문이 있었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 공해마을의 공해(公 )는 관청을 뜻하며, 산성 내의 좌기청·군기고·화약고·내동헌·별전청 등의 관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산성마을의 정확한 유래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그 시초는 300여 년 전쯤 조선시대 군용물자 저장소로 사용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됐다고 구전된다. 마을 원주민인 이춘지(81)옹은 “토박이로 12대째 산성마을에 살고 있으며, 가장 오래됐다”고 말했다. 12대째면 대략 360년 이상 된다는 얘기다.
임진왜란으로 전국이 초토화된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조선 조정에서는 다양한 해결책을 강구했다. 특히 부산은 왜구 침입시 전초기지로서 적의 진로를 차단하고 시간을 지연시킬 필요가 있었다. 조선 숙종 때 이르러 전국적으로 일제히 산성을 축성하기 시작했고, 금정산성도 그 일환으로 기존 산성을 보완, 국내에서 가장 긴 18㎞로 축성한 것이다. 그때가 숙종 29년인 1703년이었다. 산성 축성 시기와 마을 형성 시기가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금정산성 안에 둘러싸진 마을은 기본적으로 농사를 지을 경작지가 절대 부족했다. 지금은 음식점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조선조에는 주점이 생길 상황도 아니었다. 자연히 돈 될 만한 것을 내다 팔고 필요한 물건을 사와야 했다. 그게 누룩이었고, 그 누룩으로 만든 술이 산성막걸리였다. 누룩은 산성마을의 특산물이었으며, 산성의 누룩 제조가 동래와 부산의 쌀값을 좌우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마을로 통하는 길은 두 가닥. 하나는 지금의 금강공원으로 올라가 산성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편인 낙동강 인근 북구 화명동에서 올라가는 길이다. 길은 두 가닥이지만 포장도로로 하나로 연결돼 있다. 이 길이 막히면 산성마을 사람들은 산에 갇히게 된다. 부산에는 눈이 오는 날이 거의 없지만 혹시 눈발이 날리면 마을사람들이 즉시 나와 도로 청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금정산성 마을사람들의 애환을 생각하며 누룩길을 따라 올라갔다. 온천장 인근 금강공원 식물원 입구에서 출발했다. 금정산지킴이 단장인 문학박사 허탁씨가 귀한 시간을 내어 기꺼이 동행했다. 문학과 부산 역사에 관한 책도 여러 권 낸 박학다식한 이다.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소나무 군락지가 시작됐다. 금강식물원 위로 해서 금정산성까지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이 금강식물원의 소나무 군락지에서 국내 처음으로 재선충이 발견됐다. 부산의 일부 구(區)는 ‘소나무 청정구역’으로 재선충을 완전 퇴치했다고 선포하기는 했지만 최초 발생 지점인 이곳은 현재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무발생지역’이다.
조선시대 산삼이 많이 난 삼밭골 지나
재선충 주사 마지막 작업을 2007년 2월 28일에 했다고 안내하고 있다. 소나무 재선충은 금강식물원이 일본에서 들여온 나무에 붙어 와 남한 전역에 퍼졌다고 한다. 허 박사는 “사람이 소나무를 한 번 살렸으니, 소나무가 사람을 살릴 차례”라며 “그 방법으로 이 군락지를 치유의 숲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나무숲길은 계속된다. 조그만 계곡이 나왔다. 계곡 위로 무지개다리를 조성했다. 요즘은 다리도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지 않고 다양한 모양으로 만든다. 무지개 모양을 본떠 아기자기하게 만든 예쁜 다리다.
왼쪽으로는 무위사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곧장 올라갔다. 오른쪽으로는 산성도로가 꼬불꼬불 놓여 있다. 그 길로 승용차와 버스가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인간과 자연과 문명 이기(利器)의 ‘어색한 공존’이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개발과 파괴를 일삼는 인간에게 자연은 말없이 모든 것을 내주지만 그 피해는 결국 인간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자연의 법칙이다. 장기적으로는 이 도로를 자연친화 등산로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솔숲 사이로 올라갔다. 정말 이제 겨우 불치병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재선충에서 벗어난 소나무도 껍질 색깔이 그리 곱지는 않다. 병색이 남아 있는 느낌이다. 재선충 예방주사 자국도 곳곳에 뚫어져 있다.
조금 전에는 무지개다리였는데, 지금은 출렁다리가 나왔다. 제법 길다. 중간에 서서 흔드니 정말 출렁거렸다. 밑으로는 삼밭골에서 흘러나온 약수와 여기저기서 나온 물이 합류해 흐르고 있다.
삼밭골은 지금은 약수로 유명하지만 과거 한때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산삼이 너무 많이 나서 산삼골짜기로 불렸다고 한다. 약수로 오르내리는 사람이 많은데 산삼이 남아 있을 턱이 없다. 삼밭골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부산시에서 장뇌삼 씨를 여기저기 숱하게 뿌렸다고 동행한 허 박사가 전했다. 올 봄에 새순이 돋아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도 쉽게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 지나간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이제 서서히 고도가 높아졌다. 지도상 등고선도 조금씩 좁아졌다. 60세가 넘은 허 박사께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 산성마을의 특산품인 산성막걸리. / 산성고개에서 금강공원 가는 길은 소나무숲길이다. 이곳에서 소나무
재선충이 처음 발견됐다. / 문화해설사 허탁 박사가 서어나무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산성고개로 단절된 산성 곧 육교식 연결
불과 1㎞도 채 못 가서 널찍한 공간에 평평한 바윗돌이 몇 개 놓인 고별대가 있었다. 금정산성과 금강공원 출발지의 중간 지점이라고 했다. 오르는 사람과 내리는 사람이 여기서 서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는 곳이란다. 주말엔 막걸리도 판다고 한다. 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다시 출발이다. 주변은 아직도 솔숲이다. 이 길은 바로 옆으로 도로가 있어 등산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간혹 나이 든 아주머니들만 보일 뿐이다.
남쪽 부산의 산에는 봄기운이 찾아오고 있었다. 아직 추워도 뭔가 꿈틀거리는 걸 육감과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땅 밑으로, 나무로부터, 풀로부터 느껴져 오는 봄기운의 감촉은 추위 속에서도 한결 부드러웠다.
금정산 누룩길 가이드 숙박·음식점 많은 온천장을 기점으로 하는 게 편리
승용차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로 가다 노포IC에서 나오면 범어사까지 불과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범어사 경내에는 대형 주차장이 있다. 입장료는 2008년부터 안 받고 있다. 범어사까지 가는 버스는 지하철 범어사역에서 20m 거리에 있는 버스 종점에서 타면 된다. 80번 버스가 범어사까지 직행하며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버스 주차장에서 범어사까지 택시비는 4,000원 정도.
KTX로 하차했을 경우에도 부산역에서 지하철로 온천장이나 범어사까지 가는 게 훨씬 편리하다. 서울에서 사용하는 지하철 티머니는 부산에서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금정산 누룩길로 가기 위해서는 온천장을 기점으로 하는 게 좋다. 숙박시설과 온천, 음식점, 주차장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온천장 호텔이나 모텔은 대부분 대중사우나와 같이 영업하기 때문에 숙박자에 한해 공짜로 사우나를 즐길 수 있다.
승용차로 노포IC에서 20여 분 소요된다. 지하철로는 온천장역에서 내리면 바로 건너편 주차장에 203번 버스가 15분 간격으로 산성마을까지 가며 시간은 20분 가량 소요된다. 요금은 1,500원. 지하철 온천장역에서 출발기점이 되는 금강공원 식물원 입구까지는 기본요금 조금 더 나오는 정도.
금샘까지 가는 범어사 둘레길, 산성과 금정산 두루 볼 수 있어
금정산이란 이름이 유래한 범천과 금샘, 금어와 관련한 또 다른 일화는 범어사 창건 설화다. 범천의 범(梵)과 금어의 어(魚)를 합쳐 범어사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는 천상계와 지상계를 아우르는 절이라는 의미와 통한다.
범어사는 678년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 중 하나로 창건했다. 무려 1500년 전이다.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로 꼽힌다.
범어사를 중앙에 두고 왼쪽 너덜겅에서 고당봉 밑 금샘을 거쳐 타원형으로 도는 범어사 둘레길은 금정산과 범어사를 두루 살펴보며 걸을 수 있는 좋은 길이다. 먼저 범어사를 둘러본 후 왼쪽으로 나가면 서어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표피가 사람의 근육질과 비슷하게 생긴 서어나무는 남부지방에서 많이 자라는 수종이다. 바로 옆에는 너덜겅이 있다. 금샘까지 계곡을 이루고 있는 너덜겅도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지대로서 천연기념물로 신청할 예정이다.
이어 금정8경에 해당하는 의상대를 거친다. 누가 새겼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암벽에 의상대라는 글자가 선명히 드러나 있다. 조선시대에 새긴 글씨로 추정하고 있다. 의상대사가 앉아 수도했다는 바위인 의상대에서는 저 멀리 광안대교와 회동수원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뒤로는 정상 고당봉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조금 위로 올라가면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원효암과 동편 삼층석탑, 서편 삼층석탑,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 등을 볼 수 있다.
능선으로 올라서면 길게 늘어선 산성과 그 중앙의 북문이 눈에 확 들어온다. 북문 안으로 들어서 오른쪽으로는 드넓은 습지에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맞은편에는 금정산장이 있다. 잠을 잘 수는 없지만 간단히 요기할 간식을 이곳에서 판매한다.
정상으로 향하다가 금샘 방향으로 가는 샛길로 빠져 금샘에 도착한다. 신화와 전설이 있는 그 금샘이다. 금샘 바로 위로는 고당봉으로 올라가는 철제사다리가 보인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보다 훨씬 넓고 편한 임도다. 길 따라 터벅터벅 내려오면 끝 지점이 범어사다
산성고개에 다다랐다. 고개를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늘어선 금정산성은 그 옛날의 역사를 말하는 듯했다. 등산객들은 무심코 지나치지만 조금만 관심 있게 보면 그 산성이 그냥 산성이 아니다. 임진왜란의 역사를 말하고, 축성의 역사를 말하고, 멀리는 삼국의 역사까지 말하고 있는 산성이다. 산성고개로 통하는 아스팔트로 인해 산성이 끊어져 있다. 허 박사는 올 봄에 육교식으로 산성을 연결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위(북)쪽으로 1㎞쯤 가면 동문이고, 아래(남)쪽으로는 남문이 있다. 이젠 등산로는 없고 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산성마을로 진입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산성마을로 가는 두 갈래 중 하나가 바로 이 길이다. 도로를 따라 내려갈 수밖에 없다.
30분쯤 걸어가니 산성 고개마을이 나왔다. 산성막걸리와 누룩의 본고장이다. 임진왜란으로 생긴 마을이지만 산속에 있어 그런지 오히려 평화로운 느낌을 풍긴다. 곳곳에 음식점이라 조금은 산만한 분위기이지만.
산성마을은 풍수적으로 옥녀금반형으로 옥녀가 소반을 받쳐 든 형상이다. 마을은 옥녀가 벌린 다리 사이에 자리하기 때문에 음기가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생활력이 강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잘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마을의 주 생계수단인 음식점업 역시 여성들의 노동력을 많은 요구하는 일이다. 실제로 산성마을의 인구도 20대를 제외하고는 전 세대에서 여성의 수가 훨씬 많다.
그 역사의 마을을 뒤로하고 다시 하산이다. 산 위에서 다시 산성마을을 쳐다보니 산 능선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금정산은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말하려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그것을 정리하고 기록해서 금정산의 본모습을 후대에게 전달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금정산 고당봉은 일출이 가장 빠른 산
한국의 산에서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산은?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 전부 틀렸다. 부산의 금정산 최고 봉인 고당봉(801m)이다. 섬과 곶까지 포함하면 금정산이 조금 뒤로 밀리지만 육지부의 산만으로 본다면 전국에서 일출을 가장 빨리 볼 수 있다.
새천년을 맞은 지난 2000년 한국천문연구원이 한반도의 주요 산 일출시각을 체크했다. 경주 토함산이 7시27분13초, 지리산 천왕봉 7시29분20초, 태백산 7시29분54초, 설악산 대청봉 7시34분4초였고, 금정산 고당봉은 7시26분53초였다. 지리산 천왕봉보다도 2분20초 가량 빨랐다.
2008년 한국천문연구원에서 해발 0m를 기준으로 주요 지역의 새해 일출시각을 발표했다. 독도가 7시26분20초로 가장 빨랐고, 울산 간절곶이 7시31분18초로 두 번째를 기록했다. 부산 해운대가 7시31분38초, 포항 장기곶이 7시32분22초, 성산 일출봉이 7시36분09초, 강릉 정동진이 7시38분53초다. 천문연구원은 “발표된 자료는 각 지역의 해발 0m를 기준으로 한 계산값이며, 인근의 산 등 높은 곳에 올라갈 경우, 일출을 더 빨리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산 중에는 금정산, 섬은 독도, 곶은 울산 간절곶에서 해돋이를 가장 빨리 볼 수 있다.
임진왜란 직후 축성한 산성으로 마을 생겨… 누룩 팔아 생활 전국서 일출 가장 빠른 산…소나무 재선충 첫 발생지도 거쳐
금정산은 실제로 많은 등산객이 찾는데도 평가를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는 산에 속한다. 그 역사와 유물이 어느 산 못지않은데도 말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금정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금정산 바위샘(金井)은 동래현 서북쪽에 있다. 산마루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이며, 높이는 7척쯤 된다. 물이 항상 가득 차 있어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빛은 황금색이며, 그 아래에 범어사가 있다. 세상에 전해오기를 한 마리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범천·梵天)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 하여 금정이라는 산 이름을 지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도 범천을 그냥 천(天)으로만 바꾼 것 외에는 똑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 1 의상대를 지나 원효암을 향해 오르고 있다.
2 원효대사가 수도한 곳으로 전해지는 원효암 법당 전경. 건물이 너무 오래돼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았
으나 아직 수리를 하지 않고 있다. 원효암 뒤로 보이는 바위가 범어3기 중 하나인 ‘원효석대’.
3 의상대사가 수도한 바위로 유명한 금정산 의상대 위에서 저 멀리 회동저수지와 광안대교가 희미하게 보
인다. 희미한 안개 낀 모습이 금정8경 중 하나인 ‘의상망해’를 연상케 한다.
하늘과 땅의 신화 간직한 산
범천은 우주 삼라만상과 영생의 원리를 의미하고, 물은 창조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범천에서 내린 금어는 무엇을 뜻하는가? 금샘바위를 가만히 바라보면 영락없이 거대한 남근석이다. 바위가 워낙 커서 옆에서는 잘 모르지만 멀리서는 확연히 파악된다.
금샘바위(금정·金井) 끝에 있는 금샘, 그리고 거기서 노는 금어, 이 모두 상관관계를 갖는다. 즉 하늘(범천)에서 인간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금샘(물)을 만들었다는 뜻이며, 거기에 노는 금어는 생명 잉태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주와 지상계가 완벽하게 소통하는 통로의 상징인 금샘바위는 물을 가득 담고 있는 생명력의 근원이고, 천상의 생명인 금어가 지상에서 번식·증강하는 생명의 자리로 매김한다는 뜻이다. 그 금정샘은 금정산 최고 봉인 고당봉 바로 밑에 있다. 따라서 금정산은 역사의 산이고, 생명의 산이고, 신화의 산이다.
신화의 역사를 간직한 금정산에도 원래 길이 있었다. 그 역사가 언제부터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주변에서 가야 토기까지 나오는 걸 보면 기원전부터 사람들이 생활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문건은 찾을 수 없다. 현재 기록으로는 임진왜란 직후 금정산성(사적 제215호)과 관련된 마을이 생성되고 본격적인 길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금정산 길은 임진왜란과 맥을 같이한다. 물론 지금 샛길을 제외하고 부산시에서 정비하는 금정산 등산로만 27개나 되지만 등산로 개념이 아닌 ‘생활의 길’이자 ‘삶의 길’은 16세기 전후부터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의 문인 루쉰(魯迅)은 그의 소설 <고향>에서 ‘길’을 매우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길에 대한 압축적인 설명이다.
금정산길도 마찬가지다. 임진왜란 직후 고대로부터 있던 산성에 금정산성을 보강, 축성(1703년)했고, 이후 산성마을이 커지면서 이전에 한두 사람이 다니던 길이 ‘삶의 길’로 확대됐다.
산 안에 분지의 형태로 마을이 형성된 곳은 거의 없다. 남한산성 안에 몇 가구가 살고 있긴 하지만 금정산성과는 규모면에서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금정산성 안 산성마을엔 무려 440여 가구가 살고 있다.
▲ 1 원효암 올라가는 길은 탱자나무 울타리와 대나무·소나무가 가로수로 늘어서 마치 호젓한 숲속을 걷는 느
낌을 준다.
2 금샘바위 가는 길은 너덜겅을 지나야 한다.
3 금정산 고당봉을 뒤로하고 범어사로 하산하고 있다.
4 금샘바위에서 바라본 금정산 최고 봉인 고당봉.
5 금정산 신화를 간직하고 있는 금샘바위. 남근바위 같이 생긴 끝 부분에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금샘이 있
다.
산성마을 이름은 전부 국방과 관련
금정산성 안에는 죽전, 중리, 공해라는 3개 자연마을이 금정산성에 둘러싸여 있다. 이 3개 마을은 모두 국방과 관련이 있다. 죽전(竹田)마을은 화살을 만드는 대나무가 많이 생산됐고, 중리(中里)마을은 중성문이 있었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 공해마을의 공해(公 )는 관청을 뜻하며, 산성 내의 좌기청·군기고·화약고·내동헌·별전청 등의 관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산성마을의 정확한 유래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그 시초는 300여 년 전쯤 조선시대 군용물자 저장소로 사용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됐다고 구전된다. 마을 원주민인 이춘지(81)옹은 “토박이로 12대째 산성마을에 살고 있으며, 가장 오래됐다”고 말했다. 12대째면 대략 360년 이상 된다는 얘기다.
임진왜란으로 전국이 초토화된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조선 조정에서는 다양한 해결책을 강구했다. 특히 부산은 왜구 침입시 전초기지로서 적의 진로를 차단하고 시간을 지연시킬 필요가 있었다. 조선 숙종 때 이르러 전국적으로 일제히 산성을 축성하기 시작했고, 금정산성도 그 일환으로 기존 산성을 보완, 국내에서 가장 긴 18㎞로 축성한 것이다. 그때가 숙종 29년인 1703년이었다. 산성 축성 시기와 마을 형성 시기가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금정산성 안에 둘러싸진 마을은 기본적으로 농사를 지을 경작지가 절대 부족했다. 지금은 음식점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조선조에는 주점이 생길 상황도 아니었다. 자연히 돈 될 만한 것을 내다 팔고 필요한 물건을 사와야 했다. 그게 누룩이었고, 그 누룩으로 만든 술이 산성막걸리였다. 누룩은 산성마을의 특산물이었으며, 산성의 누룩 제조가 동래와 부산의 쌀값을 좌우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마을로 통하는 길은 두 가닥. 하나는 지금의 금강공원으로 올라가 산성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편인 낙동강 인근 북구 화명동에서 올라가는 길이다. 길은 두 가닥이지만 포장도로로 하나로 연결돼 있다. 이 길이 막히면 산성마을 사람들은 산에 갇히게 된다. 부산에는 눈이 오는 날이 거의 없지만 혹시 눈발이 날리면 마을사람들이 즉시 나와 도로 청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금정산성 마을사람들의 애환을 생각하며 누룩길을 따라 올라갔다. 온천장 인근 금강공원 식물원 입구에서 출발했다. 금정산지킴이 단장인 문학박사 허탁씨가 귀한 시간을 내어 기꺼이 동행했다. 문학과 부산 역사에 관한 책도 여러 권 낸 박학다식한 이다.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소나무 군락지가 시작됐다. 금강식물원 위로 해서 금정산성까지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이 금강식물원의 소나무 군락지에서 국내 처음으로 재선충이 발견됐다. 부산의 일부 구(區)는 ‘소나무 청정구역’으로 재선충을 완전 퇴치했다고 선포하기는 했지만 최초 발생 지점인 이곳은 현재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무발생지역’이다.
조선시대 산삼이 많이 난 삼밭골 지나
재선충 주사 마지막 작업을 2007년 2월 28일에 했다고 안내하고 있다. 소나무 재선충은 금강식물원이 일본에서 들여온 나무에 붙어 와 남한 전역에 퍼졌다고 한다. 허 박사는 “사람이 소나무를 한 번 살렸으니, 소나무가 사람을 살릴 차례”라며 “그 방법으로 이 군락지를 치유의 숲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나무숲길은 계속된다. 조그만 계곡이 나왔다. 계곡 위로 무지개다리를 조성했다. 요즘은 다리도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지 않고 다양한 모양으로 만든다. 무지개 모양을 본떠 아기자기하게 만든 예쁜 다리다.
왼쪽으로는 무위사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곧장 올라갔다. 오른쪽으로는 산성도로가 꼬불꼬불 놓여 있다. 그 길로 승용차와 버스가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인간과 자연과 문명 이기(利器)의 ‘어색한 공존’이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개발과 파괴를 일삼는 인간에게 자연은 말없이 모든 것을 내주지만 그 피해는 결국 인간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자연의 법칙이다. 장기적으로는 이 도로를 자연친화 등산로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솔숲 사이로 올라갔다. 정말 이제 겨우 불치병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재선충에서 벗어난 소나무도 껍질 색깔이 그리 곱지는 않다. 병색이 남아 있는 느낌이다. 재선충 예방주사 자국도 곳곳에 뚫어져 있다.
조금 전에는 무지개다리였는데, 지금은 출렁다리가 나왔다. 제법 길다. 중간에 서서 흔드니 정말 출렁거렸다. 밑으로는 삼밭골에서 흘러나온 약수와 여기저기서 나온 물이 합류해 흐르고 있다.
삼밭골은 지금은 약수로 유명하지만 과거 한때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산삼이 너무 많이 나서 산삼골짜기로 불렸다고 한다. 약수로 오르내리는 사람이 많은데 산삼이 남아 있을 턱이 없다. 삼밭골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부산시에서 장뇌삼 씨를 여기저기 숱하게 뿌렸다고 동행한 허 박사가 전했다. 올 봄에 새순이 돋아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도 쉽게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 지나간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이제 서서히 고도가 높아졌다. 지도상 등고선도 조금씩 좁아졌다. 60세가 넘은 허 박사께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 산성마을의 특산품인 산성막걸리. / 산성고개에서 금강공원 가는 길은 소나무숲길이다. 이곳에서 소나무
재선충이 처음 발견됐다. / 문화해설사 허탁 박사가 서어나무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산성고개로 단절된 산성 곧 육교식 연결
불과 1㎞도 채 못 가서 널찍한 공간에 평평한 바윗돌이 몇 개 놓인 고별대가 있었다. 금정산성과 금강공원 출발지의 중간 지점이라고 했다. 오르는 사람과 내리는 사람이 여기서 서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는 곳이란다. 주말엔 막걸리도 판다고 한다. 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다시 출발이다. 주변은 아직도 솔숲이다. 이 길은 바로 옆으로 도로가 있어 등산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간혹 나이 든 아주머니들만 보일 뿐이다.
남쪽 부산의 산에는 봄기운이 찾아오고 있었다. 아직 추워도 뭔가 꿈틀거리는 걸 육감과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땅 밑으로, 나무로부터, 풀로부터 느껴져 오는 봄기운의 감촉은 추위 속에서도 한결 부드러웠다.
금정산 누룩길 가이드 숙박·음식점 많은 온천장을 기점으로 하는 게 편리
승용차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로 가다 노포IC에서 나오면 범어사까지 불과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범어사 경내에는 대형 주차장이 있다. 입장료는 2008년부터 안 받고 있다. 범어사까지 가는 버스는 지하철 범어사역에서 20m 거리에 있는 버스 종점에서 타면 된다. 80번 버스가 범어사까지 직행하며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버스 주차장에서 범어사까지 택시비는 4,000원 정도.
KTX로 하차했을 경우에도 부산역에서 지하철로 온천장이나 범어사까지 가는 게 훨씬 편리하다. 서울에서 사용하는 지하철 티머니는 부산에서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금정산 누룩길로 가기 위해서는 온천장을 기점으로 하는 게 좋다. 숙박시설과 온천, 음식점, 주차장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온천장 호텔이나 모텔은 대부분 대중사우나와 같이 영업하기 때문에 숙박자에 한해 공짜로 사우나를 즐길 수 있다.
승용차로 노포IC에서 20여 분 소요된다. 지하철로는 온천장역에서 내리면 바로 건너편 주차장에 203번 버스가 15분 간격으로 산성마을까지 가며 시간은 20분 가량 소요된다. 요금은 1,500원. 지하철 온천장역에서 출발기점이 되는 금강공원 식물원 입구까지는 기본요금 조금 더 나오는 정도.
금샘까지 가는 범어사 둘레길, 산성과 금정산 두루 볼 수 있어
금정산이란 이름이 유래한 범천과 금샘, 금어와 관련한 또 다른 일화는 범어사 창건 설화다. 범천의 범(梵)과 금어의 어(魚)를 합쳐 범어사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는 천상계와 지상계를 아우르는 절이라는 의미와 통한다.
범어사는 678년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 중 하나로 창건했다. 무려 1500년 전이다.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로 꼽힌다.
범어사를 중앙에 두고 왼쪽 너덜겅에서 고당봉 밑 금샘을 거쳐 타원형으로 도는 범어사 둘레길은 금정산과 범어사를 두루 살펴보며 걸을 수 있는 좋은 길이다. 먼저 범어사를 둘러본 후 왼쪽으로 나가면 서어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표피가 사람의 근육질과 비슷하게 생긴 서어나무는 남부지방에서 많이 자라는 수종이다. 바로 옆에는 너덜겅이 있다. 금샘까지 계곡을 이루고 있는 너덜겅도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지대로서 천연기념물로 신청할 예정이다.
이어 금정8경에 해당하는 의상대를 거친다. 누가 새겼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암벽에 의상대라는 글자가 선명히 드러나 있다. 조선시대에 새긴 글씨로 추정하고 있다. 의상대사가 앉아 수도했다는 바위인 의상대에서는 저 멀리 광안대교와 회동수원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뒤로는 정상 고당봉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조금 위로 올라가면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원효암과 동편 삼층석탑, 서편 삼층석탑,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 등을 볼 수 있다.
능선으로 올라서면 길게 늘어선 산성과 그 중앙의 북문이 눈에 확 들어온다. 북문 안으로 들어서 오른쪽으로는 드넓은 습지에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맞은편에는 금정산장이 있다. 잠을 잘 수는 없지만 간단히 요기할 간식을 이곳에서 판매한다.
정상으로 향하다가 금샘 방향으로 가는 샛길로 빠져 금샘에 도착한다. 신화와 전설이 있는 그 금샘이다. 금샘 바로 위로는 고당봉으로 올라가는 철제사다리가 보인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보다 훨씬 넓고 편한 임도다. 길 따라 터벅터벅 내려오면 끝 지점이 범어사다
산성고개에 다다랐다. 고개를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늘어선 금정산성은 그 옛날의 역사를 말하는 듯했다. 등산객들은 무심코 지나치지만 조금만 관심 있게 보면 그 산성이 그냥 산성이 아니다. 임진왜란의 역사를 말하고, 축성의 역사를 말하고, 멀리는 삼국의 역사까지 말하고 있는 산성이다. 산성고개로 통하는 아스팔트로 인해 산성이 끊어져 있다. 허 박사는 올 봄에 육교식으로 산성을 연결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위(북)쪽으로 1㎞쯤 가면 동문이고, 아래(남)쪽으로는 남문이 있다. 이젠 등산로는 없고 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산성마을로 진입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산성마을로 가는 두 갈래 중 하나가 바로 이 길이다. 도로를 따라 내려갈 수밖에 없다.
30분쯤 걸어가니 산성 고개마을이 나왔다. 산성막걸리와 누룩의 본고장이다. 임진왜란으로 생긴 마을이지만 산속에 있어 그런지 오히려 평화로운 느낌을 풍긴다. 곳곳에 음식점이라 조금은 산만한 분위기이지만.
산성마을은 풍수적으로 옥녀금반형으로 옥녀가 소반을 받쳐 든 형상이다. 마을은 옥녀가 벌린 다리 사이에 자리하기 때문에 음기가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생활력이 강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잘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마을의 주 생계수단인 음식점업 역시 여성들의 노동력을 많은 요구하는 일이다. 실제로 산성마을의 인구도 20대를 제외하고는 전 세대에서 여성의 수가 훨씬 많다.
그 역사의 마을을 뒤로하고 다시 하산이다. 산 위에서 다시 산성마을을 쳐다보니 산 능선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금정산은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말하려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그것을 정리하고 기록해서 금정산의 본모습을 후대에게 전달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금정산 고당봉은 일출이 가장 빠른 산
한국의 산에서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산은?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 전부 틀렸다. 부산의 금정산 최고 봉인 고당봉(801m)이다. 섬과 곶까지 포함하면 금정산이 조금 뒤로 밀리지만 육지부의 산만으로 본다면 전국에서 일출을 가장 빨리 볼 수 있다.
새천년을 맞은 지난 2000년 한국천문연구원이 한반도의 주요 산 일출시각을 체크했다. 경주 토함산이 7시27분13초, 지리산 천왕봉 7시29분20초, 태백산 7시29분54초, 설악산 대청봉 7시34분4초였고, 금정산 고당봉은 7시26분53초였다. 지리산 천왕봉보다도 2분20초 가량 빨랐다.
2008년 한국천문연구원에서 해발 0m를 기준으로 주요 지역의 새해 일출시각을 발표했다. 독도가 7시26분20초로 가장 빨랐고, 울산 간절곶이 7시31분18초로 두 번째를 기록했다. 부산 해운대가 7시31분38초, 포항 장기곶이 7시32분22초, 성산 일출봉이 7시36분09초, 강릉 정동진이 7시38분53초다. 천문연구원은 “발표된 자료는 각 지역의 해발 0m를 기준으로 한 계산값이며, 인근의 산 등 높은 곳에 올라갈 경우, 일출을 더 빨리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산 중에는 금정산, 섬은 독도, 곶은 울산 간절곶에서 해돋이를 가장 빨리 볼 수 있다.
첫댓글 다음 등산시 참고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