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드코어(hardcore) 맛 기행은 말 뜻 그대로 보통 미식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는 다르다. 흔한 방송과 신문의 맛 기행과는 달라야 한다. 하드코어의 핵심은 현지의 입맛에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관광객들이 인터넷에 쏟아놓은 리뷰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현지 재료로 만든 음식을, 주로 지역민들의 평가에 의거해 맛 봐야 한다. 그래야 그 음식의 풍미와 그 속에 담긴 전통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흙 속의 진주를 찾는 여정인 만큼 성공 확률도 높지 않다. 풍문만 듣고 길을 나섰다가 허탕만 칠 때도 허다하다.
게다가 하드코어 맛 기행은 심신이 고달파야 제 맛이다. 기자네, 블로거입네 떠벌리면서 적당히 대접받는 음식이 모든 사람과 같이 나누는 맛일 리 없다. 어렵게 찾아가서 제 돈 다 주고 남들 하고 같이 먹는 것이 하드코어 맛 기행의 정신이다. 가끔씩 비위가 상하기도 하고, 모진 대접을 받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사리 찾아 먹는 음식이야말로 조상 대대로 살아온 방편이자 우리의 한이 서린 문화다.
후대에 고이 물려줄 온전히 우리만의 하드코어다.
근래 들어 몇 번이고 다짐하곤 했다. 전주를 기어코 한 번은 가고 말리라. 당장은 흠뻑 빠진 막걸리 때문이다. 전국의 명주를 다 맛 보고도 양이 차지 않는 게 요즘 심정이다. 그나마 전주 막걸리를 양껏 마시고 나면 좀 해갈은 되겠다. 이렇게 생각했다. 물론 일전에 목포, 광주를 거쳐 전주를 스쳐 지나긴 했다. 그러나 일정 탓에 전통의 삼천동 막걸리 골목은 못 들르고 말았다. 대신 서신동 막걸리 집에서 입만 다시다 말았다.
몇 번의 결심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짬이 나질 않았다. 전처럼 금요일 일이 일찍 마무리 되지 않아서였다. 파김치가 다 돼서 밤 늦게 들어오고 나면 주말 일찌감치 집을 나서는 일은 아예 불가능했다. 주말 저녁이 다 돼서야 집을 나선 후 휴일 늦게까지 이어질 맛 기행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다음 주에 또 시작될 전쟁 같은 한 주를 생각하면 늘 그랬다. 그래서 전주행은 꿈만 꿨지,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토요일.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평소 내 바람을 귓전으로 들어 아는 동료 하나가 새벽잠을 깨운 것이다. 몇 사람을 모아 전주로 출발하자는 제안이었다. 빨리 움직이면 콩나물 국밥에 전주식 비빔밥, 한정식 한상은 물론이고 전주의 명물 막걸리 골목과 가맥까지 5군데를 다 경험할 수 있다는 유혹이 환상적이었다.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랴 싶어 전주행을 결심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차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첫 행선지는 콩나물 국밥. 그것도 제대로 하드코어 전주식 콩나물 국밥. 새벽녘에 출발한다고 했지만, 주말 경부고속도로는 어느새 콩나물 시루였다. 한국 사람들은 노는 것도 전투적이다. 그 곳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일하는 것만큼 더 열심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꼭 5시간 걸려 첫 행선지에 도착했다. 전주 남부시장 내의 하드코어 콩나물 국밥집 현대옥(전화번호가 없다. 사실이다). 상가 바깥쪽으로 시래기 국밥도 겸하는 근대옥이라는 곳도 있지만 현대옥이 전주식 콩나물 국밥 본연의 맛에 가깝다. 2대째 이어지는 이 곳은, 전문가를 동원해 전통의 맛을 일정한 레시피로 만들어 두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현대라는 말이 전통이고, 근대는 개량의 의미인가 보다. 상가에서 이 집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상가 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줄을 죽 늘어선 곳이 나타난다. 그 곳이 젓갈 골목 옆 현대옥이다.
줄 선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슴에 김 한 봉지씩을 사들고 있었다. 궁금해서 물었더니 국밥에 김을 얹어 먹는 사람들은 김을 사들고 가야 한단다. 이 집은 여느 콩나물 국밥집과는 많이 다르다. 파며 마늘 같은 갖은 양념을 즉석에서 다지고 빻아 넣는다. 자신의 입맛에 맞춰 오징어나 김을 추가할 수 있다.
아예 조금 맵게, 덜 맵게 식으로 주문해도 다 받아준다. 초란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먹는 것도 이색적이다. 일본 철판요리점처럼 양념 다지는 커다란 도마 앞에 20석 가량이 죽 둘러 앉아 먹는 것도 특색이다. 멸치 국물이 시원하고, 청량 고추가 다소 매운 편이다. 일과 술로 지친 심신을 해장하는 데는 그만이다. 그러나 즉석 국밥집의 다소 비위생적인 환경이나 매운 맛이 걸린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일행 중 한 명은 서너 숫갈 이상을 뜨지 못했다.
아점을 먹고서야 숙소로 향했다. 전주에서는 한옥마을을 사전에 예약하는 게 이상적이다. 예기치 않았던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한옥마을 앞 편의 코아리베라호텔을 정했다. 아침 일찍 한옥마을을 산책하는 즐거움 외에는 딱히 매력을 찾기 힘든 숙소였다. 워낙 일행들이 지쳐 있던 탓에 몇 곳의 비빔밥 명소를 포기하는 대신 낮잠을 청해야 했다. 대신 저녁은 거나한 한정식 한 상. 한정식집만큼 그 맛과 형식에 대해 논란이 많은 곳도 없으리라. 현지인과 관광객 사이의 의견차도 하늘과 땅 차이다. 개인적으로는 절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주 한정식집도 두 곳 정도를 현지 지인으로부터 추천받았다. 그 곳 가운데 한 곳을 찾았지만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인지 저녁 시간인데도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게다가 메뉴 역시 생선 위주의 한정식이어서, 전통의 전주 한정식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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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대처하는 나만의 노하우가 하나 있다. 현지에서 직접, 그것도 가능하면 빨리 하드코어 맛집을 찾는 방법은 인근의 최대 관공서를 찾는 것이다. 그 부근에서 맛집을 추천받으면 된다. 돈과 사람이 몰리는 관공서답게 꼭 한두 개 실망시키지 않을 만한 맛집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 일행도 이 방법을 쓰기로 했다. 시청 인근에서 주민들에게 소개받은
한정식 집은 궁전(063-284-6760). 퓨전 메뉴 한두 가지가 걸리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집이었다. 게다가 4인에 어울릴 한 상이 9만원. 서울 지역의 한정식 집과 비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남도 한정식 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홍어탕이다. 어떤 집은 삭힌 홍어 내장으로 끓여내는 홍어애탕을 내놓기도 한다. 이 집의 홍어탕은 비교적 큼큼한 맛이 덜한 편이다. 대신 가슴을 뻥 뚫어주는 맛은 여전했다. 이러다가는 조만간에 홍어탕 애호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퍼온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