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최고는 아니잖아
“샌님! 선거운동 열심히 하고 있나?”
뒤를 돌아보니 나와 마찬가지로 괴정초등학교 학생회장에 출마한 김명진이었다. 얼마나 바지런히 쫓아다녔으면 글쎄 이마에 드리워진 머리카락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을까.
“…….”
“니네들, 형규 많이 찍어주라.”
명진이가 뒤따르던 한 무리의 아이들을 돌아보며 이죽거렸다. 그러자 아이들 또한 비꼬는 소리를 한마디씩 뱉어냈다.
“김형규, 아마 열 표 얻으면 잘 얻을끼다.”
“열 표는 뭔 열 표? 기껏해야 두 표겠지. 한 표는 짝꿍 표일게고…, 또 나머지 한 표는 자기가 자기를 찍는 표겠지.”
“어이, 샌님. 망신 당하기 싫음, 미리 후보사퇴하던가.”
나는 태연함을 가장하여 명진이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그렇지만 속에선 부글부글 화가 끓어올랐다. 학교 안팎으로 떠들썩하기론 초등학교 학생회장선거인지, 아님 지역 국회의원선거인지 도통 구분이 되질 않았다.
명진이는 명진이대로 오십 명이 넘는 선거운동참모들을 이끌고 다니며 떠들썩하게 선거운동에 열을 올렸지만, 명진이 엄마는 명진이 엄마대로 한 떼의 엄마들을 이끌고 수시로 학교를 들락거렸다.
인근지역의 불고깃집들은 명진이 엄마가 몽땅 전세 내어 연일 불고기 파티를 벌이고 있더란 소문도 무성했다.
나는 1년 전 5월경, 괴정2동에 위치한 괴정 스타클래스아파트로 이사를 오게되면서 인근에 위치한 괴정초등학교 5학년3반에 전학을 왔다. 그때도 우리 반의 반장은 명진이었고, 열흘쯤 전 6학년 수업 첫날 실시한 반장선거에서 절대다수의 득표에 의해 반장으로 뽑힌 것도 명진이었다.
명진이는 내가 보더라도 적당한 키에 적당한 몸집에 얼굴은 뽀얗고 오동통하니 귀공자처럼 잘생겼다. 뿐만아니라 명진이 아빠는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이고 엄마는 학교 학부모회 회장이다. 따라서 선생님들뿐만아니라 교장선생님마저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명진이를 편애했다.
교내백일장이나 미술대회 등의 대상은 늘 명진이가 독차지했는데, 실력이라기보다는 돈을 주고 샀을 것이란 소문이 떠돌았다. 명진이는 내로라하는 실력의 과외선생들로부터 특별히 비싼 개인교습을 받고 있음에도 늘 학급 중간석차를 밑돌 정도로 학업성적은 형편없었는데, 석차나 성적만큼은 돈으로서도 쉽게 조작할 수가 없었나 보았다.
명진이는 시내 요소요소에 빌딩이 여러 채 있고, 아파트도 몇 십 채인가 갖고 있는 몇 백억 대의 부잣집 외동아들답게 학교를 등교할 때나 하교할 때 보면 항상 새까만 외제승용차를 이용했다. 그 승용차는 가격이 2억 원을 훌쩍 넘는 비엠떠블유BMW라 했고, 큰 키에다 우람한 덩치를 지닌 운전기사가 보디가드 역할까지 맡는 듯했다.
그렇듯 누구에게나 안하무인일 수밖에 없는 명진이가 다른 애들과는 달리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전학 온 이래 학급 1등은 물론 전교수석을 단 한 차례도 빼앗기지 않고 늘 지켜온 때문일 것이다.
머잖은 3월13일에 치러질 학생회장선거에는 모두 5명이 후보로 등록했다. 1반에서는 김은실, 2반에서는 정칠득, 3반에서는 명진이랑 내가 동시에 후보등록을 했다. 그리고 4반에선 이혜경이 후보등록을 했다. 나와 명진이와 칠득이는 남학생이고, 은실이와 혜경이는 여학생이었다. 그리고 회장 후보의 파트너 겸 부회장 후보로 등록한 아이도 네댓 명은 되었다.
처음엔 같은 3반에서 한꺼번에 두 명이나 출마한다하여 명진이가 내게 출마포기를 종용했었다.
“형규야. 출마포기하면 안되것나. 대신 내가 섭섭지 않게 해줄께.”
“뭘 섭섭지 않게 해줄낀데? 돈으로 1억 줄끼가?”
“1억이 애들 이름이가? 몰라, 한 십만 원쯤은 줄 수 있다.”
“2억짜리 차를 타고다니면서 쩨쩨하게 십만 원이 뭐꼬?”
“그럼, 1억 주면 출마 포기할끼가?”
“1억? 택도 없다. 한 10억 준다면 내 생각해 볼께.”
“옹냐. 얼마든지 출마해라. 니같은 건 하나도 신경 안쓴다. 공부 쪼매 잘한다고 아무나 학생회장 하는거 아이다.”
후보등록이 마감되고 곧 추첨에 의해 기호를 배정받았다. 나는 2번이고 명진이는 4번이었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은 겨우 4일에 불과했다. 모든 상황이 이미 5학년 때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온 명진이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후보들은 쉬는 시간마다 선거참모들과 각 학년 각 반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이미지를 심기에 바빴다. 명함을 찍어 돌리기도 했고, 과자류나 학용품류를 은밀히 나눠주기도 했다. 방과 후엔 운동장에서, 또는 강당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유세를 했다.
명진이는 부잣집 아들답게 선거운동도 보다 조직적이고 보다 거창하게 진행했다. 50명은 족히 넘을 모든 선거운동참모들이 ‘기호4번 김명진’이란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을 착용했고, 한 손엔 샛노란 바탕에 ‘4’란 붉은 숫자가 선명한 대형깃발을, 또 한 손엔 북이나 트럼펫, 하모니카 등 제 각각의 악기 한 가지씩을 지니고 있었다.
명진이의 유세현장은 마치 미니콘서트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열기가 가득했다. 거기에 엄마들까지 가세하여 아이들에게 값비싼 학용품 세트를 나눠주기까지 했다. 상황이 그러하니 명진이가 나타나면 다른 후보들은 유세하다 말고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명진이는 초등학생의 신분으로서는 전혀 가당찮은 공약들을 제시했다.
“제가 학생회장이 되면, 스쿨버스 다섯 대를 도입하겠습니다. 그리고 컴퓨터실을 확장하고 신형컴퓨터 1백 대를 추가 도입하겠습니다. 하루 한 시간씩 자율학습시간을 배정하여 그 시간에 원어민 영어 스피치교육과 과학실습, 취미교실로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명진이를 비롯한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선거 전날까지 아무런 선거운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연설문을 여러 차례 수정해가며 발성연습하기만을 되풀이했다. 선거운동참모로 자원했던 친구 몇몇은 그런 나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학생회장 출마하는거 맞나?”
“후보등록까지 했는데, 출마 안하면 쓰것나.”
“근데, 와 선거운동 안하는데?”
“명진이가 저리도 설쳐쌌는데, 해봐야 티가 나것나?”
“그럼, 출마하는건 확실하네?”
“그럼, 당근이지.”
선거일 당일을 맞았다. 서른아홉 분의 선생님들을 비롯한 6백8십여 명의 학생들이 모두 강당으로 몰려들었다. 강당 안은 그 외에 2백여 명의 학부모들과 사하선거관리위원회에서 파견나온 직원들, 그리고 지역유지들로 꽉 들어찼다.
각 후보에게는 각 5분씩의 연설시간이 주어졌다. 두 번째 연설자로 단상에 오른 나는 심호흡을 하며 떨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켰다.
“학생회장 후보 기호 2번 김형규입니다.”
순간, 아무리 떠올리려해도 수백 번도 넘게 읽고 외웠을 연설문의 첫 구절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심장박동소리가 높아졌다.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어이, 샌님! 고만 내려온나.”
그때 내 귀에 명진이의 선거운동참모 안광현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전교에선 싸움을 가장 잘하여 걸핏하면 아이들을 두둘겨 패곤 했지만 명진이한테는 수족처럼 아부하며 빌빌거리는 비열한 녀석으로, 나 또한 녀석에게서 몇 차롄가 얻어터진 적도 있었다.
‘이대로 바보처럼 무너질 수는 없다.’
오기가 발동하자 가슴도 진정되었고,
연설문 전문이 머릿속에 떠올려졌다.
“저 딴에는 여러 번 뜯어고쳐가며 열심히 외웠던 연설문을 너무 긴장했던 때문인지 잠시 까먹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연습한대로 거침없이 열변을 토해냈다. 내가 생각해도 연습할 때보다 더 자연스럽게, 목소리도 더 시원스럽게 터져 나온 듯했다.
연설이 끝나자 한동안 정적을 유지했다. 그러나 하나 둘 박수소리가 터져나오더니 강당 안은 박수소리로 진동했다.
연설내용은 명진이 것과 비교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학교폭력을 없애겠다는 것과 특정 학생의 귀족화로 인한 신분차별을 없애겠다는 것, 구내식당의 현대화와 식단의 고급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후 개표결과에 의해 326표를 얻은 내가 273표를 얻은 명진이를 제치고 학생회장 당선이 확정되었다.
다음날 점심시간이었다, 식당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하는데, 명진이가 내게로 다가왔다. 풀이 잔뜩 죽어있는 모습이었다.
“너 재수 좋데? 학생회장까지 차지하다니….”
“재수는 무슨…. 어쨌든 돈이 최고는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