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우수작품상|
4월의 우수작품상 선정 결과를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수상 작품
동시 부문: 서울에 온 소나무 (한상순 작, 어린이문학 3월호)
동화 부문: 천 년 웃음 (이동렬 작, 시와동화 봄호)
•심사위원
예심위원: 송재진, 민현숙, 박선미, 손수자, 이지현, 심상우
본심위원: 조두현, 오순택, 김문홍, 소중애
시상 내용: 상패와 기념품
시상식: 2012년 정기총회 시
•심사 경위
4월 우수작품상 역시 운영 규정을 준수하였다. 이번에는 <월간문학 3월호>, <어린이와문학 2월호>, <어린이와문학 3월호>, <시와동화 봄호>, <열린아동문학 봄호>에 실린 회원 작품을 심사 대상으로 하였다. 예심을 통해 본심 추천 작품으로 동시 6편, 동화 6편이 뽑혔다. 대상 문예지의 편수에 비해 많은 작품이 본심에 올라왔다.
특징적인 것은 동화의 경우 지난 겨울호와 봄호에 분재된 작품이 있어 함께 심사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향후에도 분재된 작품은 물론 평론까지 그 영역을 넓혀나갈 것이다.
우수작품상 선정이 가능한 많은 회원들의 창작열을 돋우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많은 회원들에게 수상의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4월의 우수작품상 심사평-동시 부문
사물을 대변하는 모성애
시를 쓰면서, 또 시를 읽으면서 존경하는 선배가 자주 하시는 두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곤 한다. “독자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시의 재미란 무엇일까?” 그 대답은 ‘공감과 감동’, ‘미적 쾌감’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감동을 주고, 거기다가 미적 쾌감까지 선물하는 시를 쓰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을 모르지 않지만 늘 그런 시를 쓰고 싶고 만나고 싶다.
본선에 올라온 시인은 모두 문단에서 인정받는 분들이기에 심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외람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공감이 되는 작품들이었다. 그렇기에 대상 작품 가운데 “이 작품이 더 우수하다”는 평가를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같은 값이면 중견 시인보다는 신예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한상순 시인은 생활 속에서 만난 사물을 따스한 마음으로 어루만지거나 대변자 역할을 잘 한다. 이번 ‘서울에 온 소나무’에서도 버스전용차선에 심겨진 조선소나무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소나무가, 그것도 조선소나무가 “강원도 산골에서 올라와” 서울의 가로수가 되었다. 소나무는 버스중앙차선의 매연과 소음도 참을 수 있고 떠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도 견뎌낼 수 있지만 정말 참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씨앗 품은 솔방울”이 생명의 싹을 틔울 수 없는 현실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그 생명을 잉태한 소나무를 보며 한상순 시인은 안타까운 모성을 이끌어 낸다. 흙 한 줌 없는 아스팔트 위를 굴러다니는 솔방울을 보는 소나무의 마음은 바로 싸늘한 길바닥에 자식이 내동댕이쳐지는 것을 바라보는 엄마의 찢어질듯 아픈 마음이리라.
수상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공감과 감동’, ‘미적 쾌감’을 주는 작품을 많이 창작해 독자들에게 시 읽는 기쁨을 안겨주길 바란다.
-심사위원 : 오순택, 조두현
•4월의 우수작품상 심사평-동화 부문
연꽃 웃음으로 피어난 작품
본심 심사를 진행한 결과, 끝까지 남은 작품은 진영희의「진짜만 말해요」(월간문학 3월호)와 이동렬의「천 년 웃음」(시와 동화 2010년 겨울 - 2111년 봄) 등 두 작품이었다. 두 작품 모두 좋은 점과 옥의 티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진영희의 작품은 문체의 템포와 리듬이 사건의 진전과 인물의 심리적 추이에 박차를 가해 주고 아동발달심리에 대한 적확한 이해와 관심이 엿보였으나, 그러한 미덕이 뭉클한 감동으로까지 연결되지 않았으며 훤한 결말 또한 아쉬웠다.
이동렬의 작품은 중편 분량으로 우선 그 주제의식이 듬직한 믿음을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천년을 견디어 온 연꽃 씨앗을 화자로 한 판타지적 세계와 부뜰이와 노스님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현실이 무리 없이 잘 교직되어 전통의 아름다운 맥과 생명외의 외경심을 녹여내고 있기는 하지만, 불교적 세계관이라는 추상적 주제의 난해성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결국은 그 치열한 주제의식과 동화적 기법이라는 옥의 티가 마음을 사로잡는 견인차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심사숙고 끝에 심사위원은 이동렬씨의 ‘천 년 웃음’을 이 달의 우수 작품상으로 결정했는데 단단한 씨앗에서 연꽃이 피듯 좋은 작품은 난해해도 결국엔 사랑 받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심사위원: 김문홍, 소중애
•4월의 우수작품상-동시∣한상순
서울에 온 소나무
강원도 산골에서 올라와
버스 중앙차선 정류장에
가로수가 된
소나무,
조선 소나무는
부릉부릉,
자동차가 뿜어내는 시커먼 연기
그것쯤이야
씽씽,
내달리는 자동차 바퀴소리에
잠 설치는 밤, 그것쯤이야
가지에 새가 들지 않고
떡갈나무랑 오리나무랑
초록 그늘 만들 수 없어도
에이, 그것쯤이야
씨앗 품은 솔방울
하나
둘
셋
아스팔트 위로 또그르르 또그르르르……
아냐, 이건 참을 수 없지.
절대로!
•수상 소감
임금님 귀!
몇 년 전 서울 거리에 시내버스 중앙 차선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중앙차선 정류장에는 가로수로 소나무가 서게 되었어요. 처음엔 운치 있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이 소나무에게서 그리움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제가 어렸을 적 체험했던 그 그리움이었지요. 저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떠나 동생을 데리고 전주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초등학생인 동생의 보호자는 부모님이 아닌 저였어요. 그러다 다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가슴 속 한 구석엔 늘 친구들과 뛰어놀던 고향이 자리 잡고 있어 시도 때도 없이 향수병이 도졌지요. 그래 여기 가로수가 된 소나무가 과거의 나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저 소나무는 어디서 왔을까?’ ‘얼마나 고향이 그리울까?’ ‘공해에 잘 견딜 수 있을까?’ 등등.
그래서 출, 퇴근길에 이 소나무를 만날 때마다 말을 건네고 용기를 주고.... 그러다보니 이제 소나무도 내게 속내를 털어놓게 되었어요. 저는 이 소나무 생각을 혼자만 알면 안 될 것 같아 ‘임금님 귀!’ 한 거예요.
다행 이예요, 벌써 심사위원님들이 소나무의 말을 알아들으시고 4월의 우수작품으로 선정하셨네요.
오늘 퇴근길 버스에서 내려 소나무들에게 이 소식을 전할게요. 고향을 떠나와 가로수로 서 있는 이 소나무들!
어때요? 불끈 힘이 나겠죠?
•약력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으며 1999년 자유문학 동시부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황금펜 아동문학상, 우리나라 좋은 동시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동시집으로 <예쁜 이름표 하나><갖고싶은 비밀번호><뻥튀기는 속상해>가 있다.
•4월의 우수작품상-동화-이동렬
천 년 웃음
*긴 잠에서 깬 나
“아아, 아직도 밤인가! 밝은 아침이 오려면 멀었나?”
나는 지나가는 두더지의 발에 채여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났다. 잠은 깨어났지만 너무 오래 잠을 자서 그런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건 뭔데 걸리적거려!”
누군가가 나를 톡톡 건드리면서 투덜거렸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몸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치 흠씬 두들겨 맞은 몸 같았다.
“딱딱하지만 돌멩이는 아닌데....... 콩알처럼 동그란 이게 뭐지?”
“웬 연꽃 씨가 이 산성에 있지?”
내 귀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온순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누구세요, 제 잠을 깨운 분은?”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나는 이 산성에 사는 산개구리란다. 너는 연꽃 씨앗이 아니냐?”
“아, 맞아요! 예전에 부뜰이와 노스님이 나를 그렇게 불렀어요. 내 이름이 연꽃 씨앗인 게 맞아요!”
나는 그제야 내가 연꽃 씨앗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그리고 빗물에 흙이 파여 몸이 밖으로 반쯤 나와 있는 것도 알았다.
나는 기억을 잃었던 환자가 다시 지나간 추억을 간간이 떠올리듯 작은 소리로 대꾸했다. 그러고 나니 빛바랜 그림처럼 지나간 추억들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너는 연못 같은 물에서만 사는 연꽃의 씨앗인데 어떻게 이 높은 산성까지 왔니?”
산개구리는 놀라서 두 눈알을 도록도록 움직이며 물었다. 나를 산에서 발견해 꽤 놀란 모양이었다. 가슴까지 벌렁거렸다.
“저도 모르겠어요. 제가 어느 절의 작은 연못에 살던 거는 생각이 나는데.......”
나는 대답을 하면서도 지난날의 추억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그러자 전시장에 걸어놓은 그림처럼 지나간 날의 추억이 토막토막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장면들을 이어 봐도 이야기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개구리 아저씨는 어떻게 제가 연꽃 씨앗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셨어요?”
“그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 우리는 물에서도 살고, 땅에서도 살 수 있으니까. 그러니 자연스레 연못에도 가고 이런 산성에도 올라올 수 있지.”
“아, 그렇지요! 이제 생각이 나요. 제가 연못에 살 때 개구리 아저씨들이 연못에서 헤엄치면서 벌레를 잡아먹는 걸 봤어요. 이제 선명하게 기억이 나요.”
“그럴 거다. 너희는 딱딱해서 우리가 먹을 수가 없지. 우리가 어렸을 때는 연못의 연잎에 올라가 한참씩 쉬다가 내려오곤 했어. 연잎은 섬처럼 컸지. 우리에게는 연못 속의 작은 섬이나 마찬가지였어. 그 초록 섬은 우리들의 놀이터와 쉼터였지.”
“맞아요. 개구리 아저씨들이 제 잎에 올라와 앉아서 쉬던 기억이 살아나요.”
나는 산개구리의 말을 듣고 나니 더 많은 기억이 살아났다. 내 머릿속에는 연못에서 바라보던 절의 일주문도 지나가고, 절을 뒤덮던 산 그림자도 생각났다. 또 눈, 코, 입이 확실하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동자승 부뜰이의 얼굴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부뜰이
“부뜰아, 네 바짓부리가 그게 뭐냐?”
“노스님, 일주문 옆을 지나오다가 진구렁에 빠졌습니다.”
“절이 산중턱에 있긴 하지만 일주문이 선 곳은 뒷산의 지하수가 내비치는 곳이라 늘 진구렁이지. 장마철만 되면 건수가 터져 골치야. 어른인 나도 가끔은 짚신이 빠져서 엉망인데 일곱 살인 너야 오죽하겠냐. 그곳을 뽀송뽀송하게 할 묘안이 없을까.”
노스님은 부뜰이한테 야단치려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노스님은 진흙투성이가 된 부뜰이의 바짓가랑이를 바라보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노스님이 부뜰이만 할 때 자기는 더 개궂하게 크던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노스님,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요!”
부뜰이가 재바르게 대꾸했다. 목소리가 산 도랑물처럼 맑았다. 해맑은 눈망울은 이른 봄 고드름 끝처럼 깨끗했다. 얼굴빛이 달개비꽃을 닮았다.
“좋은 방법! 어떤 방법?”
노스님은 살아나던 추억을 덮으며 되물었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는 표정이 뚜렷했다.
“일주문 옆에다 연못을 파는 거예요. 그리고 연꽃을 구해다가 심어요.”
“오호라,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구나! 어린 부뜰이도 저런 생각을 하는데 낫살께나 먹은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지?”
노스님의 얼굴에 웃음기가 확 퍼졌다.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제가 삽과 괭이를 가져올게요.”
부뜰이는 신바람이 나서 벌써 요사채를 향해 달려갔다.
“원 녀석두! 일곱 살짜리가 뭘 파겠다고....... 나 또한 늙어서 근력이 부뜰이보다 별반 나을 게 없는데.......”
노스님의 눈가에는 산보다도 더 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노스님, 여기 삽과 괭이 가져왔어요.”
“그래, 우리 둘이서 해 보자. 시작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맘은 이렇게 먹지만 연못을 두 개나 만들려면 나 죽기 전에 완성하려나 모르겠다.”
“예! 왜 연못을 두 개나 파요, 하나만 파면 되지?”
부뜰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연은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이란다. 그래서 이렇게 찬 샘물에서는 자라지 못해. 그러니 위 연못에 차가운 샘물이 고여서 햇볕에 덥혀진 후 아래 연못으로 흘러가게 해야 돼. 그래야 아래 연못에서 연꽃이 살 수 있어.”
“그럼 위 연못에는 뭘 심어요?”
“거기는 네가 심고 싶은 것을 심어라. 창포와 부들도 심고, 개구리밥도 키우고,
또 생이가래도 키우고........”
“노스님은 그런 걸 어떻게 아세요? 이 절에는 연이 없는데.......”
“내가 노스님 소리를 듣기까지는 수많은 절을 옮겨 다니면서 살았단다. 연꽃은 불교를 대표하는 꽃이라 대부분의 절마다 키우지. 대웅전에 모신 부처님이 어디 앉아 계시니?”
“?”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받침대도 연꽃을 본 따 만든 거란다.”
“그러고 보니 부도, 석등, 천장, 문살, 기와에까지 연꽃이 그려져 있네요. 노스님, 왜 절에서는 연꽃을 그렇게 중하게 여겨요?”
“우리 부뜰이가 좀 더 크면 자세히 알려 줄게. 한꺼번에 많은 것을 알면 배탈 나.”
“에이, 노스님도. 공부하는 게 뭐 밥 먹는 건가요? 배탈이 나게.”
부뜰이는 더 가르쳐주었으면 하는 눈치를 보였다. 하지만 노스님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팔소매와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는 잠자코 삽으로 흙만 파냈다.
“저는 괭이로 이 쑥과 작은 버드나무 뿌리를 캐낼게요.”
부뜰이도 두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더니 괭이자루를 굳게 잡았다.
“허허, 그 녀석 나이에 비해 제법 다부지구나. 허허허.......”
노스님과 부뜰이는 그날부터 시간 닿는 대로 쉬엄쉬엄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무리는 하지 않았다. 힘에 겹다 싶으면 연장을 놓았다. 하지만 짬이 나기만 하면 연못 파는 일을 계속했다.
한 달쯤 지나자 흙을 파낸 곳은 작은 옹당이가 되었다. 그러더니 일 년이 지나자 꽤 큰 웅덩이로 변했다. 시간이 갈수록 부뜰이가 파내는 흙의 양이 늘어갔다. 반대로 노스님이 파내는 흙은 줄어들었다. 웅덩이가 커갈수록 고이는 물의 양도 늘어갔다. 땅거죽으로 흐르던 물기가 연못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일주문 근처는 물기가 사라졌다. 길도 보송보송해 걷기 좋은 흙길이 됐다.
그 새 두 해가 흘렀다. 이제 두 개의 웅덩이는 제법 연못 형태를 갖추어 갔다. 그 연못을 바라보는 부뜰이와 노스님의 눈은 벌써 연꽃으로 가득했다.
*연못가에 모인 사람들
어느 해 한여름이었다. 찌는 듯이 무더운 날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립박물관 앞뜰 끝에 있는 연못가로 모여 들었다.
그 연못에는 나와 내 친구 연꽃 두 포기만이 달랑 자라고 있었다. 나는 분홍 꽃잎을 나부끼면서 모여든 사람들을 바라봤다. 사람 구경을 하기는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어! 웬 사람들이 이리 많이 모여 들었지? 이 무더운 한낮에.......”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씨앗들이 자라는 벌집 모양의 연밥 구멍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넓은 개구리들의 섬인 연잎을 통해서도 하늘을 바라보았다. 꽃과 잎, 연밥은 달리 생겼지만 뿌리는 한 몸이거든.
하늘에는 목련 꽃을 닮은 흰 구름들이 둥둥 떠 있었다. 흰 구름은 땅에다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뭉게구름이 나를 발견하고는 제자리에 섰다.
“어! 언젠가 본 듯한 연꽃인데? 언제 봤지?”
흰 구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바람에 흰 구름을 밀고 가던 바람이 흰 구름 엉덩이에 코를 박고 말았다. 놀란 바람도 나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런, 연못에 아기별이 빠졌네! 밤에 연못에 내려왔다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했나?”
장난꾸러기 솔바람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언젠 봤더라. 저 연꽃은 요즘 연꽃이 아닌데....... 꽃잎이 조금 좁은 걸 보면....... 백 년 전인가? 천 년 전인가? 하도 많은 세월 동안 이 하늘을 돌고 돌았더니 기억이 영 가물가물하네.”
흰 구름은 바람과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좀 크게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연못 위를 떠나지 않았다. 연못가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큰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또 솔바람은 몸뚱이를 살랑거려 시원하게 해주었다.
“구름이 해를 가려주니 좀 살겠군!”
연못가에 모여선 사람들은 누가 시킨 것처럼 일제히 흰 구름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뭐 하느라고 이리 많이 모인 거야? 이 뜨거운 낮에........”
“글쎄? 왜 사람들이 모였는지 알아보고 갈까?”
흰 구름과 솔바람은 제자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나도 귀를 더 크게 열었다. 모여든 사람들의 표정도 자세히 살폈다.
“여러분! 이 연못 가운데 핀 저 연꽃이 어떤 연꽃인 줄 아십니까?”
더운데도 양복을 차려 입은 사람이 지휘봉으로 연꽃인 나와 친구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르시겠습니까? 어쩌면 모르시는 게 당연하실 겁니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궁금증이 더 쌓이는 거 같았다.
“저 연꽃은 보통 연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는 세 송이밖에 없는 그런 귀한 연꽃입니다.”
“에이, 장난하나. 말도 안 돼. 저런 연꽃은 요 아래 산 밑 동네 연못만 가도 쌔고 쐤다!”
“맞아. 우리 동네 놀이터 연못에도 쉰 송이는 폈겠다.”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씩 했다.
“보기에는 보통 분홍 연꽃하고 똑같아 보이지만 정말로 아주 귀한 연꽃입니다.”
“뭐가 그리 귀한지 그 이유를 빨리 대 보시오. 더운 날에 사람 뫄 놓고 더위 먹이지 말고.”
한 사람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왜 귀하냐면 저 연꽃은 신라시대의 연꽃입니다. 천 년만에 다시 피어난 믿어지지 않는 연꽃이거든요. 하나의 전설 같은 사연을 갖고 있는 연꽃이죠.”
“뭐, 뭐라구요!”
“세상에! 말도 안 돼!”
사람들은 모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너무 놀란 표정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던 흰 구름과 바람도 움찔했다. 물론 나도 놀랐다.
*산으로 간 연꽃
“노스님, 이제 그럴싸한 연못이 됐으니 오늘은 저 아랫마을 연못에 가서 연뿌리를 캐 오지요.”
부뜰이가 노스님의 소매 자락을 잡아당기며 졸랐다.
“그러자. 네가 두 해 동안 이 연못 파느라고 고생 많았다. 그러고 보니 너도 부쩍 자랐구나. 마치 오이 자라듯 하는구나. 그 옷소매가 껑충 올라간 걸 보니......”
“노스님은 키가 더 작아지셨어요. 땅 파느라고 엎드려서 그런가 봐요. 호호호......”
“나이가 들면 키가 작아지는 법이지. 땅을 파느라고 엎드려서 그런 게 아니고, 내가 태어난 흙과 숨결을 맞추느라 작아지는 거지. 허허허.”
“연을 캐려면 괭이와 삽을 가져가야겠지요?”
부뜰이는 신바람이 났다. 목소리에도 바람이 잔뜩 들었다.
“무거운데 연장은 가지고 가지 말자. 아랫마을 사는 김씨네서 빌려 캐 오자.”
“그럴까요. 그런데 연뿌리를 어디다 넣어 오지요?”
“글쎄다? 바랑에더 넣으면 젖어서 옷이 다 망가질 테고....... 큰 바가지를 가지고 가서 담아 오자. 네가 한 바가지, 내가 한 바가지 들고 오면 되겠지.”
노스님도 부뜰이처럼 신바람난 목소리였다.
부뜰이와 노스님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갔다. 산에 난 소록길은 산을 타고 오르는 포도 덩굴 같았다.
“푸드덩!”
“아이고 깜짝이야! 저놈의 장끼!”
산길 옆 보득솔 밑에서 갑자기 꿩이 날아올랐다. 부뜰이가 자지러질 듯이 놀라며 소리쳤다.
“애꿎은 산짐승 원망하지 마라. 우리 때문에 저 꿩은 얼마나 놀랐겠니? 아마도 너보다는 저 꿩이 더 놀랐을 거다.”
노스님이 합장을 하며 말했다.
“노스님은 놀랐는데 저 꿩이 밉지 않으세요?”
“너도 이제는 법명을 가져야겠다. 그러면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좀 줄일 수 있지.”
“법명요?”
“너도 이 산에 와서 나하고 절밥을 먹은 지가 다섯 해가 지났으니 이제는 불가의 이름을 가져야지. 만날 부뜰이로만 살 수는 없잖니?”
“저는 부뜰이가 좋은데요.”
“에끼! 네 불가 이름은 매화매자를 넣어서 ‘매곡’으로 하자. ‘매곡 스님!’, ‘매곡 동자 스님!’ 어떠냐? 어미가 버린 것을 내가 길가에서 붙들어 왔다는 뜻의 ‘부뜰이’보다는 낫지 않니?”
“........”
부뜰이는 노스님의 농 반 진 반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영 대꾸할 기분이 아니었다.
‘나를 버린 엄마는 어떻게 생겼을까? 엄마 목소리는 고울까 미울까? 아무리 미운 엄마지만 그 엄마 가슴에 한번만 안겨 봤으면.......’
부뜰이는 먼 산을 바라보는 아기노루 눈이 된 채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늘 따라 유난히 하늘빛이 푸르렀다. 산도라지꽃 빛이었다. 풀 속에 숨어서 단추처럼 피어난 달개비꽃 빛이기도 했다.
“우리 매곡 스님께서 저 목화송이 같은 흰 구름을 타고 가시는 부처님을 생각하시나?”
“아, 아니....... 예, 예.”
부뜰이는 자기 속마음을 들킨 거 같아서 허둥거렸다. 얼굴빛이 물봉선 꽃 색깔처럼 연붉게 변했다.
“좋게 생각해라. 네 엄마는 아기였던 너를 내게 잠깐 맡겨 놓고 간 거야. 내가 산에서 혼자 외롭게 사는 걸 어떻게 아셨나 몰라. 아마 모르긴 해도 네 엄마한테는 너를 길에 버려두고 갈 수밖에 없는 기막힌 말 못할 사연이 있었을 거다.”
“.......”
부뜰이는 큰 돌덩이가 가슴을 곽 내리누르는 느낌이었다.
“이제 너는 ‘매곡 스님’으로 평생 동안 이웃을 위해 살면 돼. 그러면 엄마와 아버지도 만날 수 있어. 세상이 아주 넓은 거 같아도 모두 부처님의 품안이거든.”
“.......”
“아래 연못에는 연을 심지만 위 연못에는 뭘 심을지 네가 생각해 봐라. 그 연못은 네 연못이니까”
노스님이 부뜰이의 관심을 돌리려 엉뚱한 말을 했다.
“정말요?”
부뜰이는 노스님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금세 무겁던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부뜰이는 위 연못에 채울 물풀들을 떠올리느라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아랫마을까지 언제 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연두색 야들야들한 연잎이 막 피어나기 시작한 워리벌 연못은 꽤 컸다. 넓은 연못을 채우고 있는 물은 흙탕물이었다.
“연꽃은 왜 이렇게 더러운 물에 살아요?”
“그 더러움 속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아 꽃피우기 위해서지.”
“예?”
“더러운 것도 우주의 일부란다. 부처님의 뜻이고. 저 더러운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운 연이야 말로 꽃 중의 꽃이 아니겠니? 저런 연꽃을 보면 저 더러운 진흙 속에도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 들어 있다는 증거 아니겠니?”
“........”
“그러고 보면 연꽃은 거룩하기까지 하지. 부처님 같은 생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불가에서는 연꽃을 좋아하는 거란다. 절마다 부처님은 연꽃 위에 앉아 계시잖니?”
“아, 그렇군요!”
“이제 우리 매곡 스님도 평생을 연꽃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스님이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이 좀 흐리더라도 그 세상 자체를 싫어하면 안 됩니다. 그 탁한 세상은 연꽃 같은 매곡 스님을 품고 있으니까요. 연꽃이 된 마음으로 항상 중생들을 돌봐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노스님이 갑자기 부뜰이한테 높임말을 썼다. 그리고는 말할 적마다 부뜰이라는 말 대신 매곡스님이라고 불렀다.
부뜰이는 당황했다. 쑥스럽고 민망하기도 했다.
“매곡스님, 연이 비록 진흙물에 뿌리를 담그고 있지만 그 더러운 물에 젖지는 않습니다. 또 연은 잎이 막 피어날 때 씨방인 연밥도 같이 여물기 시작합니다. 이는 원인과 결과가 함께 있다는 불가의 진리이기도 하지요. 또한 연씨는 물속에 떨어져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움을 터서 꽃을 비웁니다. 매곡스님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셔야 합니다. 그래서 중 생활은 외롭고 어려운 겁니다. 내 말 알아듣겠습니까?”
노스님은 부뜰이가 민망해하거나 말거나 계속 높임말로 자기가 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는 다짐까지 받으려 했다.
부뜰이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몇 번 매곡스님이란 말을 들으니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아랫배에 힘을 주며 대답하며 합장을 했다.
“평생 명심하고 노스님처럼 살아가겠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부뜰이의 진지한 행동에 노스님도 진지하게 합장을 하며 답례했다.
“아기스님도 이제는 제법 스님 티가 납니다. 하하하.”
그 모습을 보고 김씨 아저씨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김씨 아저씨는 바짓가랑이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는 삽을 들고 연못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작은 연뿌리를 캐냈다.
동자승은 얼른 큰 바가지를 내어 그 연뿌리를 담았다. 얼마 안 돼 다섯 뿌리나 캤다.
“아기스님, 이것도 가지고 가서 심어 봐요.”
“이건 말라비틀어진 연밥이잖아요?”
“맞아요. 작년에 나왔던 연밥이에요. 이 연밥 속에 십여 개의 연씨가 들어 있지요. 그걸 심어보란 말입니다.”
“연씨가 돌처럼 단단한데 싹이 쉽게 나와요?”
“쉽지는 않지만 나오게 하는 방법이 있지요. 노스님이 먼저 절에 계실 때 많이 해 보셨대요. 절에 가서 노스님이 시키는 대로 해 봐요.”
“연씨는 단단해서 그냥 두면 천 년을 묵었다가도 싹이 난다고 전해오니 가지고 가자. 올해 못하면 내년에 심지 뭐.”
“그래요, 노스님! 그렇게나 오래 묵었다가도 싹이 나와요? 믿어지지가 않아요!”
“내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니지요. 내가 기껏 살아봐야 백 년밖에 더 살겠습니까? 예전부터 먼저 가신 스님들이 그리 말씀하시니 그런가보다 하고 믿는 거지요. 그만큼 연꽃은 생명이 긴 꽃입니다. 예사 꽃이 아니지요.”
노스님은 부뜰이게 계속 존댓말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노스님의 변한 말씨를 듣는 부뜰이는 말과 행동이 아주 조심스러웠다.
부뜰이와 노스님은 김씨 아저씨가 캐주는 어린 연뿌리를 바가지에 담아 가지고 절로 향했다. 씨가 들어 달각거리는 연밥도 두 개나 갖고 갔다.
절에 와서 부뜰이는 노스님이 일러주는 대로 연을 아래 연못에 정성껏 심었다. 위 연못에 비하면 아래 연못물은 훨씬 따뜻했다.
연두색 연잎은 흙탕물 위에 배리배리하고 야들야들한 잎을 띄우고 솔바람에 너풀거렸다. 벌써 연못 분위기가 색다르게 보였는지 메밀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와 연잎 위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산사와 잘 어울리는 연못이었다. 여기에 연꽃이 가득 피어나면 이 절의 명소가 될 게 분명했다.
부뜰이와 노스님의 귀에는 벌써 이 연못에서 연꽃이 사부작사부작 피어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 연씨는 어디다 심죠?”
“저 자배기에다 심어보기로 하지요. 나도 그전에 큰절에 있을 때 선배 스님이 하시던 걸 어깨너머로 본 적이 있으니 같이 싹을 틔우도록 합시다.”
“지금요?”
“내년 봄이 좋습니다. 지금도 싹은 틔울 수는 있지만 금세 겨울이 올 텐데 내다심을 수가 없지요. 그러니 연밥을 선반에 올려놨다가 내년 봄에 같이 합시다.”
부뜰이는 내년 봄이라는 말에 김이 빠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부뜰이는 위 연못에 물풀을 캐다 심으면서 어서 봄이 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봄이 돌아왔다.
“이제 제법 봄볕이 따스하니 연꽃 씨앗을 싹틔워 봅시다.”
“노스님, 자배기에다 흙을 채울까요?”
“그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철갑처럼 단단한 씨앗에서 싹 틔우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씨앗이 너무 단단해 물을 빨아들일까요? 물을 빨아들여야 싹을 틔울 텐데요?”
“그렇기 때문에 물을 빨아들이고 움튼 싹이 껍데기를 뚫고 나오게 우리가 도와줘야 합니다.”
“어떻게요?”
“단단한 연꽃 씨앗에 구멍이나 흠집을 내줘야 합니다.”
“제가 창칼로 흠집을 낼까요?”
“연씨가 동그래서 손을 다치기 쉬워요.”
“그렇다면.......”
부뜰이가 칼을 가지러 가려다가 말고 노스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씨앗을 꼭 쥐고 저 거친 돌에 문질러서 흠집을 내세요. 옆 부분이나 양 끝 중 오목하게 패인 부분에 흠집을 내는 게 좋습니다. 갈 때 속의 하얀 속살이 보이게 가는데 그 가운데 녹색의 싹이 다치면 안 됩니다. 내가 시범을 보일 테니 그대로 따라 하세요.”
노스님은 씨앗 하나를 손가락 끝으로 잡고는 절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에다 갈기 시작했다.
부뜰이도 노스님을 따라서 그대로 했다. 스무 개의 씨앗을 다 갈고 나니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내배었다.
“다 갈았는데 이 걸 어떻게 할까요?”
“우선 사발에 물을 담고 거기다 한 일주일 담가놓도록 하지요. 그러면 싹이 틀 겁니다.”
“알겠습니다.”
부뜰이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아주 조심스럽게 물을 떠다가 갈은 연 씨앗을 넣었다. 그리고는 햇볕이 잘 드는 남쪽 창가에 놓았다.
일주일이 지났다.
씨앗의 간 쪽에서 거짓말같이 연잎을 단 줄기가 반 뼘은 자라났다. 뿌리도 달려 있었다. 열흘이 지나자 긴 줄기가 두 개 되었다. 줄기 끝에는 연잎이 달려 있었다.
그것을 자배기에 채운 흙을 손가락 두 마디 깊이 정도로 파고 심었다. 그리고는 자배기에 물을 채웠다. 연잎이 물에 뜰 정도로 채웠다. 이제 방에도 작은 연못이 생겼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부뜰이와 노스님은 짬만 나면 연잎을 들여다보는 재미로 살았다. 밖에 나가면 일주문 근처의 연못에서, 방에 들어오면 자배기 안에서 자라는 연잎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연은 두 스님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쑥쑥 자라났다. 잎사귀도 큰 토란 우산만 해졌고, 색깔도 한 여름으로 접어들자 짙푸르러 아주 꺽지게 보였다. 건강미가 넘쳐흘렀다. 연잎마다 참기름 칠을 해 놓은 것처럼 만질만질한 게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잎사귀에 묻어 있는 게 아니고 그대로 굴러 구슬이 되었다. 그런 물방울 구슬을 보는 거로만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 연잎 위에 작은 개구리들이 기어 올라가 쉬고 있는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아름다웠다. 개구리섬! 연잎은 개구리들한테는 연못의 섬이나 마찬가지였다.
“노스님! 노스님! 저게 뭐예요!”
“매곡스님은 뭘 보고 그리 오두방정을 떠시나요?”
노스님은 차를 마시고 불경을 읽다말고 연못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부뜰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자세히 봤다.
“저기, 저 연잎 옆에 이상한 줄기가 올라오잖아요!”
“난 또 뭐라구요. 저건 연의 꽃대랍니다. 그 옆에 벌집 같이 구멍이 숭숭 뚫린 원추모양 있지요? 그건 연꽃 씨앗이 들어 있는 연밥이지요.”
“옛! 그럼 이 연못에도 머잖아 연꽃이 피겠네요?”
“그렇다마다요. 매곡스님의 기다리는 마음을 빨리 알아챈 거지요. 그래서 이 흐린 연못 속에서 아름다움을 서둘러 빨아들여 꽃대를 만들었지요. 매곡스님의 가슴 속에는 연꽃대가 얼마나 자랐나요?”
“이 절에는 깨끗한 노스님과 가끔 오시는 신도들만 봐서 아직 더러움 속에서 아름다움을 빨아들여 꽃대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허허허, 그러십니까? 허허허......”
노스님은 부뜰이의 재치에 너털웃음으로 대꾸했다.
#잊혀진 전설
작은 연못에서 연이 꽃을 피운 지 몇 해 지난 어느 여름날이었다.
“아, 물기가 더 올라와야 내가 여물지!”
“누가 아니래! 올해는 왜 이리 가무는 거야? 연일 하늘에선 불볕만 쏟아지고 있으니.......”
연밥 속에 나란히 누워서 여물어가던 우리 연 씨앗들은 짜증을 냈다.
“어서 비가 와야 내가 잎을 활짝 펼 텐데! 이제는 연못 바닥도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있으니......”
시들시들한 채 축 처진 연잎도 맞장구를 쳤다.
불볕을 쏟아내는 하늘에는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었다. 마치 삼복더위에 옷을 다릴 때처럼 덥다 못해 뜨거웠다. 목이 말라 짜증이 나는데 매미 소리는 왜 그리 큰지 모를 일이다. 이래저래 우리는 더 짜증이 났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서쪽 하늘부터 흐리더니 이내 먹장구름으로 변했다. 그리고는 얼마 있다가 소낙비가 내리 퍼붓기 시작했다. 몇 달만에 처음 오는 비였다. 그것도 장대비였다.
“와, 저 소리 좀 들어봐! 하늘에서 나뭇잎마다 내리꽂는 빗소리가 마치 폭포수 소리 같다!”
“내 귀에는 군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 소리같이 들리는데.”
“네 말을 들으니 그런 것도 같다. 그런데 저 빗발들 좀 봐. 꼭 하늘에서 물로 만든 작은 못을 쉴 새 없이 쏴대는 거 같지 않니?”
“정말 그렇구나. 하늘나라에서 이 땅의 영악한 악귀를 물리치려고 가늘고 작은 물화살을 쏴대는가 보다.”
연못에 사는 우리는 신바람이 나서 되는 대로 뒤떠들었다. 된둥만둥 떠들어대면서 비를 맞는 기분도 참 좋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화살은 연밥의 작은 구멍으로 잘도 들어왔다. 물화살을 맞을 적마다 우리 얼굴은 따가웠지만 우리는 힘이 솟았다. 우리들이 들어 있는 연밥의 씨방을 넘쳐흐른 물은 연못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또 새들새들 말라가던 연잎에 떨어진 빗방울들도 굴러 큰 구슬을 만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큰 물구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연못 바닥으로 흘러갔다. 연못에 떨어진 물방울들은 재빨리 서로 허리를 잡고 물뱀처럼 낮은 곳을 향해 기어갔다. 정말로 빗방울은 살아 있었다.
여러 마리의 물뱀 같은 빗물들은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 연못바닥의 개흙을 기어 다니며 채웠다. 갈라진 곳마다 파고 든 물뱀들은 잽싸게 서로 꼬리를 물고 비늘을 물었다. 물뱀들은 어느새 물거울로 변했다. 빗방울들의 재주 부리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 되었다.
나는 그 신기한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투르릉! 꽈꽝!”
그때 천둥이 검은 하늘을 거북이등처럼 갈기갈기 찢었다. 가뭄에 갈라졌던 연못 바닥보다도 더 깊고 복잡하게 찢었다.
“아이구, 무서워!”
비를 흠뻑 맞는 산들이 그 소리에 놀라 몸뚱이를 웅크렸다.
나무와 풀들도 놀라 몸을 마구 떨었다.
사시나무보다 더 심하게 떨었다.
장대비는 몇 시간이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
한나절이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
빗발이 가늘어지기는 했지만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열흘이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
거의 보름이나 내렸다.
“이제는 그만 내렸으면 좋겠다! 한 달 가뭄은 참아도 열흘 장마는 참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러다가 우리 모두 물속에 잠겨 죽는 거 아냐?”
“물속에 잠긴다고 죽기야 하겠어? 우리는 물속에 사는 식물인데 말이야.”
“누가 알아! 이 연못 둑이 툭 터져서 저 아래로 휩쓸려 내려가면 그때는 말라 죽거나 진흙더미에 깔려 죽는 거지 뭐.”
“그러고 보니 절까지 무너져버릴까 봐 겁나네!”
우리는 연밥 위까지 꽉 찬 연못 물속에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노스님과 동자승도 걱정이 되는지 두드려대는 목탁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번쩍번쩍!
번갯불이 다시 하늘을 고목뿌리처럼 갈랐다.
“꽈과꽈-꽈꽈꽈아앙. 꽈꽈꽝!”
천둥소리가 절 뒷산을 크게 흔들었다. 그 바람에 놀랐는지 산중턱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힘없이 꺾이고 뭉그러져 내리는 집채만한 바위들과 뒤섞여 아수라장이 되었다. 무시무시한 산사태였다. 곤죽으로 변한 어마어마한 산사태는 절간을 휩쓸었다. 정말 무서운 속도였다. 그 산사태는 일주문과 우리가 사는 연못도 덮쳤다. 그 순간 나와 내 친구들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내가 정신을 잃고 흙속에 묻혀 있던 시간이 얼마인지 모른다. 아주, 아주 긴 것만은 틀림없었다.
나는 얼마만에 겨우 정신은 차렸지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의식 없는 식물인간처럼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저 꿈결에 들리듯 아련한 소리를 들을 수만 있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망하고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했다는 것도 알았다.
다람쥐가 땅을 파고 도토리를 감추면서 하는 소리를 훔쳐 들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국이 세워졌다는 것도 알았다.
겨울잠을 자러 흙속으로 들어온 산개구리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들었다.
임진왜란이 났다는 것도 알았다.
두더지가 지나가면서 저희끼리 속살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다는 것도 알았다.
큰 소나무에 흠집을 내고 송진을 받으러 온 아낙네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일본한테서 해방이 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방방곡곡에서 목이 터지게 외치는 만세소릴 바람이 품어다가 쥐구멍 속으로 넣어주었다.
육이오가 터져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눴다는 것도 알았다.
옆에서 참호를 파고 죽어가던 병사의 신흠 소리를 들었다.
그 동안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 여러 명 바뀌었다는 것도 알았다.
이곳에서 산성 보수 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나를 삽으로 흙과 함께 퍼내며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바람에 나는 친구 몇과 땅거죽으로 나왔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큰 산사태에 너무 놀랐나 보다. 아니면 내가 큰 골병이 들었나 보다.
“어, 이건 뭐야! 도토리도 아니고.......”
“글쎄다! 모양은 연꽃 씨앗을 닮았는데?”
“이 높은 산성에 연꽃 씨앗이 있을 리가 없는데....... 여기 연못이 있었다는 기록은 어디를 찾아봐도 없고......”
“그러게....... 참, 알 수 없는 일이네!”
나와 내 친구들은 산성 보수 공사하던 인부 손에 들려가면서도 지나온 과거를 말할 수 없었다. 내가 겪은 일을 죄다 말하고 싶은데 입술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천 년 웃음 싹틔우기
“지난번 갈뫼산성 발굴 때 나온 이상한 열매 씨앗 어떻게 됐지?”
박물관장이 학예연구원들이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로 들어서면서 물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보내 성분 조사를 의뢰했습니다.”
한 직원이 서류봉투를 뜯으려다가 말고 일어서며 대답했다.
“그 결과는?”
“이게 그 통보 공문 아닐까요.”
직원은 뜯으려던 서류봉투를 들어 보이며 대꾸했다.
“빨리 뜯어보게.”
“예, 알겠습니다.”
직원은 대답을 하면서 가위로 서류봉투의 한쪽을 잘랐다.
“자네 예상대로 그 결과 통보문 맞는군 그래.”
관장은 직원보다도 더 길게 목을 빼고는 서류의 제목을 먼저 읽었다.
“내용을 크게 읽어 보게.”
“예. 귀 박물관에서 보낸 여덟 개의 씨앗은 방사선탄소 연도측정 결과 천여 년 전의 연꽃 씨앗으로 밝혀짐을 통보합니다.”
통보 내용을 읽는 직원이나 이를 듣는 관장이나 크게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뭐, 뭐라구! 천 년 전 연꽃 씨앗이라구!”
“그렇다면 그 연꽃 씨앗은 신라 때 씨앗이잖아?”
“그렇겠지. 이 산성이 그 당시에는 신라 땅이었으니까!”
주위에서 다른 일을 하던 연구원들이 탄성을 지르며 죄다 모여들었다.
“산성을 보수하다가 얻은 유물치고는 대단한 걸.”
“이 연꽃 씨앗을 발아시켜 보자구.”
“관장님, 그게 가능할까요?”
“천년이나 지났는데 열매 속이 썩지 않았을까요?”
연구원들의 눈이 더욱 커졌다. 커진 눈들은 봉투 속 작은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연꽃 씨앗을 살폈다.
“내가 어느 기록에 보니 연꽃은 천 년이 넘어도 싹을 틔울 수 있다는 거야. 일본에서는 이삼 천 년 전 씨앗도 싹틔웠대. 전문 서적을 찾아보면서 시도해 보자구.”
“알겠습니다. 만약 이 여덟 개의 씨앗 중에서 한두 개만 싹이 터도 대단한 일이지요.”
“암 그렇고 말고. 천 년을 잠자다 꽃을 피운 연꽃! 어때? 뉴스 제목으로 어울리지 않아?”
“썩 잘 어울립니다. 이거 우리 박물관이 뉴스의 초점이 될 날이 머잖은 거 같은데요. 하하하.”
“뉴스를 타는 것도 그거지만 우리가 대단한 일을 시도하고, 성공한 거지. 나는 그게 더 중요하다고 봐.”
“맞습니다. 우리 모두 획기적인 일에 도전하는 셈이죠.”
그날 이후 연구원들은 연을 전문적으로 키우는 사람들을 찾아가 도움말을 듣고 메모했다. 도서관을 뒤져 연에 대한 전문서적을 사왔다. 또 다른 연구원은 인터넷을 뒤져 연에 대한 내용을 모두 모았다.
그리고는 몇 번씩 회의를 거듭하며 연꽃 씨앗을 심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모두 관심을 가지고 했다. 마치 연꽃 싹 틔우기 위해 박물관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살았다.
아주 지루한 나날이 흘러갔다.
“관장님! 여기 화분에 뭔가 보입니다!”
“뭐! 연이 싹을 틔운 게 나온다구!”
관장은 지레짐작을 하고는 하던 일도 팽개쳐 둔 채 달려오며 소리쳤다.
“어디! 어디!”
연구원들도 다 달려왔다. 식당에서 점심 준비를 하던 아주머니까지 달려 나왔다.
“저기, 저기 좀 보십시오!”
한 연구원이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화분 가운데를 가리켰다. 가리킨 곳에는 연두색 빛이 흙을 땅강아지처럼 떠들고 나와 있었다.
“오! 저게 과연 연꽃 싹일까!”
관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나무젓가락으로 근처 흙을 파헤쳐 볼까요? 싹이 나온 게 맞나 확인하게.”
“안 되네! 그러다가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천 년 꿈이 날아가네! 천 년이나 참았다가 피어날 미소가 사라진다구! 기다리세! 이 연 씨앗은 꽃을 피우기 위해 천 년을 기다렸는데 우리는 사나흘도 기다리지 못한데서야 말이 되나.”
관장과 연구원들은 기다렸다. 싹이 좀 더 클 때까지 참았다. 그런데 사흘이라는 기간이 그리 긴 줄을 미처 몰랐다. 석 달, 아니 삼 년보다도 더 길게 느껴졌다.
“성공이야! 틀림없는 연꽃 싹이라구! 그것도 세 개나 나왔어!”
관장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우리나라 여자 축구선수들이 세계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보다 더 좋아했다.
“얏호!”
“신문사와 방송국에 연락할까요?”
“와, 천 년 동안 잠자던 연꽃을 볼 수 있다니!”
연구원들도 모두 들뜬 표정이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표정이 모두 활짝 핀 연꽃이었다.
*천 년 웃음 나누기
“저 연못에 핀 연꽃은 요즘 연꽃과는 모양이 조금 다른 거 같은데?”
“그래요. 요즘 연꽃에 비해 꽃잎 수가 적고 길이가 좀 긴 거 같군요.”
“나도 그렇게 봤어요. 저 설명하는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더 들어봅시다.”
“이 연꽃은 천 년된 연꽃이라고 아까 말씀드렸지요? 이 연꽃이 피어나기까지는 이런 사연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연꽃은 갈뫼산성 복원 공사를 하던 중.......”
양복을 입은 사람은 연꽃이 피어나기까지 얽힌 긴 설명을 죄다 설명했다.
“어머, 세상에나!‘
“세상에, 그럴 수가!”
“저 연꽃이 천 년만에 다시 웃음을 터뜨린 꽃이란 말이야!”
“그러고 보니 연꽃 생김새가 조금 다르긴 하네!”
흰 구름 그늘 속에 모여 섰던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는 일제히 카메라나 핸드폰을 꺼내 연꽃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기념사진 찍기가 어느 정도 끝났다. 그러자 넥타이 맨 사람의 설명은 계속 되었다.
“저희 박물관에서는 저 연꽃을 포기 나누기 하고, 씨앗을 많이 싹틔울 겁니다. 그래서 필요로 하는 시민들한테 골고루 나눠드릴 겁니다. 천 년 동안 참았다가 다시 핀 웃음을 말입니다. 천 년간이나 못 속의 더러움을 빨아들여 아름다움으로 피어난 거룩한 꽃의 깊은 뜻을 우리 도시민들이 다시 새기라는 뜻에서입니다.”
“와아, 멋진 계획이다!”
누군가 소리치며 손뼉을 쳤다. 그러자 설명회에 초대돼 온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면서 박수했다.
“여러분이 살아가시는 이 사회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더라도 그 안에서 좋은 점만 뽑아내셔서 아름다운 연꽃을 피우시기 바랍니다.”
“짝짝짝! 짝짝짝!”
소문은 빨랐다. 발도 없는데 날개를 달았다. 며칠 안 돼 도시 사람들은 천 년만에 다시 피어난 우리의 소문을 다 안 거 같았다.
나와 친구들이 자라고 있는 박물관 연못에는 구경꾼들이 배로 늘어났다. 구경꾼들은 누구나 다 빠짐없이 사진을 찍어 갔다. 우리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인기인들처럼 가장 아름다운 표정을 짓고는 솔바람에 고개를 흔들었다. 살랑살랑. 가장 우아한 모습으로.
어느새 우리가 사는 박물관 연못에도 가을이 왔다. 가을과 함께 연밥 속에 든 우리의 씨앗도 익어갔다. 그 연 씨앗 속에는 천 년 전 해맑은 웃음을 보이던 부뜰이 동자승의 목소리도 배어 있다. 부뜰이의 해맑음은 물론 노스님의 푸근한 마음 씀씀이도 스며 있다.
이제 긴 겨울이 오면 도시민들의 연꽃 인생이 익어갈 차례다.
•수상 소감
죽어서 살아나는 작가
천 년 묵은 연꽃 씨앗은 드디어 오늘 아침, 내 가슴에도 연꽃을 피웠다. 그래서 내 문학의 뿌리가 천 년이란 긴 세월을 흐르는 듯한 착각을 갖게 했다. 기쁘다. 정말 기쁘다.
2년 전 신문에서 색다른 기사를 한 토막 읽었다. 지하토층에서 700년 된 연꽃 씨앗을 발굴해 발아시켜 연꽃을 피우게 됐다는 기사였다. 나는 기사를 읽는 순간 직감적으로 이 동화 「천 년 웃음」을 착상했다. 착상과 더불어 거의 동시에 소재 ․ 주제 ․ 플롯이 정해졌다. 직업의식이라고 해도 참 희한한 일이었다. 이렇게 구성이 순식간에 이뤄지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거기다가 내가 좋아하는 우리 것에 뿌리를 둔 작품이니. 햐! 기가 막힌 일이었다!
곧 인터넷 취재에 들어갔다. 연꽃 발아나 생장과정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나는 한나절을 뒤졌다. 인터넷만큼 넓고 정확한 취재마당이 또 어디 있으랴!
그리고는 일사천리로 써 내려갔다. 이틀에 걸쳐 101매의 원고를 탈고하고 몇 번의 퇴고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도 즐거웠다. 생각보다 좋은 동화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던 거 같다. 긴 세월 동안 너무 생활동화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데 대한 걱정을 혼자 속으로 하고 있던 참이라 자연스레 즐거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맘먹고 써 놓고 보니 원고량이 많아서 청탁 온 『시와 동화』한테 퇴짜를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전화를 걸어 허락을 받고 보냈다. 고마웠다.
이 작품을 뽑아준 한국아동문학인협회와 심사위원들께 허리 굽혀 인사드린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동화 본질이 번득이는 동화를 더 많이 써 ‘죽어서 살아나는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도 해 본다.
•약력
1950년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에서 출생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세종아동문학상(86) ․ 해강아동문학상(93) ․ 불교아동문학상(94) ․ 이주홍아동문학상(99) ․ 소천아동문학상(09)과 올해의 작가상(95) 수상
현 교과서 <6-2 읽기>에 동화 「마지막 줄타기」 수록
동화집 『위대한 그림』, 『새가 되어 날아간 할아버지』외 다수 냄
덕성여대대학원 강사와 장안대 문창과 겸임교수를 지냄. 현재는 단국대 문창과와 대학원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함.
--끝
|
첫댓글 이동렬, 한상순 선생님, 두 분 작품이 4월 우수작품에 뽑힌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동렬 선생님, 한상순 선생님, 4월 우수작품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오브코스, 콩그레스레이션! ^^
선생님들, 축하축하드려요~
이동렬, 한상순님, 축하드립니다.
축하, 축하드립니다.
우와, 정말 멋집니다. 축하해요.
이동렬 선생님, 한상순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는데.. 역시 상을 받으시네요. 두 분 축하드립니다.
이동렬 선생님, 한상순 선생님, 축하합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한상순 이동렬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
늦었네요, 정성스런 마음으로 두 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