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영향을 준 많은 사람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마하트마 간디이다. 그의 본명은 모한다스 카람차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이다. '마하트마'라는 말은 인도의 문호 타고르가 1922년 붙여준 이름으로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다. 그의 자서전 <나의 진리실험이야기>를 읽은 사람은 그가 얼마나 위대한 생각을 갖고 그 생각을 실천하며 살았는지 알고 충격을 받을 것이다. 간디는 정말 위대한 영혼이다. 1869년 인도 서부의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나 1948년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융화를 위해 노력하다 이슬람 극우파 청년의 흉탄에 쓰러지기까지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아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얼마나 아름답게 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간디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의 산상수훈을 수없이 많이 읽고 묵상했으며 어쩌면 산상수훈의 말씀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성경을 읽고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다. 이기심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원수를 포용하며, 언제나 겸손하고 정직하고 순결한 삶을 살고자 한 그의 모습은 나를 정말 부끄럽게 만들었다.
제자사역의 원리는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간디는 언제나 "나의 삶이 나의 메시지이다"라고 말했고, 정말 그는 행동과 삶으로 말을 했다. 그런 점에서 제자훈련을 강조하는 어떤 선교단체나 교회보다도 어쩌면 그는 더 참되고 성실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간디보다 더 분명한 진리의 빛을 보았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그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참되게 반응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깨끗하고 참되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디는 지나치게 작은 문제를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그 부끄럽게 생각하는 점을 반드시 고쳤다. 이런 모습이 우리의 삶에 나타난다면 하나님을 정말 기쁘시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성경공부 교재에도 그의 이야기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한 일이 있었다. 한번은 소금이 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부인에게 권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소금 없이 어떻게 음식을 먹냐고 하면서, 당신도 안 해본 것을 왜 나보고 하라고 하느냐는 면박을 듣자, 그는 그 후 10년을 아무 말 없이 소금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그 유익을 확신한 후 다른 사람에게도 소금을 먹지 말라고 권하기 시작했다.
또 평생 그는 '아힘사'라고 해서 사랑과 비폭력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선으로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호수 물을 나뭇잎으로 한 방울 씩 떠서 옮겨 놓고 또 이렇게 계속하여 호수 물 전체를 옮겨놓는데 필요한 그러한 무한정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람들을 총검으로 때리고, 찌르고, 쏴 죽여도, 그는 오직 비폭력과 무저항주의를 지켜나가도록 그들을 인도했다. 그는 증오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가르치며, 비폭력의 확실한 실험은 가장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적의도 남기지 않고 결국에 가서는 원수를 친구로 만드는 데 있다고 했다. 그는 남아프리카에서 스머츠 장군과의 관계에게 이것을 실천했다. 처음에 그는 가장 가혹한 적수이며 비평가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가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또 30세가 넘어서 부부생활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부인을 설득했는데, 결국 4번 실패한 후에 다시는 부부생활을 하지 않았다. 젊었을 때 친구들과 안 좋은 여자들이 있는 집에 가서 타락할 뻔 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신께서 거기서 죄를 짓지 않도록 이상하게 막아주셨고, 그 이후에는 성적인 죄를 지을 기회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것을 신의 은혜라고 말했다. 그는 마음과 육체의 순결을 중시하여 진리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브라마차랴(독신을 의미하는 말로서 이는 곧 마음과 육체의 순결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를 요구했다. 그는 성생활을 이기심의 발로로 본다. 그러다 보니 진리를 추구한다면 부부 사이에도 육체와 마음의 순결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은 결국 부부생활을 포기했다. 그를 따르는 사람은 결혼한 후에도 그가 한 것처럼 부부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는데 그것을 '해혼(解婚)'이라고 한다. 진리를 추구하고 위해 부부생활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간디가 기차를 타다 신발을 한 짝 떨어뜨린 얘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는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올라탔다. 그 순간 그의 신발 한 짝이 벗겨져 플랫홈 바닥에 떨어졌다. 기차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간디는 그 신발을 주울 수 없었다. 그러자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벗어 그 옆에 떨어뜨렸다. 함께 동행하던 사람들은 간디의 그런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를 묻는 한 승객의 질문에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바닥에 신발 한 짝을 주웠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에게는 그것이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머지 한 짝마저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의 무소유 정신도 유명하다. 그는 자기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받지 않아야 하며, 소유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음식이나 의복, 가구 따위를 소유하는 것은 이 원칙에 위배된다. 예를 들어 의자가 없이 지낼 수 있다면, 그 의자를 소유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원칙을 지켜나가면서 그는 평생 청빈한 삶(Simple life)을 살고자 했다. 그는 이런 청빈한 삶이 가장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적게 준다고 보았다.
그는 또한 이기주의 속에 모든 문제가 있다고 보고, 철저한 겸손의 빛으로 이 에고이즘의 어둠을 걷히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금식을 행했지만 자신을 위해서 금식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는 회개로서의 금식, 기도로서의 금식, 최후수단으로서의 금식 등 수많은 금식기도의 체험을 언급한다. 그는 말한다. 기도 없이 금식 없고 금식 없이 기도 없다고.
그가 흉탄에 맞아 죽어가면서 마지막 외친 말은 "신이여!"였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했으면서 성령을 받지 못한 자연인이 막연한 하나님을 그토록 진지하게 추구하며 훌륭하게 있었는지 놀랍다. 어쨋거나 간디의 <나의 진리실험이야기>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변명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간디로부터 좀더 발전하여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자이나교의 마하비라나 이슬람 이단 종파의 목사였던 말콤 엑스를 접하면서 '원죄'에 대한 정통신학의 생각에 대해 재고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원죄는 생명의 무능이지 선악을 실천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무능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자연인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다면 성령 받은 우리는 얼마나 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안 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우리가 강퍅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려 죄를 짓는다면 이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도 그만큼 커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누가 예수님의 공로 없이 아무리 훌륭하게 산다 해도 그는 죄인이다. 그리고 멸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분명하다.
2001년 필드오퍼레어션을 갈 때 묘한 이야기를 읽었다. 간디가 성적 유혹을 자신이 얼마나 극복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늙어서도 자기 손녀를 벌거벗게 한 후 자기와 잠자리를 같이 한 일이 있었는데(물론 아무 일도 없었지만) 이런 그의 지나친 실험정신이 네루를 크게 자극했다고 한다. 그 훌륭한 간디가 그럴 수 있었을까 참 상상하기 어려운 엽기적 행각으로 보이지만 사실인 것 같다. 아무리 훌륭해도 역시 간디는 죄인이었다. 온전한 인간은 못되었다. 그러나 참되게 살려고 한 그의 삶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의 진리실험이야기>는 한길사에서 함석헌 번역으로 낸 것이 좋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간디의 명상록이라 할 수 있는 <날마다 한 생각>도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호미에서 함석헌·진영상 번역으로 낸 것이 있다. 나는 <날마다 한 생각>을 읽고 이용도 목사의 전기나 찰스 피니의 자서전을 읽을 때처럼 대포로 맞는 것 같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이래저래 목사치고는 너무 간디에게 심취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최근 인도는 총선에서 야당인 국민의회당이 압승했다. 그동안 인도인민당인 BJP가 인도 정치를 지배했기 때문에 선교사들의 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앞으로 네루-간디의 당인 국민의회당이 인도에서 계속 힘을 갖는다면 선교사들의 활동에 유리한 점이 많을 것이다. 우리 형제자매들뿐 아니라 인도인들이 더 간디에게 주목하여 네루-간디당인 국민의회가 인도에서 더 힘을 얻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