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 구절초 꽃동산 매죽학교 교사였다
옥정호 구절초 축제 만경대 학교에서 그림을 그렸다
1971 여기는 교사의 유배지로 내가 여기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가르첬다
바른소리하다 좌천되어 왔던 이곳에서 이제는 옥정호 구절초 관광지로서 이름이 나고 있다
이 사진의 강물 가운데 중앙 둥근 산이 구절초 관광지이다
1971년에는 상투쟁이라는 노인이 청학동사람처럼 살고있었다
"건넌들산"이라고 했다
어렵게 살면서도 산천을 무릉도원으로 노래하며 산골애들을 가르친곳이라서 추억의 그날을
글로 적어본다
그리고 그날의 그학생들의 어른된 얼굴을 찾아본다
교사의 유배지 억울하게 좌천되었지만 뮤지컬 아동극에 농악대 창설을 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초등학교 장학사의 오만하고 비리투성이를 벗어나려고 중등학교 미술교사 검정고시를 통과하여 미술교사로서 그리고 국악교육 신지식인으로 오늘에 그 구절초 산천의 추억을 찾아본다
교사 유배지 산내면 학교 학예회에 뮤지컬 아동극을 가르치려다 그죄로 유배되어간 구절초 만경대,
60년대 정읍시 산내면은 칠보발전소 댐공사로 수몰되어 6개의 초등학교로 분산되었다. 그래서 초임 교사나 '로비에 어두운 참교사'가 문제 교사로 낙인 찍히면 좌천 발령되는 지역이였다.
6.25의 참화로 생지옥 같았던 전후 산내
산내면은 6.25의 전쟁의 치열한과 그 학살로 모든 마을이 불타버렸다. 파란 만장하고 험하게 당하고만 살아온 산내면의 이야기다. 6.25가 할퀴고 간 가장 참혹한 지옥으로 움막을 짓고 살다가 겨우 초가집을 세우고 사는 정읍에서 최소 인구를 지닌 면지역이다.
1920년대는 남한 최초의 거대한 댐공사로 남사당패, 판소리 협율사 창극단들이 공사장 인부들의 위안공연차 자주 왔었고 흥부전에서도 흥부가 이곳 (태인 산안 山內)으로 살려고 왔다고 기록된 풍요로움의 역사도 있다.
1920년대는 남한 최초 댐공사로 남사당패 공연으로 흥청거렸었다
그래서 산내는 예술의 맛을 알고 있는 지역이긴하나 최악의 전쟁지옥으로 걸인같은 목숨부지의 세월이 기니 문화예술은 생각도 못하고 유명한 '너디장', '능다리장'도 없어지고 유랑 가설극장도 없다
일제시대 능교국민학교의 학예회를 본 적이 있지만 6.25 전쟁후에는 전무했다. 거기에다 해마다 학년초에 좌천 교사 몰입으로 어수선한 복식수업에다 결강과 자습이 빈번했고 예술제서 뮤지컬 아동극은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산내 학교들은 '문제 교사'들이 좌천돼 가는 교사 유배지
심지어 그 당시 면 소재지 능교국교는 정신질환를 앓던 교사도 있어서 공포 불안을 느껴 일부 교사들이 분교인 매죽초등으로 자원했다고 했다. 그래서 교무주임을 교대를 갓 졸업한 신규 교사(후에 초등교육국장승진)가 맡아야 했다.
전쟁과 교육 행정이 부패된 교사 인사로 힘없는 산골의 학부형과 학생들은 수업 결손이 빈번한 응달에서 살았다. 힘없는 산골은 교육이 낙후된 최악의 지대였다.
학교장과 장학사의 인사 권한은 독재 전제 수준
1971년 당시 정읍교육청 H장학사는 박정희 군사독재의 칼인 신모 검찰총장이 동창생이라하여 당당하게 박모 장학사와 인사를 담당했다.
예나 지금이나 승진은 학생에 대한 애정과는 무관하였다. 교사가 승진이 되는 근무점수는 학교장과 장학사의 고유 비밀 권한이였다.
피해 교사가 그 점수를 밝히면 기밀누설죄가 되어 범죄가 된다. 지금도 이 제도는 한국이 세계 부정부패 상위국이 된 근본이며 사교육으로 달리는 부패 제도로 보인다.
이곳에 조선중종의 후궁 희빈이 데려간 대장금이 살던 장금산 성황당의 사진이다
아부도 로비도 못하면서 뮤지컬한다, 국악교육한다 해서 미운 털 박혔으니...
이러한 시기에 아부와 로비는 못하면서 뮤지컬 아동극과 국악 교육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기자는 산내면 유배지 매죽초등학교에 좌천되었다.
부패한 교육행정을 실감하고 교육청에 가서 고함을 퍼붓고 아예 사표를 쓰려고 산내면 유배지 매죽초등학교에 가 보았다.
마침내 산내 매죽초등학교로 유배를 가게됐고
당시 산내면의 모든 학교는 학년초에는 결강 투성이었다. 그때무네 매죽초등학교 김팔용 육성회장이 기자의 손을 잡고 학생에게 부임인사라도 해달라고 했다.
매년 3월 신학기 학교에온 학생 교사의 얼굴도 못보고 그냥가는 게 다반사라고 했다
사표쓰려고 가서 이 (고희주)학생의 얼굴 의험악한 흉터를 보고 나는 예술가의 꿈을 접고 교사로 남았다
안경쓴 남자가 고희주학생이였다
너무나 헐벗고 가난한 산골 학생들의 상처투성이 얼굴과 초라한 표정보는 순간 불쌍한 느낌에 마음이 아팠다. 학생들은 부모가 버린 고아같이 보였다. 내가 사표를 쓰면 또 문제 교사가 오고 또 결강과 자습이 몇 달씩 반복됨은 분명해 보였다.
나는 이들이 지금 동창회 때마다 나를 초청하면 이 고희주 학생을 만나서 그 날의 이야기를 한다
사표 쓰겠다 결심하고 한번 가서 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전국의 산골 오지 출신 학생이면 학년초에는 수업도 못하고 돌아오는 이런 교실 풍경을 대부분 연상한다고 한다.
그래서 영원초등학교, 칠보초등학교, 산성초등학교에서 매년 어린이날 학예회 때에 무대에 올렸던 뮤지컬 아동극, '풍선가게 고양이'를 5월 5일에 학부형과 산내면 주민앞에서 공연하였다.
산골 오지 학교, 학년초면 결강과 자습으로 점철
그리고 매죽초등학교 교가와 매대북당골(매죽리 지명)노래를 지어 가르처 주었다. “만경대 굽이치는 맑은 물 위에 새싹들이 배움찾아 여기 모였다....” 라는 그마을 고유명사 “만경대” “사리목” “매대북당골”에서 산골의 애들은 더욱 감동하고 그 노래를 늘 불렀다.
그리고 만경대 물가 강변에서 질렁구(큰새우), 가물치, 물고기 등을 잡으러 가자고 체육시간에 졸라대었고 음악시간이 되어도 기다렸다는 듯이 농성으로 외치며 만경대 시냇가로 가자고 졸라대었다.
매죽초 교가, '매대북당골'을 지어 힘차게 부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