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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언(靈言)
그런데 다음은 넓은 의미에서는 영청 능력 속에 포함되는 것도 가능하지만, 「영언 능력」이라는 것이 있다. 나 자신도 여러 가지 형태로 이미 많은 영언집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주 2020년 시점에서 공개 영언 시리즈를 500권 이상 발간) 그것과 마찬가지이다. 영언이란 「인간의 육체, 육체 기관을 통해서 영에게 말하게 하는 형태이다.
이렇게 「인간의 음성 기관을 통해 영에게 말하게 한다」는 형태는 예전부터 영적 능력의 하나의 전형으로서 있어 왔다. 예부터 있었던 것이다. 고대에는 샤만적 능력이라고도 말하고 있다. 무녀, 또는 신주, 주술사라고 하는 속에서도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가 있다고 말하여져 왔다.
이 영언 능력에도 역시 고저의 차이가 상당히 있다. 영언 능력이 낮은 것으로서는 여러 가지 저급령들이 붙어 와서 지껄여대거나 하는 영이다. 동물령이 와서 말하는 경우도 수많이 있다. 이외에 소위 무당류와 같이 사자(死者)의 영을 불러서 말을 듣게 하는 수도 있다. 방문자의 육친, 부친이나 모친, 조부, 조모 등을 불러서 그 소리를 전하도록 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이 영언 능력도 대부분은 소위 「영체질」이라는 것이고, 고급 영체질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영언을 하는 사람 자체는 모두 신의 사자(使者)인 것처럼 본인은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수가 많다. 그리고 「사자(死者)의 영을 불러들인다」라고 해도 대개 지옥에 떨어져 있는 망자(亡者)를 불러들이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지옥의 망자라면 모두 지상에 나오려고 하고 있고,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해서 그러한 영매 체질인 사람에게 와서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것은 결코 고급 영체질이 아니라도 일념삼천(一念三千), 생각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도 즉시로 통한다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이다. 다만 이것보다 위의 단계, 즉 고급령 체질로 되어 가면 대단히 어렵게 된다. 고급령의 영언을 받는 데는 그에 상응하는 「마음의 수행」이 필요하게 된다.
여기에서 설명해 두어야 할 것은 이 영계와의 통신 메카니즘이다. 어떻게 해서 영계와의 통신을 하고 있는가, 이 메카니즘은 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의문으로 생각하거나 알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결국 영적 파동의 세계라는 것은 있는 것이다. 영적 세계에 대해서는 육안으로 이해되는 형태로 「이렇게 산이 있고 골짜기가 있고 바다가 있고 이런 인간이다」라고 하는 보고를 흔히 받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으로 본 경우를 번역한 모습이다.
실제로 그런 모습이 본래의 영의 모습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번역된 모습이며, 저 세상 세계라는 것은 영적 파동의 세계이다. 여러 파장이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TV의 전파와 같은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전파”가 날아다니고 있고, 그것을 캐치해서 여러 가지 형태로 영상화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영적 세계와 교신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과 똑같은 파장의 것을 지상의 인간이 내지 않으면 통신이 불가능하게 된다. 역시 채널과 방송 전파의 주파수가 일치해야한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TV든 라디오든 방송을 수신할 수가 없다. 그런 것과 꼭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고급령의 영언을 받기 위해서는 그것과 똑같은 주파수를 그 본인이 가져야 한다는 데에서 엄한 단계의 체크가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유명한 고급령이나 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지상에 나오는 일은 흔히 있다. 그리고 전국 각지의 신사 불각, 혹은 신흥종교 그 밖의 종교, 여러 곳에서 「고급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수많이 있다. 그 중에서 돌멩이를 버리고 옥을 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결국 그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이 된다.
「과연 그런 고급령과 동일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가」라는 것이 체크 포인트로 된다, 다만 인격이라고는 해도 인격 그 자체의 레벨을 범인으로서는 재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말해진다. 거기에서 「고급령의 영언인가 어떤가, 그것을 전해야할 사람인가 어떤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에 대해서 몇 가지 말해 두고자 한다. 우선 고급령의 영언을 전하는 것이 가능한 조건, 또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조건에는 몇 개가 있다.
첫째 조건은 「그 사람의 마음이 항상 조화되어 있는가 어떤가」 하는 것이다. 자기의 일을 비판받으면 곧바로 화를 내거나 노여워해서는 문제 밖이다. 또는 미움의 염이 대단히 강하고. 질투의 염이 대단히 강하고, 증오의 염이 대단히 강하고, 이상할 정도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고, 또 이상하게 자기를 비하하는 등으로 말하는 극단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고급령은 걸려오지 않는다고 생각해면 틀림없다.
그 사람의 「마음의 조화」가 중요하다. 이것은 2천 수백 년 전에 석존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설해왔던 것이다. 여래란 해탈하고 있다. 해탈하고 있는 사람은 마음이 평온하다, 무엇에도 사로잡히지 않는다. 마음 평온하게 나날이 술술 흘러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여래의 경지이다. 이런 것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설하고 있던 것이 경문 속에도 남아있다.
마음의 조화라는 것,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나날이 마음 평안히 살고 있는가 어떤가」 「풍파가 마음에 일어나지 않는가 어떤가」라는 것이다. 악령에 빙의되어 있거나, 마왕에게 빙의 되어 있거나 하는 사람들은 대게 즉시 발끈 화를 낸다. 「화가 머리까지 오르고, 안절부절하거나 또는 푸념만 늘어놓는 경향이 있는 사람은 고급령 체질은 아니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러 곳에서 종교 수행을 하고 있거나, 선생이라고 불리거나 하는 사람이 수많이 있을 것이지만. 선생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 되겠지요. 마구 「신벌이 내린다」든가 「앙화를 입는다」 등으로 말한다. 그 뒤 「이 모임에서 빠져나오면 자네는 죽을 것이다」라고 위협하거나 「모임에 들어오지 않으면 큰일 날 앙화가 있다」라고 말한다. 사람을 보면 「몇 대째가 앙화를 입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구제받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터무니 없는 돈을 요구하거나 한다. 이런 류는 대개 완전히 악령에 사로잡혀 있는 교조이다. 그런 것에는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이렇게 마음의 조화가 첫 번째이다.
제2의 조건은 「실적」이다. 이것은 행복의 과학에서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실적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빛의 천사라면 빛의 천사인 정도의 실적을 만들어 낼 터이다. 즉 세상 사람들을 정말로 향상시키고 있는가, 지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지도를 받은 사람들이 잘되어 있는가 어떤가라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실적의 부분 「정말로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게 되었는가, 그 사람과 접촉해서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점이 체크의 기준이다.
우선 「만난 사람들이 행복해졌는가, 향상했는가. 인간적으로 잘 되어있는가 어떤가」라는 면이 하나이다. 또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는가」라는 것도 있겠지요. 입으로는 「인류 구제」라고 말하면서, 실제 행(行)은 어떤 것인가, 그대로 하고 있는가 라는 것이다, 자기들의 단체를 지키기 위해서만 행동하고, 남을 비방하거나 중상만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 것이어서는 빛의 천사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실적」이 중요하다. 그 실적으로서는 행동면과 그 사람이 해온 것, 말한 것, 혹은 쓴 것 등의 이런 것의 전체가 판정되게 된다. 그만큼의 실적이 있는가 어떤가 이다. 「나야 말로 빛의 대지도령이니라」라고 말한다면, 그 만큼의 것을 남기고 있다. 역사상에 나와 있는 빛의 지도령들은 모두 그만큼의 것을 남기고 있다. 확실하게 실적을 남기고 있다.
60, 70세가 되어서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있는 사람에게, 그 정도의 큰 인물은 없는 것이다. 그것은 「40세가 되어 혹은 50세가 되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으면 두려워할 것 없다」라고 하는 말로도 알려져 있듯이 그 정도의 사람이라면 역시 그 정도의 것을 내놓게 될 터이다. 어딘가에서 혼의 번득임이 나온다. 그 나름의 것이 나온다.
그래서 세상에서 「자기는 위대하다, 위대한 천사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반생, 과거를 잘 돌이켜 볼 일이다. 많은 상처투성이의 인생, 열등감에 찬 인생을 보냈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다시 일어선 경우는 그 나름대로의 것이 있지만, 거기에서 도망치기 위해 그 열등감의 보상작용으로서 「자기가 훌륭하다, 훌륭하다」고 말하는 듯이 되면, 이것은 미심쩍은 것이라 생각해도 틀림없다.
어떠한 곤경이 있어도 위대한 사람이라면 그 나름의 혼의 빛남을 발휘할 터이다. 그러한 혼의 빛남이 있는가 어떤가를 잘 체크해야 한다. 나아가 고급령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는 사람인가 어떤가를 체크하기 위한 제3의 판단 기준은 「영언 그 자체의 내용」에 있다.
영언 속에는 고급령이 말하는 영언은 수많이 있다. 다만 지상의 인간으로서는 그런 이름의 사람인가 어떤가를 판단하기란 매우 곤란하다. 8백년 전, 혹은 천2백년 전, 2천년 전의 그것인가 어떤가를 판정한다는 것은 대부분 곤란하겠지요. 그 당시의 일을 질문한다 해도 당시의 자료는 충분히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매우 곤란하다. 여기서 판단하는 기준은 역시 그 영언의 내용 자체, 알맹이 자체에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고급령의) 영언의 내용, 알맹이를 어떻게 해서 판단하면 좋을까요. 「그것이 진짜일까 어떤가」를 구별하는 기준이 세 개 있다. 내용을 판정하는 기준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그 영언 속에 「하나의 기품이 있는가 어떤가」이다. 지상 사람이 말한 말씀으로서 그 나름의 인격의 기품이 느껴지는가 어떤가, 고귀한 느낌이 스며있는가 어떤가, 향기가 있는가 어떤가, 그 고귀한 분위가가 스며있는가 어떤가이다.
이러한 기품이 있는가 없는가, 이것이 문제이다. 「자기는 위대하다 위대하다」라고 선전하고 있을 뿐이거나, 혹은 사람들에게 가차 없는 말을 하고 있을 뿐이어서는 안 된다. 고급령이라면 그 말 속에 고급령에는 그 나름의 기품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이 있는가 어떤가 이다. 이 기품 속에는 「겸허함」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겸허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 어떤가 이다. 위대한 분이면 분일수록 겸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나만이 위대하다」라는 식의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필요한 경우가 있어서 그런 것을 할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겸허하다. 그 겸허함이 있는가 어떤가 이다.
내용의 판정 기준의 2번째는 결국 「그 내용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가」이다. 영언의 내용, 목적이 사람들의 행복을 원하는 내용인가 어떤가를 보아야한다. 내용아 사람들을 불행하게 할만 한 문구로 차있는 것은 경계하여야 한다. 내용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불행하게 할수 있을까」와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큰일이다. 그런 것은 역시 피해가야 겠지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조금이라도 향상시킬 수 있는가」라고 하는 열의가 있는가 어떤가 라는 판정 기준이다. 「앙화가 있다」 「이러한 계시가 있으니 너희들 일가는 죽을 것이다」 등으로 말하는 듯한 영언이라면 그 내용을 의심하여 틀림 없다. 고급령은 그런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상당한 것이 아니면 말하지 않는다. 또는 어쨌든 사람들이 나쁘게 될 것 만을 말해주고, 나쁜 예언 만을 하는 등, 위협, 강박, 협박 등이 다분히 들어있는 것은 역시 수상하다.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복을 원하는 말인가 어떤가, 목적성이 있는가 어떤가 라는 점이 포인트가 된다.
바른 영언인가 어떤가의 판정 기준의 세 번째는 「영적 세계의 일을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어떤가」 이다. 그 영이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어떤가 라는 점이 포인트이다. 자기자신이 영인데도 불구하고 「사후의 세계가 없다」라고 말하거나 「전생윤회는 없다」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대개 악령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지요. 세상에 종교가나 또는 영능자는 수많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영능자들이 「인간에게는 전생윤회가 없다」 「저 세상의 세계, 내세는 없다」 등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이것은 완전히 악령에게 빙의되어 있다고 생각해도 틀림 없다.
우선 전생윤회의 부정을 한다. 또 하나는 「저세상의 세계에는 여러 단계가 있고, 천사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능숙하게 설명할 수 없는 영이다. 혼란과 투쟁에 가득찬 이야기 만을 하려는 영은 (고급령으로서는) 진짜가 아니다. 천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이지적인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가 어떤가, 설명이 가능한가 어떤가.
따라서 영언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것이 진짜인가 아닌가를 시험하기 위해서는, 그 영에게 영적 세계의 설명을 요구하면 된다.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식이라면 지옥령인 수가 대단히 많겠지요.
결국 자기의 경험이라는 것이 매우 어두운 세계에 갇혀있다. 그 속에서 시달림을 받고 있을 뿐인 영이라면 공상이 작용할 여지도 없다. 하물며 보살계나 여래계의 설명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세계에 대해 능숙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어떤가 라는 이런 관점에서 연구해 보라. 이상이 영언의 내용에 대한 체크 방법이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여러 가지로 일어날 것이므로 이 기준을 적용하여 판정해 주면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