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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안타깝게도 현재의 한국교회는 침체기에 접어들어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말이 더 인기를 끌고 교회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통회와 자복으로 이끄는 “메시지”보다 평안과 안락을 주는 “마사지”에 탐닉하는 성도들에게 예레미야는 경종을 울린다. 눈물의 예언자라 불리는 예레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고 실제로 체험한 유일한 예언자다. 그는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이후 계속해서 심판을 선포하며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하나님과의 언약적 의무를 다하길 유다 백성에게 권면했다. 또한 국가와 성전이 멸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백성들이 사랑과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적인 풍요를 약속하는 우상을 섬긴 데 있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버리는 우상숭배의 길에서 돌이키라는 그의 외침은 사역 초기에도 말기에도 동일했다. 야웨의 길에는 종교적인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이고 경제적 영역의 긍휼과 정의가 포함된다. 이 책은 우리가 다시금 예레미야의 선포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깨달아 예언자의 영성을 회복한다면 성서적인 신앙으로 바로 설 수 있다고 말한다.
구약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는 ‘구약 전도사’라 불리는 차준희 교수는 예레미야서를 전공한 전문학자로서 각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 『열두 예언자의 영성』, 『시인의 영성 1, 2, 3』에 이은 『예레미야의 영성』은 역사적 격랑 속에서 어떤 믿음의 영성이 하나님과 잇닿고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지 증언한다. 저자는 예레미야서의 최신 학문적 논의를 업데이트하면서 메시지의 시대적 적실성을 명증하게 제시한다. 더불어 재치 있고 유려한 글솜씨는 예레미야의 영성의 깊이와 높이를 풍성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예레미야서의 주요한 장을 선택하여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 내용을 자세히 풀이하고, 각각의 본문이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정리한다. 서론에서는 예레미야서 전체의 윤곽과 주요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다. 25강으로 나누어진 본문은 예레미야서의 주요 본문을 주석적으로 풀이함으로써 지적 수준이 높은 독자의 학문적 욕구에 대응하고, 친절하게 메시지를 풀어 제시함으로써 오늘의 적용점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전문학술서이자 일반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부록에는 “초보자를 위한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애가의 개관과 메시지”를 담아 성경을 읽기 어려워하는 초보 성도를 위한 쉬운 해설을 선보인다. 예레미야의 독특한 삶에서 뿜어 나오는 소명(1장), 공존(7장), 공감(8장), 고독(12장), 재소명(15장), 흔들림(20장), 정의와 공의(22장), 분별(23장), 새 언약(31장), 진리(44장) 등의 주제들은 예언자의 영성이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에도 매우 필요함을 말해준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주석서에 가깝지만, 예레미야의 영성을 기반으로 그의 메시지를 분석하고 친절하게 정리하여 예레미야서를 연구하는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의 예레미야서 설교 준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일반 성도들도 예레미야를 친근하고 평이하게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책 속으로
하나님은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예루살렘을 용서하겠다고 하신다. 예레미야는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처럼 예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녀야 했다. 이 장면은 창세기 18:22-32의 사건과 유사하다. 그때에는 소돔성이 멸망을 면하기 위해서 의인 10명이 필요했다. 그러나 예레미야에게는 단 한 명만이 요구된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본성이 진노가 아니고 사랑임을 다시금 발견하고, 하나님의 의도가 처벌이 아니고 용서라는 사실도 배우게 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에 맞추어 사는 사람이 “한” 사
람이라도 있다면 예루살렘 성읍 “전체”를 용서하려고 하신다.
_제4강 “용서받을 수 없는 유다 백성” 중에서
예레미야는 한편으로는 야웨의 떠나심을 탄식하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백성들이 우상숭배로 자신을 떠남에 대해 통탄해하시는 야웨의 울부짖음도 듣는다. 예언자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백성의 말도 들어야 한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자업자득으로 겪는 괴로움 앞에서 낙심하는 백성의 탄식과 그 백성에게 분노하시며 괴로워하시는 야웨의 탄식을 함께 느끼며 탄식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서 양쪽의 괴로움을 한 몸에 지니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동정과 인간에 대한 동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는 하나님을 변호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들을 변호했다.
_제7강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 중에서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백성들의 삶 속에서 사랑과 공의와 정의를 찾고 계신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종교적으로 “예배하기”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참조. 삼상 15:22; 암 5:21-24; 호 6:6; 미 6:6-8). 물론 기독교 신앙이 윤리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 기독교는 윤리보다 더 높은 가치체계다. 그러나 윤리가 없는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안타깝게도 세상이 기대하는 상식 수준의 윤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다. 오늘의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사랑과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는 “도덕적인 영성”(ethical spirituality)이 아닐까?
_제8강 “예레미야의 좌절” 중에서
예레미야는 생명과 풍요로 가는 길(“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과 같으니”)이란 사람의 지혜와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5절), 하나님에 대한 복종과 신뢰를 통하여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막의 떨기나무”(6절)가 될 것인가, 아니면 “물가에 심어진 나무”(8절)가 될 것인가. 다시 말해서 죽음과 삶의 운명은 신뢰의 대상에 의하여 결정된다. 야웨가 진정한 웰빙의 근원이다(7절). 이러한 야웨를 거부하고 사람을 신뢰하면 부패한 마음을 가진 자이고(9절), 탐욕스러운 자고새와 같다(11절). 이들의 의지와 감정을 간과하지 않고 늘 주목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신다(10절). 하늘 성소에 계시는 야웨 하나님이 참 소망이다(12절). 생수의 근원, 즉 웰빙의 근원인 하나님을 외면한 자는 졸지에 폭망할 수 있다(13절).
_제15강 “가던 길을 멈추고 자기를 점검하는 예레미야” 중에서
한 공동체의 위기는 무엇보다도 지도자가 정의와 공의를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거나 실천하지 않음에 있다. 정의와 공의의 척도는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한 대우에 달려 있다. 공동체의 필수 구성원인 약자들이 그 공동체 내에서 “우선적인 돌봄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가 정의의 도(道)와 공의의 도(道)를 재는 지표가 된다. 따라서 구약성서에서는 늘 약자들이 한 공동체의 공평과 정의의 정도를 가늠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약자들의 권리가 정당하게 보호받지 못하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다.
_제18강 “예레미야의 궁전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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