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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리풀사진방 원문보기 글쓴이: 서리풀
영화 <에베레스트>, 인간의 한계를 시험할 세상 가장 높은 곳 8,848m
장엄한 에베르스트 설경 속, 극한의 숨막히는 장면이 이어진다
시간여유가 있어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롯데시네마에서 상영되는 영화 <에베레스트>. 필자가 암벽등반을 즐겨서인지 유독 산악영화 <에베레스트>에 관심이 쏠렸다. 이와 유사한 고산등반영화로는 2000년에 제작,개봉됐던 <버티칼 리미트(Vertical Limit)>가 있다. 당시 이 영화가 필자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었고 이로 인해 등산학교 암벽반에 들어가고 결국 암벽등반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필자는 등산을 좋아하기 때문에 등산 관련 영화나 연극 등은 빠짐없이 본다. 2007년에 공연됐던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산악연극 <안나푸르나>의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미례 감독이 만든 이 연극은 안나푸르나를 오르다 숨진 고 지현옥 여성산악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당시 이 연극의 기술감독을 맡아주었던 박영석 산악인도 2011년에 안나푸르나 등반도중 크레파스에 추락하여 영영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않았다. 고 지현옥 산악인은 한국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른 산악인이며, 고 박영석 대장은 세계 8천미터급 14좌, 7대륙 최고봉, 세계 3극점 모두를 등반, 인류 최초의 산악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여 기네스북에까지 오른 분이다.
영화 <에베레스트>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버티칼 리미트>부터 간단히 되돌아보자.
<버티칼 리미트>에서 세계 최고의 산악인 로이스는 어느날 아들 피터(크리스 오도넬)와 딸 애니(로빈 튜니), 그리고 자신의 대원들과 함께 암벽 등반을 즐긴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정상을 향한 모험을 즐기던 이들은 한 대원의 실수로 팀 모두가 가장 아래쪽에 있던 애니의 자일에 매달리게 된다. 결국 대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리고 마지막으로 피터, 로이스, 그리고 애니 만이 자일 하나에 몸을 지탱하게 된다. 자일 하나로는 세 명이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아버지 로이스는 침착한 어조로 아들 피터에게 자신에게 묶인 자일을 자르라고 강요한다.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찰나의 순간. 동생 애니의 만류하는 비명 속에 피터는 떨리는 손으로 칼을 들고 아버지 로이스는 결국 추락하여 목숨을 잃는다.
3년 후. 사고 이후로 산을 버린 채 은둔한 사진작가로 살고 있는 피터는 다큐멘터리 방송 팀으로 K2등반대에 합류하게 된 동생 애니와 만나게 된다. 등반이 시작되고 기상이 악화됨에도 불구하고 등반을 강행하던 이들에게 급기야 거대한 눈 폭풍이 덮친다. 속수무책인 등반대는 하나 둘씩 죽어가고 애니를 포함한 3명의 대원들 만이 버티칼 리미트(생명체가 살 수 없는 수직한계점)의 깊은 골짜기로 빠져들며 실종되게 된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고작 22시간 뿐. 몇 시간 후 베이스 캠프의 사람들은 실종된 애니로부터 희미한 구조 신호를 받게 된다. 오빠 피터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구조대를 모집하게 되고 6명의 단원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K2와의 싸움을 시작한다.
지난 9월 24일 개봉된 영화 <에베레스트> 역시 <버티칼 리미트>와 스토리는 다르지만 상황 전개는 많이 닮아 있다. <버티칼 리미트>의 K2 봉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에베레스트의 장엄한 설경이 숨이 멎을 정도로 웅장하게 전개된다. 특히 IMAX 3D 영화여서 입체감이 관객을 압도한다. 주인공을 제외한 여러명의 동료산악인들이 극한의 재난을 이기지못하고 목숨을 잃지만, 주인공은 두 영화 모두 몇 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자 하는 열망이 가장 뜨거웠던 1996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상업 등반 가이드 ‘롭 홀’(제이슨 클락)과 치열한 경쟁 시장에 갓 뛰어든 등반 사업가 ‘스캇 피셔’(제이크 질렌할), 그리고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최고의 등반대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한다. 지상 위 산소의 1/3,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영하 40도의 추위, 뇌를 조여오는 극한의 기압까지. 높이 올라갈수록 열악해지는 기후에 맞선 이들은 마침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눈사태와 눈폭풍이 에베레스트를 뒤덮고 수많은 목숨을 위협하는 예측불허의 극한 재난이 펼쳐진다.
8,000m 이상은 인간의 육체가 생존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하는 ‘데드존(Dead Zone)’이다. 어드벤처 컨설턴트팀의 대장 롭 홀은 정상정복 후 하산도중 사경을 헤매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다가 차례로 몇몇 동료들을 잃고 자신도 죽음 직전의 극한상황에 처한다. 5,944m의 제1베이스 캠프에서도 사실상 그의 구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즈음 마지막으로 미국에 있는 롭 홀의 아내 잰과의 통화를 무전기와 위성전화로 중개해준다. “사랑해 여보, 이제 난 당신에게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눈보라 속에 파묻혀버린 롭 홀.
그러나 그는 역시 팀의 대장답게 강했다. 눈폭풍이 가라앉은 다음 날, 그는 기적처럼 다시 일어나 7,925m 제4캠프까지 스스로 내려와 구조된다. 누군가 말한다. "정상 정복은 모든 사람과 이 산의 경쟁이야. 결정권은 늘 산에 있지."
이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상연시간 내내 세계최고봉 16좌를 모두 정복한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산악인 엄홍길 대장을 생각했다. 마치 엄 대장이 영화 장면 속에서 8,749m 사우스 서미트, 8,750m 힐러리 스탭, 세계 최고봉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을 차례로 오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수염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리고 검게 그을린 얼굴의 엄홍길 대장이 정상 빙벽 에 매달려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선연하게 떠올랐다.그의 거친 숨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 했다.
“분명히 정상이 머리 위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았는데... 탈진 상태에서 어느새 산소도 떨어져 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밤이 오고 만 것입니다. 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머리 위로는 90도에 가까운 급경사 빙벽이 펼쳐졌고, 우리는 어느새 로프에 의지한 채 빙벽의 중간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래도 설벽의 튀어나온 바위 턱에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동이 틀 때까지 비박을 하기로 결심했죠. 절벽, 로프에 매달려 엉덩이를 걸친 채 우리는 8,000m 어디쯤에서 서로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무택아, 자면 안 된다. 우리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 매달려 혹여 잠이 들면 얼어 죽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로프를 붙잡고 10여 시간 절벽에서 사투를 벌이며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사이 어느새 멀리 동이 터 왔습니다. 그 때 그 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삶의 기쁨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히말라야 16좌 완등 신화의 주인공, ‘산악인의 전설’ 엄홍길 대장의 산문집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필자는 이 대목을 통과하는데 깊은 시간을 보냈다. 몇 번 책장을 덮고 눈을 감아 버렸는지 모른다. 빙벽 절벽의 로프에 매달린 10여 시간 사투의 현장이 전신을 옥죄어 왔다. ‘세상에... 어쩜 그럴 수 있을까.’
책의 무게, 그 ‘치열한 감동’을 생각하면 제목은 차라리 가벼워 보였다. 수시로 전율이 왔고, 뜨거운 눈물을 몇 번이나 훔쳤는지 모르겠다. 생사의 고비 속에서 벌이는 사투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진한 동료애, 조난당한 지 1년 후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네팔로 향한 ‘휴먼 원정’ 등 꾸밈없이 풀어 놓은 구어체의 문장들은 마치 8,000m 히말라야의 살점 같았다.
6년 전인 2009년 7월 13일 오후 3시. 당시 여성산악인 고미영 대장의 실족 비보가 전해진 바로 다음날 나는 장충동 엄홍길 휴먼재단 사무실에서 약 1시간 동안 그와 특별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주요 방송신문 등이 단 몇분간이라도 그의 견해를 듣기 위해 치열한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 필자는 참으로 운좋게도 무려 1시간이나 엄홍길 대장과 인터뷰가 가능했던 것이다. 고미영 산악인의 사망은 꿈에도 생각해보지못하고 엄홍길 대장과 이미 한달전 쯤 사전 약속을 잡아두었기 때문이었다. 필자와 만난 엄홍길 대장의 표정은 무척 무거워보였다. 핏줄 같았던 동료들를 산에 묻은 참혹한 슬픔이 다시금 가슴을 후벼 팠을 것이다. “고미영은 산에 대한 열정으로 늘 긍정적이고 엔돌핀과 자신감이 넘쳤던 후배” 였다며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 로프를 설치 안 해도 되는 구간이라 안했을 겁니다. 사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곳에서 나거든요. 저도 사고가 날 지점이 아닌 곳에서 사고를 당했고... 히말라야는 어느 산이든 쉬운 산이 없어요. 저는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사고와 희생, 실패의 경험 속에서 깨달은 거죠.”
엄홍길 대장은 히말라야에 38번 도전했고 그 가운데 정상 정복에 성공한 것은 20번. 18번은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10명의 동료를 잃었다.
“분명한 건 욕심을 부리거나 평상심, 초심을 잃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루게 했어요. 16좌 등정 제가 잘나서? 아닙니다. 기술력, 체력, 정신력 등 완벽한 조건을 갖췄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수많은 성원과 동료들의 희생이 있었고 결국은 산이 저를 받아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지요. 8,000m급 이상은 히말라야 신이 정상으로 이끌어주고 밀어줘야 가능합니다.” 처음에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지금의 그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실패가 지금의 그를 만들어냈고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지혜도 줬을 것이다.
‘전설적인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이제 다시 인생의 8,000m 봉우리를 오르고 있다. 엄홍길 휴먼재단 상임이사로, 상명대학교 석좌교수로, 대한산악연맹 대회협력위원장으로서 산악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주)밀레 홍보팀 상무이사도 맡고 있다. 이중 가장 전력을 쏟고 있는 일은 역시 엄홍길 휴먼재단이다. 사실 필자는 2008년 휴먼재단 출범 소식을 접했을 때 그가 일궈낸 16좌 등정 못지않게 뜨거운 느낌을 받았었다. 불멸의 도전정신과 휴머니즘. 과연 히말라야의 영웅다운 ‘아름다운 유산’이 되겠구나 싶었다.
“나누는 일이죠. 살아남은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히말라야의 신이 산을 내려가서 이 일을 하라고 가르침을 주신 거죠. 16좌 목표에 가까이 갈수록 간절해졌어요.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데... 대원들을 10명씩 잃어가면서 살아 있다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생사의 고비마다 죽을 힘을 다해 빌었어요. 저를 산에서 보내 주셔야 합니다. 꿈을 이루게 해주시면 저도 살아남은 자로서 인생 살아가는 동안 이러이러한 일을 꼭 하겠다고. 은혜가,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히말라야로부터 받은 ‘은혜’를 되갚고자 그는 2008년 6월 십시일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휴먼재단을 만들었고 히말라야 산간오지의 교육, 의료, 보건환경 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엄홍길 대장은 16좌 완등 이후 네팔에 16개 학교를 짓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동안 그는 후원금 등을 모아 지상에서 가장 높은 해발 4,050m에 있는 팡보체 마을에 어린이 학교를 짓는 등 현재 8개 학교가 설립됐고 올해 말 2개 학교가 추가로 완공될 것 같다. 3~4년 후면 나머지 학교도 완공될 예정이다. 그러면 인생의 두 번째 목표도 이뤄내게 된다. 혹시 그 이후의 도전 과제는 무엇일까?
“히말라야 산간 오지 마을 아이들은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의료시설도 없는 환경에서 생활을 해요. 남은 인생 동안 봉사도 하면서 은혜를 갚는 일을 하고 싶어요. 동료 유가족들의 생활과 자녀 교육도 지원해 주고요. 산을 오르면서 깨달은 점과 수많은 생각들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자연을 통해, 산을 통해 도전과 모험정신을 키울 수 있도록 해주고 싶고 히말라야에서 생생히 목격한 지구환경의 변화, 자연환경 보호에도 힘을 쓰고 싶습니다.” 그는 이어 "학교는 완공이 끝이 아닙니다. 계속적인 보수와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운 학교들은 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인데 마지막 16번째 학교는 초·중·고, 전문대학까지 함께 세워 하나의 타운을 이루는 프로젝트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또 국내에서 세우고 있는 가장 큰 목표도 있습니다. 남북 대학생 155명을 선정해 한라에서 백두까지 함께 종단하는 것이지요. 지구 곳곳을 다니며 세계가 하나라는 걸 몸소 체험했습니다. 한반도 만 그렇지 못합니다. 남과 북의 학생들과 함께 내 두 발로 백두산에서부터 내려와 한라산을 밟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라고 말한다.
엄홍길 대장은 늘 목에 오색무늬의 목걸이를 하고 다닌다. 히말라야에서 난 원석, 터키석과 산호석으로 만든 것으로 96년부터 걸고 다녔다는 대답이다. 액세서리가 아니라 자신을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부적이다.
“히말라야는 바다가 산맥으로 되지 않았습니까? 바다의 흔적들이 아직도 많아요. 산에 암염도 나고 산호석도 나고 암모나이트 화석도 나고 그렇습니다. 산호석 원석에 이런 무늬가 나는데 마치 사람의 눈 모양 비슷하게 생겼어요. 라마불교를 믿는 티베트 사람들은 부처님의 눈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3의 세계를 꿰뚫어보는 예지력,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도 하지요. 잡귀, 악귀, 좋지 않은 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다시 인생의 8,000m를 오르기 위해 엄홍길 대장은 ‘휴먼재단 베이스 캠프’를 차리고 계속 도전, 또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지금 오르고 있는 산들은 바로 이웃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의 산들일 것이다. 히말라야보다 더 높고 더 춥고 더 외로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남은 者’가 할 일이란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영화 <에베레스트>는 필자를 비롯한 관객들에게 엄홍길 대장이 오른 8,000m 고봉들과 자연의 위대함, 그리고 현재 그가 펼치고 있는 ‘휴먼재단’의 숭고한 뜻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글/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