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죽오곡주, 송화백일주.

사찰에서 전승되어온 송죽오곡주, 송화백일주 전주전통술박물관에 가면  전주 한옥마을에는 1900년대 초부터 1970년대까지 지어진 근현대의 한옥 700여 채가 남아있다. 전주시에서는 2002년 월드컵 무렵부터 이 한옥마을에 한옥체험관, 공예품 전시관, 전통문화센터 등을 지어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옥마을 한켠에는 전통술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전주는 예로부터 음식이 발전한 고장으로 음식의 한 갈래인 전통술 또한 다른 어느 지역보다 발달되어 있다. 이는 호남평야를 끼고 있어서 술을 빚을 수 있는 곡식이 풍부하였으며, 여기에 술에 들어가는 부재료인 국화, 솔잎, 송화, 진달래 등의 꽃과 약재들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서 집집마다 색다른 가양주가 무수하게 남아 있었다. 전통술박물관은 이러한 전주 지역의 술문화를 살필 수 있으며, 또한 직접 술빚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다. 어쩌면 전주에 술박물관이 생긴 것도 우연은 아니리라.  전주전통술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 가운데 절에서 가져온 유물이 있다. 소줏고리와 무량(無量)이라 쓰인 탁본이다. 이 유물들은 모악산의 수왕사라는 절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수왕사는 한글로 하면 물왕이 절이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최고의 물을 뽑는 경진대회가 있었다. 그 대회에서 수왕사의 석간수가 1등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절 이름 또한 물왕이 절이 되었으며 한자로 써서 수왕사가 된 것이다. 물왕이를 되뇌다보면 불교와 잇닿는 단어가 무량이다. 과거 누군가 이 무량이라는 글자를 수왕사 근처의 바위에 새겼다. 술박물관에서는 이 글자를 탁본하여 전시하고 있다.  절에서는 직접 김치, 된장, 고추장 등 많은 발효식품을 담아 먹다보니 발효 문화가 발달하였다. 술도 예외가 아니어서 절에서는 술을 곡차라 하였다. 찬바람이 도는 산 속에서 수행을 하다 보면 찬 기운이 들고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 고산병이 찾아든다.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선승들은 곡차를 빚어 마셨던 것이다. 수왕사를 중창한 진묵대사(1562-1663)는 물왕이절의 석간수를 이용해서 곡차를 빚었다. 그 술이 바로 송죽오곡주와 송화백일주이다. 이 술은 수왕사에서 스님들에게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지금은 벽암스님이 송죽오곡주와 송화백일주의 명맥을 잊고 있다. 하산(下山)한 술 송죽오곡주와 송화백일주  어린 시절 출가한 벽암은 수왕사에 들러 스승인 벽우스님을 만났다고 한다. 벽우스님은 첫 만남에서 벽암을 수왕사의 주지로 점찍었으며, 자연스럽게 술 빚는 법도 전수해주었다. 벽우스님에게 전수받은 송죽오곡주와 송화백일주는 몸에 좋은 수많은 약재가 들어간다. 먼저 송죽오곡주는 쌀, 콩, 팥, 조, 수수 등의 오곡에 솔잎, 댓잎, 구기자, 오미자, 국화 등의 약재를 넣어 빚는다. 각종 재료가 불협화음 없이 서로 잘 어울린다. 술빛깔은 노르짱하며 입에 털어 넣으면 그 향이 무엇보다 일품이다. 송화백일주는 증류주다. 잘 발효된 송죽오곡주에 송화가루를 넣어서 증류를 한다. 송화가루는 모악산 인근에서 채취한다. 봄철 송화가루가 날리는 날 벽암스님은 모악산의 능선을 타며 송화가루를 채취해 놓는다. 쌀을 주재료로 하여 산수유, 구기자, 송화가루 등을 사용하여 만든 밑술을 증류하면 알콜 도수 38도인 송화백일주가 만들어진다. 송화백일주는 송화냄새가 무척 향긋하다. 이 송화의 향긋한 냄새를 일본인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송화백일주는 일본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절에서만 전수되던 술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벽암은 15년 전에 송화백일주와 송죽오곡주를 하산 시켰다. 바로 산에서 내려와 송화양조라는 술도가를 만든 것이다. 항아리에서 빚던 술을 공장에서 대규모로 빚다 보니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다고 한다. 어떨 때는 몇 가마의 쌀로 빚은 술이 몽땅 잘못되어 버린 적도 있다고 한다.  벽암은 대규모로 빚어지는 술의 안정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급속하게 열이 오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냉각기를 개발하고, 잡균의 오염을 줄이기 위해 양조장의 소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년여의 노력 끝에 송화백일주와 송죽오곡주는 상품으로 재탄생하였으며 입소문을 타고 수요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지역에 가더라도 그 지역에서 나는 명주를 마시는 것이 쉽지 않다. 소주와 맥주에 치여 식당에서 지역의 술을 들여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벽암의 술은 지역에서도 인기가 있어 식당에 가면 손쉽게 접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생활문화가 원형에 가깝게 존재하고 있는 곳이 전주다. 그래서 전주는 낙후되었지만 전통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술도 예외는 아니어서 집에서 빚어 마시는 가양주 문화가 잘 살아 있다. 또한 막걸리만 시키면 안주가 무료로 나오는 막걸리집은 외지인의 눈을 휘둥그러지게 만든다. 뿐인가! 다음날의 숙취를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콩나물 국밥이 또 뒤를 받치고 있다.  단풍이 물이 드는 가을날! 문득 한 잔의 술이 그립다면 전주로 떠나보라. 단풍드는 모악산을 올랐다가 하산하면 송화향 짙은 술 한 모금이 가을날의 정취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