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4
킬링 필드
肝腦塗地(간뇌도지)
肝(간 간) 腦(뇌 뇌) 塗(칠할 도) 地(땅 지)
사기(史記) 유경열전(劉敬列傳)에는 한(漢)나라 고조(高祖)와 유경의 대화가 실
려 있다. 유경은 고조에게 폐하께서는 촉땅과 한을 석권하고, 항우와 싸워 요충
지를 차지하도록까지 대전(大戰) 70회, 소전(小戰) 40회를 치렀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간과 골이 땅바닥을 피칠하게 되었고, 아버지와 자식이 들판에서 해골
을 드러내게 된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使天下之民, 肝腦塗地, 父子暴骨中
野, 不可勝數). 라고 하였다.
유경은 덕치(德治)가 이루어졌던 주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한나라 고조는 많은
전쟁을 치르며 땅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발생할 반발세력의 저항이나 외부
의 침략을 예상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고조에게 옛 진나라의 요충지인 함양
(咸陽)을 도읍으로 정하도록 충고하였던 것이다.
肝腦塗地(간과 뇌가 흙과 범벅이 되다) 란 전란(戰亂)중의 참혹한 죽음을 형용
한 말이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속에서 인간들이 겪어야하는 죽음의 모
습은 바로 이러한 것이리라. 지난 주 TV에 보도되었던 르완다 사람들의 죽음의
귀향 열차 91명 압사 라는 화면은 肝腦塗地 를 연상케 하였다.
015
물보다 더 미지근한 얼음(?)
靑出於藍(청출어람)
靑(푸를 청) 出(날 출) 於(어조사 어) 藍(쪽 람)
순자荀子 <권학편勸學篇>의 첫 장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된다.
군자가 말하길, 배움은 그쳐서는 아니된다. 푸른색은 쪽풀에서 취하였지만 쪽
빛보다 더 푸르며,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된 것이지만 물보다 더 차다라고 하였다
(學不可以己. 靑取之於藍而靑於藍, 氷水爲之而寒於水).
성악설을 주장한 전국시대의 학자 순자는 남풀과 청색, 그리고 물과 얼음의 비
유로써 교육에 의한 인성의 교정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악(惡)하
고 이(利)를 탐하고 질투하고 증오하므로, 스승의 가르침과 예의로써 이를 교정하
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藍 이란 본시 그 잎으로 남색 염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식물의 이름이다. 남
풀 에서 챙색을 추출하는 과정이나 물이 얼음으로 변화되는 과정은 곧 교육 을
비유한 것이니, 靑出於藍 이란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나게 변화된 것을 일컫
는 말이다. 出藍 이라는 표현도 같은 뜻이다.
진정으로 남풀 과 물 의 역할을 하는 스승, 챙색 과 얼음 으로 변화된 제자
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靑出於藍 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할지 고
민하는 스승의 날 이 되었으면 한다.
016
세 사람이 만들어낸 호랑이
三人成虎(삼인성호)
三(석 삼) 人(사람 인) 成(이룰 성) 虎(범 호)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에는 위나라 혜왕(惠王)과 그의 대신 방총이 나눈 대
화가 실려 있다. 방총은 태자를 수행하고 조(趙)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자신을 중상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을 우려하여, 위 혜왕에게
몇 마디 아뢰게 된다.
만약 어떤이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
니까? 라고 묻자, 위 혜왕은 그걸 누가 믿겠는가? 라고 하였다. 방총이 다시 다
른 사람이 또 와서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묻자 왕은 그
렇다면 반신반의하게 될 것이네. 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방총이 세 사람째 와서
똑같은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라고 하자 왕은 곧 과인은 그것
을 믿겠네. 라고 하였다. 이에 방총은 시장에 호랑이가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러
나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三人言而
成虎). 라고 말하면서, 그는 자신을 중상모략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 않기를 청하
였다.
三人成虎 란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들이 말하게 되면 진실처럼 들리게 되어
버린다 는 것을 뜻한다. 우리 사회의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말들이 혹시 진짜
호랑이를 만들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017
하루가 삼년같은 그리움
一刻三秋(일각삼추)
一(한 일) 刻(새길 각) 三(석 삼) 秋(가을 추)
시경(詩經) 왕풍(王風)에는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채갈(采葛) 이라는
시(詩)가 있다.
그대 칡 캐러 가시어 하루동안 못 뵈어도 석달이나 된 듯하고(彼采葛兮 一日
不見 如三月兮), 그대 대쑥 캐러 가시어 하루동안 못 뵈어도 아홉달이나 된 듯하
고(彼采蕭兮 一日不見 如三秋兮), 그대 약쑥 캐러 가시어 하루동안 못 뵈어도 세
해나 된 듯하네(彼采艾兮 一日不見 如三歲兮).
고대 중국에서는 일주야(一晝夜)를 일백각(一百刻)으로 나누었는데, 절기(節氣)
나 주야(晝夜)에 따라 약간 다르다. 예컨대, 동지에는 낮이 45각, 밤이 55각이었
고, 하지에는 낮 65각, 밤 35각이었다. 춘분과 추분에는 낮이 55각반이었고, 밤은
44각반이었다. 청(淸)대에 이르러서는 시종(時鐘) 으로 시간을 나타내게 되었으
며, 현대 중국어에서는 15분을 一刻 이라 한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一刻 이라는
말로써 매우 짧은 시간을 표현하였다. 一刻三秋 나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 라
는 말은 이 시의 一日三秋 라는 표현에서 유래된 것으로 모두 같은 의미이다.
一刻三秋 란 짧은 시간도 삼년같이 느껴질 정도로 그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함을
나타낸 말이다.
018
관 뚜껑에서 밝혀지는 진실
蓋棺事定(개관사정)
蓋(덮을 개) 棺(널 관) 事(일 사) 定(정할 정)
두보(杜甫)가 사천성(四川省)의 한 산골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을 때이다. 마침
그곳에는 자신의 친구 아들인 소계(蘇係)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실의에 찬 나날
을 보내고 있었다. 두보는 소계에게 한 편의 시를 써서 그를 격려하고자 하였다.
그의 군불견 간소계(君不見 簡蘇係) 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그대는 보지 못했
는가 길 가에 버려진 못을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부러져 넘어진 오동나무를/
백년되어 죽은 나무가 거문고로 만들어지며 / 조그만 물웅덩이 속에도 큰 용이
숨어 있을 수 있네. / 장부는 관 뚜껑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결정되는 법이네(蓋
棺事始定) / 그대는 다행히도 아직 늙지 않았거늘.....
이 시를 읽은 소계는 후에 그곳을 떠나 호남 땅에서 설객(說客)이 되었다고 한
다. 蓋棺事定 이란 죽어서 관의 뚜껑을 덮은 후에라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결정된다 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죽은 이의 업적을 찬양하기도 하고, 생
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80년 5월에 관 뚜껑이 덮혀졌던 많은 이들, 그들은 거의 20년만에야 자신들의
자리가 정해지게 된 셈이다.
019
낙엽에서 가을을 찾다
一葉知秋(일엽지추)
一(한 일) 葉(잎 엽) 知(알 지) 秋(가을 추)
회남자 설산훈(說山訓)에는 하나의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해가 장차
저물려는 것을 알고(見一落葉而知歲之將暮), 병 속의 얼음을 보고 천하에 추위가
닥쳐옴을 아는 것은 가까운 것으로써 먼 것을 논한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또
한 당나라 한 시인의 시(詩)에는 떨어지는 잎새 하나로 천하가 가을임을 알다
(一落葉知天下秋). 라는 구절이 보인다.
一葉知秋 는 하나의 낙엽을 보고 곧 가을이 왔음을 알다 라는 뜻이다. 이는
사소한 것으로써 큰 것을 알며, 부분적인 현상으로써 사물의 본질이나 전체, 발전
추세 등을 미뤄 알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우리들은 정치와 경제에서, 그리고 교육에서도 낙엽들을 보았으며, 지금도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로이 떨어지는 많은 잎사귀들을 보고 있다. 하지만 서양 속담에
One swallow does not make a summer(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여름이 되는 것
은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성급한 판단을 삼가라는 뜻이다. 지금 몇몇의 낙엽들
이 눈에 띄인다고 해서 가을과 겨울의 뒤를 이어 나타날 봄까지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一葉知秋 와 유사한 표현으로는 以偏槪全(이편개전) , 즉 반쪽으로
써 전체를 짐작하다 라는 말이 있다.
020
오래사는 미인은 가짜 미인
佳人薄命(가인박명)
佳(아름다울 가) 人(사람 인) 薄(엷을 박) 命(목숨 명)
소동파(蘇東坡)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송대(宋代)의 시인 소식(蘇軾)은 진사,
학사, 예부상서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정치적으로는 순탄하지 않았다. 또한 경제
적으로도 어려웠는데, 이러한 환경은 그로 하여금 심도 있는 작품을 쓰게하는 요
인으로 작용하였다. 佳人薄命 이라는 말은 그의 칠언율시 박명가인(薄命佳人)
에 나온다.
두 볼은 엉긴 우유빛 머리는 옻칠한 듯 검고 / 눈빛이 발에 비추어 구슬처럼
반짝인다. / 하얗고 하얀 비단으로 선녀의 옷을 지어 입고 / 타고난 바탕을 더럽
힐까 입술연지는 바르지 않았네. / 오나라 사투리의 예쁜 목소리 앳되기만 한데 /
한없는 근심은 전혀 알 수 없네. /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의 운명 기박함이 많
으니(自古佳人多命薄) / 문을 닫은채 봄이 지나가면 버들꽃도 떨어지리.
본래 이 시에서는 佳人命薄 이라 하였으나 후에는 佳人薄命 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美人薄命(미인박명) 이라는 말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佳人薄命 이란
미모가 뛰어난 여자는 그 운명이 기구하거나 길지 못함 을 뜻하는 말이다. 머리
에서 발끝까지 뜯어고친 여인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들은 외모를 위해 수명과
운명이라는 내실(內實)을 포기한 것일까.
021
썩지 않을 튼튼한 기둥 하나
一木難支(일목난지)
一(한 일) 木(나무 목) 難(어려울 난) 支(지탱할 지)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유의경(劉義慶)이 쓴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편(任
誕篇)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실려 있다.
위(魏)나라 명제(明帝)의 사위인 임개(任愷)는 가충(賈充)이라는 사람과의 불화
로 그만 면직당하고 말았다. 그는 권세를 잃게 되자, 자신을 돌보지 않고 무절제
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에 어떤 사람이 임개의 친구인 화교(和嶠)에게 말하길
당신은 어찌 친구인 임개의 방탕함을 보고도 구하지 않고 좌시만 하는거요? 라
고 물었다. 중서령(中書令)을 지냈던 화교는 임개의 방탕은 마치 북하문(北夏門)
이 무너질 때와 같아서 나무 기둥 하나로 떠받쳐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오(非一
木所能支). 라고 대답하였다.
一木難支 는 一柱難支(일주난지) 라고도 하는데, 이는 큰 집이 무너지는 것을
나무 기둥 하나로 떠받치지 못하듯 이미 기울어지는 대세를 혼자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음 을 비유한 것이다.
개인의 경우 방탕함으로 얻게되는 최후의 결과는 망신(亡身)이고, 나라의 경우
에는 망국(亡國)이다. 지금 우리는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방탕과 다름없는 일들이
일어 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썩지 않을 충실한 기둥을 하나 필요로 하
고 있는 것이다.
022
약속을 반드시 실천에 옮긴다
徙木之信(사목지신)
徙(옮길 사) 木(나무 목) 之(갈 지) 信(믿을 신)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은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정치가인 상앙(商 )의
법령 시행에 관한 일화가 실려 있다.
상앙은 새로운 법을 정하였으나, 백성들이 이를 믿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는
세 길이나 되는 나무를 남문(南門)에 세우고 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十
金을 주겠다고 포고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를 이상하게 여겨 감히 옮기지 않았
다. 상앙이 다시 五十金을 내걸자, 한 사나이가 나타나 그것을 북문으로 옮겼다.
상앙은 즉시 그에게 상금을 주어 거짓이 아님을 내보였다. 이렇게 하여 신법을
공포하였는데, 일년후 백성들이 그 법령의 불편한 점을 고하며 도성으로 몰려왔
다. 이때 태자(太子)가 그 법을 어겼다. 상앙은 법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이 상류
층 사람들이 범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태자의 보좌관과 그의 스승을 처형
하였다. 이후 백성들은 기꺼이 법령을 준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徙木之信 이란 약속을 반드시 실천에 옮긴다 는 것을 뜻하며, 移木之信(이목
지신) 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정치인들도 상앙의 徙木之信 을 가지고 법을 만들
어야 하며, 만든 법은 자신들부터 반드시 지키겠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주어야
한다.
023
한 끼 식사에 열 번 일어서기
一饋十起(일궤십기)
一(한 일) 饋(먹일 궤) 十(열 십) 起(일어날 기)
회남자(淮南子) 범론훈(氾論訓)에는 우(禹) 임금의 통치자로서의 자질을 묘사한
대목이 있다.
우 임금은 자신에게 도(道)로써 가르칠 사람은 와서 북을 울리고, 의(義)로써
깨우치려는 자는 와서 종을 치며, 어떤 일을 고하고자 하는 자는 방울을 흔들고,
근심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와서 경쇠를 치며, 소송할 일이 있는 자는 와서 작
은 북을 치도록 하라. 고 하였다. 이에 우임금은 어진 사람들을 맞이 하기 위해
한 번 식사하는 동안에 열 번이나 일어났으며(一饋而十起), 한 번 머리 감을 때
세 번이나 머리를 움켜쥐고 나와 천하의 백성들을 위로하였다. 이럴 때 선(善)을
다하거나 충(忠)을 나타내지 못한 자는 그 자질이 부족한 자이다. 라고 하였다.
一饋十起 란 일이 몹시 바빠서, 한 끼 밥을 먹는데도 도중에 여러 차례 일어
나야 했음 을 뜻한다. 이는 곧 통치자가 국민들을 위한 정치에 각별한 열성(熱誠)
이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는 一饋十起 하면서 열성적으로 국민을
위해 일했던 통치자가 몇이나 있었으며, 그리고 통치자들 때문에 국민들이 끼니
를 건너 뛰어야만 했던 적은 몇 번이나 있었을까?
024
일곱 걸음에 숨겨진 재능
七步成詩(칠보성시)
七(일곱 칠) 步(걸음 보) 成(이룰 성) 詩(시 시)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편에는 위(魏) 문제(文帝)인 조비(曹丕)와 그의
동생인 동아왕(東阿王) 조식(曹植) 간에 일어난 고사가 실려 있다.
문제는 동아왕에게 일곱 걸음을 떼는 사이에 시를 지으라고 하면서(文帝嘗令東
阿王七步作詩), 못지을 경우에는 국법으로 다스리겠다고 하였다. 동아왕은 대답을
마치자 마자 한 수의 시를 지었다. 콩을 삶아 콩국을 끓이고 콩물을 짜서 즙을
만드네. 콩깍지는 솥 아래서 불에 타고 콩은 솥 안에서 눈물짓네. 본시 같은 뿌리
에서 생겨났건만 서로 지저댐이 어찌 이리도 급할까! 문제는 조식의 이 시를 듣
고 몹시 부끄러웠다고 한다.
조조(曹操)와 그의 큰 아들인 조비, 셋째 아들인 조식은 중국 문학에서 삼조
(三曹) 라 칭하는 유명한 문장가들이다. 이들중 조식의 시재(詩才)가 특히 뛰어났
기 때문에, 조비는 천자(天子)가 된 후에도 조식에 대한 시기심이 변하지 않았다.
조비는 조식이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그를 죽일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어서 이러한 시를 짓게 했던 것이다. 七步成詩 는 문재(文才)가 민첩
함 을 말하며, 칠보재(七步才) 란 글 재주가 뛰어난 사람 을 일컫는 말이다.
025
지금 평양에선...
塗炭之苦(도탄지고)
塗(진흙 도) 炭(숯 탄) 之(갈 지) 苦(괴로울 고)
서경(書經) 중훼지고(中 之誥)에는 은(殷)나라 탕왕(湯王)의 어진 신하였던 중
훼가 탕왕에게 고하는 글이 실려있다. 탕왕은 무력으로 왕위를 차지한 것을 늘
괴롭게 여기고 후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구실 삼을까 염려하였다. 중훼는 이
러한 탕왕의 마음을 알고 다음과 같이 아뢰어 그를 격려하였다.
하늘은 총명한 이를 내셔서 이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夏)나라 임금은 덕
에 어두워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게 되었으니(民墜塗炭), 하늘은 이에 임금님께 용
기와 지혜를 내리시어, 온 나라의 의표가 되어 바로 다스리게 하시어, 우(禹)임금
의 옛 일을 계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분의 법을 따라서 하늘의 명을 받
드시는 것입니다.
塗 는 진흙을 뜻하고 炭 은 숯불 을 뜻하니, 塗炭之苦 란 진흙수렁이나 숯
불에 빠진 것과 같은 괴로움 을 말한다. 이는 재난(災難) 등으로 몹시 곤란한 처
지에 빠져있음을 나타낸다. 북한의 어려운 형편을 묘사함에 도탄(塗炭) 이라는
표현은 적절하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속에서 허덕이는 북한 동포들은 지금 塗炭
之苦 를 겪고 있는 것이다.
026
刻舟求劍(각주구검)
刻(새길 각) 舟(배 주) 求(구할 구) 劍(칼 검)
여씨춘추(呂氏春秋) 찰금편(察今篇)에는 융통성 없는 한 사나이의 이야기가 실
려 있다.
전국(戰國)시대 초(楚)나라의 한 사나이가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 가게 되었
는데, 그는 자신의 칼을 그만 강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는 황급히 다른 칼을 꺼
내어 그 배의 옆부분에 칼 빠뜨린 곳이라는 자국을 새기면서(遽刻其舟) 여기는
내 칼이 빠진 곳 이라고 말했다. 배가 목적지에 이르자, 그는 자신이 새겨 놓았던
곳을 따라 물 속으로 뛰어들어 그 칼을 찾으려 했다(求劍). 그러나 자신이 탔던
배는 칼을 빠뜨린 곳을 지나 계속 이동하여 왔으므로, 그가 칼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刻舟求劍 이란 뱃전에 새겨놓은 표시만을 믿고 물에 빠뜨린 칼을 찾으려함
을 뜻한다. 이는 곧 시세(時勢)나 세상 형편에 어둡거나 고지식함 을 비유한 말
이다. 법 조항이나 문구(文句)에 얽매어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경우에도 刻舟求
劍 이라는 말은 들어 맞는다.
이렇듯 현실 감각이나 융통성이 전혀 없는 사람, 반대로 시류(時流)에 지나치게
민감하거나 약삭 빠르게 앞서 가는 사람은 대사(大事)를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027
鷄口牛後(계구우후)
鷄(닭 계) 口(입 구) 牛(소 우) 後(뒤 후)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는 전국(戰國)시대의 모사(謀士) 소진의 일화가
실려 있다. 소진은 합종책(合從策)으로 입신(立身)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진(秦)나
라 혜왕, 조(趙)나라의 재상인 봉양군 등을 만나 보았으나 환영 받지 못하였다.
그는 다시 연(燕)나라로 가서 문후(文侯)를 만나, 연나라가 조(趙)나라와 맹약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해야한다는 합종의 계획을 말하였다. 문후의 후한 사례에 고
무된 소진은 얼마 후 한(韓)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그는 한나라의 선혜왕(宣惠王)
을 만나 진나라를 섬기지 말 것을 권고하며 다음과 같이 유세하였다. 이번 기회
에 남북으로 연합하는 합종책으로써 진나라의 동진(東進)을 막아보십시오. 옛말에
차라리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말라(寧爲鷄口無爲牛後). 고 하였습
니다.
마침내 선혜왕은 소진의 권유를 받아 들였다. 나머지 다섯 나라들도 그에게 설
복되었으며, 결국 소진은 6국의 재상을 겸임하게 되었다.
鷄口牛後 란 큰 집단의 말단보다는 작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낫다 는 것을 뜻
한다. 이제 대선(大選)이 가까워지면서 鷄口 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맛으로 치자면 꼬리곰탕 이 훨씬 나은 것을......
028
食言(식언)
食(먹을 식) 言(말씀 언)
서경(書經) 탕서(湯誓)에는 하(夏)나라의 폭군 걸왕(桀王)을 정벌하려는 은(殷)
나라 탕왕(湯王)의 맹서가 기록되어 있다.
탕왕은 박( )땅에서 출전에 앞 둔 전군(全軍)에 다음과 같이 훈시한다. 나는
감히 난을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오. 하나라의 임금이 죄가 많아 하늘이 명
하시니 그를 치려는 것이오. 나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니 감히 바로잡지 않을 수
없소. 하나라 임금은 백성들의 힘을 빠지게 하고, 하나라 고을을 해치게만 하였
소. 탕왕은 하나라 걸왕의 죄상을 설명하며, 계속하여 정벌의 불가피함을 외친
다. 바라건대 나를 도와 하늘의 법이 이루어지도록 하시오. 나는 여러분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니, 여러분들은 믿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爾無不信). 나는 약
속을 지킬 것이오(朕不食言).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처자식의 목숨을 담보로 제시
한다.
食言 이란 밥이 뱃속에서 소화되어 버리듯 약속을 슬그머니 넘겨 버리는 것
이니, 이는 곧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거짓을 말함 을 뜻한다.
떡값 받아 떡을 사 먹는 것으로도 모자라, 선거 때 내뱉었던 공약의 말(言)
까지도 깡그리 먹어치우는 이들은 탕왕에게서 신의(信義)를 배워야 한다.
029
越俎代 (월조대포)
越(넘을 월) 俎(도마 조) 代(대신할 대) (부엌 포)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에는 요(堯)임금과 기산에 숨어 살았다는 은자(隱
者) 허유(許由)가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요임금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이야기 하며 허유에게 천하를 맡아줄 것을 권유
한다. 일월(日月)이 밝은데 횃불을 계속 태우면, 그 빛이 헛되지 않겠습니까? 때
맞추어 비가 내리는데 여전히 물을 대고 있으니 그 물은 소용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부족하오니, 부디 천하를 맡아 주십시오.
이러한 요임금의 권유에 허유는 뱁새와 두더지를 비유로 들며 다음과 같이 거
절의 뜻를 표한다. 그대는 돌아 가시오. 내게 천하란 아무 소용없소. 요리사가
음식을 잘못 만든다고 할지라도 시동이나 신주가 술단지와 고기그릇을 들고 그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오( 人雖不治 , 尸祝不越樽俎而代之矣).
越俎代 란 자신의 직분을 넘어 타인의 일을 대신하는 것 을 말한다. 越俎
之嫌(월조지혐) 이라는 말로도 쓰이는데, 이는 자신의 직분을 넘어 남의 일에 간
섭하는 것을 꺼리다 라는 뜻이다. 일 처리가 썩 훌륭하지 않더라도, 더 나아지리
라는 희망을 갖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030
亡國之音(망국지음)
亡(망할 망) 國(나라 국) 之(갈 지) 音(소리 음)
한비자(韓非子) 십과편(十過篇)에는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진(晉)나라로 가는
도중에 들었다는 멋있는 음악에 관한 고사가 기록되어 있다.
진나라에 도착한 영공은 진나라의 평공(平公)에게 산동의 복수( 水)라는 곳에
서 들었던 음악을 자랑하였다. 당시 진나라에는 사광이라는 유명한 악사가 있었
는데, 그는 이 음악을 듣고 깜짝 놀라 이건 새로운 음악이 아니라 망국의 음악
입니다(亡國之音). 라고 말하며 연주를 중지시켰다.
사광은 그 음악의 내력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것은 주나라의 악사인 연(延)이 주왕(紂王)을 위해 만든 음탕한 음악입니다.
무왕(武王)이 주나라를 정벌하자 연(延)은 복수까지 도망와서는 물에 빠져 죽었습
니다. 그러므로 이 음악은 복수 강변에서만 들을 수 있으며, 최초로 듣는 자는 반
드시 나라를 빼앗긴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亡國之音 은 亡國之聲(망국지성)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음란하고 사치스러
워 나라를 망칠 음악 을 말한다. 최근 일부 유행가의 가사에도 음란한 표현이나
욕설 등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주왕의 음악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
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음악이라면 곧 亡國之音 이 아닐까.
031
匹夫之勇(필부지용)
匹(필 필) 夫(지아비 부) 之(-의 지) 勇(날쌜 용)
맹자(孟子) 양혜왕하(梁惠王下)편에는 춘추시대 제(齊)나라 선왕(宣王)과 맹자가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을 꿈꾸는 선왕은 왕도정치를 설명하
는 맹자에게 이웃 나라들과 사귀는 방법이 있겠는가를 물었다. 맹자는 인(仁)과
지(智)에 의한 교류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선왕은 맹자의 말에 만족하지 못하고
나에게는 한 가지 결점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용기를 좋아 한다는 것이요 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맹자는 선왕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왕께서는 작은 용기를 갖지 마십시오. 칼자루을 어루만지며 노려보면서 네가
감히 나를 당해내겠느냐? 라고 하신다면, 이는 필부의 용기입니다(此匹夫之勇).
그것은 겨우 한 사람만을 대적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청컨대 왕께서는
제발 큰 용기를 가지십시오.
匹夫之勇 이란 사려분별 없이 혈기만 믿고 날뛰는 소인들의 경솔한 용기 를
말한다. 얼마전 고층빌딩에서 돈을 뿌렸던 한 노동자의 행동을 두고 匹夫之勇
이니 호연지기(浩然之氣) 이니 하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匹夫之勇 으로 즉각
반응을 보여야 할 정치인들은 지금껏 침묵하고 있다.
032
蒲柳之姿(포류지자)
蒲(부들 포) 柳(버들 류) 之(-의 지) 姿(맵시 자)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편에는 진(晉)나라 간문제(簡問帝)였던 사마욱(司
馬昱)과 유명한 화가인 고개지의 부친이자 후에 상서좌승(尙書左丞)의 관직을 지
내게 될 고열(顧悅) 사이의 대화가 실려 있다.
고열은 간문제와 같은 30대의 나이였지만 머리가 먼저 희어졌다. 간문제가 이를
의아하게 여겨 경은 어찌하여 나보다 먼저 머리가 희어졌는가? 라고 물었다. 고
열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임금님은 송백(松柏)과 같아서 설상(雪霜)을 겪으
면서도 더욱 무성해지지만, 저는 물버들과 같아 가을이 되면 곧 잎이 지게 되는
것입니다(蒲柳之姿, 望秋而落).
고열은 사람됨이 성실하고 신의가 있었으며, 지나치게 공무에만 몰두하여 침식
(寢食)을 소흘히 하였던 까닭에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蒲柳 란 물가에서 자라는 버들 을 가리키며 수양(水楊) 포양(蒲楊) 이라고
도 한다. 蒲柳之姿 는 蒲柳之質(포류지질)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蒲柳 의 잎
이 일찍 떨어지듯 일찍 노쇠(老衰)하는 체질 또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사
람 등을 비유한 말이다. 빈둥거리며 살찌는 사람보다는 아직은 열심히 일하는
고열같은 이들이 많아 정말 다행스럽다.
033
似而非(사이비)
似(같을 사) 而(말 이을 이) 非(아닐 비)
맹자(孟子) 진심장하(盡心章下)편에는 스승 맹자(孟子)와 제자인 만장(萬章)의
문답이 기록되어 있다. 만장이 온 고을이 다 그를 향원(鄕原)이라고 한다면 어디
를 가나 향원일 터인데 공자께서 덕(德)을 해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
슨 까닭입니까? 라고 물었다.
이에 맹자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겉으로는 비슷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미
워한다(惡似而非者). 강아지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곡식의 싹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망령됨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정의를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말 많은 것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믿음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보라
색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붉은 색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향원(세속에 따
라 야합라는 위선자)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덕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 라
고 하셨다 .
似而非 란 사시이비(似是而非) 에서 나온 말이며, 겉으로는 그럴 듯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似而非 는 큰 해악(害惡)이다. 하
지만 似而非 를 가려내지 못하는 것은 더 큰 해악이다.
034
季札掛劍(계찰괘검)
季(끝 계) 札(패 찰) 掛(걸 괘) 劍(칼 검)
사기(史記)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에는 오(吳)나라 왕 수몽(壽夢)의 아들인 계
찰(季札)의 일화가 실려 있다.
계찰은 처음 사신으로 떠났을 때 오나라의 북쪽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서(徐)나
라의 군주를 알현하게 되었다. 서나라의 군주는 계찰의 보검(寶劍)이 마음에 들었
으나 감히 입 밖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계찰은 속으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지만,
사신의 자격으로 중원(中原)의 각 나라를 돌아다녀야 하였기 때문에 검을 그에게
주지 않았다. 돌아 오는 길에 서나라에 도착해보니 서나라의 군주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이에 계찰은 자신의 보검을 풀어 무덤가의 나무에 걸어놓고 떠났
다. 수행원이 그 이유를 묻자 계찰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처음부터 이미 마음속으로 이 칼을 그에게 주려고 결심하였는데, 그가 죽
었다고 해서 어찌 나의 뜻을 바꿀 수 있겠는가?
훗날 계찰은 자신에게 맡겨진 왕위(王位)마저 사양한다. 季札掛劍(季札이 검을
걸어놓다) 이란 신의(信義)를 중히 여김 을 비유한 말이다. 대권(大權)주자 가운
데에 계찰 같은 이가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035
欲速不達(욕속부달)
欲(하고자 할 욕) 速(빠를 속) 不(아닐 불) 達(다다를 달)
논어(論語) 자로(子路)편에는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거보( 父)라는 고을
의 지방관이 되어 공자를 찾아와서 정치에 관하여 묻는 대목이 실려 있다.
공자는 자하의 물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을 빨리 하려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돌보지 말아라. 빨리 하려고 들면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欲速則不達), 작은 이익을 돌보면 큰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
欲速 이란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얼른 성과를 올리려는 성급한 마음을
말한 것이며, 欲速不達 이란 서두르면 도리어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말에는 급할수록 천천히 라는 표현이 있고, 영어에는 Haste
makes waste. 나 More haste, less speed. 라는 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사람들
의 조급한 심리를 경계한 표현들이다.
얼마전 고속 전철을 달릴 TGV열차가 차고에서 세월을 보내야 할 것 같다는
보도가 있었다. 총알 같은 TGV를 좀더 일찍 굴려 보려는 성급한 마음에 철길 만
드는 일에는 정신을 제대로 쏟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036
朝三暮四(조삼모사)
朝(아침 조) 三(석 삼) 暮(저물 모) 四(넉 사)
열자(列子)의 황제(黃帝)편과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는 원숭이를 기르던
한 사나이의 이야기를 기록한 대목이 있다.
송(宋)나라에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원숭이를 너무 사랑하여
원숭이를 기르다 보니 큰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그는 원숭이들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고 원숭이들도 저공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원숭이를 사육하다 보니 먹이 대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그는 원숭이의 먹이를 제한하고자 하였으나 많은 원숭이들이 자기를 따르지 않게
될까봐 두려워서 먼저 그들을 속여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에게 주는 도토리를 아침엔 세 개, 저녁엔 네 개 준다면(若與 朝三而暮
四) 족하겠느냐?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내자, 저공은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준다면 족하겠느냐? 라고 했다. 이에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하였다.
朝三暮四 란 본시 눈 앞의 차이만을 알뿐 그 결과가 같음을 모르는 것을 비유
한 말이나, 간사한 잔꾀로 남을 속이고 농락하다 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
다.
037
民以食爲天(민이식위천)
民(백성 민) 以(써 이) 食(밥 식) 爲(할 위) 天(하늘 천)
사기(史記) 역생 육가열전( 生 陸賈列傳)에는 한(漢)나라의 역이기( 食其)라는
모사(謀士)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진(秦)나라가 멸망한 후, 한왕(漢王) 유방(劉邦)과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는
천하를 다투고 있었다. 항우는 우세한 병력으로 유방을 공격하였다. 이에 유방은
성고의 동쪽 지역을 항우에게 내주고자 하였다.
이때 유방의 모사였던 역이기는 식량 창고인 오창(敖倉)이 있는 그 지역을 지킬
것을 주장하며 다음과 말했다. 저는 천(天)이 천(天)이라는 것을 잘 아는 자는
왕업을 이룰 수 있으나, 천을 천으로 알지 못하는 자는 왕업을 이룰 수 없다. 왕
자(王者)는 백성을 천(天)으로 알고 백성은 먹을 것을 천(天)으로 안다(王者以民
人爲天, 而民人以食爲天).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유방은 역이기의 말에
따라, 곧 전략을 바꾸었다.
民以食爲天 이라는 말은 한서(漢書) 역이기전( 食其傳)에도 실여 있는데, 이
는 백성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것 임을 뜻한다. 임금된 자는 백성
을 하늘 섬기듯 섬겨야 하고, 백성들의 하늘은 임금이 아니라 곧 식량임을 알아
야 한다.
038
駑馬十駕(노마십가)
駑(둔할 노) 馬(말 마) 十(열 십) 駕(멍에 가)
순자(荀子) 수신편(修身篇)에는 무릇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고 하지
만, 둔한 말일지라도 열흘 동안 달려 간다면 이를 따를 수 있다(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則亦及之矣). 라는 말이 있다. 또한 반 걸음이라도 쉬지 않으면 절룩거
리며 가는 자라도 천리를 갈 수 있고, 흙을 쌓는데도 멈추지 않고 쌓아나가면 언
덕이나 산을 이룰 것이다. 라는 말도 있다.
駑馬 란 걸음이 느린 말을 가리키며, 재능이 없고 무능한 사람을 비유하기도
한다. 말이 수레를 끌고 다니는 하루 동안의 노정(路程)을 一駕 라 하니, 十駕
란 곧 열흘간의 노정을 말한다.
駑馬十駕 란 둔한 말이 열흘 동안 수레를 끌고 다니다 라는 뜻이다. 이는 곧
재주 없는 사람이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사람에 미칠 수 있음을 비유한 것
이다. 영어의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라는 표현과 비슷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 학습자의 능력에 따른 수준별 지도가 강조되고 있다고 한
다. 일부 과목에서 다소 부진한 학생일지라도 駑馬十駕 하듯 노력한다면 상당히
향상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039
與虎謀皮(여호모피)
與(더불 여) 虎(범 호) 謀(꾀할 모) 皮(가죽 피)
태평어람(太平御覽) 권208에는 마치 이솝 우화(寓話)와도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주(周)나라 때, 어떤 사나이가 천금(千金)의 가치가 있는 따뜻한 가죽 이불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는 여우 가죽으로 이불을 만들면 가볍고 따뜻하다는 말을 듣
고, 곧장 들판으로 나가 여우들과 이 가죽 문제를 상의하였다(與狐謀其皮). 자신
들의 가죽을 빌려달라는 말을 듣자마자 여우들은 깜짝 놀라서 모두 깊은 산속으
로 도망쳐 버렸다.
얼마 후, 그는 맛좋은 제물(祭物)을 만들어 귀신의 보살핌을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에 그는 곧 양들을 찾아가 이 문제를 상의하며, 그들에게 고기를 요구
하였다.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양들은 모두 숲속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다.
與狐謀皮 라는 말은 후에 與虎謀皮 로 바뀌었으며, 與虎謀皮 는 호랑이에게
가죽을 요구하다 라는 뜻이다. 여우나 호랑이에게 가죽을 벗어 내라하고, 양에게
고기를 썰어 내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與虎謀皮 란 근본적으로
이룰 수 없는 일 을 비유한 말이다.
040
四知(사지)
四(넉 사) 知(알 지)
십팔사략(十八史略)의 양진전(楊震傳)에는 후한(後漢) 때의 관리인 양진의 일화
가 기록되어 있다.
평소 학문을 좋아하여 유학(儒學)에 정통했던 양진은 한 고을의 군수(郡守)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군의 하급 관청인 현(縣)의 현령(縣令)이 몰래 많은 금품
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양진에게 건네 주려고 하며 지금은 밤이 깊으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양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알고 있는데(天知地知子知我知), 어
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오?
현령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그대로 물러갔다. 훗날 양진은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지만, 환관과 황제의 유모인 왕성의 청탁을 거절했다가 모함을 받게
되자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四知 란 天知地知子知我知 를 가리키는 말이며, 세상에는 비밀이 있을 수 없
음 을 뜻한다. 四知 와 비슷한 서양식 표현으로는 영어의 Walls have ears. 라
는 속담을 들 수 있다.
041
含沙射影(함사사영)
含(머금을 함) 沙(모래 사) 射(활 쏠 사) 影(그림자 영)
동한(東漢)시대 서기 100년경에 허신(許愼)이 편찬한 설문해자(說文解字)의 훼
부( 部)에는 전설 중의 괴물을 뜻하는 역(
或
) 이라는 글자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해설에 따르면, 역 이라는 괴물은 자라의 모습인데 다리는 셋 뿐이고,
입김을 쏘아 사람을 해친다고 한다.
청대(淸代)의 왕균(王筠)이라는 학자는 이
或
자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다.
일명 사공(射工), 사영(射影), 축영(祝影)이라 한다. 등은 딱딱한 껍질로 되어
있고 머리에는 뿔이 있다. 날개가 있어 날 수 있다. 눈은 없으나 귀는 매우 밝다.
입안에는 활과 같은 것이 가로로 걸쳐 있는데,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숨기운을
화살처럼 뿜는다. 물이나 모래를 머금어 사람에게 쏘는데(含沙射人), 이것을 맞으
면 곧 종기가 나게 되며(中卽發瘡), 그림자에 맞은 사람도 병이 나게 된다(中影者
亦病).
含沙射影(모래를 머금어 그림자를 쏘다) 이란 암암리에 사람을 해치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이는 떳떳치 못한 수단으로 남을 해치는 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042
兵不厭詐(병불염사)
兵(군사 병) 不(아닐 불) 厭(싫을 염) 詐(속일 사)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에는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초(楚)나라와 전쟁을
하고자 구범(舅犯)에게 견해를 묻는 대목이 기록되어 있다.
초나라는 수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이 일을 성취하려면 어찌해야 되겠는가?
라는 진 문공의 물음에 구범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제가 듣건대, 번다한 예의를 지키는 군자는 충성과 신의를 꺼리지 않지만, 전
쟁에 임해서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고 합니다(戰陣之間, 不厭詐僞). 그러니 적
을 속이는 술책을 써야 할 것입니다.
진 문공은 구범의 계책에 따라, 초나라의 가장 약한 우익(右翼)을 선택하였다.
우세한 병력을 집중하여 신속하게 그곳을 공격함과 동시에 주력부대는 후퇴하는
것으로 위장하여 초나라 군대의 좌익(左翼)을 유인해냈다. 진 문공은 곧 좌우에서
협공하여 초나라 군대를 쳐부술 수 있었다.
조조(曹操)도 삼국연의(三國演義) 23회에서 兵不厭詐 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
다. 兵不厭詐 는 군불염사(軍不厭詐) 라고도 하는데, 이는 전쟁에서는 모든 방
법으로 적군을 속여야 함 을 말한다. 대전(大戰)과 대선(大選)에는 兵不厭詐 라
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043
掩耳盜鈴(엄이도령)
掩(가릴 엄) 耳(귀 이) 盜(훔칠 도) 鈴(방울 령)
여씨춘추(呂氏春秋) 자지(自知)편에는 귀를 막고 종을 훔치던 한 사나이의 비유
가 실려 있다.
춘추시대 말엽, 진(晉)나라에서는 권력을 둘러싼 귀족들의 격렬한 싸움이 전개
되었다. 마침내 대표적인 신흥 세력이었던 조간자(趙簡子)가 구세력의 핵심인 범
길사(范吉射)의 가족을 멸하였는데, 그의 가족중 살아 남은 자들은 모두 진나라를
탈출하였다.
어느 날, 한 사나이가 이미 몰락해 버린 범길사의 집에 들어와서는 대문에 걸려
있는 큰 종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 종을 훔쳐가려고 생각했으나 혼자 옮기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종을 조각내어 가져가려고 망치로 종을 내리친 순간, 꽝 하는 큰
소리가 났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소리를 들을까 무서워 얼른 자기의 귀를 틀어
막았다. 그는 자기의 귀를 막으면 자기에게도 안들리고 다른 사람들도 듣지 못하
리라 여겼던 것이다.
掩耳盜鈴(귀 막고 방울 도둑질 하기) 은 掩耳偸鈴(엄이투령) 掩耳盜鐘(엄이
도종) 이라고도 하는데, 모두 어리석은 자가 자신의 양심을 속임 을 비유한 말
이다.
044
望梅解渴(망매해갈)
望(바랄 망) 梅(매화나무 매) 解(풀 해) 渴(목마를 갈)
세설신어(世說新語) 가휼(假譎)편에는 조조(曹操)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위
(魏)나라 문제(文帝)의 일화가 실려 있다.
동한(東漢) 말엽에, 조조는 군대를 통솔하여 장수(張繡)를 정벌하러 나섰다. 행
군 도중 날씨가 너무 더워 병사들은 지치고 심한 갈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마실
물을 찾지 못해 진군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조는 한참 생각하다가 묘책이 떠올랐는지 병사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조금나 더 가면 앞에 큰 매화나무 숲이 있다(前有大梅林). 열매도 많이 달려 있
는데, 그 맛은 달고도 새콤하다. 이제 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다(可以解渴).
병사들은 매화가 있다는 말에 입안에 곧 침이 돌았다. 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다
시 전진하였는데, 얼마가지 않아 물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望梅解渴(매실을 생각하며 갈증을 풀다) 은 望梅止渴(망매지갈) 梅林解渴
(매림해갈) 이라고도 한다. 이는 공상으로 잠시 동안의 평안과 위안을 얻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이제 매실(梅實) 같은 개혁 이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045
各自爲政(각자위정)
各(각각 각) 自(스스로 자) 爲(할 위) 政(정사 정)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2년조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춘추
시대, 송(宋)나라와 정(鄭)나라가 전투를 하게 되었다. 송나라의 대장인 화원(華
元)은 장병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하여 특별히 양고기를 지급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마부인 양짐(羊斟)이라는 사람에게만 주지 않았다. 양짐은 이 일로 화원에
게 원한을 품게 되었다.
다음 날 접전이 시작되자, 화원은 마차 위에서 양짐에게 마차를 오른쪽으로 돌
리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양짐은 반대 방향으로 마차를 몰았다. 어디로 가는
거냐? 라는 화원의 호령에 양짐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어제의 양고기는 당신의 뜻이고, 오늘의 이 일은 나의 생각이오(疇昔之羊子爲
政, 今日之事我爲政).
결국 화원은 곧 정나라 군사들에게 생포되었고, 대장이 없어진 송나라 군대는
정나라에게 크게 패하였다.
各自爲政 이란 각자가 자기의 주장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 을 비유한 말이
며, 동시에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의 조화와 협력을 교훈으로 제시하고 있다.
046
門前雀羅(문전작라)
門(문 문) 前(앞 전) 雀(참새 작) 羅(새그물 라)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에는 한(漢)나라 때의 현신(賢臣)인 급암(汲 )과
정당시(鄭當時)의 일화가 실려 있는데, 사마천(司馬遷)은 이 편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 두었다.
급암이나 정당시 같은 어진 이들도 세력이 있으면 빈객(賓客)이 10배로 늘어나
고, 세력이 없어 지면 빈객들은 흩어져 같다. 그러니 보통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
겠는가. 하규(下 ) 사람 적공(翟公)에게 이러한 일이 있었다. 적공이 처음 정위
(廷尉)라는 관직에 오르자 빈객들이 그의 집에 가득하였다. 그러나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자 찾아 오는 빈객들이 없어 대문에다 참새 잡는 그물을 쳐도 될 지경이
되었다(門外可設雀羅). 후에 적공이 다시 관직에 오르게 되자 빈객들이 또다시 밀
려 들었다.
門前雀羅 란 문 앞의 참새 그물 이라는 뜻으로 門可雀羅(문가작라) 라고도
한다. 이는 문밖에 새그물을 쳐도 될 만큼 찾아 오던 이들의 발길이 끊어짐 을
비유한 말이다. 부(富)와 권세(權勢)를 누리며 문전성시(門前成市) 를 바라보다가
몰락한 두 전직 대통령에게는 훨씬 더 큰 참새 그물이 필요할 것이다.
047
壽則多辱(수즉다욕)
壽(목숨 수) 則(곧 즉) 多(많을 다) 辱(욕되게 할 욕)
장자(莊子) 천지(天地)편에는 요(堯) 임금이 화(華)라는 고장을 여행했을 때의
일이 실려 있다.
요 임금이 화(華)라는 고장에 이르자 그곳의 관원이 다음가 같이 말했다. 아,
성인(聖人)이시군요. 성인께서 장수하시도록 축복해주소서. 이에 요 임금은 사
양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그 관원이 부자가 되시도록 해주소서. 라
고 말하자, 요임금은 사양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 관원은 다시
많은 아들을 두소서. 라고 말했다. 요임금은 이 말에도 그것도 사양하겠습니
다. 라고 대답하였다.
관원이 사양하는 이유를 묻자, 요임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들이 많아지면 걱정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면 귀찮은 일이 많으며, 장수하면
욕된 일이 많아집니다(壽則多辱). 이 세가지는 덕을 기르기 위한 것이 못됩니다.
그래서 저는 사양하는 것입니다.
壽則多辱 이란 나이 먹고 오래 살면 그만큼 좋지 않은 일도 많이 겪게 된다는
말이다. 얼마전 치매 노인을 택시 회사에 방치한 일이 보도되었다. 곱게 늙는 것
은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이다.
048
歸馬放牛(귀마방우)
歸(돌려 보낼 귀) 馬(말 마) 放(놓을 방) 牛(소 우)
상서(尙書) 무성(武成)편은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商)나라의 주임금을 쳐
부수고 나라를 잘 다스리게 된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임금은 아침에 주(周)나라로부터 출발하여 상(商)나라를 치러 갔었다. 그 네쨋
달 초사흗날 왕은 상나라로부터 와서 풍(豊)에 이르러 무력(武力)을 거두고 문교
(文敎)를 닦아, 말은 화산의 남쪽 기슭으로 돌려 보내고 소는 도림의 들에 풀어놓
아(歸馬于華山之陽, 放牛于桃林之野), 천하에 다시 쓰지 않을 것을 보이었다.
歸馬 는 군용(軍用)으로 쓰던 말을 산으로 돌려보내어 놓아 주었음을 뜻한다.
歸馬放牛 란 곧 전쟁에 사용할 말과 소를 숲이나 들로 돌려 보내어 다시 쟁기나
수레를 끌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니, 이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음 을 말
한다.
어떤 학자는 남북이 통일되면, 남북한 군사력의 70%정도가 감소되리라고 하였
다. 그때가 되면 정말 탱크와 장갑차는 논밭을 갈고, 군함은 원양 어업에 닻을 올
리며, 전투기는 총알 택시처럼 한라에서 백두까지 날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049
紙上兵談(지상병담)
紙(종이 지) 上(위 상) 兵(군사 병) 談(말씀 담)
사기(史記) 염파 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는 허울좋은 한 장군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국(戰國)시대 조(趙)나라에 조사(趙奢)와 염파(廉頗)라는 명장이 있
었는데, 이들은 진(秦)나라의 침공을 수차례 격퇴하였다. 당시 진나라의 대장이었
던 백기(白起)는 염파의 지략(智略)을 당해내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조나라에 거짓
정보를 흘렸다. 조나라 왕은 결국 염파를 대신하여 조사의 아들인 조괄(趙括)을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조괄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서 병법을 공부하였지만 실전(實戰) 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장군의 직에 임용되지 않기를 원하였으나 조나라 왕
은 끝내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여 전투에 내보냈다.
진나라 장군 백기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나라 군대를 유인하여 공격
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괄은 진나라 군사의 화살에 죽고 수십만의 조나라 군사들
은 항복했다가 모두 생매장 당하였다.
紙上兵談(Mere paper talk) 이란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공론(空論) 을
비유한 말이며, 탁상공론(卓上空論:an armchair argument) 이라는 말과 같은 표
현이다.
050
肝膽楚越(간담초월)
肝(간 간) 膽(쓸개 담) 楚(나라이름 초) 越(나라이름 월)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에는 중니가 말하길 뜻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
면 간과 쓸개도 초나라와 월나라 같으며(肝膽楚越也), 뜻이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만물도 모두 하나이다 라는 대목이 있다. 또한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유협(劉 )이 지은 문심조룡(文心雕龍) 비흥(比興)편에는 물체가 비록 멀리 떨어
져 있다 할지라도 합치고 보면 간과 쓸개처럼 가까운 사이이다 라는 구절이 있
다.
간담(肝膽) 이란 본시 관계가 매우 가까운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회남자(淮南
子) 숙진편( 眞篇)에서는 肝膽胡越(간담호월) 이라 하였는데, 肝膽楚越 과 같
은 표현이다. 이는 간과 쓸개의 거리가 초나라와 월나라의 관계처럼 멀다 라는
뜻이며, 비록 거리상으로는 서로 가까이 있지만 마치 매우 멀리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경우 를 비유한 것이다.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도 입장에 따라서는 멀어 질 수도 있고, 또 서로 다른 관
계가 있는 것일지라도 형편에 따라서는 가까워질 수 있다. 후보 경선에 나서고
있는 크고 작은 용(龍)들은 서로 肝膽 처럼 가깝기도 하고 楚越 처럼 멀기도
하다.
051
巧言令色(교언영색)
巧(공교할 교) 言(말씀 언) 令(착할 령) 色(빛 색)
상서(尙書) 경명( 命)편에는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백경(伯 )을 태복(太僕)
으로 임명하며 훈계하였던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대의 아래 사람들을 신중히 고르되, 교묘한 말을 하는 자, 좋은 듯 꾸민 얼
굴을 하는 자, 남의 눈치만 보는 자, 아첨하는 자는 쓰지 말고, 오직 올바른 사람
만을 쓰도록 하시오(無以巧言令色便 側媚, 其惟吉士).
논어(論語) 학이(學而)편에는 교묘한 말과 꾸민 얼굴에는 인이 적다(巧言令色
鮮矣仁(교언영색선의인). 이라는 말이 있으며, 공야장(公冶長)편, 양화(陽貨)편 등
에도 巧言令色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巧言(fine words) 은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교묘하게 꾸민 말 을 뜻하며 令
色(an insinuating appearance) 이란 보기 좋게 꾸민 거짓된 표정 을 뜻한다.
TV 토론회에 출연한 대선주자들은 예상 문제(?) 풀이와 답변 연습, 그리고 좋
은 인상을 주기 위한 얼굴 가꾸기에 적지않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이 기대했던 것은 그들의 말재주와 멋있는 표정이 아니었으리라.
052
開卷有益(개권유익)
開(열 개) 卷(책 권) 有(있을 유) 益(더할 익)
승수연담록( 水燕談錄)은 송(宋)나라 왕벽지(王闢之)가 남송(南宋) 고종(高宗)
이전의 잡다한 일화들을 모아 엮은 책인데, 이 책의 권6에는 독서를 무척 좋아했
던 송나라 태종(太宗)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태종은 이방(李昉) 등 14명의 학자들에게 사서(辭書)를 편찬하도록 명하였다.
이들은 이전에 발간된 많은 책들을 널리 인용하는 등 7년 동안의 작업을 통하여
사서를 완성하였다. 55개부문으로 일천권에 달하는 방대한 이 책은 처음 서명을
태평편류(太平編類)라 하였으나 후에는 태평어람(太平御覽)으로 개칭하였다.
태종은 이 사서가 완성되자 몹시 기뻐하며 매일 이 책을 읽었다. 스스로 하루에
세 권씩 읽도록 정하여 놓고, 정사(政事)로 인해 못 읽는 경우에는 쉬는 날 이를
보충하였다.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신하들에게, 태종은 항상 다음과 같이 말했
다. 책을 펼치면 이로움이 있으니, 짐은 이를 피로하다 여기지 않소(開卷有益,
朕不以爲勞也).
開卷有益(Reading gives advantages) 이란 책을 읽으면 이로움이 있음 을 말
한다. 요즘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데, 모두들 황제(皇帝)보다 더
바빠진 탓일까?
053
轍 魚(학철부어)
(물 마를 학) 轍(바퀴자국 철) (붕어 부) 魚(물고기 어)
장자(莊子) 외물(外物)편에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실려있다.
집이 가난한 장주(莊周:장자의 이름)는 감하후(監河侯)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다.
고을의 세금을 거둬들여 그때 삼백금을 빌려주겠다는 감하후의 말에 장주는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지며 말을 했다.
내가 이리로 오는데 도중에 부르는 소리가 있어 뒤를 돌아보니 수레 바퀴 자
국에 붕어가 있있소(車轍中有 魚焉). 그 붕어는 약간의 물만 있어도 자신을 살릴
수 있다고 했소. 그래서 나는 남쪽의 오월(吳越)의 왕에게로 가서 촉강(蜀江)의
물을 보내주겠다고 했지요. 그러자 그 붕어는 불끈 성을 내며 차라리 건어물전에
가서 자기를 찾으라고 하더군요.
轍 魚(a fish in a dry rut-in extremities) 는 학철지부( 轍之 ), 철부지급
(轍 之急), 고어학철(枯魚 轍), 학부( ) 등이라고도 하며, 극도의 곤경에 처
하여 있음 을 비유한 말이다.
북한 인구의 4분의 1인 550만명이 기아선상에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역시 허울 좋은 주체 낙원 건설 이 아니라 한 그릇의 강냉이 죽
이다.
054
金迷紙醉(금미지취)
金(쇠 금) 迷(미혹할 미) 紙(종이 지) 醉(취할 취)
송(宋)나라의 도곡(陶谷)이 편찬한 청이록(淸異錄)이라는 책에는 당나라 말엽의
명의(名醫)인 맹부(孟斧)의 고사가 실려있다.
그는 독창(毒瘡) 치료에 뛰어나서, 자주 황궁에 들어가 소종(昭宗) 황제의 병을
진료하였다. 차츰 황제를 진료하는 시간과 횟수가 많아지자, 그는 황궁내의 실내
장식이나 기물의 배치 등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다.
훗날 맹부는 사천(四川)지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는 황궁을 모방하여 자신의
거처를 장식하였는데, 방안의 기물들을 모두 금종이로 포장하였다. 창문을 통하여
햇빛이 비칠 때면, 방안은 온통 금빛으로 가득하여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를 방문했다 돌아가면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방에서 잠시 쉬었는데, 그만 금종이에 정신이 미혹되고 취해 버렸다네(此室
暫憩, 令人金迷紙醉).
金迷紙醉 는 紙醉金迷 라고도 하는데, 이는 지극히 사치스런 생활 을 비유한
말이다. 일부 초대형 호화 빌라의 실내장식에도 금빛나는 외제품들만 사용된다고
하는데, 입주자들의 건강(?)이 걱정스럽다.
055
徒勞無功(도로무공)
徒(헛될 도) 勞(힘쓸 로) 無(없을 무) 功(공 공)
장자(莊子) 천운(天運)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있다.
춘추시기, 공자가 서쪽의 위(衛)나라로 유세(遊說)를 떠났다. 스승인 공자의 여
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안연(顔淵)에게 사금(師金)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물길을 가는 데에는 배가 가장 좋으며, 육지를 가는 데에는 수레가 최고이지.
그런데 만약 배를 육지에서 밀고 간다면 평생 걸려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네. 옛
날과 지금의 차이는 물과 육지의 차이와 같으며, 주나라와 노나라의 차이도 이러
한데, 공자께서 주나라에서 시행되었던 것을 노나라에서 시행하려는 것은 배를
육지에서 미는 것과 같아 애만 쓰고 보람은 없으며(是猶推舟于陸也, 勞而無功),
틀림없이 몸에 재앙이 있을 걸세 .
徒勞無功(Toil in vain) 은 도로무익(徒勞無益)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노력
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보람이나 이익이 없음 을 뜻한다.
얼마전 국가대표 청소년 축구팀이 국민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에게 10
대3으로 패하였다. 어린 선수들의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버린 것 같아 무척 안타
깝다.
056
朝薺暮鹽(조제모염)
朝(아침 조) 薺(냉이 제) 暮(저물 모) 鹽(소금 염)
당(唐)나라 한유(漢愈)의 문장 가운데 송궁문(送窮文)이라는 글이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자신에게 어려움을 주는 다섯 가지의 일들을 귀신으로 묘사하고, 이것
들을 쫓아버리려는 자신의 마음를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의인화된 궁귀(窮鬼)에게 세 번 읍하고 자신으로부터 떠나줄 것을 간청하였다.
가난 귀신이라는 궁귀 는 한참 있다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와 선생님이 함
께 살아온지 사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저는 선생님을 어리
석게 여기지 않았으며, 선생님께서 남쪽으로 귀양갔을 때, 저는 그 고장에 익숙하
지 못하여 여러 귀신들이 속이고 능멸하였습니다. 태학에서 4년간 공부하는 동안
아침에는 냉이나물을 먹고 저녁에는 소금으로 반찬하며(大學四年 朝薺暮鹽), 오직
저만이 선생님을 보살펴 주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배반한 적이 없었습니다.
朝薺暮鹽 이란 냉이와 소금만으로 끼니를 해결할 정도로 몹시 빈곤한 생활을
의미하며, 몇주전 KBS 일요스페셜 에 나타난 북한 주민들의 궁핍한 생활을 묘
사하는데 딱 들어맞는 표현이기도 하다.
057
人面獸心(인면수심)
人(사람 인) 面(낯 면) 獸(짐승 수) 心(마음 심)
한서(漢書) 흉노전(匈奴傳)에는 한대(漢代) 흉노들의 활동 상황 등이 기록되어
있다. 흉노족은 서한(西漢) 시대 중국의 북방에 살았던 유목 민족이었다. 당시 한
(漢)나라는 흉노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안정되어 있었으며 경
제적으로도 풍부하였으므로, 흉노족들은 자주 한나라를 침입하였다. 흉노족의 수
십만 기마병(騎馬兵)은 해마다 한나라의 북방 국경을 넘어 들어와 농가를 기습하
여 가축을 약탈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고 납치하였던 것이다. 기원전 133년,
한 무제(武帝)는 흉노 정벌에 나서 수년 동안의 전투를 겪으며 그들의 침공을 막
아내었다.
동한(東漢) 시대의 역사가인 반고(班固)는 자신의 역사서에서 흉노족의 잔악함
을 묘사하여 오랑캐들은 매우 탐욕스럽게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는데, 그들의 얼
굴은 비록 사람같으나 성질은 흉악하여 마치 짐승같다(人面獸心) 라고 기록하였
다.
人面獸心(man in face but brute in mind) 이란 본시 한족(漢族)들이 흉노 를
멸시하여 쓰던 말이었으나, 후에는 성질이 잔인하고 흉악한 짐승같은 사람을 가
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058
得意洋洋(득의양양)
得(얻을 득) 意(뜻 의) 洋(넘칠 양) 洋(넘칠 양)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에는 겸손의 교훈을 주는 고사가 기록되어 있다.
춘추시기, 제(齊)나라의 유명한 재상인 안영(晏 )에게는 한 마부(馬夫)가 있었다.
어느 날, 안영이 마차를 타고 외출을 하려는데, 마부의 처가 문틈으로 자기 남편
의 거동을 엿보았다. 자신의 남편은 수레 위에 큰 차양을 씌우더니, 마차의 앞자
리에 앉아 채찍질하는 흉내를 내며 의기양양하여 매우 만족스러워 하고 있었다
(意氣揚揚, 甚自得也).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 그의 처는 그에게 이혼해야겠다고 하였다. 영문을 모르
는 마부가 그 이유를 묻자, 아내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안자(晏子)께서는 키가 6
척도 못되지만 나라의 재상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그분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매우 겸손한 태도였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키가 8척이 넘으면서도 남의 마부가
된게 만족스런 듯 기뻐하니, 저는 이런 남자의 곁을 떠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후 마부는 늘 겸손한 태도를 지니게 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안자는 그
를 대부(大夫)로 천거하였다.
得意洋洋(triumphant) 은 의기양양(意氣揚揚) 이라고도 한다. 당선될 것처럼
득의양양 떠들어대는 대선주자들에게서 마부의 모습을 보게 된다.
059
殷鑒不遠(은감불원)
殷(성할 은) 鑒(거울 감) 不(아닐 불) 遠(멀 원)
시경(詩經) 대아(大雅)편의 탕(蕩)이라는 시는 나라의 흥망(興亡)에 대한 교훈을
노래한 것이다. 하(夏)나라 최후의 왕인 걸왕(桀王)은 잔혹한 정치로 백성들을 핍
박하다 결국 그들의 반항을 받게 되었다. 기원전 16세기경 상(商)부락의 지도자인
탕(湯)는 군사를 일으켜 하나라를 멸하고 상나라를 세웠다. 기원전 14세기경에는,
상나라의 왕 반경(盤庚)은 수도를 은(殷)지역으로 옮겼으며, 이때부터 상나라를
은나라라고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은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은 주지육
림(酒池肉林)의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기원전 11세기 중엽 당시 서백후(西伯侯)의
아들인 발(發)에게 나라를 잃고 말았다.
은나라가 멸망하기 전, 서백후는 주왕에게 간언하기를 넘어지는 일이 일어나면
가지와 잎은 해가 없어도 뿌리는 실상 먼저 끊어진다. 은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
야 할 것은 하나라 걸왕 때에 있다(殷鑒不遠 在夏後之世) 라고 하였다. 鑒 은
선례(先例) 본보기 라는 의미로 쓰였으니, 殷鑒不遠(An example is not far
to seek) 이란 본보기로 삼을 만한 남의 실패가 바로 가까이에 있음 을 뜻한다.
060
一擧兩得(일거양득)
一(한 일) 擧(들 거) 兩(두 량) 得(얻을 득)
사기(史記) 장의열전(張儀列傳)에 나오는 고사이다. 전국(戰國)시대, 진(秦)나라
의 혜왕은 초(楚)나라의 사신 진진(陳軫)에게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를 공격하는
문제에 대해 물었다. 진진은 다음과 같은 고사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변장자(卞莊子)가 범을 찌르려고 하자 여관의 아이가 만류하면서 지금 두 범
이 서로 소를 잡아 먹으려 하고 있는데, 먹어 보고 맛이 있으면 서로 빼앗으려고
싸울 것입니다. 싸우게 되면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을 것이니, 그 때 다친
놈을 찔러 죽이면 일거에 두마리의 범을 잡았다는 이름을 얻게될 것입니다(一擧
必有雙虎之名) 라고 말했답니다. 조금 후에 두 범이 싸워서 큰 놈이 다치고 작은
놈이 죽자, 변장자가 다친 놈을 찔러 죽이니 과연 한 번에 두 마리 범을 잡은 공
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一擧果有雙虎之功).
一擧兩得 은 一石二鳥(Killing two birds with one stone) 一箭雙 (일전쌍
조: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떨어 뜨린다) 와 같은 표현이며, 모두 한 가지
일로써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 을 뜻한다.
061
時不可失(시불가실)
時(때 시) 不(아닐 불) 可(옳을 가) 失(잃을 실)
상서(尙書) 태서(泰誓)편은 주(周)나라 서백후의 아들인 발(發)이 은(殷)나라 주
왕(紂王)을 정벌함에 임하여 군사들을 모아 놓고 훈시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 소인은 새벽부터 밤까지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돌아가신 아버지 문왕의 명
을 받았으니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내고, 큰 땅에도 제사를 지냈으며, 그대 무리들
을 거느리고 하늘의 벌하심을 이루려는 것이오. 하늘은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시
니, 백성들이 바라는 바를 하늘은 반드시 그대로 따르시오. 그대들은 바라건대 나
한 사람을 도와 영원히 온 세상을 맑게 하시오(爾尙弼予一人, 永淸四海). 때가 되
었으니 잃어서는 아니 되오(時哉弗可失)! 기원전 222년, 서백후 문왕(文王)의 아
들인 발(發)은 정식으로 제위에 올라 중국 땅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주
나라 무왕(武王)인 것이다.
時不可失(Must not lose the opportunity) 이란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는 뜻이며, 물실호기(勿失好機) 와 비슷한 표현이다. 역사적으로 부
(富)와 명예는 보통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기회를 놓치지 않은 몇몇 사람들의 몫
이었다.
062
空城計(공성계)
空(빌 공) 城(성 성) 計(꾀 계)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에는 텅빈 성(城)에 속아 넘어간
조조(曹操) 휘하의 한 장수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제갈량은 양평이라는 곳에 군대를 주둔시켜 두고, 대장군 위연(魏延) 등을 파견
하여 조조의 군대를 공격케 하였다. 때문에 성 안에는 병들고 약한 소수의 병사
들만 남아 있었다. 이 때, 조조의 군대가 대도독 사마의(司馬懿)의 통솔로 양평을
향하여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 졌다.
성을 지키고 있던 유비의 군사들은 이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제갈량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과감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는 군사들을 시켜 성
문을 활짝 열고, 성문 입구와 길을 청소하여 사마의를 영접하는 것처럼 꾸몄다.
그리고 자신은 누대(樓臺)에 올라가 조용히 앉아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사마의는
군사를 이끌고 성 앞에 당도하여 이러한 상황을 보고 의심이 들었다. 그는 성 안
에 이미 복병이 두고 자신을 유인하려는 제갈량의 속임수라고 생각하고, 곧 군사
를 돌려 퇴각하였다.
空城計 란 겉으로는 허세를 부리지만 사실은 준비가 전혀 없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피서철 빈집털이가 우려된다고 하는데, 제갈량의 계략을 응용해 봄직하
다.
063
明鏡高懸(명경고현)
明(밝을 명) 鏡(거울 경) 高(높을 고) 懸(매달 현)
한(漢)나라 때의 괴담이나 전설, 일화 등을 수록한 서경잡기(西京雜記) 권3에는
진(秦)나라 때의 신기한 거울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진나라의 함양(咸陽)궁에 소장된 진귀한 보물들 가운데, 너비가 4척, 높이가 5척
9촌으로 앞뒷면이 모두 밝게 빛나는 거울이 하나 있었다. 사람이 그 앞에 서면
거울에는 거꾸로 선 모습이 나타나고, 가슴을 어루만지며 비춰보면 그 사람의 오
장(五臟)이 나타났다. 몸에 병이 있는 사람이 비추면 환부가 나타났으며, 이 거울
은 사람의 나쁜 마음까지도 비춰 보였다. 이 때문에 진시황은 이 거울을 이용하
여 궁궐안의 모든 사람들의 충성심을 비춰 보았다. 심장이나 쓸개가 급히 뛰는
사람을 발견하면, 진시황은 즉각 그를 체포하여 심문하고 처벌하였다. 그러나, 이
거울은 진나라 말기, 유방(劉邦)이 함양을 공격하던 혼란속에서 그만 없어지고 말
았다고 한다.
明鏡高懸(a clear mirror hung on high) 은 진경고현(秦鏡高懸) 이라고도 하
며 높게 매달려 있는 맑은 거울 이라는 뜻이다. 이는 시비를 분명하게 따져 판
단하는 공정무사(公正無私)한 법관 을 비유한다. 일전에 한 법관이 판결한 술자리
의 한 턱(?) 값에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는 것 같다.
064
弱肉强食(약육강식)
弱(약할 약) 肉(고기 육) 强(굳셀 강) 食(밥 식)
한유(韓愈)의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는 한유가 문창이라는 승려에게
써 보낸 글로서, 한유의 불교에 대한 관점이 잘 나타나 있다.
한유는 유가(儒家)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도(道)에 있어서 인(仁)과 의(義)보다 더 큰 것이 없고, 가르침에 있어서는 예
약과 형정(刑政)보다 더 바른 것이 없습니다. 그것들을 천하에 시행하면 만물이
모두 합당함을 얻게 되고, 그것들을 그 자신에게 적용하면 몸은 편안하고 기운은
평온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불교라는 것은 누가 만들고 누가 전한 것
입니까? 새들이 몸을 숙여 모이를 쪼다가 몸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고, 짐승들이
깊은 곳에 있으면서 드물게 나타나는 것은 다른 것들이 자신을 해할까 두렵기 때
문인 것입니다. 그리고도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약한 자의 고기를 강
한 자가 먹고 있는 것입니다(猶且不脫焉, 弱之肉, 强之食).
弱肉强食(The weak become the victim of the strong) 이란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잡아 먹힌다 는 뜻이다. 경쟁이 날로 심화되고 있는 요즘 사회에서도 이
말은 전투수칙(?)이나 생존법칙(?)처럼 쓰이고 있다.
065
不可救藥(불가구약)
不(아닐 불) 可(옳을 가) 救(건질 구) 藥(약 약)
시경(詩經) 대아(大雅)에는 한 충신의 답답한 마음을 노래한 판(板) 이라는 시
(詩)가 실려 있다.
서주(西周) 말엽, 여왕( 王)은 포학하고 잔혹한 정치로 백성들을 핍박하였다.
백성들은 몰래 그를 저주하였으며, 일부 대신(大臣)들까지도 그에게 불만을 품었
다. 여왕은 백성들이 자신을 욕하고 있음을 알고 그들을 사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유명한 관리였던 범백(凡伯)은 왕의 이러한 처사를 지나치다고 여겨 과감
하게 글을 올렸으나,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받게 되었다.
하늘이 저리도 가혹한데 날 그렇게 놀리지 마소. 늙은이는 진정으로 대하는데
젊은이는 교만스럽네. 내 하는 말 망녕된 것 아닌데도 그대들은 농으로 받네. 심
해지면 그땐 고칠 약도 쓸 수 없다오(不可救藥).
기원전 841년, 백성들의 폭동으로 여왕의 폭정은 결국 종말을 맞게 되었다. 不
可救藥 이란 일이 만회할 수 없을 지경에 달하였음 을 형용한 말이다. 학원 폭
력의 심각한 상황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백약(百藥)이 무효(無效)한 상태에 이르
기 전에 모두가 좋은 약을 찾아야 할 때이다.
066
知難而退(지난이퇴)
知(알 지) 難(어려울 난) 而(말 이을 이) 退(물러날 퇴)
춘추좌전(春秋左傳) 선공(宣公) 12년조에는 사정이 좋음을 보고 진격하고, 어
렵다는 것을 알고는 물러난다는 것은 용병의 바른 원칙이다(見可而進, 知難而退,
軍之善政也) 라는 대목이 있다.
춘추시기, 정(鄭)나라는 패권(覇權)을 다투던 진(晉)나라와 초(楚)나라 사이에
위치하였는데, 정나라는 먼저 진나라에 의지하였다. 그러자 초나라는 군사를 동원
하여 정나라를 공격하였다. 정나라는 자국(自國)의 안전을 위하여 진나라에 구원
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먼데 있는 물로는 불을 끌 수 없듯 진나라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으므로, 정나라는 초나라에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진나라의 군대를 통
솔하던 환자(桓子)는 정나라를 구원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여겼으며, 당시 초나
라의 국력이 막강하였기 때문에 진나라로서도 승산이 없었다. 이에 그는 철군하
려 하였으나, 지휘에 따르지 않던 부하들은 초나라 군사와 교전을 하여 크게 패
하고 말았다.
知難而退 란 형세가 불리한 것을 알면 마땅히 물러서야 함 을 뜻한다. 대권을
향한 용(龍)들이 아직껏 꿈틀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정말로 대세의 불리함을 몰
라서가 아니라 얄팍한 자존심과 환상(?) 때문일 것이다.
067
物腐蟲生(물부충생)
物(만물 물) 腐(썩을 부) 蟲(벌레 충) 生(날 생)
진(秦)나라 말년, 범증(范增)은 항량(項梁)에게 투항하여 그의 모사(謀士)가 되
었다. 항량이 죽은 후, 그의 조카 항우가 그를 계승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였다. 항
우는 용맹하였지만 지모(智謀)가 없었으므로 주로 범증의 계획에 따라 작전을 수
행하였다. 범증은 홍문(鴻門)의 연회에서 유방(劉邦)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실패하
고 말았다. 곧 유방은 범증과 항우를 이간시키는 공작을 꾸몄다. 항우는 이 계략
에 휘말려 범증을 의심하여 그를 멀리 하였다. 범증도 몹시 분개하여 항우를 떠
나고 말았다. 얼마후 범증은 병사하였고, 항우는 유방에게 망하였다.
송(宋)나라 소식(蘇軾)은 범증론(范增論) 이라는 글에서 범증이 항우의 곁을
떠난 시기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며, 물건이란 반드시 먼저 썩은 뒤에야 벌레
가 거기에 생기게 되는 것이고(物必先腐也, 而後蟲生之), 사람이란 반드시 먼저
의심을 하게 된 뒤에야 모함이 먹혀들어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라고 기록하였
다. 物腐蟲生(Worms breed in decaying matter) 이란 내부에 약점이 생기면
곧 외부의 침입이 있게 된다 는 뜻이다. 불건전한 사회와 부패한 정치는 곧 범죄
와 비리(非理)의 무대인 것이다.
068
조장(助長)
助(도울 조) 長(길 장)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상편에는 공손추와 맹자의 문답이 실려 있다. 맹자
는 호연지기(浩然之氣) 를 설명하고 나서, 순리(順理)와 의기(義氣)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송(宋)나라의 한 농부의 조급한 행동을 예로 들었다. 그 농부는
싹이 빨리 자라지 않자 그 싹을 조금씩 뽑아 올렸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나는 오늘 싹이 빨리 자라도록 도와주었다 라고 말했다. 그의 아들
이 궁금하게 여겨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싹들은 자라기는커녕 모두 말라 죽어 있
었다.
맹자는 이 이야기 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천하에 싹이 자라도록 돕지 않은 사람을 드물다(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아무
이익이 없다고 하여 내버려두는 사람은 김을 매지 않는 자이고, 자라도록 돕는
사람(助之長者)은 싹을 뽑아 올리는 사람이니, 이는 무익할 뿐 아니라 도리어 그
것을 해치는 것이다.
助長 이란 문자적으로 도와서 성장시키다 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
지만, 사실은 내버려 두어도 잘 될 일을 쓸데없이 건드려 망쳐버린다 는 부정적
의미가 훨씬 강하다.
069
南郭濫吹(남곽남취)
南(남녘 남) 郭(성곽 곽) 濫(함부로 람) 吹(불 취)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 상편에는 남곽처사(南郭處士)라는 무능한 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국(戰國)시대 제(齊)나라의 선왕(宣王)은 (피리 우) 라는 관악기의 연주를
매우 즐겨 들었다. 그는 많은 악사들이 함께 연주하는 것을 특히 좋아하여, 매번
300명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악기를 연주하게 하였다.
우를 전혀 불지 못하는 남곽이라는 한 처사가 선왕을 위하여 우를 불겠다고 간
청하였다. 선왕은 흔쾌히 그를 받아들여 합주단의 일원으로 삼고, 많은 상을 하사
하였다. 남곽은 다른 합주단원들의 틈에 끼여 열심히 연주하는 시늉을 했다. 몇
해가 지나, 선왕이 죽고 그의 아들인 민왕(緡王)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민왕은 아
버지인 선왕과는 달리 300명의 합주단이 연주하는 것을 즐겨 듣지 않고 단원 한
사람이 단독으로 연주하는 것을 즐겨 들었다. 난처해진 남곽은 자신의 차례가 돌
아 오자 도망치고 말았다.
南郭濫吹(남곽이 우를 함부로 불다) 는 남우충수(濫 充數) 라고도 한다. 이
는 무능한 자가 재능이 있는 척하거나, 실력이 없는 자가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070
利用厚生(이용후생)
利(이로울 리) 用(쓸 용) 厚(투터울 후) 生(날 생)
상서(尙書) 우서(虞書)의 대우모(大禹謨)에는 우(禹)와 순(舜)임금과 익(益) 세
사람의 정치에 관한 대담이 기록되어 있다.
우는 순임금에게 말하길 임금이시여, 잘 생각하십시오. 덕으로만 옳은 정치를
할 수 있고, 정치는 백성을 보양(保養)하는데 있으니, 물·불·쇠·나무·흙 및
곡식들을 잘 다스리시고, 또 덕을 바로 잡고 쓰임을 이롭게 하며 삶을 두터이 함
을 잘 조화시키십시오(正德利用厚生, 惟和) 하고 하였다. 또한 춘추좌전(春秋左傳)
문공(文公) 7년조에도 수(水) 화(火) 금(金) 목(木) 토(土) 곡(穀)의 여섯가지가
나오는 것을 육부(六府)라 하고, 백성의 덕을 바르게 하는 정덕(正德)과, 백성들이
쓰고 하는데 편리하게 하는 이용(利用)과, 백성들의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후생
(厚生), 이것을 삼사라 이릅니다(正德利用厚生, 謂之三事) 라는 대목이 보인다.
利用厚生 이란 모든 물질들의 작용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여 백성들의 의식
(衣食)을 풍족하게 하다 라는 뜻이며, 정치의 핵심을 집약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
의 정치판에는 利用厚生 은 커녕 국민들을 이용하여 오히려 자신들의 삶과 지위
를 풍족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