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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중에는 곱게 색깔을 들여 짓는 밥이 있다. 콩밥이나 팥밥처럼 다른 재료를 섞어 밥을 짓는 과정에서 재료의 색 때문에 물이 드는 경우도 있지만 팥을 삶은 물로 밥을 지어 일부러 붉게 물을 들이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옛날 임금님 수라상에 백반과 함께 올린 팥물밥, 즉 홍반(紅飯)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검은 쌀, 흑미로 밥을 지어 검은색을 내기도 하고 정월 대보름이나 잔칫날 먹는 약밥처럼 캐러멜이나 흑설탕을 섞어 착색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밥에다 물을 들였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무엇보다 고운 빛깔의 밥을 먹으며 입맛을 돋우었을 수도 있고, 팥물을 비롯해 다른 재료를 섞어 쌀에는 없는 영양소를 보충했을 수도 있다. 혹은 꿀을 첨가해 더 고급스럽게 먹으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단순히 실용적인 이유, 미각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밥에다 착색을 한 것은 아니다. 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는 밥에다 색깔 있는 물을 들이는 일이 자주 있었던 모양이다. 아예 ‘색깔 있는 밥’이라는 뜻의 한자까지 있다. 신(䭀)이라는 글자다. 한자 사전에서는 약초를 이용해서 물을 들인 밥이라고 풀이했는데 《강희자전》에서는 오반(烏飯)이라고 했다. 까마귀 오(烏) 자에, 밥 반(飯) 자를 쓰니까 까마귀 깃털처럼 검다는 뜻이다.
그런데 검은색으로 물들인 오반은 보통 밥이 아니다. 도가에서는 오반이 신선들이 먹는 밥으로 오반을 계속 먹으면 신선처럼 장수할 수 있고 양기가 되살아난다고 생각했다. 쉽게 말하자면 회춘하게 해주는 밥인 셈이다. 회춘이니 신선이 먹는 밥이니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니까 전설에나 나올 법한 뜬구름 같은 음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반은 실제로 사람들이 먹었던 밥이다.
당나라 때 의사로 《본초습유》라는 의학서를 쓴 진장기가 오반 짓는 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놓았다. 남방에서 자라는 남천촉(南天燭)이라는 나무의 줄기와 잎에서 즙을 짜내 쌀에다 붓고 아홉 번을 찐 후에 아홉 번을 햇볕에 말리면 쌀알이 진주처럼 작고 단단해진다고 했다. 이 쌀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멀리까지 갈 수 있다고 했다. 약초에서 짜낸 즙으로 지었으니 몸에 좋을 것 같기는 하지만 평소 먹는 밥이 아니라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 먹는 비상용 식량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세월이 흐르면서 오반은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건강에 좋은 밥, 그래서 장기간 먹으면 신선이 되는 밥이라는 의미가 강조된다.
명나라 때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버드나무와 오동나무 잎으로 색깔을 낸 밥이라는 설명과 함께 본래는 도가에서 신선들이 먹는 밥이지만 지금은 부처님 오신 날에 부처님께 공양을 드릴 때 오반을 짓는다고 했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의 설명도 비슷하다. 오반은 까마귀 깃털처럼 검은 색깔의 밥으로 버들잎이나 오동잎으로 빛깔을 내는데, 이 밥을 먹으면 양기를 돋우기 때문에 젊음을 유지할 수 있고 도교에서 귀중하게 여긴다고 했다. 《산림경제》에서도 버드나무 잎으로 검은 빛깔을 낸 오반을 먹으면 양기의 순환이 원활해진다고 설명, 검게 물들인 밥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옛날 사람들은 밥에다 팥물이나 약초, 간장, 혹은 벌꿀 등으로 색깔을 내면서 신선들이 먹었다는 오반을 흉내 내려고 했던 모양이다. 대표적인 예가 약식이 아닐까 싶은데 고문헌에 나오는 약식 관련 표현을 보면 처음부터 약식이 까만색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약식의 유래는 왕의 생명을 구한 까마귀에게 찹쌀밥으로 제사를 지냈다는 《삼국유사》의 기술에서 비롯됐다. 찹쌀밥을 지금처럼 검게 물들였다는 표현은 없다. 그런데 고려 말의 학자 목은 이색이 쓴 시집에서는 찹쌀밥을 꿀에 버무린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조선 전기,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간장으로 색깔을 냈다는 내용이 보인다. 시대에 따른 약식의 변화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는 약밥을 밀반홍(蜜飯紅)이라고 표현했는데 꿀에 버무린 검붉은 색깔의 밥이라는 뜻으로 오늘날 캐러멜로 곱게 물들인 약식과 비슷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는데 팥물로 물들인 팥물밥 홍반, 꿀과 간장에 버무린 찹쌀밥 밀반홍, 약초 즙으로 지은 오반 등등, 갖가지 색으로 곱게 물들인 밥을 먹으며 젊음을 유지해보는 것은 어떨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잡신이라고 하면, 단연 도깨비입니다. 누군가는 도깨비를 상상 속의 동물이라고 설명합니다. 수많은 옛날이야기에서 도깨비는 생긴 것만 무섭지,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얼굴에 달린 혹에서 노래가 나오는 줄 알고 혹을 산다거나, 사람이 개암 깨무는 소리를 집이 무너지는 소리로 알고 도깨비 방망이를 팽개치고 달아난다거나 하지요. 심지어는 사람에게 돈을 꿔간 후에 이자까지 쳐서 돈을 갚는데, 자신이 돈 갚은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돈 빌린 사실만 기억해서 계속 돈을 갖다 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스꽝스럽고 경박한 도깨비의 모습은 일제 강점기에 왜곡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도깨비의 원래 모습은 무엇일까요?
혹자는 귀면와(鬼面瓦)에 새겨진 얼굴이 바로 도깨비라고 주장합니다. 악귀를 쫓기 위해 무서운 형상을 한 잡상을 조각 등으로 새겨 건축물을 장식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오랜 전통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귀면와는 고구려 시대에 시작돼 통일신라시대 때 황금기를 이뤘는데요. 공통적으로 머리에 난 두 개의 뿔과 무섭게 부릅뜬 눈,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형상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붉은 악마’의 붉은 깃발이 돼서 휘날렸지요. 붉은 악마는 깃발에 새겨진 형상이 ‘치우’라고 밝혔습니다. 귀면와에 새겨진 형상이 치우이고, 그 형상을 캐릭터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깨비가 치우일까요?
그리스 신화에 티타노마키아가 있다면 동양에는 탁록대전이 있습니다. 둘 다 그야말로 신들의 전쟁입니다. 티타노마키아는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를 상대로 벌인 전쟁입니다. 아버지이긴 하되 명분이 있었습니다. 크로노스가 자식들을 죄다 잡아먹었기 때문이지요. 반란은 성공했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탁록대전 역시 반란이지만 그리스 신화와 달리 결과가 다소 비관적입니다. 그때, 세상은 바야흐로 염제의 통치로 평화로웠습니다. 그런데 황제가 세력을 규합해 전쟁을 일으켰고, 서양 같으면 이 전쟁의 엔딩을 착한 신 염제의 승리로 마무리 지었을 테지만, 동양에서는 야심이 큰 황제의 손을 들어줍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황제의 통치를 부당하게 여긴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탁록에서 맞붙는데 이때 반란군의 수장이 바로 치우였습니다.
치우의 생김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중국에서는 치우를 구리로 된 머리에 철로 된 이마를 하고, 모래와 돌을 밥으로 먹었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치우가 전쟁에서 철제무기를 도입하고 사용한 최초의 영웅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 덕에 황제의 군단과 맞붙은 처음 아홉 번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요. 그러나 마지막 전투에서 황제가 가뭄의 여신 ‘발’을 부르면서 전세가 역전됐고 치우는 패하고 말았습니다.
처음부터 신이 신인 서양 신화와 달리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신화에서 신은 사람이 죽어서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우는 황제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죽었기에 전쟁의 신으로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용맹한 치우의 힘을 빌려 악귀를 쫓고자 기와에, 무기에 그의 모습을 새겨 넣었습니다. 다시 말해 귀면와에 새겨진 형상은 도깨비가 아니라 치우입니다.
도깨비는 본디 사람이 아니라 돌 같은 자연물이나 사람이 오랫동안 쓰던 물건이었습니다. 그것이 수명을 다하거나 버려지면 귀신이 됐는데 그 형상은 동물일 수도,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만 영혼이 있다고 여기지 않은 옛사람들의 믿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벼룩시장이라든가 구제품이 별로 인기가 없고, 골동품을 집 안에 들이기 거리끼는 것도 오래된 물건에는 혼이 붙어 있다는 미신 때문일 것입니다.
도깨비가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삼국유사》의 〈도화녀와 비형랑〉 편입니다. 비형은 신라 제25대 진지왕과 도화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그의 출생은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우스를 연상시키는데, 진지왕의 혼령이 도화녀의 방에 들어 잉태된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페르세우스는 성에 갇힌 다나에를 빗물로 변신한 제우스가 범해서 생긴 아들이었지요. 출생부터 범상치 않더니, 자라서 하는 행동도 괴이했습니다. 매일 밤 언덕 위로 가서 도깨비들과 놀았다고 하는데요. 그들의 놀이는 절에서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소문을 들은 진평왕이 비형을 불러 도깨비들을 거느리고 노는 것이 사실인지 확인한 후 한 가지 명을 내립니다. “그렇다면, 네가 도깨비들을 시켜 신원사 북쪽 시내에 다리를 놓아라.” 비형은 왕의 명을 받들어 도깨비들에게 돌을 다듬게 한 다음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놓았습니다. 도깨비들의 실력을 확인한 왕은 그들 중 인간 세상에 나와 정치를 도울만한 자가 있냐고 물었고, 비형은 길달을 추천했습니다. 진평왕이 그를 받아들여 벼슬을 내렸는데, 과연 충직하기가 세상에 둘도 없었습니다.
또 아들이 없는 각간 임종에게 양자로 삼도록 했는데 어느 날 임종이 길달에게 홍륜사 남쪽에 누문을 짓게 했습니다. 길달은 매일 밤 그 문 위에 가서 자다가 어느 날, 여우로 둔갑해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자 비형이 도깨비들을 시켜 길달을 붙잡아 죽이고 말았고 그 후에 도깨비들은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깨비들은 귀신들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왕이 벼슬을 내린다거나 각간이 양자로 들이거나 하지 않았겠지요. 학자들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깨비들이 주류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청년들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읽으면 앞뒤가 들어맞습니다. 왕의 아들이되 결코 후계자가 될 수 없는 비형이 소외되고 불우하지만 기백이 넘치는 청년들의 우두머리가 됐는데, 그중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던 길달과 갈등을 빚은 끝에 그를 죽인 것으로 말이지요. 그 후에 도깨비들은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고, 이 때문에 신라에서는 비형의 이름을 대문에 써 붙이는 벽사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 전설대로라면 귀면와에 새겨진 형상이 설령 치우가 아니라도, 도깨비는 더더욱 아닐 것 같습니다. 도깨비들이 무서워한 비형이라면 모를까 말이지요.
도깨비는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이 변해서 되었거나 빗자루나 부지깽이, 반닫이나 다듬잇돌 같은 집안의 가재도구가 변해서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실력을 갖추고도 사회에서 쓰임을 받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청년들일 수도 있습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쓸모없다고 낙인 찍혀 버림받았다는 것이지요. 도깨비에게 괴력을 부여하고 인간에게 장난을 많이 치게 한 것은 세상의 불평등함에 눈물지은 진짜 도깨비들이었을지 모릅니다.
팥죽
동지(冬至)가 다가오고 있다. 동지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이렇듯 동지를 기점으로 점차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풍속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날로 여겼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동지와 관련된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동지 지나 열흘이면 해가 노루꼬리만큼씩 길어진다’는 속담도 있고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 마음 든다’도 있다. 첫 번째 속담은 말 그대로 동지가 지나면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 것을 노루꼬리로 비유한 것이다. 두 번째 속담은 추운 겨울 몸을 움츠리고 있던 각종 푸성귀들이 동지가 지나면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런 속담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동지는 24절기 중 스물두 번째 절기를 가리킨다. 24절기란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해 표현한 것이다. 음력으로는 11월 중기(24절기 가운데의 양력으로 달마다 중순부터 드는 절기)이며, 양력으로는 12월 22일 또는 23일을 가리킨다. 2010년 올해는 12월 22일이 동지다. 대설(大雪)의 다음이며 소한(小寒) 앞에 있다. 동지가 드는 시기에 따라 부르는 말도 다르다.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불렀다.
동지는 남위 23.5도의 위도선을 말하는 남회귀선(동지선)과 황경이 270도에 도달하는 시점을 말한다. 황경(黃經)은 황도(黃道)¹? 좌표의 경도로, 춘분점에서 황도를 따라 동쪽으로 0도에서 360도까지 잰 것이다. 일 년 중 동지에 밤이 가장 긴 이유는 태양이 북반구에서 가장 남쪽에 이르게 되며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아 해가 하늘에 머무는 시간이 가장 짧기 때문이다. 이때 지구의 반대편인 남반구는 우리와 반대가 되기 때문에 낮이 가장 긴 하지가 된다.
동지는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음(陰)이 극에 이르지만, 이 날이 지나면 하루 낮 길이가 조금씩 길어져서 남회귀선(동지선)이 북회귀선(하지선)에 가까워지게 된다. 이 날을 계기로 하지가 될 때까지는 낮이 다시 길어지기 때문에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로 여겼다.
옛 사람들은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동지를 24절기 중 가장 큰 명절로 즐겼다. 전통사회에서는 흔히 동지를 작은 설로 여기고 설 다음 가는 경사스러운 날로 생각했다. 옛말에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 라는 말이 전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동짓날 팥죽 한 그릇, 어떠세요?
우리나라는 동지에 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다. 팥죽은 찹쌀로 경단을 빚은 후 팥을 고아 만든 죽에 넣고 끓인 것이다. 이때 경단은 새알만한 크기로 만들기 때문에 ‘새알심’이라고 부른다. 떡국이 설날 음식이라면 팥죽은 동지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예로부터 질병이나 귀신을 쫓는 음식으로 알려져 왔다.
팥죽에는 단백질, 지방, 당질, 회분, 섬유질 등과 비타민 B1이 다량으로 함유돼 있어 신장병, 각기병에 효능이 있다. 또 부종이나 빈혈, 숙취 해소 등에도 좋다. 겨드랑이 암내가 많이 나는 경우 팥 삶은 물을 많이 마시면 냄새 제거에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팥 삶은 물은 숙취 해소에도 좋다. 설탕에 소금을 약간 가미하면 단맛이 훨씬 강해지는데, 조상들은 단팥죽에 소금을 넣어 단맛을 살렸다. 참고로 설탕의 0.2% 정도 소금이 가미될 때 단맛이 최고조에 이른다.
팥에는 녹말 등의 탄수화물이 약 50%, 단백질이 약 20%, 지방, 당질, 회분, 섬유질 등이 함유돼 있다. 비타민 B1도 다량 함유돼 있어 각기병의 치료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타민 B1은 우리 몸의 신경과 관련이 깊어 섭취가 부족해지면 식욕부진이나 피로, 수면장애, 기억력 감퇴, 신경쇠약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때문에 정신적으로 신경을 많이 써야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수험생들에게 좋은 식품이다.
칼륨도 많이 함유돼 있는데, 칼륨은 염분이 들어있는 나트륨을 분해하기 때문에 염분으로 인한 붓기를 빼주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 몸이 비대한 사람이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몸이 여윈 사람이 먹으면 몸이 튼튼해지는 묘한 작용도 있다.
또 팥은 피부가 붉게 부으며 열이 나고 쑤신 증상을 보이는 단독(丹毒)에 특효가 있으며 산모가 먹으면 젖이 잘 나온다. 팥은 이뇨작용이 뛰어나기 때문에 체내의 불필요한 수분을 배출시키고 산모들의 산후 붓기 제거에 좋다. 팥과 다시마를 함께 삶은 것에 설탕을 섞어 먹으면 변비에 좋다. 그 밖에도 설사, 해열, 유종, 각기, 종기, 임질, 산전산후통, 수종, 진통 등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조상들은 팥죽의 풍습을 통해 일 년 동안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팥에 이런 다양한 효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먹은 것일까? 선조들의 지혜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동짓날 팥죽을 먹을 때 이런 의미를 되새기면서 먹는다면 팥죽 맛이 한결 더 좋아질 것이다.
주1) 황도(黃道) :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운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천구(天球) 상의 대원(大圓) 궤도로, 적도에 대하여 23도 27분(23°27′)쯤 기울어져 있다.
글 : 과학향기 편집부
※ 과학향기 제227호 ‘동지 팥죽 드셨나요?(2004년 12월 22일자)’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