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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만난 어느 교무님과 대화하던 중, "일하는 것과 공부하는 것 중 뭘 더 잘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깊게 생각할 일도 아니다 싶어 "일을 더 잘합니다"고 대답했지만, 돌아와 곱씹을수록 정녕 그러한가....반문이 끊이지 않았다.
나를 만난 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여경씨는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고, 심층적인 관찰과 만남의 연속이었던 씨알서원 선생으로부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에게 '못하는 게 없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당신에 관한 진실은 '잘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는 말씀을 듣고는 전적으로 옳은 말씀이라 여기기도 하였다. 한편, 대체로 나서기를 싫어하지만, 한 번 나서서 맡은 일은, 제 성에 차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바, 출석 회원 100여명에, 온라인 회원 만명이 넘었던 살사 동호회의 회장을 맡았을 때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그 때만 해도 전문적인 학원보다, '동호회 문화'가 활발할 때라,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대규모 파티에 동호회 대표로 참석하여 사교성을 발휘해야 하는 일, 온라인 까페를 매주 관리하는 일, 오프라인 모임과 파티를 챙기고, 강습과 친교모임을 위해 따로 유지하던 동호회 장소를 관리하는 일 등 주어진 역할만 해도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거의 생계노동을 포기하고 헌신하듯 해야 하는 일인지라, 너도 나도 손사래를 치며 안하겠다고 하는 통에, '그간 받은 것이 많으니 갚는 마음으로 딱 한 번만 하겠다. 단 뒷풀이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단서를 달고 감당하였다. 짧은 임기였지만, 기금 마련을 거쳐 숙원사업이었던 보수 공사하기, 동호회 기념 티셔츠 제작하기, 9주년 파티개최, 매주 온라인 까페 공지 및 관리와 회원 간의 갈등 조정 등 많은 과업을 수행하였고, "역대 시삽 중 최고(대부분의 회원들로부터)/추진력 하나는 끝내준다!(함께 일한 운영진으로부터)"라는 평가도 받았다. 동시에 들었던 부정적 평가(-어쩌면 이 대목에 방점을 찍는 것이 더 중요할 듯 한데)로는, "일 중독이다/너무 혼자 다 처리한다/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아서 사귀기 어렵다"는 등의 평가가 있었다. 흔히 말하는, '만기친람'형의 지도자였던 셈.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것도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커짐에 따라 나아간다고 스스로 알게 된 중요한 계기는, k선생 곁에서 이런 저런 잡무를 도맡아 할 때 였다. 오가는 이는 많지만 일손은 너무나 부족했던 인문학 까페 '헤세이티'에서 1년 간 실무로 일하며 강의 기획, 홍보, 사회, 손님접대, 음식준비 등 이전에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금방 배우고 그럭저럭 문제없이 감당하였다. 씨알서생일 때만 하여도, '사회성이 미발달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어리바리'로 통했던 나는, k선생으로부터는, "우리나라에서는 비서를 시덥잖은 직업으로 여기지만, 외국에서 비서는 상당한 전문직이다. 내가 보기에 여경씨는 삼성 회장의 비서를 해도 능히 수행할 만한 재능이 있다"며 일에 대한 나의 빠른 착수, 추진력, 야무진 뒤처리에 대해 칭찬을 받았다. 나도 몰랐던 내 잠재적 능력을, 거의 혼자 도맡다시피 하여 치러낸 선생의 출판기념회와, 몇 번의 독서여행을 감당하며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혹시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외교부 공무원으로 의전담당을 하면 잘 하겠구나' 상상해보기도 하였다.
그러고보니, k선생으로부터는 노골적인 야단도 종종 맞았고 눈물을 쏙 뺄 만큼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 몇 배로, 다양한 칭찬을 받으며 지냈는데, 세 사람이 어울려 페인트를 칠하기 위해 낡은 벽지를 제거하던 날, "여경씨는 아우슈비츠에서도 살아남을 사람"이란 말을 듣기도 하였다. 무슨 뜻인지 의아하여 되물으니, "기능이 빼어난 사람은 어디 가서도 쓸모있는 취급을 받는다"고 하셨다. 너댓 명이 어우러져 출판 직전 원고 교정 작업을 했을 때도, 내 속도는 남달랐고, 심지어 만덕산 수련원에서, "깻잎 밭 김매기"를 봉공작업으로 했을 때도, 나는 남들의 두 배를 해냈다. 내가 '기능이 뛰어난 사람'에 속한다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평가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영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닌 듯 하다. 어떤 일의 경우, 신명을 바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한편, 영락없는 '젬병이', '허당'취급을 당하는 것도 대단히 익숙한데, 주로 부엌일에 능한 선배님들과 함께 할 때이다. 교당의 대중공양을 종종 맡게 되지만, 살림의 규모부터 일단 압도적이라, 나는 늘 '손이 느리다', '정성은 가득한데 너무 더디다', '그렇게 해서 언제 다 하겠냐', '대중 공양은 그렇게 하는게 아니다'는 선배님들의 답답한 시선을 지금도 달고 산다. 이번 '영산체험학교'에서 짧은 산행을 했을 때도, "(등산용) 스틱을 이기지 못하고 들고 다닌다!"는 선배의 놀림을 받았다. 머리와 손이 아닌, 몸 전체로 해내야 하는 일은 여전히 두렵고 자신이 없다. 아마 허약한 체질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새로 부임한 교무님이 여러 번 확인해 주었지만, 나는 노골적인 '허당'의 면모가 있는데, 엄청난 공력을 들여 꼼꼼히 일을 처리해 놓고, 정작 자기 가방이나 벗어놓은 옷을 두고 온다거나 하는 식의, 어딘가 허술하고 구멍이 뚫린 사람이다. 경험부족으로 인해 숙달이 덜된 까닭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나는, 닥치는 대로 걱실걱실 일을 잘 쳐내거나 누구도 입을 댈 수 없을 만큼 시작과 끝이 야무진 타입은 결코 아니며, 전체를 조망하고, 일의 순서를 정해 주변인들을 닦달(!)해서 빠른 결과를 낳는 종류의 일, 자원이나 재능, 시간을 잘 배치해서 빨리 결과를 내는 일 같은, 다시 말해 대단히 제한적인 실무적 재능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여기까지 헤아리니, 서울서 만난 교무님으로부터 "어디에 능한가요?"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말씀하시는 '일'이 어떤 일인가요?"라고 되물었어야 옳았다는 후회가 이제서야 든다.
영산 성래원 육타원님에게, "5개 국어로 된 메뉴판을 만들어 보낼께요"라고 약속하고 돌아오자마자, 연락하고 지내는 유일한 대학동기에게 기별하여 편집디자인을 의뢰하고, 퇴근하고 와서 네이버 사전을 뒤져가며, 새벽까지 5개국어 텍스트 작성하기, "흰민들레 식혜와 홍차 밀크티"를 추가해달라, "아이스크림을 추가해 달라" 이어지는 새로운 요청에 따라 다시 교정과 확인을 거듭한 뒤, 인쇄소에 들렀다가 '6만원'이란 견적에 놀라, 결국 직접 출력하기로 결정한 후, 다이소에서 종이구입->교당에서 부교무님의 도움을 받아 출력하기->부산대 옆에서 코팅작업하기->인근 문구점에서 2쪽을 어떻게 하나로 연결할지 고민하며 테이프 고르기->우체국에서 성래원으로 부치기까지 일사천리로 처리하였다. 육타원님이 예상했던 속도보다 훨씬 빨랐던 모양인지, "하나를 생각하면 쭉 고것만 생각하나벼?"라고 놀림 아닌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 (사실, 생계노동, 영산에 가느라 밀린 일주일치 강의 듣기, 중간고사 시험 공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읽기와 병행하면서 한 일이었지만. 내게 이 정도 삶의 밀도는 일상이다)
해야할 '일'('공부'가 아닌!)이 분명할 경우 미루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나는, 서울시장을 연임하고 있는 박원순이, 공무원들을 너무 몰아세우기로 유명하여, "박원순하고 같이 일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라는 주변의 냉정한 반감과 평가를 듣는다는 말을 전해 듣고,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앉았어도 주변 사람들을 그렇게 '닦달'하거나 차마 미안하여 채근을 못할 때는 혼자 일구덩이에 빠져 헉헉거리다 금방 '번-아웃'상태에 빠졌으리라 상상되었다.
반면 공부 쪽을 말하자면 이러하다. 일찌기 '주관적이고 나이브하다'는 평가를 달고 살며 씨알서원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나는, 공부한지 몇 년 지난 후 어느 출판사로부터 섭외 전화를 받고 대단히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우연히 보았는데, 물론 전문적인 훈련을 좀 더 거쳐야겠지만, 상당한 재능이 있는 분 같다. 문학예술 분야 필자를 발굴 중인데 함께 일해 보겠느냐?"는 제안이었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저는 그럴 정도의 실력이 안 됩니다"고 거절하였다. 유명 작가의 단행본도 한심스럽다고 여긴 적이 많고 "여경씨는 말도 글도 능하고 텍스트 이해나 이론에도 밝다"는 평가도 종종 듣지만, 스스로 문재(文才)나 학재(學才)가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겸손이 아니라, 아무리 요리조리 살펴보아도 정녕 평범한 수준의 재능이 있을 뿐인지라, 공부에 관한 한,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제왕노릇한다"가 언제나 나의 좌우명이다. '낭중지추'(-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지닌 재주는 숨길 수 없다는 뜻의 고사성어)라 했건만, 엄청난 기회비용을 감수하며 나선 세계 일주에서도 단 한 권의 책도 건지지 못했으며, 글을 쓰기 시작한지 햇수로 20년이 되었건만 여전히 이 까페에 등재할 만한 상식적인 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니 다른 입증이 필요없겠다. 그간 공부모임을 통해 조금씩 문리가 트였는지, 전체를 요약하고 핵심을 추리는 일에는 그리 어려움을 겪지 않는 편이긴 하다. 허나 이런 정도의 재주로 새로운 담론을 생성하거나 창조적인 글을 써낼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평생 아마추어 학인이 나의 운명'이라 여기며 담담히 받아들인다.
공부도, 일도, '도대체 왜 내게는 쉬운 일이 없는가!'를 호소하며 전전긍긍, 머리를 싸매가며 겨우 겨우 해내는 나. 아무리 사소한 일, 10분짜리 발제나 별강도 내게는 항상 넘어야 하는 큰 산처럼 여겨진다. 그러니 예의 교무님의 난데없는 질문에는, "일도 공부도 변변치 못합니다만, 그저 주어진 깜냥껏 열심히 해냅니다"가 가장 정직하고 실제에 가까운 대답이었음을 이제 알겠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도대체 어떤 재능이 있는 것일까. 어찌 보면 평생 이 물음을 지닌 채 빙빙 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동학들의 평가 중, 가장 납득이 되고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한 마디는 바로 이것이다.
".....여경씨는 스스로 글재주가 없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아니다. 여경씨가 말하고 글을 쓴 것은 대단히 쉽게 읽히고 누가 들어도 잘 이해되게끔 풀어내는 장점이 있다.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재능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관찰이 야무졌던, 아부나 아첨과는 거리가 먼 동학이었기에, 저 한 마디 만큼은 지금까지 감사한 비평으로 새기고 있지만, 교사를 제외하곤 딱히 어디에 쓸 수 있을지 모호한 재능이긴 하다. 그래도 공부하고 생계노동을 하면서 동시에 동호회 시삽도 했고, 까페 실무도 했으니,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감당하고 병행처리하는 재주가 없지는 않은 듯 하다. 이 또한 홀로 스스로를 갈고 닦는 인문학적 수행이나 누군가를 '돕는'(-k선생이 궁극적으로 말한 나의 재능은 바로 '돕는 재능'이었다고 생각된다) 차원에서는 값지지만, 무엇에나 '전문가'가 요구되고 숭상되는 요즘 시대에 딱히 필요한 재주라고 보기 어렵다. 사람이 평생 갈고 닦아서 제 그릇의 깊이를 키울 수는 있겠으나 타고난 그릇의 크기를 질적으로 바꾸는 것은 어렵다고 여기는 나는, 내일 모레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여전히 스스로의 '그릇 크기'에 대해 파악하지 못해 이러고 있으니 다소 한심스럽기도 하다.
이 글을 쓰면서, 학창시절 담임으로부터 들은 칭찬도 떠올랐는데, 어려운 형편과 복잡한 가족사에도 불구하고 원만하고 성적이 좋았던 나를 예뻐하신, 중학 2년 간 담임이었던 선생님은, 엄마를 대신하여 '학부모 면담'차 학교를 찾은 막내이모에게 나에 대한 칭찬세례를 늘어놓은 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고 했다. "....어찌나 꼼꼼한지, 풀로 우표 붙이는 일을 시켜도 다른 학생들보다 야무집니다"
반면, 지금까지 나의 민낯을 가장 오래 보아온 모친은, 아무리 채곡채곡 정리해 둔 서랍도 내 손길이 한 번 스치기만 하면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며 나를 '가시손'이라 부른다.(-실제로 그러하다. 꽤나 의식해도 모친의 손끝을 절대 따라갈 수 없다) 이 상반된 평가는 둘 다 진실일 터인데, 그렇다면 내 야무짐과 일처리는 오직 '공적업무'에만 적용된다고 보아야 할까.
"내가 허락할 때까지는 어디에도 기고를 하지 마라. 당신 아직 그 정도 안된다"는 씨알서원 시절의 평가부터, "여경씨 글솜씨 정도면 어지간한 박사 과정보다 낫다. 비평 쪽에 재능이 있어 보이니 조금만 더 노력해서 등단하길 권면한다"던 k선생의 평가까지. "못하는 게 없다"와 "잘하는 게 없다"는 상반된 평가까지. 과연 나는, 일과 공부, 어느 쪽에 능한 사람일까.
첫댓글 사실, 글쓰기는 어떤 식으로건 '에고의 범람'을 피해갈 수 없다. 더군다나 이런 식의, '자기에 관한 글'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자신에 관한 진실은 이런 식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지난 평인사 모임에서, 하이데거를 두고 "보통 사람은 한 페이지도 쓰기 힘든 주제를 가지고 그렇게 길게 글을 써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재능이다"는 k선생의 말이 워낙 인상적이었고, 내게 질문한 그 교무님이 이 까페의 회원이기도 하신지라, 변명처럼, 후일담처럼, '자기소개서'라 여기며 하염없이 써 보았다. 구직활동(!)의 일환인 셈이다. ^^
사람에 관한 것이나, 일에 관한 것이나, 그 모든 평가와 鑑定이 주관의 울타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생각됩니다.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일지라도, 그 어떤 답을 했을지라도, 그 순간이 지나고 돌이켜 생각할 때가 내가 내고싶은 답이 나오는것 아닐까요? 천 사람이 천개의 답을 가지고 있을 테니 객관적인 답은 ...
혹 내게 물어본다면 아직 잘 모르겠다고, 좀 더 겪어봐야겠다고 할 것 같군요.
네, 겸타원님. 중간고사 시험치고 나서 놀이 삼아 이 글을 썼는데, 쓸수록 대답하기가 어려웠어요. 주변인들에게 설문조사라도 해야할 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