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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사 박물관(Museum of History)는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신앙의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5. 그레이트 라브라 벨 타워(Great Lavra Bell Tower): 수도원의 랜드 마크이자 전망대이며, 1731~45년
완공된 높이 96.5m인 벨 탑은 약간 기울어졌는데 수도원(월계관) 구조를 잘 볼 수 있고, 날씨가 좋으면
키예프까지 구경할 수 있으며, 종도 볼 수 있다.
6. 파괴된 벽돌 덩이: 벨 탑 뒤에는 파괴된 벽돌 덩이를 볼 수 있도록 정자 아래 두었는데 가이드는 1941년
독일군이 파괴했다고 했으나 반러시아 소행이라는 주장도 있다.
7. 우스펜스키 소보르(Uspensʹkyy Sobor): 소보르는 그리스 정교회 또는 성당을 말하는 동유럽어로
수도원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스비아토슬라프 야로슬라비치 왕자가 1073~89년 사이 공사를 마쳤다.
2002년 다시 복원되었고, 성모안식 교회(The Great Church Of The Holy Dormition)라고도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성도들이 기도하는 곳이라 설명 없이 화려한 성화(이콘, icon)들을 감탄하면서 바쁘게 따라
다녔고, 일반 성화는 나무로 만들고 금칠을 했으나 이곳은 대리석으로 만들고 금칠한 성화라고 한다.
8. 성 안토니와 테오도시우스 페커스키의 종교 교회(Refectory Church of St. Anthony & Theodosius
echersky): 교회와 예전에는 수도사식당으로 사용했던 곳과 나뉘어 있으며, 교회는 화려한 아이콘이 있다.
식당은 수도원을 재건하기 전 사진들을 전시했고, 독일군이 파괴한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식당은 수도원을 재건하기 전 사진들을 전시했고, 독일군이 파괴한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종교 교회를 나와 수도사들이 거주하면서 수행을 하였던 동굴로 향했으며, 페체르스크(Pechersk) 슬라브어로
동굴이라는 뜻을 가졌고, 라브라(Lavra)는 수도사들이 형성한 거대한 타운(Town)을 뜻한다고 했다. 19세기에는 2천 여 명의 수도사들이 거주했으나 현재는 200여 명의 수도사들이 아직도 있으며, 동굴 수도원에 도착하면 십자가 찬양교회가 있다. 9. 십자가 찬양교회(Church of the Exaltation of the Cross): 러시아 정교회로 많은 기적을 일어나는 아이콘은 예배 때만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 교회 앞에는 묘지들이 있다. 동굴로 입장하면 매우 성스러운 곳이어서 남자들은 모자를 벗어야 하며, 이곳에 들어온 수도사는 평생 밖으로 나아가지 않았으며, 그들은 파이프를 통해 빵조각과 물만 공급 받아 삶을 영위했다. 이렇게 일정한 삶을 산 사람은 죽어도 부패하지 않았고, 엄숙한 곳이고 분위기도 맞게 촛불을 켜고 다녀 사진도 찍을 수 없으며, 어두워서 모르게도 찍을 수가 없었고, 지하 무덤과 미라라는 마니도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마니를 발견하면 그 앞에서 기도를 하였고, 수도사들이 예배를 드렸던 ‘지하 성당’도 있으며, 이런 동굴은 아주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고 했고, 관광객을 위해 아주 작은 부분만 공개하고 있다. 이곳을 나와 정원을 따라 내려오면 십자가 찬양교회 앞 전원에 핀 흰 장미가 핀 것을 보고 가이드는 10월 말에 장미가 피는 것이 신비롭다고 했는데 신비한 장소의 힘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정원을 지나 철문을 나아가면 도로이고 이곳에서 차를 타고 구시가지로 향하다가 마린스키 궁전을 들렸다. 10. 생명근원 교회(Church of the Life-giving Source): 1632~1657년 사이 봄의 축복을 받은 처녀의 이름으로 세워진 동방정교회이며. 성도들이 출입하는 문은 외부로 되어 있어 입장권 없이 들어 갈 수 있다. 이 교회에서 남쪽으로 직선거리 250m 쯤 떨어진 곳에 있는 러시아 동방정교회인 안노자카티예비스키 흐람 업츠 Mp 교회가 있으나 뜻을 알 수 없으며, 또 성모탄생교회가 있고, 옆에는 벨타워가 있다. 11. 안노자카티예비스키 흐람 업츠 Mp(Annozachatiyivsʹkyy Khram Upts Mp): 코사크 스타일의 아름다운 . 건물로 키예프의 알렉산더 노비츠키의 기부로 1679년 동굴입구 위에 세워진 러시아 정교회이다.
12. 성모 탄생 교회(Nativity of Our Lady Church):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교회이며, 그 옆에는 19 세기의
많은 정치가와 군인이 묻혀있는 묘지가 있다. 13. 벨타워(Belltower): 1761년 많은 동굴을 위해 건축된 종탑으로 당시에는 라브라를 방어 시스템의 일부였고, 현재는 성모 탄생 교회의 종탑이다.
[우크라이나 국회(Verkhovna Rada)]
왕궁으로 가는 중에 우측에 핵전쟁을 대비하여 만들었다는 지하철(PEOTPAH)은 지하 105m 내려가 세계 최고의 깊이라고 가이드가 자랑했는데 우리 일행 사모님이 북한은 그 보다 더 깊다고 해서 그를 멋졌게 했다.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을 했는데 유사시 핵공격의 방공호로 1973년부터 운행된 북한의 평양지하철은 100∼150m
깊이에 만들어졌다고 했으니 사모님 말이 맞았다. 원형의 특이한 건물은 DHL 고속 서비스 포인트(Express Service Point)이라고 하고, 그 뒤에 있는 큰 건물은 다이아몬드 언덕(Diamond Hill)이라는 빌딩이고, 10분도 안 되어 마린스키 궁전에 도착했다. 궁전 입구에 있는 건물은 우크라이나 국회(Verkhovna Rada, 베르호브나 라다)이며, 마린스키 궁전은 대통령이 국빈을 맞이하는 영빈관과 관저로 사용하고 있고, 국빈이 오면 신호들을 끄고 수신호로 한다고 한다. 대통령전용 헬기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 같은 추위에 미니스커트와 반팔을 입은 청년들이 높이뛰기를 하려는 것 같아 사진을 찍고 싶어 ‘빨리 뛰라’라고 외치자 뛰기는 했지만 높이는 뛰지 못했다.
[마린스키 왕궁(Mariyinsky Palace)]
마이단 광장 동남쪽 1.3km 거리에 있으며, 1744~52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여황제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재위
1741~62년)가 건설했는데 1754년 그녀는 에르미타주 박물관(겨울궁전)도 건축했다. 겨울궁전과, 룬달레 궁전을 설계한 프란체스코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Francesco Bartolomeo Rastrelli)가 설계했으며, 1870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 딸인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를 기념하기 위해 지금과 같은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1709년 출생한 그녀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지적이고, 활달하며 뛰어난 재능까지
갖추어 아버지 표트로와 어머니 예카테리나의 모든 것을 닮아 왕실 근위대와 모든 사람에게 인기가 대단했다.
이반 6세의 섭정자들이 그녀를 '수녀원으로 추방하겠다.'고 위협하자 뜻을 같이하는 궁정관리와 프랑스대사의
협력을 얻어, 1741년 반란을 일으켜 이반과 어머니 그리고 협력자를 체포하였다. 관리와 주요성직자들을 소집하여 황제로 선포하였고, 아버지정치를 모방했으나 정치보다는 화려한 궁정생활과 쾌락과 멋진 서구 옷을 사들이는데 열중했으며, 엄청난 비용을 들여 상트페테부르크에 겨울궁전을 지었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작센, 스웨덴, 러시아가 동맹을 맺고, 프로이센, 하노버, 영국이 동맹을 맺어 서로 맞서 7년 전쟁(1756-63)을 시작하였으며, 프로이센은 패배직전에 그녀가 죽어 황제는 조카 표트로 3세에게 넘어갔다. 러시아 표트르 3세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대왕) 2세를 거꾸로 돕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살아나 슐레지엔에서 오스트리아군을 몰아냈다.
[구시가지로 향하면서 보이는 것들]
제일 처음 만나 것은 20세기 초 반에 만들었다는 우크라이나 국립미술관(National Art Museum of Ukraine)으로 정면 양쪽에는 사장상이 있으며, 온통 시멘트 색이라 우중충했고, 같은 방향으로 코발트색의 건물이 보였다.
이 색을 우크라이나 상징 색으로 벽에는 하얀 조각도 있는데 이 건물 1층엔 산파올(SANPAOLO, 성 바울)로 식당이 있으며, 반대편으로 발레리 로바노프스키 기념비(Monument to Valery Lobanovsky)가 있다. 이 기념비 구소련과 우크라이나 축구의 명감독으로 전 세계 축구에 과학기법을 도입한 사람이고, 그 옆에는 흰색과 우크라이나 색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주랑(콜로네이드) 건물도 있다. 정면의 의회 센터 우크라이나 하우스(Congress Center Ukrainian House)를 보고 좌회전하면 우측으로 보이는 알파 뱅크(Alfa-Bank)를 지나면 커피 전문점과 노동 연대 기념물이라는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이 노동조합 건물(Trade Union Building) 이며, 이 건물을 안고 우회전 하면 좌측이 독립 광장이 있고, 대각선으로 2층 복도 전체가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둘러싸인 흰 건물로 보인다. 이 건물이 국립 차이코프스키 음악 아카데미(The National Tchaikovsky Music Academy) 이며, 그 옆에 있는 민속가게(Folkmart)는 독립광장에 왔을 때 들렸고, 안드레아 교회 그림이 있는 접시를 샀던 곳이다.
독립 광장 중앙 너머로 보이는 건물 좌측은 우체국이고, 우측 끝이 핀 은행(Fin Bank)이며, 광장 끝 부분에는
주황색 건물 위에 황금빛 천사상이 있는 리아드스키 문(Lyadsky gate)이 있다. 이은 1151년 키예프의 남쪽 문으로 세워졌으나 1240 년 바투 칸(Batu Khan)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2002년 복원 될 때 키예프의 수호성인 마이클 대천사를 청동위에 금으로 도금해서 세웠다. 키예프의 수호성인 마이클 대천사를 청동위에 금으로 도금해서 세웠다.
[성 소피아(St. Sophia's) 성당]
얼마가지 않아 식당이었고, 점심식사 후 키예프 가장 중심지역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으로 향했고, 저 멀리
황금수도원으로 유명한 ‘성 미카엘 성당’도 보였으며 소피아 성당의 벨 탑 앞에는 무덤이 있었다. 주 경찰과 키예프 법원(Pechersk District Court of Kyiv)이 있는 건물과 멀리 소방 감시탑(Fire watchtower) 보이며, 그 좌측으로는 의류와 시계 등을 파는 멋진 상가가 있다. TC는 대성당(Cathedral)에는 대주교가 있으며, 그가 죽으면 성당에 무덤을 쓰지만 이 무덤은 표지도 없다고 했다. 76m의 종탑은 바로크 양식으로 1699~1706년에 세워졌고, 정문 역할을 하고 있어 그 아래를 통과 하니 입에서 ‘야~ 예쁘다!’라는 탄성이 나왔으며, 전면 중간 중간에 본래 모습인 벽돌을 볼 수 있도록 원형 그대로 두었다.
중앙지붕만 황금 돔이고 나머지 돔 지붕은 푸른색으로 벽은 흰색인데 가이드는 988년 키예프 왕 블라디미르
1세가 그리스정교로 개종하여 정식종교가 되었고, 11세기 백성들이 그리스정교를 믿도록 이 성당을 만들었다.
성당을 만들 때 동방정교회 상징인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 있는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모방했다고 하는데
외형은 닮은 곳이 없지만 ‘지혜’의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소피아’를 빌려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키예프는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의 지시를 받아 교회의 성직위계를 만들었으니 그 영향도 있었겠지만 외형은전혀 아니며, 199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은 이 성당의 키예프 건축양식이 후에 러시아 정교회의 건축과 종교 문화에 본받을 만한 룰 모델이 되었기 때문이며, 동유럽의 성당 중에 가장 크고 유명한 성당이다.
세계적으로 탁월한 건축물로 손꼽히는데 러시아성당양식인 양파(성령의 불꽃) 모양을 전파한 건물이며, 안에서는사진을 찍을 수 없어 남는 것이 없어 아쉬웠고, 야로슬라프(재위 1019년∼1054년)의 이야기를 했다. 그는 성 소피아를 건축했고, 이곳에 학교를 세워 여성도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으며, 최초의 도서관을 세우기도 했는데 1236년 몽골의 침입하여 성당을 파괴했는데 17~18세기에 복원하면서 내부는 대부분 원형대로 했다. 외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바꾸었는데 11세기의 천년 된 모자이크 그림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성당의 하나라고 하며, 이 성당 중심에 있는 보물로 여기는 마리아가 바로 대표적인 그림이라고 한다. 몽골의 파괴 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에도 파괴되지 않았던 마리아 그림은 그 누구도 부시지 못하는 신성한 그림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믿으며, 프레스코 화는 흰 바탕을 칠하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린다. 마르기 전 빨리 그려야 보존이 오래 가며, 그리고 갑자기 야로슬라프 왕의 딸들은 프랑스, 헝가리, 노르웨이 왕과 혼인을 했으며, 자신의 여동생들을 폴란드 국왕, 동로마의 황자와 혼인을 시켰다는 이야기를 했다. .
프랑스국왕 앙리 1세에게 시집 간 안나 야로슬라프나는 1050년 보낸 편지 내용에 '아버지께서 저를 보낸 나라는정말 야만적인 나라예요. 주택은 어두침침하고, 성당은 끔찍하고, 문화는 미개해요.'라는 내용이 있다. 당시 키예프 문화가 프랑스보다 앞서 있어 안나가 프랑스에게 전해 주었고, 그리고 자신도 스웨덴 공주와 혼인을
맺는 등 적극적인 혼인 외교정책을 펼쳐 전쟁을 피하고 국가를 안정시켜 최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여러 나라에 시집간 딸들과 여동생들은 이 성당을 모델로 삼아 성당을 건축했고, 야로슬라프 동상은 황금문에서
있으며, 키예프 시 상징인 2개의 성당 중에 하나인 ‘성 미카엘 수도원’으로 향했다.
[보흐단 흐멜니츠키(Bohdan Khmelnytsky) 동상]
1617년 우크라이나 귀족으로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맹의 지배할 때 코사크와 군사 활동을 하였고, 1648년
우크라이나의 독립전쟁을 개시하였으나 전쟁 중에 죽었으며, 이 나라 돈 50.000 흐리브냐(uah)에 도안되었다.
보흐단 흐멜니츠키(1595~1657년)는 1617년부터 루블린 연합(폴란드-리투아니아)의 정규 카자크 부대에서 활약하였으나 폴란드 귀족과 분쟁으로 자신의 영지에서 주도권을 빼앗기고 카자크 요새로 도망갔다. 1648년 무장 반란을 일으켜 폴란드 군대를 여러 차례 격파하여 카자크 수장국의 수장이 되었다. 1651년 베레스테츠코 전투에서 패하여 같은 그리스 정교회를 믿는 러시아에게 자치권을 인정받는 조건으로 지원을 요청하여 수복했으나 이것으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오랜 지배를 받게 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1651년의 무장 반란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쇠퇴시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지배로 넘어 갔다. 1905년 오피이브스카(Sofiyivska) 광장에 세운 보흐단 흐멜니츠키 동상’은 소피아성당을 보고 있다. 1905년 오피이브스카(Sofiyivska) 광장에 세운 보흐단 흐멜니츠키 동상’은 소피아성당을 보고 있다.
[블라디미르 언덕(Volodymyr Hill)에 있는 것들]
이 언덕 동쪽엔 성 미카엘 성당이 있고, 북동쪽에 있는 후니쿨라를 타고 내려가면 예수탄생 교회기 있고, 북쪽
정면에 주랑(콜로네이드)이 있는 건물이 우크라이나 외무부((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Ukraine)이다. 서쪽엔 국립외교학원(Diplomatic Academy)과 그 앞 광장엔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올가(Olga) 동상이 있는데 그의 역사를 살펴보면 류리크 왕조의 후계자 올레크가 882년경 키예프를 정복해 노브고로트에서 수도를 옮겼다.
올레크는 912년 죽어 후계자 이고리(재위 912~945)가 재위하였으며, 그는 903년 영리함과 미모에 대담함까지
갖춘 올가를 아내로 삼았고, 이고리가 죽자 올가(섭정 945~969)는 최초로 키예프 공국을 다스렸다. 955년 올가는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에게 최초로 세례를 받아 기독교 도입의 기회를 열었는데 이 때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부터 청혼을 받을 때가 결혼한 지 32년 되는 해이었으니 그녀의 미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아들 스뱌토슬라프(재위945~972)는 영토를 더욱 넓혔고, 그의 아들이 유명한 블라디미르 1세(재위 980경~ 1015)로 성 블라디미르라고 부르는 류리크 왕조의 통치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블라디미르는 최초의 키예프 루시법전을 편찬했고, 올가 동상 우편에 키릴문자를 만든 키릴로스와 메토디우스
형제의 동상도 있는데 이 형제는 9세기 동로마제국의 선교사로 슬라브족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파송됐다.
형제는 파찰음이 많은 슬라브어를 기록하려고 라틴과 그리스문자, 글라골문자를 변형시켜 만든 것이 키릴문자로 그들 형제를 불가리아와 그리스가 서로 자국인이라 주장하고, 키릴 문자도 자국의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키릴 문자를 받아들인 러시아가 지배했던 동유럽, 발칸 반도, 중앙아시아, 몽골 등지에서 사용한다. 올가 좌측에 있는 동상이 성 앤드루 동상으로 그는 우크라이나 정교를 도입한 성자라고만 알뿐이나 그의 이름과 같은 성 안드리 교회와 북쪽으로 앤드루 거리가 있는데 이동상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성 미하일 황금 수도원(St. Mikhail Golden Monastery)]
우크라이나 색이라고 하는 연초록 하늘색 벽에 흰 색깔이 들어가고, 지붕은 황금 돔이라서 ‘성 미하일(미카엘)
황금 돔 수도원’이라고 부르며, 12세기 대천사 미하일에게 헌정하기 위해 건축되었다. 11세기에 만들어진 성 소피아 성당과 함께 역사적인 건물이 서로 마주보고 이 지역이 아주 특별한 곳이라고 하며, 수도원 벽에는 유로 마이단 시위 시절에 경찰대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사진이 있다. 이제는 내부로 들어가 가이드의 설명 없이 눈으로만 화려하게 장식된 것을 구경했는데 내부는 좀 어두웠으나 남을 위해기도 하는 즉 중보기도(仲保祈禱)를 위해 켜 놓은 촛불만 밝게 빛났다. 이 수도원은 무신론을 주장하는 소련의 공산당 시절에 파괴된 것을 1998년에 재건했으며, 외벽을 밖에서 지지하는 기둥형태의 고딕건축 구조기술에 하나인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가 측면에 있다.
※성 미하일 수도원: 1108~13년 키예프 대공국 스뱌토폴크 2세 대공이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원 건축양식으로
건설되었고, 1240년 몽골 제국의 침공하여 파괴하였으나 1496년 동방 정교회 수도원으로 복원되었다. 1108년 스뱌토폴크 2세 부인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성녀 바르바라의 유품을 이곳으로 옮긴 뒤부터 순례지가 되었고, 18세기 수도원 외부만 우크라이나 바로크 건축 양식으로 개조하였다. 1934~36년 소련이 수도원을 철거하고 정부청사를 세웠으며, 1991년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수도원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1999년 완료된 수도원을 키예프 총대주교좌 우크라이나 정교회에 양도하였다. ※미가엘(Mihael): 대 천사장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영어- 마이클(Michael), 마이크(Mike), 미키(Mickey)가 있으며, 스페인- 미구엘(Miguel), 러시아- 미하일(Mikhail), 미카엘(Michael)로 표기된다. 그랜드 호텔이며, 다시 후니쿨라를 타고 올라가 북서쪽 500m 언덕에 있는 안드레아 교회로 향했다.
※유로 마이단(Euro Maidan) 시위: 유로(유럽), 마이단(광장), ‘유럽광장’의 의미로 친 러시아계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2013년 11월 유럽연합과의 차관협정체결 중단을 선언하고, 러시아로부터 차관을 얻으려했다. 유럽파인 야당세력이 불만을 가지고 11월 21일부터 시위가 촉발되었고, ‘베르쿠트’라는 특수 경찰대가 시위대의 강경진압과 이 나라 지역갈등, 러시아, 유럽, 미국 등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사상 최악의 상태가 되었다. 마이단 광장, 독립 광장, 성 미카엘 광장에는 건물지붕에 배치된 스나이퍼(저격수)들이 시위대를 정조준 사격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공식통계로 2013년 11월~2014년 2월까지 시위대 104명이 총격 등으로 숨졌다.
시위진압을 하던 경찰과 보안요원 수십 명도 숨졌고,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로 망명하여 2014년 2월 서쪽이 정권을 잡자 2월28일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침공하여 세바스토폴의 청사, 군사기지, 공항을 점령했다.
3월16일 크림 반도 주민투표는 96.7% 찬성으로 러시아로 편입하였다. 6724.25 성 미하일 수도원 전면 벽에는 유로 마이단 시위 때 희생된 107명의 사진이 있는 곳은 발표된 사망자 104명과 비슷하여 사망자로 보였고, 아래 사진에는 화염 속에 저항하는 시위대 사진이 있다. 288 명의 사진이 있는 곳은 다친 사람으로 보였으며, 그 앞에는 꽃과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모르는 병들이 놓여있었는데 아마도 촛불을 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쪽 가옥 벽에 그려진 사람도 시위 때 희생자라고 하는데 아마도 가족이거나 가까운 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니쿨리 후니쿨라(Funiculi Funicula)]
블라디미르 언덕 북동쪽에 1904년에 개통한 후니쿨라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일정에 없어 타 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타게 되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라는 단편소설의 제목이 생각났다. 가이드는 준 티켓은 둥글게 생긴 검은 플라스틱을 넣고 후니쿨라를 타고 내려가면서 보이는 드네프르 강과 다리들이 보였고, 다 내려가면 출구 우편에 비즈네스 첸트 볼라디미르(Biznes Tsentr Volodymyrs) 있다. 건물의 용도는 알 수가 없었고, 바로 정면에 예수탄생 정교회(Nativity of Christ Church)가 보이며, 교회 우측 뒤로 보이는 흰 건물은 드네프르 강 항만(Kyiv River Port) 역사 건물 이다. 좌측으로 보이는 붉은 건물은 도서관, 중간 건물은 소비에트 시절에 만든 건물이고, 그 옆 큰 건물은 페어몬트
[성 안드리 교회(St. Andrey Church)]
가이드는 이 교회에서는 아무 설명 없이 30분간의 자유 시간을 주었으나 시간을 보낼 곳이 없어 10분만하기로
하고, 외장이 너무 예뻐서 입장하려했으나 지금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어 요금을 내야하기에 포기했다.
광장에는 청동으로 만든 숙녀와 무릎 꿇고 있는 남자의 동상이 있는데 2사람의 코를 얼마나 많이 만졌는지 무척 반짝였는데 이것이 앤듀루 이름을 의미하는 ‘남자답고’ ‘씩씩한’ 모습인가? 서쪽에 역사박물관이 있고,, 북쪽엔 앤드류 거리가 있는데 인터넷에서는 이 교회는 러시아황후 방문 기념으로 지어진 푸른 돔의 아름다운 안드레아(상트 안드레예프스카야) 교회로 18세기 바로크 양식이라고 한다. 이 교회는 너무 예뻐서 교회 모습이 있는 접시를 독립 광장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샀다.
※앤드류(Andrew): 그리스도 12사도 중 하나 안드레(Andre)서 유래한 ‘남자다운’ ‘씩씩한’ 뜻으로 요한의 아들, 베드로의 형제로 영어- 앤드루, 프랑스, 포르투갈- 앙드레, 안드레(Andre), 폴란드- 안제이(Andrzej), 헝가리- 앤드라스(Andras), 덴마크- 안데르센(Andersen), 그리스, 독일- 안드레아스, 러시아- 안드레이, 이탈리아-
안드레아(Andrea), 애칭으론 '앤디(Andie·Andy)', '드루(Drew)' 등이 있다. 성씨로는 앤드루스(Andrews)와 앤더슨(Anderson)이 있다.
[독립 광장(Independence Square) 관광]
독립광장으로 향하면서 가이드는 우크라이나는 밀과 돼지고기가 유명하다고 했는데 일행 중 한 분은 이 밀로
수제비를 해 먹어보았는데 아무 조미료 없이 만들었으나 너무 쫄깃하고 구수했다고 한다. 쌀은 생산이 안 되어서 밀이 주식이라고 하며, 또 하나 유명한 것이 소피아 로렌이 주연을 했던 해바라기인데 이 영화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해바라기 보면서 발칸 TC가 버스에서 틀어줬다. 이 나라는 해바라기 오일도 유명하다고 발트 TC가 소개했고, 차는 독립광장 근처에 멈추었으며, 가이드를 따라 가면서 우크라이나 각료회의(Cabinet of Ministers of Ukraine)와 우크라이나 호텔을 봤다. 국제문화예술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Culture and Arts)와 티켓판매대행사를 겸하고 있는 건물 앞에 있는 꽃시계(네베스냐 소트냐, Nebesna Sotnya)가 있었다.
꽃시계 앞에는 2013년 11월과 2014년 2월에 있었던 우크라이나 민주화를 위한 유로 마이단(Euro Maidan)
시위 희생자의 사진이 있고, 청년은 제단에 놓을 물품도 팔았다. 가이드는 시위자에게 발포한 사람은 모르지만 러시아에서 보낸 스나이퍼(저격병, sniper)로 추측할 뿐이라고 했고, 좀 더 가면 외국의 침략에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는 우크르쿠프스필카(Ukrkoopspilka) 건물이 있다.
건물 좌측에 관광하기 좋은 곳에 있는 크레샤틱 키브 호텔이고, 코너가 노동조합건물(Trade Union Building)로
2014년 2월 18일 유로 마이단 시위의 지휘하다가 경찰의 공격으로 불탄 것을 2014~18년 재건축 했다. 1991년 독립을 기념하는 독립 기념탑(Independence Monument)이 있는 독립 광장에 도착했고, 기념탑 꼭대기 여신상이 있으며, 옆엔 국립 차이코프스키 음악아카데미(National Tchaikovsky Music Academy)가 있다. 이제는 아카데미 옆에 있는 민속가게로 향했으며, 이곳에서 안드레아 교회 그림이 있는 접시를 샀고, 이 가게를
나와 지하에 있는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냈고, 이제는 황금 문으로 향했다. 쇼핑을 줄이고 우크라이나를 세운 4명의 ‘영웅들의 동상’ 이나 ‘마이단 광장’을 보았으면 좋았을 터인데...
2022-03-15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