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적'인 인간의 감동적인 '성장 보고서'
이 소설의 구성은 지능지수 70의 정신지체자인 챨리가 인간의 두뇌향상, 즉 수술을 통한 인간의 지능향상에 도전하는 과학기술자들에 의해 실험대상자로 선정되면서 꾸준히 기록해야만 했던 챨리 자신의 실험보고서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서 주인공인 챨리가 자신의 육체적, 심리적 상태를 정확히 기술해 내려가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를 형성한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일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자기 관찰서로서 한 개인의 가장 주관적이고도 내밀한 심리적 정황을 가장 객관적으로 기술해야하는 문체적 부담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글의 문체는 특이하다. 문체가 곧 챨리의 지능과 의식을 재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따라서 소설의 초반부는 백치 상태의 챨리의 시선속에 여과된 세상을 보여주다 보니 어휘와 문장이 단순하고, 철자법 또한 어긋나 있다. 그러나 수술을 받고서 보통 이상의 지능을 소유하게 됨에 따라 그의 사고는 훨씬 복잡해져 보다 사변적이고, 예민하고, 섬세하게 변모해 간다. 그에 따라서 어려운 어휘와 복잡한 문장이 구사된다.
이 작품은 백치와 천재라는 극단을 오가는 챨리라는 인물을 통해서 인간의 지능이란 무엇이며, 지능의 장애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부당하게 차별되고 있는지를 그의 가족관계, 그를 둘러싼 인간 관계를 통해서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챨리가 바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의 극성스러운 엄마, 오빠가 바보라는 사실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리는 누이동생, 챨리의 교육문제로 아내와 항상 불화를 일으키는 챨리의 아빠, 이들 가족이 일으키는 불협화음은 가족들에게서조차 사랑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정신지체자의 고달픈 불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국 챨리는 가족의 수치이며 잊혀져야 할 악몽으로 남는다. 그런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곁에 친구를, 그를 진정으로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두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챨리는 자신이 똑똑해지면 사람들이 그를 좋아해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챨리는 수술을 통해 비범한 지능을 갖게 됨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놀림의 대상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기억인 가에 대해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분노에 치를 떤다. 챨리의 정서 발달은 그의 높아진 지능을 따라가지 못해 이들 사이의 균열이 그를 분노케하고 절망케 한다. 인간의 과학기술은 분명한 한계를 지닌 바, 수술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 챨리는 다시 예전의 백치 상태로 퇴화해 가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반성하며 성숙해 간다. 그것이 바로 챨리가 가진 힘이다. 결국 챨리가 일관되게 세상을 향해 요구하는 것은 자신이 바보나 천재이기 이전에 한 개체임을, 인권을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동등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번역본이 나오기는 했으나 나는 읽어보지 못했다. 챨리의 정신적 정황을 드러내는 문체를 고려한다면, 원문을 읽기를 권한다. 영어가 그렇게 많이 어렵지 않다. 분량도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다. 무엇보다도 원문이 주는 감동이 크다. 한번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단지 내가 이 소설에서 탐탁지 않았던 부분은 챨리가 여성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성적인 성숙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도식적이라는 것이다. 여성인물들이 어느 정도는 정형화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조금은 덜했다. 아마도 나는 여성독자인 반면, 챨리는 남성인 까닭에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보다보니 그런 균열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부연하건대, 재미가 있고, 감동이 있다. 그럼에도 원문에 대한 부담이 적다. 정말 권한다. [2003-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