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주 선산에게 문화류씨 좌상공파 판관공 후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한 번 생각해봅니다.
우리 판관공 후손들은 류 차달 - 류 만수 - 류 자미 - 판관공 할아버지로 이어지는 후손들입니다. 당초 우리 조상님들은 옛부터 도성인 서울 근처에 주로 거주 하셨습니다.
2. 그런데 조선 명종때 류 절할아버님의 어머니신 방씨 할머니의 가족께서 사화에 연루되어 방씨는 물론 우리 류씨까지 피해를 당하실까 우려해 파주 고향을 땅을 떠나 친정인 나주로 이주하시게 되는데, 그 후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주하실 당시 방씨할머니께서는 남편을 여위시고 어린 류 절 할머니님과 시동생들을 이끌고 나주로 오시면서 파주 고향 땅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 신 것을 무척이나 애석하게 생각하시고 고향땅에 은수저,그릇등을 묻으시고 반드시 고향땅으로 돌아오시겠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3. 그러나 방씨 할머니는 다시 파주 고향땅으로 가시지 못하고, 나주에 계속 사시게 되는데 그 후손들이 광산,광주, 화순등에 사시고, 조선 중기 때 후손일부가 경기도 이주하여 사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판관공 할아버지가 계신 파주를 떠나 살면서도 제사며, 묘 관리를 게을리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시간이 흐르고 임란등으로 사회가 불안하여 한동안 성묘등을 가지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4. 이러자 파주 고향땅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 선산에 묘를 함부러 쓰고, 자기 땅이라 우기는 일까지 생겨나자, 1800년대에 나주에 사시던 일가 한분으로 파주 고향땅으로 이주하시어 파주 선산을 관리하고, 재판을 통하여 우리 선산을 찾아왔습니다. 해방이후에는 6.25전쟁후 몇 년 동안만 빼고 매년 광산,광주등에 사는 후손들이 그 당시에 교통도 불편하고 군사지역이라 통제가 심했던 시기에도 직접 찾아가서 시제를 모시고, 성묘를 하였고, 약간의 석물등도 하여 묘를 단장하였습니다.
5. 이렇게 파주 선산은 근 500년 동안 여러자기 우여곡절 끝에 지겨온 판관 후손들의 혼이 있는 선산입니다. 그런데 집행부 어르신들이 4대가 모셔져 있는 이 선산을 교통이 불편하고, 땅 값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이유로, 그리고 문중재정이 궁하다는 이유로 매각한다고 하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6. 첫째, 시제,성묘,선산관리등이 교통이 불편하여 어렵다는 이유는 당치 않습니다. 지금보다 수십배 교통이 어려웠던 시절에도 우리는 시제,성묘등을 다 해왔습니다.
둘째, 땅값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이유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파주는 남북한 교통의 요충지와 엘지전자등이 들어서는 등 산업도시요, 수도권의 배후도시로 택지개발등이 이루어지고,통일이후에는 큰 가치가 더욱커질것임) 선산에 딸린 묘토는 제사등을 지낼수 있는 곡식 정도만 나면 족합니다.
세째, 문중재정이 궁하다는 조상님들이 500여년간 모셔져 있던 묘를 함부러 이장하고, 선산등을 팔아다는 문중을 저는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간혹 불가피하게 댐 건설이나 토지수용등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선산등이 매각되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우리처럼 자발적으로 선산에 있는 묘를 파헤쳐 이장하고, 파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7. 이번 사건의 본질은 파주 선산 땅을 종원들의 동의없이 집행부가 매각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판관공후손들의 혼이 들어있는 파주 선산을 함부러 처분할려는 집행부 어르신들의 정신이 문제입니다.
집행부 어른신들은 파주 선산이을 판관공 후손들이 500여년간 어떻게 지겨오고 관리해온 선산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첫댓글 바로 그런 문제 때문에 마지못해 관여를 했지만 알면 알수록 분통이 터집니다. 우리들은 분명히 그 책임을 물을것이며 어떠한 경우라도 "원상복구"토록 온 힘을 다할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조상님들은 우리만를 믿고 계실것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현 집행부 어르신들 나중에 크게 미안할 일이 생기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