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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회개 또 회개 … 그리고 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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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어린 날의 회상 죄와 마주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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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의 기억은 풍성한 것들 투성이다. |
어린 나는 가방을 스스로 드는 수고를 하지 않고 학교에 다녔고 기사 아저씨가 열어주는 차 문에서 내렸으며 |
긴 생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주던 식모 언니는 편식이 심했던 나를 쫒아다니며 밥을 떠 먹여야 했다 |
가정교사들은 종류도 다양하게 집을 시간대별로 들락거렸다. |
피아노 수업이 끝나면 바이올린을 바이올린이 끝나면 무용학원에 |
일주일에 두 번은 수영을 배우러 잠실체육관을 겨울이 오면 스케이트와 스키를 번갈아 타고 |
일요일이면 아빠를 따라 골프연습장에 가거나 백화점으로 쇼핑을 갔다 |
서예, 주산, 미술. 속셈 검도 발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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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90년생이거나 00년생이 아닌 72년생이다. |
그 어느 것 하나 빼 놓지 않고 그 오랜 과거의 시절에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
모든 사교육을 다 받을 수 있던 복 받은 계집아이가 바로 나였다 |
전생에 나라를 구했음이 분명하거나 혹은 삼신할머니와의 뒷거래로 라인을 잘 타고 태어난 아이 |
태어날 때 이미 금 숟가락을 입에 우아하게 물고 태어나 주신 억세게 운 좋은 나는 |
풍요로운 땅 애굽에서 자라난 카인의 후예였다 |
넓은 마당이 있던 집에는 언제나 아빠의 손님들로 북적였고 |
먹을 것, 입을 것, 진귀한 것들은 손이 닿고 눈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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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아들을 두신 친할머니께서는 내 부모의 결혼에 독한 어록을 남기셨다 |
과부딸이니 과부팔자가 될꺼라던 친할머니의 악담대로 엄마는 |
집안 대대로 곁에 두시던 무당의 신묘한 영빨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시며 젊어 청상이 되셨다 |
할머니의 잘난 막내아들이던 아빠는 40대 젊은 나이에 |
뇌가 서서히 굳어 심장이 멈춘다는 병에 걸려 돌아가셨다 |
신부님과 수녀님이 계란형 얼굴을 가진 예쁘게 생긴 마리아 아주머니 석고상을 귀한 아이처럼 |
안고 들어와 거룩 경건하게 찬송을 부르고 또 부르던 하루가 지나면 |
어느 날엔 목사인지 권사인지 하는 큰소리를 질러대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나타나서 |
기도인지 주문인지 모를 괴상하기 짝이 없는 쉰 소리를 온종일 질러대다 |
그래도 아빠가 벌떡 일어나지 않으면 울며 불며 통곡쑈를 벌이다가 돌아갔으며 |
또 어떤 날에는 파르라니 깍은 머리에 하염없이 목탁만 일정한 간격으로 |
몇 시간씩 두들기며 무어라 중얼대던 스님들 .. |
클라이막스 때가 이르러서는 급기야 총천연색 무지개빛 천을 둘둘 말고 |
청기 백기 붉은 깃발을 들고 돼지머리를 창에 꽃았다가 |
아까운 쌀을 바닥에 던졌다가 무시무시한 칼 위에 올라 방방 뜨질 않나 |
죽은 조상의 노자돈인가를 해야 한다며 부자집 굿판에 한 밑천 두둑이 챙겨가던 무당 언니야들까지 |
종교를 풀셋트로 돌려서 아빠를 위해 기도해 준 그들의 버라이어티한 행사와 |
끝간데 없이 투척질 해대던 돈질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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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은 넉넉하고 넘치게 남겨졌다 |
들고 튄 지인과 친척들도 부지기 수인데 오빠와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
그 자식들이 또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해도 될만큼 경제적인 풍요는 아빠의 부재와는 상관없이 지속되었다 |
지지리 가난한 과부딸에서 부자집에 시집 와 신데렐라가 된 점 등을 미루어 볼때 |
박복한 팔자라던 엄마는 친할머니 말씀대로 과부팔자인지는 모르겠으나 |
필시 재물복은 있던 여자였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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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결국 내가 초등학교 6학년에 아빠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 |
중학교에 가게 된 나에게는 극심한 성격의 변화가 왔다. |
이전의 나는 지나치다 싶게 밝고 긍정적인 아이였으며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 |
아빠가 돌아가신 이듬해 나를 키워 주시며 평생을 우리 집에서 함께 사시던 외할머니께서 |
심장마비로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
년 년으로 줄초상을 치루게 되었는데 왠일인지 나는 하나도 슬퍼하지 않았다. |
눈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나는 할머니의 장례식에 |
재미있는 드라마가 보고 싶어서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장지에 따라 나서지 않았다 |
외할머니가 날 키워주셨는데도 하나도 슬프지 않다는 사실이 두려웠으나 |
내가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른들이 알게 될까봐 무서웠다. |
이제껏 나는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는데 얼마 전 함께 차를 타고 다니시는 |
목장의 부목자님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 뱉어냈다 |
그 날 밤 늦게까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히고 두려워해야 했다 . |
그 후로도 오랫동안 생각했는데 나는 산소라는 곳을 그 후로도 내내 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
아빠와 외할머니의 산소는 같은 용인의 천주교 공동묘지에 있었다 |
나는 산소에 가면 눈물이 나는 것이 싫었다. |
산소가 존재하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면 아빠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사실이 되어버리는 것이 싫었다 |
나의 부모는 엘리트였으며 집은 부자였고 나 자신은 화려한 사교육덕에 못하는 것이 없던 |
팔방미인에 공부를 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
아빠의 죽음은 그러한 나의 완벽에 흠집을 냈다. |
선생님들의 불쌍하다는 듯한 시선과 아련한 눈빛이 나는 몹시 싫었다 |
친구들은 다 알면서도 없는데서 내 아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도 |
내가 들어오면 모른척 하며 마치 큰 비밀을 품은 것처럼 숙덕였다 |
사실은 이것이 어린 나의 성숙하지 못한 사고와 이기적인 마음의 실체였다 |
아빠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 따윈 그 때의 내게 없었다. |
그저 편모슬하가 된 내가 싫었으며 죽은 아빠를 살릴수는 없으니 나는 나를 |
슬픈 소설이나 드라마의 가련한 여주인공으로 생각했다. |
초등학생밖에 되지 않았던 어린 나의 생각이 너무나 무서워서 오늘날까지 누구에게도 |
나는 어린 나의 악함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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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기적인 나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
친구들이 마치 큰 비밀을 품은 듯 나에게 아빠가 없음을 수근거릴 때 |
나도 그들과 함께 그 비밀을 가슴에 품어야 했다 |
눈물을 봉인시키고 마음에도 없는 과도한 명랑함으로 |
구김살 없던 성격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연기가 시작되었다. |
졸지에 과부가 된 엄마를 위해 걱정 끼칠 일 없는 씩씩한 딸로 살아가기로 했더니 |
사소한 재잘거림이 있어야 하던 나이에 나는 엄마에게 모든 것을 침묵하며 드러내지 않았다. |
사력을 다한 연습으로 내게는 슬픔을 제어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생겼다 . |
화나 분노마저도 통제했으며 기쁨은 소멸되어 갔다. |
무엇이 기쁜것인지조차도 잊어버렸다. |
모든 감정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하물며 그것은 |
나의 성격이 너무나 좋아서 쟤는 걱정을 안해도 되는 |
독립적이고 알아서 잘하는 아이로 보여지게까지 하는것에 성공했으며 |
나의 연기가 너무 탁월했던 것인지 어른들은 죄다 어린 나의 연기에 속아 넘어갔다 |
아버지가 없어도 오빠가 늘 걱정이지 엄마는 내 걱정은 아예 하지 않았다. |
엄마의 관심에서 벗어난 나는 자유를 얻었다. |
나는 내 멋대로 했으나 모범적으로 행동했으며 |
무엇보다도 엄마 앞에서 웃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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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요망하고 깜쪽같음과는 다르게 순수하던 오빠는 |
아빠의 부재로 인해 그 나이에 걸 맞는 행동들을 쏟아냈다 |
자연스럽게 질풍노도의 시간을 통과했고 |
아이답게 흔들거렸으며 사춘기답게 난폭해 지기도 했다. |
오빠는 2~3년 쯤은 계속해서 나에게 폭행을 했다. |
나는 그 사건 또한 침묵했다. 울지도 않았다. |
그저 아빠를 잃은 오빠의 상처를 불쌍히 여겼다 |
오빠가 동생을 때린다는 사실로 놀라게 될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 |
은폐했으며 함구했다. |
가해자는 어른이 되어 그 사실을 잊었으며 피해자는 여전히 그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
나는 스스로 방부제를 잔뜩 부어 들이키고 |
본연의 내 어린 감정과 생각을 마취시켜 서서히 질식시켰다 |
어리고 작은 가슴안에 가둬두고 내 놓지 못한 마음이 툭툭 시퍼렇게 멍이 들어 가도 |
내가 파랗게 질식하며 스스로 돌무덤이 되어가도 |
어린 나의 마음에 바람이 새어드는 것 같은 날들에도 |
수백 번 등 뒤로 바람이 차갑에 얼어 붙어 갈 때도 나는 환하게 웃었다. |
그렇게 웃다 보니 나는 우는 법을 잊었다. |
참고 드러내지 않고 또 참고 드러내지 않음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 보니 |
학습의 효과는 어마어마하게 숙달이 되어 갔다 |
애를 쓰지 않아도 나는 슬프거나 화가 나지 않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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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것이 무엇인가 ?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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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의 모두가 성적을 .. 남자를 .. 연예인을 두고 고민에 빠졌을 때 |
나는 오래도록 본질과 가치를 화두로 두고 성장했다. |
골똘히 … 깊이 … |
" 만약 절대자가 있다면 나의 그리움의 실체를 아실까요? " |
이것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썼던 일기의 구절이다. |
나는 오래도록 형상없는 무언가를 그리워했다 |
절대적으로 고독했으며 외로운 빈 방에 갇히게 되었다. |
불행하게도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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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또 다시 죄에 빠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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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가까이 하던 사업을 들어먹었다 . |
사업을 말아먹기 1년 전 나에게는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가 있었다. |
그 아이는 어느 날 " 널 너무 사랑해서 널 놓을 수 밖에 없다 " |
치사한 대사를 남기고 나를 버렸다. |
사랑이란 단어를 함부로 쓰던 그 비겁한 남자는 여자들이 싫어하는 일명 " 효~~ 자" 였다 |
남자는 나의 오랜 친구였고 우리는 남자가 고시공부를 하던 열악한 현실에서 연애를 했다. |
그가 나를 두고 떠나며 했던 말 중에 나에게 치명상을 입힌 한마디가 있었는데 |
부모님께서 언급하셨다는 " 궁합" 이었다. |
궁합이 안 좋으면 얼마나 안 좋길래 … |
나는 당시 아주 잘 나가던 젊은 30대의 여자 ceo였다. |
남자와의 이별 이후 나는 젊음을 헌신한 나의 회사를 아주 쉽게 내 팽개쳐 두었다. |
회사는 나날이 병들어 갔고 이미 나는 판단력을 잃었으며 |
사장의 관심에서 멀어진 회사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
긴급수혈이 필요했던 회사에 만원짜리 빚 한장 없던 내 청춘을 바친 그 곳에 |
나는 무분별한 비싼 사채를 들이 부었다. |
오직 돈을 빌려다 메꾸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오직 나는 나를 두고 간 남자만을 기다렸다. |
그 남자를 기다리면서 나는 하루 종일 점만 보러 다녔으며 미친듯이 집착했으며 |
세상의 모든것을 다 가져가도 좋으니 그 아이 하나만을 달라고 기도했다. |
3만원 내고 점을 보다 신통치 않아 5만원 내고 점을 보니 수준이 떨어지는가 싶어 |
10만원 내는 집으로 이동하다 보니 전국팔도 점집을 다 돌다시피 했다. |
점집 여행은 감정의 허기를 달래 주었다. |
싸이보그처럼 감정이 없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으로 인해 죽을만큼 쓰리고 아팠다. |
논현동 어느 집에서 치성을 드리면 남자가 돌아온다기에 170만원을 주고 치성을 드렸다. |
사향을 품은 여우의 생식기를 몸에 지니면 남자가 돌아온다기에 |
그 말도 안되는 것을 100 만원이나 주고 사서 지녔다 |
충청도 어느 박수가 조상끼리 부딪혀서 그렇다면서 조상을 달래야 한다기에 300 만원 주고 또 치성을 드리고 |
부산의 선녀가 죽은 친구가 방해를 한다기에 500을 들여 천도재를 하고 |
죽은 아빠의 진오귀 굿을 안해줘서 그렇다기에 1천만원 들여 위령제를 지내고 |
매일 밤 남자를 기다리는 것이 괴로워 밤마다 060 점집에 전화를 걸어 밤이 다 새도록 통화를 했으나 |
잠이 깨면 또 다시 그가 내 옆에 없다는 사실에 불안해 했다. |
하루에도 수십만원씩 요금을 내 가면서 안 돌아온다고 말하는 점쟁이와는 빨리 전화를 끊어버리고 |
돌아올거라고 말해 주는 점쟁이와 오랜 시간 통화하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
미친 사람 같았다. 아니 미친것이 분명했다. |
알코올보다 더 무서운 중독 .. |
도박보다 더 치열하게 끊기 어려운 것이 점 중독인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
밤과 대추와 이것저것 종류별로 쌓아서 화선지에 말아서 밤1시에 한강에 던지고 와야 한다기에 |
새벽 1시에 한강다리 위에 서서 전설의 고향 찍고 온 나였다 |
조선시대처럼 초상화 그려 놓고 화살만 안 쏘았지 .. |
왕의 사랑이 돌아오기를 바라던 장희빈의 그 간절함을 체휼할 수 있는 여자가 .. 바로 나 .. |
어느 신이든 내 힘으로는 그 아이를 돌릴 수가 없어 제일로 높은 신을 찾아 수소문 하며 다녔다. |
그러고 다니는 동안 마침내 배는 침몰했다 . |
회사는 천문학적 숫자의 부도를 냈다 . |
서른 후반 젊은 나이에 나는 입이 떡 벌어질 빚더미에 올라 앉았고 |
태산보다 높은 욕더미에 짓눌렸으며 비난의 화살에 만신창이가 되어 갔다. |
8년이란 시간을 미친듯이 일만 하고 일구어 낸 회사 였으나 |
나는 회사가 부도나는 것을 산 너머 불구경 하듯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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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을 온전히 태워서 만들어 낸 회사였다.
나는 회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로 커 나가고 있는지 역시 함구했다.
집안 친인척 그 누구도 회사에 관여케 하고 싶지 않았고 독립되길 원했으며
회사의 소유 문제에 있어서 철저하게 나 개인의 소유가 아니기를 원했다
부도 당시 이미 회사는 홍콩과 인도네시아 중국의 심천까지 해외법인이 3군데나 있었고
각 나라에 사무실이 있었으며 직원들이 체류 중이었다
한국법인까지 .. 거대한 볼륨은 며칠만 오너가 손을 놓아도 휘청할 만한 싱태였고
두 세달만 마이너스가 나도 수억인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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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은 먼지처럼 무너져 내렸고 남자는 끝내 돌아 오지 않았다 . |
나는 부도의 결과로 인해 열심이던 모든 시간이 비난 받아야 하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다. |
채권자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일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하였으나 절대 도망가지 않았다 |
끝끝내 모든 빚을 값겠다는 의지로 꼴난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다. |
쿨하게 인정한 과오 ~~~ 받아야 할 수모였으니 담담히 침묵하며 받아드린 모욕 … |
그러나 나는 나의 실수를 인정했을 뿐이다. |
나 스스로 죄를 인정했을 뿐 , 나의 죄로 인하여 통복하지 않았다. |
수억대의 빚을 가지고 파산도 회생도 하지 않은 것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 |
내가 사기꾼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
수없는 억측과 억울한 소리들을 나는 아주 무심히 받아냈다 |
죄를 인정했으나 내가 죄인임을 회개하지 않던 시절엔 |
깊은 삶의 참회와 고통 속에서 오랜 시간 나와 빚과의 사투만을 남겼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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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나는 할 수 없사오니 오직 아버지께서 하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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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죄를 인정한 내가 나 스스로 진정한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
하나님 앞에 나는 온전한 죄인임을 자복하게 되었다. |
아주 어릴 때부터 훈련해 온 감정의 컨트롤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나에게 |
동정의 눈길조차 허락치 않은채로 빚쟁이들에겐 사기꾼 년. |
친구들에겐 독한 년 , 엄마에게는 천하의 나쁜 년이 되어 |
밥보다 욕을 더 먹고 사는 세월이 해를 거듭하고 있는 지금 |
환경이 변하자 나의 의지도 시들해져 갔다. |
반드시 값으려고 작정하던 빚조차도 이제 그만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 |
무서운 것은 나는 사람을 믿지 않았으나 타인도 아니고 사람인 나 자신을 믿었던 것이다. |
하나님을 감히 몰라라 한 죄인 … |
감히 하나님 자리에 선 자 .. 나는 그러한 죄인 중의 죄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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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침묵이 죄임을 나에게 가르쳐 주셨다. |
이 간증을 쓰기 전 나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 때의 신기한 체험들에 대하여 쓰기로 간증을 구상하였다. |
이미 간증을 써 놓은 것이 수십장에 이르니 숙제하기가 편했을 뿐 아니라 |
누구나 들으면 신기하다 여길만한 많은 기적들을 내 앞에서 보여주셨으니 얘기꺼리가 어마어마 했다 |
호기심 많고 논리적으로 따지기 좋아하던 나는 |
온갖 체험이 없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지도 느끼지도 못했을 죄인이다. |
간증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구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
한시간이면 너끈히 A4 몇 장에 글쯤은 술술 쓸 수 있을만큼 나는 글쓰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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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간증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세 줄을 쓰고 쓰기를 그만 중단해야 했다. |
하나님은 나를 어린시절로 돌려 놓으시고 어린시절의 상처와 직면케 하셨다. |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데 마흔이 넘은 내가 아니라 아주 어린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
어두운 곳으로 숨어 버린 어린 나를 꺼내다가 명경처럼 밝은 빛 가운데로 나를 내어 놓으려 하신다. |
급작스런 빛에 현기증이 나고 쓰러질 지경이다. |
몸 여기저기가 두들겨 맞은 듯 아파오고 헛구역질을 하고 숨을 못 쉬는 증상들로 시달리며 |
나는 이 혹독한 글쓰기를 계속 하고 있다. |
간증을 쓰기 시작하던 첫 날 |
나는 그렇게 몇 줄을 써 놓고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그 때 울지 못한 울음을 죄다 터뜨렸다. |
어린아이들이 소리내어 우는 것처럼 아이 때도 울지 못했던 눈물을 다 쏟고 나서 |
울다 지친 아이처럼 이내 썍쌕거리며 잠들어 버렸다. |
양육을 중단하고 여기서 그만 하고 싶은 생각이 때마다 나를 엄습하고 있으나 나는 오직 기도하고 있다. |
이 훈련을 통과토록 아버지여 나를 도우시라 기도한다. |
천지가 진동하는 지진 가운데 영적전쟁으로 폐허 속을 맨 발로 걷는 나는 |
오직 의지할 곳이 하나님 한 분이시다 |
하나님은 나란 사람을 지으신 그대로 나를 부르셨던 놀라운 지략가이셨다. |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다채로운 체험을 통해 논리로는 설명이 안되는 기이한 일들을 |
내 앞에 보이시며 본인의 존재를 나에게 알려주셨다. |
참으로 건방지게도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던 그 날에 |
나는 " 하나님이 만약 진짜로 있는것이라면 존재를 내 앞에 보여달라" 라고 말했다. |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나는 보지 않고는 절대 믿지도 않는 참으로 교만한 사람이었다. |
나는 하나님의 존재여부에 대해 많은 의문이 있던 사람이었다 |
예수를 인간이 만들어 낸 신화쯤으로 여겼으나 제일 쏀 신을 모신 영매를 찾아 |
전국팔도를 누리던 중 절대자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제일 쎄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
나는 감히 신을 내가 부릴 수 있는 비서쯤으로 여기며 돈을 주고 신들을 부려 왔다. |
굿을 하고 부적을 하고 잡신들에게 돈을 주고 내 운명을 바꾸라고 오더 내린 것이다 |
바람을 피우고 폭행을 하고 낙태를 하고 알코올 중독이 되고 등등의 수많은 간증들을 보았지만 |
나와 같은 간증은 없었다. |
나는 정말 악하구나. |
하나님께 감히 나타나라며 맞짱 뜬 나였다 …. 이렇게 악한 나마저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다 |
이같은 죄인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감히 먼저 당신의 존재를 내게 보여 준다면 |
그 때서나 한 번 교회 다니는 것을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찾아 온 |
건방지고 오만불손한 나의 태도에도 그 인사를 받으셨다. |
그리고 어루만져 주셨으며 예수의 보혈로 깨끗이 닦아 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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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라는 곳에 처음 갈 때 나는 숨이 막 멎을 것 같은 상태였다. |
내가 죽음 직전에 있었음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
나는 죽음으로 향하고 있었다. 빠르게 죽어가고 있었다. |
나에게는 죽어 누울 차가운 무덤만이 필요했었다. |
검은 바람 벼랑 끝에 심장이 까맣게 타서 산화되어 가던 |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아버지는 고단하고 지친 나를 안으셨다 |
괜찮다고 잘 왔다고 그 큰 팔로 나를 안아 눕혀 주셨다 . |
숨도 쉴 수 없을만큼 위독했던 나는 하나님의 인큐베이터 안에서 1년을 휴식했다. |
아버지는 나를 그냥 두셨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야단치지 않으셨다 |
육신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너 죽고 나 죽자고 잘못했다고 윽박지르고 소리치지 않으셨다. |
그저 잘 왔다 여기 얼른 누워 쉬라고 하셨을 뿐이다. |
늘 나를 재워주셨으며 나의 이야기를 밤새워 들어주셨다. |
오래 되어 딱지가 되어버린 고독 … |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짙고 깊은 외로움 … |
쎄하게 날이 선 날카로운 상처를 그저 가여이 여기셨을 뿐 .. |
나는 그렇게 온전히 내 편이신 하나님께 산소를 공급받아 살아 숨쉬고 있으며 |
이제 나를 말씀으로 키우시려는 하나님 앞에 죽을만큼 힘들어도 기어서라도 나아가기를 결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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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나는 할 수 없사오니 오직 아버지께서 하옵소서 |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