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각으로는 수행에 대해 말로 하면 백년을 토론을 해도 결말이 안 날 것입니다
각자 수행해서 오년에 한번씩 회합해서 겨뤄보자~ 해도 이것이 말로 이뤄질 수밖에 없으니 마찬가집니다
말 아니면 몸으로 겨룰까요? 그럼 무술이 되지요
그러고보면 불교의 역사가 말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제가 잘은 모릅니다만 유식학 구사론 이리 어려운 계통이 있지요
또 중론 무슨 무슨 논 경 어마어마한 책들이 있고 티벳에 가면 사자의 서 부터 무슨 무슨 서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또 불교만 있느냐 하면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또 기독교안에 개신교 천주교 자이나교 모르몬교 그렇게 종교가 많고
종교는 또한 말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제가 크게 분류해보지요
이러한 모든 말들은 믿음의 차원과 수행의 차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믿음의 차원은 인간의 '믿음'이란 영역에 관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기선 논외입니다
이제 수행의 차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수피즘의 고수와 인도요가의 고수와 티벳밀교의 고수와 일본선의 고수가 만나서 겨룬다고 해보지요
그럼 이때 이들은 다른 길을 간 것일까요?
제 생각으로는 믿음과 관련있는 종교성의 부분을 뺀다면 서로 비슷해집니다
또하나 빼야할 것은 문화적 색체들입니다
그렇게 종교적 문화적인 영역을 빼면 이제 실제 수행하여 성취한 것만 남게 됩니다
그럼 이들은 어떤 잣대로 서로 비교될 수 있을까요?
이것을 말로 설명하면 여기에서처럼 서로 논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말로 하지 말고 사실적인 것으로 비교해보아야겠죠
저의 생각은...그 사실이라는 것은 사띠~ 하나다 이리 봅니다
사띠로 수피즘고수도 인도고수도 동양불교의 고수도 되는 것입니다
뇌에는 생각이 있지요 이 생각자체의 자가발전으론 철학밖에 만들지 못합니다
그리고 인도에는 차크라~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띠와 어떤 관련을 지어 설명할까 저는 모르겠지만 인도구루들의 경험을 보면
그들은 사띠로 볼때는 무색계선정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니 중심은 사띠고 챠크라는 문화적 전통적 종교적 색채의 얘기로 제게는 들립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띠를 설명해야겠죠?
사띠는 식의 작용과는 다르다 할 수 있습니다 이리 표현하는건 식을 어찌 보느냐에 따라 넓은 의미의 식에 포함시킬 수도 있겠단 생각에서입니다
넓게 보면 같은 거고 좁게 보면 다르다고 하면 어차피 결론은 같을 테니 다르다고 하고 봐보지요
사띠가 출동하면 식을 봅니다
물론 그전에 식이 식을 보는 단계가 위빠사나로 계속 길면 몇년 몇십년동안 있습니다
그러다가 사띠가 등장하면 뇌력 신체력이 이 사띠에 몰립니다
사띠가 어느 한도를 넘게 강해지면 사띠외에는 지각작용에만 에너지가 쓰입니다
상행식..기억하고 의도가 생기고 사고하는 것이 다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요
그러니 평상수준에서 사띠의 에너지사용이 임계치를 넘으면 상행식이 작동이 안되지요
그럼 그게 색계선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띠의 작용은 차차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원활해집니다
익숙해지는 거죠
그럼 이제 사띠가 강하게 있는 채로 상 행 식이 출동하기 시작합니다
뇌에 사용되는 에너지가 신체구조상 어떤 한계가 있을 테니 에너지불변법칙과 비슷한 원리로 그리 되겠지요
그럼 사띠가 식을 보고 행을 보고 상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은 또 지난하지요
여기서 사띠가 더한층 강해집니다
그리고 사띠가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상과 행과 식이 차차 허물어집니다
마치 돋보기로 햇빛을 쬐니 종이가 타들어가듯이요
그러다가 어떤 한계점을 넘으면 상행식이 다 없어지지요
그럼 그게 무색계선정입니다
여기서 더 세세한 분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타들어가는 와중엔 상이 타들어가는지 행이 그런지 식이 그런지 정신이 없지만
자주 드나들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차이로 여러 단계를 또 그안에 설할 수 있습니다 아까 색계선정도 마찬가지구요
색계선정은 제 생각으론 편재하는 나. 없는 나. 몸이 있는데 그것이 내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나. 그런 것이지요
거기서 벗어나면 갑자기 조그만 공간에 갇힌 나. 를 느끼게 되구요
무색계선정에서 나오면 상행식이 천지태동하듯이 태양광 백배만한 밝기로 번쩍 ! 하지요
색계선정에서 상행식이 나오는 것이 잠자다 깨듯이 부드럽게 나오는 거라면
무색계선정에서 나오는 상행식은 우주가 쑥 나오는 것 같습니다
충격이 다르지요 그런데 이것은 아마도 첫번째 경험이 첫경험이라 충격이 강해서 그런거 같고 익숙해지면 그런가보다 하게도
되는 건데 그것이 대단한 무엇이다 하는 고정관념이 있다면 그때마다 이걸 굉장하게 느낄 거예요
하여튼 그렇게 색계 무색계선정을 들락날락 한다는건 사띠힘이 무진장 강해졌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색계선정이나 무색계선정에 종교적 문화적 전통적인 무슨 가치나 의미를 강하게 두었다면
아하 이것이로구나~ 하면서 그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통과 종교의 강화에 기여하는 거죠
그런데 그런걸 아예 모르거나 그래도 생의 고통이 있거나 그래도 풀수없는 의문이 강할만큼 지적인 사람이라면
이모름=즉 사띠=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이 엄청나게 강한 사띠는 계속 있죠
그러다가 어느날 그 사띠가 무지무지 강해져서 에너지의 임계치를 넘었을때
이 사띠가 상행식과 충돌하여 상행식과 사띠가 펑~ 터져버립니다
그럼 이 때 어떻겠어요?
물론 그 때는 정신이 없겠지만 나중에 정신을 추스르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거기까지 사띠를 지탱해왔던 원동력은 생의 근원적 고통..가장 진솔한 의문..그런 것이겠지요
해결하고 싶다..알고 싶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펑~ 터진 겁니다
이때 무상을 알지 않을까요?
상행식도 상행식을 보는 사띠도 잡을 수 없구나!
하고 말입니다
다시 위에 각 종파의 고수들의 겨룸으로 돌아가보면
각 종파의 여러 신비로워보이고 숭고해보이는 여러 현상이나 체험들은 이런 사띠의 강화과정에서의 체험들과 흡사하단 말입니다
그런 것이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