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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암 신경준 선생이 썼다고 하는 사실(史實)에는 이설(異說)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산경표에 의하면 백두대간 상의 영취산에서 분기한 금남호남정맥이 조약봉에 이르러 두 줄기를 내어 놓는데, 그중 남서쪽으로 진행하면서 전라도를 좌우로 나눈 줄기가 호남정맥이고 북진하는 다른 한 줄기는 금남정맥이 된다.
그런데 산줄기를 종주하는 산꾼들은 금남호남정맥과 호남정맥을 하나의 정맥으로 인식해 일단 금남호남정맥에 들었으면 그 연장선상에서 호남정맥을 진행하지 이를 굳이 둘로 나누어 종주하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 정맥을 종주하는 산악회의 경우나 홀로 산꾼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는 금남호남정맥을 호남정맥으로 편입했다.
한편 정맥은 ①10대강을 구획하는 산줄기이며, ②그 산줄기의 끝은 하구를 향하여 10대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끝을 맺어야 함이 원칙이다. 허나, 유교사상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산경표는 주줄기가 도성 혹은 옛 도성을 지나도록 의도적으로 그려진 부분이 있다. 이에 박성태 선생은 과학적으로도 비합리적인 이런 관점에서 벗어나 한북정맥과 금북정맥, 금남정맥, 낙남정맥 그리고 호남정맥 등을 실제 지형의 원리에 맞춰 새롭게 산줄기표를 작성해 이를 ‘신산경표’라 명했다. 그 지지(地誌)가 발간된 지 올해로 벌써 10년이 되었다.
위와 같은 체계에 의할 때 산경표(자세히는 원산경표)에서 규정한 정맥 중 금남호남정맥(혹은 호남정맥)의 조약봉에서 북쪽으로 가지 친 줄기는 연석산, 운장산을 지나 싸리재에서 작은 싸리재를 가기 바로 직전의 봉우리(금강과 만경강이 발원하는 봉우리라 하여 금만봉錦萬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도 편의상 ‘금만봉’이라 칭함)에서 오른쪽으로 줄기를 틀어 인대산, 대둔산, 계룡산을 거쳐 옛 백제의 도읍지인 부여의 부소산에서 맥을 다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 금남정맥이다. 그러나 이 금남정맥은 말 그대로 금강의 남쪽을 싸고 있는 산줄기임에도 그 맥이 다하는 곳은 금강이 바다와 만나는 군산 지역이 아닌 부여 부소산의 토룡대여서 정맥 분류기준과 맞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이를 실제 정맥의 원리에 충실하여 산줄기를 이어보면, 그 줄기는 연석산, 운장산, 싸리재를 지나 작은싸리재로 떨어지기 직전의 금만봉에서 직진하듯이 올라 바로 서진해 왕사봉을 거쳐 칠백이고지, 시루봉, 장재봉, 작봉산, 천호산, 미륵산, 함라산, 망해산을 지나 장계산 아래의 금강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원산경표에 소개조차 되지 않은 이 줄기를 고산자 김정호 선생은 일찍이 이에 주목해서 금남정맥을 후자로 인식해 이를 대동여지도에 금남정맥으로 그렸다. 박성태 선생도 신산경표에서 이를 명백히 하여 원산경표 상의 금남정맥과 구별하기 위해 금강정맥이라 명명했다. 다만 산경표의 금남정맥 줄기 중 위 금만봉에서 부여 부소산의 토룡대로 향하는 줄기는 원산경표에 표시되어 있다는 그 격을 존중해 정맥(正脈)의 하위개념인 기맥(岐脈)을 동원해 이를 금남기맥(錦南岐脈)이라 부르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산줄기의 개념들이 공식화된 명칭은 아니다. 이는 금강정맥이나 금남기맥도 마찬가지여서, 부르는 이에 따라, 즉 원산경표 상의 금남정맥을 고수하는 이들은 금만봉~장계산 구간을 이 금만봉이 만경강의 발원지임에 착안해 만경지맥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한 금강 하구로 가는 산줄기라 하여 금남기맥이라고도 부르며 혹자는 아예 조약봉 분기점부터 군산의 점방산까지의 구간을 대동여지도에 나와 있는 금남정맥이라 하여 대동금남정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옛 백제의 숨결이 아직도 남아 있는 전주와 익산 땅을 크게 휘감으면서 지나는 이 줄기를 신산경표에서는 금강정맥이라 부르고 있다. 이번 호에는 조약봉에서 장계산으로 이어지는 신산경표의 ‘금강정맥’을 6구간으로 나누어 그 줄기를 찾고자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신기하게도 신산경표 상의 조약봉에서 금강정맥의 장계산까지의 거리나 원산경표 상의 조약봉에서 금남정맥의 조룡대까지의 거리가 도상거리로 따질 때 약 130km로 거의 같다는 것이다.
*이하 구간 거리는 실측 거리로 구간 종주자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제1구간
조약봉~피암목재, 약 15.6km
첫 구간에서 100대 명산에 드는 운장산을 걷는 행운을 갖는다. 호남의 산꾼들이 중거리 산행 코스로 즐겨 찾는 호남알프스 구간도 일부 포함되어 있어 이를 조망하면서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연석산과 운장산은 정맥 전 구간을 걷는 동안 시야에서 떨어지지 않는 봉우리이다. 항상 이 두 봉우리를 포스트로 삼아야 주위 산들을 헤아릴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자.
- 구간 개요
호남정맥에서 금강정맥이 갈리는 정맥 분기점으로 오르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모래재 휴게소에서 조약봉으로 오르는 루트로 거리는 1km가 조금 넘는다. 고도표에서 보듯이 565m에서 시작한 정맥길은 보룡고개에서 단 한 번 450m 정도로 떨어질 뿐 계속 500m 이상을 유지하다가 연석산에 이르러 900m 이상으로 올라선 다음 운장산에서 드디어 1,100m를 넘어 선다. 이후 피암목재로 떨어지면서 한풀 꺾이긴 하지만 평균 800m가 넘는 금강정맥 최고의 산군을 이룬다.
삿갓 모양을 닮았다고 하는 입봉을 지나 내려서는 보룡고개에는 주유소와 휴게소가 있는데 이곳은 매점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여기서 물, 음료수 등과 간단한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다. 물론 주유소에서도 물 보충은 충분히 가능하다. 보룡고개를 건너는 데는 중앙분리대가 높게 가로막고 있고 근처에 횡단보도가 없어 횡단 시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보룡고개를 지나 무명봉(약 650m)에서 만나는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틀면 율치를 지나 원등산을 거쳐 송광사로 이어지는 줄기인데, 이 구간과 금강정맥의 운장산까지의 구간을 지나 구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호남의 산꾼들은 소위 호남알프스(송광사~구봉산 : 약 40km)라 하여 1~3구간으로 나누어 종주를 즐긴다. 그중에서도 이 무명봉(약 650m)~운장산 구간을 백미로 꼽는데 그에 관한 자료를 한 번쯤 들춰 보자.
황새목재 바로 우측으로 과수원이 있고 농가 두어 채가 있어 여기서도 물 보충이 가능하다. 황새목재에서 연석산까지의 4.6km 구간은 고도를 500m 정도에서 920m 정도까지 올리는 구간으로 무조건 올라간다는 생각으로 묵묵하게 걸으면 된다. 연석산~운장산 서봉 2.4km 구간도 920m 정도에서 1,120m 정도로 고도를 올려야 한다.
한편 675.4봉과 연석산 올라가는 도중에 있는 조릿대 군락지가 고도를 높여야 하는 구간에서 나타나 정맥꾼을 짜증나게 한다. 하지만 연석산을 오르기 직전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바위 구간에서 소위 호남알프스의 675.4봉~율치~원등산~서방산~송광사 구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동쪽으로는 궁항저수지를 가운데 두고 운장산에서 갈라지는 줄기가 600고지에서 800고지를 넘나들다가 정자천으로 떨어지는 줄기도 감상할 수 있으며, 다시 그 줄기를 거슬러 올라와 운장산 서봉과 동봉을 이어서 조망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연석산에 오르면 왼쪽 연석사에서 올라오는 일반등산객과 만날 수 있고 운 좋으면 그들에게 막걸리 한 잔 얻어 마시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이 연석산은 뒤돌아보면 지나온 정맥 마루금이 일직선으로 보이고, 앞으로 진행할 마루금이 우에서 좌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역으로 말하면 앞으로 정맥을 운행하면서 진행해 온 산줄기를 되돌아볼 때 시종일관 우측에 보이는 것은 연석산이고, 좌측에 보이는 것은 운장산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지도를 펼쳐 놓고 앞으로 진행할 금강정맥을 직접 손가락으로 짚으며 가늠해 볼 수 있는 것도 금강정맥의 연석산과 운장산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만항재에서 운장산 서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나무계단과 로프가 정맥꾼의 안전 산행을 보조해 주므로 큰 어려움은 없다. 운장산 동봉이 서봉에 비해 고도가 좀 낮기는 하지만 1등급 대삼각점(진안11)이 있고 복두봉을 거쳐 구봉산으로 가는 호남알프스 줄기도 볼 겸 동봉까지의 왕복 1.2km 정도를 투자하는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 한편 이 동봉도 운장산이므로 정맥에서 벗어난 줄기로 보면 안 되며, 일체가 된 하나의 운장산으로 보아 당연히 정맥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기도 하다.
이제 하산을 서둘러야 하는데 제일 먼저 만나는 포스트가 활목재로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독자동’으로 가는 방향으로 일반 표지기는 물론 정맥꾼들의 표지기까지도 많이 달려 있어 오른쪽으로 들기 십상이다. 이번 구간 중 정맥꾼들이 주의할 곳이라고는 이곳 정도로 생각하면 무난할 것이다.
활목재에서 직진해 무덤을 지나 바위 구간을 두어 군데 로프를 잡고 지나다 보면 오른쪽으로 조망되는 바위에서 독자동마을과 주천에서 피암목재로 힘들게 올라오는 55번도로도 볼 수 있다. 피암목재의 운장산휴게소는 문을 닫은 지 오래됐고 간이매점이 낮 동안만 장사를 하는데 너른 주차장이 있어 야영하기도 괜찮은 곳이다.
대중교통 수단은 진안에서 운일암반일암을 거쳐 내처사동까지 오는 버스가 있고 주천에 택시(063-432-1547)가 있는데 피암목재까지 요금 1만8,000원 받는다.
제2구간
피암목재~말골재, 약 23.5km
금강정맥을 하려는 산꾼들은 대개 원산경표상의 금남정맥을 완주했기 때문에 중복 구간을 제외한 금만봉부터 나머지 구간을 걸으면 된다. 이때 작은싸리재까지의 접근 방법은 완주군 운주면 방향에서 올라오는 방법과 진안군 주천면 방향에서 올라오는 방법 등이 있다. 운주와 주천에 있는 택시들이 작은싸리재까지 운행하므로 그룹을 이루어 산행할 경우에는 부담이 없어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2구간을 걸으면서 시종 대둔산과 천등산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구간이 끝날 무렵에는 월성산과 바랑산은 물론 계룡산까지도 보여 원산경표의 금남정맥을 걷던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한 구간이다.
- 구간 개요
제2구간은 조릿대 군락지를 통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4등급 삼각점이 있는 675.5봉을 지나자마자 직진하는 너른 길이 외처사동으로 내려가는 길이므로, 바로 왼쪽으로 진행해야 하는 곳이다. 이후 장군봉까지는 전주 덕진소방서에서 만든 코팅 이정표가 불안하게 등로를 안내해 주고 있다.
743.5봉을 지나면서 암봉 구간이 시작되고 멋진 조망도 자주 보여 준다. 그리고 어떤 개념도를 보면 이 743.5봉이나 742봉을 장군봉이라 표기해 놓았다. 심지어 이곳에 정상석까지 설치해 장군봉의 위치에 대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편 이 742봉 뒤로는 쇠줄로 안전시설을 해놓은 등로가 나오는데 이 루트는 구수리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구간이다. 따라서 정맥꾼들은 반드시 되돌아 나와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붙어 있는 표지기를 따라 ‘추락위험, 완주군’이라는 안내판이 암벽에 붙어 있는 쪽으로 쇠줄과 로프를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와야 한다. 그러면 이정목에 ‘장군봉’이라고 새긴 진짜 장군봉에 오르게 되는데 여기에는 변변한 정상석 하나 없다.
장군봉을 지나자마자 다 깨진 4등급 삼각점을 볼 수 있고, 이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해골바위’ 갈림길을 지나게 된다. 어설픈 고개를 지나면서 의식적으로 느껴야 이곳이 큰 싸리재임을 알 수 있다. 그러고는 금만봉을 만나게 되는데, 금만봉(錦萬峰)이라는 이름은 공식적으로 지명위원회에서 부여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이곳이 금강과 만경강의 발원지임에 착안해 두 강의 머리글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만봉이 갖는 의의에 관하여는 모두(冒頭)에 설명했기에 이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틀면 신상경표 상 금강정맥 길을 이어가게 된다. 오른쪽으로 틀어 작은싸리재로 진행할 경우 금남기맥을 걷게 된다.
지도의 널바위 부근에 이르러 크게 오른쪽으로 틀어 진행하게 되며 간간이 뒤를 돌아보면서 연석산과 운장산을 놓치지 말아야 그 부근의 산들도 찾아볼 수 있다. 이어 만나는 왕사봉을 오른쪽으로 틀어 내려가면 암봉 구간을 만나게 되고, 조망이 되는 바위 위에서 금강의 지류인 장선천이 지나는 고당리마을을 가운데 두고 금남기맥의 태평봉수대봉에서 이어지는 줄기가 마주 보며 따라오고 있음도 본다. 그리고 금남기맥의 줄기는 신선봉 뒤로 넘어가 왼쪽으로 대둔산과 그 앞의 천등산을 보여 주기 시작한다. 이는 금남기맥을 걸었을 때에는 못 느끼던 정경으로 정맥꾼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이어 만나는 암봉 구간은 별로 위험하지 않지만 그래도 바위와 나뭇가지에 의지해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 진행방향으로 왼쪽에 큰 규모의 산이 나타나는 운암산 줄기로 정맥 길에서 벗어나 있다. 지도를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잠시 후 만나는 운암산 삼거리를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고는 곧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있는 칠백이고지에 오르게 된다. 이 봉우리 부근과 금남기맥 상의 육백고지 그리고 월성산과 바랑산에서 보던 ‘대둔산승전탑’과 ‘경찰승전비’를 백령고개의 승전탑과 함께 연관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나아가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막힌 북한군들 중 전라북도 쪽에 있던 이들은 금강정맥을 통해, 충청남도 쪽에 있던 이들은 금강기맥을 이용해 남하하다가 조약봉에 이르러 일부는 호남정맥을 통해 남하해 회문산이나 천치재 부근의 가맛골로 이동할 수 있었다. 더 내려간 이들은 조계산 부근까지 내려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소재가 되었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봉수대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면서 칼바위 구간을 만나게 되고 왼쪽으로 고산면 너머 익산시까지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서 정면으로는 도봉산 오봉을 연상시키는 써래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단 다시 숲에 들었다가 나오면 작은 케언 한 기가 서 있는 바로 그 써래봉 들머리가 된다.
들머리 옆에는 훌륭한 조망터가 있으며 여기서 써래봉 암봉들을 다녀오느냐 마느냐를 결정한다. 조망터 바위 위에서 바람을 쐬며 운장산을 중심으로 지나온 줄기를 바라보고 앞으로 진행할 천호산, 미륵산을 지나 봉화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자잘한 정맥 줄기도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도끼 자루가 썩고 있음을 깨닫고 일어서면 바로 선녀봉 갈림길이 나온다. 진행방향보다는 선녀봉 쪽으로 표지기가 더 많이 달린 것은 선녀봉이 정맥에서 빗겨나 있는 봉우리가 아닌 정맥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녀봉에는 3등급 삼각점도 있고, 실제 ‘선녀와 나뭇꾼’의 전설이 생긴 곳이라고도 하니 잠시 무거운 배낭을 벗어놓고 약 1.6km의 왕복거리를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오도록 하자.
선녀봉 구간을 지나면 어느덧 천등산이 대둔산의 일부를 가리기 시작한다. 천등산 왼쪽으로 월성봉과 바랑산이 보이며 그 너머로는 계룡산의 황적산과 천왕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즈음에서 왜 금남기맥이 원산경표에 의할 때 ‘정맥의 꽃’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것은 지나온 선녀봉 왼쪽의 금남기맥 줄기 뒤로 장령지맥의 대덕산과 그 옆으로 서대산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식장지맥의 만인산 줄기를 가늠해 보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이어 용계재로 떨어져 사각정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다. 식수가 부족할 경우 5분 거리인 용계마을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간벌지를 지나 엉성한 케언 한 기가 서 있는 불명산을 지나면서 산책길 수준으로 마루금이 바뀐다. 화암사 사거리에서 직진한 다음 삼각점은 있으되 변변한 정상석도 없는 시루봉을 지나 장선리재에 도착하는데, 여기서는 직진하는 길을 버리고 오른쪽 길을 택해 내려가야 임도를 만날 수 있다. 이 임도는 탈출 루트로 활용할 수 있고, 가까운 곳에 민가가 있어 식수도 구할 수 있다.
어느덧 마루금은 우에서 좌로 서서히 방향을 트는데 이제는 운장산 부근을 보려면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왼쪽으로 젖히기만 해도 그 연봉이 눈에 든다. 오른쪽으로는 다음 구간에 진행할 장재봉이 잡목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차량의 엔진소리가 귀에 익숙해질 무렵 정맥길은 암봉을 두어 개 지나면서, 476봉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틀고 된비알을 내려가 화산과 운주를 이어 주는 말골재에 도착한다. 여기서 다소 길지만 아름다운 산줄기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진행한 정맥 2구간 산행을 마치게 된다.
운주 쪽이 가깝고 운주와 고산을 오가는 소형버스가 있다. 운주에서는 양촌으로 이동이 가능하고 가까운 곳에 대둔산이 있어 숙박시설과 식당들은 부족하지 않은 편이다.
제3구간
말골재~고내곡재, 약 18km
이슬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실감 나는 구간이다. 즉 전 구간에 걸쳐 봉우리 이름도 많고 고개 이름도 많은 이 구간은 속칭 ‘빨래판’이라고 부른다. 봉우리와 고개가 자주 반복되고 조망되는 구간이 흔치 않아 약간은 지루한 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등로 사정이 워낙 좋고 중간 말목재에서 물 보충이 가능하므로 배낭을 가볍게 하고 오히려 산책하는 느낌으로 걸을 수 있다.
- 구간 개요
말골재에서 3구간 들머리는 임도를 통해 들어가 좀 쉬운 듯하다. 하지만 마루금은 여기서 바로 오른쪽의 작은 절개지를 치고 올라가 잠시 잡목 숲을 헤치고 지나야 한다.
동물 발자국과 사람이 지난 흔적에 익숙해질 무렵 거친 바위 구간이 나타난다. 거의 직벽에 가까운 곳이라 지도를 보면서 등고선이 촘촘하게 그려져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구간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 정도면 장재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땀도 식힐 겸 배낭을 벗어놓고 카메라만 들고 장재봉을 다녀오도록 한다.
400여 m 떨어진 장재봉에는 경산 산꾼 김문암씨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부착한 정상목이 있고 3등급 삼각점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정맥길을 진행하면 곧 수곡사와 운주로 갈라지는 사거리가 나온다. 이제부터 마루금은 충청남도 논산시와 전라북도 완주군이 도계를 따라 진행하게 됨도 인식하자.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도 나오는 빼재(秀嶺)는 백두대간 상의 그것과 동명이지(同名異地)라 어느 정도 기대가 있겠지만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미미한 곳이다. 간벌지가 나오면서 왼쪽으로는 시야가 트여 이 줄기의 끝인 448.4봉이 그 오른쪽 남당산보다 더 높게 보이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이 소구간이 구제리마을을 안으며 돌고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볼 수 있다.
남당산을 지나 힘들게 오른 448.4봉은 돌을 쌓아 놓아 흡사 군용 호(壕) 같은 느낌을 준다. 어수선하게 붙은 종이 코팅지에는 이곳이 남당산으로도 표기되어 있어 혼란스럽기만 하다. 밤아니재를 지나면서 이정표의 쌍계사를 따르고 임도가 시작되는 곳에서는 오른쪽으로 올라서야 하며 작봉산에 올라서서야 잠시 발품을 쉬어 갈 수 있다.
이 구간은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들을 50~100m 높이로 계속 오르내리게 되는데 그나마 등로 사정이 좋아서 위안을 받고 진행하게 된다. 여름에 이 구간을 지날 때 다소 물이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말목재의 목장주는 아주 후덕한 분으로 식수 부족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오르내림이 잦은 만큼 로프 구간도 자주 나타나는데 까치봉을 지나면서 가지치기 작업의 후유증으로 좀 조심스럽게 그리고 힘들게 진행하게 된다. 말목재 목장에서 잠시앉아 숨을 고르고 물도 보충하면 옥녀봉 오르기가 그만큼 쉬워진다.
옥녀봉 오름길은 나무가 없어 여름에 햇볕이 따가우면 고통스럽다. 옥녀봉 전위봉을 지나면서 갑자기 길이 나빠진다. 옥녀봉에서 4등급 삼각점을 확인한 다음 연안이씨 음택을 지나서 여름에는 얼굴과 목을 다 가리고 진행해야 할 정도의 가시덤불 구간을 잠시 진행하게 된다.
육군부사관학교 펼침막과 육군훈련소장 경고판을 보게 되면서 길은 한결 뚜렷해진다. 나무의자도 나타나지만 관리되지 않아 쉬어가고 싶은 생각은 나지 않는다. 이즈음 이름에 걸맞지 않은 함박봉을 지나게 되는데, 이 부근은 왼쪽의 동박골마을의 축사 정도나 보일 뿐 조망은 별로 없는 마루금이다.
소룡고개로 떨어지는 길은 경사가 심한 곳. 갑자기 나타나는 낡은 사각정을 지나자마자 바로 4등급 삼각점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등산지도에는 ‘성태봉’으로 표기되어 있는 봉우리다. 왕족의 태를 이 성에 묻었다는 전설이 있음에 비추어 볼 때 한자어로는 ‘城胎峰’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봉우리다.
그러고 만나는 고개가 고내곡재인데 하루에 한 번 논산과 화산을 오가는 버스가 다닌다. 고내곡마을에서 논산을 오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번꼴로 하루 11회 다니므로 여기서 구간을 끊는 게 낫다. 안내산악회일 경우에는 누황재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누황재도 대형버스의 진입은 어려운 곳이다.
고내곡재에는 큰 당산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알록달록 천들이 매여 있다. 15분 정도 내려오면 고내곡마을에 닿게 되고 버스승강장에 배낭을 내려놓고 정류장 뒤의 주민들께 부탁해 간단하게 씻고 배차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고 논산으로 나가면 된다.
제4구간
고내곡재~23번 국도, 약 33.9km
천호동굴 주변이 폐광이 된 후에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언제라도 추락할 위험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천호산 오르기 직전의 잡목과 가시덩굴의 저항에 조금은 대비해야 한다. 호남고속도로에 동물이동통로가 생겨 마을로 우회하던 노고는 덜게 되었다. 용화산의 군 관련 시설이 있지만 등로와는 별개이므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미륵산을 넘으면 평탄한 길을 도로를 따라 걷게 되는 평이한 구간이다.
- 구간 개요
고내곡으로 들어오는 버스가 논산에서 오전 7시18분 출발하므로 아무리 이른 시간이라 하더라도 오전 8시가 넘어야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구간 거리는 다소 길지만 미륵산을 내려오면 23번도로까지는 그냥 평지를 걷는 듯하므로 선답자의 산행기만 잘 참조해 즐기듯이 걸으면 된다.
고내곡재에서 구간 산행을 무난하게 시작한다. 다만 362.2봉의 성삼재로 갈리는 지점 부근에 잡목이 많아 진행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 성삼재로 빠지는 오른쪽 길이 더 선명해 지도를 확인하고 급하게 왼쪽으로 트는 지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제부터 충청남도를 벗어나 온전하게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무난하게 누황재라고 불리는 740번도로에 닿지만 이 길은 버스조차 다니기 힘든 좁은 도로다. 잡풀로 덮인 마루금을 치고 올라가면 송전철탑이 나오고 둔덕을 올라 오른쪽으로 틀면 천호동굴 안내판이 나온다. 옛 광산지역으로 안전시설이 전무한 구간을 조심스럽게 지나면 이제부터 가시덤불과 칡덩굴 그리고 잡목으로부터 받는 저항을 각오해야 한다. 다만 길은 명백해서 헤쳐 지나기 어려울 경우 아예 기어서 통과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10분 정도 이런 길에 시달리다보면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면서 다시 길은 예전 상태를 회복하게 되는데, 이 오른쪽 길이 백운사 방향에서 천호성지로 올라오는 길이다.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는 천호산에서 3등급 삼각점을 확인하고 조금 더 내려오면 벤치가 있어 지친 몸을 잠시 추스를 수 있다.
육군부사관학교의 독도법 표지판이 계속 나오고 467.9봉을 지나 직진하는 길을 버리고 오른쪽 길을 택할 때 주의를 한다. 고도를 낮추면서 왼쪽을 보면 운장산과 연석산 일대가 아까보다 더 가깝게 보인다. 선녀봉까지 가늠이 되는 것은 정맥 줄기가 완주군 경천면, 화산면과 비봉면 등을 싸고 도는 형국이라 그렇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370.5봉에 오르면서 왼쪽으로 문드러미재가 보이고 741번도로를 지나는 차량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길 건너로는 용화산 줄기가 보이기 시작하며 왼쪽 마을 옆으로 흐르는 만경강 지천인 천호천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741번도로를 만나면 오른쪽으로 임도가 보이는데 이 길도 아까 만났던 천호성지로 올라가는 길이다. 길을 건너 마루금으로 복귀해 호젓한 오솔길 같은 곳을 지나다 벌목지대를 지날 즈음 동봉리로 빠지는 왼쪽 길을 조심해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왼쪽 길은 2010년 이전 마루금을 지나는 호남고속도로를 우회 통과하려 지났던 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루금 위로 동물이동통로가 생겨서 동봉리마을을 들를 필요가 없어졌다.
고속도로 철사다리를 이용해 안전하게 육교를 건넌 다음 송유배관로를 지나 192봉을 넘어서서는 직진하는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틀 때 주의해야 한다. 표지기도 두 장 걸려 있으니 계획을 세우기 전 미리 지도에 표시해야 할 정도로 주의를 요하는 구간이다. 그러면 799번도로를 만나는데 마루금은 철조망으로 담을 친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은 식당과 민가를 만나게 되는데 마루금으로 달라붙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버스 정류장 맞은편으로 들어가 잡목과 가시덤불을 헤치고 들어가 민가 옆 철조망을 따라가면 교회묘지를 만난다. 둘째, 민가를 오른쪽으로 돌아 산으로 오르는 임도를 만나 그 길을 따라 올라 교회묘지를 만나는 방법이 있다. 어느 방법이든 교회묘지를 만나게 되는데 묘지를 경계로 간벌 작업을 하고 방치해 놓아 진행하기 쉽지 않다.
묘지 왼쪽에 쌓아놓은 썩은 나무들을 통과하면 숲과 공사 중인 길의 경계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끝나는 지점에 케언 한 기가 나오고 왼쪽으로는 왕궁저수지가 시원스럽게 보인다. 181.4봉에서 오른쪽으로 틀 무렵 용화저수지가 크게 보이고 용화산도 이제는 코앞으로 다가오며 동물이동통로를 통해 쑥고개를 건널 수 있다.
구도로를 만나면서 왼쪽으로 5분도 안 되는 용화저수지 옆 슈퍼에서 음료나 물을 구할 수 있다. 이어지는 마루금은 이정표에서 왼쪽으로 틀면서 가람 이병기 선생을 떠올리게 한다.
구도로에서 40분 정도면 용화산 팻말이 있는 곳에 도착하는데 실제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는 물론 어느 지도에도 이곳이 ‘용화산’이라고 표기된 것은 없다. 하지만 이 봉이 뒤에 나오는 봉이 실제 용화산보다 표고가 높다는 점, 용화산이 제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왕궁면 용화리의 동네 이름에서 비롯되었음에 비추어 볼 때 왕궁면 용화리가 아닌 금마면 신북리와 여산면 원수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에 용화산이라는 이름을 굳이 줄 필요가 없다는 점, 이 용화산은 군부대 통제선 밖에 있는데 반해 실제 용화산은 군사시설보호구역 안에 있어 민간인 출입이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이곳에 용화산이라는 팻말을 갖다 붙이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보게 한다.
사실 실제 용화산은 밋밋하고 아무 것도 없어 ‘이곳이 용화산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올라야 할 정도다. 여기를 오르고 이곳이 용화산이라고 인식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실망하게 될 것 같은 곳이다. 여기서 다듬재로 내려서기 전 케언 두 기가 있는 곳에서 시간을 봐서 여유가 있으면 왕복 약 1.2km 지점에 위티람 삼각점이 있는 용리산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왕복 2차로의 다듬재는 차량통행이 드문 길이고 여기서 바로 미륵산성을 만나 바위 몇 개를 지나면 20분 정도 걸려 미륵산 전위봉으로 오르게 된다. 미륵산에는 1등급 대삼각점(논산11)과 휴게시설,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많은 주민들이 찾는 익산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일수록 마루금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 미륵산에서는 하산길로 방향을 잡자마자 바로 직진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틀어야 한다. 이후 사거리를 만나 우회전하고 연이어 나오는 사거리에서 직진한다.
그러면 무덤을 지나 논이 있는 장항동마을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논둑을 따라 걸어 왼쪽으로 보이는 외딴 민가 뒤로 이동해 포장도로 사거리가 나오면 바로 직진해서 밭 가장자리로 마루금을 이어가면 된다. 왼쪽으로는 주유소가 있으며 오른쪽으로 삼기농협창고가 있는 2차선 도로를 만나 직진하면 바로 석불사와 석불초등학교가 있으며 슈퍼가 있는 석불사거리로 떨어지게 된다. 석불사거리에는 슈퍼는 물론 식당도 있어 여기서 식사하고 갈 경우 배낭의 무게를 줄일 수 있으며 이제부터는 계속 평지를 걸으면 된다.
석불사거리를 지나 처음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새롭게 조성된 공단 부지를 따라 대각선 방향의 삼기제일교회 쪽으로 걸은 다음 4차선 도로를 건너 높은 굴뚝이 보이는 벽돌공장 정문을 지나 좁은 도로를 따라 걸으면 상마사거리가 나온다. 수로를 따라 계속 직진하면 23번국도가 나오며 정금주유소가 있다.
왼쪽 가까이 있는 횡단보도를 이용해 길을 건너 주유소 옆길을 따라 걸으면 재활용공장 두 개를 지나고 호남선 철도를 오른쪽의 신설육교를 이용해 횡단한다. 바로 오른쪽 수로를 따라 걸으면 개농장을 지나게 되고 용산초등학교를 만나 우회전해 도로를 계속 따르면 슈퍼가 있는 용산사거리를 지나게 된다. 여기서 계속 직진해 요양원과 축협을 지나면 개교 100년이 넘는 전통의 함라초등학교가 있는 함라면 소재지에 도착하면서 구간을 끝내게 된다.
이 구간은 실제 구간 거리만 길지 낮은 구릉과 도심구간이 전부이고 곳곳에 식수를 구할 수 있는 민가와 슈퍼가 있어 천호산 오를 때의 잡목 구간을 제외하면 여름에도 산행하는 데 별 무리가 없다. 함라면 소재지인 함열리에서는 익산으로 출발하는 버스가 수시로 있기 때문에 교통편 역시 좋다.
제5구간
함라초교~군산남고, 27.8km
봉화산에 오르면서 드디어 금강을 볼 수 있다. 칠목재를 지나면서 가시덤불과 잡목 구간을 자주 만나게 되므로 긴장해야 한다. 이후 고도는 겨우 200m를 넘나드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잡목 구간에 짜증이 날 법하다. 하지만 그런 기분이 들 만하면 바로 임도가 나오곤 하여 오히려 그 잡목 구간에서 길 찾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민가나 사찰 등과 인접해 있어 물로 배낭을 무겁게 할 필요 없는 구간이다.
- 구간 개요
함라면 우체국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동네를 관통하면서 이번 구간을 시작하게 된다. 마을을 벗어나는 마지막 민가를 지나자마자 바로 왼쪽으로 틀어야 묘지를 지나 함라산으로 갈리는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삼각점이 있는 함라산을 잠깐 다녀와서 오르게 되는 봉화산 앞으로는 금강이 보인다. 진행방향으로도 마루금이 시원하게 드러나고 마루금 곳곳에 송전철탑이 일렬로 늘어선 것처럼 보이며 왼쪽으로는 미륵산도 한눈에 들어온다. 좀더 관심을 가지고 남동쪽을 보면 운장산과 연석산도 눈에 들어 산줄기를 타는 즐거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아주 평탄한 길을 기분 좋게 내려오면 식당이 있는 칠목재를 만난다. 여기서 마루금을 타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고개를 좌측으로 들어 민가가 있는 콘크리트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정면으로 송전철탑이 보인다. 그 뒤로 치고 올라가면 2등급 삼각점이 있는 178.9봉인데 여름에는 잡목이 우거져 삼각점 찾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마루금은 명백하여 여름을 제외한 시기에 걷는다면 전혀 문제 없을 것이나 여름에는 잡목과 가시덤불로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그런 구간이다.
145.1봉 전위봉에서 왼쪽으로 틀어 사면을 돌아 진행해야 하지 막연히 직진해 145.1봉을 올랐다가 다시 돌아 나오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물론 입구에 표지기가 전깃줄에 걸려 있어 실수할 염려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22와 #21 송전철탑을 연이어 지나고 #19, #18 송전 철탑을 지나면서 묘지도 마찬가지로 계속 보게 되는데 마치 묘지를 순례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무난한 길을 따라 진행하다 보면 수례재가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오른쪽을 주시해 걸어 와촌마을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른쪽에 표지기가 달려 있기는 하지만 여름에는 나뭇잎 등으로 인해 잘 보이지 않을뿐더러 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예쁜 이정표가 있는 수례재에는 민가가 있어 쉽게 물을 구할 수 있고, 도로를 가로질러 마루금으로 붙으면 그야말로 고속도로로 편한 길을 걷게 된다.
흥법저수지도 왼쪽으로 슬쩍 보고 나무 버팀목으로 만든 등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잠시 가시덤불과 칡덩굴이 못 살게 군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 바로 구불길이라는 둘레길을 만나게 되고 마루금은 평탄대이다. 육각정에서 잠시 쉬어가면서 금강도 보고 뒤로 봉화산과 함라산도 보며 땀을 식히면서 간식으로 에너지를 재충전하면 된다.
역시 널찍한 등로를 따라 망해산에서 4등급 삼각점을 확인하고 말 그대로 바다도 조망하고 구불길을 따라 축성산이라고도 부르는 취성산을 향해 내려간다. 조망이 일품인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취성산으로 오를 수 있고, 용천산을 지나 미산재로 내려서기 전 임도로 떨어지는 오른쪽 길을 유의해 공동묘지 옆으로 지나면 된다.
미산재에서 농장을 통과해 오른쪽으로 우곡저수지를 보면서 걸으면 배수장이 나오는데 여기서 대명산으로 진행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오른쪽에서 따라 걸어 옥곡마을을 거쳐 대명산을 오르는 방법과 서해안고속도로 아래로 통과해 우곡2교를 지나 창오마을로 해서 대명산을 오르는 방법이다. 이렇게 정맥길이 단 하나가 아닌 두 개가 생기는 이상한 현상은 마루금을 서해안 고속도로가 잠식했기 때문이다. 어느 루트를 택하건 물을 건너기는 마찬가지다.
대명산은 정상석도 없이 그저 선답자들의 표지기와 정상 코팅지만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창암재를 지나 오른쪽 임도와 상관없이 바로 고개를 치고 올라가면 온통 풀밭과 잡목 그리고 가시덤불이 진행을 방해하는 구간이 된다. 그렇게 한참 고생하고 나면 무덤 한 기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망경산에 도착하는데, 전혀 조망이 없는 곳이어서 ‘망경산’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안부로 떨어졌다가 다리실재로 떨어지기 위해 왼쪽으로 트는 곳에 ‘망경산’이라는 코팅지가 하나 붙어 있다. 물론 이 분은 위치를 잘못 파악해 부착해 놓은 것인데, 우연찮게도 이곳의 높이가 공교롭게도 129m로 진짜 망경산 높이와 일치하니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다리실재로 떨어져 27번국도를 넘으면 이제는 고봉산으로 달라붙게 된다. 임도를 지나 잡목 구간을 헤쳐 오르면 이미 철수한 고봉산 통신부대의 철조망을 만난다. 겨울철일 경우에는 철조망 오른쪽으로, 여름철일 경우에는 왼쪽으로 움직여야 무난하다. 어느 쪽을 택하든 부대 안으로 들어가 철조망 끝 부분에 있는 1등급 대삼각점(한산11)을 확인해야 한다. 여기서 마루금으로 빠져나가는 방법도 두 가지이다. 첫째는 좌측 낭떠러지의 쓰러진 철조망을 통하는 것이고, 정문을 통과해 헬기장에서 왼쪽으로 틀어 철조망을 따라 왼쪽으로 걷다가 마루금에 합류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고봉산을 내려오면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 다시 숲속으로 들면 목탁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검은 차양막용 비닐이 보이며 오른쪽 지장암 쪽을 의식하면서 좁은 길을 걸으면 ‘구불길’이라는 표지기가 나오면서 무인산불감시초소가 나온다. 이 144.6봉에서 4등급 삼각점도 확인한다.
광법사로 내려가는 콘크리트 임도를 보고 직진하면 왼쪽으로 철봉제가 보인다. 의자 등 편의시설을 갖춘 구불길을 걷다가 오른쪽 숲으로 들어가 진행하면 통사동 고개로 떨어지는데, 왼쪽으로 내려가면 민가 마당으로 들어가게 되니 오른쪽으로 밭을 가로질러 경사가 심한 절개지로 내려서야 한다.
한국가스공사 전북지사 건물을 지나 대야배수지 왼쪽으로 들어가면 백마육각정이 나오고 또 한 번 왼쪽으로 틀면 그 유명한 대야들이 나오며 등로는 군산남고로 떨어지면서 이번 구간을 종료하게 된다.
이번 구간은 178.9봉의 삼각점 찾기와 145.1봉 부근의 갈림길과 흥법저수지 부근, 대명산, 고봉산 부근 등이 정맥꾼을 괴롭힌다. 하지만 임도를 걷다가 다시 숲속을 들어가는 등의 난이(難易)를 반복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게 큰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는 멋진 구간이다. 여름에 고생을 한 꾼이라면 가을이나 겨울에 다시 찾고 싶은 그런 구간임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정맥꾼들이 이 지점에 오면 끝나가는 금강정맥길이 자꾸 아쉬워지게 된다.
제6구간
군산남고~장계산, 약 21.3km
‘춘천이 호반의 도시라고 한다면 군산은 어떤 도시라고 불러야 할까?’ 고산자는 각 지방의 지도를 수집해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산경표와 달리 이 방향으로 정맥길을 잡았다. 이는 정맥의 원리도 있었겠지만 혹시 산과 호수와 강 그리고 바다가 주는 매력 때문일 것이라 추측된다. 가시덤불에 곤욕을 치르고 나면 호수와 임도로 잠시 피로를 달래 주기도 하고, 도심 구간을 지루하게 걸을라치면 호수도 보여 주고, 아파트를 보고 나면 다시 산으로 안내해 준다. 그렇게 멋진 월명공원으로 든 다음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그러나 너무나 아쉬운 정맥 탐사를 마치게 된다.
- 구간 개요
이제 그렇게 정이 들었던 금강정맥도 마지막이다. 시작은 너무 밋밋하다. 산이 아닌 도보여행쯤 되는 구간이니 대야역 옆의 철도를 건너 수로를 따라 걸으면서 고산자가 옥구현의 지도를 편집하면서 이곳을 그릴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떠올려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개정들과 대야들을 가로지르는 수로와 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멀리 삼거리에 교회 십자가가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가건물 같은 것이 보이는데 그 오른쪽 나지막한 봉우리가 해발 104m의 용화산 전위봉이다.
이정표를 따라 전위봉을 지나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용화산이 나온다. 널찍한 마루금을 따라 내려오면 찻소리가 들리면서 전북주유소가 위치한 칠거리고개에 닿는다. 마루금은 정류장 맞은편으로 올라가 고가유택 비석이 있는 납골묘지를 지나서 곧 황새고개로 떨어지는데 이곳에서의 진행이 좀 난감하다.
왼쪽으로 우회하는 길은 녹색 철펜스가 막고 있다. 마루금을 치고 올라가면 낮은 봉우리에 표지기 몇 장이 날린다. 소나무와 잡목, 가시 등을 뚫고 내려오면 다시 군산 구불길을 만나게 되고 지금까지 고생한 것들을 다 보상받게 된다. 만나는 주민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고 이정표를 따라 청암산까지 무난하게 속도를 내면서 걸을 수 있다.
청암산의 육각정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오른쪽으로 옥산저수지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군산저수지도 눈에 들어오고 주위도 둘러보는 여유도 가질 수 있다.
금성산으로 가는 길은 잡목의 저항이 있는 구간이며, 이내 구불길과 헤어져 옥산면으로 들어가면서 채석장을 하던 곳 같은 곳을 절개지를 타고 위험스럽게 지난다. 그런 뒤 부드러운 길을 따라 민가 앞마당을 통해 내류마을로 나오게 된다. 칠다리 슈퍼에서 물을 보충하거나 간식을 먹으면서 진행할 수 있다.
석교들을 지나 한림마을로 들어서서 한림교회기도원을 끼고 돌아 소나무 숲을 통과한다. 온통 바위 부스러기로 사면이 미끄러운 53.4봉을 거쳐 한림을 지나 70.2봉의 삼각점을 향해서 가야 한다. 일부 선답자들은 백석마을을 통해 91봉을 지나 70.2봉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마루금이 두 개로 나뉘게 되는 것은 수로를 설치해 물길이 애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70.2봉을 넘으면 철조망으로 막아 놓아서 부득이 오른쪽으로 우회해야 하는데 이내 배수장 저수조 탱크를 보게 된다. 그 오른쪽으로 마루금을 타면 남평문씨 남골묘와 두릉두씨 묘지도 보면서 이 일대가 철도공사 사업부지로 수용될 처지에 있음을 팻말을 보고 알게 된다.
선답자의 낡은 표지기 두어 장을 보고 잡목과 쓰러진 나무 밑으로 몇 번을 기어가는 구간을 지나면 선명한 소로를 만난다. 하지만 마루금은 다시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가 가까스로 70.2봉의 4등급 삼각점(군산409)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북쪽으로 진행하는데, 21번도로가 마루금을 점하고 있으므로 부득이 우회하기 위해 이 도로를 오른쪽에 두고 나아간다. 암거를 통과해 승마장을 오른쪽에 두고 진행한 다음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해야 하는데, 현장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면 아무리 찾아도 틈새가 보이질 않는다. 어느 산악회 대장이 앞장서서 등로 개척 작업을 한 모양인데 도저히 통과할 수 없어 이내 끊기고 만다.
따라서 이 70.2봉에서는 그냥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가 아까 만났던 오솔길과 이어지는 소로를 만나 우회전해 따라 내려간다. 그러면 다른 배수장 저수조를 만나게 되고 이어 민가가 나오면서 군부대 버스정류장이 있는 차도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진행해 21번도로를 암거로 통과하고 오른쪽으로 붙어 마루금을 찾아가면 오른쪽에 승마장이 보이고 드디어 계산도로를 만나고 오른쪽에 미제저수지를 보면서 여유롭게 차도를 따라 가게 된다.
지곡동교차로에서 좌회전해 도로를 따르다가 유원아파트를 지나면서 오른쪽 펜션을 통해 87.3봉을 지난다. 동아아파트 옆을 거쳐 동물이동통로를 통해 녹점제를 지나게 되는데 이제부터는 공히 월명공원 안으로 들어가 마루금을 진행하게 된다.
공원을 산책하는 분들과 함께 걷노라면 지적기준보조점이 있는 석치산을 지난다. 점방산과의 갈림길에서 우회전해 장계산을 만나면 신산경표 상의 금강정맥 실거리 약 140km의 구간을 마치게 된다.
금강정맥 가이드를 마치면서
선답자들이 금남기맥이라는 이름으로 걸었던 길을 금강정맥이라는 이름으로 걷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비공식적이나마 어느 정도 체계를 쌓아가던 산경표 이론에 혼란을 부채질하는 것 아니냐 하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금강정맥이든 금남기맥이든 하루빨리 용어가 통일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과 과정을 통해서든 논쟁이 있어야 한다. 그 논쟁을 통해 많은 의견이 개진되고, 그 개진된 의견이 마루금파만이 아닌 일반 산행객 더 나아가 일반인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끔 하자는 취지에서 신산경표 상의 용어인 금강정맥이라는 이름으로 종주를 하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차제에 태백산맥이 아닌 백두대간이 제 자리를 잡고 산맥이 아닌 정맥, 기맥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우리 아이들이 산경표를 노래하며 산경표를 가지고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 산꾼들은 산줄기를 걷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산줄기를 알리고 산경표를 보급하는 일에 동참 내지는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당부 드리는 것으로 금강정맥 종주 후의 소회를 대신한다. 그러나 금강정맥의 가시덤불과 잡목 그리고 호수와 임도가 자꾸 그리워지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첫댓글 수ㅡ고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