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 이야기와 무궁화 이야기를 한 권에... 캐나다한인문인협회
캐나다 이민 1세가 주축이 되어, 캐나다인 문학교수 및 한인 1.5세 전문 문학가가 함께 하는 캐나다한인문인협회가 최근 여섯 번째 한영 문집을 발간하여 출판 기념회를 개최했다. 지난 2월 19일 저녁, 온라인으로 진행된 캐나다한인문인협회의의 제6호 한영문집출판기념회에는 캐나다 전역에서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참여하였다. 홍성철 문인협회 회장은 “1977년에 시작한 협회가 올해로 45주년을 맞이하면서, 총 19권의 한글 문집과 6권의 대영문집을 발간하였다”면서 “캐나다에서 한글로 문학을 펼친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고, 한영문집을 펴내는 것은 현지에 적극적으로 적응해 가는 것”이라고 설명헀다. 토론토 김득환 총영사도 “250개 나라와 언어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다문화 사회 캐나다에서 한국 문학의 아름다움을 한국어와 영어로 함께 소개하는 이 자리가 무척 뜻깊다”며 인사를 전했다.
<캐나다한인문인협회의 제6회 한영 문집 - 출처 : 캐나다한인문인협회>
문집은 시, 수필, 단편소설, 평론의 네 영역의 여러 작품들이 한글과 영어로 각각 수록되어 있었다. 출판 기념회는 1부 전체 개요 설명과 낭독 행사, 2부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명예 교수의 ‘문학 속에 철학’ 강연으로 나누어 진행됐다. 낭독은 문인협회원인 황로사 씨의 해금 연주에 맞추어 4개 영역에서 한 명씩 자신의 작품을 낭독하였다. 시 부분에서는 캐나다인인 테레사 현(Theresa Hyun) 요크대학(York University) 교수의 작품 <민들레의 꿈>이 한국어와 영어로 각각 낭독되었다. 동시 부분은 이미숙의 <기차>, 수필은 구상회의 , 단편소설은 1.5세 작가인 최유경 씨의 <거짓말과 약속>이 잔잔한 영상들과 함께 낭송되었다.
제6호 한영문집에 대한 전체 감상평을 전한 수필가 김영수 씨는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는데, 캐나다 사회에 더 깊이 정착하였음을 보여주는 소재와 주제가 많아졌다”고 언급했다. “예전엔 이민 생활의 애환이나 언어 장벽, 문화 차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여러 장르를 관통한 주류 주제였다면 이번엔 다양한 소재로 확대되었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삶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조명하고 있는 이번 문집의 내용은 무척 고무적”이라는 코멘트도 이어졌다. 그는 “그럼에도 모국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회원들이 캐나다에 이를 알리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여전히 남아있고, 이는 고스란히 작가들의 몫이며 한계이자 숙제”라는 현실적 고민 또한 함께 전했다.
2부 최진석 교수의 강연은 한 마디도 놓칠 수 없을 만큼 밀도 있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우리는 왜 문학을 하며, 이야기와 감동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지, 문학에서 사용하는 추상과 은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라는 장르의 특징은 무엇인지부터, 자신의 인식 한계와 영토를 벗어나면서 가지는 즐거움이란 어떤 것이며, 디아스포라가 가진 의미와 관찰력과 창의성에서 나오는 질문의 본질을 살피고, 문장이 아닌 삶 자체를 원하는 문학가의 한계 등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강의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강의가 진행되는 내내 많은 이들이 강의 내용을 노트에 적으며 집중해서 듣는 모습이었다. 강의가 끝난 후 모두 상기 된 표정으로 문학에 대햔 열정을 나누었다. 마치 새롭게 ‘문학가’로서의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새로운 영역의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듯 보였다.
행사 이후 홍성철 회장과 인터뷰를 통해 캐나다한인문인협회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 보았다. 1977년에 시작한 협회는 매년 신춘문예라는 행사를 통해 작가들을 발굴하고 있으며, 문예교실이라는 이름의 강좌를 통해 사람들이 문학이라는 장르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견인한다. 일반인들을 중심으로 한 1박 2일의 심포지엄 호반문학제 개최 등, 캐나다에서 한국 문학의 저변 확대를 위해 힘써오고 있기도 하다. 특히 문인협회의 회원이 될 자격이 주어지는 신춘명예는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당선작이 단 한 편만 나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편, 홍 회장은 최근 캐나다에서 불고 있는 한국의 스토리텔링은 독특함과 섬세한 감정 표현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한다. 한때 유행을 일으켰지만 임계점이 꺾인 작품들은 더 이상 새로움을 주지 못하고 진부한 이야기로 진행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의 영화와 이야기들은 스토리를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것에도 이유를 담고, 스토리를 담고, 여러 층과 겹의 개인감정을 촘촘하게 담고 있어서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악인이 무조건 악인이 아니고, 악인이 되어가는 과정과 사연들이 촘촘하게 깔린 복선과 함께 전개되어 스토리 자체가 차별화가 되고 그것이 바로 한국 이야기가 몰입감을 주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여러 예술 장르가 감동을 주지만, 문학의 힘은 바로 글로 읽는 것에서 오는 상상력과 생각하고 인지하는 의식적인 활동”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영화나 음악은 시각적이고 청각적이라 강렬하지만 휘발성 또한 강해 사라지기 쉬운 데 반해 문자는 의식적이고 느려 그 감동이 깊고 오래가는 특징을 가진다는 것이다.
협회가 2세 및 현지인들과 더 많이 연결돼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먼저”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즉, 영어권과의 교류에는 “한영문집을 만드는 것이 최고점”이라고 생각한다며, 캐나다에서 한글문학을 발전시키는 것을 협회가 가장 우선순위로 두고 있어서, 영어권과의 교류는 언어적 능력이 되는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도록 남겨두고 협회는 본질에 충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1세 이민자들이 주축이 된 캐나다 동포 단체에게 2세와 현지인들과의 교류는 마치 당연한 듯 여겨지는 방향성이자 추구해야 할 잣대로 여겨진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도리어 캐나다에서 한글 문학을 생산해내는 자체에 본질과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말은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는 마치 최소한의 자신됨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오랜 고민과 논의를 거친 답변일 것이다. 캐나다에서 한글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작가들의 노력이 본질을 잃지 않고 경험을 축적해 간다면, 테레사 현 교수와 같은 캐나다인, 최유경 작가와 같은 1.5세들이 먼저 손을 벌려 다음 세대와 현지인들과의 교류에 앞장설 수 있을 것이다. 자신 능력 너머의 것을 무작정 구하지 않고 첫 마음과 방향을 지키며, 캐나다에서 한국 문학이 이어질 수 있도록 애쓰는 캐나다한인문인협회의 펜에서 나오는 힘을 더욱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