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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시에 나타난 음악*
정경량 (목원대 교수/한국 헤세학회 회장)
I. 들어가는 말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1877~1962)는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시인이요 작가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음악과 관련된 생활을 하였으며, 음악과 관련된 문학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1948년 71세의 헤세는 노벨 위원회에 제출한 그의 이력서에 다음과 같이 쓴다: “조형 예술에 대한 나의 관계는 언제나 아주 친밀한 것이었고 또 친구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더 내면적이고 더욱 더 생산적이었던 것은, 음악에 대한 나의 사랑이었다. 사람들은 이 음악을 내가 쓴 글의 대부분에서 다시 발견한다.” 1)
이처럼 헤세는 음악을 사랑하였고, 음악과 내면적인 소통을 하는 가운데 음악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작품 중 시문학에도 음악이 다양하게 반영되어 나타난다. 그러면 이제 헤세의 시와 음악의 관계를 살펴본 후, 음악과의 관련성이 특히 강하게 나타나는 헤세의 초기 시와 후기 시를 중심으로 그의 시에 나타나는 음악의 양상을 고찰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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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2008년 11월 8일 한국헤세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 보완한 논문이라는 것을 밝혀둔다.
1) Siegfried Unseld (Hrsg.): Hermann Hesse. Werk und Wirkungsgeschichte. Frankfurt/M. 1985. 286쪽.
II. 헤세의 시와 음악의 관계
헤세는 시 짓는 것 Versbauen을 연주와 노래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2), 그의 서정시에는 음악성이 깊게 흐르고 있다. 헤세의 이러한 서정시에 매혹되어 많은 작곡가들이 그의 시에 곡을 붙였다. 헤세를 우리 시대의 훌륭한 가곡시인 Liederdichter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3) 그러면 헤세는 어떠한 음악을 좋아했는가? 먼저 헤세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헤세는 75세인 1952년 3월 19일 베르너 베르미히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음악 생활과 음악적 취향을 피력한다.
어렸을 때와 젊은 시절, 나는 바흐와 헨델의 오라토리오 이외에 가정음악 말고는 거의 다른 음악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노래를 많이 부르고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에서는 베토벤과 쇼팽을 아주 좋아했고 지금도 역시 그렇습니다. 다만 나의 내면적인 삶이 점점 더 동양으로 향하고, 우리의 문제성, 격정을 떠나감에 따라 바흐가 그리고 모차르트가 더욱 더 1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의 소나타와 교향곡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내게는 소중합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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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ermann Hesse: Gesammelte Werke in 12 Bänden. Frankfurt/M. 1970. Bd. 11. 10쪽 참고.
3) 이신구: 헤세와 음악. 서울(태학사) 1999. 17쪽.
4) Volker Michels(Hrsg.): Hermann Hesse Musik. Frankfurt/M. 1986. 191쪽.
이처럼 헤세 집안의 기독교적인 분위기로 인하여 헤세가 어린 시절에는 바흐와 헨델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음악을 주로 접했으며, 젊은 시절에는 베토벤과 쇼팽을 중심으로 하는 피아노 음악을 좋아했다. 그런데 노년에 이르러서는 바흐와 모차르트를 가장 좋아하게 된다. 헤세는 같은 해인 1952년에 빌리 케르베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설명한다.
당신은 내가 지금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가 물어보셨지요.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흐이고, 그 다음으로는 코렐리에서 보케리니까지의 이탈리아 현악, 19세기의 것으로는 베토벤입니다. 피아노 음악에서는 젊었을 때 쇼팽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오늘날에는 슈만을 더 좋아합니다. 현대음악은 별로 듣지 않습니다, 대략 라벨 그리고는 바르토크에서 내 관심은 중지됩니다,[…] 5)
헤르만 카자크는 「헤르만 헤세와 음악의 관계」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젊은 헤세를 매혹시킨 음악의 마력은 주로 낭만적인 색채의 것이었습니다. 그의 많은 시의 제목, 혹은 시구 몇 개를 떠올려 보기만 하면 되지요: 「거리의 악사 Spielmann」, 「바이올린 연주자 Der Geiger」, 「멜로디 Melodie」, 「가보트 Govotte」, 「마리아의 노래 Marienlieder」, 「야상곡 Nocturne」 그리고 「쇼팽의 왈츠 Chopinwalzer」. 그는 “하프의 선율에 맞추어”, “손풍금”에 맞추어, “낮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추어 노래합니다. 샘물이 소리 내며 흐르고, “노래와 별들의 세계”가 울려 퍼집니다. 독일 낭만주의의 모티프, 소년의 마술피리의 모티프가 노래의 인사로, 꿈과 밤과 시인의 노래로 헤세 초기 시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시를 쓴다는 것은 바로 노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랜 동안 그에게 시는 가사(歌詞)요, 노래였지요.”6) 여기에서 헤르만 카자크는 헤세 초기 시에 나타난 낭만주의 음악적 특성을 적절하게 잘 지적하였다. 헤세가 스무 살이었던 1896년 1월 에버하르트 괴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쇼팽을 좋아하지. 모차르트 이외에는 쇼팽만큼 좋아하는 작곡가는 없다고 해도 좋을 거야. 그리고 나는 내가 꿈꾸는 시에 바로 쇼팽이 내게 주는 것과 같은 그런 효과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지. 7)
라고 말한다. 그만큼 헤세는 젊은 시절 특히 쇼팽의 음악을 좋아했으며, 그가 창작하는 시에 쇼팽이 주는 음악적 효과가 나타나기를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헤세는 1897년 6월 12일 칼 이젠베르크8)에게 보낸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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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같은 곳.
6) Hermann Kasack: Hermann Hesses Verhältnis zur Musik. In: Volker Michels(Hrsg.): 앞 책. 10-11쪽.
7) Volker Michels(Hrsg.): 같은 책: 124쪽.
8) 칼 이젠베르크 Karl Isenberg(1869~1937)는 헤세의 어머니가 전 남편인 찰스 이젠베르크 Charles Isenberg(1830~1870)와 결혼하여 낳은 두 아들 중 동생이다. 헤세에게는 의붓 형이 된다.
제가 쇼팽을 좋아하는 취향이 형에게는 이상하게 여겨질지 모르겠네요 - 하지만 오직 음악에 관한 거랍니다. 시 창작에서는 제가 아무리 리듬과 좋은 소리를 존경한다 해도, 쇼팽이 저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완벽한, 복잡한 음향적 기술보다, 각각의 단어들, 각각의 의미 있는 소리형식들을 통해 생겨나는 박자를 더 사랑한답니다. 9)
라고 하면서 자신의 시 창작에서는 무엇보다도 시어들의 음향적 연결 형태를 통해 나타나는 박자에, 말하자면 시어들이 지니고 있는 음향적인 효과에 더 애착을 두고 있다고 피력한다. 헤세가 22살 때인 1898년 11월 9일 헬레네 포크트-디더리히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당신은 내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음악에 의해 창작의 자극을 받고 있는 것을 아시지요. 나 자신이 제일 마음에 들어 하는 나의 몇몇 시는 모두 쇼팽과 베토벤의 작품에서 촉발된 것이라고 해도 좋습니다.”10) 이렇게 헤세가 20대 초 젊은 시절에 쓴 편지에서 헤세는 그 시절에 특히 쇼팽과 베토벤을 아주 좋아하고 있었으며, 또한 그들의 음악이 자신의 시 창작에 강한 자극과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헤세는 79세인 1956년 12월 31일 라이너 될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나에게 음악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바흐와 모차르트이고, 다음으로는 헨델과 글룩이며, 물론 하이든도 들어가는데, 말하자면 그의 후기 교향곡입니다. “낭만주의자들”에 관해서는 슈베르트가 나에겐 가장 사랑스러운데, 슈만도 또한 좋아합니다, 그리고 나의 청년 시절에는 쇼팽이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였습니다.”11)고 말한다. 같은 해에 헤세는 또한 쇼팽의 「장송행진곡」에 관한 회고의 글에서 “그 젊은 시절에 쇼팽은 내가 아주 좋아한 음악가였지만, 이 곡을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생각나질 않는다. 내가 스무 살 때까지 나는 교회에서 듣는 오라토리오와 몇 번의 가곡 연주회를 빼고는 주로 가정음악만을 들었다. 그 때 쇼팽은 베토벤의 소나타와 슈만 그리고 슈베르트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였다; 몇몇 왈츠, 마주르카 그리고 전주곡의 슬프면서도 달콤한 멜로디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외우고 있었다.”12)고 쓴다.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젊은 시절에 이르기까지 헤세가 좋아한 음악의 세계는 특히 그의 초기 시에 다양한 음악적 요소와 더불어 반영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헤르만 카자크는 “[…]우리는 그의 작품이 처음부터 음악적인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의 수많은 시의 노래하는 듯한 성격을 규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산문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는 그 특징적인 음향, 그것은 바로 멜로디인 것입니다. 헤세의 언어에는 언제나 틀림없이 음악적인 억양이 있습니다.”13)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헤세 문학은 악보 없는 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헤세의 서정시나 산문은 선율과 음향과 리듬으로 가득 차14)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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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Volker Michels(Hrsg.): 앞 책. 126쪽.
10) 같은 책. 133쪽.
11) 같은 책. 206쪽.
12) 같은 곳.
13) 같은 책. 9쪽.
14) Gerhard Kirchhoff: Josef Knechts Leben aus dem Geist der Musik. In: Hermann Hesses Glasperlenspiel. 4. Internationales Hermann-Hesse-Kolloqium in Calw 1986. 69쪽 참고.
III. 헤세의 초기 시에 나타난 음악
헤세의 초기 문학은 무엇보다도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낭만주의적인 경향을 강하게 나타낸다. 따라서 그의 초기 시에도 낭만주의적인 요소가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독일 낭만주의 문학은 여러 문학 사조 중에서 특히 가장 음악 예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사조로서 강하게 음악적인 특성을 표출한다. 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음악적 특성의 영향으로 인하여 헤세의 초기 시에는 낭만주의적 음악의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독일 낭만주의 문학은 음향이 주는 신비스러운 힘을 표출하고자 노력한 시기이다. 또한 독일 낭만주의 시와 음악은 대체로 서정적인 소품에 큰 비중을 두어 시를 쓰고 작곡을 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헤세의 초기 시에는 대체로 서정적인 짧은 시들이 많으며, 다양한 음악적 요소와 더불어 음악적인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먼저 그의 초기 시 「들판을 넘어… Über die Felder…」를 감상해 보자.
하늘을 넘어 구름이 흘러간다
들판을 넘어 바람이 간다,
들판을 넘어 헤매는 이는
내 어머니가 잃어버린 아이.
거리 위로 나뭇잎 흩날린다,
나무 위에 새들이 우짖는다 -
저 산 너머 어디엔가
머나먼 내 고향이 있으리라.
Über den Himmel Wolken ziehn
Über die Felder geht der Wind,
Über die Felder wandert
Meiner Mutter verlorenes Kind.
Über die Straße Blätter wehn,
Über den Bäumen Vögel schrein -
Irgendwo über den Bergen
Muß meine ferne Heimat sein. 15)
청춘 시절에 주로 종교적인 문제의 갈등으로 인하여 집안과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헤세는 초기 시에 자주 그가 겪었던 어려움을 낭만적인 서정으로 표출하였다. 이 시도 그러한 청춘 시절의 어려움을 토로한 시로서 “방랑과 향수”가 그 주제이다. 그런데 헤세는 이러한 낭만주의적 주제를 아주 적절하게 음악적으로 표출하였다.
우선 이 시는 2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행이 한 연으로 되어 있으며 각 행이 3개 혹은 4개의 강세를 지님으로써 전통적인 독일 민요의 시형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각 행의 길이가 거의 비슷한 정도의 길이를 지님으로써 반복적인 호흡과 리듬감이 뛰어나 흡사 독일 민요나 노래의 가사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16) 이런 관점에서 후고 발은 헤세 자체를 청춘의 민요라고 했다. “헤세는 청춘의 활력을 담은 민요이며, 무한한 변주를 보인다. 민요 없이는 그를 생각할 수가 없다.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저절로 노래가 나온다. 그러나 그는 민요 이상이다. 그는 민요의 배경이며, 민요의 높이와 깊이이고, 민요의 신비이며 연주자이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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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Hermann Hesse: Die Gedichte. Bd. 1. Frankfurt/M. 1977. S. 91. 앞으로 두 권으로 된 이 헤세의 시집에서 인용한 인용 전거 표시는 괄호 안에 숫자로 표시하되, 콤마 앞의 숫자는 권수를 콤마 뒤의 숫자는 쪽수를 표시함.
16) 이 시는 한국에서 김정식이 1984년에 「들판을 넘어」라는 제목의 노래로 작곡을 하였다. 이 노래 외에 한국에서 헤세의 시를 가사로 하여 노래를 만든 것은 서유석이 1976년에 헤세의 시 「아름다운 사람 Die Schöne」을 가사로 하여 노래를 만들었으며, 김정식은 또한 2005년에 헤세의 시 「흰 구름 Weisse Wolke n」을 가사로 번안하여 38년 동안 그의 마음속에 감동으로 남아있었던 헤세의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
17) Hugo Ball: Hermann Hesse. Frankfurt a.M. 1977. 20쪽.
위의 시는 문장 형태에서도 각 연의 제1행과 제2행이 각각 단문으로서 대구를 이루고 있고, 각 연의 제3행과 제4행의 두 행이 하나의 문장으로 되어 있어 두 연이 구문 면에서 정확하게 대구를 이루고 있는 상태이다. 이처럼 시에서 행과 연의 구문이 서로 일치하는 것도 반복을 통한 음악적 효과와 더불어 시적 내용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 더욱 인상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이 시에서는 율격에서도 주로 강약약격과 강약격이 규칙적으로 섞여 진행됨으로써 음악적인 리듬감을 잘 살려주고 있다. 또 각 연의 제2행과 제4행이 각각 각운(Wind/Kind, schrein/sein)을 이루고 있으며, 각 연의 남성운과 여성운의 배열도 “남성운/남성운/여성운/남성운”(ziehn/Wind/wandert/Kind, wehn/schrein/ Bergen/sein)으로 되어 있어 음향적인 면에서도 적절한 음악적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시에는 “넘어, 위로, 위에” 등의 뜻을 지닌 전치사 “über”가 시의 제목을 포함하여 무려 7개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볼 때는 “über”라는 전치사 대신에 다른 전치사를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보이는 구절도 있다. 예를 들어 이 시의 맨 첫 행은 “über” 대신에 “in”이라는 전치사를 써서 “하늘에 구름이 흘러간다 In dem Himmel Wolken ziehn”고 할 수가 있으며, 제2연의 첫 행도 “über” 대신에 “auf”라는 전치사를 써서 “거리에 나뭇잎 흩날린다, Auf der Straße Blätter wehen,”고 쓰는 것이 독일어의 일상 어법에 더 자연스럽고 적절할지 모른다. 그러나 헤세는 의도적으로 “über”라는 전치사에 큰 비중을 두어 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였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같은 전치사를 사용함으로써 헤세는 반복적인 음향의 효과를 극대화시켰으며, 또한 “넘어, 위로” 등 공간적으로 먼 곳에 대한 방향과 거리감을 제공하는 전치사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이 시의 주제인 “(정처 없는) 방랑과 (머나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더욱 부각시키는 효과를 낸 것이다. 말하자면 시가 표출하고자 하는 주제적인 면과 음향적인 면을 서로 적절하게 연계시킨 것이다. 그만큼 이 시는 여러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활용하여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출한 시이다. 헤세의 초기 시에는 이처럼 특히 음향적인, 음악적인 특성을 띠는 시들이 많이 있다. 이제 음악성이 뛰어난 또 다른 초기 시 한 편을 더 감상해보자.
방랑 길에 -크눌프를 회상하며-
슬퍼하지 말아라, 곧 밤이 되리니,
그러면 우린 창백한 땅 위에
몰래 웃음 짓는 싸늘한 달을 바라보며,
손에 손을 잡고 쉬게 되리라.
슬퍼하지 말아라, 곧 때가 오리니,
그러면 우린 쉬게 되리라. 우리의 작은 십자가 둘이
밝은 길가에 나란히 서면,
비가 오고 눈이 내리며,
바람이 또한 오고 가리라.
Auf Wanderung -Dem Andenken Knulps-
Sei nicht traurig, bald ist es Nacht,
Da sehn wir über dem bleichen Land
Den kühlen Mond, wie er heimlich lacht,
Und ruhen Hand in Hand.
Sei nicht traurig, bald kommt die Zeit,
Da haben wir Ruh. Unsre Kreuzlein stehen
Am hellen Straßenrande zu zweit,
Und es regnet und schneit,
Und die Winde kommen und gehen.(1, 322)
헤세 초기 소설의 주인공인 크눌프와 연관되어 있는 이 시도 3개 혹은 4개의 강세를 지니면서 4개의 행과 5개의 행이 각각 한 연을 이루는 가운데 거의 독일 민요시연과 비슷한 구성을 보여준다. 더욱이 제2연의 마지막 행은 그 바로 앞 제4행의 내용이 약간의 표현을 달리하면서 다시 한 번 반복하는 듯한 여운과 인상을 주는 문장으로서, 이것은 흡사 마지막 구절을 후렴처럼 반복하면서 마무리하는 노래의 분위기마저 보여준다.
이 시는 특히 두 연의 첫 행(슬퍼하지 말아라, 곧 밤이 되리니 Sei nicht traurig, bald ist es Nacht/슬퍼하지 말아라, 곧 때가 오리니 Sei nicht traurig, bald kommt die Zeit)이 같은 내용과 구문과 율격으로 반복되면서 독자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심어준다. 18) 이 두 행은 이렇게 정확하게 서로 대구를 이루어 반복적인 음악적, 음향적 효과를 주면서 인생의 시간과 세월이 덧없이 빨리 흘러간다는 것을 인상적으로 심어준다. 또한 abab cdccd(Nacht/Land/lacht/Hand, Zeit/stehen/zweit/schneit/ gehen)의 각운을 형성하면서 적절한 음향적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내용 면에서는 제1연에서 곧 밤이 되어 손을 맞잡고 평안하게 쉬게 되리라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밤이 되어 서로 손을 맞잡고 쉬게 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밤이 죽음을 상징하면서 죽은 이후 무덤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쉬게 된다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게 서술을 한 후, 제2연에서는 명확하게 곧 죽음이 찾아와 평온하게 안식하게 된다는 것을 서술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시는 제1연과 제2연이 각각 “(현세적) 삶의 평안”과 “죽음 이후의 평온”을 서로 밀접하게 연계시키면서 “덧없는 삶과 죽음의 평온”이라는 시의 주제를 상승적으로 보여준다.
제1연 마지막 행에서 “손에 손을 잡고 쉬게 되리라”는 내용은 제2연 제2행에서는 “쉬게 되리라”는 내용을 다시 반복적으로 받아서 죽음으로 인한 평온한 안식의 상태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덤의 십자가에 “비가 오고 눈이 내리며,/바람이 또한 오고 가리라”고 하면서 덧없는 삶으로부터 죽음 이후로까지 이어지는 평온에 또한 무심히 이어지는 일상적인 자연 기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때 “그리고”라는 뜻의 접속사 “und”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덧없는 인생 위에 무심히 지속되는 자연의 흐름을 더욱 인상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 시는 이처럼 시어와 구문의 다양한 음향적, 음악적 요소를 활용하여 “덧없는 삶과 죽음의 평온”이라는 시의 주제를 아주 효과적이며 인상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명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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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 필자가 중학교 1학년 때 벽걸이 액자 속의 번역 시 형태로 처음 접하여 깊은 감동을 받은 헤세의 이 시는 무엇보다도 반복된
이 두 행의 시 구절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한편 헤세의 초기 시에 나타나는 악기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악기는 바이올린이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음악가는 쇼팽이다. 이것은 젊은 시절 헤세가 좋아했던 바이올린과 쇼팽에 대한 선호도를 보여준다. 헤세가 20세 때인 1897년에 쓴 시 「쇼팽 Chopin」 연작시 중 두 번째 시 「대왈츠 Grande Valse」에서 시인은 두 번에 걸쳐 “야호, 음악이다! Juche, Musik!”(1, 13-14)고 하면서 음악에 대해 환호성을 지른다. 젊은 시절 누구보다도 쇼팽의 음악을 좋아한 헤세가 이처럼 음악이 주는 행복을 적나라하게 토로한 것이다. 이러한 대목에서 음악을 애호하고 찬미한 헤세의 모습을 단적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이어지는 세 번째 쇼팽 연작시 「자장가 Berceuse」(1, 14)에서는 어린 시절 들었던 사랑스러운 쇼팽의 자장가를 다시 듣고 싶다고 하면서, 그 자장가를 가리켜 달콤한 기적의 음향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니 헤세가 어렸을 때 얼마나 쇼팽의 자장가 음악에 황홀한 감동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불안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자장가 음악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장가에 대한 헤세의 동경과 청춘 시절 이후 듣지 못한 자장가에 대한 아쉬움을 읽을 수 있다. 동화의 노래라는 표현으로 헤세는 자장가에 낭만주의적인 음악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말하자면 향수로 가슴아파하는 심정에 동경과 위로를 주는 쇼팽의 자장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헤세의 초기 시에 음악은 주제적인 면에서 낭만주의적인 경향을 강하게 나타낸다. 말하자면 초기 시에 음악은 주로 시적 자아의 고통이나 낭만적 동경과 함께 나타난다. 그리하여 음악은 이 때 주로 시적 자아를 위로해 주거나 숭고한 차원의 정신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잠 못 이룸 Schlaflosigkeit」이라는 초기 시에서 헤세는 “자 - 음악이다! 떨고 있는 먼 곳에서/음향이 울린다, 숭고한, 성스러운 음향이[…]미소 지으면서 무한으로부터 시간을 풀어낸다. Da Musik! Aus zitternden Fernen her/Wehen Töne, edle, heilige Töne[…]lösen die Zeit/Lächelnd aus der Unendlichkeit.”(1, 326)고 쓴다. 여기에서 헤세는 음악에 대한 경탄과 환호를 내보이면서, 그 음악의 소리를 “숭고한, 성스러운 음향”이라고 하면서 음악의 의미를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음악이 무한으로부터 시간을 풀어낸다고 하면서 이제 음악과 시간 개념을 처음으로 연결하기 시작한다. 또한 1916년에 쓴 「일로나 두리고를 위하여 Für Ilona Durigo」(2, 766)라는 시에서 헤세는 사라져버리는 덧없는 것과 대비시키면서 음악이 주는 진정한 광휘와 영속성을 제시한다. 말하자면 헤세는 음악가를 통하여 이 시에서 음악의 영속성을 처음으로 표출했다. 덧없는 인생에서 이제 음악은 헤세에게 영속적인 의미와 가치를 상징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IV. 헤세의 후기 시에 나타난 음악
헤세는 초기에 독일 낭만주의 시와 음악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짧은 시를 많이 쓰면서 흡사 독일 민요와 같이 단순하고 소박한 가운데 음향적, 음악적 효과를 많이 내는 시를 썼다. 그런데 이제 중기를 거쳐 후기에 이르면 헤세의 시가 상대적으로 길어지는 경향을 보이며, 음악과 관련해서도 음악의 상징성을 중심으로 종교철학적인 면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된다. 이것은 헤세가 중기 이후 점차 동서양의 다양한 신비주의 종교사상에 깊이 몰두하게 되는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후기에 이르면 헤세가 좋아하는 음악도 바흐와 모차르트 등 심오한 종교철학적, 신비주의적 세계를 보여주는 음악을 가장 좋아하게 된다. 따라서 그의 후기 시에 나타난 음악도 무엇보다도 종교적인 관점의 음악이요, 더 나아가 신비주의 종교적 관점의 음악이 그의 후기 시에 나타나는 주된 음악인 것이다. 헤세가 58세인 1935년 5월 10일에 쓴 시 「바흐의 토카타에 부쳐 Zu einer Toccata von Bach」를 먼저 감상해보자.
태고의 침묵이 굳어 있다… 암흑이 지배하고 있다…
그 때 한 줄기의 빛이 구름 갈라진 틈으로 터져 나와,
보이지 않는 무(無)로부터 세계의 심연을 붙잡고,.
공간을 구축하고, 빛으로 밤을 헤집는다,
이윽고 산마루와 산봉우리, 산비탈과 골짜기가 예감토록 하고,
대기를 엷은 청색으로, 땅을 단단하게 한다.
그 빛 창조를 촉진하려고 싹트며 잉태한 것을
둘로 찢어 행동과 싸움으로 몰아대니:
놀란 세계가 빛을 내며 불붙는다:
빛의 싹이 떨어지는 곳으로 변화가 생기고,
정돈이 되면서 화려한 세계가
생명에 찬가를, 창조주인 빛에 승리의 노래를 울린다.
그리고는 신이 계신 곳으로 회귀하려고,
희구를 품고 흔들거리며
모든 피조물의 활동을 아버지인 영(靈)을 향해 몰아 부친다.
그 희구가 쾌락과 곤궁이 되고, 언어가 되고, 그림, 노래가 되어,
온 세상에 대성당의 개선문 아치를 두르니,
그것은 충동이요 영이며, 싸움이요 행복이며, 사랑이도다.
Urschweigen starrt… Es waltet Finsternis…
Da bricht ein Strahl aus zackigem Wolkenriß,
Greift Weltentiefen aus dem blinden Nichtsein,
Baut Räume auf, durchwühlt mit Licht die Nacht,
Läßt Grat und Gipfel ahnen, Hang und Schacht,
Läßt Lüfte locker blau, läßt Erde dicht sein.
Es spaltet schöpferisch zu Tat und Krieg
Der Strahl entzwei das keimend Trächtige:
Aufglänzt entzündet die erschrockne Welt:
Es wandelt sich, wohin die Lichtsaat fällt,
Es ordnet sich und tönt die Prächtige
Dem Leben Lob, dem Schöpfer Lichte Sieg.
Und weiter schwingt sich, gottwärts rückbezogen,
Und drängt durch aller Kreatur Getriebe
Dem Vater Geiste zu der große Drang.
Er wird zu Lust und Not, zu Sprache, Bild, Gesang,
Wölbt Welt um Welt zu Domes Siegesbogen,
Ist Trieb, ist Geist, ist Kampf und Glück, ist Liebe.(2, 632)
이 시는 6개의 행이 각각 한 연을 이루어 모두 3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각 행의 길이가 거의 비슷하게 되어 있어서 시의 외형적인 호흡과 리듬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율격은 거의 약강격을 이루고 있고, 각운은 aabccb / deffed / ghiigh(Finsternis / Wolkenriß / Nichtsein /Nacht /Schacht/sein,Krieg/Trächtige/Welt/fällt/Prächtige/Sieg, rückbezogen/Getriebe/Drang/Gesang/Siegesbogen/Liebe)로 되어 있어 적절한 음향적 효과를 내고 있다.
헤세는 이 시를 쓴 해인 1935년 6월 말 카를로 이젠베르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바흐 시에서는 그러니까 시가 사실상 음악을 다루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음악이 나에게 준 암시: 즉 빛이 창조되는 형상에 관한 것이라는 게 약간 마음에 걸립니다. 혼돈 위에 빛이 번쩍이고 이 세계에 용모와 형태를 부여하는 광경을 나는 보는 겁니다. 밝음과 어두움, 형체, 앞과 뒤, 이것은 하나의 역동적인 과정이지요, 물론 바흐 음악 그 자체는 이미 총체적이고도 완전한 우주이며 형상입니다만.”19) 같은 해 7월 22일 세실리에 클라루스 Cecilie Clararus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헤세는 “토카타에 대해선 대략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는 요셉 크네히트와 유리알 유희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그저 절반만이 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 물론 음악을 시로 재현시킬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시에 나타나 있는 것은 토카타가 아니라, 나의 주관적인 체험이자, 이 특별한 음악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나의 연상입니다, 수년 전부터 반복해서 들을 때마다 반복된 것이지요. 나는 이 음악에서 창조의 과정, 그러니까 빛이 생기는 순간을 보거나 느낍니다. 이것을 재현하려고 시도한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닙니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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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Volker Michels(Hrsg.): 앞 책. 169쪽.
20) 같은 곳.
이처럼 헤세가 말했듯이 이 시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태초에 흑암이 덮고 있다가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빛이 생기고 만물이 창조되는 과정을 형상화하였다. 이것은 바흐 음악의 기독교적 특성을 헤세가 받아들여 기독교적인 시어들(창조주 Schöpfer, 피조물 Kreatur, 아버지 영 Vater Geiste 등)과 함께 성경의 천지창조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헤세가 젊은 시절에는 기독교와 심한 갈등을 겪었지만 나이가 들어 창작후기에 이르면 기독교 종교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을 취하게 되는데, 이 시에는 그러한 헤세의 종교적 변화와 바흐 음악의 기독교적 특성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이와 같이 종교적 차원에서 바흐 음악을 시로 형상화한 것으로는 또한 「파이프오르간 연주 Orgelspiel」라는 시가 있다. 이 시는 모두 7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5쪽의 분량에 달하는 방대한 시이다. 바흐의 파이프오르간 연주곡은 그야말로 웅장한 기독교 음악의 특성을 보여주는데, 이 시는 대체적으로 그와 같은 기독교적 종교사상을 형상화하였다. 그런데 이 시에 나타난 핵심적인 종교성은 헤세 자신의 신비주의 종교성이다. 이 시의 제3연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영이 지배하는 박자 속에
사람들의 천 가지 꿈이 모두 다 그려지니,
그 꿈들의 목표는: 하느님이 되는 것이었다[…]
In den geistbeherrschten Takten dichten
Tausend Menschenträume sich zu Ende,
Träume, deren Ziel war: Gott zu werden,[…]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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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같은 책. 28쪽.
여기에서 “하느님이 되는 것”은 바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느님과의 신비적 합일을 꿈꾸는 신비주의의 목표를 말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 이어 “신적인 것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 Nahe bis zum Göttlichen”22)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로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려는 강렬한 신비주의의 종교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헤세는 바흐 음악을 다루는 후기 시에서 이처럼 자신의 신비주의 종교성을 표출한 것이다. 바흐 음악은 후기 헤세의 신비주의 종교성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활용된 것으로서, 이 「파이프오르간 연주」 시는 헤세의 “음악적 신앙고백”23)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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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같은 곳.
23) 이신구: 앞 책. 45쪽.
헤세가 1947년에 쓴 시 「모래에 쓴 In Sand geschrieben」의 맨 처음 부분에는 “아름다운 것과 매혹적인 것도/그저 하나의 입김이자 전율일 뿐,/소중한 것, 황홀하게 하는 것도/지속되지 않는 사랑스러움이라는 것: Daß das Schöne und Berückende/ Nur ein Hauch und Schauer sei,/Daß das Köstliche, Entzückende,/Holde ohne Dauer sei:”(2, 698)이라고 하면서 이 지상과 현세의 시간적 한계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하면서, 이와 대조적으로 “그런데 소중한 것은: 음악의/소리이다 Und das Köstliche: die Töne/der Musik”(2, 698)고 쓴다. 시간적인 면에서 영속되지 않는 모든 것들과 대비하면서 음악만큼은 헤세에게 영원성을 상징하는 예술로 여겨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헤세는 덧없이 사라지는 모든 것에 비해 시간적으로 영원성을 보여주고 상기시켜주는 음악이 가장 소중하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음악과 시간성을 연계시키면서 헤세의 신비주의적 시간관을 보여준 시로는 후기 시 「플루트 연주 Flötenspiel」가 있다. 한 번 감상해보자.
밤에 수풀과 나무 사이에 서 있는 집 한 채
창문 하나 희미하게 어른거리는데,
거기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피리 연주자 하나 서서 피리를 불었다.
그것은 너무도 오랫동안 잘 알려져 있는 노래였고,
그것은 그토록 사랑스럽게 밤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흡사 모든 땅이 고향인 것처럼,
흡사 모든 길이 다 완성된 것처럼.
그것은 세계의 신비스러운 의미가
그의 호흡 속에 계시된 것이었으니,
기꺼이 마음을 바쳐 헌신했고
하여 모든 시간은 현재가 되었도다.
Ein Haus bei Nacht durch Strauch und Baum
Ein Fenster leise schimmern ließ,
Und dort im unsichtbaren Raum
Ein Fltenspieler stand und blies.
Es war ein Lied so altbekannt,
Es floß so gtig in die Nacht,
Als wre Heimat jedes Land,
Als wre jeder Weg vollbracht.
Es war der Welt geheimer Sinn
In seinem Atem offenbart,
Und willig gab das Herz sich hin
Und alle Zeit ward Gegenwart.(2, 673).
각 행마다 거의 비슷한 길이로 4개의 행이 한 개의 연을 이루어 독일 민요시연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각 행마다 정확히 약강격으로 4개의 강세를 지니고 있는 이 시는 정확한 각운 abab / cdcd / efef (Baum / ließ / Raum / blies, altbekannt / Nacht / Land / vollbracht, Sinn / offenbart / hin / Gegenwart)과 더불어 균형 잡힌 음악적 효과를 잘 드러내고 있는 시이다.
이 시의 제1연에서 플루트 연주자가 보이지 않는 공간에 서서 플루트를 불었다고 한다. ‘공간’이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씀으로써 음악 연주와 공간을 서로 연계시켰다. 제2연에서는 이 플루트 연주로 인하여 모든 고장이 고향인 듯하고, 모든 길이 다 완성된 듯하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음악은 영적인 고향이요, 음악은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3연에서는 이 세상의 신비가 그 연주자의 호흡 안에 계시되어, 모든 시간은 현재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헤세는 바로 이 대목에서 플루트 연주 음악을 통하여 “영원한 현재”라고 하는 신비주의적 시간관을 표출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음악은 헤세에게 신비주의적, 초월적 시간성을 나타내는 상징이 된 것이다.
헤세는 1940년 오토 코라디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시의 마지막 행은 […] 내가 음악의 본질에 대해 여러 해 동안 숙고한 것의 최종 결론입니다. 음악은, 나에게, 철학적으로 말해서: 미학적으로 감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간이라고 여겨집니다. 말하자면 현재라는 말이지요. 그리고 이때 다시금 순간과 영원이 동일하게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24)고 말한다. 말하자면 “음악의 본질은 시간, 즉 순수한 현재이지 다른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비록 어린 시절부터 음악의 친구였지만, 내가 이러한 통찰에 도달하기에는 약 60년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25)고 헤세는 1940년 다른 편지에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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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940년 4월 오토 코라디 Otto Korradi에게 보내는 헤세의 편지. Volker Michels(Hrsg.): 앞 책. 177쪽.
25) 1940년 4월 16일 G. S.에게 보내는 헤세의 편지. Hermann Hesse: Ausgewählte Briefe. Erweiterte Ausgabe. Zusammengestellt von Hermann Hesse und Nino n Hesse. Frankfurt/M. 1974. 193쪽.
한편 헤세 만년의 대작인 유리알유희에서 테굴라리우스 Tegularius가 크네히트와 시 「단계 Stufen」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시의 진정한 내용은 ‘단계’라는 제목으로 어느 정도 암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 또는 ‘음악의 본질’로 그 제목을 삼으셨다 하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아니 훨씬 더 나은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입니다.” 26) 이로써 그는 “음악의 끊임없는 현재성, 음악의 명랑성과 결단성, […] 음악의 운동성과 쉬임 없는 결단성, 그리고 계속해서 서둘러 나아가고 또 이제 방금 막 밟았던 공간이나 공간의 단면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27)을 음악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크네히트도 또한 이에 동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간을 지나가는 것’과 내 시의 근본 사상은, 내가 그것을 알거나 혹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는데, 사실상 음악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28) 이처럼 후기 창작시기의 헤세에게 음악은 무엇보다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비주의적 종교성을 표출하는 상징적 의미를 강하게 지닌다. 끝으로 헤세의 후기 시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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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Hermann Hesse: Gesammelte Werke in 12 Bänden. Frankfurt/M. 1970. Bd. 9. 412쪽.
27) 같은 곳.
28) 같은 책. 413쪽.
우주의 음악을 그리고 대가들의 음악을
우리는 이미 경외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 들을 준비가 되어 있나니,
축복 받은 시대의 존경하는 정령들을
마술로써 순수한 축제로 불러내고자 함이라.
우리는 마술적 성구(成句)의
신비적 체험에 몸을 맡기니, 그 마술에 걸려
무한한 것과 몰아치는 것과 삶이,
맑은 비유를 향해 달려가누나.
별들의 모습과 같이 그것들은 수정처럼 울려 퍼지고,
그것들에게 봉사함으로써 우리의 삶은 의미를 얻게 되나니,
아무도 그 순환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 없도다,
성스러운 중심을 향해 나아갈 뿐.
Musik des Weltalls und Musik der Meister
Sind wir bereit in Ehrfurcht anzuhren,
Zu reiner Feier die verehrten Geister
Begnadeter Zeiten zu beschwren.
Wir lassen vom Geheimnis uns erleben
Der magischen Formelschrift, in deren Bann
Das Uferlose, Strmende, das Leben,
Zu klaren Gleichnissen gerann.
Sternbildern gleich ertnen sie kristallen,
In ihrem Dienst ward unserem Leben Sinn,
Und keiner kann aus ihren Kreisen fallen,
Als nach der heiligen Mitte hin.(2, 641)
유리알 유희와 음악이 형제 자매처럼 서로 닮았다는 것이 이 시에 드러나 있다. 음악은 신비에 가득찬 상징으로서 유리알 유희와 연결되어 있다. 음악은 “마술적 성구”의 신비이며, 무한한 것, 즉 초월적인 것이 그 마법 속으로 빠져 드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숭배가, 가장 내면적으로 유리알 유희의 법칙과 의도에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주 헤세는 이 두 정신적 자녀의 무한한 공통점과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특히 늦게 태어난 이 유리알 유희가 일찍이 완성된 음악에 대해 얼마나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지에 대해 말한다. 음악과 더불어 유리알 유희는 현실의 영역을 떠나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공간으로 넘어가게 된다.
V. 맺는 말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헤세의 시와 음악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헤세는 평생 동안 음악과 관련된 삶을 살았으며, 다른 어느 예술보다도 음악으로부터 창작적인 영향을 받았다. 특히 초기 창작시기에 헤세는 무엇보다도 독일 낭만주의 시와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헤세는 초기에 대체로 짧은 서정시를 많이 썼으며 그의 초기 시에는 무엇보다도 낭만주의적인 시와 음악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음악적인 면에서 헤세는 특히 시어들이 지니고 있는 음향적인 효과에 큰 비중을 두면서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을 활용한다. 그리하여 그의 초기 시에는 아주 풍부한 낭만주의적 음향의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 대체로 소박한 민요풍의 헤세 초기 시에는 음악적 요소 중에서 특히 시어의 반복적인 음향과 리듬, 시행의 규칙적인 율격과 반복적 구문 등을 통하여 음향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면서 아울러 시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출하는 음악적인 시들이 많이 있다.
반면 후기 시에서 헤세는 초기 시에서와는 달리 음악을 주로 주제적인 면에서나 상징적인 차원에서 다룬다. 이것은 헤세의 문학이 중기를 거쳐 후기로 갈수록 점차 신비주의 종교사상을 강하게 표출하는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일생 동안 동․서양의 여러 신비주의 종교사상을 섭렵한 헤세는 특히 중기 이후 후기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모든 종교를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신비주의 종교성을 표출하게 된다. 따라서 음악과 관련된 헤세의 후기 시에서도 무엇보다도 그러한 헤세의 신비주의 종교사상과 종교성이 표출된다. 헤세는 후기 시에서 음악가 중에서는 특히 기독교적인 바흐의 음악을 통하여 자신의 신비주의적 종교성을 표출한다. 헤세는 중기 이후로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상대주의적인 종교관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비주의 종교사상을 형상화하였기 때문에, 언제나 동․서양을 하나로, 종합적으로 긍정하는 신비주의 종교성을 표출하였다. 헤세의 후기 시에서 음악은 바로 그러한 헤세의 신비주의 종교성을 보여주는 최고의 상징이 된다. 따라서 음악은 이제 헤세의 후기 시로 갈수록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상징적 의미를 많이 띠게 되면서, 신비주의적, 초월적 시간관과 더불어 헤세의 신비주의 사상을 강하게 표출한다.
참고문헌
일차문헌
Hesse, Hermann: Die Gedichte. Bd. 1 u. 2. Frankfurt/M. 1977.
Ders.: Ausgewählte Briefe. Erweiterte Ausgabe. Zusammengestellt von Hermann Hesse und Ninon Hesse. Frankfurt/M. 1974.
Ders.: Gesammelte Werke in 12 Bänden. Frankfurt/M. 1970.
Michels, Volker(Hrsg.): Hermann Hesse Musik. Frankfurt/M. 1986.
이차문헌
이신구: 헤세와 음악. 서울(태학사) 1999.
정경량: 헤세와 신비주의. 서울(한국문화사) 1997.
Ball, Hugo: Hermann Hesse. Sein Leben und sein Werk. Frankfurt/M. 1977.
Kasack, Hermann: Hermann Hesses Verhältnis zur Musik. In: Michels, Volker(Hrsg.): Hermann Hesse Musik. Frankfurt/M. 1986.
Kirchhoff, Gerhard: Josef Knechts Leben aus dem Geist der Musik. In: Hermann Hesses Glasperlenspiel. 4. Internationales Hermann-Hesse-Kolloqium in Calw 1986.
Unseld, Siegfried (Hrsg.): Hermann Hesse. Werk und Wirkungsgeschichte. Frankfurt/M. 1985.
Zusammenfassung
Die Musik in den Gedichten Hermann Hesses
Cheong, Kyung Yang (Mokwon Uni)
Von seiner Jugend bis zum Sterben hat sich Hermann Hesse sein Leben lang unter den Künsten vor allem mit der Musik beschäftigt. Im Jahre 1948 hat Hesse dem Nobel-Komitee geschrieben: “Mein Verhältnis zur bildenden Kunst war stets ein intimes und freundliches, noch inniger aber und fruchtbarer war meine Liebe zur Musik. Man findet sie in den meisten meiner Schriften wieder.” Das ist insbesondere bei den Gedichten Hesses der Fall, denn “Lyrik ist nicht bloß Versbauen, Lyrik ist vor allem auch Musikmachen”, wie Hesse selber sagte. “Dichten heißt ihm: singen”, sagte Hermann Kasack.
In der ersten Schaffensperiode wurde Hesse vor allem von der Lyrik und Musik der deutschen Romantik stark beeinflusst. Daher erscheinen in den frühen Gedichten Hesses besonders die musikalischen Elemente der romantischen Lyrik und Musik. In der ersten Schaffensperiode liebte Hesse unter den Musikern vor allem Chopin. Er wünschte seiner Lyrik eben die Wirkung, die Chopin auf ihn ausübte. In der Dichtkunst liebte Hesse also aus den einzelnen Worte, einzelnen bedeutenden Lautformen sich ergebenden Takt. Die musikalischen Elemente mit den wiederholten Worten und Sätzen, Klängen und Metriken werden in den frühen Gedichten Hesses mit den Themen effektvoll verbunden.
In den späten Gedichten Hesses erscheint die Musik aber vor allem auf der thematischen und symbolischen Ebene. Das hat mit der mystischen Religiosität Hesses in seiner letzten Schaffensperiode zu tun. Von den verschiedenen mystischen Gedanken aus West und Ost wurde Hesse sein Leben lang stark beeinflusst. In seinen späten Gedichten, die mit der Musik zu tun haben, erscheint also vor allem die mystische Religiosität Hesses. Unter den Musikern behandelte Hesse in seinen späten Gedichten vor allem Bach. Die Musik ist also das höchste Symbol für seine mystischen Gedanken auf der Basis seiner relativistischen Religionsanschauungen. Dabei stellt er durch die Musik auch seine mystische, transzendentale Zeitanschauung in seinen späten Gedichten dar.
【주제어】: 헤세, 시, 음악
【Schlüsselbegriffe】: Hesse, Lyrik, Gedicht, Musik
【필자 E-Mail】: kycheong@mokwon.ac.kr
논문투고일: 2008.10.31 논문심사일: 2008.11.22 게재확정일: 2008.11.29
Über die Felder (헤세 시/김정식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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