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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순의 종통 종맥 원문보기 글쓴이: ◐誠敬信◑
第七章 因緣方便
1. 上帝께서 하루는 말을 몰고 다니던 金昇淵을 데리시고 어디로 가시는 길에 昇淵이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다 하거늘 上帝께서 길가에 있는 바위를 손바닥으로 치시니 치신 자리가 손바닥만큼 움푹 들어가고 그 곳에는 맑은 물이 고여서 昇淵은 그 물을 마시고 다시 길을 갔다고 하며
2. 上帝께서는 辛丑年 겨울 이후로는 복서 명리의 학술을 말씀치 않으시니라.
3. 柳瑞九라는 사람이 上帝의 부친과 친교가 있으므로 자주 왕래 하는데 上帝께서 항상 그의 내왕을 미리 아시고 주효를 준비 하였으므로 부친이 이 사실을 瑞九에게 말하였으나 그가 믿지 않더니 壬寅年 正月 七日에 瑞九가 또 찾거늘 上帝께서 맞아 가라사대 세전에는 공사가 있어 오실 때에 대접하지 못하였으니 부친에 대한 예가 아니라 하시고 웃으시며 아우 永學을 불러 내실에 있는 책력 틈에 끼운 종이쪽을 가져오라고 하셔서 펴 본즉『寅日人來寅艮方逢場必是柳瑞九』라는 일구의 시가 있음으로 瑞九가 크게 놀래어 그후로는 上帝를 경송하니라.
4. 上帝께서 壬寅年 四月에 鄭南基와 함께 金溝郡 水流面 院坪시장 金聖甫의 집에 머무실 때에 金亨烈이 와서 배알하니라.
5. 十五日에는 亨烈에게 심법을 전수하시어 九月 十九日까지 수련을 시켜시고 가라사대 그만 그칠지어다. 다른 묘법은 쓸때에 다 열어주리라. 亨烈에게 심법을 전수하신 후에 모든 행하신바 천지공사에 신명이 모이고 흩어짐과 영을 듣는 것을 참관케 하시고 또 풍우를 짓게도 하셨으며 그 참관한 공사의 조항을 일일이 무르셔서 그 본 바의 확실여부를 시험하신 일도 있으시며 여름에 亨烈의 집에서 지내실 때 亨烈이 가난하여 공궤가 소략하고 또한 나물밭이 매말라 채소가 잘 자라지 않거늘 亨烈이 더욱 근심 하므로 가라사대 산중에는 별미가 없으니 채소나 잘되게 하여 주리라 하시더니 이로부터 약간 심어 놓았던 채소가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잘 자라나니라.
6. 夏雲洞에 오래 머무실 때에 종종 본댁에 왕래하시니 亨烈도 上帝께서 본댁에 계실때에는 자주 왕래함으로 그 중로의 소퇴원 술집 사람들이 왕래가 빈번함을 이상히 여기니라.
7. 六月 어느날 亨烈을 명하시어 예수교 신약전서 한권을 구하여 오라 하심으로 亨烈이 그 부근 梧桐亨 金京安에게 가서 신약전서를 빌려다가 올렸더니 上帝께서 그 책을 불 태워버리시니라.
8. 그 후 어느날 亨烈이 上帝를 모시고 梧桐亨 車允必의 술집에 가서 술을 대접 하는데 京安이 찾아와서 신약전서를 돌려 달라고 청하거늘 亨烈이 대답치 못하고 딱한 형편으로 앉았으니 上帝께서 가름하시어 곧 돌려 줄터이니 안심하라고 하시더니 마침 이때에 그 술집 앞으로 한 붓장사가 지나가는 것을 보시고 上帝께서 소리쳐 불러서 술을 많이 권하신 뒤에 그 붓 상자를 열어 보기를 청하시니 그 붓 장사가 명을 좇아 상자를 열어 보임에 그 가운데는 신약전서 한권이 있는지라 가라사대 그대는 예수를 믿지 않음으로 이책이 소용이 없을터이니 나에게 줄 수 없겠느냐. 그 붓 장사가 술을 많이 주신데 감격하여 上帝께 올리거늘 그 책을 받아 곧 京安에게 돌려주시니 모두 이 사실에 어리둥절하니라.
9. 七月에 上帝께서 본댁에 계심으로 亨烈이 또 가서 배알하려고 길을 나섰으나 소퇴원 사람들의 이목을 꺼려서 그 길을 피하여 좁은 길로 돌아 가다가 중로에서 上帝를 배알하게 된지라. 上帝께서는 夏雲洞에 오시는 길이라 亨烈이 크게 기뻐하여 그 좁은 길로 온 사유를 고하여 가로되 만일 이 길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면 배알하지 못하였겠나이다. 가라사대 우리가 서로 동서로 멀리 나누어 있을지라도 반드시 서로 만나리라. 네가 나를 좇음은 다만 마음을 취함이오, 금전과 권세를 취함이 아닌 연고라. 시속에 망량을 사귐이 좋다 함은 그 귀여워하는 물건을 항상 구하여 주는 연고니라. 네가 만일 망량을 사귀려면 참 망량을 사귈지니라.
10. 癸卯年 正月에 全州에 오셔서 徐元奎의 약방에 머무시니 金秉旭 張興海 金允贊이 와서 좇으니라. 하루는 上帝의 아우 永學이 와서 배알하거늘 上帝께서 한 부채에다 학을 그려주시며 가라사대 집에 돌아가서 이 부채를 부치며 七星經의 武曲 破軍까지 읽고 大學을 읽으라. 그러면 도를 통 하리라. 永學이 명을 받들고 돌아오다가 鄭南基의 집에 들어가니 南基의 아들이 그 부채를 탐내어 빼앗고 주지 않는지라. 永學이 그 사실을 말한즉 그는 더욱 호기심이 생겨 주지 않았으므로 永學은 할 수 없이 빼앗기고 돌아왔는데 南基의 아들이 부채를 부치면서 大學을 읽으니 몇 편을 읽지 아니하여 신력을 통하여 물을 뿌려 비를 오게하며 능히 신명을 부리게 되는지라.
11. 南基가 기뻐하며 자기 아들로 하여금 上帝의 도력을 빼앗으라 하여 그 아들을 데리고 夏雲洞에 갔더니 上帝께서는 마침 宇黙谷에 계시다가 夏雲洞으로 오시는지라. 南基의 아들이 上帝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겁을 내어 도망 하거늘 南基가 쫓아가 붙들어 와서 上帝께 배알하니 上帝께서 아무 말씀 않으시고 대파침을 南基의 머리에 꽂아 주신 후 돌려보내신 다음 그곳에 南基의 아들을 머물게 하고 신력을 다 걷우시며 가라사대 南基의 집이 대파 하리라 하시더니 南基의 제수가 문득 실신하여 날마다 담장 안으로 돌아다니면서 횡설수설한 소리를 하니라.
12. 甲辰年 正月에는 술을 잡수시고 혼몽히 주무실 때 張興海의 어린 아들이 급병이 나서 죽게 되었다고 興海의 부가 上帝께 달려와서 치료하여 주시기를 애원 하거늘 上帝께서 혼몽중에 가라사대 냉수나 먹여라 하셨더니 興海의 부가 돌아가서 앓는 아이에게 냉수를 먹인 후 얼마 있지 않아서 그 아이가 죽은지라.
13. 興海의 부는 원래 성질이 사나워서 府中 사람들로부터 천동이라는 별명이 붙은 터인데 자기의 손자가 죽음을 보고 크게 화를 내어 上帝를 원망하여 가로되 이는 고의로 죽게 하였음이 분명한 것이라. 죽는 사람을 손으로 만져 살리기도하며 아무리 위독한 병이라도 말 한마디로 고치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만일 우리 어린애를 고의로 죽이지 않았다면 물은 고사하고 흙을 먹였을지라도 그 신통한 도술로 능히 낫게 하였을것이라 하고 드디어 몽둥이를 들고 와서 上帝를 난타하여 유혈이 낭자케하니 上帝께서 비로소 깨닫고 일어나시니 興海의 부가 살인범 이라고 소리치며 上帝를 결박하여 장방청으로 끌고 가다가 문득 뉘우친 듯이 끌러 드리며 가로되 이것이 다 나의 잘못이나이다. 어린애가 급병으로 죽은 것을 가지고 어찌 선생님을 원망 하리오 하고 옛정으로 돌아가시기를 원하며 자기집으로 동행 하시자고 권하였으나
14. 上帝께서 듣지 않으시고 徐元奎의 집에 가서 계시다가 그 이튿날 全州 伊東面 李直夫의 집으로 가시니라.
15. 興海의 부가 上帝를 모시고 장방청으로 가다가 돌아가시게 한 것은 白南信에게서 받으신 二十만량의 증서를 가지고 계심을 알고 돈을 요구하려 함을 미리 아셨으므로 興海의 집으로 따라 가시지 않았는데
16. 그 이튿날 興海의 부는 徐元奎의 집으로 찾아 갔으나 上帝께서 그 곳에 게시지 않으니 대노하여 上帝를 살인범이라 도피 하였다고 하며 사방으로 수색하니라. 이때에 上帝의 가족은 全州君 花田面 花亭里 李京五의 협방에 이사하여 있을땐데 興海의 가족이 그곳에 가서 행패를 부리니라.
17. 金亨烈은 興海의 행패를 아지 못하고 上帝의 소식을 들으려고 花亭里 에 왔다가 興海의 가족에게 결박되어 徐元奎의 집에 가서 上帝의 계신곳을 대어라고 재촉 받았으나 모른다고 하였더니 그들은 더욱 분개하여 亨烈과 元奎를 무수히 구타 하니라.
18. 이로 인하여 上帝의 가족은 泰仁屈峙로 화를 피하고 亨烈은 밤중에 피하였으며 元奎는 매일 그들의 행패에 견디지 못하여 약국을 폐쇄한체 가족을 거느리고 益山으로 피하니라.
19. 甲辰年 五月에는 서울로부터 白南信을 잡아 올리라는 공문이 全州府에 이른지라 南信이 당황하여 걱정하고 있는데 秉旭이 南信에게 가로되 작년 겨울에 나의 화란을 甑山님의 도움으로 면하였다 하니 南信이가 秉旭을 통하여 上帝께 말씀 드려서 도움을 청하거늘 가라사대 부자는 돈을 써야 하나니 돈 십만량의 증서를 가져오라 하시므로 秉旭이 上帝의 말씀을 전하였더니 南信이가 곧 십만량의 증서를 써서 받치니라.
20. 그 후에 南信의 화란은 풀리고 도리어 南三道의 세무관이 되어 몇 만량의 돈을 모았으며 그후 上帝께서 증서는 불사르시니라.
21. 이때에 李直夫의 집에 머물고 계셨는데 直夫의 부 治安이 당년 신수를 논평하여 주실 것을 굳이 청하는지라 上帝께서는 천지공사를 행하신 후로는 운명과 복서의 일체를 말씀치 아니 하신바 이었으나 부득이 하여 백지 한 장에 글을 쓰셔서 불사르시고 다시 다른 종이에다 글을 쓰셔서 봉하여 주시며 가라사대 급한 일이 있거든 떼어 보라 하시니라. 治安이 깊이 간수하여 두었더니 그후에 그의 자부가 난산으로 위경에 빠짐을 듣고 그 봉서을 가지고 갔더니 이미 순산 되었으므로 다시 잘 간수 하여두었더니 이해 년말에 治安이 병들어 매우 위독한지라. 아들 直夫가 그 봉서를 열어 보니 곧 小柴胡湯 二貼이라 써있으므로 그 약을 쓰고 곧 쾌차 되니라.
22. 그해 正月에는 上帝께서 直夫의 집에서 화를 피하시어 월여를 머무신 후 亨烈이 上帝를 모시고 院坪 金成甫의 집에 가서 머무는데 鄭南基와 그의 처남이 일진회원이 되어 上帝의 가입을 강권하다가 군중과 더불어 上帝의 머리를 깎으려고 달려들어서 가위로 아무리 베어도 베어지지 않는지라. 上帝께서 친히 머리 한줌을 베어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으로써 여러 사람의 뜻을 풀어 주노라 하시고
24. 웃으시며 南基에게 가라사대 내가 너의 보좌가 되리니 나의 말을 들으라 하시고 南基가 일진회를 탈회할 것을 종용하시어 가라사대 네가 내말을 듣지 아니하면 일후에 후회막급 하리라 하시더니 과연 그후에 南基는 패가망신 하고 그 유족은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하니라.
25. 그 뒤에 公信으로 하여금 돈 설흔 석량을 지니게 하시고 피노리를 떠나 泰仁 杏壇앞 주막에 가셔서 술을 찾으시니 주모가 술이 없다고 대답하거늘 가라사대 이런 주막에 어찌 술이 없으리오. 주모가 대답하되 물을 붓지 아니한 새독 술은 있나이다. 가라사대 술은 새독술이 좋으니라. 안주가 있어야 하리니 돼지 한 마리를 잡으라 하시고 글을 써서 주모에게 주어 돼지막 앞에다 불사르게 하시니 돼지가 스스로 죽는지라. 주모에게 가라사대 돼지를 잡아서 삶을때에 누구든지 먼저 고기를 맛보면 죽으리니 주의를 시키라 하시니라. 돼지를 다 삶은 뒤에는 그릇에 담아 뜰 가운데 놓고 술은 전주로 걸러서 마루위에 놓고 글을 써서 주인을 명하여 뜰 가운데에서 불사르게 하신 뒤에 公信과 주인과 참관한 마을사람 그리고 행인들과 더불어 술과 고기를 같이 잡수시며 큰 소리로 가라사대 무엇을 더 구하느뇨. 글자 한자에 하나씩만 찾아가면 족하리라 하시니라.
26. 그 이튿날 아침에 술과 고기값으로 설흔 석량을 주신뒤에 杏壇을 떠나 솔밭 속으로 지나시다가 문득 큰 소리로 이놈이 여기 있도다 하시므로 公信이 놀래어 옆을 보니 童子石이 서 있을 뿐이니라. 院坪으로 가시며 公信에게 가라사대 뒷날보라 일본군사가 거기 매복하여 있다가 여러 천명을 상하게 할곳이니라. 그러나 글자 한자에 하나씩 밖에 죽지 않게 하였으니 저희들이 알면 나를 은인으로 여기렸마는 누가 능히 아리오 하시더니 그 뒤에 일진회원 수천명이 떼를 지어 이곳을 지나는데 일본군사가 의병인줄 알고 총을 쏘아 스물한명을 죽이니라.
27. 上帝께서 乙巳년 正月 그믐날은 亨烈을 데리시고 扶安郡 成根里 李桓九의 집에 가셔서 여러날을 머무시니 桓九가 扶安사람 辛元一을 자주 천거 하거늘 上帝께서 元一을 부르시니 元一이 와서 배알하고 上帝를 모셔다가 자기 집에서 공양 하니라. 元一의 부와 아우는 上帝께서 오래 머무심을 싫어 하거늘 元一이 上帝께 청하여 가로되 가친이 본래 어업을 좋아하여 해마다 어업을 경영 하다가 작년에 폭풍으로 인하여 큰 손해를 보았으니 선생님께서 금년에는 풍재가 없게하여 주시면 가친을 위하여 다행이 되겠나이다.
28. 가라사대 풍재을 없게하고 어업을 흥왕케 하리니 많은 이익을 얻은 후에 돈 천량을 가져오라 하시므로 元一의 부자가 기뻐하여 승낙 하였드니 과연 그해에는 풍재가 없을 뿐만 아니라 七山바다의 어업 중에서 元一의 부가 가장 흥왕한지라.
29. 上帝께서 元一의 부에게 사람을 보내어 돈 천량을 가져오라 하시니 元一의 부가 전약을 어기고 보내지 않는지라. 上帝께서 元一에게 가라사대 이는 대인을 기만 함이라 나의 일은 일동이라도 사사로히 못하나니 이제부터는 그대 집의 어업이 철폐케 되리라 하시더니 그후로는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함으로 드디어 어업을 폐지하니라.
30. 그후 하루는 上帝께서 元一의 집에 가셨을때에 마침 元一의 부친이 서울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려 쓴 것이 있는데 이때 채권자인 서울 사람이 와서 채무를 갚으라는 독촉이 자심한지라. 上帝께서 그 형편을 보시고 측은히 여기사 元一의 부친을 가름하셔 가지고 채권자에게 가라사대 우리 두 사람이 오늘 일기로서 채무 탕감의 내기를 하는 것이 어떠뇨하고 제의 하셨더니 채권자가 쾌히 허락하거늘 가라사대 그대가 만일 비가 온다 하면 나는 아니온다 할것이오, 또 비가 아니 온다 하면 나는 온다 할것이니 먼저 말하라 하시니라. 그날은 유난히 하늘에 구름 한점도 없이 맑은 날씨라 그 채권자가 비가 오지 않는다고 말 하였더니 上帝께서는 반드시 비가 오리라 하시고 곧 비를 내리게 하시니 채권자가 할수 없이 채무를 탕감하고 그대로 돌아가니라.
31. 扶安으로부터 古阜 立石里 朴昌國의 집에서 수둥다리 병으로 며칠을 신고 하실 때에 上帝의 누이(昌國의 부인)가 발을 벗고 풀받에 다니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이 근처에 독사가 있으니 만일 벗은 발을 독사가 물면 어찌 하느냐 하시고 길게 휘파람을 부시니 큰 독사 한 마리가 담장 밖의 풀밭에서 뜰 아래로 들어와 머리를 들고 있는지라 이때에 昌國이 밖으로부터 들어오다가 독사를 보고 크게 놀라서 마침 상신이라 가지고 있던 상장으로 타살 하거늘 上帝께서 보시고 노래하여 가라사대『毒蛇兮 毒蛇兮 喪人見之 喪杖打殺 道僧見之 禪杖打殺』이라 한신 후 가라사대 누이에게는 상장도 선장도 없으니 무엇으로 제거 하리오 하시고 독사의 피가 땅에 있음을 보시고 또 가라사대 이 피를 벗은 발로 밟으면 해를 보리라 하시며 친히 그 피자욱을 밟아서 독기를 제 하시니라.
32. 이해 八月二日에 金亨烈이 立石里에 와서 上帝께 배알하니 수둥다리 병이 좀 나으셨으므로 이에 咸悅 曾仙洞 金甫京의 집으로 上帝를 모시고 가는데 上帝께서 하루에 二, 三十리씩만 길을 행하시니라.
33. 甫京의 집에서 여러날 머무시니 甫京의 천거로 咸悅邑 사람 金光贊이 上帝께 와서 배알하고 사사하니 이때에 金亨烈과 甫京 부자와 蘇鎭變과 金光贊이가 시종하니라.
34. 臨陂郡 屯里 金性化가 또 上帝께 와서 배알하고 사사함으로 上帝께서 몇 달동안 咸悅과 臨陂간으로 왕래 하시니 亨烈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35. 十月부터는 년말까지 萬中里 주막에 계시니 金性化의 부자 숙질과 甫京 부자가 모셨는데 그 비용은 鄭春心이 부담하니라.
36. 金溝 水流面 坪木店에 丁槐山 주막이 있는데 집안이 가난하여 술장사로 겨우 호구하면서도 매양 上帝를 지성으로 공양 하더니 한번은 上帝께서 그 주막에 가셨을때 槐山이 上帝께 올리려고 개장국을 질솥에 끓이다가 질솥이 깨어진지라. 槐山의 아내가 낙담하여 울고 섰거늘 上帝께서 측은히 여기셔서 쇠솥 하나를 갖다 주셨더니 이로부터 槐山의 가세가 날로 늘어나는지라. 그후 槐山이 泰仁方橋로 이사할 때 그 쇠솥을 水流面 環坪里 鄭東朝에게 팔았더니 槐山은 다시 가난하게 되고 鄭東朝는 도리어 살림이 일어나는지라. 모든 사람들이 그 솥을 복솥이라 하니라.
37. 上帝께서 丙午年 正月 어느날 龍華洞 朴泰敏의 주막에 들르셔서 술을 가져오라 하시니 마침 술이 다 떨어졌다 하거늘 가라사대 그럼 술 비졌던 항아리를 가져오라 하셔서 거기다 물을 부으시고 손으로 저으신 후에 마시시며 종도들에게도 나눠 주시니 그 맛이 꼭 본래의 술맛과 다름이 없느니라.
38. 七月 초에는 上帝의 부친께서 銅谷에 와서 上帝를 배알하려고 하므로 亨烈이 上帝의 부친을 모시고 臨陂郡 屯里 金性化의 집에 가니 上帝께서는 며칠 전에 群港으로 가셨다 하기에 다시 뒤쫓아 갔더니 上帝 가라사대 群港은 오래 머물 곳이 못되오니 속히 돌아가시라 하심으로 上帝의 부친이 이튿날 집으로 돌아오시고 上帝께서는 群港에 월여를 머무시다가 益山 萬中里 鄭泰心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시니라.
39. 한번은 종도들을 데리시고 어디로 가실 때 어떤 사람이 上帝를 따라오며 살려 주시기를 애원 하거늘 上帝께서 응낙치 아니 하시고 가시니 종도들이 민망하여 그 사람을 돌아보시라 하였더니 上帝께서 돌아보시며 돌아가라 하시더니 그 사람은 돌아가서 곧 미쳐 죽었다 하니라.
40. 九月 二十五日에는 上帝께서 亨烈을 데리시고 咸悅 金甫京의 집으로 가시니라.
41. 十月에 辛元一이 건재약국을 차리고 약을 사려고 公州 감영으로 갈 때 金甫京의 집에 와서 上帝께 배알하고 가로되 방금 도로가 질어서 행인의 불편이 심하오니 청컨대 길을 얼게 하소서. 上帝께서 웃으시며 술을 사오라 하시므로 元一이 술을 사오니 그날 밤부터 년말까지 길이 얼어 붙으니라.
42. 이해 겨울 佛可止 金成國의 집에 머무실 때 꿩이 밭에 많이 내리거늘 成國이 金德贊과 함께 새 그물을 만들어 꿩을 잡으려 하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너희들은 잡을 공부를 하라. 나는 살릴 공부를 하리라 하시더니 이로부터 한 마리의 꿩도 그물에 걸리지 아니하니라.
43. 또 하루는 金益贊을 데리시고 全州 細川을 지내실 때 일본 포수가 앉아 있는 기러기 떼에게 총을 겨누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차마 보지 못할지라 하시며 왼발로 땅을 한번 구르시고 그 자리에 서시니 엽총이 쏘아 지지를 않는지라. 포수가 이상히 여겨 총을 검사하는 사이에 기러기떼는 이미 날라 가버리고 난 뒤에 上帝께서 발을 옮기시자 그제야 비로소 총이 발사되니라.
44. 하루는 金亨烈이 출타 하였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예수교 신자 金重九가 술에 만취 되어 亨烈을 붙들고 크게 능욕 하는지라. 亨烈이 무수한 곤욕을 겪고와서 上帝께 그 사유를 고하였더니 가라사대 회가 위로 오르다가 아래로 내릴 때에 다른 사람에게 패를 당하는 일이 있느니라. 그러니 그 사람의 허물을 말하기 전에 청수를 떠놓고 스스로 내 허물을 살펴 뉘우치라 亨烈이 명하신대로 시행 하였더니 그 뒤에 金重九가 병에 걸리어 사경에 이르렀다가 다시 회생 한지라. 亨烈이 이 말을 듣고 上帝께 고하였더니 가라사대 이 뒤로도 만약 그런 일이 있거든 상대방을 원망하기 전에 반드시 네 몸을 먼저 살피라. 그러면 그 독기가 근본으로 돌아가리라.
45. 한번은 上帝께서 黃應鍾 金甲七을 데리시고 院坪 앞 다리에 이르셨을때 다리 건너편에서 말을 탄 세사람이 오는 것을 보시고 왼발로 길바닥을 한번 구르시며 다리 머리에 서시니 갑자기 달려오든 말의 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못하는지라. 마부들이 온갖 힘을 다 썼으나 꼼짝도 않음으로 이상히 생각다가 그중의 한 사람이 깨달은 바가 있어서 다리를 건너와 上帝께 절하고 길을 빌려 주시기를 간청하거늘 웃으시며 한쪽으로 비켜서시니 그제야 말굽이 떠러져서 가든 길을 다시 가니라.
46. 公又가 항상 술을 과음하여 주정이 심하거늘 하루는 上帝께서 公又를 불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술을 비교 하리라 하시고 술을 많이 권하시다가 문득 가라사대 너는 한잔 술 밖에 못된다 하시니 그 뒤로는 公又가 한잔만 마셔도 곧 취하여 더 마시지 못하였으며
47. 그리고 公又의 성질이 사나워서 남과 다투기를 좋아 하므로 하루는 上帝께서 公又에게 가라사대 너는 표단이 있으니 인단으로 가름 하라고 말씀하시고 난 뒤로는 성질이 온화하여 남에게 지기를 좋아하고 다시는 다투지 않으니라.
48. 丁未年 이후로 辛敬元 金京學 崔昌祚 崔乃敬 崔德兼등이 上帝를 좇으니 다 泰仁 사람들이었으며 수일 후에 는 上帝께서 銅谷에 오셔서 金自賢에게 가라사대 금후로는 내가 井邑에 가서 지내리라 하시니 自賢이 여쭈어 가로되 누구의 집에 머무시려 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장차 알게 되느니라.
49. 丁未年 五月 五日에 동리 사람들이 上帝께 배알하고 가로되 오늘은 단오 가절이오니 學仙庵에 가서 소풍하사이다 하거늘 上帝께서 허락하시고 自賢을 데리시고 가시다가 중도에서 폭우가 크게 일어나려 하므로 모든 사람이 빨리 다름박질로 피하였으나 上帝께서는 自賢을 불러 가라사대 천천히 갈지로다 하시고 노방에 앉으셔서는 담배를 피우시며 연기로서 몰려오는 비를 향하여 한번 품으시니 비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니라. 上帝께서 다시 길을 떠나 學仙庵에 이르시니 곧 비가 크게 내리니라.
50. 이달 어느날 龍岩里 水砧幕(銅谷一里地)에 머무실때 井邑 사람 車京石이 처음으로 上帝께 배알하였으니 원래 京石은 동학신도로서 일진회 全州 총대를 지낸 일이 있는 데 이때에 全州 재무관과 소송할 일이 있어서 井邑으로 부터 全州로 가던 길에 龍岩里 주막에서 점심을 먹고 떠나려 할 즈음 上帝께서 金自賢등 수명을 데리시고 이 주막에 들어 오셔서 술을 청하시는데 京石이 上帝의 의표와 언어 동작을 살펴 비범하심을 알고 예로서 말씀을 청하는지라. 上帝께서 태연히 대하시니 京石이 여쭈어 가로되 무슨 업을 행하시나이까. 웃어 가라사대 의술을 행하노라 하시고 술을 마시시다가 계탕 한 그릇을 京石에게 권하시니 京石이 받은 뒤에 마침 벌 한 마리가 빠져 죽거늘 京石이 수저를 멈추고 혹 상서롭지 못한 일이 아닌가 망서리고 있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벌은 규모 있는 벌레라 하시므로 京石이 속으로 감복하고 시험하여 보려고 그 소송할 서류를 上帝께 내어 놓으며 그 곡직을 여쭈어 가로되 세 사람이 모이면 관장의 공사를 처결 한다 하오니 선생님께서는 판단하여 주소서. 가라사대 일의 곡직은 여하하든지 원래 대인의 일이 아니라. 남자가 마땅히 활기를 찾을지언정 어찌 살기를 띠리오. 京石이 더욱 위대하심에 경복하여 곧 서류를 볼사르고 사사하기를 청하며 머무시고 계시는 곳이 어디인가 여쭈었더니 가라사대 나는 東亦客 西亦客 天地無家客이로라. 京石이 생각하되 머무신 곳을 아지 못하니 한번 떠났다가는 다시 배알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짐짓 떠나지 않고 저물기를 기다려 上帝의 뒤를 따라 간즉 곧 龍岩里 물방아 집이라. 그 식사와 범절이 너무 조촐하여 일시라도 견디기 어려윘니라.
52. 京石이 그 곳에서 십일간을 머물면서 上帝께서 井邑으로 가시기를 간청 하였으나 듣지 아니 하시고 도리어 진노도 하시며 혹 능욕도 하시며 혹 구축도 하시다가 京石이 끝끝내 떠나지 아니함을 보시고
53. 가라사대 그럼 네가 나를 꼭 따르려거든 모든 일을 전폐하고 나의 하라는 일에만 진력하여야 할지니 너의 집에 가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유월 일일에 다시 이곳으로 오라 그러면 함께 가리라 하시므로 곧 돌아가서
54. 가사 정리를 대략 마치고 유월 일일 龍岩里에 다시 와서 上帝께 배알하고 井邑으로 가시기를 또 청하였으나 불응하시다가 삼일후 에 허락하여 가라사대 내가 목에 잠기는 깊은 물에 빠져서 허위적이 다가 겨우 헤엄쳐서 벗어나 발목물에 이르렀는데 이제 다시 깊은 물로 끌어 들이려 하는도다 하시니라.
55. 그후에 하루는 京石에게 가라사대 너는 강령을 받아야 하리라 하시고
『元皇正氣來合我身』의 글귀를 읽게 하신 후에 문을 조금 열으시니 京石이 그 글을 읽다가 갑자기 방성대곡 하는지라. 上帝께서 일각쯤 지나서 그치게 하시고
56. 또 하루는 京石에게 가라사대 너의 선묘는 九月山 金盤死雉의 穴蔭을 옮겨 와야 되리라 하시고 명하시어 춤을 추게 하신 다음 公又를 또 명하시어 북을 치게 하시며 가라사대 이 穴蔭은 반드시 長風을 받아야 발하리라 하시더니 문득 李道三의 아우 長豐이 들어오거늘 公又가 북채를 잠깐 멈추고 長豐이 오느냐고 인사하는 것을 보시고 上帝께서 이제 그만 그치라 하시니라.
57. 이때에 金光贊은 銅谷에 있으면서 上帝께서 車京石 과 상종하심을 싫어하여 항상 불평을 토하여 가로되 京石은 본래 동학도당으로 일진회에 참가하여 불의를 행하였음이 많을 터인데 이제 도문에 들어오게 하심은 선생님의 공평치 못하심이라. 우리가 도덕을 힘써 닦아 온것은 다 무용이 되리라 하고 날마다 上帝를 원망 하거늘 亨烈이 위로하여 가로되 上帝께 배알하고 그 사유를 고하리라 한 다음 光贊을 데리고 上帝께 배알하였으나 모두 그 사유를 고하지 못하고 오후에 돌아가려 할때에 上帝께서 光贊에게 가라사대 주인은 金亨烈이 좋으니 銅谷에 가서 있으라 하시고 亨烈을 불러 가만히 부탁 하시기를 光贊을 데리고 집에 돌아가서 잘 위로하여 주라고 하시니라.
58. 上帝께서 몇달 동안 京石을 데리시고 공사를 행하실 때 臨陂 崔君淑의 집에 머무시다가 銅谷에 들리시지 아니 하시고 泰仁으로 바로 가셨으므로 光贊은 더욱 불평하여 가로되 우리는 다 무용지물이라 하고 크게 원망 하는지라. 亨烈이 민망하여 泰仁 下馬街로 쫓아가서 上帝께 배알하고 光贊의 불평을 고하여 가로되 어찌 그러한 성격을 가진 자를 문하에 있게 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용이 물을 구할 때에 비록 가시밭길이라도 피하지 않느니라. 亨烈이 곧 돌아와서 光贊을 타일러 가로되 『古人絶交不出惡聲』이라 하였으니 금후로는 불평을 잘 풀어버리라고 위로 하니라.
59. 上帝께서 丁未年 가을 어느날 辛元一 과 朴公又외 수인을 데리시고 泰仁 살포정 주막에 오셔서 쉬시는데 갑자기 우뢰와 번개가 크게 일어나 집에 범하려 하거늘 上帝께서 번개와 우뢰가 일어나는 쪽을 향하여 꾸짖으시니 곧 그치는지라. 이때 公又 속으로 생각하기를 번개를 부르시며 또 때로는 꾸짖어 물리치기도 하시니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라. 어떤일이 있어도 이분을 좇을것이라고 마음에 굳게 결심을 하였드니, 어느날 公又에게 가라사대 『만날사람 만났으니』라는 가사를 아느냐 하시고 이제부터는 네가 때마다 하는 그 食告를 나에게 돌리라 하시니 公又 감탄하여 가로되 평생소원이라 깨달았나이다. 원래 公又는 동학신도들의 食告와는 달리 『하느님 뵈어지소서』라는 발원의 食告를 하였는데 이제 말씀 하시는 것은 남의 심경을 통찰하심이며 조화를 임의로 행하심을 볼때 하느님의 강림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지성으로 받드니라.
60. 佛可止로부터 全州로 가실 때 동남으로부터 큰 비가 몰아오거늘 길 가운데 흙을 파서 침을 뱉고 묻으시니 몰아오든 비가 두 갈래로 나누어 한 갈래는 동쪽으로 향하고 한 갈래는 서쪽으로 향하여 몰려 가니라.
61. 上帝께서 全州 陵所에 가서 계실 때 黃應鍾이 본댁으로부터 와서 上帝의 부친 병보를 고하거늘 上帝께서 應鍾에게 술을 주신 후 돈 십원을 주시며 가라시대 해가 저물었으나 불쾌히 생각지 말고 곧 돌아 가다가 淸道院 金松煥의 집에서 자고 내일 이른 아침에 銅谷 金甲七에게 가서 나의 모시두루마기 한벌을 가지고 가서 부친에게 입혀 드리고 이 돈으로는 영양분 있는 음식을 만들어 공양하라 하시니 應鍾이 감히 명을 거역지 못하고 陵所를 떠나 행길에 나온지 한 시간도 못되었는데 길옆에 돌비석이 보이는지라 놀래서 깨달으니 곧 淸道院이라 陵所서 육십리나 되는 淸道院을 한시간이 못되어 당도 한것은 반드시 上帝의 도력이라 감복하면서 金松煥의 집에서 자고 이튿날 이른 아침 銅谷에 들려 두루마기를 가지고 客望里에 가서 上帝의 부친에게 입혀 드리니 곧 정신이 회복되거늘 이어서 영양분 있는 음식을 대접 함으로 곧 완쾌되시니라.
62. 十二月에는 古阜 臥龍里 文公信 申京守 두집으로 왕래하시며 머무셨는데 二十二日에 上帝께서 亨烈을 불러 가라사대 네가 집에 돌아가 의복을 빨아 가지고 自賢과 함께 오라 하시므로 亨烈이 명하신대로 하여 二十三日에 自賢과 함께 臥龍里 申京守의 집에 와서 上帝께 배알하니라.
63. 臥龍里 申京守의 집에서 공사를 행하시다가 하루는 元一에게 가라사대 네가 동천에 붉은 옷을 입고 운중에 앉은 사람에게 절을 네번 한일이 있었나니 기억하느냐 하시거늘 元一이 문득 깨닫고 일어나 上帝께 사배를 하거늘 종도들이 그 연고를 물었더니 元一이 옷깃을 여미고 정중히 앉아 대답하여 가로되 수년전에 우연히 병이 들어 사경에 이르렀을때 갑자기 심신이 황홀 하더니 어떤 사람이 사인교를 타고 가다가 나에게 이르기를 네가 새옷을 가라 입고 문 밖에 나가서 동천을 바라보면 붉은 옷을 입고 운중에 앉아 있는 분이 계시리니 그분에게 사배를 하라. 그러면 너의 병이 나으리라 하므로 이 말에 기운을 얻어 새옷을 갈아입고 문 밖에 나가 하늘을 바라보았더니 과연 동천에 붉은 옷을 입고 운중에 앉은 분이 계시거늘 이에 사배를 하였더니 곧 병이 완쾌 하였다 하니라.
64. 하루는 松內를 떠나 井邑 大興里로 가시다가 문득 公又를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만났을적에』하시니 公又가 동학가사에 『만나기만 만나보면 너의 집안 운수로다』라는 구절을 깨달으니라.
65. 古阜 화란때에 文公信과 朴壯根 李化春 등 세사람이 심히 上帝를 원망하여 불경한 패설을 하더니 삼월에 이르러 李化春은 의병에게 포살되고 朴壯根은 의병에게 얻어맞아 절골이 된지라. 上帝께서 들으시고 公信에게 가라사대 너도 또한 마음을 고치라 그렇지 않으면 천노가 있으리라 하신 후 또 가라사대 李化春은 귀신으로나 위안케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니라.
66. 古阜 화란때 체포 되었던 십여명의 종도 중에 金亨烈 金自賢 두사람 밖에 남지 않고 다 각기 흐터져서 집으로 도라 가니라.
67. 戊申年 二月二日에 上帝께서 본댁으로부터 泰仁 辛敬元의 집에 가셔서 머무시니 이때 辛敬元 崔乃敬 崔昌祚 金京學등이 上帝를 모시니라(上帝께서 자주 泰仁에 머무르심은 道昌峴이 있음을 취하심이니라)
68. 上帝께서 銅谷에 계실 때 하루는 京石의 아우 輪京 찾아 와서 배알 하거늘 가라사대 천지에서 현무가사를 부르니 네형(京石)의 기운을 써야 할지라. 네 형에게 口舌咽喉를 움직이지 말고 동학의 侍天呪를 암송하되 기거동작에 잠시도 쉬지 말게 하라고 하시니라.
69. 한번은 井邑 高夫人이 안질로 고통 하고 車京石의 장남 熙南이 않고 누웠음으로 車輪京이 민망하여 上帝께가서 배알하고 그 사유를 고하려고 銅谷으로 갔더니 金自賢 金光賢 등 십여인이 동리 앞에서 기다리다가 輪京이 오는 것을 보고 물어 가로되 무슨 일로 오느냐. 輪京이 오는 사유를 말하니 기다리던 사람들이 가로되 오늘 아침에 선생님이 이르시기를 오늘은 大興里로부터 輪京이 올지라 하시므로 우리가 이와같이 마중 나와 기다리노라 하니라.
70. 輪京이 金自賢의 집에 가서 上帝께 배알하고 高夫人과 熙南의 병세를 고하니 가라사대 내일 泰仁 살포정에 가서 나를 기다리라 하시므로 輪京이 곧 도라 갔다가 이튿날 살포정으로 갔으나 上帝께서 그때까지 오시지 않으셨으므로
71. 곧 泰仁 소퇴원 주막으로 가니 주인이 가로되 선생님께서 泰仁 새울 崔昌祚의 집에 가시면서 輪京이란 사람이 와서 묻거든 새울로 오라고 하셨다 하므로
72. 輪京이 새울로 가는데 중로에서 일병 수백명이 있다가 검문 하거늘 輪京이 주소를 대고 가환으로 지금 의사를 모시러 간다는 사유를 말 하였더니 그 일병들이 모두 물러가는지라. 輪京이 무사하게 새울에 가서 上帝께 배알하니 가라사대 오늘은 병세가 어떠하뇨. 輪京이 가로되 집에서 일찍 떠났으므로 자세히 모르나이다 하거늘 꾸짖어 가라사대 네가 무엇하려 왔느뇨. 輪京이 잘못을 사과 하였더니 이날밤에
73. 上帝께서 輪京을 명하시어 자지 말고 밤이 새도록 문 밖을 돌라고 하시므로 輪京이 명하신대로 자지 않고 문 밖에서 돌았더니 닭이 우는 소리가 난 뒤에 가라사대 네가 졸리지 않느냐. 輪京이 가로되 졸리지 아니하나이다. 가라사대 그럼 나와 함께 白岩里로 가자하시고 길을 떠나시니 金自賢도 수종하여
74. 白岩里 金京學의 집에 들르셔서 조반을 잡수시고 다시 떠나 井邑으로 향하여 가실 때에 수행하는 사람들을 앞서게도 하시고 혹 뒤서게도 하시며 사오 보를 걸은 뒤에 가라사대 이 길에는 일본 사람을 보는 것이 불가하다 하시더니 井邑 老松亨에 이르렀을때 가라사대 이곳에서 좀 지체하여 감이 가하다 하시고 휴식하여 반시간쯤 지낸 후에 다시 길을 떠나서 그 모퉁이 큰 못가에 이르셨을때 일본 기병이 많이 오다가 그 곳에서 다시 다른 곳으로 돌아간 형적이 있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대인의 앞길에 저희들이 어찌 몰려오리오 하시니라. 輪京이 행인에게 물었더니 과연 수십 명의 일본기병이 이곳까지 달려오다가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하며 上帝께서는 大興里에 가셔서 古夫人과 熙南의 병을 모두 손으로 어루만져 낫게 하시니라.
75. 上帝께서는 종도들이 가끔 부호를 종도로 천거 하는 것을 제일 괴로워 하셨는데 만일 천거된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이 오는 길도의 주막에서 횡설 수설로 폭 잡을 수 없게 하여 본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물러가게 하시거늘 종도들이 그 연고를 여쭈었더니 가라사대 그들은 자신이 가진 재산만큼 살기가 붙어 있으니 만일 문하에 둔다면 먼저 그 살기를 제거하여 그 앞길을 맑혀 주어야 할터이니 많은 시간이 낭비되므로 공사에 막대한 지장이 있느니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그 중에도 지혜가 있어 나를 알아보고 굳이 따르는 자에게는 할 수 없이 허락 할뿐이니라.
76. 上帝께서 삼계대권을 행하시되 수시수의로 행하셨으니 예컨데 큰 비가 쏟아질 때에 비를 걷치게 하심에도 종도를 명하여 화로의 불덩이를 던지기도 하시고 혹 연통을 두르게도 하시며 술잔을 두르게도 하시고 말씀으로도 하시며 그 밖에 풍우 상설뇌전을 일으키실 때도 또한 그렇게 하시니 일정한 법이 없느니라.
77. 그리고 천문을 보시려면 주로 구름으로 하늘을 덮고 성수를 하나씩 나타나게하여 종도로 하여금 살피게 하시기도 하였으며
78. 가뭄이 심할 때 비를 내리게 하시되 청수동이에 소변을 조금 타면 오곡이 잘되고 만일충재가 있을 때면 청수동이에 고추 가루를 풀어 넣으시면 충재가 곧 없어지니라.
79. 六月 어느날 金秉旭이 上帝께 사람을 보내어 고하되 어제 밤에 도적이 白南信의 친묘를 파고 그 두골을 가져갔나이다 하거늘 上帝께서 삼일간 촛불을 밝히시고 밤을 새우시며 상가와 같이 지내신 후 南信에게 전하여 가라사대 그 두골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한적한 곳에 가서 거처하고 다른 사람의 왕래를 끊으라. 처서절에는 그 도적이 두골을 가져오리라 하심으로 南信이 명을 좇아 白雲亨에 가서 있었더니
80. 七月에 이르러 친산 아랫 동리의 이장이 동리회를 열고 상의하여 가로되 우리가 그 친산 밑 동리에 살면서 굴총에 대하여 가만히 보고만 있을수 없으니 우리 동리 사람들이 모두 출동하여 두루 찾아봅시다. 만일 두골을 찾는 자에게는 묘주에게 말하여 많은 상을 받게 하리다 하고 동리 사람을 총동원 하여 각방으로 수색 하였더니 이때에 두골을 파 가지고 달아난 도적이 이 기회에 그 두골을 가져가면 도적의 누명도 벗을 뿐 아니라 후상을 받게 되리라 생각하고 두골을 가지고 이 장에게 가서 고하여 가로되 내가 산전을 파다가 이 두 골을 찾았다 하므로 이장이 그 사람을 데리고 白雲亨에 가니 이날이 곧 처서절이니라.
81. 이날 上帝께서는 龍頭里 주막에 계셨는데 秉旭이 와서 두골을 찾은 사실을 고하거늘 가라사대 그 도적은 어떻게 조처 하려하느뇨. 秉旭이가로되 이미 경무청에 보냈나이다. 가라사대 사람을 잘 타일러서 돌려보낼 일이어늘 어찌하여 그렇게 하였느뇨. 속히 푸른 의복 한번을 지어 오라. 징역이나 살지 않게 하리라. 秉旭이 명하심을 좇아 南信에게 말하여 푸른 의복 한벌을 지어서 上帝께 올렸더니 上帝께서 그 옷을 불사르시니 이것으로서 그 사람의 처역을 대신 하심이니라.
82. 그 후에 종도들이 처서날에 찾게 된 연유를 여쭈었더니 가라사대 모든 사사로운 일이라도 천지공사의 도수에 붙여 두면 도수에 따라서 공사가 다 풀리니라.
83. 車京石이 上帝를 섬긴 후로 집안일을 다스리지 않아 집안 형편이 점점 쇠퇴하는지라. 아우 輪七이 불평으로 생각하되 선생을 따르면 복을 받는다 하더니 도리어 빈곤 하여지니 이는 허망한 일이라. 내가 선생을 보고 질문 하리라 하고 銅谷으로 가다가 중로에서 비를 만나 옷을 적시고 그대로 가서 上帝께 배알하였더니 上帝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이 부근에 의병이 출몰함으로 관군이 사방으로 수색하는데 만일 너의 비 맞은 행색을 보면 의병으로 오인하고 크게 곤란을 줄것이니 빨리 다른 곳에 가서 숨어 있다가 내가 부르거든 나오라 하시고 亨烈을 명하시어 輪七을 피신케 하신 후 이튿날 오후에 輪七을 불러서 돈 삼원을 주시며 가라사대 내가 수일 후에 井邑으로 갈터이니 네가 빨리가서 나를 기다리라 하시니 輪七이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간
84. 수일 후에 古阜 臥龍里에 가셔서 京石에게 사람을 보내어 전명 하시되 나를 보려거든 古阜 學洞으로 오라 하시니 京石이 명을 받들고 이튿날 황망히 學洞으로 가서 上帝께 배알하니 가라사대 내가 輪七이 두려워서 너의 집으로 가기 어려우니 일극을 가져가라 하시고 돈 십오원을 내어 주시므로 京石이 돈을 받고 여쭈어 가로되 무슨 일로 이렇게 엄절하신 말씀을 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일전에 輪七이 銅谷에 온 것을 보니 살기를 뛰었는데 돈이 아니면 풀기가 어려움으로 돈 삼원을 주어 돌려보냈느니라.
85. 섣달에는 公信을 데리시고 古阜로 가시다가 公信에게 가라사대 가는 길에 아는 벗이 있느냐 대하여 가로되 雲山里에 申京洙가 있나이다 上帝께서 公信의 인도로 京洙의 집에 들어 가셔서 마루에 앉아 글을 써서 불 사르시고 公信에게 집에 다녀오라 하시거늘 公信이 집에 간즉 일진회의 간부 宋大和가 와 있는지라 公信이 大和를 치송하고 다시 雲山里에 오니 가라사대 손이 있었더냐 대하여 가로되 있어서 치송하고 왔나이다 하니라.
86. 그 후 白岩里에 계셨는데 朴公又와 辛元一이 시좌하고 있을 때 金永學이 金京學의 천거로 上帝께 배알하였으나 칠일이 되도록 아무런 말씀을 아니 하시니 永學이 매우 불만을 품은 것을 公又와 元一이 永學에게 이르기를 삼가 사사하기를 청하면 빨리 가르쳐 주시리라. 永學이 그 말을 좇아 사사 하여주시기를 청하였더니 허락 하시고
87. 갑자기 크게 꾸중을 하시므로 永學 이 한편으로는 두려웁고 한편으로는 분하여 문 밖으로 나가버리는지라. 上帝께서 永學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너를 꾸짖은 것은 네 몸에 있는 두 척신을 물리쳐 내려 함이니 너는 불만스럽게 생각마라. 永學이 가로되 무슨 척신이 오니까 깨닫지 못하겠나이다. 가라사대 너는 십팔세 때에 살인하고 금년에도 살인 하였나니 잘 생각하여보라. 永學이 생각한즉 십팔세 때에 南原에서 全州 아전과 말다툼 하다가 그의 무례한 말에 노하여 화로를 던져서 그 머리에 상처를 입혔더니 그길로 신음하다가 익년 삼월에 죽었고 금년 봄에 長城多洞에 있는 외숙 金堯善의 집이 의병에게 약탈을 당한고로 의병대장 金永伯을 長城 白羊寺로 찾아가서 그 비행을 꾸짖었더니 永伯이 사과하고 그 범인을 조사하여 총살한 일이 있었음으로 비로소 깨닫고 그 두 일을 고하였더니 가라사대 정히 그러하니라.
88. 팔월에는 金德贊의 매가에 묘제가 있는지라. 德贊이 上帝께 고하여 매가에 가서 술을 잡수시기를 청하였더니 가라사대 나의 술을 먼저 마시라. 德贊이 가로되 무슨 술이 있나이까. 가라사대 좀 기다려보라 하시더니 얼마후에 公又가 삶은 닭과 술을 가져와서 上帝께 드리는지라 이에 德贊이 감복하고 술을 마셨니라.
89.上帝께서 戊申年 十月 金洛範을 명하여 쌀 스무말을 깨끗하게 찧어서 약방에 저장 하셨는데 亨烈이 쌀이 부족하여 약방에 있는 여러 사람의 조반을 지어 줄 수 없으므로 甲七을 시켜 약방에 두신 쌀 중에서 반말을 갈라내어 조반을 지었더니 上帝께서 벌써 아시고 亨烈과 甲七을 꾸짖으시니라
90. 이해 겨울에 金德贊의 아들의 결혼일을 당하여 여러 친지들이 물품으로 부조 하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나는 부조할것이 따로 없으니 일기로나 부조하리라 하시니 이때는 일기가 계속 불순하여 德贊이 크게 염려하던 중인데 결혼일은 의외로 온화하여 어려 사람의 칭송을 받으니라
91. 겨울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범의 성질이 너무 사나워 사람을 잘해친다 하기에 그 성질을 알아보려고 내가 일찍 손바래기 시루산에서 호둔을 하여 보았더니 사람이 전부 돼지 같은 짐승으로 보이니 만일 범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사람에게 작해가 심하겠으므로 종자를 전할만큼 남겨 두고 번성치 못하게 하였노라.
92. 井邑郡 德川 面長을 하던 金永基 가 열 여석살 되던 해의 어느날 손바래기앞 들기로 오는데 길이 너무 질어서 가지를 못하고 우물거리고 있을 때 손바래기로 上帝께서 들어오시다가 영기를 보시고 가라사대 내 옆으로 오라 하시더니 한쪽 팔로 옆에다 永基를 꼭 끼시며 가라시대 나를 단단히 붙잡으라 하시고는 어느 결에 들을 건너 손바래기에 당도 하셔서
93. 永基를 다리고 본댁까지 가셔서 權氏 모친께 보선을 달라 하시더니 신으시다가 쭉 찢어지느지라. 다시 다른 것을 가져오라 하사 한손으로 보선을 신으시고선 부엌에 상당히 많이 걸려있는 쇠고기를 모두 육회를 하여오라 하셔서 전부 잡수신 후 永基에게 가라사대 빨리 돌아가라고 하시므로 永基는 황황히 돌아 가니라.
94. 己酉年 正月 二日에 車文京이 술을 마시고 上帝를 향하여 비방하여 가로되 역적질을 한다고 고함을 치니 이 말을 川原 병참에서 듣고 군병을 출동하려 하는지라. 上帝께서 이 일을 아시고 京石에게 가라사대 너는 집을 지키라 하시고 곧 飛龍村 車輪京의 집으로 가시니라.
95. 그전에 上帝께서 京石을 명하시어 三日새벽에 고사를 지내라 하셨는데 마침 이 일이 발생한 고로 京石에게 다시 가라사대 명일 자정에 문틈을 봉하고 고기는 불에 구으며 술병은 마개만 열고 심고하라. 이것이 곧 고사니라 京石이 三日 새벽에 명을 좇아 행한 후 날이 밝으니 총을 멘 군병 수십명이 몰려 들어와서 上帝를 수색하다가 찾지 못하고 도라가니라.
96. 五日에는 銅谷으로 가셔서 머물시니 수일후에 泰仁으로부터 사건이 무사히 된 전말을 고하거늘 가라사대 井邑 일은 하루 공사인데 京石에게 맡겼더니 일조에 안정되고, 泰仁 일은 하루 아침공사인데 京學에게 맡겼더니 하루에 안정되니 京石이 京學보다 낫도다 하시고 또 가라사대 京石은 병조판서 자격이며 京學은 위인이 直腸이라 도리키기 어럽나니 만일 도리키기만 하면 선인이 되리라.
97. 三月에는 白岩里 金京學의 집에 가셔서 머무시는데 京石이 公又와 輪京을 보내어 경과가 무사함을 고하니 가라사대 내가 공사를 본 후에 京石을 시험한 일이었는데 무사히 지냈으니 다행이로다.
98. 이때에 泰仁邑에 있는 京學의 형이 사람을 보내어 京學을 오라 하거늘 上帝께서 명하여 보내신 후 발을 당기시며 가라사대 속담에 발복이라 하나니 모르고 가는 길에 잘가면 행이오, 잘못가면 곤란이라 하시고 즉시 그 곳을 떠나서 독행으로 崔昌祚의 집에 가셔서 계시다가 다시 독행으로 그 앞 속 밭을 지나서 崔昌兼의 집에 머무시니 모든 사람이 계시는 곳을 아지 못하니라.
99.원래 京學의 형은 京學의 집에 이상한 술객이 있어서 京學을 속여 가산을 탕패케 한다는 소문을 듣고 한편으로는 京學을 권유하기 위하여 사람을 보내고 또 한편으로는 술객을 관부에 고발 하려는 중이었는데 京學이 집을 떠나갈 때 중도에서 순검을 만나 순검이 京學을 데리고 京學의 집에 와서 上帝를 찾다 못하고 다시 崔昌祚의 집에 갔다가 역시 찾지 못하고 있는데 이때에 黃應鍾과 文公信이 上帝께 세배 하려고 崔昌祚의 집에 왔다가 구타만 당하니라.
100. 上帝께서 항상 安弼成과 술 잡수시기를 좋아하셨으니 하루는 銅谷앞 팥거리 주막에서 弼成을 만나시자 가라사대 자네가 술을 사라 안주는 내가 장만 하리라 하시고 못을 휘어서 낚시를 만드시더니 그 주막 앞 작은 웅덩이에 던지시니 곧 잉어 와 가물치를 각각 한 마리씩 잡아 가지고 오셔서 안주를 만들어 술을 잡수시니라.
101. 또 하루는 安弼成이 모자리를 하려고 벼씨를 지고 가는길에 上帝를 배알하니 가라사대 술이나 먹고 가라 하시거늘 弼成이 사양 하였더니 가라사대 그럼 볍씨를 뿌리기가 바쁜 모양이니 내가 대신 뿌려주리라 하시고 지게 위에 있는 씨나락 서너말을 망개장이 밭에 다 뿌려버리시니 弼成은 두려워서 아무런 원망도 하지 못하고 앉아서 명하신대로 술은 마시나 내심으로 근심하였는데 주모가 밖에 나갔다 들어와서 가로되 씨나락을 가지고 온 그릇에 그대로 다 있으니 염려 말고 술이나 잡수시라 하거늘 弼成이 이상히 여겨 나가 보았더니 과연 뿌려서 흩어졌든 씨나락이 한알도 땅에 없고 전과 같이 그대로 그릇에 담겨 있는지라. 이것을 보고 弼成이 더욱 上帝를 신인으로 경대하니라.
102. 三月에 扶安 淸日 사람 李致化가 와서 上帝를 섬기고 그후 李公三이 와서 추종 하니라.
103. 上帝께서 李致化를 명하시어 빨리 돌아가라 하시되 致化가 종일토록 가지 아니하니 上帝께서 다시 기일을 정하여 주시며 가라사대 빨리 돌아가서 돈 칠십량을 가지고 기일 내에 오라 하시니 致化가 그제야 돌아가서 그 기일 내에 돈 칠십량을 허리에 차고 와서 上帝께 올렸더니 上帝께서 명하사 그 돈을 방안에 두었다가 다시 문밖에 두고 또 싸리문 밖에 두어 일주야를 지낸 후에 들여다가 간수 하시더니 그후에 公三으로 하여금 그 돈 칠십량을 車京石의 집에 보내시니라.
104. 金光贊이 본래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인데 하루는 우연히 술을 과음하고 대취하여 李道三의 집에 가서 그의 며누리를 회롱 하려함으로 道三의 부자가 크게 분개하여 光贊을 때려죽이겠다하는데 上帝께서 甲七을 명하여 光贊을 井邑으로 보내시니라.
105. 여러 사람이 光贊의 패려함을 미워하나 京石만은 그 성질을 잘 아는고로 모두 설유하여 안정케 하니라.
106. 上帝께서 光贊의 일로 염려하시니 亨烈이 고하여 가로되 朴公又를 井邑으로 보내서 光贊을 데려오겠나이다고 하여도 上帝께서 응답지 않으시니라. 公又가 井邑에 가서 京石에게 上帝께서 光贊의 위인을 염려하심과 모든 사람이 光贊을 좋아 하지 않음을 말하니 京石은 光贊이 銅谷으로 감이 불가할까 생각하여 光贊을 속여 井邑에 있게 하고 자기가 가름하여 公又와 함께 銅谷에 와서 上帝께 배알하니 上帝께서 탄식 하시며 가라사대 여러 사람 가운데 환심을 얻지 못한 자는 光贊이로다. 光贊은 기질은 좋으나 심지가 순평치 못하여 어떠한 지경의 유익함을 제 모르리라.
107. 上帝께서 처음으로 추종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일생에 지은 자신의 허물을 빠짐없이 생각하여 마음으로 사하여 주시기를 빌라 하시되 만일 잊고 다 생각지 못하였을 때에는 일일이 깨쳐 주시며 또 반드시 그 몸을 위하여 척신과 모든 겁액을 맑혀 주시니라.
108.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내가 扶安地方 신명을 불러도 응하지 않으므로 사정을 알기 위하여 부득이 그 지방까지 가본즉 元一이 공부 할때에 호위하여 떠나지 못하게 되었던 까닭이라. 이러한 일을 볼진대 공부함을 어찌 등한이 알겠느냐.
109.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나의 일은 어떤 탕자의 일과 같으니라 하시며 또 가라사대 옛날에 어떤 탕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자신이 방탕이 보낸 세월을 회과자책 하여 내 일생을 이렇게 헛되이 보내어 후세에 남김이 없으면 어찌 한스럽지 아니하리오 하고, 지금부터라도 신선을 만나서 선학을 배우겠다고 개심 하였더니 문득 심신이 상쾌하더니 표연히 승천하여 한 신선을 만나니 그 신선이 가로되 네가 이제 뉘우쳐 선학을 뜻하니 심히 아름다운지라. 내가 너에게 선학을 가르치리니 정결한 곳에 도장을 짓고 여러 동지를 모으라 하므로 그 사람이 명을 좇아 정신을 차리고 곧 동지를 모았으나 모두 이 사람의 과거의 방탕을 의심하여 따르는 자가 적어 겨우 몇 사람과 함께 도장을 설치하였더니 갑자기 천상으로부터 채운이 찬란하고 선악의 소리가 들리더니 그 신선이 내려와서 선학을 가르쳤다 하니라.
110.또 하루는 낙양들 근방을 지내실 때 황소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부시고 가까이 다가 가셔서 싸우는 황소 두 마리의 뿔을 양쪽 손으로 하나씩 잡으시더니 소귀에다 무슨 말씀을 이르시니 싸우든 소들이 싸우지를 않고 흩어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