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Asia Times Online 2010-5-10 (번역) 크메르의 세계
원제: 방콕의 최전선을 지키는 초병
레드셔츠 시위대의 전사 세댕 장군과 태국의 로닌전사들
On guard at Bangkok's frontlines
기고 : Richard S Ehrlich
(방콕) - 그는 과거에 20명의 태국 공산주의자들을 사살한 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고, "미국 중앙정보부"(CIA)와 함께 활동했던 시절을 추억삼아 회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최근 레드셔츠(UDD) 시위대의 반대성향이라고 생각되는 피해자들에 대해 수류탄 공격과 총격을 가한 무장집단을 지휘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인을 했다.
태국군의 현역 육군소장인 캇띠야 사왓디폰(Khattiya Sawatdiphol: 일명-세댕[Seh Daeng]) 장군은, 현재 태국 정부와 군대가 방콕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는 레드셔츠 시위대의 바리케이트와 집회구역의 강제진압을 망설이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인 인물이다.
죽창과 고무 타이어, 넝마와 콘크리트 블록, 그리고 철조망에다 기름까지 부어놓은 바리케이트 옆에 서서, 캇띠야 장군은 인터뷰를 했다. 그는 "나는 매일 새벽 4시면 집회구역 주변의 모든 바리케이트들을 점검하러 나온다. 매일마다 밖으로 나가 정찰도 하고, 전술적인 무력시위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낭인 전사들"(Ronin Warriors, 로닌, 浪人)(역주1)이라 불리는 미궁에 빠져있는 명백한 살인적 공격사건을 행한 무장집단 관련 의혹으로 인해 수배되어 있는 상태이다.
(역주1) [브리태니커 한국어판의 해설] 로닌: 일본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1138~1573] 말기와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 : 1603~1867]의 특정하게 섬기는 주군(主君)이 없는 사무라이들을 일컫는 말. 그들은 방랑하면서 파괴를 일삼기도 했으며 반체제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 12세기 무렵 로닌이란 말은 싸움에서 패했거나 주군이 갑작스레 죽었거나 스스로 잘못을 저질러 봉토(封土)를 빼앗기고 귀족의 후원이 끊어진 사무라이들을 일컫는 데 쓰이기 시작했다. 도쿠가와 바쿠후(막부)가 세워지기 이전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급속히 늘어났으며, 17세기 전반에 걸쳐 혼란의 주요원인이 되었다. 19세기 중엽 많은 수의 가난한 사무라이들은 서양인들을 일본에서 몰아내고 천황을 일본의 실질적인 통치자로서 정당한 지위에 복귀시키려는 운동에 동참했으며,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주군이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 로닌(낭인, 浪人)이 되었다. 이들은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일어나기 몇 해 전부터 온건한 관리들과 친(親)서방 학자들, 일본 거주 외국인들을 암살함으로써 혁명의 기운을 고조시켰다. 유신 이후에도 얼마 동안 이런 활동이 계속되었으나 1873년 사무라이의 특권이 폐지되면서 로닌도 사라지게 되었다. 18세기초 로닌 47명이 주군의 원수를 갚은 사건은 일본에서 많은 연극·영화·문학 작품의 인기있는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역자 추가해설] 천황에게로 권력이 집중되면서 자주적 개화를 시도했던 "메이지유신" 이전까지, 일본 사회는 주군과 가신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특수한 봉건제도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중국이나 한국에서 양반(문반+무반) 계급에 속했던 "선비"(士) 혹은 "사대부"(士大夫) 대신, "사무라이"가 그에 해당하는 사회적 지위(중산층)를 형성했고, 무예의 수련을 중시한 점에서 마치 서양의 "기사"(knight)와도 유사한 측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사무라이가 서양의 기사와 다소 다른 점은, 이들이 다도(茶道)나 명상수행(선불교) 등으로 교양을 다듬고, 간혹 유학이나 불교의 학문적 수련을 하는 등, 한국의 선비와 유사한 자기개발 덕목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일본의 "사무라이" 계급은 서양의 "기사"와 중국이나 한국의 "선비"를 합쳐놓은 성격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표기와 발음이 일치하지 않는 일본어의 특성상, 일본어 출판물의 경우 가나 문자로 "さむらい"(사무라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고, "모시다"를 의미하는 "侍"(시) 자를 써놓고 "사무라이"라고 읽는 경우도 있으며, 혹은 "武士"(무사)라고 표기한 후 "사무라이"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단순히 선비 "士"(사) 자를 써놓고 "사무라이"로 발음하는 경우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는데, 바로 사무라이 계급이 가진 그러한 삶의 태도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삶의 지향점을 통해 "로닌"인 동시에 "사무라이"의 이상적 모델로서 실존했던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유명한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였다. 특히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메이지유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는 "로닌들"의 역할이 상당히 지대했다. 조선을 식민지화시키는 데 선봉에 서서 섰던 인물 중 하나로 초대 조선통감(총독)을 지냈고,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같은 이가 바로 로닌 사무라이의 마지막 세대였다. 그는 20세 전후에 일본 최초로 해외유학을 했던 일본 근대 지식인 중 한 사람이었다.
(참고 게시물) "[컬럼]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와다 하루키 2010-5-3)"
그런데 최근 태국사태에서 이러한 일본풍 유행어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태국사회가 의외로 일본문화와 교류의 역사도 길고(특히 태평양 전쟁 당시 비록 후반부로 갈수록 일본이 식민지 취급 유사한 태도를 보여줬지만, 형식적으로는 일본과 군사적 협력관계에 있었음), 일정 부분 일본문화에 익숙한 측면이 있음을 반영해주는 흥미로운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생각된다. 특히 태평양전쟁 당시에 태국에 파견됐던 일본군 장교(배역명: 고불리)와 태국 여인(배역명: 앙수마린)의 못다 이룬 슬픈 사랑을 이야기를 다룬 <쿠깜>(คู่กรรม)이란 영화와 그 주제가는, 현재도 태국에서 매우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다. 현재 외국인들이 태국어 공부를 할 때, 가장 많이 이용되는 초급 교재 중 하나는 영어와 일본어 모두로 번역 출판되어 있는데, 그 교재의 본문에서도 고불리와 앙수마린이란 등장인물들을 통한 대화체 예문들이 사용되기도 한다. |
태국 정부와 군부는 그들 무장집단에 대해, 최근 은행들과 발전소, 군부대와 공항 연료저장소, 그리고 정부청사 등에 가해진 M-79 수류탄 공격을 감행한 자들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또한 레드셔츠 집회구역 외곽 바리케이트 인근의 실롬 가에서 발생한, 대중에 대한 무차별 수류탄 공격도 그들이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장복 차림의 이 "로닌 전사들"에 대해, 캇띠야 장군은 자신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수류탄 공격들이 발생하기 직전에 묘하게도 그의 예고발언들이 나옴으로써 의혹은 증폭되었다.
지난 2월, 캇띠야 장군은 레드셔츠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전직 수색대 출신의 특수부대원 수백명을 훈련시켰다며 자랑삼아 말했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만일 정부가 우리를 강제진압한다면, 우리는 정당방위에 나설 것이다. 우리와 레드셔츠 형제들은 무기를 사용할 능력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그가 군사적 전술에 대해 발언할 경우, 태국군 장교들 중 실전 경험 면에서 그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상당한 무게감을 갖고 있다. 지난 "4월 10일의 유혈진압 사태"에서 시위대와 충돌하여 25명이 사망하고 900명의 부상자만 남기고 실패하면서, 정부와 진압군의 위신이 실추됐을 때 역시 그의 으름장과 독설섞인 경고가 있었다.
캇띠야 장군은 유혈진압사태 당시 로닌 전사들이 진압군을 후퇴시키기 위해, 몇몇 고위급 장교들에 대한 M-79 수류탄 공격을 감행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시위대와의 충돌현장에서 복면을 한 "검은 복장의 괴한들"이 정부측을 지원하기 위해 민간인들에 대한 공격을 한 직후, 로닌 전사들이 [그 장교들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고 말했다. 캇띠야 장군은 당시 인터뷰에서 "정부가 국민들을 사살하자, 로닌 전사들이 레드셔츠 시위대를 도왔다. 그리고 [시위대 중의] 검은 복장의 괴한들은 정부가 파견한 자들"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역주2)
(역주2) 4월 10일 야간에 유혈진압이 벌어지는 동안, 태국군 지휘부와 진압군 내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 태국의 보수 영자지 <방콕포스트>(The Bangkok Post)가 4월 12일자 보도에서 다소 상세한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이 기사는 비교적 주목할만한 사실들을 보고해주어, 이후 나온 보도들과 종합해보면 많은 정황이 복원될 수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크메르의 세계"는 공개된 자료들로만 다음과 같은 사실들로 정리해보았다.
(1) 당시 진압군 병력이 상당하게 흥분되어 있었고 지휘부로부터 자정까지의 진압을 압박받았음.
(2) 당시 지휘부인 "위기관리센터"(Centre for Public Administration in Emergency: 현재는 "비상사태대책본부"[CRES]로 명칭이 변경됨)의 최고 지휘관들 역시 흥분해있는 상태였음.
(3) 아누퐁 파오찐다(Anupong Paojinda) 육군참모총장이 현재 참모차장이자 금년 가을에 후임 참모총장으로 내정된, 상당히 강경파인 빠윳 짠오차(Prayuth Chan-ocha) 장군에게 진압작전 지휘권을 일임시켰음.
(4) 빠윳 장군은 효율적인 진압작전을 위해 정부가 <계엄법>을 발동해달라고 요청할 계획까지도 수립했었다고 말했음.
(5) 하지만, 유혈충돌 발생 직후 혹은 그와 거의 동시에 집회장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향후 군내에서 빠윳 장군을 보좌할 핵심 충복 장교들이 암살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이 보고된 후, 마음을 고쳐먹고 포기했다고 함.
[크세추가] 후에 나온 여타 보도와 정보들을 종합해보면, 가해자들은 레이저 빔 조준장비가 장착된 공격용 소총을 가졌고, 복면을 한 특수부대원들로 추정됨. 세댕 장군이 말하는 "로닌전사들"은 바로 이들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됨. 이 암살공격에서는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불구가 되는 중상을 입었다고 함. 부상자 중에는 "보병 제2사단"(왕실근위사단) 사단장인 왈릿 로짜나빡(Walit Rojanapakdi) 소장이 포함되었고, 사망자는 왕후호위연대장인 롬끌라오 투와탐(Romklao Thuwatham) 대령이었음.
(6) 이후 아누퐁 참모총장과 빠윳 장군은 아피싯 웻차치와(Abhisit Vejjajiva) 총리의 명령에 따라 진압작전을 중단했다고 함. 아피싯 총리는 이 작전에서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고 작전중지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방콕포스트> 해당 기사의 번역문은 본 카페 내의 다음 링크를 참조하라.
(바로가기) "태국시위 유혈사태 : 과잉진압 무엇이 문제였나 (방콕포스트 2010-4-12) " |
하지만 그날 밤(4.10)에 누가 누구를 살해했는지는 아직까지 아무것도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로닌전사들의 활동이 레드셔츠들에 우호적인 형태로 진행되면서, 군부는 결국 지난 3월 12일 이래로 방콕의 중심가를 점거해온 레드셔츠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데 실패했다.
캇띠야 장군은 심지어 이들 로닌전사들이 레드셔츠 집회구역 바리케이트 안쪽에서 시위대를 보호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로닌전사들의 공격이 가해졌을 때, 캇띠야 장군은 "내 생각으론 그들은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부군 병력은 헬멧에다가 방탄조끼까지 착용했고, 복장도 너무 꽉 조이는 방식이다. 그래서 진압군은 아마도 상당히 무더운 상태로 더위로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군이 그 상태로 이 거리에 있는 요새화된 지역을 파고든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캇띠야 장군은 자신의 바로 지근거리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정부군 병사를 가리키며, 시가전의 경우 로닌들이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는 수많은 콘크리트 건물들이 서 있다. 로닌전사들이 몸을 숨기기엔 안성맞춤"이라고 말하면서, 쇼핑센터와 레스토랑, 사무실, 호텔, 병원 등 몇몇 고층건물들을 가리켜보였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군대와 경찰 사이에 공개적인 균열이 존재하는 것도 군대로 하여금 진압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유라고 한다. 그는 "만일 군대가 전쟁용 무기를 사용하면, 그보다 앞줄에 위치한 경찰들이 뒤로 돌아 군대를 공격할 것이다. 왜냐하면 경찰은 이미 레드셔츠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 역시 로닌전사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로닌전사들이 레드셔츠 시위대를 위해 적절한 시기에 모습을 나타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보장하지 못했다. 캇띠야 장군은 "레드셔츠들은 로닌전사들이 도와줄 때까지는 스스로 버텨야 한다. 만일 로닌들이 나타나지 못한다면, 그걸로 끝나는거다. 마치 영화 <브래이브하트>(Braveheart) 같은 것이다. 태국의 로닌전사들은 일본의 닌자(忍者: 일본식 자객)처럼 일처리를 몰래하는 것을 명예롭게 여기고 있다. 태국식 닌자들은 공격용 기관총과 M-79 수류탄을 사용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보다 더 근접전을 벌일 수는 없는 것이다. 로닌과 그들의 적인 정부군은 동일한 화력을 가졌다. 문제는 전술일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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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P) 최근 자신의 해임 문제에 관한 군법회의에 출두한 다음날(5.8)에도, 레드셔츠 집회장에 모습을 나타낸 캇띠야 장군이 팬들의 요청에 따라 사진촬영에 응해주고 있다. |
캇띠야 장군이 청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또다른 요소로는 그가 지적하는 혐오스런 요소들과 적개심 문제이다. 그는 4월 10일 밤의 시가전 상황의 진압작전을 묘사하면서, "이건 완전히 동성애 비슷한거다. 탱크와 장갑차를 양민들에게 사용한다는 것 말이다"라며 실소를 보였다. 그는 "그런 식으로 상상한 작전이라면 이른 아침이나 낮시간에 해야 하는거다. 밤이 아니고 말이지. 그런데도 군대가 그따위 동성애 감정 비슷한 일을 한거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아누퐁 파오찐다(Anupong Paojinda) 육군참모총장이 그를 에어로빅 교습 부서로 좌천을 시키자, 캇띠야 장군은 "내가 댄스동작 하나를 준비했는데, 바로 수류탄 투척 댄스"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1951년생인 캇띠야 장군은 2011년 정년퇴직이 예정되어 있다. 스스로를 "군 전문가"(army specialist)라고 부르는 그는 금년 1월 14일에 아누퐁 참모총장에 의해 위반 혐의로 "정직"을 당한 상태이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아누퐁 참모총장 집무실에 M-79 수류탄이 날아드는 "육군본부 수류탄 폭발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태국 정부 대변인 중 한 사람인 부라낫 사무딱(Buranat Samutrak) 씨는 지난 1월 "캇띠야 장군의 예언은 언제나 들어맞는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하지만 캇띠야 장군은 한 인터뷰를 통해 "모두들 내가 로닌전사들, 즉 사무라이들의 지도자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난 아니다. 정말 아니다. 난 로닌이 아니다. 난 비폭력적 수단을 통해 투쟁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캇띠야 장군은 아피싯 웻차치와(Abhisit Vejjajiva) 총리, 수텝 트억수반(Suthep Thaugsuban) 안보담당 부총리, 그리고 아누퐁 참모총장과 여타 지휘관들에 대해 저주를 퍼부우며, 지난 4월 10일 "정부가 양민들을 사살했기 때문에" 그들이 구속돼야만 할 것이라 촉구했다.
캇띠야 장군은 한때 수색대원이었고, 현재와 과거에 그에게 충성하는 병력들에게는 용감무쌍한 영원한 특수부대원이다. 그는 "나와 같은 진정한 군인은 꼭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직책으로 결코 승진하지 못한다. 나는 20명의 사람들, 즉 20명의 적을 사살하는 데 일조했고, 그 전투에서 나도 부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과거 공산주의자들과의 전투를 회상하며, 그는 당시의 공산주의자들이 "전술적 혼란, 즉 매복작전" 때문에 사망했다면서, 자신이 태국 북부의 라오스 접경에서 1976년 경험했던 바를 말했다.
일부에서는 캇띠야 장군이 우파 장교들과 퇴역군인들이 다시금 권력을 잡도록 하기 위해 레드셔츠를 이용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 3월에는 불법무기 소지 및 범죄용의자 도피 혐의를 적용하여, 경찰이 그를 이틀간 구금하기도 했다.
4월 25일 아피싯 총리는 국영 TV 연설을 통해, 처음으로 캇띠야 장군의 이름을 거론했다. 그리고 별로 증거를 들이대지도 않은 상태에서 "모든 사건들이 상호관련되어 있고, 세댕(캇띠야)이 모든 것에 거론되며, 다른 이름들은 별로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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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프랑스24"(FRANCE 24) 특별취재반이 세댕 장군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취재해 보도한 내용. 맨 마지막에 기자가 소감을 묻자 "군의 저격수들(암살전문 사격수)이 주변에 배치되어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말한다. |
캇띠야 장군의 웹사이트(개인 홈페이지)인 www.sae-dang.com은 이제 태국에서 공식적으로 차단됐지만, 그가 저술한 책들은 베스트셀러에 올라있고, 종종 TV 토크쇼에 출연해 토론하기도 한다. 그는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와 매우 친분이 두텁다. 탁신 전 총리는 원래부터 억만장자로 지난 "2006년 쿠테타"로 인해 실각했다. 그는 현재 부정부패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상태에서 해외에 망명중이다.
탁신 전 총리는 바로 레드셔츠 시위대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인물이다. 캇띠야 장군은 "3월 9일 나는 두바이에 있었고, 탁신 전 총리를 만나서 대화도 나눴다. 그리고 [5월 3일] 그와 전화통화도 했다. 나는 탁신 전 총리에게 군대가 어떻게 국민들을 살해했는지를 말해줬고, 그들이 지금 탱크를 몰고오려고 하며 다시 시도하려고 한다는 점도 말해줬다. 나는 탁신 전 총리에게 우리가 바로 지금 싸워야한다는 점을 말했다. 그들은 여성과 어린이들까지 사살할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설치된 바리케이트에 대해서도 설명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보고한 것은 탁신 전 총리가 레드셔츠 시위대의 최고 지도자 중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여타 레드셔츠 지도자들은 캇띠야 장군과 다소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들은 캇띠야 장군이 지나치게 폭력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쭐라롱꼰 병원" 앞의 바리케이트 철거를 놓고, 캇띠야 장군은 레드셔츠 지도부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레드셔츠 지도부가 내 의견에 동조를 안해준다. 그들은 바리케이트를 철거시킴으로써 이 모든 지역을 상실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4월 29일, 일부 레드셔츠 사수대원들이 군대의 저격수들을 찾는다며 "쭐라롱꼰 병원"에 난입했지만 아무도 발견을 하지 못함으로써, 시위대는 비인도적이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캇띠야 장군은 "병원 안에 군인들이 있었다. 레드셔츠 지도부가 너무 수세적이다. 하지만 레드셔츠 시민들은 그렇지 않다. 시민들은 이미 자신들이 탁신보다도 강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레드셔츠 시민들은 지도부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 시민들은 지도부가 포기를 할까봐 우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탁신 총리가 자신과의 전화통화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나는 사람들의 희생을 원치 않는다. 당신이 군대를 막아줘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캇띠야 장군은 "탁신은 싸움의 전술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아주 '나이스 가이'(nice guy)"라고 덧붙였다.
캇띠야 장군은 또한 상당히 친미적 성향을 갖고 있다. 그가 밝힌 바에 따르면, 최근 "조지 워싱턴 대학"(George Washington University)을 다녔던 딸(역주3)의 졸업식을 포함해서, 미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바 있다고 한다.
(역주3) FROM THE BARRACKS : 'Seh Daeng' - a clowning soldier not to be laughed at (retrieved 8:50 PM 11/27/2008). 이 기사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외동딸인 캇띠얀(Khattiyar, 27세)은 "노란셔츠 운동"(PAD)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개의치 않은 채, 딸은 또 얻으면 되지만 조국은 한번 부숴지면 재건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
캇띠야 장군은 "내가 예전에 [몽족 리더인] 왕 빠오(Vang Pao) 장군을 몽족(Hmong) 마을에서부터 미국으로 보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왕 빠오 장군은 미국의 CIA가 1975년까지 라오스에서 진행했다 실패한 "비밀전쟁"(secret war)의 악명높은 지도자이다. 이 전쟁은 주변국들인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승리를 거두면서, 라오스에서도 역시 공산주의자들이 승리를 거두며 끝났다.
캇El야 장군은 당시 자신이 왕 빠오 장군을 도와서 태국을 거쳐 말레이시아로 가게 해줬다고 한다. 그는 "내가 왕 빠오 장군과 함께 안가에 머물렀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페낭(Penang)에서 미국으로 보냈다. 그리고 지난 수십년간 미국 내 반공활동을 위해, 그에게 자금동원을 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진) 캇띠야 장군이 저술한 수기 중 한권의 표지사진. 최근 레드셔츠 집회장에서 판매되기도 한다.
지난 2007년 왕 빠오 장군은 스팅거(Stinger) 대공미사일과 여타 무기들을 불법구매하려다 캘리포니아에서 체포됐다. 하지만 그의 동료들은 재판에 회부됐지만, 왕 빠오 장군은 몇달 간 감옥에서 생활한 후 석방됐다.
캇띠야 장군은 지난 1970년대에 "태국공산당"(Communist Party of Thailand) 당원들을 죽이기 위한 미국과 태국의 공조를 언급하면서, "나야말로 CIA와 활동해온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말했다.
캇띠야 장군은 미국의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세지라면서, "태국의 현 정부가 국민들을 살해하려고 한다. 유엔군을 보내달라. 왜냐하면 태국 정부가 폴 포트(Pol Pot)나 무솔리니(Mussolini), 그리고 히틀러(Hitler) 정권처럼 변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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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냥,, 일단 한세기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한.... 기인은 기인이다.. 하는 생각은 우선 드는구만요.. ^^ 여러가지가 상당히 정리가 되는데... 여기에도 역시 가공할 내용들이 숨겨져 있는듯 합니다.. 이 에리히라는 기자가 교묘히 힌트만 주는듯.. ^^ 회원님들께서는 상세한 발언들은 자제해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 곧 자유롭게 발언할 시대가 올듯하니... 좀 참도록 하겠습니다... 나름대로 우리 카페가 가진 정보들을 취합하여 분석한 내용을 역주로 추가했습니다... 물론 사회적 물의(?)가 없는.. 학술적 차원에서의 정보들만 말이죠.. 가능하면 더 상세한 것은 검색비공개 자료실이나 정회원광장에서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지만 농담이나.. 뭐.. 간단한 감상평은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 분위기 좀 풀어보려고 저의 애창곡 <쿠캄> 첨부했습니다~ ^^
고생하셨읍니다. 에리히 기자의 교묘한 힌트는 저를 교묘히 피해가는 군요.. ㅠㅠ
... ^ ^ ....
신념이 뚜렷한 사람은 적도 많지만 진정한 친구도 많이 있습니다. 세댕 장군이 그 장본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댕 장군과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나마 태국군의 인적 자원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반증해주기도 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양반을 보고.. 캄보디아의 양아치 군발이 샤끄들을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캄보디아의 삼 랑시 의원에게 이런 군부의 동조세력이 지원해줄 수 있는 날이 언제 있을런지 말이죠... 게다가 캄보디아 양아치 군발이들은 훈 모씨를 비롯해서.. 뭔 별은 그렇게 주렁주렁 많이들도 달고 말이죠..
일단 나중의 연구를 위해서 연구용 아이디어 몇가지 사항을 좀 여기다 정리해 둡니다.
1. 태국 군부의 성향 : 현재로서는 최소 4개 세력으로 분리해서 생각해야할듯함.
(1) 2006년 쿠테타 지도부에서 이어지는 현 아누퐁 파오찐다 육참총장의 주류파.
(2) 외형적으로는 "세댕" 장군을 아이콘으로 하는, 소위 "수박군인"(겉은 푸른군복에 마음만은 레드셔츠)
이렇게 2가지로만 딱 갈라지면 좋을듯 한데... 제가 보기엔 더 있습니다.
(3) 세댕 장군과 같은 장교급 수박군인들 말고.. 진자로 내전이 발발하면 탈영을 할 가능성이 높은 다수의 하사관과 징집사병으로 구성된 하위급 수박병사들..
이 하급 수박병사들을 왜 별도로 보아야 하냐 하면.. 혹시 군부 내에서 장교급에서 갑작스런 수박장교들 숙청(사살이나 구속사태)이 벌어져도.. 이들은 이들대로 행동할테니까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이 문제입니다..
(4) 극우 노란셔츠 군발이들...
이런 놈들이 있다면.. 이 놈들은 심지어 아누퐁 육참총장의 지휘권 바깥에 있을 가능성이 보입니다.. 즉 왕실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는다든가 그럴 수도 있고.. 요놈들이 상당히 조직화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난번 실롬가 수류탄 공격 유사한 짓거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놈들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존재할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2. 최근 벌어진 폭력사건들은 누가 했을가?..
우선 주요한 것만 보면
(1) 4월 10일 시위대의 뇌부위를 날릴 정도로 저격한 놈들(일명: 검은복면들)
(2) 실롬가 지상철에서 다수의 수류탄 공격을 한 놈들,.
요 2사건은 분명하게 범죄동기로 봐서는 친-레드셔츠 소행일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혼란을 더 증폭시키거나.. 레드셔츠를 여론적 궁지에 몰게 하고픈 자들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거죠..
(3) 빠윳 짠오차 장군의 심복인 왕실근위대 장교들을 영화 뺨치는 작전으로 암살공격..
이 사건은 위에서 세댕 장군이 말한 친-레드셔츠 성향의 로닌전사들이 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이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부 주류 내의 권력암투 역시 약간의 가능성으로 열어둬야 할듯 합니다..
따라서, 친-레드셔츠 성향의 무장세력도 존재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는거죠.. 다만 레드셔츠 지도부가 그들과 거리를 두는 노력을 하고 있으니.. 대놓고 나서진 못하지만.. 4월 10일에는 정말 결정적으로 도왔다는 점에서.. 이들 역시 퇴역-특수부대원보다는 정보와 지휘체계, 무장력을 겸비한 현역일 가능성이 보이는데... 일부 태국 보수언론들은 촤왈릿 용짜이윳 장군이 영향력을 가진 "타한판"(국경수색대)일거라고 추정하는데..
좀더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태국의 "타한판"이 공수훈련도 받기는 하지만.. 아주 초고급 작전(가령 암살작전)을 할만큼.. 태국 내 최정예부대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구성이 직업군인과 파트타임 군인이 결합한 준-군사조직 성격이 있기 때문이죠.. 하여간 태국의 군대와 민간부문 무력 및 폭력조직이... 이 사회가 봉건제도의 사회라서 그런지.. 역시 과거 일본의 닌자들처럼 그런 문화가 상당히 있기는 있는듯 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네요.... 알면 알수록 무시무시한 사회구만요.. 이건 뭐랄가 전선 없는 전쟁터 같은 사회인데.. 과거 미국의 서부개척시대보다 더한듯 하네요..
이런 태국의 사회적 상황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지난 60일간의 "레드셔츠들의 비폭력투쟁"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가 지지해줄 수 없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높은데,, 지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위대한 레드들"에게 행운이 있기만을.. 간절히 기원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