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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곳간들을 헐어 내리라
대 바실리우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12,16-21).
1. 유혹은 두 가지 형태로 다가옵니다. 용광로 속에서 금이 정련되듯이, 때로는 고통 속에서 마음이 수련됩니다. 고통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마음의 깨끗함이 입증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번영을 빼앗기는 것을 가장 큰 시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역경의 시기에 절망으로부터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것은 어렵지만, 번영을 누리는 시기에 교만해지지 않는 것도 어렵습니다. 위대한 욥, 그 무적의 경기자는
첫 번째 종류의 유혹에서 인내심의 모범입니다. 확고한 마음과 흔들리지 않는 정신으로 그는 모든 악의 폭력을 용감하게 이겨냈습니다. 상대가 무서운 기세와 계략으로 더욱더 파고들수록, 욥은 그 유혹들을 더욱더 확실하게 이겨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방금 독서에서 들은 부자의 이야기에서 보듯, 일반적인 삶을 사는 가운데 생기는 유혹의 예들도 있습니다. 그는 재산이 엄청 많았는데도 더 많이 갖고 싶어 했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배은망덕한 사람을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에게 더 많은 재산을 주시어 그를 만족시켜 주심으로써, 친화적이고 깨인 행동을 하도록 그의 영혼을 초대하십니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루카 12. 16-18). 그 주인이 풍성한 수확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데도, 왜 땅은 풍성한 결실을 냈습니까? 그것은 하느님의 인내심이 널리 드러나도록 그분의 선하심이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미친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고 하였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이런 큰 선하심은 악을 저지르는 이들이 더 많은 벌을 받게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런 욕심쟁이가 경작한 땅에도 소나기를 내려 주시고, 씨앗이 서서히 따뜻해져서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햇빛을 내려 주십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유익한 모든 것이 나옵니다. 곧 풍요로운 토양, 적당한 온도, 풍부한 씨앗, 동물들의 협력 그리고 농사가 잘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그분한테서 옵니다. 그런데 인간은 못된 태도와 비인간애 그리고 나누기 싫어하는 이기심으로 응답합니다. 이 부자는 바로 이런 것들을 자신의 은인이신 하느님께 되돌려 드립니다. 그는 공동소유인 자연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 하지 않았고, 남는 것을 곤궁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와야 할 이에게 선행을 거절하지 마라"(잠언 3.27), "자애와 진실이 너를 떠나지 않도록 하여라"(잠언 3.3),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어라" (이사 58.7) 같은 계명들을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예언자와 교사들의 가르침을 전혀 따르지 않았습니다.
곳간은 넘쳐 나는 수확물로 터질 것 같은데도, 구두쇠 같은 그의 마음은 여전히 만족할 줄 모릅니다. 이미 있는 재산이 계속해서 불어나고 해마다 늘어나는 수확물로 과잉 생산물이 넘쳐 나다가, 결국 그는 이런 난처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욕심 때문에, 이미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할 줄 모르고, 곳간이 넘쳐 나서 새로 거둔 것을 보관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뜻이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그는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한담?" 이런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대체 누가 동정한다는 말입니까? 그는 많이 가져서 비참해졌고, 재산 때문에 불쌍해졌고, 여전히 더 많이 갖고 싶은 욕심 때문에 더 비참하고 불쌍해졌습니다. 땅은 그에게 소득을 가져다주었다기보다 오히려 근심과 슬픔과 혹독한 역경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는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처럼 탄식합니다. 아니 어떻게, 극심한 가난에 찌든 사람들처럼 이렇게 비참한 탄식을 한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하지? 무엇을 먹지? 무엇을 입지?" 이 부자도 이런 말들을 외쳐 댑니다. 아주 괴로워합니다. 그의 마음은 근심 걱정으로 타들어 갑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쁨이 되는 것들이 이 욕심쟁이를 야위고 쇠약하게 만듭니다. 그는 곳간에 있는 온갖 좋은 것들에 대해서는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재산 때문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고, 곳간이 흘러넘쳐 재산의 일부가 담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로 흘러내리지 않을까,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근원이 되지 않을까 안절부절못합니다.
2. 내가 보기에는 이 사람의 영혼을 괴롭히는 열정이 폭식가의 열정과 닮았습니다. 폭식가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려는 열정보다는 방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 죽을 운명을 지닌 이여, 그대의 은인이신 그분을 알아보십시오. 그대 자신이 누구인지, 그대에게 어떤 재산이 맡겨졌는지, 누구한테서 그 재산을 받았는지, 왜 그대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받았는지 그 이유를 그대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 그대는 선하신 하느님의 종이 되었고, 동료 종들의 청지기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단지 그대의 배를 채워 주기 위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대의 재산을 다른 사람의 것이라 여기고 쓰겠다고 결심하십시오. 결국 그런 것들은 잠시 즐거움을 주다가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만 그대는 그 모든 것을 어떻게 썼는지에 대해 엄격한 셈을 해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대는 모든 문과 창살을 꽁꽁 닫아걸었습니다. 밤새 걱정 때문에 뜬눈으로 지새면서, 자기 자신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가장 어리석은 조언자에게 말입니다. “어떻게 하지?" 이렇게 말하면 어떻습니까, 얼마나 하기 쉬운 말입니까! "굶주린 사람들을 내가 배부르게 해 줄테야. 내 곳간 문을 열어젖히고 가난한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야지. 인간을 사랑하는 요셉처럼 선언해야겠다. 자비로운 목소리로 이렇게 외쳐야지.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이여, 모두 나에게로 오시오.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긷듯이, 인자하신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모두들 나누어 가지시오." 그러나 그대는 결코 이렇게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까요? 그대는 자신이 누리는 것을 동료 인간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영혼 깊숙이 사악한 계획을 궁리합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어 줄 생각은 전혀 없고, 그렇게 많이 받았으면서도,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을까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의 영혼을 거두려는 이들이 가까이 와 있었지만, (그런사실도 모르고) 그는 자신의 영혼과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자신의 재산을 즐길 거라고 상상하고 있었지만, 바로 그날 밤 그의 영혼은 그를 떠날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그가 이런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하도록, 그리고 자신의 의도를 분명하게 표명하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합당한 판결을 받을 것입니다.
3. 똑같은 일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사실, 이런 일들이 기록된 목적은 우리가 비슷한 운명을 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 죽을 운명을 지닌 이여, 땅을 닮으십시오. 땅처럼 열매를 맺고, 영혼이 없는 땅보다 못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따지고 보면, 땅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의 이익을 위해 열매를 맺습니다. 하지만 그대가 한 착한 행실들의 결실은 모두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착한 일에 따르는 은총은 그 일을 한 사람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가난한 이들에게 무언가를 주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대가 준 것은 참으로 그대 자신의 것이 될 뿐만 아니라, 그대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되돌려 받습니다. 낟알 하나가 땅에 떨어지면 씨 뿌린 사람을 위해 많은 결실을 맺는 것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준 빵은 나중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그대의 마지막 추수가 천국에서의 첫 파종이 되게 하십시오. "너희는 정의를 뿌려라"(호세 10.12)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대는 어떻게 하면 곳간에다 재물을 안전하게 보관할까 혈안이 되어, 왜 그렇게 많은 걱정을 사서 하며 자신을 낭비해 버립니까? 누가 뭐라 해도, "이름은 큰 재산보다 값지다"(잠언 22,1)는 말이 있습니다. 부가 가져다주는 영예 때문에 부를 그토록 높게 평가한다면, 그대의 주머니 속에 딸랑거리는 금전이 많은 것보다도 그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들이 많은 것이 얼마나 더 큰 영광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대는 죽을 때에 그대의 돈을 여기에 남겨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선행의 영예는 주님께 가져갈 것입니다. 그대가 만물의 재판관이신 그분 앞에 설 때, 모든 사람이 그대 주위에 서서, 그대를 ‘아버지'와 '은인'이라고 부르며, 인간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온갖 칭호를 그대에게 붙여 줄 것입니다. 그대는 극장에서 관객들로부터 한순간의 영예와 박수와 찬사를 받기 위해서, 레슬링 선수와 배우, 동물 조련사, 심지어 악역 배우들에게 돈을 뿌리는 사람들을 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느님께 그런 큰 영광을 받을 일에 돈을 뿌리는 것은 망설여집니까? 하느님께서 그대를 받아 주시고, 천사들이 그대를 칭송할 것이고, 세상 창조 이후 태어난 모든 사람이 그대를 축복할 것입니다. 그대의 영광은 영원할 것입니다. 그대는 “의로움의 화관"(2티모 4.8)과 하늘 나라를 상속받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썩어 없어질 것을 청지기로서 잘 관리한 그대에 대한 보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관심이 온통 세상 것에만 쏠려서는 천국에서의 희망을 잊어버린 채, 그런 것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자, 이제 그대의 재산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십시오.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명예와 영광을 받으십시오.의로운 이들에 관한 말이 그대에 관한 말이 되게 하십시오."불쌍한 이들에게 후하게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존속하리라"(시편 112,9). 가난한 사람들과 거래함으로써 그대 자신의 가치를 높이지 마십시오. 곡식이 부족해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대의 곡물 창고를 여십시오. "곡식을 내놓지 않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는다"(잠언 11.26) 하였습니다. 기근을 이용하여 재산을 늘리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한테 필요한 공공 필수품을 사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지 마십시오. 인간의 불행을 사고파는 장사꾼이 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응징을 이익을 얻기 위한 기회로 이용하려 하지 마십시오. 이미 고통에 찌들 대로 찌든 사람들의 상처를 할퀴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대는 재물에 대한 관심뿐, 형제자매들에 대한 관심은 없습니다. 그대는 주화 표면의 새김을 보고서 진짜 주화와 가짜 주화는 구별할 줄 알면서 곤경에 빠진 그대의 형제자매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완전히 무시합니다.
4. 그래요, 그대가 번쩍거리는 금에 유혹을 당하고 있는 동안 그대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가난한 이들의 신음소리가 얼마나 큰지 그대는 알아채지도 못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어떻게 하면 제가 그대에게 알려 줄 수 있을까요? 가난한 사람은 집구석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돈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단지 허름한 옷과 살림살이가 있을 따름입니다. 그들이 가진 것을 모두 더해도 몇 푼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것이 무엇일까요? 그들은 자기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애들을 시장에 데리고 나가 팔면 남은 가족들이 며칠 동안 간신히 굶어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 굶어 죽는 것과 부성애 사이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투쟁을 상상해 보십시오! 부모로서의 본성은, 그러지 말고 차라리 자녀들과 함께 죽을 것을 권하지만, 한쪽에서는 굶주림이 가장 참담한 죽음으로 위협합니다. 이 생각 저 생각 해 보지만 결국 궁핍한 처지라는 냉혹한 현실에 굴복하고 맙니다.
이제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어떤 아이를 먼저 팔까? 상인이 가장 흡족해할 녀석이 누굴까? 맏이를 먼저 팔아야할까? 아니지, 어떻게 맏이를 판단 말인가. 그럼 막내를 팔아야 하나? 비참함이 뭔지도 모르는 그의 철없는 나이가 가엾구나 이 아이는 엄마를 꼭 빼닮았고, 저 애는 공부에 재능이 있지. 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원망스럽구나! 어째야하나? 어느 자식에게 등을 돌려야 하나? 어떻게 인면수심이 되어야 한단 말이냐? 어떻게 인간 본성을 잊어버린단 말인가? 애들을 모두 끌어안고 있으면, 모두가 굶어죽는 것을 보아야 할 텐데. 만일 한 아이를 팔면, 내가 무슨 낯으로 다른 아이들을 볼 수 있을까? 애들이 항상 나를 자식
을 팔아넘긴 자로 여기고 불신할 텐데 말이다. 제 손으로 자식을 팔아넘긴 내가 이 집에 살 수 있을까? 아이의 희생으로 얻은 밥상에 내가 어떻게 앉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눈물을 흘리면서 가장 사랑하는 자식을 내다 파는 부모를 보아도, 그대는 그들의 고통에 무심합니다. 부모의 본성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참하고 불쌍한 이들이 굶주림에 시달려도, 그대는 '에헴' 하고 헛기침하며 거들먹거리면서 그들이 지금 어떤 일을 하려 하는지 모른다는 듯이 행동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이 더 길어지게 만듭니다. 그들은 식량을 받는 대가로 바로 자신들의 마음을 바칩니다. 그런데도 그대의 손은 움츠러들기는커녕 오히려 이런 불행으로부터 이득을 취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값을 깎기까지 합니다! 적게 주어 많이 남기려고 값을 흥정합니다. 그 결과 가엾은 이들은 모든 면에서 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들이 흘리는 눈물에도 그대의 마음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이들이 부르짖는 신음소리에도 그대의 마음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습니다. 그대는 무자비하고 동정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대는 항상 금만 바라보고 금만 생각합니다. 잘 때도 금에 대한 꿈을 꾸고, 깨어나서도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금입니다. 얼빠진 사람들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탐욕이라는 눈으로 보듯이, 그대의 영혼도 금이라는 악마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금과 은으로만 봅니다. 심지어 그대는 태양도 금으로 봅니다. 그대는 모든 것을 금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대의 생각과 마음은 온통금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5. 그대가 금 이외에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한 것이 있습니까? 곡식은 그대에게 금이 되고, 포도주가 그대에게 금을 늘려 주며, 양털도 그대에게 금으로 변합니다. 모든 거래와 모든 생각이 그대에게 금을 가져다줍니다. 금은 이자수입을 통해서 더 많은 금을 낳고 더 많은 금을 늘려 줍니다. 하지만 그대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그대의 욕망은 한계가 없습니다. 가끔 우리는 무절제한 아이들에게 먹고 싶어 안달하는 것을 마음껏 먹도록 허락함으로써, 과식을 통해 중용을 배울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욕심쟁이들한테는 이런 방법도 듣지 않습니다. 그들은 더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재산이 는다 하여 거기에 마음 두지 마라"(시편 62.11)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재산의 흐름을 감시하면서, 출구를 완전히 막아 버립니다. 재산이 흘러가지 못하도록 그렇게 꽉 막아 버릴 때, 그런 재산이 그대에게 무슨 이득이 됩니까? 무리하게 쌓아 놓은 재산은, 홍수가 나면, 큰물이 모든 제방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부자의 창고를 무너뜨리고 재산을 모조리 흩어 버립니다. 마치 적군에게 난도질당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 부자가 실제로 더 큰 곡식 창고를 지었을까요? 그가 후손에게 쓰레기 잔해 말고 어떤 것을 남겨 줄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습니다. 그 욕심쟁이는 재물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를 다시 짓겠다고 계획했지만,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것보다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시간이 그에게 훨씬 더 빨리 닥쳤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악한 의도에 걸맞은 종말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내 말을 듣는다면, 그대의 보물 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재산을 나누어 줄 것입니다. 큰 강물이 많은 수로를 통해 비옥한 땅으로 흘러들어 가듯이, 그대의 재산도 많은 길을 통해 가난에 찌든 이들의 집으로 흘러들어 가게 하십시오. 우물물을 다퍼내면, 우물에서는 깨끗한 물이 더 많이 솟아 나옵니다. 그러나 물을 다 퍼내지 않으면, 우물은 막혀 버려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쓰지 않는 재산은 아무한테도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재산을 사용하고 순환시키면, 재산은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고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대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그대를 얼마나 많이 칭찬할까요! 이것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정의로우신 심판자로부터 얼마나 큰 보상을 받을까요! 그분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심판을 받는 그 부자를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교훈으로 삼으십시오. 오늘 그는 자기 재산을 지키면서 동시에 더 많은 재산을 얻으려고 했기 때문에, 내일의 죄까지 짓고 말았습니다. 도움을 청하려는 이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그는 이미 자신의 잔인함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아직 수확물을 거두어들이지도 않았는데, 그는 이미 탐욕의 죄를 지었습니다. 땅은 풍요로운 수확물을 거두라고 모든 사람을 따뜻이 환영합니다. 땅은 고랑 깊숙이 곡물의 싹을 틔우고, 포도나무에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리게 하고, 올리브나무는 많은 올리브 열매를 무거워 휘어져 내리게 하고, 온갖 과일나무에 맛있는 과실이 매달리게 합니다. 그러나 그 부자는 따뜻이 환영할 줄 몰랐고 열매 맺을 줄도 몰랐습니다. 심지어 그는 아직제 손에 들어오지 않은 것조차 가난한 이들에게 넘어갈까 미리 안달했습니다.
게다가 수확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나요! 우박이 농작물을 쓰러뜨릴 수도 있고, 타는 듯한 열기가 농부의 손에서 농작물을 낚아채 갈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폭우가 구름 사이로 쏟아져 농작물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좋은 일을 끝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대 자신의 생각과 태도로 스스로를, 이제 막싹트기 시작한 것을 받을 자격조차 없는 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6. 그대가 자기 자신한테 속으로 말한다 할지라도, 그대의 말은 천국에서 심판받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바로 천국으로부터 대답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속으로 어떤 말들을 합니까? '영혼아,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오, 참으로 어리석은 자여! 만일 그대가 돼지의 영혼을 지녔다면, 그렇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요. 무엇이 영혼에 유익한지도 모른 채, 영혼한테 육체의 음식을 주고 똥통 속에나 들어갈 것들로 영혼을 섬기니, 그대는 참으로 그런 동물입니까? 그대의 영혼에 덕이 있다면, 그대의 영혼이 좋은 것으로 가득 차서 하느님 곁에 산다면, 그때에는 참으로 그대의 영혼은 "좋은 것으로 가득 차고” 순수한 영혼은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오직 지상 것만을 생각하고, 그대의 배를 하느님으로 섬기며(필리 3.19 참조), 완전히 육체적인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으니, 그대에게 딱 들어맞는 이 이름으로 불려야 합니다. 이것은 어떤 인간이 하는 말이 아니라, 주님께서 직접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영원한 벌보다도 훨씬 더 안 좋은 것이 그대의 어리석음 때문에 받는 이 경멸입니다.
잠시 후면 생명을 빼앗길 마당에 이 부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야지." '잘하는 짓'이라고 저는 말하겠습니다. 불의의 보물들은 허물어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대의 손으로 이 불의한 구조물을 헐어 버리십시오.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 곳간을 파괴시켜 버리십시오. 탐욕의 모든 창고를 헐어 버리고, 지붕을 허물어뜨리고, 담벼락을 헐어 버리고, 썩어 가는 곡식을 햇빛에 내놓고, 감옥에 갇혀 있던 재물을 끄집어내고, 탐욕스런 신의 음침한 창고를 때려 부수십시오.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야지." 그래서 더 큰 곳간이 또 차면, 그때는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그것들을 헐고 다시 더 큰 것들을 짓지 않겠습니까? 애써 지었다 다시 헐어 버리는 이런 끝없는 수고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곳간을 갖고 싶다면, 가난한 이들의 배 속에 곳간을 지으십시오. 천국에 그대를 위한 보물을 쌓아 두십시오. 천국에 쌓아 둔 보물은 좀이 쏠지도 않고, 썩어 없어지지도 않으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대는 "두 번째 곳간을 채우고 나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겠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대가 오래 살 것이라고 그토록 확신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대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일찍 추적자 죽음이 그대를 잡아갈지 누가 압니까! 게다가 그대의 이 약속은 그대가 선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사악한 의도를 갖고 있다는 표지입니다. 이 약속은 미래에 주겠다는 맹세라기보다 오히려 현재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주지 못합니까? 주변에 가난한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곳간이 이미 가득차 있지 않습니까? 천국의 보상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계명이 아주 분명하지 않습니까? 굶주린 이들이 죽어가고, 헐벗은 이들이 얼어 죽고, 빚진 이들이 숨을 쉴 수 없는데, 그대는자비 실천을 내일까지 미룰 것입니까? 솔로몬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네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게, 내일 줄 테니 하지 마라"(잠언 3.28).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대는 모릅니다.
그대는 탐욕으로 귀를 틀어막고서, 참으로 많은 계명을 무시합니다! 그대는 그대의 은인이신 그분께 참으로 많은 감사를 드렸어야 마땅합니다. 그대가 문밖에 모여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그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기뻐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혹시나 누가 그대의 움켜쥔 손에서 작은 동전들을 훔쳐 가지나 않을까, 눈을 내리깐 채 성의 없이 대꾸하며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대는 한 가지 말만 할줄압니다. "가진 것이 없어 줄 수가 없어요. 나 자신이 가난해요."그대는 참으로 가난하고, 선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대는 사랑을 행하는 데 가난하고, 친절을 베푸는 데 가난하며, 하느님을 믿는 데 가난하고, 영원한 희망을 지니는데 가난합니다. 그대의 형제자매들에게 그대의 식량을 나누어 주십시오. 내일이면 썩어 없어질 것을 오늘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썩어 없어질 것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 않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최악의 탐욕입니다.
7. “내가 내 재산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왜 누군가를 부당하게 취급하는 것입니까?"라고 그대는 반문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대의 것인지 제게 말해 보십시오. 그대가 이 세상에 갖고 온 것이 무엇입니까? 그대는 어디에서 그것을 받았습니까? 극장에서 먼저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사람이 나중에 들어오는 사람을 지나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누구나 즐기라고 있는 공간을 마치 자신만의 것처럼 여기듯이, 부자들도 이렇게 행동합니다. 그들은 공동재산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움켜쥐고서, 그것을 선취했다는 이유로 공동재산을 자기 소유물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나머지를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준다면, 부자도 없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도 없을 것이며 부족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대는 빈손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빈손으로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대는 그대의 재산을 어디에서 얻었습니까? 그대가 우연히 얻었다고 말한다면, 그대는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창조주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재산을 주신 분께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그 재산을 하느님에게 받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어디에 쓰라고 그대가 하느님으로부터 그것들을 받았는지 나에게 말해 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삶에 필요한 것을 우리에게 불공평하게 분배해 주신다고 해서 그분이 정의롭지 못한 분입니까? 다른 사람은 가난한데 왜 그대는 부유합니까? 가난한 이들은 끈질긴 인내심으로 고통을 이겨 낸 후에야 비로소 하느님으로부터 보상을 받는 반면, 그대는 자선과 충실한 청지기직에 대한 보상을 받게 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욕심이라는 밑 빠진 호주머니 속에 모든 것을 집어넣으면서도, 아무한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듯이 행동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대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서 빼앗았습니까?
탐욕스러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충분한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강도입니까? 모든 사람에게 속한 것을 빼앗아 가는 사람입니다. 청지기로서 위탁받은 것을 그대의 소유물로 여긴다면, 그대는 탐욕스러운 사람이며 강도가 아닙니까?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옷을 벗겨 빼앗으면, 우리는 그를 도둑이라고 부릅니다.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힐 수 있는데도 입히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달리 부를 수 있습니까? 그대가 숨겨 둔 그 빵은 굶주린 이들이 먹어야 할 빵이며, 그대의 옷장에 처박아 놓은 옷은 헐벗은 사람들이 입어야 할 옷입니다. 그대의 신발장에서 썩고 있는 신발은 맨발로 다니는 이들이 신어야 할 신이고, 그대의 금고에 숨겨 둔 돈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살아야 할 돈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많이 도와줄 수 있는데도 도와주지 않는 것은, 그대가 그만큼 그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8. “이런 말들이 좋기는 하지만, 금이 훨씬 더 좋다”고 그대는 말합니다. 방종한 사람들과 순결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이 보이는 태도와 똑같습니다. 그들은 부도덕성을 단죄하면서도, 단죄의 대상인 이들에 대한 욕망으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그대가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관심을갖고, 이런 비참하고 부도덕한 것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요? 오, 심판 날에 그대가 주님의 이 말씀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다"(마태 25,34-36). 그러나 그대가 다음과 같은 판결문을 듣는다면, 그대를 둘러싼 전율과 불안과 어둠이 참으로 클 것입니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다" (마태 25,4143). 더구나 이 구절에서 꾸짖음을 듣는 사람들은 무엇을 훔친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나는 그대에게 유익하리라고 생각되는 말을 했습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약속된 좋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에게는무서운 벌이 내린다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대가 이 부자보다 현명한 선택을 함으로써 이런 처벌을 피하고, 그대의 부가 그대를 위한 몸값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의 나라로 우리 모두를 부르시는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를 위해 천국에 준비되어 있는 좋은 것들을 향해 그대가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영원무궁토록 영광과 주권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