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어여쁜 아이들의 얼굴 아래 ‘○학년 ○반 ○○○’이라는 이름들이 무수히 새겨져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목울음으로 차올랐습니다. 지난해 4월 16일, 제대로 된 구조의 손길을 전혀 받아보지 못한 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난 세월호 희생자들의 1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진도의 팽목항을 찾았을 때였습니다.
꽃 같은 얼굴 아래 새겨진 무수한 이름들. 결코 낯설지 않은 광경이었습니다. “당신의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5․18 엄마들이 4․16 엄마에게 보낸 현수막의 전언 때문이기도 하였지요. 잘못된 권력과 비리가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다시 한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는 사실을 절감하던 순간, 내내 흐리던 날은 세찬 비바람까지 몰고 왔습니다. 하늘도 그날의 슬픔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월이 약이라는 속담이 없지 않지만, 어떤 세월로도 씻어지지 않은 슬픔이 있으니 그것은 사랑하는 아들딸을 여읜슬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4․16 혹은 5․18 엄마가 아니더라도 우리들 역시 남도의 서정시인 김영랑의 시심(詩心)과 마찬가지로 뻗쳐오르던 보람이 서운케 무너지는, 봄을 여읜슬픔에 잠길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화려함을 자랑하던 꽃들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진리 그대로 뚝뚝 떨어져 눕는 모습을 수도 없이 목격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의미
용례
1.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이별하다
<압구정 백야>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오빠와 단 둘이 자란 여주인공 백야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가족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2. 딸을 시집보내다.
아빠는 벌써 두 딸을 여의고도항상 이 순간만큼은 떨리시나보다.
3. 멀리 떠나보내다.
일체의 번뇌를 여의었으니마음이 한없이 평화로우실 듯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말 ‘여의다’의 용법이 방언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의 표준어에서 ‘여의다’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로 쓰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여기에서 보듯이 표준어에서 ‘여의다’는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이별하다.”라는 의미와 함께 “딸을 시집보내다.”, “멀리 떠나보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라도방언에서는 ‘여의다’의 의미가 표준어와 사뭇 달라서 세 가지 의미 가운데 첫째 의미와 셋째 의미로만 쓰이고 있으며, 둘째 의미, 곧 “딸을 시집보내다.”라는 뜻으로는 ‘여의다’ 대신 ‘여우다’를 사용하고 있음이 특징입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전라도방언에서 ‘여우다’는 “딸을 시집보내다.”라는 의미 외에, “아들을 결혼시키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전라도 지역에서는 아들딸을 결혼시킬 때 아들과 딸을 가리지 않고 둘 다 ‘아들 여운다’ 혹은 ‘딸 여운다’라는 표현을 쓰는 반면, 표준어에서는 딸을 시집보내는 경우에만 ‘여의다’를 씀으로써 지역에 따라 어휘 사용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컨대 아들딸을 결혼시킬 때 사용하는 ‘여우다’는 적어도 표준어가 아닌 전라도 방언에서만 사용되는 방언 어휘이며, 표준어의 경우 ‘여의다’가 그러한 의미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음을 알아 두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언어의 차이는 필연적으로 문화의 차이를 야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바, 적어도 우리의 전라도 땅에서는 아들딸을 구분하지 않고 결혼시키는 것 자체를 시집으로 혹은 처가로 떠나보내는 일이라고 의식한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을 할 수 있을 듯합니다.